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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26일 수요일 말씀 묵상♣
성경:학개2:10-14(구1311)
제목:거룩과 부정에 대한 질문
10.다리오 왕 제이년 아홉째 달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1.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12.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음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니라 하는지라/
13.학개가 이르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가운데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하니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부정하리라 하더라/
14.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들의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에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할렐루야! 학개서의 말씀을 묵상하시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친히 들으시기를 소원합니다.
***{제목}***“거룩과 부정에 대한 질문”
여러분! 어제의 말씀(학2:6-9)을 복습합니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 있으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6절).
조금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우리의 두 눈으로 분명히 보게 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목적입니다(7절).
3.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결과입니다(9절).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결과를 두 가지로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셨습니까? 영생하시는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키십니다.
하나님은 천하만국을 진동시키시며 우리를 위해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더욱더 사랑하십시다. 소중히 여기십시다.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는다는 심정으로 살아가십시다. 하나님이 은금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고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면서 살아갈 때 하나님은 하늘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거룩과 부정에 대한 질문”(학개2:10-14)
중국 사람과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 하는 단어가 있다면 복이라는 단어 일 것 입니다. 구정을 지키는 중국 사람들은 지금도 춘절(구정)이 되면 온 천지에 복자를 써 놓습니다.
그리고 복자를 대개 거꾸로 붙여 놓습니다. 그런데 복(福)자를 연구해 보면 시(示)가 들어 있는데 이 시자는 대부분 제사, 숭배, 기도와 관계가 있습니다.
示는 제단 혹은 신주를 본뜬 모양이며 갑골문시대에 는 신이나 왕을 지칭하던 글자입니다. 중국 사람들이 복자를 거꾸로 붙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있습니다.
그들은 복이 하늘로부터 임한다고 믿기 때문에 거꾸로 부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은 위로부터 임합니다. 그러나 중국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막연하게 하늘로부터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학개서에 보면 “은도 내것이요 금도 내것이라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에게 임하는 복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십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늘로부터 복을 받기 바로 직전의 상황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먼저 학개 선지자에게 율법에 대하여 제사장에게 물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사장들의 직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직무는 세 가지입니다.
①.율법을 가르치는 일.
②.중보의 제사와 기도.
③.축복.
이중에서도 율법 교육은 제사장들의 직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제단과 밀착되어 있는 것만큼 이상으로 율법과 밀착되어 있어야 합니다. 백성들이 제사장들에게 구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율법이었습니다.
말라기 2:7-8입니다.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이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어늘/너희는 옳은 길에서 떠나 많은 사람으로 율법에 거스르게 하는도다”(말2:7-8절).
제사장들이 율법을 버리면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들도 버리시겠다고 말씀하셨 습니다.
호 4:6에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이처럼 제사장의 중요한 사명은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11절 말씀부터 보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제사장들은 율법에 정통한 사람들입니다. 율법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입니다. 하나님은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제사장들에게 두 가지의 질문을 하게 하셨습니다.
첫째 질문은 12절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거룩에 대한 질문입니다.
둘째 질문은 13절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부정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난 뒤 결론을 내립니다. 세 가지로 본문을 나누어 묵상하면서 은
혜 받고자 합니다.
1.거룩에 대한 질문입니다.
12절입니다.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음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니라 하는지라”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여러 종류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가운데서 번제의 경우는 하나님께 드리는 고기를 전부 불사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화목제의 경우는 드린 고기의 일부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백성이나 또는 제사의 업무에 종사하는 제사장들이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고기는 지극히 거룩합니다. 하나님께 바친 고기였기 때문입니다. 그 고기는 반드시 성전 안에서만 먹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기록된 당시에는 성전이 황무할 때였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거룩한 고기를 자기들의 옷자락과 같은 천에 싸서 집으로 가지고 가서 먹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레6:27에 의하면 거룩한 고기에 접촉된 것은 무엇이든지 거룩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거룩한 고기를 싼 옷자락은 당연히 거룩합니다. 문제는 그 거룩한 고기를 싼 옷자락이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식물에 닿았으면 그것들도 역시 거룩해지느냐는 것입니다.
율법에 정통한 제사장들은 즉시 대답했습니다.
“이르되 아니니라”
거룩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거룩함은 단순한 접촉으로는 옮겨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것은 쉽게 전염이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합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도 역시 거룩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만 하면 절로 모든 것이 거룩해진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우리의 마음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말씀에 대한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즐겨 청종하고 그 말씀에 순종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너는 네 독자 이삭을 나에게 번제로 바쳐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쁘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여호와이레”(여호와깨서 준비하시다)의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향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모세야 너는 지팡이를 들고 네 손을 바다위로 내밀어라”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리할 때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그 결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서 홍해를 마른 땅과 같이 건너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야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단순한 형식적인 제사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비로소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마치고 고국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황무한 채로 내버려두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은 판벽한 집(사치스러운집)에 거하고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그렇게 말하면서 고의적으로 성전 재건을 미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기들의 집을 건축하고 자기들의 집을 꾸미는 일에는 빨랐습니다.
그들이 이런 부정한 마음 그릇되고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형식적인 제사를 드린다 한들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받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들을 외면하셨습니다. 하늘 축복의 문을 닫아버리셨습니다.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황무한 채로 내버려 둔 것처럼 그들의 삶도 역시 황무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거룩한 고기를 싼 옷자락은 거룩합니다. 그러나 그 옷자락이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식물에 닿았다 할지라도 그 자체로는 그것들이 거룩해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거룩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도 역시 거룩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교회에 한 시간 나와 앉아만 있다고 해서 그 자체로서 우리가 거룩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가 아니라 마음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리십시다. 하나님께 우리의 정성을 드리십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즐겨 청종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하늘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주십니다.
이 은혜가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소원합니다.
2. 부정에 대한 질문입니다.
13절 말씀입니다.
“학개가 이르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가운데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하니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부정하리라 하더라”
시체는 부정합니다. 죽음은 죄값으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체를 만진 자도 역시 부정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거룩한 고기를 싼 옷자락이 거룩하여지는 원리와 같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떡이나 국이나 포도주나 기름이나 다른 식물을 만졌으면 그것들도 역시 부정해지겠느냐는 것입니다.
율법에 정통한 제사장들은 주저 없이 대답했습니다.
“이르되 부정하리라 하더라”
시체를 만져서 더러워진 자는 그 손으로 무엇을 만지든지 만지는 그것이 더러워집니다(레11:28;민19:11-13;민19:22).
또 민19:22에 의하면 부정한 자가 손에 대는 것은 무엇이든지 부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고 부정해진 것을 만지는 자들도 역시 부정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한 가지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부정은 쉽게 전염이 된다는 것입니다. 거룩은 쉽게 전염이 되지 않지만 부정은 너무나도 쉽게 전염이 됩니다.
올라가기는 어렵지만 내려가기는 쉬운 법입니다. 건강한 사람 옆에 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건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독감에 걸린 사람 곁에 있으면 쉽게 감기에 전염됩니다. 이와 같이 거룩은 다른 사람에게 쉽게 옮겨지지 않지만 부정은 너무나도 쉽게 전염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부정을 가까이 하지 않고 멀리하면서 우리의 거룩함을 지켜나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 불평하고 원망하는 부정한 마음을 품은 사람을 가까이하고 사귀지 맙시다. 부정은 쉽게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함을 지켜나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3.질문을 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14절의 말씀입니다.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들의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에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켜서 “이 백성” “이 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이 백성”이라고 말씀하실 때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실 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부정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이 부정한 것을 보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마치고 조국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스라엘 땅으로 되돌아오게 하셨습니까? 그들이 바벨론에서는 먹고 살기가 힘들었기 때문입니까?
그들이 바벨론에서는 시집가고 장가들고 집을 짓고 살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에스라1장에서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고국으로 돌아가서 황무한 성전을 다시금 재건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떠한 마음을 품어야 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래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힘써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물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재능을 다 써서 하나님의 성전을 힘써 건축하자”
그들은 이러한 거룩한 마음을 품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부정한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할 시기가 아직은 이르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황무한 채로 내버려두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의 집은 판벽한 집에 거하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의 집을 짓고 자기들의 집을 꾸미는 데는 열심이었습니다.
이런 부정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때문에 나라 전체가 부정해졌습니다. 부정은 쉽게 전염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백성들의 부정한 생각이 나라 전체로 퍼져나간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들의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부정해진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이 부정해졌습니다. 그들은 땅에 많은 것을 뿌렸습니다. 그렇지만 거두어들이는 것은 적었습니다.
땅이 산물을 그쳐버렸기 때문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들이 거기에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고 했습니다.
부정한 마음으로 드리는 제물이니 그것들도 부정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제물을 흠향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늘 축복의 문을 닫아버리셨습니다. 그 결과 하늘은 이슬을 그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한재가 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황무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과거의 모습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선포하신 말씀을 듣고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개했습니다. 자기들의 소위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과 뜻을 같이해서 뜨거운 마음으로 성전 건축의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모습을 보시면서 19절 끝부분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하늘 축복의 문을 다시금 활짝 열어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언제 그렇게 약속을 하셨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정한 마음이 바뀌어서 거룩한 마음이 되었을 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마음이 되어서 하나님의 성전 건축의 역사를 시작했을 때 하나님은 다시금 하늘 축복의 문을 열어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대구에 가면 서현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는 대리석으로 웅장하게 잘 지었습니다. 그 교회가 지어질 당시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도 아름다운 교회 건물이었습니다.
그 교회에 지금은 작고를 하셨지만, 정규만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한약방을 운영하고 계셨습니다. 한번은 그가 심한 병에 걸리셨습니다. 백약이 무효했습니다. 죽을병이었습니다. 그는 울면서 하나님께 이러한 서원을 했습니다.
“하나님 제 목숨을 살려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죽기 전에 하나님의 성전을 한번 멋지게 짓고서 죽고 싶습니다”
그 후 정 장로님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났습니다. 그는 건강을 회복한 후에 자신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서원했던 것을 지켰습니다. 그는 목사님을 설득하고, 교인들을 설득해서 성전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는 그 당시로서는 그다지 큰 부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나름대로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하나님께 바쳐서 성전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말씀하신 그대로 하나님은 그에게 하늘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그 무렵 대구에 이상한 병이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그 병을 고칠 약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정 장로님의 한약방에서 약을 지어서 먹기만 하면 깜쪽 같이 그 병이 낫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문은 삽시간에 널리 퍼져 나갔습니다. 그래서 그 한약방은 날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사람들이 새벽부터 줄을 서서 자기의 순번을 기다려야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 장로님은 엄청나게 큰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께 자신이 서원했던 대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멋진 성전을 지어서 하나님께 봉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도 하나님께 축복을 받아서 큰 부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세계적인 부자 록펠러 아시지요?
어떤 기자가 그에게 인터뷰를 하면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록펠러씨 당신은 지금까지 세계 제일의 갑부의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그 비결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때 록펠러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제가 세계 제일의 갑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이 있다면 그것은 어머님이 내게 물려주신 신앙유산 때문입니다.
제 어머니는 돌아가시면서 제게 이런 말을 유언으로 남기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정녕 세계 제일의 갑부가 되기를 원하느냐? 그렇다면 제일 멋진 교회를 지어서 하나님께 바쳐드려라 그러면 네가 원하는 대로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계속해서 교회를 지어서 하나님께 봉헌을 했습니다. 40명의 십일조 계산 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생토록 그가 지어서 하나님께 봉헌한 교회의 수가 자그만치 5,000개에서 불과 18개가 모자라는 4,982개입니다. 기자가 또 그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세상에 많은 기업가들은 번 돈을 한푼도 쓰지 않고 재투자를 해도 성공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렇게나 많은 교회를 지어서 하나님께 봉헌을 하는데도 어떻게 세계 제일의 부자 자리를 계속해서 지킬 수가 있습니까?”
그때 록펠러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경제학을 알지 못해서 하는 소리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씨앗을 부지런히 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씨앗은 반드시 풍요로운 결실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어머니가 제게 물려주신 위대한 신앙유산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습을 보신다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이 백성이 그러하고“ 제는 그저 그런애지 뭐… 저 친구는 원래 그런 친구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부정한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을 보시면서 탄식하지는 아니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물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재능으로 하나님의 축복의 씨앗을 열심히 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하나님은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제사장들에게 두 가지의 질문을 하게 하셨습니다.
첫째 질문은 12절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거룩에 대한 질문입니다.
둘째 질문은 13절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부정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난 뒤 결론을 내립니다.
1.거룩에 대한 질문입니다.
2. 부정에 대한 질문입니다.
3.질문을 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부정적인 요소를 떨쳐버리기 바랍니다. 거룩한 마음으로 바뀌어지기를 바랍니다. 이기적인 생각, 우리 중심의 삶을 살아왔던 것을 떨쳐버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는 거룩한 마음을 품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하늘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주실 것입니다.할렐루야!
묵상:학개2:10-14절입니다. 오늘도 말씀을 묵상하시고 부정적인 요소들은 버리시고 거룩한 삶을 사시기를 소원합니다.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에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