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의 자세와 함께
‘주님의 기도’를 가르치신다.
기도는 빈말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데 필요한
은혜를 청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주님의 기도’를 가르치십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가장 큰 흐름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하늘에서 참주인으로 계시듯,
이 땅에서도 세상의 주인이 되시도록 필요한 은혜
(일용할 양식, 용서, 항구한 의로움, 구원)를 청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기도할 때에는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청해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의 내용입니다.
그분께서는 실제로 수난 전날 저녁 하느님께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
그럼 우리는 과연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대로 ‘주님의 기도’를 바칩니까?
기도를 하며 ‘내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주십사고 청합니까?
우리는 하루에 몇 번이고 주님의 기도를 바칩니다.
주님의 기도의 핵심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주십사는 것인데,
정작 그 기도를 바치는 우리 자신은 그러한 마음 없이,
오히려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주십사고 청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반성해야 하겠습니다.
기도문의 내용과는 다른 지향을 두고 기도하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빈말을 되풀이하는 것’일 뿐 참다운 기도가 아닙니다.
주님의 기도에는 ‘아버지’란 단어가 네 번 나옵니다.
주님의 기도를 한 번 바칠 때마다 아버지를 ‘네 번’ 부르는 것이 됩니다.
얼마나 많이 그분을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했을까요?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입니다.
생각 없이 바쳤더라도 그만큼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살았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틀림없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됨으로써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주님의 가족이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남겨진 일은 이제라도 그분의 자녀답게 사는 일입니다.
어떤 삶이 그것일는지요?
어떻게 사는 것이 그분의 자녀로서 사는 것인지요?
예수님처럼 살면 됩니다.
신앙인은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이며,
늘 하느님 뜻을 헤아리며 사는 사람입니다.
이 땅에 예수님께서 그토록 바라셨던 정의와 평화,
사랑이 넘치는 하느님 나라가 건설되기를 갈망하며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하루하루 일용할 양식을 주심에 감사하며,
서로 용서하고 세상의 온갖 유혹과 악에 빠지지 않도록
주님께 청하며 사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아버지의 기도노트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 서랍을 정리하던 풀턴은
처음 보는 노트를 발견하고 노트를 뒤적이다가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시던 초록색 잉크로
정성껏 적어 놓은 많은 이름을 보았다.
맨 먼저 가족의 이름이 있었고, 그 다음에는 친구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과 이웃들의 이름도 있었다.
빈 페이지를 하나 건너서
그에겐 전혀 생소한 20여명의 이름도 쓰여있었다.
그 노트를 보신 어머니는
"그것은 네 아버지의 기도노트란다.
아버지는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이 노트를 펴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손으로 짚어가며
조용히 기도하셨단다."
"그런데 이분들은 누구세요?"
그가 마지막 명단을 가리키며 묻자
어머니가 대답하셨다.
"아버지의 마음을 상하게 했던 사람들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