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철도 광명역이 생긴 지 3년이 지났고, 셔틀버스에 셔틀전철까지 운행하는 등 여러 개선이 있었습니다만 여전히 외지인들에게 있어 광명역의 문턱은 높기만 합니다. 드디어 난생 처음으로 'KTX광명역'이라는 곳에 하차해볼 기회가 있었는데, 다시는 이런 역에 내리고 싶지 않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운영마인드를 갖고 잘도 광명역 시발역론 따위나 수도권 남서부 기점역 따위 거창한 주장을 해댔군!" 하는 코웃음이 나올 정도입니다.
(1) 허접스러운 셔틀전철 매표소.
셔틀전철은 그 효용성에 심각한 의문부호가 붙어 있긴 하지만, 아이디어 자체나 외지인들을 위한 대책이라는 점에서는 상당히 후한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시설임이 틀림없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아무리 평시 승객이 적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셔틀전철의 매표시설은 매우 허접하다는 인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KTX에서 하차한 하차승객의 입장에서 볼 때 이용할 수 있는 매표시설의 목록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① 무임권 자동 발매기 1
② 지폐 인식 가능한 발매기 1
③ 교통정보 안내기 - 발권 기능 없음
④ 동전만 먹는 발매기 1
⑤ 교통카드 보충기 1
여기서 장애인 및 경로우대 승차권만 발권되는 1과, 사실상 쓰잘데기 없는 3, 교통카드 보충만 되는 ⑤를 제외하면 일반 발권 창구는 단 두 개 밖에 없는 셈입니다. 물론 광명역의 평소 이용승객 수를 보면 두 대도 사치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조금만 생각해본다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일단 장거리 운송수단인 KTX의 특성상 광명역은 대전, 대구, 부산 등 외지에서 들어오는 승객들의 비율이 높습니다. 바꾸어 이야기하면 수도권용 교통카드 소지자의 비율이 타 역에 비해 많이 작아 일회용 승차권에 대한 수요는 더 크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같은 현상은 서울역(1,4호선)이나 고속터미널역(3,7호선) 등지에서도 동일하게 관찰됩니다. 기본적으로 승객 수가 많은 역임을 감안해도 매표창구의 줄은 타 역의 그것에 비해 유난히 긴 모습이 관찰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계를 사용하는 발권은 역무원에 의한 발권보다 단위시간당 처리할 수 있는 승객 수가 훨씬 적습니다. 아무리 기계에 익숙한 사람일지라도 수십 초의 조작시간이 걸리며, 기계에 익숙치 않은 사람이거나 기계가 오동작을 일으킬 경우 그 시간은 더 길어지기 마련입니다. 때문에 어떤 역을 '완전 무인화' 한다고 할 때, 기존에 매표원이 한 명이 있었다고 해서 자동발매기도 한 대만 갖다놓지는 않습니다. 십여 대의 자동발매기가 깔리게 됩니다.
또한 승객의 도착 이벤트가 각각의 승객에 대해서 거의 독립적으로 발생하는 일반 역과 달리, 광명역의 경우 정해진 KTX열차 시각에 맞춰 승객이 집중적으로 도착하는 형태가 나타나게 됩니다. 즉 평소에는 텅 비어있다가도 KTX가 도착하여 한번 승객을 쏟아놓으면 사람들이 크게 집중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발매창구의 수가 적을 경우에는 상당한 병목 현상이 일어납니다.
마지막으로 지폐기기와 동전기기의 문제입니다. 전체적인 물가 상승으로 통용되는 화폐의 기본단위가 1천원 단위로 높아졌고, 지하철 요금도 1천원이 넘는 높은 금액이 되면서 동전만으로는 표를 사기가 힘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전만 들어가는 기계가 운용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나마 두 대 있는 발매기 중에서도 사실상 한 대만 사용 가능한 셈입니다. 상황을 더욱 황당하게 만들려면 지폐 먹는 기계를 아예 '고장'내버리면 되는데 이 경우 광명역에서는 전철표 구입이 완전히 불가능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실제로 그 기계가 고장이 났습니다.)
결론적으로 13분에 도착한 KTX에서 하차한 승객 무리가, 7분 뒤 출발하는 셔틀전철 표를 어떻게든 구입하기 위해 허접스러운 발매시설 속에서 발버둥치는 가운데, 결국에는 약 7~8명이 기어코 제때 표를 사지 못해 전철을 놓쳐버리는 매우 황당한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다음 차가 무려 1시간 뒤에나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2) 여전히 허접스러운 연계교통편 안내
수도권 남서부는 물론이고 아예 전열차 시발을 노린다는 역치고 연계교통편의 안내 역시 외지인으로서 매우 부족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각 방면별로 버스의 승차홈과 버스노선을 안내해주려고 하는 노력은 그마저도 없는 다른 역에 비해서는 꽤 공을 들이긴 했지만 여전히 목이 마른 수준입니다.
첫 번째는 지리를 모르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안내는 한글 텍스트 위주로 매우 축약된 개요만 나타내고 있어 지역 지리를 모른다면 인식하기가 매우 곤란했습니다. 광명사거리역 방면이니 철산역 방면이니 독산역 방면이니 안양 방면이니 부천 방면이니 하는 내용은 어디까지나 그 지형지물이 어디 붙어있는지를 제대로 아는 사람에게만 유용할 뿐입니다. 단순히 서남부 지역에 이런 도시들이 있다는 것 정도만 이해하고 실제 각 도시와 역의 위치 / 방위를 전혀 모르는 입장에서 보기에 그 안내판은 무용지물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버스노선 번호와 구간을 외고 다니는 '매니아'나 '지역주민'이 아닌 이상 소위 말하는 '관광노선'에 낚이기 쉽상이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관광노선과 비관광노선을 구별하지 않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광노선이 비관광노선인 것처럼 광명역 차원에서 대놓고 낚시질을 하는 수준이라 더욱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화영운수17번, 화영운수22번, 소신여객75번 등인데 이 노선들 대해 각각 이렇게 표기를 하고 있습니다. (기억에 의존이라 내용은 정확하지 않지만 대충 주는 느낌은 같습니다.)
17번 | 화영운수 | 광명역 - 소하동 - 하안동 - 철산역 - 광명시청 - 개봉역
22번 | 화영운수 | 광명역 - 철산역 - 개봉역
75번 | 소신여객 | 광명역 - 하안사거리 - 독산역 - 개봉육교 - 오류역 - 부천시
마치 22번이 17번에 비해 직통노선이고 관광을 덜 할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안내표기입니다만 실상을 보면 17번이 철산역을 직통으로 연결하는 데 비하여 22번은 하안동 주공아파트 단지를 관광하며 돌아가는 노선입니다. 게다가 개봉역을 가는 데는 광명 시내를 이리저리 관광하는 17번이나 22번 등에 비해서 소신여객 75번이 훨씬 선형적으로 나아보이지만 '개봉육교'라는 엉뚱한 지명을 붙이고 있어, 실제 개봉역이나 인천방면을 가길 원하는 승객들은 17번이나 22번을 타고 광명시내 관광하기가 딱 좋습니다. 결국 처음부터 매니아 수준의 정보를 외고 다니던가, 아니면 인터넷으로 미리 공부하고 역에 오지 않는 한 '제대로 된 연계교통편'을 안내받아 타기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 됩니다. 결국 "지역주민 - 광명, 관악, 안양 등 지역 - 을 위한 역" 외에 다수의 외지인이 방문하는 "시발역" 따위가 되는 것은 최소한 현재 하는 꼴을 봐선 애초부터 넌센스였단 이야기죠. (공항이 아닌 바에야)
(3) 대책
일단 자동발매기는 당장 '유효한 절대 대수'를 늘려야 합니다. 발매기 박물관도 아니고 이것저것 종류별로... 어디서 쓸데 없는 '여행정보 안내기' 따위까지 구해다 각각 하나씩 갖다놔서는 자리만 차지할 뿐입니다. 최대한 다른 역에서 놀고있는 자동발매기를 징발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금 설치되어 있는 동전만 먹는 기계는 다른 큰 역에서 지폐 겸용 기계와 '트레이드' 해온다거나 하는 것도 필요하겠죠.
매표시설과 매우 먼 거리에 설치된 '정산소'를 매표시설 쪽으로 옮기거나 아예 발매기들을 정산소 쪽으로 이동설치하는 것 역시 우선 검토해봐야 하겠습니다. 이 경우 비상시 - 승객이 몰렸는데 전동차 발차시각이 임박한 경우 - 에는 정산소에서 임시로 표를 발매할 수도 있고, 기계의 이상을 금방 알아챌 수 있으며, 동전교환 등의 업무도 가능해집니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사람들이 표를 못 사서 한시간에 한번 있는 전철을 못 타 발을 동동 구르건 말건 직원들은 계속 정산소에만 틀어박혀 있었는데,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추운 날씨에 매번 나와서 서 있으라고 하는 것도 가혹한 이야기인 만큼 아예 정산소를 그쪽으로 옮겨주는 게 옳은 방향일 것입니다. 최신의 역 무인화 트렌드를 반영하여, 직원이 상주하는 시설을 일부러 무인화시설과 동떨어진 곳에 감추어, 국민들이 무인화시설을 많이 많이 이용하게끔 '길들이려는' 음흉한 의도가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레이아웃임에 틀림 없었습니다.
연계교통편 안내는 지금처럼 단순한 텍스트의 나열이 아니라,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노선안내 지도 같은 것이 필요합니다. 지도가 있다면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시내 관광노선과 비관광노선을 구별해볼 수 있으니 관광노선에 낚이는 사람들도 사라질 것입니다. 이 역시 관광노선을 운행하는 버스업체의 이해득실이 걸린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이상 -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더 많은 승객을 낚아올리려는 화영운수의 농간이라던가 - 당연하게 시행되었어야 하는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여튼 "지역 주민"이 아닌 이상에야 현 상태의 광명역에서 이런저런 관광을 당하느니, 그냥 확실한 서비스가 보장된 서울역이나 다른 역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절실히 절감하는 경험이었습니다. -_- 가끔씩 보면 나오는 '광명역 활성화를 위해 본래 계획대로 전 열차 광명 시발화' 라든가 하는 주장들이 얼마나 엽기적인가 하는 것도 말이지요.
첫댓글 광명시에서 선거 한번 하면 꼭 나오는게 광명역 정상화인데, 대체 3개월 주기로 휴가 나가도 광명역에 바뀌는게 없으니 답답해 미칠 노릇입니다. -_-;; 어쩌면 광명역과 광명시는 지금처럼 승용차 이용자로 탑승객 유지되는 현실에 만족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죠. 사실 개인적으로 현 광명시 꼭대기엔 전혀 기대를 하지 않는지라....
적어도 광명-관악 셔틀버스 소개만 잘 해 놓아도(광명역 내에서) 좋을 거 같습니다.
평소에 생각을 못하였는데 정말 예리한 지적입니다. 어떤 한 교통관련 시설에 대한 문외한의 입장에서 살펴볼 필요가 절실하게 느껴지는 글이군요... 광명역에서 수차례 가보았어도 그다지 불편을 느끼지 못하였지만 이런 문제가 있었는지 아직은 제 관찰력 부족이라는게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
단순히 광명역의 문제라기보다 우리 나라 모든 교통관련시설에 보편적으로 타당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인천공항에 내렸을 때 주로 외국인들이 버스도 못찾아, 심지어 공항철도도 못찾아, 택시도 쓸데없이 세 종류, 이런 경우가 많거든요. 어쩌면 광명역을 시범사업구역으로 해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해 볼 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나라 대다수의 교통시설이 이용자 편의보다는 관리자 편의에 맞게 건물 설계부터 들어가는 관계로 이용자는 빠른 길을 두고도 빙빙 돌게 만들어 놓은 곳이 많지요. 건물은 새로 크게 지어서 유지비는 많이 들고....... 크게 지었으니 걸으면서 구경이라도 하라는 의미인지는 몰라도. 터미널 건물에서 10분 거리에 떨어진 공항철도도 대표적인 예가 되겠죠.
공항철도의 경우 철도역 남쪽에 제2터미널이 생길 것을 가정하고 배치된 구조인데, 제2터미널이 정말로 생길지도 의문스러운 데다, 생기더라도 다른 공항처럼 각 터미널에 별도의 역이 존재하는 게 적절하다는 면에서 문제의 소지가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2터미널은 지금으로서는 지을 부지도 없어 보인다는것이;;;;;(정말 내리면 바로 수속카운터 나오는 홍콩과 대비되는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교통센터 남측 주차장이 제2터미널 부지입니다. 부지만 조성해 놓고 당장 안 쓰니까 주차장 깔아놓은 거죠. 실제로 여기 세우는 차 많지 않습니다.
맞아요!! 그리고 수도권전철표를 어디서 사야하는지도 안내판이 전혀 없더라고요. 친구랑 같이 갔었는데, 저는 카드가 있었지만 친구는 표를 사야해서 양쪽 매표소를 다 봐도 수도권전철표를 사는 곳은 없더군요. 답답해서 종합안내소에 물어보니 개찰구 바로 앞에 있다고 알려주시더군요..;
교통연계 다른거 상관없이 있는 노선과 기차시간이 맞았으면 좋겠네여. 광명~용산 셔틀전철도 KTX와 시간 안맞다는
정말 저번에 광명역 갔는데 최악이었음...; 아주 길을 해매가지고..;
광명역에서 전 열차 절대 시발 못합니다. 시발역 체계 바꿨다가는 서울에서 난리나죠. 서울 표가 제일 큽니다. 그러나 저러나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광명역의 안 좋은 위치와 함께 그닥 성의 없는 철공의 태도가 제일 크게 작용하죠. 광명역은 입지부터 잘못되었습니다. 차라리 구로차량기지를 광명으로 옮기고 거기에 역을 지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여러번이죠.
그랬더라면 경인로 아마겟돈이 심화되긴 했을지 몰라도, 영등포 정차요구는 애초부터 필요가 없었겠지요. 신안산선 경로도 조금 더 자유로웠을 테구요.
광명역 자체가 애초에 개통 초기 서울-시흥간 선로용량 잠식을 줄이고 경기 남부를 이용권으로 하는 계획이었기 때문에 계획이 취소되면 취소되지 다른 부지에 건설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봅니다.
입지는 사실 철공의 잘못이 없죠. 정부에서 계획을 할 때 현재의 위치로 하였을 뿐이죠. 철공은 다 지어진 집에 들어왔을 뿐입니다. 제 생각은 광명역보다는 영등포역에 세우고 안산선과 만나는 위치에 역을 만들고 여기까지는 2복선으로 만들어서 수도권전철과 같이 운행하였으면 했습니다. 물론 이제는 모두 만들어졌으니 되돌릴 수 없지만요...... 현재 광명역도 수도권전철이 들어온다는 가정으로 만든 역이 아니다보니 열차 배차나 운영에도 무리가 있는 건 사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