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道元, 1200-1253】
일본 조동종(曹洞宗)의 개조. 경도(京都) 사람. 호는 희현(希玄). 13세에 집에서 도망하여 비예산(比叡山)의 양관법안(良觀法眼)을 찾고, 이듬해 공원승정(公圓僧正)에게 머리를 깎고 보살계를 받았다. 그 후부터 천태종의 교관(敎觀)과 여러 경론을 배우다가 “본래 성불”이라는 말에 의심을 내고, 1214년 영서(榮西)에게서 임제(臨濟)의 종풍을 들었다. 1223년 송나라에 건너가 명주(明州) 천동산(天童山) 경덕사(景德寺)의 무제료파(無際了派)를 찾았다. 그 뒤부터 절옹여염(浙翁如琰)과 반산사탁(盤山思卓) 등 여러 고승을 찾았다. 1225년 경덕사의 장옹여정(長翁如淨)을 찾고, 사자(師資)가 서로 계합하여 조동(曹洞)의 당오(堂奧)에 들게 되자, 일생 참학하는 일을 마쳤다. 1227년 귀국. 1233년 성남우치(城南宇治)에 흥성사(興聖寺)를 짓고 선당(禪堂)을 열어 설법을 시작하였다. 그 뒤부터 각 지방으로 다니면서 종풍을 떨쳤다. 경도(京都)에서 입적하였다. 나이는 54. 승양대사라 시호. 저서는 『정법안장(正法眼藏)』 95권, 『영평광록(永平廣錄)』 10권, 『영평청규(永平淸規)』 2권, 『학도용심집(學道用心集)』 1권, 『보경기(寶慶記)』 1권, 『보권좌선의(普勸坐禪儀)』 1편 등이 있다.
도의【道義】
신라 스님. 도의(道儀)라고도 쓴다. 호는 명적(明寂). 속성은 왕(王). 북한군(北漢郡) 사람. 784년 당나라에 건너가, 대산(臺山)에 갔다가 광부(廣府)의 보단사(寶壇寺)에서 비구계를 받았다. 조계에 가서 육조의 영당에 참배하였고, 강서(江西)의 홍주 개원사(開元寺)에서 서당(西堂) 지장선사(智藏禪師)에게 의심을 결단하고, 법을 이어 받았다. 이름을 도의(道儀)라 고쳤다. 백장산 회해(懷海)에게 법요(法要)를 받았다. 821년(헌덕왕 13) 귀국하여 법을 설했다. 그때 사람들은 경교(經敎)만을 숭상하고 무위법(無爲法)을 믿지 않으므로, 시기가 아직 오지 않음을 알고 설악산 진전사(陳田寺)에서 40년을 수도하고, 제자 염거(廉居)에게 법을 전하고 입적하였다. 그뒤 염거의 제자 체징(體澄)이 법을 받아 가지산(迦智山)에 보림사(寶林寺)를 짓고, 그의 종풍을 크게 떨쳐 1파를 이루었다. 그는 가지산 선파(禪派)의 개조이다.
도작【 道綽; 562-645】
중국 스님. 병주(並州) 문수(汶水) 사람. 속성은 위(衛). 14세에 출가하여, 경론을 많이 익혔다. 『대열반경』을 연구, 24회 강설하였다. 혜찬(慧讚)을 스승으로 섬겼다. 대업(大業) 연중(605~617)에 문수 석벽곡(石壁谷)의 현충사에 이르러 담란(曇鸞)의 비문을 보고 감동하여 열반종(涅槃宗)을 버리고 정토문(淨土門)에 돌아갔다. 그 뒤부터 날마다 부처님의 명호를 7만 번 부르고, 『관무량수경』을 2백 번 강설하였다. 진양(晋陽)ㆍ대원(大原)ㆍ문수(汶水) 등지를 교화하였다. 정관(貞觀) 19년 현충사에서 나이 84세로 입적하였다. 그가 있던 현충사가 서하(西河)의 문수(汶水)에 있었으므로, 후세에 그를 일컬어 서하선사(西河禪師)라 한다. 저서는 『안락집(安樂集)』 2권. 등이 있다.
콘사이스 판 불교사전(민족사:김승동 편저)에서 모셔왔습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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