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신인류
호모 나랜스-작가 한혜원
감상 평가-이
명희(목향)
이 책은 아날로그 세대인 나에게 신선한 정보를 주었다. 1부-인간, 이야기하다. 2부-미디어, 이야기에 날개를 달다, 에서 일반적인 소설이나 수필과 다르게
미디어의 세계가 스토리텔링을 확장해 나가는 전문 서적이다. 호모 나랜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뜻한다.
스토리텔링을 접하면서 유한한 자로서의 감회가 깊다. 예수의 짧은 역사는 선조들에게 부활까지 접목하지 못했다. 세종대왕은
부활했을까? 나의 아버지는? 이런 의문을 품을 때마다 기독교에선
신의 영역이라고 알려고 하지 말랬다. 그렇다면 디지털의 스토리텔링도 조선 시대에선 신의 영역이었을 것이다. 이렇다 보니 백 년 후의 미디어 세계가 궁금해진다. 작가는 디지털
시대의 각종 기기를 접하고 연구하고 실행하면서 미디어의 무궁무진함을 거시적으로 풀어놨다. 컴퓨터의 자판을
두들기며 눈앞에서 다양한 영상과 게임을 경험하고 각종 웹을 접하다 보면 현실은 3차원을 지나 4차원에 이른 것 같다. 쉽게 말해 하늘과 땅을 2차원이라 하고 인간과의 관계를 3차원, 미디어와의 소통을 4차원으로 봤을 때 전자 시스템으로 소설이 게임
같고 게임이 소설 같은 연속성으로 어느 사이트든 접속되어 있으면 뇌의 공진화로 인터넷 웹의 활동이 곧 이야기고 생활 같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기억이 떠오른다.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가면서 친구에게 이야기보따리를 풀곤 했는데 나의 상상력과 공상력은 한 시간짜리 이야기가 부풀려져 며칠 짜리 이야기가 되곤 했다. 나도 이야기꾼의 소질이 있었던 건 아닌지. 현대는 이야기의 홍수
시대다. 이야기는 지식보다 정보를 먼저 전해준다. 디지털
시대에 살아보니 세상 이치가 모방이 변형되어 창조되는 것 같다. 어릴 때 지어낸 이야기가 미디어의 변화
속에서 현실화하였다. 이 책을 요약하자면 미디어의 발달로 스토리텔링이 시공간을 넘나든다는 얘기다.
*이야기의 본능, 진화하다-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묻는다면 도서관뿐만 아니라 영화관이나 PC방, 혹은 웹에서 검색해 보라고 답할 것이다. 미디어학자 니콜라스 네그로폰테는 [디지털이 사회, 문화적 패러다임마저 교체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이제는 대중들은 처음과 끝이 명료한 결과물보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 자체에서 재미를 느끼는 이야기를 원한다. 시즌 사이에 이야기가 멈추는 것을 참지
못하는 대중들은 블로그나 게임을 통해서 스스로 스토리텔러가 되어 이야기의 간극을 메우기도 한다. 스토리텔링은
인문학. 공학. 사회과학 등 이질적인 분야들을 통합할 수
있는 교량이자 전체를 볼 수 있는 설계도 역할을 수행한다. 스토리를 영상으로, 공간으로, 소리로 재현함에 따라서 이야기의 생명력은 점점 강력해진다. *가상세계는 넓고, 이야기는 많다. - ‘사이버스페이스, 전
세계에서 수억의 정규직 오퍼레이터와 수학을 배우는 어린이들이 매일 경험하는 공감각적 환상, 인류의 조직
안에 존재하는 모든 컴퓨터의 테이터 뱅크에서 유추된 자료구조의 시각적 재현 그 상상을 초월한 복잡한 정신 속의 공간 아닌 공간’-윌리엄 깁슨가 말함. ‘광활한 스토리계를 떠다니는 주인 없는 이야기들의
최종 목적은 독자를 텍스트의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로 만드는 것이다.’-롤랑 바르트가 말함. *가상세계 표류기, 나는 정말 누구인가? -가상세계에서 나타나는 작가란 근대적
의미의 주체와는 거리가 멀다. 한정된 개인이나 자아라고 보기도 부적합하다. 가상세계에서 사용자는 저자로서의 자신의 이름 대신에 아이디나 아바타로 자신을 표현하는데 정체성은 다중적으로
나타난다. *나, 아바타-인쇄 문학의 단골 캐릭터인 고뇌하는 햄릿은 디지털 게임에서는 입지가 약하다. 하늘을
나는 앨리스나 해리포터 같은 ‘행동형 아바타’가 우대받는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인간 사고에 변혁을
가져왔고 결과적으로 우리가 생산 및 소비하는 이야기의 양과 질의 기준을 바꾸어 놓았다. 다만 기술은
그릇과 같다. 그릇 안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서 그릇은 보물이 될 수도 있고 무용지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신기술을 보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기술로 인간에게 보탬이 되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연구의 과정이다. 기술을 따라잡는 데는 10년이
걸리지만 문화를 따라잡는 데는 100년이 걸린다.* *~* -본문 내용-
본문이 컴퓨터
관련 전문 내용이다 보니 지루할 수 있어 내용은 빼고 맛보기로 요약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첫째, 이야기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는가이다. 외국에선 스토리텔링도 스쿨에서
양성한다지만 교육과 쓰기의 훈련만으로 세기적인 작품이 나올 수 있겠는가! ‘반지의 제왕’을 쓴 돌킨이나 ‘해리포터’를
쓴 롤링은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단테는 오직 한 명이다. 어찌
이런 천재들을 교육만으로 양성할 수 있겠는가. 물론, 그들이
하루아침에 위대해진 건 아니다. 숨겨진 작가의 노력이 있다. 둘째, 이야기꾼 유발 하라리가
‘호모 데우스’에서 미래엔 인간도 신의 영역까지 넘볼 수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설파했듯이 픽션과 논픽션의 이분법적인 논의에서 ‘팩션’을
표방하는 3차원, 4차원의 환상이 과학 문명의 기술로 현실화하였다는
점이다. 문명과 문화의 진화로 삶이 더욱 가치 있고 다양하게 변화되고 있다. 예를 들자면 옛날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가상의 세계를 미디어의 세계로 확장해
4차원의 책들이 현실이 되어 우리를 경험시키고 있다. 그 예로 최근 MBC 스페셜 [너를 만났다]에서 가상현실(VR)과
특수영상(VFX)을 총동원하여 가상현실이 현실 세계에 큰 감동을 준 휴먼다큐를 소개한다. 7살 딸을 저세상에 보내고 슬퍼하는 엄마를 위로하고자 죽은 딸과 엄마를 가상의 세계에서 만나게 한 다큐멘터리다. 우리가 영화를 볼 때 3D, 4D 안경을 쓰고 그 속에 들어가 있는
것과 같은 체험이다. 슬픔 속에 있던 엄마는 비록 가상의 세계였지만 죽은 딸을 만나 얼굴도 만지고 포옹도
했다. 그리고 행복했다. 이젠, 슬퍼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뇌과학으로 발전하여 무한한 스토리를
만들고 디지털 매체가 인간을 위로하기에 이르렀다. 미디어는 이로움과 해로움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문명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선조들보다는 낫다. [2017년 수정본]
첫댓글 70년대 말에 나노시대가 온다고 경악을 할 정도 였는데
불과 40년 만에 천배나 앞선 피코 시대가 온다고 하며
그 모델들이 과연 이세상이 어찌 변해갈 지 혼란스럽게 할
정도가 되었읍니다.
4차원 이상은 머리가 아파 생각조차 피하는 편인데
세상은 벌써 폭포 바로 위의 급류처럼 돌진해 가고 있읍니다.
마치 그 물살에 빨려 들어가 폭포 아래로 곤두박질 쳐지지 않으려는 것처럼
물가의 풀포기를 잡고 허우적이는 신세 같아 씁쓸하기도 하지만
앞서가는 이들을 따라 달려들지 않으면 안 되는 기로에 있다고 봅니다.
신인류 호모 나렌스가 되기 위해 나이아가라 폭포를 뛰어 내리는 심정으로
시대의 소용돌이 치는 물결에 바디 래프팅을 해야 할까 봅니다.
어려운 내용을 간결히 요약에 주셔서 감사 !!!
여려운 책을 이해하기 쉽게 잘 감상평으로 올려주셨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요즘 기업이나 어떤 제품이 성공하려면 알맞는 스토리텔링이 있어야카데요.
한국서 제일 높은 롯데월드타워가 크게 인기가 없는 이유가 확실한 스토리텔링이 없다는거랍니다.명희샘이 스토리텔러로 도전해보심이 어떨지요.
두 분 댓글, 감사합니다!
전문적 내용은 생략했지만 인공지능에서
뇌과학으로 발전하고 있는 21세기 디지털 매체를 소개하고자 공유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