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철 화백의 "모내기" 가로 130cm, 세로 163cm
검찰은 신학철 화백의 작품, ”모내기“ 를 한반도로 보고 아래쪽은 남한, 윗부분은
북한으로 규정했고 따라서 윗부분의 즐거운 추수 장면은 "북한을 찬양한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참으로 독특한, 검찰의 그림 보는 관점이다.
그림을 너무나 기계적인 이분법적으로 해석했다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대한민국은 두 동강 나 있다. 그 두 동강은 우선 38선으로
구분돼 있고, 그 남쪽은 민주주의, 그 북쪽은 괴뢰 공산당,
공산주의라는 이분법이다.'
이런 사고방식에서 신학철 화백의 그림, 모내기를 보면, 기계적인 아니, 단순히
그림의 위아래를 보면 윗부분에는 즐거운 추수 장면이 묘사돼 있고, 아랫부분에는
힘겹게 일하는 장면이 묘사돼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80년대 당시 검찰은
“왜, 어떤 이유에서 윗(38선 위)부분을 그렇게 좋은 모습으로 그려냈냐“며, 따질 수
있다. 그들에게는 무조건, 대한민국을 연상케 하는 모든 지도나, 그림, 아니 그 어떤
이든 윗부분을 좋게 묘사하면 국가보안법의 잣대를 들이댈 자세가 돼 있던 것이다.
신학철 화백의 ‘모내기’ 그림을 다시 보자. 해서 그런지, 도무지 대한민국의 지도를
연상할 수 없다. 다만, 검찰이 그렇게 해석해서 국가보안법을 적용했다고 하니,
그렇게 보여 질 수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검찰은 ‘통일운동을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통일에 대한 염원을
서정적이고 감동적으로 그렸다는 평가를 받는, 신학철 화백의 ‘모내기’를 국가보안법
속에 꾸겨 넣었고, 그림은 네모 반듯하게 접어졌다.
유화 작품이든 수채화든, 여러번 접게 되면 그림의 가치는 형편없이 떨어지게 된다.
특히 유화는 흰 캔버스 천에 물감을 도톰하게 덧 칠하면서 완성이 되는데, 다 마른 후
에 캔버스 천을 접게 되면, 물감 자체가 캔버스 천에서 떨어지게 된다.
한마디로 무식한 짓이다. CBS 취재 결과대로, 가로 130cm, 세로 163cm 크기의 이
작품을 여러번 접어서 작은 서류봉투에 넣어 방치하고 있다면,
이 작품은 그림으로서의 가치조차 상실한 셈이 된다.
그러나, 신 화백의 ‘모내기’는 단지 그림으로서의 가치를 지닌 것만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고 실망스럽기 짝이 없는 것이다. 서슬퍼런 군사독재가 모든 국민의 사고
방식을 짓누르고 횡행할 즈음에, 폭압적인 군사독재가 판을 칠 당시, 그러한 폭압정치
에 항거하면서 민중미술이 지향했던 통일운동의 결실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했던 것이다.
그러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작품이, 그림을 압수하기만 했지, 작품의
보관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했던 국가기관에 의해 심각하게 훼손된 것이다.
작가에게는 자신의 작품이 곧 자신의 분신이다. 자식과도 같은 것이다.
그 안타까움이 전해 진다.
한 화백의 치열했던 작가정신, 시대정신이,
무식한 국가기관에 의해 마치 군부대 내무반의 관물함처럼, 네모 반듯하게 정렬돼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미이라가 돼 버린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가?
이제라도, 국가는 작가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되돌려 주는 결단을 내리기를 바란다.
신학철 화백은 그림을 돌려받게 될 경우 작품훼손에 대한 보상을 요구해나가는 동시에
접힌 그림을 그대로 펴서 대중에게 공개함으로써 정권이 예술품에 대해 어떻게 상처를
입혔는지 똑똑히 알리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우리의 80년대는, 민주화 운동 인사들에 대한 명예 회복뿐 아니라, 이처럼, 한 시대를
표현했던 작가와 작품에 대해서도 사죄를 해야 하는 불운한 과거였다.
불운한 과거가 현재에도 진행되지 않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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