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49]고사리, 머위, 쑥 그리고 민물새우
時局이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잘 될 것을 백퍼 믿으며, 시골에 사는 ‘6학년 9반’ 初老는 어제 오후 3시간동안 뒷산을 훑었다. 며칠 봄비도 촉촉이 내렸으니, 이맘때쯤이면 고사리가 雨後竹筍이라는 말처럼 솟아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발길이 앞섰다. 고사리 바탕(군락지) 3곳을 다녔는데, 아직은 아닌 모양, 겨우 두 주먹을 건졌을 뿐이다. 고사리는 캐는 게 아니고 꺾는 것인데, 그 꺾는 손맛이, 뭐라할까, 오묘(奧妙)하다. 맛본 사람은 그 손맛을 잊을 수 없다. 게다가 어릴 적 어머니 손을 잡고 따라나선 추억이 있다면 다시는 볼 수 없는 어머니 생각에도 목이 메일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엄마와 재꺼렝이를 힘들게 들고 솔(부추, 정구지)밭에 가 왜낫으로 솔을 밑둥까지 싹싹 벤 후 재를 뿌렸던 추억은 언제나 아련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누구라도 이런 식의 추억이 있을 터, 감상은 그만.
우리 산 육덕굴(무슨 뜻인지 모르나 깊다면 깊다) 계곡에 머위(전북 표준말은 머우)가 지천이다. 살짝 데쳐 된장과 참기를 조금 넣어 무쳐 먹으면 완전 '울트라캡션짱'이다. 조금 자라면 그 줄기 껍질을 데쳐 벗겨 들깨가루를 뿌리고 국처럼 먹어도 별미 중의 별미. 한 소쿠리나 꺾었다. 숲 속에 있으니 완전 무공해. 쉬운 일이지만 뿌리까지 뽑혀 나오는 것이 안쓰러워 지인선배에게 전화로 물었더니, 잎만 잘 뜯으면 잎이 계속 나온다한다. 어느 해는 산취를 통째로 캐다가 뒷밭에 심으니, 다음해 잘 났는데, 산 전체에 은근히 풍기던 산취의 香은 나지 않는 것을 보고 ‘아하, 산에서 나는 것은 자연스럽게 산에서 나도록 내버려둬야 하는구나’를 실감했다. 내일 아내하고 아들 요리해 먹으라고 보내줄 욕심에 손이 바빴다.
다음은 쑥이다. 지언(저수지) 둑에 지금 딱 캐야 맞을 쑥이 천지삐까리다. 조금만 지나면 쇠어 뻗세져 쑥국 끓여먹기는 힘들다. 나중에 쑥개떡을 해먹으면 몰라도. 쪄서 냉동실에 넣어놓으면 변함없다는 말을 들은지라, 최대한 많이 캐려고 힘썼는데, 이게 쉽지는 않는 일이다. 자갈투성이이기에 캤어도 다듬는 것은 짜증나는 일. 연 사흘째 쑥국을 끓여 그 맛을 예찬한 글을 보냈더니 남춘천에서 친구(호 인우)가 그것을 먹고자 달려왔다. 오는 김에 부안에 들러 통크게 쌩 홍어 한 마리 회를 떠오고, 생합(백합)도 사와 삶았는데, 그 오묘한 국물맛이라니... 뭐, 아무튼 좋은 일이다. 친구 모처럼 만나 반갑고, 인근 친구들 번개팅으로 불러모아 웃음꽃을 필 수 있으니, 시국과 관계없이 이게 사는 맛이 아니면 무엇이랴. 사람답게(?), 사는 것같이, 산다. 최영록. 오래오래 그러하기를.
두릅과 엄나무순, 오가피순을 찾아 헤맸는데, 어느새 다 따간 듯 보이지 않아 많이 속상했다. 오늘은 나만 아는 비밀장소에 가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광양친구가 엊그제 알려준대로 초장을 만들어 엄나무순을 살짝 데쳐 찍어먹으면 부귀영화가 대체 무슨 말라빠진 개뼈다귀란 말인가. 옻나무순을 넘어 엄나무순이 최고인 줄 알았더니, 이제 오가피순이란다. 自然은 우리 못난 인간들에게 참 많은 것들을 거저(공짜로) 준다. 우리는 자연에게 맨날 이렇게 말할 수도 없이 고마운 신세만 지는데, 우리는 무엇 하나 변변이 주는 게 있는가? 되레 해만 끼칠 뿐 '1도' 없다. 초록별(지구)이 갈수록 창백해지다못해 위험하다는데 말이다. 두릅은 시장에서 재대로 통통한 손가락 마디만한 게 하나에 1천원이라고 하는데 없어도 못팔 정도로 봄철 最愛 식품인 것을.
쑥 캐는데 지쳐, 며칠 전 저수지에 놓아둔 새우망 2개를 건졌다. 날씨가 추워 민물새우들이 모이지 않을 줄 알았는데, 피리 새끼들과 함께 제법 들어 있다. 새끼들은 놓아주고, 새우는 한 마디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챙겨 돌아와, 몇 번 씻어 건조기에 말리고 있다. 말라가는 새우향이 주방에 진동한다. 혹자는 지금 알을 배어 새끼를 낳을 때이기가 잡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진짜 맛은 가을이라고 한다. 모르고 한 일이니, 오후엔 걷어와야겠다. 지난해에는 친구가 새우망 값으로 10만원을 보내와 삼각형 망 8개(1개 5500원)와 새우밥을 잡아 날마다 산을 올락거리며 신나게 잡았다. 생새우든 말린 새우든 주변에 종이컵 1봉지씩 나눠주는 재미가 진짜로 쏠쏠했다. 오죽하면 ‘종이컵 사랑’이라는 졸문을 썼을까? 올해도 그 자그마한 ‘종이컵 사랑’의 행진이 계속될지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아무튼, 봄날은 진행중으로 가고 있고, 갈 것이다. <봄날이 간다>(박시춘 작곡, 손로원 가사, 1953년 백설희 노래) 노래를 아시리라. 어느 시전문지가 국내 유명 시인 100명에게 <가장 좋아하는 노랫말>을 물었는데, 단연 <봄날이 간다>가 1위. 2위는 <킬리만자로의 표범> 3위 <북한강에서>. 내로라하는 가수들(조용필, 장사익, 한영애 등 10여명이 부른 판이 있다던가)이 가장 많이 리메이크해 부른 노래. 가장 많은 시인들이 읊은 시. 소설로, 희곡으로, 영화로, 드라마로, 연극으로, 악극으로, 뮤지컬로, 심지어 미술로도 영역을 변주하여 넓힌 그 노래. ‘음치 대마왕’인데도 그 노래를 흥얼거리며 내려가는 봄날의 산길, 좋았다. 내일 택배 보낼 생각에 더 좋았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며/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울던/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