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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17일(화)
* 시작 기도
(창 15:5) 그(아브라함)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갈 3: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주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약속하셨습니다.
그에게 예로 보여주신 것이 하늘의 뭇별이었습니다.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뭇별은 셀 수 없는 수많은 별입니다.
그런데 주시마 약속하신 자손은 단수 곧 한 사람입니다.
유대의 랍비들은 이 말씀을 풀어내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성령의 계시로 이 말씀을 풀었습니다.
하여 갈 3:16절이 사도 바울의 해석입니다.
단수로 말한 네 자손은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셀 수 없는 하늘의 뭇별과 같이 자손이 많아진다는 뜻입니다.
그 안에 나 또한 들어 있음을 믿습니다.
그 은혜가 너무도 커서 그저 두 손으로 입을 가릴 뿐입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거룩한 불구자로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기 원합니다.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마 23:25-39
제목 :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2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31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32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 그러므로 너희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 나의 묵상
서기관들과 바리새인 등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의 외식은 이제 도를 넘어 그 극치를 드러낸다.
철저하게 이중적으로 행하는 그들의 모습을 주님께서 고발하시는데,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할 줄 알면서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그들은 회칠한 무덤과 같이 겉으로는 아름답고 화려하게 치장하지만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으로 가득하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조상들에 의해 억울하게 죽임 당한 선지자들의 무덤과 비석 등 기념비를 만들어 주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만약 자기들이 조상들과 같은 시대에 살았더라면 자기들은 선지자들의 피를 흘리는데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희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 바로 너희 조상들의 자손인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조상들이 하다 남은 악한 일의 분량을 너희가 행하라고 다그치신다.
하나님께서 보내셨던 수많은 선지자들을 조상들이 다 죽였는데, 이제 너희들은 예수님 자신이 보낸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어떤 이는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동네마다 따라다니면서 핍박할 것이다.
게다가 의인 아벨의 피에서부터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에서 흘린 모든 의로운 피에 대한 죗값을 너희들이 치를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그들을 향하여 독설을 내 뿜으신다.
뱀들, 독사의 새끼들이라는 표현을 쓰시면서 너희들이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있겠느냐고 하시는 것이다.
이런 지옥의 판결이 결국 다른 때가 아닌 그 세대에 올 것이란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다.
그토록 날카롭게 책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예루살렘을 향하여 주님의 마음, 곧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쏟아 내시는 것이다.
이는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라는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사랑하니까 더 많이 책망하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돌봄을 원하지 않았다.
(히 8:9b) ...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예루살렘은 결국 황폐하여 버려질 것이며, AD 70년에 로마 장군 티투스에 의해서 무참히 짓밟힘 당하고 말았다.
그 이후로 이스라엘은 유랑하는 민족이 되어 2,000년간 나라 없는 설움을 겪으면서 살아야 했다.
하지만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에 다시금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는 노랫소리를 들으실 때가 올 것이다.
이 노래는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들은 메시야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뻐하며 축하하는 노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진정한 그리스도요 메시야로 맞은 것이 아니다.
다만 자기들의 육신적 메시야, 다윗 시대의 번영을 구하는 민속 메시야로 환영하면서 그 노래를 불렀다.
이제 주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의 때에 그 노랫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려 퍼질 것이다.
그때는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요, 재림 나팔 소리와 함께 울려퍼질 노랫소리인 것이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그들 스스로 이야기하기를 지난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선지자들이 자기 조상들에 의해 억울하게 죽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들이 억울하게 죽은 것에 대한 것을 기리고 그들을 기념하는 의미로 무덤을 쌓고 비석을 세워주었다.
그것은 곧 억울하게 죽어간 선지자들을 기념하는 것이다.
지난 세월 동안 많은 선지자들이 자기 조상들에 의해 억울하게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깨달았으면, 자기 자신들은 그런 오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들은 조상들이 한 짓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께서 보내는 선지자나 지혜 있는 자들, 그리고 서기관들을 핍박하지 말아야 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주님의 말을 잘 듣고 순종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 조상들이 한 일은 탓하면서도 그들 자신은 더 악한 일에 동참하고 말았다.
그것은 세례 요한, 스데반, 야고보 등 선지자나 의인들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요 참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죄는 도무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자들도 품으시고자 암탉이 그 날개 아래 병아리를 모음 같이 그들을 품으시려고 수도 없이 애쓰셨다.
하지만 그들은 주님의 품속을 원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자기의 죄로 인하여 결국 그들의 집이 황폐하여질 것임을 주님은 말씀하신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주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쏘아붙이는 외마디 비명과도 같은 말씀이 내 가슴에 비수와 같이 찌른다.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나는 직접 칼을 들고 선지자들을 죽인 적은 없지만, 그동안 60여년을 살아오면서 선지자 중의 선지자이신 주님을 얼마나 많이 죽였었는지 모른다.
사실 나는 한 번도 그 분을 입술로 부인한 적도 없다.
그 분을 모독하거나 욕한 적도 없다.
그런데 나는 내 안에 숨어 있는 외식과 거짓이 그분을 수도 없이 내 안에서 내쫓고 몰아내곤 하였다.
내 안에서 주님이 거할 자리가 점점 줄어들어 내가 주님의 자리를 빼앗곤 하였던 것이다.
표리부동한 나의 이중적 모습이, 사람들 앞에서는 선한 얼굴을 하면서도 사람들 뒤에서는 양을 잡아먹는 이리의 이빨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자였다.
외식하는 자의 표상인 탐욕과 방탕이 내 안에서 끊임없이 나를 이끌었고 그런 이끌림에 나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눈만 껌뻑껌뻑하면서 따라가는 신세로 살아왔다.
뱀이요 독사의 새끼는 누구랄 것도 없이 바로 나다.
그런 나는 지옥의 판결을 피할 방법이 아무 것도 없다.
이런 주님의 말씀이 비수가 되어 내 심장을 찔렀으나, 나는 그럴 때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이 주님의 심장을 찔러댔던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가슴을 창으로 찌른 자는 로마 군병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그 찔린 몸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운명하시기까지 주님은 그런 나를 품에 품으시고자 마지막 단 한 순간의 시간까지 버리지 않으셨다.
십자가에서 하신 일곱 마디 중에서 가장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이 바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주의 사랑은 실로 가없으시다.
내 안에 있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죄성이 무엇인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억울하게 죽은 선지자들의 삶을 기리며 그들을 위하여 무덤과 비석을 세워 그들을 기념하였다.
그들은 무엇보다 선지자들의 믿음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본질적 믿음을 추구해야 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의 본질은 깨닫지 못하고 외적으로 나타난 겉모습만 본받으려 한 것이다.
오늘 내 안에 그런 모습이 그대로 오버랩된다
나는 그동안 내로라하는 크고 훌륭한 목사님들을 본받으려고 참 많이도 노력하였다.
그들이 어떻게 설교했는지, 그분들이 전도는 어떻게 했는지, 어떻게 큰 교회를 이루었는지,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렇게 큰 명성을 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알고 나도 그렇게 하고자 했던 것이다.
나는 그분들의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본받으려고 했지만, 정작 그분들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모습은 전혀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의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이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화려하고 아름다워 보일 수 있다.
그것은 누구나 닮고 싶어하고 본받기 원한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모르면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다.
정말 경건한 목사님들은 예수님을 본받아 매일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놓치지 않았다.
매일 말씀 앞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 사귐의 영성은 날로 깊어갔던 것이다.
그분들은 철저히 창세전 하나님과 그의 아들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놓치지 않음으로써 교회가 크든 작든 상관없이 주님을 기뻐하였던 것이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러 온 수많은 선지자들의 억울한 죽음을 기리며 무덤과 비석 등 기념비를 세웠다.
(롬 1: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히 1:1-2)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렇기에 그들은 선지자들이 증거한 예수님을 가장 잘 알고 또한 그분을 기뻐하며 그분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오히려 자기들의 기득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죽이기에 혈안이 되고 말았다.
나는 예수를 믿고 심지어 그 예수를 전하는 목사가 되어 목회를 하면서도 그 주님과 교제를 하지 않았다.
사실 교제가 무엇인지도 잘 알지 못했고,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주님의 존재 자체인 말씀은 외면한 채 사역에만 집중하였었다.
게다가 끊임없는 내적 갈등은 나를 하나님과 분리되게 하였고 급기야 순간순간 탐욕과 방탕으로 인하여 뱀과 독사의 자식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런 나였지만 주님은 나를 결코 떠나거나 외면하지 않으셨다.
범죄한 이후 하나님의 품을 떠나 동산 나무 뒤에 숨었던 아담을 하나님께서는 외면하지 않으시고 친히 찾아가셔서 그가 입고 있던 무화과 옷을 벗기시고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셨던 것처럼 말이다.
죽어도 할 말이 없고, 또한 죽기에만 합당한 나이지만 주님께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며 탐욕과 방탕으로 살아온 나를 향하여 절규하신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나의 마음이 무너진다.
죄로 얼룩진 나의 세포 하나하나, 피 한 방울까지라도 다 잘라내고 쏟아낸다.
오직 주님만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나의 심장과 폐부가 되길 원한다.
죽어도 할 말이 없는 나를 살리시고 당신의 생명으로 회복시켜 주신 그 크신 은혜 앞에 나는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빚을 졌다.
하지만 그 빚은 다른 것이 아닌 날마다 말씀 앞에서 주님과 교제하는 것으로 갚는다.
그것은 빚을 갚는 것이라기보다 말씀이신 주님 존재 자체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제는 내 영혼이 주를 만나 춤을 춘다.
주님이 보셨던 그 영광이 곧 나의 영광이 되어 나를 비춘다.
주님의 은혜는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가없으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끊임없이 주님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던 죄인이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의인인 척 하였으나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죄인으로 살아왔던 나의 지난 인생을 고발하나이다.
주님의 심판은 옳습니다.
나의 영혼이 죽어 감각 없는 자와 같이 되어 버렸고, 말씀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였나이다.
그 속에 탐욕과 방탕이 자리 잡고 있어서 주님이 거하실 자리까지 다 빼앗아버리고 내 안에 내가 너무나 많아서 주님의 자리가 없었습니다.
주를 믿는다고 하면서 주님을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았던 이 죄인을 주님은 진멸하지 않으시고 심판을 통하여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
이제 이 종은 나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여 주소서.
주님의 처분대로 행하겠나이다.
무엇을 행하기보다 먼저 주의 말씀 앞에서 머무르는 자 되기 원합니다.
존재이신 말씀 앞에서 날마다 주님과 교제와 사귐이 있게 하옵소서.
그 사귐만이 나의 생명이요 영생임을 아나이다.
주의 성령께서 함께 하사 온전한 생명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