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조(節操)
정해년(1587)에 한강 정구 선생이 함안 군수로 있으면서 선생을 내방하였다. 이듬해 2월 최영경 선생이 한강을 답방하였다. 한강은 그때 백매원에 있었다. 매화가 한창 꽃망울을 터뜨려 온 좌중이 감탄하며 감상하고 있었다. 선생은 동자를 불러 도끼를 가져와 찍어버리게 하였다. 좌우에서 온통 만류하여 그만두었다. 선생은 이에 매화를 경계하게 하며 말했다. “너를 귀히 여기는 까닭은 단지 백설의 바위 골짜기에서 그 절조를 아낄 만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복사꽃 오얏꽃과 봄을 다투고 있으니 네 죄가 베어 마땅하나, 말리기에 그만둔다. 이후로는 마땅히 경계할 줄 알아야 하리라.”
도리행화(桃李杏花)와 봄날을 다투는 꽃은 매화가 아니다. 북풍한설 몰아칠 때 그 모진 눈보라 속에 피는 꽃이라야 매화다. 늦게 핀 매화야 무슨 잘못이 있을까마는, 그 매화를 다 찍어버리겠다고 도끼 들고 설친 최영경의 그 기염이 얄궃다. “매화를 나무라는 것이 아니었겠지. 백 그루나 되는 매화를 심어놓고, 봄날 손님들 청해다가 잔치를 벌이던 주인을 나무란 것이었겠지. “매화를 왜 심었던가요? 내 정신 더 맑게 하고, 내 머리 더 차갑게 해서 세상 어떤 역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늠연한 기상을 기르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던가요? 그런데 이게 뭡니까? 따뜻한 봄볕 아래 술잔이나 돌리면서 봄날을 노래하자고 매화를 심었답니까? 내 주인을 나무라진 못하겠고, 애꿏은 매화나 도륙내야겠습니다그려. 도끼를 내오시오. 다 찍어버리겠소.” 주인은 뜨끔해서 등줄기에 진땀이 다 흘렀겠구나. 그 꼬장꼬장하던 정신의 줏대는 지금 다 어디로 갔는가?
‘정민’씨가 지은 ‘죽비소리’에 나오는 한 꼭지입니다. 경책(警策), 즉 정신이 번쩍 드는 말씀 중 제가 좋아서 고른 한 부분입니다. 뭔지 모르게 흐트러지고 맘 내기 힘들 때, 한번 읽어 보시고 스스로들 警策으로 삼는 것도 좋을 듯 싶어서 한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가슴 따뜻한 설, 잘 보내시길....
첫댓글 삶의 초점을 다시금 생각케 하는군요! 다소롬님도 설 잘보내세요.~~^^^
고마와 같습니다. 바니하~
바니하.. 다소롬님께서도 따뜻한 설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문두에 한강 정구선생이 나오던데 그 분이 백매원의 주인이었던가요..? ^^ 그 분은 저로 보면은 12대 윗선조가 되시는 분이신데요..^^
그런한 걸로 압니다. 아~ 또 그런 인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