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사용하기도 하였으므로
응당 그렇기도 그럴것이지만
법회시에 신도님들 공양하는 방에
불이 나가서 안들어 옵니다
새 형광등을 바꾸어 끼어 보다가
내가 할수 있는 영역을 넘었다 싶어서
대불련 출신 법우가 운영하는
전기 기구 가게로 연락하니
시간을 내서 와서는
초 절전형 순간 점등형 시력 보호형
새 형광 기구로 교체해 주고 갑니다
침침함 때문에 한동안 불편하였던 방에
새 조명 기구의 밝은 광명이 빛을 발하니
불빛에 비치는 모든 사물이 생기를 얻은듯
반짝 반짝 빛이 납니다
또 공양간으로 드나 드는 문의
잠금 장치도 영 말을 듣지 않기에
문 고치는 사람의 손을 빌릴까 생각하다가
도라이버로 나사를 풀어 안을 보니
그도 역시나 너무 오랫동안 쓰다보니
안에 매끄럽게 잠기고 풀리도록 하는
윤활제가 없이 메말라 보입니다
마침 예초기를 사용하면서
휘발유와 섞어 사용하던 모빌이 있어서
몇방울 떨어 뜨리니 언제 그랬느냐는듯
부드럽게 말을 잘 듣습니다
그처럼 수시로 손보고 살고
때때로 고쳐가며 사는 것이
우리네 삶의 진솔한 모습입니다
만물이 다 그렇습니다
밝음 속에서는 성장을 하고
발전을 하여 앞으로 나아가지만
어둠 속에 있는 시간이 오래되면
성장을 멈추고 움추러 들게 됩니다
김장 배추가 자라는 밭을 보아도
그늘이 없는 배추는 자람이 좋은데
가까이 있는 큰 나무로 인해서
볕을 덜받는 배추는 상대적으로
자람이 썩 좋지 않습니다
그렇게 비교하는 눈으로 보면
이 세상은 밝음과 어둠 성장과 정지
착함과 그릇됨등 모든 것이
이분법적인 가름이 되지만
한 생각을 돌이켜서 양면을 보고
그 둘은 본래부터 생래적으로
둘이 아닌 하나였음에 착안을 하면
어둠을 만나면 어둠을 밝히고
밝음이 오면 밝음을 더 밝히는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 가게 될것입니다
발심과 서원의 마음
참회와 공경의 수행이 필요한 것도
그와 같은 밝은 생활을 이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재충전을 위한 노력이요
자기 정화의 의지입니다
우리 공주에는 사곡 옆에
유구읍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유구에는 무언이라는 이름의
말 못하는 스님이 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유구무언 할랍니다
저녁에 거사림 회원들과
야운 스님 자경문을 살펴 보았습니다
주인공아 내말 들어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서 깨달음 얻었거늘
그대는 어찌하여 그토록 오랜동안
고통의 세계에서 돌고 도는가.
그대가 시작을 알 수 없는 때로부터
금생에 이르도록
깨침의 길을 등지고 속진에 묻혀서
어리석은 길에 굴러 떨어져
언제나 온갖 악업을 지으니
삼악도의 괴로운 굴레에 빠져 들었으며
두루 선행을 닦지 않아서
사생의 업해에 잠긴 것이로다.
몸으로는 육근이 상대하는
경계를 따르는 까닭에 악취에 떨어진 즉
신고(辛苦)가 극에 달하고
마음으로는 위 없는 부처님 법을 등진 까닭에
혹 사람의 몸을 받았어도
부처님 나시기 전이나 그 후로다.
금생에 또다시 다행스럽게도
사람의 몸 받았으나 바로 이 때가
부처님 아니 계신 말법시대이니
아아! 슬프고 애닯도다
이 누구의 허물인가.
(사연은) 비록 그러하나
그대가 능히 반성하여 애욕을 베어버리고
출가하여 바루를 들고 법복을 입어
(바른 법을 받아 지니고자)
티끌세상을 벗어나는 지름길을 밟아
번뇌에 물듦이 없는 무루의 묘법을 배우면
마치 용이 물을 얻은 듯,
호랑이가 산중에 들어간듯 하리니
그 수승하고 오묘한 이치는
말로써 다할 수 없느니라
원효사 심우실에서
나무아미타불
카페 게시글
▒▒걸망속의 단상▒
유구무언
비화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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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0.18 11:38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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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읍니다..수고가 많은 보살님...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