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마 16:22~23)
항변했다는 말은 책망했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셨다는 것은 베드로에게 등을 돌리셨다는 뜻입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돌발적인 행동을 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입장에서는 인간적인 면에서 스승을 염려해서 한 말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아직 하나님의 방식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식과 사람의 방식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방식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인간의 죄를 대속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은 어찌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처참한 죽임을 당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실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자주 베드로의 방식을 따라가는 사례가 많습니다
선교나 전도할 경우 우리가 가진 지식이나 역량을 총동원하지만 실제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은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전파했을 때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근본적인 원인은 나의 의로움이나 행위나 지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말씀의 표준에 따라 살아가며 열매로 입증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의롭지 못하거나 악행을 하거나 잘못된 지식에 기반하면 길을 잃거나 잘못된 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우리를 갈라 놓는 것은 죄이기 때문이고, 믿는자가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예수님이 오셔서 이스라엘을 로마의 식민지에서 해방시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주라고 하시지만 로마에 대항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주님은 그일로 보내심을 받지 않으셨기 때문이고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남유다의 왕들이 이집트와 동맹을 맺고 앗시리아나 바벨론의 공격에 대응하고자 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에는 좋은 전략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런 왕들은 망했고 하나님을 의뢰했던 히스기야는 천사의 도움으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죽음을 앞두고 값비싼 설화석고 옥합을 예수님의 발에 부을 때 그것을 인간적으로 아깝게 생각한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명분은 가난한 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예수님이 어떤 분이라는 통찰을 가졌다면 이 일을 기뻐했을 것입니다
주님은 말 그대로 모든 일에서 엄청난 기적과 표징으로 사람들을 감동시켜 믿게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방식은 병자들을 치료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복음을 전파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주님은 요한에게 자신의 사역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눅 7:22)
사람 중에 가장 큰 세례요한이었지만 그는 한 번도 기적을 베푼 일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죽은 자를 살리시는 기적만 보더라도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올리셔야 하고 그를 죽게 만든 질병도 치유하여 살려야 하고 죽은 상태에서 부패한 장기들도 회복시켜야 합니다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에서 기적을 베풀지 못한 이유를 사람들에게 설명하자
고향 사람들은 분노하여 예수님을 절벽에서 밀어 죽게 하려고 끌고 갔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시켜 그들과 폭력적으로 싸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신적인 권위로 사람들을 잠시 얼어붙게 하신 후 대중들 사이로 지나가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방식이 사람의 생각과는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행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에서 사람에게 칭찬받는 것은 하나님께 책망받을 일입니다
오히려 박해와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한 일이 드러나며 하늘에서 큰 자가 될 것이라 하십니다
같은 상황이라면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지만 주님은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아" 말씀하신 것은 베드로가 사탄이라는 뜻이 아니라 사탄이 베드로에게 잘못된 생각을 주입했다는 뜻에서 하신 것입니다
사탄의 목적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자신이 땅에 오신 진정한 목적이 사람들의 죄악을 위해 죽는 것임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다르게 생각했고 주님께서 죽지 않을 것이라고 설득하려 했습니다
베드로의 생각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사탄에게서 온 것이었고 사탄을 책망하셨습니다
반면에 유다에게는 친구라 말씀하셨습니다
"친구여 내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유다의 경우, 그는 배반하였지만 친구라 부르신 것은 그럼에도 주님은 그를 끝까지 사랑하셨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사랑은 이와 같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지만
베드로처럼 하나님을 대변한다고 하면서 깨닫지 못하고 사탄을 대변합니다
마지막 세대의 문제점 중 하나가 이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과 다르게 행동하므로 하나님의 계획을 헛되게 합니다
우리는 직장이나 사역이나 가정에서도 행동하기 전에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해 질문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부탁하는 것이 사람의 도움을 요청하거나 부탁하는 것보다 훨씬 선행되어야 합니다
우선순위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출처: 카이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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