고등학교 한 교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아이가 친구의 크록스 신발을 짝퉁이라고 놀렸다.
"야, 너네 부모님 가난한가보다,
너 그 신발 짝퉁이야" 라고 말하자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응, 그럴지도 모르지, 사실 난 크록스 정품을 본 적이 없어,
넌 본적이 있나.
하지만 난 우리 부모님이 사 주시는 것은 전부 정품이라 생각해,
그게 우리 부모님 마음인걸 아니까,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든 난 정품이라 생각하고 신을 것이고,
만약 이 신발이 가품이라면
내가 나중에 우리 부모님 신발은 꼭 정품을 사 줄꺼야.
그래서 난 우리 부모님이 사주시는 것은
전부 정품이라 생각해, 그것이 무엇이든..."
이 친구의 행동은 정확히 자존감이 높은 정형이다.
반대로 그 친구를 놀린 사람은 자존심이 강해서
누군가를 보면 무시하고 찍어 누르려는 본성만 가득한 친구다.
어르신들이 모여서도 마찬가지다.
가끔 이렇게 물어본다.
"어르신 혹시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이러면
어떤분은 "아이 그런걸 뭘 물어봐,
딱 보면 몰라.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지,
하면서 껄껄 웃으신다.' 이 분은 자존감이 높으신분이다.
반대로 "뭐야 날 무시하는 거야.
딱 보면 몰라.
내가 과거에 어디에 근무했는지 몰라,
왜 그런 쓸데 없는 걸 물어..."
이분은 자존감은 낮고 자존심이 쎈 분이다.
사실 난 신발의 브랜드는 '나이키' 밖에 모른다.
가끔 선물로 이런 저런 신발을 유명 브랜드 것이라고 사주어서
신어보면 이상하게 몸이 한쪽으로 쏠리고 영 불편한 신발들이 있다.
나에게 좋은 신발은 브랜드, 가격을 떠나서
내가 신었을때 딱 맞아서 발이 편한 신발이 최고의 브랜드다.
이제 누군가의 시선으로 부터 자유로움을 느끼는
'타인의 시선으로 부터 자유'를 누린다.
나이들어 가면서 이런 깨달음이 좋다.
더 이상 어디가서 명품을 자랑할 일도 없고,
내가 스스로 만족하고 편안함을 느낄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최고의 명품이다.
나도 그랬지만 젊어서 아둥바둥 모아서
말도 안되는 비싼 가방을 명품이라고 들고 다니면서
카드값을 연체하는 사람들을 보면 많이 안스럽다.
혹자는 나이들수록 그래도 명품 가방 몇 개는
있어야지 하는데 나는 글쎄다.
본인이 스스로 명품이라는 자존감이 높다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말 몇마디 나누어보면 바로 인격이 바닥인걸 아는데
아무리 좋은 명품을 걸친다고 본인이 명품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인지,
자존심이 높은 사람인지 한번쯤 생각해보면 좋겠다.
대부분 뭘 그런걸따저
이렇게 말하는 사람치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없다.
나이가 들수록 돈을 떠나서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는 행동과 노력을 한다면
주위에 사람이 많을 것이고,
자존심만 가득한 행동을 한다면 주변에 사람이 없을 것이다.
돈이 없어도 부자처럼 행동할수 있고,
돈이 많아도 거지근성 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많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동안 과거의 내 행동을 천천히 돌아보는 것만으로
자존감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나 역시 돌아보니 후회되는 것이 많다.
군 생활동안 항상 어렵고 위험하고
힘든 훈련일수록 먼저 모범을 보였다.
갓 입대한 병사들은 훈련 하나하나가
위험해 보이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낀다.
이때 내가 먼저 시범을 보이고
너희도 할수 있다고 독려 했다.
이것이 습관이 되어 전역후 사회생활도 이렇게 했다.
하지만 이건 잘못된 결과를 많이 만들었다.
내가 경험해서 좋은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주었지만
그 결과가 나쁘게 나오는 것을 여러번 경험했다.
역시 모든 조직에 동일한 잣대를 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였다.
그래서 깨닫는 것이 사회생활, 경제적 문제,
특히 투자의 세계는 내가 경험해서 좋은 것이면
주변 사람들에게 멋진 밥을 사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전하지 말자.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소위 오지랍으로 알려준 것이
미래 안좋은 결과가 나올때 원망만 돌아온다.
어느정도 인생2막을 준비하고 있는 분들
그리고 은퇴기에 접어들었다면
오늘은 한번 자신의 자존감은 어떤 상태인지,
혹시 자존감은 낮고 자존심만 강한 상태는 아닌지
돌아보면 좋겠다.
* 모셔온 글 / 존재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