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박광자, 전영애 옮김
청미래 출판사
총 552쪽
1979년 번역
180쪽
왕세자가 탄생한 순간이야말로 마리 앙투아네트에게는 권세의 절정이었다.
왕국에 왕위 계승자를 선물함으로써 그녀는 진정한 왕비가 되었다.
다시한번 군중은 열광의 환호를 보여주었다.
온갖 실망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국민들의 마음속에 세습군주에 대한 얼마나 지극한 사랑과 신뢰의 투자가 준비되어 있는가를, 군주라면 얼마나 쉽사리 프랑스 민족을 자신에게 묶어놓을 수 있는가를 보여 주었다.
그녀는 결정적인 단 한 걸음, 즉 트리아뇽에서 베르사유로, 다시 파리로, 로코코의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경박한 무리들로부터 귀족에게로, 백성에게로 단 한 걸음만 떼어놓으면 되었다.
그랬더라면 모든 것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순간들이 지나자 또다시 경박한 쾌락의 세계로 되돌아갔다.
백성들의 축제가 끝나자 트리아농에서는 다시 사치스럽고 숙명적인 축제가 벌어졌다.
이젠 무한한 인내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행복의 분수령에 도달한 것이다.
이제부터 물은 심연을 향해서 흘러 떨어지기 시작했다.
당분간은 눈에 보이는 것, 눈에 띄는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베르사유 궁전이 점점 더 조용해졌다는 것뿐이었다.
접견시에 나타나는 신사숙녀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이 소수의 사람들마저도 인사할 때 의례적인 냉정함을 드러냈다.
아직까지는 형식을 지키고 있었으나 형식을 위한 형식일 뿐 왕비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무릎을 꿇고 궁중 법도대로 국왕 부처의 손에 키스를 했지만 그들에게 말을 걸어주는 은총에 연연해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시선은 어둡고 낯설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극장에 들어설 때도 일 층 좌석과 이 층 칸막이 좌석에 자리 잡은 관중들은 전처럼 열광적으로 기립하지 않았다.
길거리에서도 오랫동안 자연스레 들려왔던
"왕비마마 만세!"
소리가 그쳤다.
아직 공공연한 적의는 노출되지 않았지만 이전과 같은 따뜻함이 사라진 것만은 틀림없었다.
아직 군주의 아내에게 복종은 했지만 그 여인에게 경의를 표하지는 않았다.
조심스럽게 왕비를 섬기되 왕비의 호의를 사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녀의 뜻을 드러내놓고 거역하지는 않았지만 침묵을 지켰다.
소극적이지만 완강한 악의의 침묵, 모반의 침묵이었다.
184쪽
그녀가 국가를 이끄는 노를 손에서 완전히 놓기만 했어도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더라면 적어도 죄과와 책임은 모면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녀는 총애하는 폴리냐크 패거리에게 선동되어 재상직 하나 관직 하나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정치에 간섭했다.
정치의 가장 위험한 일에 끼어들면서도 상황을 조금도 모르고 있었다.
아무 일에나 참견을 하고 서툴게 나서서 극히 중요한 문제들까지도 손목만 까닥거려 마구 결정을 했다.
국왕에 대한 자신의 엄청난 위력을 철저히 자기가 총애하는 사람들에게만 유리하도록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