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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자 (창39:1-6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약속은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만 확실하게 믿을 수 있다면 우리가 현재 당하고 있는 고난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잘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 약속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중요한 약속은 임마누엘의 약속입니다. 천국이 좋은 것도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경치가 좋은 곳을 보면 천국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답고 황홀한 경치라도 그것은 천국이 아닙니다. 천국이 천국된 이유는 그곳이 하나님이 계신 곳이요, 내 아버지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사람이 누구입니까. 소유가 많거나 지위가 높거나 권세와 능력이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에게 대한 특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은 고난 중에도 성실합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도넛이라고 하면 ‘던킨도넛’을 생각합니다. 현재 이 던킨도넛 가게는 미국 전역에 1,700여 개나 되고 세계 100개국에서 성업 되고 있는 실로 도넛 왕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단일 음식으로 세계 제일의 이익을 보는 던킨도넛의 창업자인 로젠버그는 고등교육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가 어릴 때는 미국은 경제 공항을 맞아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14세의 어린 나이에 한 주일에 20달러를 벌어 부모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았으나 소득의 십일조와 감사 신앙생활을 꾸준히 하면서 하나님을 믿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21세에 작은 회사의 지배인이 되고 30세에 ‘모빌 런치 서비스; 라는 회사를 차렸으며 사업은 계속 번창하여 도넛과 커피를 주종으로 하는 가게를 전국 곳곳에 세웠습니다. 이렇게 성공한 그는 72세의 생일 축하 파티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몹시 어둡고 무서웠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의 동행자가 되어 주셔서 늘 이끌어 주시며 나의 짐을 대신 져 주셨고 나를 그가 창조한 세계에서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하게 하여 지금까지 많은 것을 배우게 하셨다. 세상의 성공은 지식이 문제가 아니라 태도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실로 행복한 사람이다.”
형들의 미움을 사서 애굽으로 팔려가 하루아침에 종의 신세로 전락하고서도 낙담하지 아니하는 17세의 어린 요셉의 늠름한 모습과 그러한 요셉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사랑이 어우러진 본문은 우리에게 진한 감동과 함께 성공의 비밀을 깨닫게 합니다. 오늘 성경에 기록된 요셉이라는 사람! 이 사람은 성공한 사람의 대표적 인물입니다. 그가 대제국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결과적인 일입니다. 그는 본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가 어디로 가든지,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요셉은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혔음에도 불구하고 그 고난 중에도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히 감당합니다. 요셉이 불평을 했다거나 원망을 했다는 한 번도 없습니다. 도리어 요셉은 고난을 당하면 당할수록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합니다.
*시37:1-3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와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
요셉이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함께 허시는 자는 고난 중에도 큰 일,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충성을 다합니다. 바울은 소아시아 지방을 선교하겠다던 자기의 뜻을 버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마게도냐의 첫 성 빌립보에 왔는데 환대를 받기는 커녕 도리어 매를 맞고 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감옥 속에서 찬양하고 힘을 다하여 성실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감옥의 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리고 간수와 그의 집안 식구들이 구원을 받는 놀라운 이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신뢰를 받습니다.
요셉은 노예의 신분이었으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사람, 신임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자기 자신 앞에 진실하고 신실했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지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를 믿어 주었습니다. 그의 진실도 믿어 주고 그의 능력도 믿어 주었습니다. 나아가 그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을 신나게 하고, 다른 사람을 신바람 나게 하고, 다른 사람을 열심히 일하게 하고, 다른 사람을 능력 있게 하는 강한 지도력을 가졌습니다. 자신이 열심히 일하면서 다른 사람을 기쁨으로 힘차게 일하게 하는 그런 능력을 가졌습니다. 이것은 요셉이 항상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는 종의 위치에 있었고, 노예의 신분으로 있으면서 비록 몸은 노예요, 주어진 현실은 노예의 신분이었으나 정신은 주인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 점이 요셉과 형들의 다른 점이었습니다.
그는 어렸을 적에 특별히 아버지 야곱의 총애와 사랑과 신임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이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소생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야곱이 특별한 대우를 한 것이 아닙니다. 이 내용을 성경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창37:2-3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비에게 말하였더라.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여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깊이 사랑하여’ 라는 히브리어 ‘아하브’는 선택적 사랑을 뜻합니다. .
*말1: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 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하나님은 야곱을 선택하셨고 그 야곱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선택적 사랑! 이 아하브의 사랑은 어느 과정을 두고 이루어진 사랑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오랜 세월을 두고 같이 지낸 결과 형제 중에서 가장 신앙적이고 정직하고 자기 일에 신실하며 효성스러웠던 요셉을 야곱이 사랑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물론 사랑했던 아내 라헬의 소생이요, 더구나 그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나고 없었기 때문에 요셉을 측은히 여긴 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 형들이 요셉의 옷을 취하고 숫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그 아비에게로 가져갔을 때 야곱의 반응이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창37:34-35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야곱이 아버지 이삭의 죽음이나,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죽음 앞에서 이렇게 애통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의 죽음을 얼마나 애통했으면 모든 자녀가 위로를 해도 그 위로를 받지 않고 차라리 죽어 아들에게 가려고 했겠습니까. 이것은 요셉의 총명함과 인물됨이 남달랐던 것을 보여줍니다. 그는 비록 나이는 어렸어도 여러 형들보다 인물됨이 준수하고 용모가 아름다웠습니다. 거기에다 신앙심이 투철하여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습니다. 이러한 요셉을 바라보는 아버지 야곱의 눈에는 자신을 이어 믿음의 대를 이어갈 아들은 바로 요셉뿐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은 범사에 형통하게 됩니다.
본문을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의 범사를 형통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사람은 어떤 유능한 사람을 만나더라도 범사에 형통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지식과 능력과 권세가 한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과 함께하면 반드시 모든 일이 형통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요셉이 노예로 팔려 간 다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창39: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보디발은 바로 왕의 친위대장이거나 형집행관의 우두머리입니다. 그의 이름을 보면 ‘보디발’은 ‘보디베라’의 준말로 ‘태양에 속한 사람’ 이라는 뜻입니다. 실로 그는 당시 모든 문명 세계의 패권국가였던 애굽의 막강한 실권을 소유한 실력자가 분명합니다. 그런데 애굽으로 내려간 대상 이스마엘 사람들은 요셉을 곧 바로 보디발의 집으로 데려가 팔려고 했습니다. 이 대상들이 요셉을 노예시장에서 팔지 않고 왕의 시위대장 집으로 데려간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요셉의 용모나 인품의 어떠함을 확실히 보여줍니다. 상인들의 눈에도 요셉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 불과 열일곱 살이지만 큰일을 감당할 인물로 인정하였을 것입니다. 나이 많은 형들의 미움과 시기로 머나먼 이국땅으로 팔려가는 이 아이가 두려워하거나 원망하거나 당황하는 기색이 없이 침착하게 처신하는 것을 보고 보통 아이가 아님을 알고 고가에 팔기 위해 고관대작의 집에 데려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생각할 것은 왕의 친위대장 정도면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납니다. 이 소년이 어떤 자질이 있겠는지, 똑똑한지, 장래가 있겠는지 척 보면 아는 것입니다. 보디발은 한눈에 요셉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의 준수한 용모와 총기 있는 눈빛, 성실해 보이는 자세와 겸손하면서 순종하는 모습에 고관집의 노예로서 적합한 인물로 판단하여 두 번 흥정할 것도 없이 비싼 값을 주고 요셉을 사버린 것입니다.
요셉은 노예로 팔렸으나 노예 중에서도 인정을 받고, 많은 사람에게 신임과 사랑을 받고 특히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가정 총무가 되었으며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단순한 종의 위치가 아니라 특별하고도 고결한 봉사자의 지위를 얻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개인 비서나 가정 전체의 관리자로 임명된 것입니다. 일개 천한 히브리 소년이 이토록 성공한 것이 우연한 일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가 보디발의 집에서 쫓겨나가 감옥에 들어가 죄수가 되었을 때 같은 동료 죄수들로부터 존경을 받았고 간수로부터 신임을 받습니다.
*창39: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억울한 고변에 휘말려 죄수 아닌 죄수가 되어 감옥에 갇혔어도 요셉의 심경에는 조금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루아침에 천 길 낭떠러지에 떨어져도 그는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더 씩씩하게 옥중 사무를 잘 감당하여 간수장으로부터 각별한 신임을 받았습니다. 간수장은 요셉에게 맡긴 것은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않았으니 그 신임이 얼마나 두터운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 후 바로 왕에게 범죄한 두 관원장이 시위대 감옥에 들어왔을 때 시위대장은 요셉에게 저들을 섬기게 하였습니다. 이 사실은 시위대장 보디발이 요셉의 정직을 인정한 것이며 그를 다시 기용한 것입니다.
이제 요셉은 바로 왕 앞에 섭니다.
*창41:14 이에 바로가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놓은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그의 옷을 갈아입고 바로에게 들어가니..
요셉이 술 맡은 관원장의 천거에 의해 드디어 옥에서 나와 바로 왕 앞으로 인도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고대하던 출옥입니까. 자유의 몸만 되어도 감격할 일인데 애굽의 황제 앞으로 나가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실로 흥분되고 떨리고 두려운 일입니다. 이제 사느냐 죽느냐 하는 귀로에 서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요셉의 심경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감옥에 있으나 황궁에 있으나 그의 마음은 고요하고 신중합니다. 출세냐 죽음이냐 갈림길에 섰어도 요셉은 침착합니다. 나아가 바로의 꿈을 들은 요셉은 애굽의 술객들과는 달리 명쾌하게 꿈을 해석합니다. 꿈의 해몽뿐 아니라 그 대책까지 시원하게 제시하는 요셉을 바로 왕은 좋게 여기고 그를 인정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왕에게도 신임을 받고 전적으로 왕의 은총을 입습니다. 처음에 아버지 집에 살았을 때는 아버지의 신임과 사랑을 받으며 가정의 모든 일을 책임졌습니다. 이때 그는 가장 나이 어린 동생이었습니다. 노예로 팔려 시위 대장 보디발의 집에 있었을 때는 그 가정의 총책임자였습니다. 이때 그는 가장 미천한 노예의 신분이었습니다. 감옥에 있었을 때는 감옥의 제반 사무를 총괄하였습니다. 이때 그는 죽을 죄인의 신분이었습니다. 애굽의 왕을 만났을 때는 전국을 다스리는 총리가 되어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그 자리에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이때 그는 감옥에서 갓 풀려난 죄인으로 애굽의 정치를 전혀 모르는 이방의 히브리인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두터운 신임을 받았습니다. 확실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의 능력도 그의 정직도, 그의 성실도 완전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요셉입니다. 요셉은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인격이었습니다. 그러한 인품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성공입니다. 요셉은 환경과 관계없이 살았습니다. 환경이 어떻게 바뀌든지 그는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진실했고, 언제나 성실했고,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았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는 과거의 노예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과거를 깨끗이 잊었습니다. 그는 억울한 한을 품고도 자유했습니다. 전혀 소망이 없는 노예의 신분에서도 그는 이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진실하게 성실하게 살아온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에게 가능한 것입니까. 가슴에 응어리가 있는데, 슬픔과 아픔이 있는데 어찌 현실에 만족할 수 있습니까. 종교 개혁자 존 칼빈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간단하게 두 가지로 요약합니다.
첫째는 십자가 앞에서 자기를 계속하여 부정하는 것이다.
자기 부정적인 생활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욕심도 버리고 질투도 버리고 시기도 버리고 절망도 버리고 명예도 버리고, 다 버리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버려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어디까지 버렸느냐, 얼마나 버렸느냐 그것이 경건의 측도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순례적인 것이다.
이 땅은 내가 머물 곳이 아닙니다. 하늘나라를 향해 훨훨 털고 일어나야 합니다. 요셉은 그러했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먼 길을 바라보고 오늘을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중요한 말씀이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창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창39: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창39:5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창39: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창39:23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요셉이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확실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특별히 영원하시고, 스스로 계시고,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께서 요셉의 번영 배후에 계셨습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니 요셉은 형통한 자가 되고 주인에게 은혜를 입은 자가 되고 여호와의 복이 그 애굽 사람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내렸습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니 어디에 살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무엇을 하든지 성실하고, 정직하며, 겸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니 비굴하지 않고, 비겁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으며 언제나 당당하며 불의와 타협하지 아니했습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니 언제나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고 신이 감동한 자가 되고 명철하고 지혜로운 자가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니 출세를 하여도 교만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자기 의를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니 모든 일을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을 알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니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고 남을 위하여 살며 이웃과 형제를 위하여, 나아가 온 인류를 위하여 살았습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니 하나님이 주시는 목표를 발견하고 뒤의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현재의 자리에서 떨쳐 일어나 전진할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니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말씀을 통해 길을 찾으며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니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땅의 것 때문에 마음을 빼앗기는 잘못을 범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시작도 좋았고 과정도 좋았고 마지막은 더욱 좋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바른길을 걸었습니다. 그의 성공은 오직 성실과 정직이었습니다. 그의 성공은 오로지 여호와 경외였습니다. 그의 성공은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사람의 약속만 의지하면 언젠가는 실망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만을 붙들면 당장은 곤경에 처할 수도 있고 난관에 봉착할 수도 있겠지만 마침내 승리하는 삶을 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약속을 믿고 어떤 환난이나 고난이 닥쳐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의연하게 살아가면 반드시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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