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승자(勝者)의 기록이다’라는 말이 있다.
5,000 년 인류 문명의 역사 속에는 수많은 사건과 전쟁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역사로 기록되어 우리에게 알려진 일들은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 모두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수많은 실재 사건들 중 상당수(?)는 기록자의 판단에 따라 아주 간략하게 기록되거나, 아니면 전혀 기록되지 못한 경우도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단지 기록자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역사의 흐름에서는 그것을 이끌어 가는 주체가 되지 못하면, 사람들에게서 잊혀져 가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일은 자동차 발달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
이미지출처: 구글 이미지
자동차 발달의 역사 전체에 대해서는 제쳐두고라도, 단지 20세기만을 보더라도 정말로 제대로 빛을 받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 ‘비운의 차’들은 적지 않다.
그 차들은 나름의 독특한 기술과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지만, ‘시대를 잘못 만난 죄(?)’로 무대의 전면에 서지 못했던 것이다.
21세기가 시작되어 벌써 15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는 여전히 국지적인 전쟁과 테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20세기의 초와 중반에도 큰 전쟁이 있었다.
바로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이다.
이 두 전쟁은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포르쉐 박사가 개발한 KDF 차량
20세기 중반에 등장한 자동차들 중에는 2차 세계대전 직전에 개발되었지만, 전쟁 이후에야 비로소 보급되고 알려지게 된 차들이 있었다.
이들은 당대의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으나, 시간이 흐른 뒤에 빛을 보게 되는데, 그들 중 하나가 바로 포르쉐 박사에 의해 개발된 독일의 소형 승용차 비틀(Beetle)이었다.
물론 비틀은 지난 2003년까지 멕시코에서 생산되면서 무려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랑 받으며 장수한 차량이었다. 2003년에 비틀의 생산이 종료되면서 마지막 버전의 모델이 출시되기도 했었다.
2003년에 마지막으로 생산된 비틀의 Last Edition
비틀의 차체 뒤 트렁크(?)에 달린 엔진
그런데 비틀은 히틀러의 지시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1937년 5월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의 명령에 의해 설립된 「독일국민차 개발회사(Organization for the development of the German people's car, GEZUVOR)」 가 폭스바겐의 전신(前身)이다.
「폭스바겐(Volkswagen)」은 독일어로 「국민차」라는 의미이며, 폭스바겐 「비틀」의 원형모델은 페르디난트 포르쉐(Ferdinand Porsche, 1875~1951) 박사가 설계한 것이다.
그는 히틀러의 지시로 공냉식 2기통 엔진을 차체 뒤에 단 소형차 kdf(kdf는 독일어로 Kraft durch Freude, 영어의 strength through joy, 즉 즐거움을 통한 강인함을 의미한다)를 1936년 10월에 완성한다.
그리고 kdf의 「Type1」모델이 1938년에 히틀러에게 보고 되었고, 이 차를 생산하기 위한 공장건설이 시작되지만, 1939년에 일어난 2차 세계대전으로 히틀러는 그 차량을 군용으로 개조할 것을 지시한다.
상자형 차량이라는 의미의 퀴벨 바겐
그렇게 해서 포르쉐 박사는 소형차 kdf를 독일 육군의 군용차량으로 개조하게 된다.
군용 차량은 두 가지 모델로 개발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퀴벨바겐(Kübel Wagen)」이다.
퀴벨바겐은 ‘상자형 차량’ 이라는 의미로 생산 효율을 높일 수 있는 형태이고, 비포장도로에서의 주행성능을 높이기 위해 차체를 높이고, 4륜 구동 대신 리미티드 슬립 차동 기어(limited slip differential gear)를 달아 한쪽 바퀴가 헛돌게 되면 양쪽 바퀴 모두에 동력을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
퀴벨바겐의 운전석
퀴벨바겐은 이름 그대로 단순한 상자형 차량의 독일어이고, 생산 효율을 높일 수 있는 형태이다.
양쪽 도어는 패널의 강성을 높이기 위한 줄무늬(groove)가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퀴벨 바겐의 대표적인 특징은 kdf와 같이 엔진이 차체 뒤에 달려있는 것으로, 이것은 주행성능과 험로 주파 능력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헤엄치는 자동차라는 의미의 쉬빔바겐
퀴벨바겐과 함께 비틀이 변형된 또 다른 군용차량은 「쉬빔 바겐(Schiwim wagen)」으로, 이 이름은 ‘헤엄치는 차’라는 뜻의 독일어이다.
퀴벨바겐은 지상에서의 작전수행능력은 뛰어났으나, 습지에서 주행이 어려운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수륙양용차량으로 1940년에 개발된 것이었다.
그래서 쉬빔바겐의 차체 형태는 아래쪽이 둥글고 좁은, 마치 욕조와도 같은 모양을 가지고 있어서 물에 차체가 잠기더라도 차체 뒤쪽의 스크류를 내리면 차체 뒤쪽에 장착된 엔진의 동력으로 스크류를 회전시켜서 마치 보우트처럼 추진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앞 바퀴가 방향타 역할을 하는 등 완벽하게 자동차에서 보트로 변신이 가능했다. 쉬빔바겐은 야지와 습지에서 독일군의 기동 차량으로 사용되면서 연합군의 작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런 영향에 의해 미군이 지프를 더욱 서둘러 개발했던 것이다.
쉬빔바겐 차체 뒤쪽의 스크류를 아래로 펼친 모습
만약, 물론 역사에는 ‘만약’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만약에 세계2차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지 않고 독일이 승리했더라면, 혹시 오늘날의 4륜구동차량, SUV의 원조는 미군의 지프가 아니라, 독일군의 퀴벨바겐이나 쉬빔바겐 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들은 오늘날 4륜구동 차량 대신 수륙양용 차량을 타고 강과 산으로 다니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