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머릿속에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릴적 오래된 컬러TV속에 등장하던 이색적인 외국인들 중에서 유달리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있다. 레밍턴 스틸부터 비벌리힐스 아이들까지 외국드라마를 특히나 좋아하던 나였지만, 더 오래되고 더 낡은 기억속에 존재하던 캐릭터중 하나가 바로 '제시카의 추리극장'에 등장하는 '제시카 플레쳐'이다.
원제 murder, she wrote로 꽤 오래 이 시리즈를 방영했던 것 같은데, 역시나 1984년부터 96년까지 방영을 하였으니 꽤 장수했던 시리즈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구만.
초등학생때 교실 책장에 꼽혀 있던 애거서 크리스티의 포와로나 미스 마플 시리즈, 셜록홈즈가 나오는 작은 추리소설 서적부터 이해력과 추리력에 도움을 준다며 팔았던 추리문제가 나왔던 손바닥만한 책자까지, 어쩌면 나는 어린 시절의 추리소설에 대한 향수때문에 지금에도 크리스티 여사나 코난 도일의 소설을 구입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오랫만에 제시카의 추리극장 시리즈가 눈에 띄어 1시즌(9편밖에 안되지만)을 후딱 봐버리고는 어릴적 향수를 더듬으며 그때는 몰랐던 그녀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이 시리즈의 가장 중요한 인물인 제시카 역의 '안젤라 랜즈베리'는 무려 1920년대에 출생한 배우이며 모습답게 영국 출신이다. 어머니 역시 배우였으나, 부모의 덕으로 배우가 된 것은 아니고, 오히려 배우로서 이름을 알린 것은 훨씬 나이 들어서였다.
윗 사진은 안젤라 랜즈베리 여사의 젊었을 적 모습이란다. 제시카 역을 맡았을때의 모습이 얼핏 보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옛 사진들을 찾아보면 놀라게 될 것이다. 모든 나이 든여성 배우들이 그렇듯 그녀 역시 어렸을때는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였다. 물론 잉그리드 버그만이나 그레이스 켈리같은 전형적인 미인 타입은 아니지만, 동그란 얼굴에 선한 눈매를 가진 귀여운 외모를 가진 아름다운 배우이다.
여러편의 영화와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하였으며, 수많은 트로피까지 거머쥔 연기력이 인정받는 배우이다. 특히나 노래에 재능이 많아 뮤지컬에서 다양한 매력을 발산하였으며 팀 버튼 감독의 '스위니 토드'의 원작 뮤지컬에 등장하는 배우였다. 헬레나 본햄 카터가 연기한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끔찍한 러빗 부인 역이 바로 그것이다.
아주 오래전 삼손과 데릴라 라는 오래된 영화가 재방영하기에 본 적이 있는데 안젤라 여사는 그 영화에도 조연으로 등장하였던 것 같다...가장 최근 영화로는 어바웃 슈미트나 내니 맥피같은 영화에 등장을 하는 등, 꽤 많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연기에 대한 애착을 가진 분으로 보인다.
다른 작품들이야 제대로 본 기억은 없지만, 제시카 역으로 등장하는 '제시카의 추리극장'은 그녀를 기억하기에 좋은 작품으로 생각된다.
1시리즈를 처음부터 다시 보니, 제시카 여사는 정말로 따뜻하고 열정적이면서도 건강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캐빗 코브라는 작은 마을에서 혼자 살고 있는 미망인이고 자식은 없다. 아침마다 빠짐없이 조깅을 하며 영어강사로 일을 하면서 시간이 날때 추리소설을 혼자 쓰는 평범한 노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소설을 읽어본 조카가 출판사에 소설을 보여주게 되면서 그녀의 책이 출판되어 큰 인기를 끄는 베스트셀러 추리소설 작가가 된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이 등장하는 소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제시카를 그녀와 비슷하다 여길지도 모르겠다. 물론 제시카는 미스 마플과 비슷한 점이 많다. 자식없이 혼자사는 나이든 미망인이라는 설정에서 그 두 사람은 비슷하지만, 미스 마플보다는 제시카 여사가 훨씬 활력적이며 긍정적인 사람으로 여겨진다.
미스 마플은 항상 자신이 사는 마을에 대해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면을 들려주던 사람이었고, 작고 조그만 그 마을에서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는 점을 잊지 말라며 상기시켜 주는 할머니였다. 그녀는 마을에서 떠나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평생 그 마을에서 살았으며 특별한 경우에만 마을을 비우곤 했다. 물론, 그녀가 무조건 부정적인 측면으로 모든 것을 바라본 것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 믿는 사람에 한해서는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와준다(이 점은 제시카 여사 역시 비슷하다)
제시카 여사는 마플 양에 비해 굉장히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노인이다. 소설 작가로 유명을 떨치고 나서 1시즌 내내 거의 마을에 머물러 있는 경우는 없었던 듯 하다. 물론 떠들썩한 도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유명세때문에 계속해서 LA같은 거대도시로 움직이기도 한다.
마플이나 제시카 여사 둘 모두 경찰들에게 그렇게 환영받는 사람들은 아니다. 미스 마플은 경찰이나 형사들에게 피해를 거의 안 끼치면서도 조심스럽게 접근하려 하는 반면, 제시카 여사는 그녀보다는 좀 더 당당하다. 문제가 발생하면 당당히 경찰서로 달려가고 귀찮아 하더라도 자신의 논리를 이성적으로 이해시키려 하는 타입이었다. 아무렇지 않게잘못된 점에대해서 이야기하고, 어떤 편에서는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하여 살인사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풀어나가려 하는 모습을 보인다.
제시카 여사의 놀라운 점은 친화력이다. 미스 마플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친화력을 이용해 증거를 찾아내려고 하는 점을 보이기도 하였는데,제시카 여사의 친화력은 그녀 보다는 좀더 인간적이다. 제시카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했으며 택시를 타던 버스를 타던 모르는 사람이 인사를 하던 그 사람의 이름을 묻고, 근황은 어떤지 묻기도 하면서 자신이 곤경에 처했다면 그 상황을 설명해주기도 하고, 또 잘 모르는 사람의 도움을 잘 받기도 하고 자신이 도와주기도 한다.
아, 그리고 맘에 들었던 점이 의외로 그녀의 패션감각이었다. 물론 특별히 멋지다거나 독특하진 않지만 그녀만의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는데, 푸른색 계열의 색상을 주로 입는다. 가장 많이 본 것은 하늘색 셔츠와 짙은 파란색의 니트나 가디건 스타일이고 바지도 즐겨 입는다. 셔츠를 자주 입고 셔츠스타일의 원피스 형식의 의상도 등장하며 악세사리는 화려하지 않고 깔끔한 스타일이다. 그 튀지 않는 단정한 스타일이 맘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