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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사로 보는 세상] 항생제 내성균은 세균이 진화하는 증거
2023.02.28 14:30
● 세균(박테리아)에 의한 감염병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대두
유사 이래 사람과 세균(박테리아)은 함께 살아 왔다. 사람 피부에 붙어 있는 세균은 비누칠을 하고 샤워를 하면 대부분 떨어져 나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보통 때는 아무 일 없이 피부에 붙어 있는 세균이 가끔씩 사람의 몸 상태가 나빠져 면역기능이 떨어지면 피부에서는 물론 사람 몸 속으로 침투해 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입 속에서 살고 있는 세균은 충치를 비롯해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고, 몸 속 곳곳에는 세균이 분포해 살고 있다. 특히 세균이 많은 창자에서는 별의 별 일이 다 일어나서 사람이 필요로 하는 영양소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소화를 촉진시키기도 하며, 대사를 통해 인체 항상성을 잘 유지해 주기도 한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세균이 존재하는지 확인조차 불가능하지만 대부분의 세균은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 그러나 그 종류가 워낙 많다 보니 사람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세균도 있다.
역사적으로 14세기와 19세기에 대유행을 하면서 인류를 공포에 몰아넣은 페스트와 콜레라는 세균에 의해 발생하는 감염병이다. 그 외에도 결핵, 한센병, 매독 등 세균에 의해 발생하는 수많은 감염병이 수시로 인류에게 피해를 입혀 왔다.
1910년 독일의 에를리히(Paul Ehrlich)가 합성한 살발산606이 매독치료제로 시판되기 시작했다. 이로써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화학물질이지만 세균을 죽일 수 있는 약을 인류가 개발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로부터 18년 후 영국의 플레밍(Alexander Fleming)은 곰팡이 속에 세균을 죽일 수 있는 물질이 들어 있음을 알아냈다. 단세포 생물인 곰팡이의 입장에서 자신보다 작은 세균이 침입하는 경우 이를 물리칠 방법이 없었으니 세균을 죽일 수 있는 물질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곰팡이(Penicillium rubens)에서 발견된 이 물질을 페니실린이라 한다.
역사적으로는 세균이 수시로 감염병을 일으켜 인류를 괴롭혀 왔지만 20세기에 접어들어 세균을 죽일 수 있는 물질을 발견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세균감염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물질을 합성할 수도 있고, 곰팡이로부터 찾아낼 수도 있음을 알게 된 학자들은 그로부터 지금까지 약 한 세기가 지나는 동안 세균감염을 해결할 수 있는 수많은 물질을 찾아내어 약으로 판매하고 있다.
문제는 20세기 중반 이후 그 위세가 약화해 서서히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 세균감염질환이 여전히 인류에게 골치아픈 문제 중 하나라는 것이다. 세균은 인류에게 타도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동반자인 것이다.
● 사람과 세균이 군비경쟁을 한다고?
이제는 국민들에게 익숙한 일이 되었지만 2000년에 의약분업을 실시할 때는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병원에서 진찰을 받은 후 필요한 약을 받아서 돌아오던 단순한 제도를 버리고, 의사로부터 처방전을 받으면 적당한 약국을 찾아가서 약을 받는 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해관계가 걸린 의료계 관련자들은 차치하고라도 한 군데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적어도 두 군데를 방문해야 했으니 국민들에게 환영받기는 어려운 제도였다. 정부가 의약분업을 추진했던 가장 큰 명분 한 가지는 약물 남용을 방지하려는 것이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몸에 이상을 느끼면 약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그랬으니 의사가 상담만 하고 약을 주지 않은 채 “적당한 운동을 하시라”, “이러이러한 음식은 드시지 마시고 저러저러한 음식을 드시라”, “푹 쉬고 충분히 주무시라”와 같은 정보만 전해주고 진료를 마치면 진료비를 내는 일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따라서 굳이 필요하지 않은 약도 처방하는 일이 흔했다.
바이러스가 원인인 감기를 해결하기 위해 세균을 죽이는 약인 항생제를 투여하는 것이 그런 예다. 필요없는 약을 사용하는 것은 ‘밑져야 본전’이 아니라 항생제 내성균 출현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이 20세기 후반부터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약물을 오랜 기간 널리 사용하면 약물 남용의 부작용으로 항생제가 듣지 않는 내성 균주가 잘 나타나게 된다.
나라별로 질병 양상에 차이가 있으며, 우리나라는 대표적으로 결핵 환자가 많은 나라다. 오죽하면 세계적으로 결핵왕국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였다. 그랬으니 결핵 발견을 위해 X선 촬영을 하는 일이 오래 전부터 시행되었고, 약을 처방받는 환자들도 많았다. 수십년간 노력의 결실로 이제는 연간 신환 발생수가 2만명 이하로 떨어졌다.
필자가 의과대학생이던 30여년 전 “결핵약을 많이 사용해서 그런지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항생제 내성을 지닌 결핵이 많아서 앞으로도 지금처럼 치료가 잘 될지 알 수 없는 게 문제다”라고 걱정하시던 교수님 말씀과 다르게 꾸준히 환자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 할 수 있다. 계속해서 결핵 환자가 줄고 있는 것은 약을 남용하지 않고 적재적소에 잘 사용하고 있으며, 환자를 조기에 발견하고, 전파력을 억제할 수 있도록 집단생활을 방지하며, 새로운 약도 계속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변이”라는 용어를 흔히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미생물이 변이를 일으키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자 생존원리이기도 하다. 인류가 아무리 좋은 약을 개발한다 해도 세균은 멸종되지 않기 위해 빠져나갈 방법을 찾을 것이고, 이것이 항생제에 내성을 갖게 되는 이유다.
● 대학생이 방학중에 발견한 노벨상 수상업적
1925년 뉴저지에서 태어난 레더버그(Joshua Lederberg)는 컬럼비아대 동물학과를 졸업한 후 의과대학으로 진학했다. 동물학과 재학시 미생물을 가르친 라이언(Francis J. Ryan)의 영향으로 기초의학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그는 의과대학 재학중이던 1946년에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연구를 해 보고자 했다.
레더버그가 방학중에 연구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은 라이언은 자신의 지도교수이면서 더 좋은 연구여건을 가진 테이텀(Edward Laurie Tatam)을 소개해 주었다. 그 해 여름, 테이텀의 연구실에서 일을 한 레더버그는 세균이 무성생식한다는 개념과 다른 새로운 발견을 했다. 두 마리의 세균이 서로 붙었다가 떨어지는 접합현상에 의해 유전자를 교환하는 유성생식이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세균은 무성생식 뿐아니라 유성생식도 함께 하는 것이다.
자신의 발견에 흥미를 가진 레더버그는 의학 공부를 중지하고 세균에서 일어나는 유전물질의 교환방식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1947년 예일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직후 위스콘신대 교수로 부임하면서 평생 기초의학자의 삶을 산 레더버그는 21세에 이룬 연구업적으로 1958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됨으로써 ‘최연소에 이룬 연구업적으로 받은 노벨 생리의학상’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최연소 노벨 생리의학상은 1891년생으로 1921년에 인슐린을 발견하여 1923년에 노벨상을 수상한 밴팅(Frederik Banting)이고, 세 번째 최연소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가 DNA가 이중나선 구조를 하고 있음을 발견하여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왓슨(1928년생)이다.
레더버그는 평생 수많은 연구업적을 남겼고, 록펠러대학교 총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방학중에 그를 지도했고, 1958년에 그와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테이텀의 수상업적은 레더버그와 다르게 “유전자가 특정한 화학반응을 조절함으로써 작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런데 세균은 어떤 방법으로 항생제 내성을 가지는 것일까.
레더버그는 자신의 발견이 항생제 내성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지만 두 세균이 붙었다 떨어지면서 유전물질을 교환하는 접합이 바로 항생제 내성 발현의 가장 중요한 기전이다.
● 세균이 항생제 내성을 가지게 되는 원리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 원리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내성을 가질 수 있는 플라즈미드(plasmid) DNA를 얻는 것이다. 플라즈미드 DNA는 세균의 염색체 바깥에 존재하는 DNA를 가리킨다. 세균이 플라즈미드 DNA를 가지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자신이 가진 고유의 DNA에 담겨있는 유전자 외에 다른 유전자를 더 가질 수 있으므로 그 유전자로부터 생명현상을 조절하는 단백질을 더 합성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류가 앰피실린(ampicillin)이라는 항생제를 개발해 포도알균(Staphylococcus aureus)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앰피실린에 대책이 없던 포도알균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β-lactamase 효소를 합성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진 포도알균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β-lactamase는 앰피실린을 비롯하여 β-lactam 링(ring) 구조를 가진 물질을 파괴할 수 있다. 따라서 앰피실린에 의해 사멸되던 포도알균이 더 이상 사멸되지 않고, 내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내성을 가지게 된 것은 포도알균이 다른 포도알균과 접합했다가 떨어질 때 β-lactamase 유전자를 가진 플라즈미드 DNA를 서로 주고받기 때문이다. 처음 앰피실린의 공격을 받았을 때는 수많은 세균이 죽어나갔지만 어느 날 β-lactamase 유전자를 가진 플라즈미드 DNA가 나타나 세균이 서로 주고받고 복제를 하면서 β-lactamase 유전자를 가지지 않은 포도알균은 도태되고, β-lactamase 유전자를 가진 포도알균만 살아남게 된다. 이것이 특정 세균이 항생제 내성을 가지게 되는 기전이다.
앰피실린에 내성을 가진 포도알균이 발견되자 의학자들은 앰피실린에 내성을 가진 포도알균도 사멸할 수 있는 메티실린(methicillin)을 개발했다. 메티실린은 앰피실린 내성 포도알균을 잘 처리하는 듯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메티실린에도 내성을 가진 포도알균이 발견되었다. 그러자 전체 포도알균중에서 메티실린에 내성을 가진 포도알균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의학자들은 또 메티실린에 내성을 가진 포도알균에 효과를 지닌 반코마이신을 개발했다. 이와 같이 의학자들과 세균은 서로 승리를 거두기 위한 경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세균이 항생제에 내성을 가지는 가장 중요한 원리는 플라즈미드 DNA를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이는 세균 입장에서 보면 진화과정에서 가지게 된 세균의 생존원리이기도 하다.
세균을 포함한 미생물은 인류가 함께 살아가야 할 동반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감염병 해결을 위한 좋은 방법이다.
※ 참고문헌
1. 폴 이월드. 전염성 질병의 진화. 이성호 역. 아카넷. 2014
2. 피터 글럭맨, 앨런 비들, 마크 핸슨. 진화의학의 이해. 김인수, 김종재, 남석현 역. 허원미디어. 2014
3. 박성진. 만화항생제. 군자출판사. 2005
예병일 연세대원주의대 교수
※필자소개
예병일 연세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C형 간염바이러스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대학교 사우스웨스턴 메디컬센터에서 전기생리학적 연구 방법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의학의 역사를 공부했다.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에서 16년간 생화학교수로 일한 후 2014년부터 의학교육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경쟁력 있는 학생을 양성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평소 강연과 집필을 통해 의학과 과학이 결코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가까운 학문이자 융합적 사고가 필요한 학문임을 소개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요 저서로 『감염병과 백신』, 『의학을 이끈 결정적 질문』, 『처음 만나는 소화의 세계』, 『의학사 노트』, 『전염병 치료제를 내가 만든다면』, 『내가 유전자를 고를 수 있다면』,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 『내 몸을 찾아 떠나는 의학사 여행』, 『이어령의 교과서 넘나들기: 의학편』, 『줄기세포로 나를 다시 만든다고?』, 『지못미 의예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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