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 몇편을 보았습니다.
쌍화점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한 우수작을 만들었다는 것이 뿌듯했습니다. 일부에서는 포르노라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런 화면이 없다면 이 영화는 도저히 작품화 될 수 없는 영화였습니다. 예전에 "야연"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우리나라는 언제 저런 영화를 만들까 부럽기도 했었습니다. (다소 "야연"의 모방인 듯한 느낌도 없지 않습니다)
동성애가 기본이 되어 남과 남/남과 여 사이의 복합적 사랑, 남자의 질투와 사랑, 부부간의 애정문제 등 등,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밀도 있게 다루었다는 점과, 여러가지 복선이 잘 깔려 있고, 무대 및 의상면에서 뛰어난 연출, 주진모의 강렬한 눈빛 연기는 지금도 뇌리에 생생합니다.
게다가 군신관계에 따른 지배와 피지배 관계, 국가간의 힘의 형평성, 보이지 않는 알력 등등 여러가지가 동시에 다루어져 있어서 드물게 수작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조인성의 연기는 그냥 별로~~)
Lola(원제 Whatever Lola Wants)
이집트와 미국 뉴욕이 배경이 된 영화이지만 나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신데렐라 컴플렉스와 Dreams Come True가 교묘하게 뒤 섞여 있지만 그런데로 즐겁게 보았습니다.
다만 흑인 우편배달부 속에 유일하게 파란눈의 금발 미녀가 주인공이 되어 당연히 귀결은 바비인형의 승리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이 눈에 거슬리기는 했죠.
이것도 현대의 문화코드 중 하나인 동성애가 살짝 담겨있죠. 동서양의 두 문화를 절묘하게 결합시키고, 문화의 이면에 감추어진 종교와 관념과 관습의 문제점들을 들추어내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사랑의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동양의 관념과 종교는 다소 문제점이 많다는 것을 은연중에 지적하는 것 같아 그 부분은 눈에 거슬렸고, 바비인형의 당연한 성공은 처음부터 예측가능한 것이라 씁쓸했습니다.
하지만 댄서 선생님으로 나온 여성(소피아 로렌과 이미지가 무척 닮음)과 그 여인의 영원한 사랑의 대상이었던 남자 주인공은 너무 멋졌습니다. (제가 기억력이 나빠 이름은 도저히 못 외웁니다 ㅋㅋㅋ)
Changelling
안젤리나 졸리와 존 말코비치가 나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였죠.
제가 미국문학을 전공하는 터라 관심이 많은 영화여서 좋았습니다.
1920년대이후 재즈시대의 문제점들과 캘빈쿨리지 대통령 당시 문화들을 다소 엿볼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조금 잔인한 장면이 연출되기는 했지만, 정/제계의 비리와 커넥션, 강한 모성애의 본능, 언론의 힘, 기독교적 원리를 은연중에 강조하는 헐리웃 영화, 종교인을 비롯한 저변인물들의 강력한 응집력, 정의는 살아있다는 명제 등등을 보여 준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도슨역을 하였던 정신병자의 연기는 누구보다도 뛰어났습니다. 그를 보면서 그가 한 말이 귀에 맴돕니다.
"경찰의 강압적인 태도를 경험하지 않고, 독방에 갇혀 보지 않은 사람은 자신을 이해 하지 못할 것"이라고 절규하던 그의 메아리.
현대인들의 정신병적 증상을 보는 듯 했고, 특히 작금의 강호순 사건을 보면서 그가 그토록 광기에 미쳤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 일까가 아직도 미스테리로 남습니다. 그의 행위를 비난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서 그를 변호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아마도 그러한 행위를 하기에 그 이면에는 분명 심리적으로나 환경적인 요인이 있지 않을 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저의 결론은 "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미워하지 말자."
과속스캔들
하두 선풍적인 인기가 있길래 그냥 봤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형태의 영화를 보는 편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웃고 즐기는 영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
이 영화는 전자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어린 꼬마의 표정연기가 압권이었습니다.
대사는 몇마디에 불과했지만 어찌나 표정연기를 잘 하던지. 특히 시니컬한 아이의 표정은 지금도 눈앞에 생생.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어쩌면 이 시대의 젊은이들의 세태와 문화를 조금은 반영한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중학교때 사고쳐서 낳은 딸, 그 딸은 다시 고등학교 때 사고쳐서 아들을 낳았죠. 30대에 할아버지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운명.
약간은 과장된 점이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수치상으로 가능성은 있어보였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나름 열렬히 사랑했다는 거~~)
이 영화에서 알 수 있었듯 요즘 어린 청소년들의 성에 대한 관념은 예전과 달리 많이 무너지고, 충동적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서구처럼 중학교 때부터 학교에 피임기구를 설치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 영화였습니다.
그저 부담없이 웃고 즐기기에는 좋은 영화.
워낭소리
독립영화로 다큐멘터리형 영화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무척 보고 싶었던 영화였죠. 상대적으로 저예산 디지털 영화라 시간은 짧아서 75분짜리.
아주 아주 시골 경북 봉화의 한 노인부부와 늙은 40년짜리 소가 주인공입니다.
첫 장면부터 죽음을 이야기하는 노 부부. 죽은 소의 평안한 죽음을 위해 힘들게 계단을 올라 고즈넉한 산사의 절에서 백배 절을 하는 할아버지.
늙은 소와 할아버지의 삶은 거의 똑같을 정도로 오버랩핑되어 있습니다.
간간히 한탄조로 읊어대며 할아버지를 타박하고 자기 신세 타령하는 할머니의 말씀이 압권입니다.
앙상하게 말랐지만 열심히 풀과 먹이를 씹어대고, 다리를 절룩이면서도 할아버지의 명령대로 죽어라 묵묵히 일을 하는 소는 마치 할아버지의 인생을 보는 듯 했습니다.
아프면서도 그 아픔 한번 제대로 소리내어 알리지도 못하고, 결국 죽음을 향해 가는 소를 보며 가슴이 저렸습니다.
할아버지는 표현도 잘하지 않고 무뚝뚝하지만 소에 대한 나름의 애정을 드러냅니다.
팔려가야 할 운명일 때 소가 흘리던 눈물은 정말 가슴아팠습니다. 할아버지는 소장수들이 제안하는 값을 말도 안되는 값이라고 거절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할아버지가 소에 대한 애정을 가치로 환산한 가격일 것입니다.
젊은 소에 치어서 외양간에서 내몰리고, 밥을 먹을 때도 이리 저리 치받히고, 눈치보며 밥을 먹는 소의 모습에서 우리네 부모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죽어라 일을 하며 아픈 몸을 이끌고 열심히 묵묵히 자신의 일만 하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는 우리 친정아버지의 모습이 오버랩되었죠.
멍에를 떼어낸 채 누워서 숨을 헐떡이며 죽어가는 소를 보며 할아버지는 코뚜레를 빼고, 소의 목에 달려 있던 종을 빼낼 때 그 모습은 결국 죽음이 모든 고통에서 자유로와질 수 있다는 것을 또 한번 깨닫게 만듭니다.
낭랑하게 울리던 소방울 소리. 주인 잃은 코뚜레. 할아버지의 말씀이 끝나자 비로소 눈을 감은 소.
그 모든 삶과 여정은 진정한 자유와 모든 속박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나 봅니다.
첫댓글 아직 한 편도 못봤는데... 서둘러서 보고 저도 감상을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잘 보고 갑니다.. 여전히 좋은 사람이 되어 주고 있군요...항상 반가운 사람이어서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