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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유아기
모든 것은 조물주의 손에서 나올 때는 선하다, 인간의 손에 들어오면 변질되고 만다.
편견, 권위, 필연, 모범 또한 우리가 몸담고 있는 모든 사회 제도들이 인간의 본성을 억누를 것이고, 아무것도 제자리에 두지 않을 것이다(P.19).
최초의 교육은 가장 중요한 교육으로써 반박의 여지없이 여성의 소관이다(P.20).
인간은 교육을 통해 형성된다. 태어날 때는 가지지 못했지만 어른이 되어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는 교육으로부터 제공받는다. 교육은 자연이나 인간 또는 사물로부터 우리에게 온다. 우리의 능력과 기관의 내적 발달은 자연의 교육이다. 이러한 발달은 우리가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것은 인간의 교육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작용하는 사물들에 대해 우리 자신의 체험을 통해 획득한 것이 사물의 교육이다(P.21).
우리는 누구나 이 세 스승에 의해 교육을 받는다. 세 스승들의 가르침이 모든 면에서 합치되고 동일한 목표를 지향하는 경우에 제자는 스스로 자신의 목적을 향해 매진하면서 모순없이 살아갈 것이다(P.22).
흔히 사람들은 본성이 습성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교육은 분명 일종의 습관에 불과하다. 우리는 감각 능력을 지니고 태어났으며, 태어나면서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주변의 사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P.23).
변질되기 전의 성향들이 내가 우리 내면에 있는 본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P.24).
사회 속의 인간은 사회 집단과의 관계 속에 있다. 훌륭한 사회 제도란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최대한 이탈시켜 그에게서 절대적 존재를 빼앗고 대신 상대적 존재를 부여하는, 그리하여 공통의 단위 속에 자아를 옮겨 놓을 줄 아는 제도이다(P.25).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는 취해야만 하는 방침을 항상 확고히 정하고 그것을 분명하게 따르고 그리고 지속적으로 지켜야 한다.
서로 반대되는 두 형태의 교육제도의 하나는 공동체적인 공공교육 제도이고, 다른 하나는 개별적인 가정교육 제도이다. 공공교육의 개념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플라톤의 <국가>를 읽어보라. 그것은 일찍이 쓰인 글 중에서 가장 훌륭한 교육론이다(P.27). 두 가지의 상반된 목표를 지향하는 이 교육은 그 둘을 다 놓쳐 버리기 때문이다(P.28).
교육은 그의 운명이 부모의 직업과 조화를 이루는 한에서만 유용하고, 다른 모든 경우에 학생에게 해롭다. 교육으로 인해 그에게 주입되는 편견으로도 해로운 것이다.(P.29).
부모의 직업 이전에 자연은 인간으로서의 삶으로 그를 불러들인다. 삶을 사는 것, 그것이 내가 그에게 가르치고 싶은 직업이다.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가장 잘 감당할 줄 아는 사람이 교육을 가장 잘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진정한 교육이란 훈계보다 실제 훈련으로 이루어진다는 결론이 나온다. 우리는 삶을 시작하면서 배움을 시작한다. 최초의 선생은 유모이다. 그래서 고대인들에게 교육은 授乳(수유)를 의미했다. "산파는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고 유모는 키우며, 교육자는 훈육하고 스승은 지도한다"라고 바로(Marcus Terentius Varro<기원전 116 - 기원전 27>)도 말했다. 보육, 훈육, 지도는 서로 다른 세 가지 일이다(P.31).
아이에게 어른이 되어서 스스로 보존하고 운명의 타격을 견뎌내는 법을, 또한 호사와 빈곤에 저항하고 필요하다면 아이스란드의 얼음 속이든 몰타섬의 불타는 바위 위에서든 살아 나가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가장 충실하게 산 사람은 가장 긴 세월을 산 사람이 아니라 삶을 가장 많이 느낀 사람이다.
우리의 지혜는 모두 노예적인 편견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의 모든 관습은 굴종과 제약, 구속뿐이다(P.32).
학문과 예술, 철학 그리고 철학이 만들어 내는 풍속은 곧 유럽을 사막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P.37).
습관이 본성을 바꾸어 놓아야 한다(P.38).
어머니가 고맙게도 자신의 아이들을 젖을 먹여 키운다면, 풍속은 저절로 개선되고 자연의 감정이 모두의 마음 속에 되살아 날 것이며 나라의 인구도 다시 증가하게 될 것이다(P.40).
어머니가 없으면 자식도 없다. 모자간의 의무는 상호적이다(P.41).
인생의 최초의 시기는 거의 내내 질병과 위험에 시달린다. 태어난 아기들 중 절반이 만 8세가 되기 전에 죽는다. 바로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P.42).
언젠가 그들이 견디어야 할 타격에 대비하도록 그들을 훈련시켜라. 계절, 기후, 환경의 혹독함이나 배고품, 갈증, 피로를 견딜 수 있도록 그들의 신체를 단련시켜라. 그들을 스틱스의 물속에 잠기게 하라.
그의 생명을 보존하는 일에 유의하면서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도 장래이다. 그가 청년이 되기 전에 청년이 겪을 재난에 대비하여 그를 무장시켜야 한다(P.43).
인생의 어느 시기에나 고통을 겪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다(P.44).
아이가 갖는 최초의 생각은 지배와 예속의 관념들이다.
그 가정교사는 이미 완전히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인공적인 싹을 완전히 틔우게 하고 그에게 온갖 것을 가르친다. 자기 자신을 아는 법과 자기 자신을 활용하는 법, 사는 법과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법만 제외하고 그렇게 한다(P.45).
어린아이가 본래의 모습을 간직하기를 원한다면 그가 세상에 나온 순간부터 그것을 보존해 주어야 한다. 진정한 유모가 어머니이듯이 진정한 교사는 아버지이다.
부모는 그들의 방식에서와 마찬가지로 임의의 순서에서도 서로 의견이 일치해야 하며, 어린아이는 어머니의 손에서 아버지의 손으로 넘겨져야 한다. 왜냐하면 재능이 열정을 보완하는 것보다 열정이 재능을 더 잘 보완할 것이기 때문이다(P.46).
아버지는 인류에 대해서는 인간을, 사회에 대해서는 사회성을 가진 인간을, 국가에 대해서는 시민을 만들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P.47).
군인과 교사는 돈을 바라고 일을 하지 않는다(P.48).
교사의 임무가 얼마나 중요한지 너무나 잘 인식한다.
나는 제자의 교육시키기에 적합한 나이, 건강, 지식 그리고 모든 재능이 갖추어져 있다고 가정하고, 그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다 자란 어른이 되어 자기 자신 외에 다른 안내자가 필요 없게 될 때까지 그를 지도하기로 결심했다(P.50).
왜냐하면 나의 최초의 교육 원칙들이 기존의 것과 반대되기를 하지만, 합리적인 사람이면 누구나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명백한 것이기 때문이다(P.51).
교사는 현명하면서 최대한 젊어야 한다는 점만 지적해 두겠다. 그 자신이 어린아이 같아서,제자의 친구가 되어 함께 즐거워하며 그의 신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유년기와 성년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지 않아서, 그 거리를 두고는 결코 확고한 애정이 형성되지 않는 법이다(P.52).
나는 이런 학문을 가르치는 선생을, 지식을 가르치는 일보다 지도를 하여 이끄는 것이 문제이므로, 교사라기보다 스승이라고 부른다. 그는 가르침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교훈을 발견하게 해야 한다.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는 관계없이 스스로 성장한다(P.53).
빈자가 척박한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부자는 비옥한 땅에 사는 사람들인 것이다.
자연의 교육은 한 인간을 모든 인간 조건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은 스스로 인간이 될 수 있다(P.55).
에밀은 고아이다. 에밀은 자신의 부모를 존경해야 한다. 그러나 나에게만 복종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제시하는 첫 번째 조건이다(P.56).
제자와 교사가 서로를 분리될 수 없는 존재로 여겨 그들이 매일의 운명을 언제나 공유하기를 바라고 있다(P.56).
아버지라면 신이 주시는 가족을 선택할 수도 없고 그중 누군가를 편애해서도 안 된다. 결혼은 배우자들 사이에 체결된 계약이면서 또한 자연과의 계약이기도 하다(P.57).
허약한 신체는 정신을 나약하게 만든다(P.58).
사람은 가르치는 학문과 병을 치료하는 의술은 매우 유용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사람을 기만하는 학문과 사람을 죽이는 의술은 나쁘다. 그러니 그것들을 구별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달라.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P.59).
스스로 병을 고칠 줄 모르니 어린아이는 병을 앓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자연의 기술이다(P.61).
의학에서 유일하게 유용한 부분은 위생학이다. 하지만 위생학은 학문이라기보다는 미덕이다(P.62).
가장 장수한 사람들의 예는 대개 운동을 아주 많이 하고 피로와 노동을 최대한 견뎌 낸 사람들 중에서 나온다(P.63).
신생아에게는 최근에 아기를 낳은 유모가 필요할 것이다.
신체뿐만 아니라 마음도 건강한 유모가 필요할 것이다. 좋은 성격은 좋은 체질만큼이나 중요하다(P.65).
고대국에서 속내 이야기를 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대부분이 유모인 것은 바로 이러한 까닭이다(P.66).
초식동물의 젖은 육식동물의 젖보다 훨씬 부드럽고 몸에도 좋다(P.67).
기름기 없는 식사는 유모에게 변비를 일으키는커녕 젖의 양을 더 풍부하게 하고 젖의 질을 더 좋게 만들어 줄 것이다(P.69).
독자는 그 가정교사가 돈으로 고용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친구이다.
인간은 모든 동물을 가운데 무리 지어 살기에 가장 부적합한 동물이다. 인간이 내쉬는 숨은 다른 인간들에게 치명적이다(P.70).
처음에는 관습을 따르는 것에서 시작하고 그리고 나서 차츰차츰 관습에서 멀어지게 한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냉수에, 심지어 얼음물에 아이들을 씻기도록 하라. 일종의 건강 예방법이다(P.71).
아이가 튼튼해지기 시작하면 방을 이리저리 기어 다니게 내버려 두고 작은 사지를 펴고 뻗칠 수 있게 해 준다. 그들의 발육 차이에 여러분은 놀랄 것이다(P.72).
아이들이 생후 두 달이 돼면 무릎과 두 손으로 이미 시작한다(P.73).
우리는 배울 수 있는 능력은 지녔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태어났다(P.74).
각자 자신의 타고난 재능, 취향, 욕구, 소질, 열정, 그리고 거기에 몰두할 수 있는 기회에 따라 많건 적건 성장해 나아간다.
인간의 교육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다.
동물들조차 많은 것을 습득한다. 먹는 법, 걷는 법, 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감각을 가진 살아 있는 존재들에게 모든 것은 교육이다
감성적 감각의 반복을 통해 어린아이들은 습관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다(P.76).
그의 몸에 자연적인 습관을 남겨 둠으로써, 언제나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있게 하고, 어떤 의지를 가지면 매사에 자신의 뜻대로 행동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일찍부터 자신의 자유를 지배하고 자신의 힘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게 준비시켜 주도록 한다.
어린아이가 사물을 구분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아버지에게 보여 줄 사물을 선별하는 일이 중요하다(P.78).
어린아이는 보고 만지고 소리를 들으면서, 특히 시각과 촉각을 비교하고 손가락으로 느낀 감각을 눈으로 평가하면서 물체의 열기, 냉기, 단단함, 물렁물렁함, 무게, 가벼움을 감지하고 그것의 크기, 형체, 또한 감각적인 온갖 성질들을 판단하는 법을 배운다(P.81).
욕구 불만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여러 가지 신호로 표현된다. 아이들이 우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젖을 먹이는 유모는 이 언어에 관한 한 우리의 스승이다(P.82).
인간의 최초 상태가 궁핍과 나약함이므로 인간이 내는 최초의 음성은 칭얼거림과 울음소리이다(P.83).
더 자유롭고 더 독립적인 서민의 자식들이 일반적으로 덜 허약하고 덜 신경질적이며 더 튼튼한 이유들 중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린이들의 첫 울음은 간청이다(P.85).
아이가 계속 울면 울수록 더 못들은 척해야 한다. 일찍부터 어른이나 사물에게 명령을 하지 않도록 습관을 들여야 한다(P.86).
모든 악의는 나약함에서 비롯된다. 선과 악이라는 두 개의 원리를 알고 있던 민족들은 모두 다 악을 선보다 열등한 것으로 여겨 왔다.
이성만이 우리에게 선과 악을 인식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P.87).
철학은 그것을 인간이 지닌 자만심, 재배 성향, 이기심, 악의와 같은 자연적인 악덕에 의한 것으로 설명한다(P.88).
지배력이 이기심을 일깨우고 그것의 비위를 맞추며, 습관이 그것을 강화시킨다. 그리하여 필요에 이어 변덕이 생겨나고, 세상 평판의 편견이 최초의 뿌리를 내린다(P.89).
자연이 그들에게 부여한 힘을 다 사용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이것이 첫 번째 준칙이다.
아이들을 도와주고, 지능 면에서든 힘의 측면에서든 물리적 욕구에 속하는 모든 것에서 그들에게 부족한 것을 보완해 주어야 한다. 이것이 두 번째 준칙이다.
그들에게 도움을 줄 때는 변덕이나 근거없는 욕망에는 아무것도 제공하지 말고 오로지 실제적으로 유용한 것에만 국한해야 한다. 이것이 세 번째 준칙이다.
아이들이 무엇을 숨길 줄 모르는 나이에, 그들에게서 자연에서 직접 생겨난 욕망과 평판에서 비롯된 욕망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언어와 몸짓을 세심하게 연구해야 한다. 이것이 네 번째 준칙이다(P.90).
어린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듣는다(P.95).
아이들은 그들 나이에 맞는 문법을 가지고 있으며, 그 문법의 통사론은 우리 어른들의 것보다 더 보편적인 규칙들을 가지고 있다(P.96).
대화의 첫 번째 조건이 자기 말을 알아듣게 하는 것이다. 억양은 말의 영혼으로서 말에 감정과 진실을 부여한다. 자신의 말투에 억양을 넣는 대신 프랑스인은 곡조를 붙인다(P.99).
지나치게 서둘러서 말을 재촉받는 아이들은 제대로 발음하는 법을 배울시간도, 그들에게 시키는 말을 제대로 이해할 시간도 갖지 못한다. 반면 그들이 혼자 하는 대로 내버려 두면 아이들은 먼저 발음하기 가장 쉬운 음절들부터 연습하며 거기에 그들의 몸짓을 보면 이해가 되는 어떤 의미들을 차츰차츰 덧붙인다(P.101).
어린아이의 초기 발달은 거의 한꺼번에 이루어진다. 어린아이는 말하는 법과 먹는 법, 걷는 법을 거의 같은 시기에 배운다. 정확히 말해서 이것이 생의 첫 단계이다. 지금까지는 어머니 품에 있늘 때보다 더 나은 것도 없다. 감정도 관념도 없다. 겨우 감각이 있을 뿐이다. 자신의 존재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P.103).
제2권: 생의 제2기
유아 infans와 소년 puer은 동의어가 아니다 전자는 후자에 포함되어, '말을 할 수 없는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런 연유로 발레리우스 막시무스의 저서에는 '말 못하는 소년 puerum infantem'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어린나이는 말을 하기 시작하면 덜 우는데 이런 발달은 자연스럽다(P.107).
용기라는 최초의 교훈을 얻고 약간의 고통을 두려움없이 견딤으로써 단계로 더 큰 고통을 견디는 법을 배우는 시기가 바로 이 나이이다(P.108).
방 안의 탁한 공기 속에 오래 머물러 있게 두지 말고 매일매일 풀밭으로 아이를 데리고 나가라. 그 곳에서 그가 달리고 뛰어놀 수 있게 해 주고 하루에 백 번이라도 넘어지게 그냥 두는 것이 좋다. 아이는 훨씬 일찍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면 아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할 필요가 적어진다. 힘과 더불어 그 힌을 관리할 수 있게 하는 지식도 발전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한 개인으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것은 바로 이 두 번째 단계에서이다. 그 시기에 어린아이는 자의식을 갖게 된다. 이 단계에서 아이를 정신적 존재로 간주하기 시작한다(P.110).
사람들이여, 인간답게 되어라. 그것이 여러분의 첫 번째 의무이다. 어린 시절을 사랑하라. 또한 어린 시절의 놀이와 즐거움과 사랑스러운 본능을 마음껏 누리게 해 주라(P.112).
모든 욕망들은 결핍을 전제로 하며, 사람들이 느끼는 결핍은 모두 고통스럽다. 능력이 욕망과 대등한 감각적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는 능력적으로 행복한 존재일 것이다.
행복의 길은 능력에 비해 과도한 욕망을 줄이고 능력과 의지를 완전히 동등하게 만드는 데 있다(P.114).
모든 것을 최선을 다해서 만드는 자연은 처음에 인간을 바로 이런 상태로 만들었다. 우리에게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가능성의 한도를 넓혀 주고, 그 결과 욕망을 충족시키겠다는 기대로 욕망을 부추기며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상상력이다(P.115).
파보리누스는 큰 욕구들은 큰 부에서 생겨나며, 따라서 종종 부족한 것을 마련하는 최선의 방법은 자신이 소유한 것을 없애는 것이라고 말했다(P.117).
자연에 따라 살고 인내심을 가져라 그리고 의사들을 몰아내라.
인간의 관습에서 모든 것은 어리석고 모순될 뿐이다(P.118).
체념이라는 첫 번째 법칙은 자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법칙이 깨지면 이성에서 비롯된 다른 법칙이 만들어진다.
선경지명은 우리의 모든 불행의 지짜 원천이다(P.119).
오 인간이여! 당신의 존재를 당신 안으로 좁혀라, 그러면 당신은 더 이상 불행하지 않을 것이다. 하늘이 원하는 대로, 또 하늘이 원하는 범위 내에서 당신에 존재를 보존하는 데 쓰라고 주셨다(P.121).
진정 자유로운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만 원하고, 자기 마음에 드는 일을 한다. 이것이 나의 기본적인 준칙이다. 단지 그것을 어린 시절에 어떻게 적용할지가 문제인데, 교육의 모든 준칙들은 거기서 생겨날 것이다(P.123).
사회는 인간이 자신의 힘에 대해 가졌던 권리를 빼앗음으로써 인간의 나약함과 더블어 욕망이 증대된 이유이며, 바로 이로부터 성년기에 비해 더 나약한 어린시절이 비롯되었다(P.123).
현명한 인간은 자기 자리에 머물러 있을 줄 안다.
편견과 인간의 제도가 우리의 타고난 성향을 변질시키기 전에는, 어른들의 행복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행복도 자신의 자유를 사용하는 데 있다. 만약 스스로 자급자족할 수만 있다면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행복하다(P.124).
의존 상태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사물에 대한 의존으로서 자연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에 대한 의존으로서 사회적인 것이다.
어린아이를 오로지 사물에 대한 의존 상태에만 머물러 있게 하라, 그러면 여러분은 자연의 교육이 진행되는 가운데 자연의 질서를 따르게 될것이다. 어린아이의 분별없는 의지에 대해서는 물리적 장애나 행동 자체에서 생겨나는 처벌만을 가하라. 그럴 때마다 아이가 상기할 수 있도록. 아이에게 나쁜 행동을 못하게 하지 말고 그렇게 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주되, 아이가 요구해서가 아니라 아이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 아이가 자신의 행동과 여러분의 행동에서 똑같이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게 하라. 아이가 그런 도움 없이 지낼 수 있고 자기 일을 자랑스럽게도 스스로 할 수 있게 될 때를 갈망하게 만들어야 한다(P.125).
아이가 반드시 필요해서 말로 요구하면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채고 즉시 요구하는 것을 해 주어야 한다.
어린아이에게 쓸데없는 인사치례를 가르치지 않도록 주의하라(P.127).
지나치게 엄격한 경우와 지나치게 관대한 경우가 있는데, 두 경우 모두 피해야 한다(P.128).
큰 행복을 깨닫기 위해서는 작은 고통을 겪어봐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다(P.129).
자기 능력이 미치는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향이다. 이런 의미에서 홉스의 원리는 어느 정도는 진실이다(P.130).
본래의 규칙으로 돌아가자. 자연은 어린아이들이 사랑과 도움을 받게 해 두었지, 복종하고 두려워하게 만들지 않았다(P.132).
자연이 준 자유를 어린 시절에 누리도록 내버려 두자. 그렇게 하는 것이 최소한 일시적이나마 노예상태에서 물들게 될 악덕으로부터 어린 시절을 보호하는 것이다(P.133).
복종한다와 명령한다는 아이들이 쓰는 낱말에서 추방될 것이며, 의무와 책임이라는 낱말은 더더욱 그럴 것이다. 반면 힘, 필연, 무능력, 제한이 아이들의 낱말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어린아이의 머릿속에 박혀 버린 최초의 그릇된 관념은 아이에게서 오류와 악덕의 씨앗이 된다.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첫걸음이다.
아이들과 함께 이치를 따지는 것이 로크의 중요한 준칙이 있는데, 이 준칙은 오늘날 널리 유행하고 있다(P.134).
다른 모든 능력들을 혼합한 것에 불과한 이성은 가장 어렵게 또 가장 늦게 발달하는 능력이다. 훌륭한 교육의 걸작은 이성적인 인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P.135).
선악을 분별하고, 인간의 의무들의 근거를 깨달은 것은 어링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연은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기 전에는 어린이로 있기를 원한다. 어린아이는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자기 나름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 이성은 힘을 억제하는 것인데, 어린아이에게는 그러한 억제가 필요하지 않다(P.136).
아이들이 깨달지도 못할 의무를 강요함으로써 여러분의 독재에 대해 아이들이 불만을 품게 만든다(P.137).
법이 아무리 의무적이라 해도, 성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강제적인 구속이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느냐고 여러분은 말할 것이다. 어린아이에게는 힘을 사용하고 어른에게는 이성을 사용하라. 자연의 질서가 그러하다. 현자는 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여러분의 제자를 제 나이에 맞게 대하도록하라. 그는 지혜가 무엇인지 머리로 알기 전에, 지혜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을 실천하게 될 것이다. 결코 제자에게 명령하지 말라. 그를 제어할 수 있는 규제는 권위가 아니라 힘이어야 한다(P.138).
그 유일한 수단은 잘 규제된 자유이다.
아이는 제힘을 통해서만 교훈을 얻어야 한다. 어떤 종류의 처벌도 가하지 말라(P.140).
자연의 최초의 활동은 언제나 올바르다는 것을 명명백백한 준칙으로 삼도록 하자.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유일한 정념은 자기애 혹은 넓은 의미의 이기심이다. 이 이기심은 선하고 유용한 것이다. 이기심을 이끌어 갈 안내자인 이성이 생겨날 때까지 오로지 자연이 요구하는 것만 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아이는 선한 일만 하게 될 것이다(P.141).
교육 전체에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중요하며 가장 유용한 규칙은 시간을 벌려고 하지 말고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기간은 태어났을 때부터 열두 살이 될 때까지이다. 이 기간은 오류와 악덕이 싹트는 시기로써, 그것들을 근절할 수 있는 수단도 아직 없다.
최초의 교육은 전적으로 소극적이어야 한다. 그것은 미덕이나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악덕으로부터 마음을, 오류로부터 정신을 보호하는 것이다(P.143).
관습과 정반대되는 방법을 취하라. 그러면 여러분은 거의 언제나 제대로 하게 될 것이다. 좀 더 잘 행동하고 이치에 맞게 행동하라. 감정을 평가하는 판단력이 생기기 전에 갖게 되는 모든 감정을 경계해야 한다. 이성으로 선을 이해할 수 있는 때만 선은 선이 되기 때문이다(P.144).
각각의 정신은 고유한 형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 형식에 맞는 지도를 받을 필요가 있다(P.145).
감히 한 인간을 키워 내려는 시도를 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는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본보기를 자기 안에서 찾아내어야만 한다(P.146).
여러분이 주어야 할 것은 여러분의 시간, 정성, 애정, 그리고 여러분 자신이다. 아이들에게 의무를 이행하게 하고 아버지에게 관용을 베풀게 하라. 정의롭고 인간적이고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비로운 행동은 돈보다도 더 많은 고통을 덜어 준다(P.147).
시골에서 교사는 아이에게 보여 주고 싶은 것들을 훨씬 더 뜻대로 결정할 것이다(P.148).
여러분의 논리적 추론이 아이의 머릿속에서 이상한 형태를 갖게 된 데 놀랄 것이다.
열정적인 교사들이여, 단순해지고 신중해지라 그리고 자제하라(P.149).
격렬한 정념은 그것을 목격한 아이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P.150).
아이의 스승이 되려면 자기 자신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은 아무리 반복해도 충분치 못할 것이다(P.151).
우리의 자연적인 모든 움직임들은 우선 자기 보존과 행복에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가 느끼는 최초의 정의감은 우리에게 의무인 정의가 아니라 우리에게 권리인 정의에서 비롯된다(P.152).
아이에게 심어 주어야 할 최초의 관념은 자유의 관념이아니라 소유의 관념이다(P.153).
그 나이 때는 창조하고 모방하고 생산하고 싶어하며, 또 힘과 활동이 드러나는 표식들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나는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은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아이의 취미를 공유하며, 아이의 기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 함께 일을 한다(P.154).
우리는 도덕의 세계로 들어섰다. 그리고 여기서 악을 향하는 문이 열린다. 계약, 의무와 함께 속임수와 거짓이 생겨난다(P.159).
거짓말에는 주 종류가 있다. 과거와 관련된 사실상의 거짓말과 미래와 관련된 당위적인 거짓말이 그것이다(P.160).
어린아이의 거짓말은 모두 교사 탓이 된다(P.162).
만약 한 번이라도 약속을 어긴다면 그 거짓말로 인해 그가 손해을 입게 만들 것이다(P.163).
아이가 약속을 충실하게 지키기를 바란다면 약속을 신중하게 요구하라(P.164).
로크는 아이들이 경험을 통해 가장 인심이 후한 사람이 언제나 가장 많은 것을 나누어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하라고 말했다(P.165). 그리고 이런 식으로 아이들이 관대한 행동을 하는 습관을 갖게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손의 습관보다 마음의 습관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선생들이여, 겉치례를 버리고 덕을 갖춘 선량한 인간이 되시오. 당신들의 모범적인 언행이 제자들의 기억 속에 새겨져 그들의 영혼에 스며들기를 기다리시오(P.166).
아직 아무것도 마음으로 느끼지 못하는 나이에는, 아이가 습관으로 가지면 좋은 행위를 모방할 수 있게 하는 일이 정말로 필요하다. 아이가 분별력을 가지고 선을 사랑하여 그런 행동을 스스로 할 수 있는 때까지는 말이다. 인간은 모방을 잘하며 동물마저도 그러하다(P.167).
여러분이 행하는 교육의 모든 규칙들이 특히 미덕이나 풍습과 관련하여 이처럼 모두 뒤집혀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어린아이에게 접합하고 모든 연령의 사람들에게 가장 유일한 도덕적 교훈은 누구에게도 악을 행하지 말라는 것이다. 가장 숭고한 미덕은 소극적이다. 이 교훈을 두고 논증하지 말고 실천하도록 노력하라(P.168).
세상에서 격리되어 따로 행해지는 교육은 더 바람직한 것이다(P.169).
앙리4세는 거짓말을 그토록 많이 하다보면 결국 진실을 말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P.170).
아이들을 제 나이에 맞게 다루도록 하라(P.171).
왜냐하면 아직 진정한 관념을 갖지 못한 나이에, 재능을 가진 사람과 갖지못한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라고는, 기껏해야 후자가 잘못된 관념만받아들이는 반면 전자는 틀린 관념들밖에 발견하지 못해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재능을 가진 사람은 우연하게 그의 이해력이 미치는 범위에서 어떤 관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P.172).
어린아이를 존중하라. 그리고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성급하게 그를 판단하지 말라. 특별한 아이라면 그가 오랫동안 자기를 보여 주고 증명하고 확인하게 한 연후에 그에게 맞는 특별한 방법을 채택하라(P.173).
<국가>에서 플라톤은 축제와 놀이, 노래, 오락을 통해서만 아이들을 교육시킨다. 어린 시절은 이성이 잠자고 있을 때라고 생각하라(P.174).
아이는 낱말만 받아들이고 관념은 반사시킨다. 철들 나이가 되기 전에 아이는 관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미지만 받아들인다. 사람은 뭔가를 상상할 때 단지 계속 보기만 한다. 반면에 뭔가를 이해할 때는 비교한다. 우리의 감각은 순전히 수동적인 데 반해, 지각이나 관념은 모두 판단을 하는 능동적인 원리에서 생겨난다.
나는 아이들은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진정한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겠다. 그들은 소리나 형상, 감각은 기억하지만 관념을 기억하는 일은 드물고 관념들의 관계를 기억하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다. 아이들이 가진 모든 지식은 감각 속에 있고 어떤 것도 이해력에까지 으르지는 못한다(P.175).
나는 12세 내지 15세가 될 때까지, 신동을 제시하면, 어떤 아이도 두 가지 언어를 제대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어는 기호가 바뀌면 그것에 나타내는 관념도 바뀐다. 머리는 언어를 토대로 만들어지며, 사고는 고유 언어의 색깔을 띤다. 이성만 공통된 것이고, 각 언어의 정신에는 저마다 특별한 형식이 있다. 이 차이가 부분적으로 민족성의 원인 혹은 결과가 될 수 있을 것이다(P.177).
아이들에게 원하는 만큼 동의어들을 가르쳐도 여러분은 낱말을 바꾼 것이지 말을 바꾸지는 않은 것이다. 아이들은 결코 하나의 언어밖에 알지 못할 것이다(P.178).
아이가 가진 이 최초의 능력을 키우는 진짜 기술은 대상들의 선택에 있다. 바로 이런 기술을 통해 청년기술에는 그의 교육에 소용되고, 일생에 걸쳐서는 그의 처신에 유용할 지식의 창고를 그에게 만들어 주도록 애써야 한다. 이 방법은 올바르고 건장하며 육체와 이해력이 건전한 인간, 어려서는 칭찬을 받지 못하더라도 성인이 되어서는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인간을 만들어 낸다.
아이들에게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말해야 한다(P.185).
라퐁텐의 우화 "까마귀와 여우"가 가르치는 도덕은 어린아이에게는 가장 저열한 아첨의 교훈이다. 두 번째 것이 가르치는 도덕은 몰인정의 교훈이다. 세 번째 것이 가르치는 도덕은 불의이고, 네 번째 것이 가르치는 도덕은 빈정거림, 다섯 번째 것은 제멋대로 굴기이다(P.193).
사람들은 읽기를 배우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는 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긴다. 그리하여 글자 맞추기 상자나 카드를 고안한다(P.195).
로크는 아이가 주사위를 가지고 읽는 법을 배우기를 원한다. 이 모든 것보다 더 확실한 수단은 배우려는 욕망이다. 아이가 이 욕망을 갖게 만든다.
눈 앞의 이득, 바로 이것이 확실하게 지속적으로 성공으로 이끄는 유일한 그리고 위대한 원동력이다.
중요한 준칙은 서둘러 얻으려고 하지 않은 것은 대개 매우 확실하고도 빨리 얻게 된다는 사실이다(P.196).
루소는 에밀이 그 지식을 유용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대가로 지불하고 그 지식을 사는 것보다, 차라리 읽을 줄 모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아직 그가 좋아할 수 없는 공부를 멀리하지 않도록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이다.
진실로써 오류를 예방해 주지못하면 여러분의 제자는 거짓말을 배우게 될 것이다. 어린 시절에 사고하는 습관이 들지 않으면 남은 생애 동안 사고 능력을 잃게 된다(P.197).
그를 자신에게 붙들어 두고 직접 그에게 와닿는 것이 주의를 기울이도록 애를 쓴다면, 여러분은 그가 지각하고 기억하고 심지어 추론까지 할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자연의 질서이다. 감각적인 존재는 활동을 함으로써 자기 힘에 맞는 분별력을 획득한다. 여러분이 제자의 지성을 길러 줄 생각이라면 먼저 지성이 다스려야 할 힘을 길러 주라. 그를 현명하고 합리적인 사람으로 만들려면, 먼저 그를 튼튼하고 건강하게 만든라(P.198).
농민의 경우 끊임없이 갖은 일만 반복하면서 거의 기계적으로 살아온 그에게서는 습관과 복종이 이성을 대신한다.
미개인의 경우 신체가 단련되면 될수록 그의 정신도 더 일깨워진다. 힘과 이성이 동시에 성장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통해 확장되는 것이다(P.199).
여러분이 자신의 보존과 안위를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아이는 여러분의 판단력에 의지한다(P.200).
자연의 제자로 말 할 것 같으면, 일찍부터 되도록 자급자족하도록 훈련을 받아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 의존하려는 습관이 있다. 그는 자신과 직접 관련된 모든 것에 있어서 자신이 판단하고 예측하고 추론한다. 그는 일찍부터 풍부한 경험을 한다. 또한 사람이 아니라 자연에서 교훈을 얻는다. 강한 신체와 강한 정신, 현자의 이성과 장사의 기운을 언젠가 갖게 되는 방법이다.
성공에 적합한 유일한 방법이다. 먼저 개구쟁이로 만들지 않고는 결코 현자를 만드는 데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P.201). 스파르타인들이 그렇게 교육했다. 언제나 승리할 수 있게 교육받은 그들은 어떤 전쟁에서든 적을 제압했고, 수다스런 아테네인들은 그들의 공격만큼 그들의 말도 두려워했다.
매 순간 아이와 계약을 맺어야 한다. 어린아이는 대체로 교사가 아이의 마음을 읽는 것보다 교사의 머릿속을 더 잘 읽어 낸다(P.202).
아이가 늘 자신이 선생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그러면서 언제나 여러분이 선생이어야 한다(P.203).
우리가 예방하고 있는 이 부정적 측면은 매우 중요하다. 아이들의 첫 번째 관심사들 중의 하나는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자신을 지도하는 사람들의 약점을 찾아내는 일이다. 그것은 자신을 성가시게 하는 권위를 피하려는 욕구에서 나온다(P.204).
열여덟 살이 되면 사람들은 자연과학에서 지렛대가 무엇인지를 배운다.
인간의 최초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란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과 비교하여 자신의 능력을 측정하고 자신이 지각하는 대상 하나하나에서 자신과 관련이 있는 감각적 특징을 모두 시험해 보는 것이므로(P.213), 인간의 첫 공부는 자신을 보존하는 일과 관련된 일종의 실험 물리학이다. 인간의 최초의 이성은 감각적 이성이다. 바로 이것이 지적인 이성의 토대가 된다.
생각하는 법을 배우려면 지성의 도구가 되는 우리의 사지, 감각, 기관을 단련시켜야 한다. 인간의 진정한 이성은 훌륭한 체질이야말로 정신의 작용을 쉽고 확실하게 만들어 준다(P.214).
몽테뉴는 어린아이의 교육에 대해 언급하면서, 아이의 정신을 강인하게 만들려면 그의 근육을 단련하게 해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롤랭, 플뢰리 그리고 크루사즈는 아이들의 신체를 많이 단련시켜야 한다고 한다(P.216).
너무 꼭 맞게 몸에 달라붙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 아이들의 신체와 정신의 결함은 거의 모두 동일한 원인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입고 있는 옷을 빼면 아무것도 아니며 너희들의 가치는 전적으로 너희가 입고 있는 옷에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P.217).
그 옷의 화려함 앞에서 자유와 즐거움은 사라지게 할 것이다. 어린아이가 아직 우리의 편견의 노예가 되지 않은 시기에 아이의 첫 번째 욕망은 편안하고 자유로운 것이다(P.218).
부지런한 사람들처럼 겨울에도 여름옷을 입으라는 것이다. 이는 기사작위를 받은 뉴턴이 일생 동안 지녔던 습관인데, 그는 여든 살까지 살았다(P.219).
아이들은 더위보다는 추위에 더 단련을 시켜야 할 것이다(P.220).
건강에 가장 좋은 습관은 분명 태양이 뜰 때 일어나고 해가 질 때 눕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자연의 법칙을 넘어서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P.222).
불편한 잠자리에서도 자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P.223).
이 수면제를 밤에는 사용하더라도 낮에는 삼가라(P.224).
스스로 깨는 법을 당장 터득해야 한다.
아이들이 지닌 활력과 모방하는 성향이면 충분하다. 특히 아이들의 타고난 쾌활함만 있으면 된다(P.225).
교육받은 사람과 민중을 구별하기 위해 행하는 배타적인 교육은 가장 보편적인 그래서 가장 유용한 교육보다 가장 돈이 많이 드는 교육을 선호한다.
우리는 무모하게 만드는 것은 허영심뿐이다(P.228).
어린아이는 어른의 힘도 이성도 지니고 있지 않다. 우리에게서 가장 먼저 형성되어 완성되는 능력은 감각이다.
판단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신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만 소용되는 순전히 자연적이고 기계적인 훈련에 있다. 힘만 단련시키지 말고 힘을 인도하는 모든 감각들을 훈련시켜라(P.229).
상상력을 일깨우는 것은 새로운 대상들뿐이다. 매일 보는 사물들에 대해서는 상상력이 아니라 기억력이 작용한다. 이것이 "정념은 습관에서 생겨나지 않는다"라는 명제의 근거이다. 왜냐하면 정념은 상상의 불꽃에 의해서만 불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P.234).
촉각은 모든 감각들 중에서 낯선 물체가 우리 몸에 미치는 인상을 가장 잘 알려 주기 때문에 가장 자주 사용되며, 자기 보존에 필수적인 인식을 우리에게 가장 즉각적으로 제공한다.
발음과 음성보다 규칙적인 조합을 잘 못할 것도 없는 음과 박자도 똑같이 말의 요소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P.241).
예기치 못한 사고에 대비해 항상 인간을 무장시키자. 에밀이 어느 계절이고 아침마다방이며 계단, 정원을 맨발로 뛰어다니게 하자. 신체발달을 돕는 온갖 걸음걸이법과 어떤 자세에서도 편안하고 굳건하게 있을 수 있는 법을 배우게 하겠다. 멀리 뛰는 법, 높이 뛰는 법, 나무에 기어오르고 담을 뛰어넘는 법도 알아야 한다. 언제나 몸의 균형을 잡을 수 있게 해야 한다(P.243).
시각은 모든 감각들 중에서도 정신의 판단력과 가장 불리될 수 없는 감각이므로, 보는 법을 배우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촉각과 시각 중에서,(P.250) 시각이 형태와 거리를 우리에게 충실히 알릴 수 있도록 그것을 길들이려면 오랫동안 시각과 촉각을 비교해 보아야 한다. 크기를 추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걸어보고 만져보고 수를 세어 보고 크기를 측정함으로써만 가능하다. 항상 손으로 측정하는 대신 오로지 눈으로만 측정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이 모든 일을 아이 대신 해 주어서는 안 되며, 그 자신이 직접 하게 해야 한다(P.252). 아이들은 대단히 모방을 잘해서 누구나 그림을 그려보려고 시도한다. 그림 그리는 기술을 통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좋은 신체습관과 통찰력 있는 감각을 내 제자도 얻을 수 있다면 좋다.
그는 보다 정확한 눈썰미와 더 확실한 손, 그리고 동물, 식물, 자연의 대상들 사이의 크기와 형태의 진정한 관계들에 대한 인식, 원근법의 작용에 대한 보다 예민한 경험을 틀림없이 획득하게 될 것이다. 내가 의도하는 바는 내 제자가 대상을 모사할 줄 아는 것보다 인식할 줄 아는 것이다(P.252).
명제의 여건이 주어지면 그에 대한 증명을 생각해야 한다. 다시 말해 그것이 이미 알려진 어떤 명제의 귀결이 되어야 하는지 찾아내고, 바로 그 명제에서 끌어낼 수 있는 모든 귀결들 가운데 문제의 귀결을 정확하게 골라내야 한다(P.255).
반드시 아이들에게 이러저러한 것을 가르쳐야 할 때는 어떤 방식을 취하든 강제나 불평 또는 지겨움 없이 성공하기는 언제나 불가능하다(P.261).
인간은 세 종류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그것은 말하는 혹은 분절된 목소리, 노래하는 혹은 선율을 내는 목소리, 정념의 언어로서 노래와 말에 생기를 불어넣는 감동적인 혹은 억양이 있는 목소리다(P.262). 완전한 음악이란 이 세 가지 목소리를 가장 잘 혼합한 것이다.
그에게 단조롭고 분명하게 말하는 법과 또박또박 말하는 법을, 그리고 정확하게 꾸밈없이 말하고 문법적인 억양과 운율을 알고 따르는 법을, 언제나 잘 들리도록 충분히 소리를 내지만 결코 필요 이상 소리 내지 않는 법을 가르치도록 하라. 노래를 할 때도 목소리를 정확하고 고르게 또 탄력있게 잘 울리게 하라. 귀도 박자와 화음을 민감하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라. 모방적이고 연주적인 음악은 그 나이에는 맞지 않다. 심지어 나는 가사를 붙여서 노래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P.263).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 대신에 들을 수 있으며, 노래는 눙보다 귀에 훨씬 더 충실하게 표현된다. 게다가 음악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음악을 표현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작곡도 해야 하며, 이 둘은 함께 배워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결코 음악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여러분의 어린음악가에게 먼저 아주 규칙적이고 박자가 잘 맞는 악절을 만드는 훈련부터 시키도록 하라. 다음에는 그 악절들을 아주 단순하게 전조시켜 서로 연결시키는 훈련을, 마지막으로 정확한 구두점들로 그 악절들 사이에 여러 관계를 나타내는 훈련을 시켜라. 이는 종지와 휴지를 잘 선택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목소리와 귀가 단련되려면 결코 클라비생 반주 없이 노래를 불러서는 안 된다(P.264).
음들을 더 잘 표시하려면 발음할 때 그 음들을 또박또박 분절시킨다. 이로부터 몇몇 음절들을 갖고 계명으로 노래하는 관습이 생겨났다. 문자는 건반을 가리키고 음절은 음계의 음정을 가리킨다(P.265).
우리의 신체는 계속해서 소모되므로 되살릴 필요가 있다(P.266).
가장 자연스런 취향을 또한 가장 단순한 것이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쉽게 변화하는 취향이기 때문이다(P.267).
감각의 작용은 전적으로 육체적이고 물질적이다(P.269).
일반적으로 고기를 많이 먹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잔인하고 난폭한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P.273).
후각과 미각의 관계는 시각과촉각의 관계와 같다(P.279).
후각은 상상력의 감각이다. 후각은 신경에 더 강한 인상을 줌으로써 뇌를 많이 자극한다(P.280).
그것은 뇌 속에만 있고 순전히 내적인 그 감각은 지각 혹은 관념이라고 불린다. 정신을 정확하게 만드는 것은 관념의 명백성, 명료성이다. 인간적인 이성이라고 불리는 것은 바로 이 관념들을 비교하는 기술이다. 따라서 내가 감각적 이성 혹은 유치한 이성이라 부르는 것은 여러 감각들을 종합해서 단순한 관념을 만드는 것이다. 또한 내가 지적인 이성 혹은 인간적인 이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여러 단순한 관념들을 종합해서 복잡한 관념을 형성시키는 것이다(P.282).
현실의 대상을 치장하는 것은 공상이다(P.283).
자연의 쇠퇴라는 관념이 우리의 모든 즐거움을 지워 버린다(P.284).
그는 아무것도 암기는 못 하지만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다른 아이보다 사람이 쓴 책을 잘 읽지는 못하지만, 자연이 쓴 책을 더 잘 읽는다. 그의 정신은 그의 혀가 아니라 머리에 있다. 그는 기억력보다 판단력을 갖고 있다(P.287).
그에게 자유와 소유에 대해서 또 계약에 대해 말을 해 보라. 그에게 의무와 복종에 대해서 말해 보라(P.288).
그의 수단은 언제나 그의 의도에 적합할 것이며, 성공하리라는 확신없이 행동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의 눈은 주의깊고 정착할 것이며, 보이는 모든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 생각없이 질문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그것을 관찰하고, 알고 싶은 것은 물어보기 전에 그것을 알아내려고 애쓸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그는 필연성의 멍에를 펴 왔고 이제는 거기에 아주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그는 언제라도 모든 준비가 다 되어 있다.
놀이가 곧 일이다. 그가 하는 모든 일에서 자신을 즐겁게 해 주는 재미와 자기 마음에 맞는 자유를 구가하면서, 그는 자신의 재응과 지식의 엄격을 동시에 보여 준다(P.290).
그는 자기 또래들을 이끌고 지도하게끔 만들어져 있다. 그에게서는 재능과 경험이 권리와 권위를 대신한다. 그는 어디서나 일등을 차지해 모든 분야에서 다른 아이들의 우두머리가 될 것이다.
그는 어린아이로서 성숙기에 이르렀고 어린아이로서 삶을 살아왔다(P.291).
이러한 초기 교육의 매우 불리한 점은 그것이 통찰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뚜렷이 강제된다. 교사는 제자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생각한다. 첫눈에 아이의 성격을 이루는 특성들을 간파할 줄 아는 관찰자가 없다(P.292).
아이들을 시험하는 이런 방법은 헛되고 현학적이다. 재빨리 포착한 한마디 말이 장광설보다 아이들의 감각과 재치를 더 잘 보여주는 수가 종종 있다. 아린아이의 판단력을 평가하려면 그 자신이 더 나은 판단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P.293).
제 3권(청년기)
인간의 나약함은 힘과 욕망 사이의 불균형에서 비롯된다. 우리를 나약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의 정념이다. 어린 시절은 아직 성적으로 성숙한 사춘기는 아니지만 청년기에 가까워져 있기 때문이다
12세 내지 13세가 되면 어린아이의 힘은 욕구보다 훨씬 더 빨리 발달한다(P.297). 그는 자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필요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 이때가 일생 중 그런 상태에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기이다.
남성의 힘은 성년이 되어야만 나타난다고, 적적한 혈관들 속에서 형성되어 온몸으로 퍼지는 생명의 정기 만이 근육에 단단함과 활력과 원기와 원동력을 줄 수 있다고, 진정한 힘은 거기서 생긴다고 말할 것이다. 이는 서재의 철학이다(P.298). 지금 문제는 단지 육체적인 힘만이 아니라, 특히 그 힘을 보완하고 인도하는 정신의 힘과 역량이다.
개인이 자신이 원하는 이상을 할 수 있는 이 시기는, 그가 절대적으로 최대한의 힘을 가진 시기는 아니라 하더라도, 앞서 말한 것처럼 상대적으로 최대한의 힘을 갖는 시기이다. 그것은 아주 짧다.
자신이 얻은 것을 진짜 제 것으로 삼기 위해 그것을 놓아두는 곳은 바로 자신의 팔, 머릿속, 자기 자신이다. 따라서 이 시기가 바로 일과 학습과 공부를 해야 할 시기이다. 이 선택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며, 자연 자체가 이 시기를 지시한다는 것을 명심하라(P.299).
인간의 지늘에는 한계가 있다. 각각의 거짓 명제의 모순 명제가 진리인 이상, 진리의 수는 오류의 수만큼 무진장하다. 그러므로 사물을 배우는 데에 적합한 시기를 선택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르쳐야 할 사물들도 선택을 해야 한다(P.300).
아이가 유용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게만 되면, 그를 이론적인 연구로 이끌기 위해 많은 배려와 기술을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어떻게 단계적으로 선과 악을 구분하는 도덕적인 개념들에 접근하는지 보라.
동일한 본능이 인간의 여러 다양한 능력들을 일깨운다. 성장하려 노력하는 신체의 활동에 배우려고 노력하는 정신의 활동이 이어진다(P.301). 제대로 인도되어 온 이 호기심은 바야흐로 우리가 도달한 이 시기의 원동력이다(P.301). 가깝든 멀든 그의 흥미를 끌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지식욕, 인간의 타고난 호기심에서 생겨난 다른 지식욕도 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행복에 이바지할 새로운 수단을 구하게 된다. 이것이 호기심의 최초 원리로써 그것은 인간의 마음에서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호기심의 개발은 오로지 우리의 정념과 지식에 비례해서 이루워진다(P.302).
인류의 섬은 지구이다. 우리 눈에 가장 강한 인상을 주는 대상은 태양이다. 능력과 힘을 가진 상태에서는 자기 존재를 확장시키려는 욕망이 우리를 밖으로 끌어내며 가능한 한 멀리 자신을 힘껏 발산하게 한다. 그러나 지성의 세계는 아직 우리에게 미지의 것인 만큼, 우리의 사유는 우리 눈보다 멀리 나아가지 못하며 우리의 이해력은 그것이 가능하는 공간이 확장되는 만큼만 확장된다.
우리의 감각을 관념으로 변형시키자. 우리가 지적인 대상에 이르게 되는 것은 감각적인 대상을 통해서이다. 정신의 첫 번째 작용에 있어서 감각들이 언제나 그 안내자가 되게 하라.
여러분의 제자가 자연현상에 주위를 기울이게 만들면 곧 그는 호기심을 갖게 될 것이다. 아이의 이해력에 미치는 범위 내에서 문제를 내고, 그가 그 문제들을 스스로 풀게 내버려 두라.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창안하게 만들라(P.303).
이 모든 감각들로부터 동시에 생겨나는 복합적인 인상을 느끼기 위해서는 , 아이가 획득하지 못한 경험이 필요하고 느껴 보지 못한 감정이 필요하다.
아이에게 그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묘사도 웅변도 비유도 시도 안된다(P.305).
그가 틀리더라도 하는 대로 그냔 내버려 두고 잘못을 고쳐 주지 말고, 그가 스스로 잘못을 알고 고칠 수 있을 때까지 말없이 기다려라.
아이가 자기 나라의 지형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배우는 방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교육 방침은 어린아이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의 머릿속에 옳고 명백한 관념들만 들어가게 하는 것임을 기억하라. 그의 머릿속에 진리를 넣어 주는 경우는 오로지 그가 진리 대신 배울지도 모를 오류로부터 그를 지켜 주어야 할 때뿐이다. 이성과 판단력은 느리게 오고 편견은 무리 지어 한꺼번에 달려온다. 바로 이러한 편견에서 그를 지켜 주어야 한다(P.310).
아이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문을 사랑하는 취향을 갖게하고 그 취향이 더 개발되었을 때 학문을 배우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모든 올바른 교육의 기본 원칙임이 틀림없다(P.311).
보편적인 진리들울 연결하는 사슬이 있는데, 이를 통해 모든 학문들은 공통된 원리에 기반을 두고 순차적으로 발달한다. 이 사슬이 철학자들의 방법론이다. 디부분의 사람들은 지속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그 대상들 모두가 요구하는 주의력을 키워 가는 이 순서를 따르는데, 특히 아이들에게 이런 순서가 필요하다(P.312).
이 가르침 하나에도 얼마나 많은 교육들이 들어 있는가 ! 최초의 허영심이 발현되면서 얼마나 많은 모욕적인 결과가 생겨나는가!(P.318)
공기는 하나의 물체, 일종의 유체이다. 공기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지만 감지할 수는 있다. 공기는 탄성체이다. 공기는 무게가 있는 물체이다(P.319). 공기를 다른 유체들과 균형 상태에 두어 보면 공기의 무게를 특정할 수 있다. 여기서 기압계, 연통관, 공기총, 배기펌프가 생겨남다. 역학과 유체역학의 모든 법칙들 또한 이처럼 조잡한 실험들에 의해 발견된다. 과학적인 분위기가 과학을 죽인다. 이 모든 기계들은 어린아이에게 공포심을 일으키든지, 그렇지 않으면 아이가 그 효과에 기울여야 할 관심을 기계의 형태들이 분산시키고 빼앗아 버린다(P.320).
부알로는 라신에게 시를 어렵게 짓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을 자랑하곤 했다. 학문 공부를 단축할 수 있는 많은 놀라운 방법을 가운데서, 학문을 힘들여서 배우는 방법을 누군가 우리에게 제시해 주는 것이 매우 필요할 것 같다.
더디고 힘든 공부의 가장 뚜렷한 이점은 이론 공부를 하면서도 몸의 활동성과 사지의 유연함을 유지시켜서 지속적으로 노동에, 인간에게 유용한 일에 손을 사용하도록 훈련시킨다는 점이다(P.321).
기구들 노릇을 해주던 재능을 그 기구들을 만드는 데에 쓴다면, 또 기구들 없이 지내기 위해 필요했던 통찰력을 그것들을 만드는 데에 사용한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잃지 않고 이득을 얻을 것이며, 자연에 기술을 보태어 재능을 무디게 하는 일 없이 더 창이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순수 이론적인 지식은 아이에게 심지어 청년기에 가까워지고 있는 아이들에게도 결코 적홥하지 않다는 말은 이미 했다(P.322).
자연의 법칙에 대한 공부에서는 항상 가장 평범하고 가장 뚜렷한 현상들부터 시작하라. 그리고 여러분의 제자가 이 현상들을 이치로 보지 않고 사실로 보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라(P.323).
아이의 지능이 발달함에 따라, 다른 중요한 고려 사항들 때문에 우리는 더욱 엄선하여 아이가 할 일들을 정해 주어야 한다(P.323).
언제나 반복적인 필연의 법칙은 인간에게 더 불쾌한 고통을 피하려면 마음에 들지 않는 일도 해야 한다고 일찍부터 가르친다. 이것이 앞날을 예측하는 능력의 용도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자연인의 행복은 그의 생활만큼 단순하다. 건강, 자유, 필수품이 행복을 구성한다.
아이들이 욕구를 느끼기 전에 그것을 예측할때는 그들의 지능이 이미 상당히 발달하여 시간의 가치를 알기 시작할 때이다. 그들 나이에 그들의 이해력이 미치는 범위에서 유용성을 느끼는 대상들에게 시간을 사용하는 습관을 들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P.324).
우리의 진정한 스승은 경험과 느낌이며, 인간은 오로지 자신이 처해 있는 관계 속에서만 인간에게 적합한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어른의 상태에 대해 가질 수 있는 모든 관념들이 그에게는 교육의 기회가 된다(P.326).
소크라테스는 어떤 질문을 자기가 왜 하는지 스스로 납득하기 전에는 어떤 질문도 하지 않는다(P.327).
아이가 배워야 할 것을 원하고 구하고 발견하는 것은 아이가 해야 할 것이다. 여러분이 할 일은 그것을 아이의 힘이 미치는 곳에 두어 교묘하게 그 욕구가 생겨나게 하고, 그것을 만족시키는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다(P.328).
헤르메스는 자신이 발명한 것들을 대홍수로부터 안전하게 지키려고 학문의 기본 원리들을 돌기둥에 새겼다고 한다(P.337).
만약 인간의 자연스런 모든 욕구가 아이의 정신이 감지할 수 있게 드러나고, 그 욕구들을 채울 수단들 또한 마찬가지로 쉽게 잇달아 발달되는 그런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이런 상태를 생생하고도 순수하게 묘사해 보임으로써 가장 먼저 아이의 상상력을 훈련시켜야 한다.
우리에게 반드시 책이 필요한 이상, 자연 교육에 관해 가장 만족할 만한 개론을 제공한다고 생각이 드는 책이 한 권 있다. 우리가 성장하는 동안 이 책은 우리의 판단력을 시행하는 시금석 역할을 할 것이다(P.338).
다른 인간의 도움도, 온갖 기술의 도구도 없이, 섬에서 혼자 살면서도 자신의 생존과 자기보존에 대비하면서 심지어 어느정도 안락함마저 누리는 로빈은 크루소야말로 모든 연령의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대상이며, 수천 가지 방법으로 아이들을 유쾌하개 해 줄 수 있는 소재이다(P.339). 그것은 필요와 자유 외에 다른 행복을 알지 못하는 이 행복한 나이에 가질 수 있는 있는 공상적인 계획이다(P.340).
자연적인 기술은 혼자 있는 사람이나 미개인도 수행 할 수 있지만, 산업 기술은 사회에서만 생겨날 수 있으며 또 사회를 필요로 하게 한다. 육체적인 욕구만 아는 동안 인간은 각자 자급자족한다(P.340).
여러 기술에는 그것들의 실제적인 유용성에 반비례하여 주어지는 공적인 평가가 있다. 공적인 평가는 그것의 무용성 자체에 비례하여 내려지기도 하는데. 이는 당연하다. 가장 유용한 기술은 돈을 가장 적게 버는 기술이다(P.341).
인간 사회에서 인간의 가장 중요한 도구는 인간이고, 가장 현명한 자는 이 도구를 잘 사용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사회 질서를 확고부동하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자신을 맞춘다.
아이에게 우리의 견해를 가르치기 전에 먼저 그것을 평가하는 법부터 가르쳐라(P.343).
내 결론은 젊은이를 분별 있는 사람으로 만들려면 우리의 판단을 강요하는 대신 그의 판단력을 잘 키워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P.344).
그는 자연의 모든 물체들과 인간의 모든 노동을 자신의 유용성, 안전, 자기 보존, 자신의 안락함과 그것들이 맺는 감각적 관계를 통해 평가해야 한다. 이 행복한 아이는 시간의 노예가 되지 않은 시간을 즐긴다(P.345).
기술과 솜씨를 평가하는 진짜 기준들이다. 나머지는 모두 임의적이어서 사람들의 견해에 달려 있다.
모든 기술들 가운데 가장 존경할 만한 첫 번째 기술은 농업이다. 나는 대장간 일을 두 번째로, 목수 일을 세 번째로 두겠다. 기술이란 세분되어 서로 도구를 무한히 늘려 감으로써만 완성된다는 사실을 알면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P.346)
우리 제자의 신체 단련과 손재주를 보는 데서 그치지말고 그의 어린애다운 호기심을 어떻게 지도하는지 살펴보라. 감각과 창의력과 예측력을 살펴보고 우리가 그에게 어떤 머리를 만들어 줄 건지 생각해 보라(P.347).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그 일에 쓸모가 있는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에 소용되는지 제대로 이해함으로써 그 일을 즐겨 할 수 있게끔 일에 몰두하게 해야 한다.
기술 사회는 솜씨의 교환으로, 상업 사회는 물건의 교환으로, 금융 사회는 증서와 돈의 교환으로 이루워진다.
모든 사회는 사람들과 관련해서건 사물들과 관련해서건 열풍의 계약에서 나온 평등을 제1법칙으로 삼는다(P.348).
자연의 평등과는 매우 다른 인간들의 계약적 평등은 실정법, 즉 정부의 법률을 필수적인 것으로 만든다. 아이의 정치적 지식은 명료하고 제한적이어야 한다.
사물들 사이의 계약적인 행동은 돈을 발명하게 만들었다. 이런 의미에서 돈은 사회의 진정한 결속체이다(P.349).
선생의 기술이란 제자가 무엇과도 관련없는 하찮은 것들만 관찰하게 내버려 두지 않고, 시민 사회의 좋고 나쁜 질서를 제대로 판단하기위해 언젠가 반드시 알아야 할 중대한 관계들에 그를 끊임없이 접근시켜 나가는 것이다(P.350).
우리가 획득하고자 하는 것은 지식보다 판단력이다(P.355).
자연의 첫 번째 법칙은 자기를 보존하려는 배려이기 때문이다(P.357).
자연의 욕구가 어디서나 동일한 만큼, 그것을 충족시키는 수단들도 어디서나 똑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교육을 인간이 아닌 것에 맞추지 말고 인간에게 맞추도록 하라(P.358).
노동을 한다는 것은 사회적 인간에게는 필수적인 의무이다.
모든 사회적 신분을 가운데 운명과 사람들로부터 가장 독립적인 것은 장인의 신분이라는 것이다.장인은 자신의 노동에만 의존한다. 따라서 그는 자유롭다. 농업은 인간에게서 으뜸가는 일이다. 그것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하고 가장 유용하며 따라서 가장 고귀한 직업이다(P.362).
문자는 죽이고 정신은 살린다. 필요 때문에 일하지 말고 명예 때문에 일을 하라.
직업, 참된 직업으로써 손이 머리보다 더 많이 일하는 순전히 기계적인 기술이다(P.363).
아이들을 관찰하는 기술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할 것이다(P.370).
남자에게 자신의 성性에 맞는 직업을 주고, 젊은이에게 그의 나이에 맞는 일을 주도록 하라(P.371).
항상 걸작을 만들게 하고 결코 거장으로 통하게 하지는 말라. 그의 직함이 아니라 그의 작업을 통해 자신이 장인임을 보이게 하라.
교육의 중요한 비결은 신체 훈련과 정신 훈련이 항상 서로에게 휴식이고 기분전환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이다(P.378).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을 사물과 연결시키는 필연성을 절실히 깨닫는다. 먼저 그의 신체와 감각부터 훈련시키고 나서 우리는 그의 정신과 판단력을 훈련시켰다. 마침내 우리는 그의 사이의 활동을 능력의 활용과 결합시켰다.
연속적이거나 동시적인 여러 감각들의 비교에서 또 그것들에 대한 판단으로부터 일종의 혼합적인 혹은 복합적인 감각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관념이라 부른다.
관념을 형성시키는 방식은 곧 인간의 정신에 성격을 부여하는 방식이다(P.379). 오로지 실질적인 관계에 의거해서 관념을 형성시키는 정신은 견고한 정신이다. 외면적인 관계에 만족하는 정신은 피상적인 정신이다. 관념들을 비교하고 관계를 찾아내는 재능의 다소에 따라 사람들은 재치가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다 등등.
자연은 결코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 우리를 속이는 것은 항상 우리이다(P.380).
잘못을 고치거나 예방하려면 그에게는 경험이 필요하다(P.381).
사람들은 많이 알면 알수록 더 많이 틀리므로, 오류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무지이다. 이는 이성의 가르침인 동시에 자연의 가르침이다(P.382).
우리의 호기심은 우리의 욕구와 함께 필연적으로 확대된다. 이 때문에 나는 철학자에게는 대단히 큰 호기심이 있고 숭배자를 필요로 한다.
자연은 자신의 도구와 규칙들을 평판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선택한다. 필요는 인간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자연 상태에서 사는 자연인과 사회 상태에서 사는 자연인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에밀은 도시에서 자신의 필수품을 찾아내고 주민들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하며 그들처럼은 아니더라도 쵯한 그들과 더불어 사는 법을 알아야 한다.
제대로 판단하는 법을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의 경험을 최대한 단순화하고, 나아가 오류에 빠지지 않고 오류 없이 지낼 수 있게 해주려는 것이다. 이로부터 감각들의 관계를 그 자체로 검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결과가 나온다(P.383). 감각 하나하나는 우리에게 하나의 관념이 될 것이며, 이 관념은 언제나 진리에 일치할 것이다.
이렇게 전진하는 방법은 소수의 교사들만이 가질 수 있는 인내심과 신중함을 요구하는데, 그것이 없다면 제자는 결코 판단하는 법을 배우지 못할 것이다. 언제나 진리를 발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P.384).
모든 감각의 인식은 하나의 명제, 하나의 판단이다. 하나의 감각을 다른 감각에 비교하기 시작하면, 곧 추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판단하는 기술과 추론하는 기술은 완전히 동일하다(P.386).
평판을 무시하기 위해서는 권위도 무시해야 하기 때문이다(P.387).
하나의 이점은 자기힘에 비례해서 짐보한다는 사실이다. 육체와 마찬가지로 정신도 짊어질 수 있는 것만 짊어진다. 이해력이 사물을 제 것으로 삼은 뒤 그것을 기억에 담아두면, 나중에 기억에서 끌어내는 것은 그의 것이 된다.
지식을 획득하는 능력에 의해 보편적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은 개방적이고 총명하며 모든 것에 준비가 되어 있는 정신, 몽테뉴가 말한 것처럼 배우지 않았어도 최소한 배울 수 있는 정신이다. 유용성을 그가 믿는 모든 것에 대해 "왜"라는 이유를 찾아낼 줄 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의 목표는 그에게 지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지식을 습득하는 법을 가르치고, 그가 그것의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게 하는 것이며, 무엇보다 진리를 사랑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P.388).
에밀은 자연의 지식, 그것도 순전히 물질적인 지식만 가지고 있다. 그는 역사라는 명칭조차 알지 못하며 형이상학과 윤리학의 무엇인지도 모른다.인간이 사물과 맺은 본질적인 관계를 알고 있지만, 인간이 인간과 맺는 도덕적인 관계는 전혀 알지 못한다. 관념들을 일반화하거나 추상화 할 줄도 거의 모른다. 그는 사물들을 그것의 본성이 아니라 오로지 그의 흥미를 끄는 것은 관계들에 의해서만 알려고 든다. 자기 외부의 사물은 자기와의 관계에서만 평가한다. 그렇지만 그 평가는 정확하고 확실하다. 그는 자신에게 더 훌륭한 것을 더욱 존중한다. 그는 평판을 무시한다. 자유롭게 살며 인간적인 것들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 것이 죽는 법을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P389).
에밀은 자기 자신과 관련하여 갖추어야 할 미덕은 모두 다 갖추고 있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단지 지식인데, 그의 정신은 그 지식을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그는 인간 사회에서 혼자에게 자기 자신을 믿는다. 그는 건강한 신체와 민첩한 사지, 편견 없는 올바른 정신, 정념이 깃들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있다. 누구의 휴식도 방해하지 않고 자연이 허락한 한도 내에서 그는 만족한 채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아있다(P.390).
4권:
인생은 짧다.
우리는 두 번 태어난다. 한 번은 존재하기 위해서 또 한 번은 살기 위해서이다. 사춘기에 이르기까지 남자아이나 여자아이나 겉보기에는 다른 것이 전혀 없다(P.11).
기분의 변화, 잦은 신경질, 끊임없는 정신적 흥분으로 어린아이는 거의 반항적이 된다. 전에는 순수히 따르던 목소리도 이제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는 열기에휩싸인 한 마리 사자가 되어 스승을 무시하고 더 이상 지도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기질의 변화를 나타내는 정신적 징후들과 함께 그의 용모는 성숙해지고 거기에 성격이 들어난다. 그의 목소리는 변성기에 접어드는데, 목소리가 변한다기보다 차라리 목소리는 잃어버린다고 말하는 편이 옳다. 그는 어린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니어서 어느 쪽 목소리도 낼 수 없다. 눈은 어떤 언어와 표현력을 발견한다. 아직은 신성한 순진성을 띠고 있고 더 이상 예전에 우둔함이란 찾아 볼 수 없다. 그는 벌써 눈이 너무 많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눈을 내려 뜨거나 창피함에 눈을 붉힐 줄 알기 시작한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활기가 지나쳐 성급해지고 신경질이 분노로 변하고, 시시각각 화를 내다가 감격하고,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고, 위험스러워지기 시작한 대상들 옆에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눈에 불꽃이 타오르고, 여인의 손이 그의 손 위에 놓일 때 온몸을 부르르 떨고, 여자 옆에 있으면 수줍어 어쩔 줄 모르게 된다.
바로 이것이 내가 말했던 제2의 탄생이다. 인간은 진정으로 인생에 눈을 뜨며, 인간적인 것은 어떤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게 된다. 이제부터 정말로 중요하다. 통상적인 교육이 끝나는 이 시기야말로 바로 우리의 교육이 시작되어야 할 시기이다(P.13).
인간의 정념은 인간의 보존을 위한 주요한 도구이다.
정념의 원천이 자연적인 것은 사실이다. 우리의 자연스러운 정념은 우리의 자유를 위한 도구이고 우리의 보존을 지향한다(P.14). 우리 위에 군림하고 우리를 파괴하는 모든 정념은 다른 곳에서 우리에게 온 것이다.
우리의 정념의 원천, 모든 다른 정념의 기원이자 근원이며 인간과 함께 태어나 그가 살아 있는 한 그를 결코 떠나지 않는 유일한 정념은 자기애이다. 모든 정념이 자연적이라 해도 무방하다. 변형된 정념의 대부분은 외부적인 원인을 갖는다 그리고 우리에게 유익하기는커녕 해롭다. 그것은 최초의 목표를 바꾸고 그 원칙에 역행한다. 바로 그때 인간은 자연을 벅어나 자기 자신과 모순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자기애는 언제나 선하고 질서와 일치한다. 사람은 자기를 보존할 임무를 지고 있다. 그의 임무들 중 가장 중요한 첫 번째는 끊임없이 자기 보존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P.15).
어린아이에게 생기는 최초의 감정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고, 그 최초의 감정으로부터 파생되는 두 번째 감정은 그의 곁에 접근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아이는 유모와 부모에 대해 갖는 애착은 단지 습관에 불과하다(P.16).
온화하고 다정한 정념은 자기애에서 생겨나고, 남을 미워하고 걸핏하면 화를 내는 정념은 이기심에서 생겨난다(P.17).
인간에게 적합한 연구는 그가 맺고 있는 관계들에 대한 연구이다. 그가자신을 육체적인 존재로만 아는 동안은 자신이 사물들과 맺고 있는 관계를 통해 자신을 연구해야 한다. 이것이 어링아이 시기의 일이다. 그러나 그가 자신을 정신적인 존재로 느끼게 되면 그는 자신이 인간들과 맺고 있는 관계를 통해 자신을 연구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도달한 시기부터 시작해 평생을 통해 해야 할 일이다.
그가 갖는 최초의 정념은 곧 다른 정념을 발효시킨다.
한쪽의 성이 다른 쪽의 성에 이끌리는 것이야말로 자연의 운동이다. 싫고 좋음을 선택하여 한 개인을 사랑하는 것은 지식과 선입견과 습관의 산물이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시간과 지식이 필요하다(P.18).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사람들의 숭배의 대상이 될 것이다.
사람은 상호적이어야 한다. 이 때문에 경쟁심과 적대관계와 질투가 생겨난다(P.19).
자연이 향하는 교육은 서서히 더디게 진행되는 반면 인간이 행하는 교육은 거의 언제나 시기를 앞질러 이루워진다. 전자의 경우에는 감각이 상상력을 일깨우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상상력이 감각을 일깨워 그것을 때 이르게 활동하게 한다. 사춘기와 성의 능력이, 무지하고 미개한 민족들보다 배우고 개화된 민족들에게서 언제나 더 빨리 나타난다는 점이다(P.21).
바람직한 태도는 언제나 가장 솔직한 것이다(P.24).
자연의 흐름을 따라라. 어른은 정숙함을 생각하고 어린이는 청결함을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이 아이의 순진성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다(25)..
자연은 아이가 아무런 위험 없이 자연이 주는 가르침을 이용할 수 있게 해 놓은 것이다. 바로 이것이 원칙이다.
감정으로 상상을 억제시키고, 이성으로 사람들의 평판을 침묵시켜야 한다. 모든 정념의 원천은 감성이며 상상이 그 흐름의 방향을 결정한다.
정념을 사용하는 데서 인간의 모든 지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P.29).
1. 개인의 측면 못지않게 인류의 측면에서 인간이 맺고 있는 올바른 관계를 지각할 것.
2. 이러한 관계에 따라 영혼의 모든 성향에 질서를 부여할 것(P.30).
감성이 자기 밖으로 퍼져 나갈 때에야 비로소 그는 감정을 갖고 이어서 선악의 관념을 갖게 되는데, 이로부터 그는 진정으로 인간이 되고 인류를 구성하는 일원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선 집중적으로 관찰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최초의 지점이다(P.30).
자연의 진정한 진행 과정은 좀 더 단계적으로 서서히 이루워진다. 조금씩 피가 끓어오르고 기백이 생겨나고 기질이 형성된다. 인간의 애정에 마음이 열리고 애착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정성스럽게 키워진 청년이 느낄 수 있는 최초의 감정은 사랑이 아니라 우정이다. 그는 성에 앞서 인류와 관계를 맺는다. 그것은 청년의 마음에 인간애의 첫 씨를 뿌리기 위해 막 생겨나기 시작하는 감성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런 배려가 참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인생의 유일한 시기이기 때문에 더욱 귀중한 이점이다(P.31).
행복한 소박함 속에서 자란 젊은이는 자연의 최초의 운동에 의해 부드럽고 다정한 정념으로 인도된다. 청년기는 복수나 증오의 시기가 아니라, 동정심과 너그러움과 관대함의 시기이다(P.32).
애착이란 모두 부족함의 표시이다. 정말로 행복한 존재는 혼자 있는 고독한 존재이다. 오직 신만이 절대적인 행복을 향유한다.
우리에게 공통되는 욕구는 우리를 이해관계로 결합시키지만, 우리에게 공통되는 비참함은 우리를 애정으로 결합시킨다(P.33).
동정심은 감미롭다. 왜냐하면 괴로와하는 사람의 입장이 되면서도, 그래도 자기는 그 사람처럼 괴롭지 않다는 기쁨을 느끼기 때문이다(P.34).
모든 사람들은 알몸으로 가난하게 태어나, 인생의 비참함, 슬픔, 불행, 결핍, 그리고 온갖 종류의 고통을 피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죽을 운명에 처해 맀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연구한다면 인간의 본성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들, 인간성의 가장 올바른 구성요소들로부터 연구를 시작한다.(P.35).
동정심은 자연의 질서에 따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최초의 상대적 감정이다(P.37).
인류를 구성하는 것은 민중이다. 인간은 어떤 신분에 있든지 같은 인간이다(P.43).
인간을 경멸하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하도록 가르쳐라. 그가 어떤 계급에도 속하지않으면서 동시에 모든 계급에 계급에 속하게 하라(P.44).
허영심, 경쟁심, 명예심등 우리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게 만드는 감정들은 전혀 없어야 한다.
유능한 교사라면 심성을 계발시키려고 노력하면서 심성을 탐색하는 기술을 아는 관찰자와 철학자로서 진정한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할 때이다(P.45).
에밀은 어린 시절에 소박함과 양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청년이 되면 인정과동정심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정말 확신한다. 진실한 감정은 다분이 올바른 관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P.47).
외면의 표식을 통해 영혼의 움직임을 판단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중요하다(P.54).
그들의 교제, 소일거리, 오락거리를 신중하게 선택해 주도록 하라(P.55). 습관이 되면 어떤 것에나 익숙해지는 법이다. 사람들이 죽거나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많이 보는 사제나 의사들은 동정심이 없어진다. 그가 어떤 대상에게서 받은 연속적인 인상은 그 대상 자체보다 사람들이 그가 그것을 회상하도록 이끄는 관점애서 비롯된다.
그가 지식을 획득해 감에 따라서 그것과 결부되는 관념들을 선택하라(P.56).
장소와 시기와 사람을 선택하는 법을 배워라(P.57).
청년기의 불길은 교육이 이루어지고 완성된다(P.58).
"정의"와 "선량함"이 그저 추상적인 말이나 오성에 의해 형성된 단순한 정신적 산물이아니라, 이성에 의해 밝혀진 진정한 영혼의 감정이다. 자연권이란 그것이 인간의 마음에 있는 자연스러운 욕구에 근거한다. 인간의 교육과 관련하여 인간의 감정과 인식의 질서 그리고 그 발달을 드러내는 것으로 충분하다(P.64).
자기애가 이기심으로 변한다
자연적 불평등과 사회적 불평등의 척도 그리고 사회 질서를 묘사하는 일람표가 생겨난다(P.65).
인간을 통해 사회를, 사회를 통해 인간을 연구해야 한다. 인간을 독립적이고 자유롭게 만드는 완력이라기보다 마음의 절제이다.
사회 상태에는 비현실적이고 무익한 법적 평등이 있다(P.66).
이러한 관점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그 자신의 경험보다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 그를 교육하는 것이다. 피타고라스는 이런 말을 했다. "세계라는 경기장은 올림픽 경기장과 비슷하다(P.67).
그가 인간은 본래 선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고, 그가 그것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측근을 그가 스스로 판단하게 하라. 사회가 어떻게 사람을 타락시키고 왜곡시키는지 알게 하고, 또 사람들의 편견이 그들의 모든 악덕의 근원임을 보게 하라(P.68).
그는 철학을 공부하지 않고 오직 역사를 통해서 사람의 마음을 읽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역사를 통해서 그는 단순한 관객으로서, 이해관계나 정념을 갖지않고, 공범도 고발인도 아닌 재판관의 자격으로 인간의 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인간을 알기 위해서는 인간이 행동하는 것을 보아야 한다(P.69).
역사는 혁명이나 대격변이 일어난 동안에는 흥미를 끈다. 역사는 어떤 국민이 내리막길에 접어들었을 때만 그 국민을 유명하게 만든다. 오늘날에도 가장 잘 운영되고 있는 정부란 사람들의 입에 가장 덜 오르내리는 정부라는 사실을 안다. 역사는 철학과 마찬가지로 인류를 계속 중상모략하고 있는 것이다(P.70).
역사의 정확성은 행동이나 성격의 진실성보다 흥미를 덜 끈다. 인간의 마음이 잘 묘사되기만 하면 사람들이 정확히 기록되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P.72).
사실을 보여주고 스스로 판단하게 하라.
인간의 마음 깊은 곳을 살피기에 앞서 인간의 행동에서 마음의 기본적인 윤곽을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P.73). 격언을 읽기 전에 사실을 잘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격언으로 이루어진 철학은 경험이 풍부한 사람에게나 어울린다. 청년은 어떤 것도 인반화해서는 안된다. 그가 듣는 가르침은 모두 하나이다. 개별적인 규칙들로 이루어져 있어야 한다.
그의 역사를 읽기 위해서는 미리 분별력이 좀 있어야 한다(P.74).
통사는 이름, 장소, 날짜에 의해 확정될 수 있는 눈에 보이는 두드러진 사건들만 기록하는 데 그치고, 그 사건들을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원인은 같은 식으로 확정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미지의 상태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P.75).
인간의 마음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려면 나는 차라리 개인의 전기를 읽겠다. 인간이 아무리 자연을 숨긴다고 해도 역사가는 그를 어디에서나 추적한다. 몽테뉴는 이렇게 말했다. "전기를 쓰는 사람은 사건보다 의도에, 외부에서 생기는 일보다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에 더 흥미를 갖기 때문에, 나한테 더 적합하다. 바로 이 때문에 플루타르코스는 나한테 딱 맞는 사람이다."
군중 혹은 국민의 핵심적인 특성은 개별 인간의 성격과는 매우 달라서, 인간의 마음을 군중 속에서도 관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인간의 마음을 정말 불환전하게 아는 일이 될 것이다(P.76).
플루타고라스는 우리가 이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바로 그 세부 묘사에 뛰어나다. 그는 사소한 일로 위대한 인간을 묘사하는 대서 남이 흉내내지 못할 매력이 있으며, 묘사하는 법을 선택하는 데 매우 탁월하여 종종 한마디의 밭, 한 번의 비소, 하나의 몸짓만으로도 충붕히 주인공의 특징을 드러냈다(P.77). 천성은 사소한 일에서 드러난다(P.79).
이런 대조적인 일들을 비교하고, 본성을 사랑하고, 세상 평판을 무시하고 인간을 알아야 한다.
십팔 년 동안 오로지 공정한 판단과 건전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삶은 보살핍을 지속적으로 받아 온 나의 에밀을 상상해 보라(P.80).
제자의 타고난 재능과 아울러, 교사가 조금만 그의 독서를 신중하고 분별력 있게 살펴서 제자가 독서에서 이끌어 내야 할 성찰을 향해 바르게 나가도록 지도해 준다면, 이 훈련을 제자에게 일종의 실천적인 철학 강의가 될 것이다(P.81).
인간이 가진 온갖 정념의 작용은 죽은 사람들을 발판 삼아 자기 자신을 알고 또 현명해지기 위해 역사를 연구하려는 사람들에게 비슷한 교훈을 제공한다(P.83).
인간을 아는데 지대한 관심을 갖고 인간을 판단하는 데 상당한 공정함을 기하며, 인간의 온갖 정념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감성이 풍부한, 그러면서도 그러한 정념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평온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P.86).
나는 교육이 인간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입증하기 위하여 그를 평범한 정신의 소유자들 가운데서 선택했다(P.89).
여러분의 명예는 이미 여러분의 학생에게 있음을 생각하라. 그의 과오를 바로잡아 주기 위해그것을 나누워 가지도록 하라. 자신의 명예를 희생시켜 그는 도리어 큰 명예를 얻었다(P.91).
그것은 이성의 권위, 지식의 우위, 청년이 알 수 있는 그리고 그가 자신에게유용하다고 느끼는 우월성에 입각해야 한다. 청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의 의견을 듣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P.92).
선생의 가장 중요한 기술은 그 청년이 어떤 때 굴복하고 어떤 때 고집을 부리는지 미리 알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고 훈계를 조절하여, 어디서나 그를 경험의 교훈으로 둘러싸면서 결코 그를 너무 큰 위험에 빠뜨리지는 않는 것이다(P.93).
잘못에 빠지기 전에 그의 잘못을 경고하라. 반항심을 일으키게 하는 그런 교훈은 유익하지 않다. 그가 타이른 것을 잊지않고 생각해 내게 만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그것을 잊어버린 척하는 것이다.
게다가 여러분의 위로하는 말투는 그가 그것을 가르침이라고 눈치채지 못하는 만큼 더욱더 유용한 가르침이 될 수 있다. 단지 그것을 동정하는 태도만 보임으로써 그를 교정할 수 있다(P.94).
그는 하나의 사실에서 하나의 준칙을 이끌어 낸다. 우리는 스스로 직접 그 경험을 하는 대신 역사에서 그 교훈을 이끌어 낸다. 우화를 수단 삼아 우리는 그가 체험했던 개별적인 경우들을 준칙으로 만든다.
대부분의 우화들은 교훈으로 끝을 맺는다. 가르치는 재능이란 제자가 가르침을 좋아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생생의 자존심은 언제나 제자의 자존심에 한 수 접어주어야 한다(P.95). 제자는 마음속으로 "내가 생각해 내고, 내가 통찰하고, 내가 행동하고, 내가 스스로 배운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P.96).
우화들에 좀 더 교육적인, 즉 청년의 감정과 지식의 발달에 더 합치하는 순서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P.97).
에밀에게 자기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법과 더불어 자신이 먹을 빵을 버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사람들과 교제할 줄도 알고, 그들을 활용할 수 있는 수단도 알아야 한다.
사회적 미덕의 실천은 사람의 마음속에 인류애를 가져다 준다. 사람은 선을 행함으로써 착하게 된다(P.99). 가난한 사람의 이익이 항상 그에게도 이익이 되게 하라. 그가 그들을 단지 지갑 속의 돈으로만 돕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들여 돕게하라. 그들에게 봉사하고 그들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자기 자신과 시간을 쓰게 만들라(P.100).
이러한 평화의 정신은 그가 받은 교육의 결과들 중 하나이다(P.101).
나는 "청년들에게 주는 교훈은 모두 말보다는 행동으로 옮겨라"라는 말을 지치지 않고 되풀이해 말하겠다.
육체적인 필요에만 관심이 한정되어 있는 에밀은 다른 사람들이 그를 필요로 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P.103).
진정한 웅변가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느끼는 것을 자기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느낀 바를 그대로 내보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획득할 수 있는 모든 진정한 지식에 덧붙여서 그는 더 중요한 지식 즉 획득한 지식을 활용할 수 있도록 삶에 적용한 지식을 얻을 것이라는 사실이다(P.104).
이 이익을 일반화할수록, 사람은 좀 더 공정해진다. 이류애란 정서를 사랑하는 것이다. 에밀이 진실을 사랑하고 또 진실을 알기를 원한다면, 모든 일에서 그가 항상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게 하라. 그가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정성을 쏟을수록, 그 정성으로 그는 더 풍부한 식견을 갖추고 더 현명해질 것이고, 선과 악을 잘못 판단하는 일은 더 적어질 것이다(P.105).
모든 미덕들 중에서도 정의야말로 인간의 공익에 가장 기여하는 것이다.
거기서 내면의 기쁨이 생겨날 뿐만 아니라, 나는 그에게 다른 사람들을 위해 선행을 베풀게 함으로써 바로 그의 교육을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의 머릿속에서 얼마나 위대한 통찰력이 조금씩 준비되고 있는지 보인다. 그의 내면에서 얼마나 정확한 판단력과 또 얼마나 올바른 이성이 형성되고 있는지 나는 보고 있다(P.106). 정의의 참다운 원리들, 아름다움의 참다운 전형들, 존재들의 모든 도덕적인 관계들, 질서의 모든 관념들이 그의 이해력 속에 새겨진다(P.107).
성년기에 그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양쪽이 획득한 지식의 양은 아마도 동일할지 모르지만, 획득한 내용은 조금도 비슷하지 않다. 에밀이 철학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그리고 신에 관한 말을 들어 보기도 전에, 다른 학생들은 모두 이미 철학자나 신학자가 되어 있다는 것도 고려하기 바란다(P.108).
내가 체계의 정신에 구애받지 않고, 논리적 추론에 최대한의 비중을 두지 않고 관찰만 신뢰한다. 나는 머릿속에서 생각한 것이 아니라 내가 본 것에 의거한다. 내가 그토록 많은 계층들과 국민들을 관찰하며 보낸 생애 동안 그 계층들과 국민들을 비교한 뒤, 나는 어떤 국민에게는 있는데 다른 국민에게는 없는 것, 어떤 신분의 사람들에게는 있는데 다른 신분의 사람들에게는 없는 것, 그것들은 인위적인 것으로 취급하여 제외하고, 나이와 계급과 국적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된 것만 명백하게 인간에게 속하는 것으로 간주했다(P.109).
자연의 인간을 키우려고 하면서 이를 위해 그를 미개인으로 만들어 깊은 숲속으로 몰아넣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고려하라(P.110).
로크는 사람들이 정신의 연구에서 시작하여 그 다음에 물체의 연구로 이행하기를 원한다. 이러한 방법은 미신과 편견과 오류의 방법이지, 이성의 방법도 심지어 질서정연한 자연의 방법도 아니다. 정신에 관한 참된 개념을 갖고 정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짐작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육체들을 연구했어야 한다. 그 반대의 순서를 오로지 유물론을 확립하는 데 소용될 뿐이다.
정신이란 단어 자체도 어원에서 보면 "입김"과 "바람"을 의미할 뿐이다(P.112).
인간은 자신이 그 행동을 지각하는 모든 존재들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원시시대에 모든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 인간들은 자연의 모든 것을 살아 있다고 생각했다. 다신교가 그들의 최초의 종교였으며 우상숭배가 그들의 최초의 종교 의식이었다(P.113).
어린아이는 아버지의 종교 안에서 키워지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아이에게 그 종교가 무엇이건 그것이 유일한 참된 종교이고 다른 종교들은 모두 엉터리이며 부조리할 뿐이라는 것을 언제나 매우 훌륭하게 입증한다.
우리는 에밀을 어떤 종교 안에서 키워야 할까? 자연의 인간을 어떤 종파에 가입시킬 것인가? 우리는 에밀을 이런저런 종파에 가입시키지 않고, 그가 자신의 이성을 가장 잘 사용하여 이르게 되는 종파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P.122).
지금까지 열정과 성실함이 내게서 신중함의 역할을 해 주었다(P.123).
나는 존재한다. 그리고 감각 기능을 갖고 있어서 영향을 받는다. 바로 이것이 내가 강렬하게 느끼는 최초의 진리이네(P.143).
진리는 사물 속에 있지(P.147).
나는 물체에서 두 가지 종류의 운동을 지각하는데, 즉 전달된 운동과 자발적이거나 의지적인 운동이네(P.148).
어떤 다른 운동에 의해서 생겨나지 않는 운동은 모두 자발적이고 의지적인 행위에서만 나올 수 있고, 생명 없는 물체는 운동에 의해서만 움직일 수 있으며, 의지가 없으면 진정한 의미의 활동은 존재하지 않네. 이것이야말로 나의 제1원리이네. 그러므로 나는 어떤 의지가 우주를 움직이고 자연의 생명력을 불어넣는다고 믿고 있네. 이것이야말로 나의 첫 번 교리 혹은 내 첫 번째 신조일세(P.151).
의지는 본성이 아니라 행위를 통해서 내게 알려지며, 나는 이러한 의지를 동인으로 인식하네(P.152).
움직이는 물질이 내게 의지를 보여 준다면, 일정한 법칙들에 따라 움직이는 물질을 내게 지성을 보여주네. 이것이 나의 두 번째 신조일세(P.154). 행동하고 비교하고 선택하는 것은 사유하는 능동적 존재의 활동이므로 이러한 존재는 존재하네(P.155).
세계의 질서에 대해 판단하려면 부분들을 비교하고 그 부분들의 협력과 관계를 연구하고, 그것들의 조화를 알아차리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P.155)
자연은 질서를 확립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어떤 것도 그것을 혼란하게 만들 수 없도록 확실한 조치를 취해 둔 것이네(P.157).
나는 세계가 강력하고 현명한 어떤 의지에 의해 다스려진다고 믿네. 나는 그것을 보네. 아니 본다기보다 느끼네. 그리고 그것을 아는 것이 내게는 중요하네. 그런데 바로 이 세계는 영속적인 것인가 아니면 창조된 것인가? 만물의 원리는 무엇인가, 아니면 두개 또는 여러 개의 원리가 있는가? 그리고 그 본성은 무엇인가?(P.158)
물질이 영속적인 것이든 창조된 것이든, 수동적인 원리가 있든 없든, 어쨌든 전체란 하나이고 유일한 지성을 드러내 보여준다는 것은 확실하네. 의지를 갖고 또 힘을 가진 이러한 존재, 스스로 능동적인 존재. 그것이 무엇이든 결국 우주를 움직이고 만물에 질서를 부여하는 이러한 존재를 나는 신이라 부르네. 나는 이 이름에 지성이니 힘이니 의지니 하는 관념들을 한데 묶어 결부시키고, 또 그것의 필연적인 귀결인 善性선성의 관념을 결부시키네(P.159).
인간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상의 왕이라는 말은 사실이네. 왜냐하면 그는 모든 동물들을 길들이고 자신의 솜씨로 자연의 원소들을 이용할 뿐만 아니라 지상에서 오직 그만이 그것을 활용할 줄 알기 때문이지. 너의 타고난 재능이 네 능력의 탁월함을 증명해 준다(P.161).
인간의 본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서 나는 거기서 서로 다른 두 개의 원리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네. 하나는 인간을 영원한 진리에 대한 탐구로, 정의와 정신적인 미에 대한 사랑으로. 그에 대한 관조가 현자의 기쁨이 되는 지적인 세계의 영역으로 고양시키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인간을 비천하게 자기에게로 끌어내려 감각의 지배를 받도록 굴복시키고 그 도구인 정념의 노예로 만들어서, 이 정념으로 첫 번째 원리에서 생겨난 감정이 인간에게 고취시키는 것 모두를 방해하네. 나는 이성에 귀를 기울일 때는 능동적이 되며, 정념에 끌려다닐 때는 수동적이 된다(P.163).
인간의 의지를 결정하는 원인은 대체 어떤 것인가? 그것은 그의 판단이네. 그러면 판단을 결정하는 원인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그의 지적인 능력이고 그의 판단력이네.
모든 행동의 원리는 자유로운 존재의 의지에 있네.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은 자유라는 말이 아니라 필연성이라는 말일세. 능동적 원리에서 생겨나지 않은 행동이나 결과를 가정하는 것은 진실로 원인 없는 결과를 가정하는 것이고 순환논법에 빠지는 것이네. 인간은 행동에 있어 자유로우며, 또 그러한 존재로서 비물질적인 실체에게서 생명을 받은 것이네. 이것이 나의 세 번째 신조일세.
인간이 능동적이고 자유롭다면, 그는 스스로 행동하네. 그가 자유롭게 행하는 모든 것은 질서정연한 섭리의 체계에 전혀 속하지 않으며, 섭리 탓으로 돌릴 수도 없네(P.167). 선이 인간을 자유롭게 만든 것은 인간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악이 아니라 선을 행하게 하기 위해서이네. 최고의 즐거움은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는 데 있네(P.168).
우리의 슬픔이나 근심, 괴로움은 바로 우리에게서 생겨난다. 원시적인 단순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정말로 병에 잘 걸리지 않는다! 그는 정념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의 병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며, 죽음을 미리 생각하지도 않고 예감하지도 않네(P.169).
네가 만든 악과 네가 괴로워하는 악 이외에 또 다른 악은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그 둘은 모두 너에게서 생겨나는 것이다. 보편적인 악은 오로지 무질서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데, 나는 세계의 체계 속에서 조금도 모순이 없는 질서를 보네(P.170).
정의는 선과 분리될 수 없고, 그러므로 어떤 무한한 힘의 필연적인 결과이며, 스스로를 느끼는 모든 존재에 본질적인 자기애의 필연적인 결과이네. 최고로 선한 존재는 최고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또한 가장 정의로울 것이네(P.170). 질서를 만들어 내는 질서에 대한 사람이 "선"이라 불리며, 질서를 보존하는 질서에 대한 사랑이 '정의'라 불리기 때문이네.
정의로워라, 그러면 너는 행복하게 될 것이다(P.171).
영원이 육체가 죽은 뒤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면 신의 섭리는 올바른 것으로 인정되네. 모든 것은 죽을 때 질서로 되돌아간다(P.172).
육체와 영혼의 결합이 깨질 때, 내 생각에 육체는 소멸되고 영혼은 보존될 수 있네.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반밖에 사는 것이 아니며 영혼의 삶은 육체가 죽을 때에야 비로소 시작된다네(P.173).
나는 바로 그 지고한 지성이 생명체들을 다스리는 살아 있는 능동적인 실체에 생명과 능동성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네. 우리는 오로지 신이 우리가 자유롭기를 원하기 때문에 자유로우며, 설명할 수 없는 그의 실체가 우리의 영혼과 맺고 있는 관계는 우리의 영혼이 우리의 육체와 맺고 있는 관계와 동일하네(P.177). 나는 신이 우주와 존재하는 모든 것에 형태를 부여하였으며, 모든 것을 만들고 모든 것에 질서를 부여했다는 것을 알고 있네. 신은 영원하네.
신의 지성은 순수하게 직관적이어서, 존재하는 모든 것과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똑같이 보고 있네. 그리고 모든 진리는 신의 지성에, 모든 장소가 단 하나의 점이고 모든 시간의 단 하나의 순간인 것처럼, 단 하나의 과념에 불과하네. 인간의 힘은 도구를 통해 작용하지만, 신의 힘은 스스로 작용하네. 신은 원함으로써 행동할 수 있으며, 그의 의지가 능력을 창조하네. 신은 선이네. 인간의 선성이 자기 동류인 인간들에 대한 사랑이라면, 신의 선성은 질서에 대한 사랑이네(P.178). 신의 정의는 신이 각자에게 준 것에 대해 각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네(P.179).
양심은 영혼의 목소리이고, 정념은 육체의 목소리이네(P.180).
우리 행위의 도덕성은 모두 우리 자신이 그것에 대해 내리는 판단에 있네(P.181). 정의에 대한 최고의 보상은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네(P.182).
자연에 따르자. 그러면 우리는 자연이 얼마나 부드럽게 우리를 지도하는지 알게 될 것이네. 또 자연에 귀를 기울인 뒤에 스스로 선하다고 확신하는 데서 얼마나 큰 매력을 발견하는지.
자네는 모든 곳에서 정의와 성실함에 대한 관념, 또 선과 악에 대한 개념이 동일한 것을 알게 될 것이네(P.185).
인간의 정신에는 경험을 통해 들어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이든 오로지 습득된 관념에 의거하여 판단할 수 있다(P.186).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공의 이익에 협력한다고 하네(P.187). 자연의 목소리는 이성의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그것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어 ......
우리가 습득한 관념과 자연적인 감정을 구별할 수 있도록 만들기만 하면 되네. 왜냐하면 우리는 인식하기 이전에 느끼기 때문이지. 양심의 작용은 판단이 아니라 감정이네. 우리가 갖는 관념 모두가 외부로부터 우리에게 온 것이라 하더라도, 그 관념들을 평가하는 감정은 우리 내부에 있네(P.188).
우리의 감성은 의심할 여지 없이 지성에 선행하며, 우리는 관념에 앞서 감정을 갖네. 개인에게서 이러한 감정은 자기애, 고통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공포, 안락에 대한 욕망이네. 양심의 추진력이 생겨나는 것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동류인 인류에 대한 이와 같은 이중적 관계에 의해 형성되는 도덕적 체계로부터이네. 그의 양심은 선을 사랑하도록 그를 인도하네. 이것이야말로 생득적인 감정이네(P.189).
우리에게는 내면적인 증거와 스스로를 위해 증언하는 양심의 소리가 있네. 더 단순해지고 잘난 척을 하지 말자. 그리하여 우리 자신 안에서 보는 최초의 감정에 만족하도록 하자(P.190).
양심은 소심해서 안식과 평화를 사랑한다네. 광신은 감히 양심의 목소리를 흉내내고 그 이름으로 죄악을 부추기네.
도덕적인 선은 단지 환상에 불과하다. 감각의 쾌락 이외에 좋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P.191). 미덕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미덕을 즐겨야 하네(P.192).
미덕은 질서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하네. 원리라는 것은 순전히 말장난에 불과한데. 왜냐하면 나로서는 질서를 다른 뜻으로 해석하면서 악덕이 질서에 대한 사랑이라고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네. 감정과 지성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어떤 도덕적인 질서가 있게 마련이네. 선인은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에게 질서를 부여하는데, 악인은 자신과 관련하여 모든 것에 질서를 부여한다는 것이네. 악인은 스스로 만물의 중심이 되고, 선인은 자신의 반지름을 재고 원주에 자리 잡네(P.193).
영원한 정의는 그 의무들을 내게 부과하고 내가 그것을 이행하는 것을 보네. 나는 이제 나를 위대한 존재의 작품이며 그의 도구라고 느끼네(P.194).
행복과 힘과 자유의 상태로 가능한 한 미리 나를 끌어올리기 위해 나는 숭고한 관조를 연습하고 있네. 나는 우주의 질서에 대해 명상하네. 그것은 헛된 체계로 우주의 질서를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질서를 끊임없이 찬미하고 그 속에서 나를 느끼게 만드는 지혜로운 창조자를 찬양하기 위함이네(P.197).
저를 인도해야 할 것은 내면의 감정입니다(P.200)
동일한 형태의 종교 의식이 필요했네. 신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경배는 마음의 경배이네. 신은 정신적으로 그리고 진실하게 숭배받기를 원하고 있네. 이는 모든 종교, 모든 나라, 모든 인간의 의무이네(P.202).
자연 종교의 교리를 모든 종교들의 기본 요소로만 생각했네(P.204).
기적이란 어떤 종류의 것이어야 하며 어떤 진실성을 가져야 하는지 탐구해야 하네(P.208).
자연을 다스리는 현명한 손길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은 자연의 변함없는 질서이다(P.209).
교의에 관하여, 자연 종교는 그것은 분명하고 명쾌하며 그 명료함으로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네(P.211). 신앙이란 이해력에 의해 확실해지고 확고해지는 법일세. 진리의 사자는 나의 이성을 짓밟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밝혀 주네(P.212).
초자연적이라는 것은 자연의 질서에서 생겨나는 변화, 예언, 기적, 온갖 종류의 이적들을 말한다. 이성의 원칙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으며, 사람들의 증언에 의거해서 부조리한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P.214).
모든 사람들 눈앞에 펼쳐져 있는 단 한 권의 책이 있으니, 그것은 자연이라는 책이네. 바로 이 위대하고 숭고한 책 속에서 나는 그 책을 만든 신성한 작가를 섬기고 숭배하는 법을 배우네(P.227). 내 이성을 훈련하고 도야하여 신이 내게 준 직접적인 능력을 사용한다면, 나는 스스로 신을 알고 신을 사랑하고 그가 하는 일을 사랑하며 그가 원하는 선을 원하고 그의 뜻에 따를 수 있도록 지상에서 내 모든 의무를 다하는 법을 배울 것이네.
내가 성서의 장엄함에 경탄하고 내 마음의 복음의 거룩함에 감동한다는 것 역시 자네에게 고백하네(P.228). 소크라테스가 조국에 대한 사랑을 의무로 만들기 전에 레오니다스는 조국을 위해 죽었네. 스파르타는 소크라테스가 절제를 찬미하기 전에 절제하였고, 그가 미덕을 정의하기 이전에도 그리스에는 유덕한 사람이 많았네. 그러나 예수는 오로지 그만이 교훈과 모범을 보인 숭고하고 순수한 윤리를 자기 나라의 어디에서 얻었던가? 가장 격앙된 광신의 한복판에서 가장 드높은 지혜의 소리가 들렸으며, 가장 영웅적인 미덕의 소박함이 모든 민족들 중 가장 비천한 민족을 영광스럽게 만들었네. 민족 전체에게서 욕설과 비웃음과 저주를 들으며 고통 속에 숨져 간 예수의 죽음을 사람들이 두려워 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죽음이네. 예수는 참혹한 처형이 한창 진행되는 중에도 악착을 처는 사형집행인들을 위해 기도했네. 소크라테스의 생애와 죽음이 현자의 그것이라면, 예수의 생애와 죽음은 신의 그것이네(P.230). 복음서는 믿을 수 없는 것과 이성에 반하는 것 그리고 분별 있는 사람은 누구든 생각할 수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네. 언제나 겸허하고 신중할 것이며, 거부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은 묵묵히 존중하고, 진리를 아는 유일한 위대한 존재 앞에서 겸손해지게(P.231).
나는 모든 개개의 종교를 유익한 제도라고 생각하네. 그것들은 제각각 자기 나라에서 공적인 의식을 통해 신을 경배하는 일괄된 방식을 정해두고 있으며, 그 모든 것들이 그곳의 풍토나 정부형태 그리고 민족성 속에서 또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어떤 것을 다른 것보다 선호하게 만드는 또 다른 지역적 원인 속에서 저마다의 근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네. 본질적인 신앙은 마음의 신앙으로, 신은 마음에서부터 경외감이 진실하다면 그것이 어떤 형식을 띠고 그에게 바쳐지든 그것을 물리치지 않네(P.231~232).
나는 항상 사람들에게 미덕을 설교할 것이며, 항상 그들이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권고할 것이며, 내가 할 수 있는 한 그들에게 모범이 될 것이네(P.233).
훌륭한 사제란 마치 훌륭한 위정자가 정의를 집행하는 사람인 것처럼 선을 집행하는 사람이네. 더 큰 깨달음을 기다리면서 공공의 질서를 지키도록 하자. 법률을 지키지 않는 것이 나쁜 일이라는 것은 매우 확실히 알기 때문이네(P.234).
그 종교는 매우 단순하고 매우 신성하네. 나는 지상에 있는 모든 종교들 중에서 그것이 가장 순수한 도덕을 가지고 이성에 가장 잘 부합하는 종교라고 생각하네. 자네가 양심의 소리를 들으려 한다면, 그 소리에 수많은 쓸데없는 장애물들이 사라질 것이네(P.238).
종교의 참된 의무는 인간의 제도에 종속되지 않으며, 올바른 심성이야말로 신의 참된 신전이며, 어느 나라 어느 종파에서든 무엇보다 신을 사랑하고 자기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율법의 골자라는 것을, 또 도덕의 의무가 면제되는 종교란 없으며, 그 의무를 제외하고 진짜 본질적인 의무는 없으며, 내면의 신앙이 그 의무들 중에서도 으뜸가는 것이며, 신앙 없이는 어떤 진정한 미덕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P.238~239).
교만하지 말고 성실하고 진실하길 바라네. 그리고 무지한 상태로 있을 줄알아야 한다네. 지식의 남용은 불신앙을 낳게 되네. 맹목적인 신앙심이 광신으로 귀결되는 것처럼 거만한 철학은 신앙 없는 자유사상으로 귀결된다네. 진실을 말하고 선을 행하게.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이 지상에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네.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을 때야말로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네(P.242).
우리가 사람들의 권위나 우리가 태어난 나라의 편견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한, 자연의 교육 안에서 이성의 빛만으로 자연 종교보다 더 멀리 나갈 수 없다.
우리는 자연과 협력해서 작업하고 있다. 자연이 육체적 존재로서 인간을 형성하는 동안 우리는 정신적 존재로서 인간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인간의 기술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해도, 육체의 욕망은 언제나 이성을 앞지른다. 사물의 원리로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우리는 그를 감각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는 착한 마음을 갖고, 사람들의 눈길이 미치지 않더라도 그리고 법이 강요하지 않더라도 선을 행하고, 신과 자신 사이의 관계에서 올바르게 처신하고, 심지어 자신의 생명을 희생시켜서라도 의무를 다하고, 자기 마음에 미덕을 품는 것, 바로 이 모든 것에 자신의 진정한 이익이 있음을 알게 된다. 미덕을 지니는 것은 질서에 대한 사랑을 위해서일 뿐만 이니라 그의 존재를 만든 신에 대한 사랑을 위해서이다. 그 사랑이 바로 자기애와 하나로 합쳐진다. 그 사랑은 이 세상에서 삶을 훌륭하게 살아 낸 뒤, 내세에서 올바른 양심이 주는 평화와 지고한 존재에 대한 관조가 그에게 허락하는 영속적인 행복을 향유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경쟁을 벌이는 와중에는 필연적으로 어떤 것보다 우세한 사리사욕이 그들 각자에게 악덕을 미덕의 가면으로 장식하는 법을 가르친다(P.243-244).
이미 다 자란 그의 신체는 더 이상 똑같은 운동을 필요로 하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움직임을 멈추기 시작하는 반면, 반쯤 발달한 그의 정신은 이제 자유롭게 발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에밀은 젊은 농부나 젊은 미개인들처럼 완전히 자유롭게 키워져서 그들과 마찬가지로 자라면서 변화하고 활동을 멈출 것이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그는 오로지 놀이를 하거나 먹기 위해 움직이는 대신 자신의 일과 놀이를 통해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는 점이다. 내가 그에게 제시하는 생활의 주제는 그의 호기심을 자극한다(P.246-247).
인간은 죽게 되어 있는 이상 종種이 지속되고 세계의 질서가 유지되도록 번식을 해야만 한다.
이ㅇ, 우정, 감사, 수많은 애정들이 그로서는 무시할 수 없는 말투로 그에게 말하고 있다. 그는 아직 자연의 정념밖에 느끼지 못한다. 모든 정념들 중 으뜸은 자기애인데, 이 자기애가 그를 여러분에게 맡기고 있다. 또한 습관이 그를 여러분의 손에 맡기고 있다(P.248).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제안되는 첫 번째 방법은 그를 서둘러 결혼시키는 것이다(P.249).
그는 관능의 맹목적인 본능을 따를 것이고 틀림없이 파멸할 것이다. 내가 취해야 할 합리적인 해결책은 그가 스스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지게 하고, 적어도 잘못에서 생겨나는 뜻밖의 사고로부터 그를 보호하고, 그에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위험을 숨김없이 보여 즈는 것이다(P.251).
미덕이 뿌리를 내리도록 만들기위해서는 오랜 준비가 필요하다. 어떻게 기질도 다양하고, 재능, 기분, 나이, 성性, 신분, 의견이 너무도 다른 그 많은 청중에게 똑같은 설교가 적합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P.254)
독서, 고독, 한가로움,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무기력한 생활, 여자들과 또래 젊은이들을 사귀는 것, 이런 것들이 그의 나이에 헤쳐 가기 위험한 길이며, 그를 끓임없이 위험으로 끌어들인다. 팔이 한창 일을 하고 있을 때 상상력은 휴식을 취한다. 몸이 아주 지치면 마음은 불타오르지 않는다. 가장 신속하고 손쉬운 예방은 그를 위험한 장소에서 떼어 놓는 것이다.
에밀은 농사를 좋아하고 그 일을 잘 알고 있다. 머리와 팔이 따로 움직인다. 그에게는 새로운 일, 그 새로움이 그에게 흥미를 일으키고 그를 즐겁게 하고 숨 쉴 틈조차 주지 않고 그의 정신을 집중시키고 그를 훈련시키는, 즉 그가 열중하고 몰두할 수 있는 새로운 소일거리가 필요하다. 그것은 사냥이다. 에밀은 건장하고 솜씨가 좋고 참을성이 많고 지칠 줄 모른다(P.255-256). 사냥은 신체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강하게 단련시킨다. 사냥을 하면 피와 잔인한 일에 익숙하게 된다. 사랑의 우수는 달콤한 휴식 속에서만 생겨나고, 운동의 격렬함은 사랑의 감정을 억누른다(P.257).
욕망의 다양성은 지식의 다양성에서 생겨나며, 사람이 제일 먼저 알게 되는 즐거움은 오랫동안 그가 추구하는 유일한 즐거움이 된다.
강한 영혼의 소유자들은 완전히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을 설득하고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언어이다(P.258).
권력이 확립되기 전에는 신들이 인류의 사법관이었다. 바로 그들 앞에서 개인들은 조약과 동맹 관계를 맺고 약속을 공헌했다(P.259).
정신의 언어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그것이 그의 마음을 거쳐 가게 만들어라. 냉정한 논리는 우리의 견해를 결정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지는 못한다(P.262).
나는 그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다. 자연 전체를 우리가 나누는 대화의 증인으로 부를 것이다. 자연을 창조한 영원한 존재를 내 말의 진실의 증인으로, 에밀과 나의 심판자로 삼을 것이다(P.263).
나는 교사가 어려운 경우에 부딪쳤을 때 자기 제자를 어떻게 가르쳐야하는지 예들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P.264).
신성한 결합이 모두로부터 존경받을 만한 이유와 감히 그 순수함을 더럽히려는 사람은 누구든 증오와 저주를 받게 되는 이유를 모두 강력하게 말해 주자. 방탕이 무섭다는 것, 방탕으로 인해 어리석은 바보가 된다는 것, 최초의 타락이 서서히 내리막 길을 타고 전반적인 타락에 이르러 마침내 방탕에 빠진 사람을 파멸로 이끈다는 사실에 대해 인상적이고도 진실하게 그에게 보이자(P.266). 우리의 약점을 민드는 것은 오로지 미지근한 우리의 의지이다. 그리고 사람은 자기가 강력히 원하는 것을 할 때는 항상 강한 법이다.'의지가 있으면 낭관은 없다.'
이 가르침들이 그 나이에 적절치 않고, 또 이성理性을 종아하게끔 만드는 형태를 이성에 부여하는 것이 어느 나이에든 중요하다는 것을 어째서 사람들은 보지 못한단 말인가? 그의 욕망을 냉담하게 잘라 내려하지 말고, 그의 상상력을 억누르지도 말고, 상상력이 괴물들을 낳지 않게끔 상상력을 지도하자(P.267).
"저를 포위하고 있는 모든 적에게서 저를 지켜 주시고, 특히 저를 배신하는 제 안에 있는 적들로부터 저를 지켜 주십시오. 의지에 반해 행동하게 만드는 저의 정념으로부터 저를 보호하시어 자유롭게 만들어 주십시오. 제가 정념의 노예가 되는 것을 막아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관능에 복종하지 않고 이성에 따르면서 나 자신의 주인이 되도록 강제해 주십시오."(P.268)
사회의 일원으로서 에밀은 사회적인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사람들과 함께 살도록 되어 있는 그는 사람들을 알아야 한다(P.272).
프랑스의 젊은 숙녀들은 모두 결혼하기 전까지 수녀원 부속 기숙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자라난다. 모든 종류의 가르침에는 그것을 알아야만 하는 나름대로의 적당한 시기가 있으며, 피해야만 하는 나름대로의 위험이 있다. 특히 이런 가르침에서는 그 위험들이 한데 결집되어 있다.
나의 방법이 동일한 목적 아래 모든 계획을 완수하고, 또 곤란한 점을 피하면서 동시에 다른 곤란한 점을 예방하게 될 때, 나는 그 방법이 유용하고 내가 옳다고 판단한다(P.274). 내가 제자를 엄격하고 딱딱하게 대하려고 하면 나는 그의 신뢰를 잃고 또 그는 곧 나를 피할 것이다. 내가 오로지 그를 가르친다는 계획만 갖고 그를 사교계에 데려간다면, 그는 내가 원하는 것 이상으로 배울 것이다. 자신과 동류인 인간들과 함께 살 줄 아는, 인간과 시민에게 가장 필요한 기술은 제외될 것이다.
진정한 미덕은 언제나 드물기 마련이네. 그러나 서두르지 말고 물러서지도 말게. 그의 마음을 쏙 드는 계획을 세우고 그를 사교계로 안내한다. 진정한 사랑은 환상, 허구, 착각이 아닌가?(P.275-276)
그의 일신이 처하게 될 위험으로부터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그의 상상력을 통해 그의 관능을 억누루르기 위해서, 그리고 특히 젊은이에게서 정숙함을 고스란히 빼앗는 방법만 써서 그에게 예절교육을 시키고는 엄청나게 비싼 수업료를 지불케 하는 그런 여성들로부터 그를 떼어 놓는 데 이 얼마나 유리한 방법인가(P.277).
어린아이들의 지도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똑같은 편견과 똑같은 준칙을 따른다. 왜냐하면 이들은 관찰도 잘 못하고 생각은 훨씬 더 잘 못하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탈선은 기질이나 관능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평판에서부터 시작한다. 만약 여기서 학교 교육을 받는 소년들이나 수녀원 부속 기숙학교 교육을 받는 소녀들을 다루고 있다 하더라도, 이는 그들에게도 진실임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받아들이는 최초의 가르침이자 진실로 맺어지는 유일한 가르침은 악덕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타락시키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보이는 본보기이다. 학교와 수녀원 부속 기숙학교 기숙생들의 나쁜 품행을 방치해 두면, 그들의 나쁜 품행을 고칠 방법은 영원히 없다. 나를 단지 가장교육에 관해서만 말하겠다. 그가 올바른 것들에 대해 바르게 생각하고, 건전한 이성과 건전한 의지도 가졌음을 보게 될 것이다. 그가 악덕에 대해서는 경멸을, 방탕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P.278).
그의 감정이 변질되는 것은 더 더디기는 하지만 달라진 사고방식 때문에 결국 변질될 것이고, 그때서야 비로소 그는 정말로 타락할 것이다. 그가 사교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는 거기서 최초의 교육과 완전히 반대되는 두 번째 교육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 교육을 통하여 그는 존중해 오던 것을 경멸하고 경멸하던 것을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취미는 습관에서 오는 법이다.
사교계에 입문하는 청년은 관능보다 허영심으로부터 지켜 주어야 한다(P.279-280).
그는 이미 동료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여서 자신의 조심성을 비웃고 또 그들을 흉내 내어 뻔뻔스러워지는 법을 배웠어야 한다(P.281).
사랑과 진심으로 조언하는 아버지의 애정에서 비롯되는 이익과, 아는 것을 판단할 수 있게 해 주는 경험에서 비롯되는 이익이네(P.283).
본능을 없애서는 안 되고 그것을 통제해야 한다(P.287).
신체는 이십 세까지 성장한다. 신체는 모든 자양분을 필요로 한다. 그때성욕의 절제는 자연의 질서에 합치한다. 그것을 위반할 때는 대개 자신의 체질을 해치는 법이다. 이십 세 이후부터 성욕의 절제는 일종의 도덕적 의무이다. 자기 자신을 다스리고 언제나 욕망을 지배하는 방법을 배우는 데 중요하다. 도덕적 의무에는 변형과 예외와 규칙들이 있다(P.288).
제자는 나쁜 일은 말할 것도 없고, 선생이 알지 못하고 원하지 않는 일이라면 어떤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소인배들은 결코 버리지 않을 또 다른 잘못은 언제나 교사의 위엄을 가장하고 제자의 마음속에서 완벽한 인간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말을 듣게 만들려면 듣는 사람의 입장에 서야 하고, 인간의 마음에 호소할 줄 알려면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어째서 모르는가? 완벽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사람들을 감동시키지도 못하고 설득시키지도 못한다(P.289).
사람들 앞에 나설 때 그의 태도는 소극적이지도 거만하지도 않으며 자연스럽고 진실하다(P.291).
그는 무엇보다도 자유를 사랑하며, 솔직함이야말로 자유의 가장 아름다운 권리들 주의 하나이기 때문이다(P.292).
그는 유익한 것만 말한다. 에밀은 너무 많이 배워서 결코 수다쟁이가 될 수는 없다. 모든 것에 참다운 가치를 부여할 만큼 사물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가진 사람이라면 결코 너무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상대방이 그에게 기울이는 관심과 그가 하는 말에 상대방이 가질 수 있는 흥미를 평가할 줄 알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별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말을 많이 하고,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말을 별로 하지 않는다. 배운 사람이라면 자신의 풍부한 지식을 쉽사리 공개하지 않는다(P.293).
그는 침착하고 냉정하여, 수줍어서 마음이 흔들리는 일은 없다(P.294).
방자한 모습은 오직 노예에게서나 보이는 것으로, 독립적인 사람에게서는 부자연스러운 가식은 전혀 없다. 이러한 꾸밈은 오직 그렇게 해야만 사람을 압도할 수 있는 천박하고 거만한 영혼의 소유자들에게 훨씬 적합한 것이다(P.294).
사람은 남을 사랑할 때 자기도 사랑받기를 원한다. 그의 나이와 품행, 그의 계획, 이 모든 것이 일치하여 그의 마음에 이 같은 욕망을 북돋아 주고 있다. 내가 그의 품행을 말하는 것은 그것이 여기서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품행이 반듯하고 남자들은 진정으로 여성을 숭배하는 사람이다(P.295). 그들은 더 진실하고 더 다정하며 마음에서 솟아나는 정념을 갖고 있다. 그의 정념은 신분에 따라 표현 방식이 현저하게 바뀔 것이다. 기혼 부인들 곁에선 더욱 신중하고 공선할 것이며, 미혼 여성들 곁에선 더 생기를 띠고 다정한 것이다.
자연의 질서에 대한 존경이 사회의 올바른 질서에 대한 존경보다 항상 우선할 것이다. 그는 제 또래의 고관보다는 자기보다 연장자를 더 존경할 것이다. 그는 대개 속해 있는 모임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층에 들기 때문에 항상 가장 겸손한 사람들 중 하나일 것이다(P.296).
에밀은 정중하기보다 다정할 것이고, 뽐내는 태도나 허영심이 없을 것이며, 천 번의 찬사보다 단 한 번의 애정 감동을 받을 것이다. 그는 태도나 몸가짐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며, 더 나아가 몸치장에도 신경을 쓸 수 있을 텐데, 그것은 취향이 고상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모습으로 호감을 주기 위해서이다.
이 모든 일이 에밀의 초기 교육의 한 가지 결과이다. 사람들은 마치 이 예법을 익힐 나이가 되어도 그것을 자연스레 익히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 기본적인 법칙을 구해야 하는 곳이 올바른 마음이 아닌 것처럼 우리에게 사교계의 이러한 예법을 대단한 비밀처럼 숨긴다. 진정한 예절은 사람들에게 호의를 표시하는 데 있다.
"관습적인 예절의 가장 불행한 결과는 그것이 모방하는 미덕이 없어도 통용될 수 있는 기교를 가르친다는 것이다. 교육을 통해 인정과 친절을 우리에게 불어넣어 주면, 우리는 예절을 갖추게 되든지 더 이상 예절이란 것이 필요 없게 될 것이다.
남의 마음에 듣기 위해 교활해지는 대신 그저 선량하기만 하면 충분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약점에 아첨하기 위해 거짓을 지어내는 대신 관대하기만 하면 될 것이다."
여기서 뒤클로 씨가 요구하는 그런 종류의 예절을 형성시킬 수 있는 교육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내가 지금까지 계획하고 있는 교육이다(P.298).
에밀은 취향의 원리에 대해 철학적 사고를 해 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이 시기 동안 그에게 가장 적당한 공부이다(P.301).
정신적인 것에서 취향의 법칙과 물질적인 것에서 취향의 법칙을 구별해야 한다. 물질적인 것에서 취향의 원칙은 전혀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모방과 관련된 모든 것에서는 정신적인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질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아름다움은 이렇게 설명될 수 있다.
취향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연적이다. 취향의 양식과 형태는 그가 살았던 집단들에 따라 다르다. 첫째 비교를 많이 해 보려면 수많은 집단들 속에서 살아 보아야 한다. 둘째 즐거움과 한가로움을 위한 집단들이 필요하다(P.302). 왜냐하면 사업상의 집단에서는 즐거움이 아니라 이익이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셋째, 불평등이 너무 크지 않고 세상 평판의 영향력이 완화 되어 있으며 허용심보다는 즐거움이 지배적인 집단이 필요하다.
인간은 그들의 작업에서 모방에 의하지 않고서는 아름다운 것을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한다. 취향의 진정한 모델들은 모두 자연 속에 있다. 우리가 자연이라는 스승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우리의 그림은 점점 더 왜곡된다.
우리들 이끄는 사람들이란 예술가, 고관대작, 부자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따르는 것은 그들의 이익 또는 허용심이다. 엄청난 사치가 지배력을 확립하고, 쉽사리 손에 넣기 어려운 값비싼 것들을 선호하게 만든다(P.303). 사치와 나쁜 취향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취향이 사치스러운 모든 경우에 그것은 언제나 잘못된 취향이다.
취향의 육성은 이러한 교제의 목표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결과들 중 하나다. 왜 좋은 취향은 좋은 풍습에서 기인하는가는 질문에 대한 더없이 명백한 또 하나의 해명이라고 생각한다(P.304).
물질적인 것이나 감각적인 판단과 관련된 것에서는 여성의 취향을 참조하고, 정신적인 것이나 이해력과 더 관련된 것에서는 남성의 취향을 참조하라(P.304).
글 쓰는 기술도 진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기 위해 사용되는 경우에는 결코 쓸데없는 공부가 아니다.
취향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민감하게 느끼게 만드는 지나친 섬세함 때문에 타락하기 때문이다. 이 섬세함에서 논쟁적인 정신이 생겨난다. 선호에 관한 논쟁을 벌이면서 철학과 지식이 확대된다. 이런식으로 사람들은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 그것은 다른 모든 관찰들이 행해진 뒤에야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많은 사람들과의 교제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교제를 하면서 대략적인 특징을 관찰하는 데 주의력을 다 써버리기 때문이다(P.305). 사람들은 저자들이 쓴 책보다 그들과의 대화에서 훨씬 더 많이 배운다. 사교의 정신이야말로 사고력을 발전시키고 시야를 가능한 한 멀리까지 확장시켜준다(P.306).
독서의 시기로써, 재미있는 책들을 읽을 시기이다. 이야기를 분석하는 법을 그에게 가르칠 시기이며, 웅변의 화법의 모든 아름다움을 민감하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시기이다. 외국어 공부는 일반 문법에 대한 연구로 이끈다. 프랑스어를 알기 위해서는 라틴어를 공부해야 한다. 말하는 기술의 규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언어를 서로 연구하고 비교해야 하는 것이다.
고대인들의 저술에서 웅변, 시 또는 모든 종류의 문학에서 그는 고대인들이 역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사실을 풍부하게 다루면서도 판단을 삼가는 것도 또 발견할 것이다. 오늘날의 작가들은 반대로 조금밖에 말하지 않으면서 판단을 많이 내린다. 이 두 가지 취향의 차이는 모든 유적에서 그리고 묘비에서도 느껴진다. 오늘날의 묘비는 찬사로 뒤덮여 있지만, 고대인의 묘비에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었다(P.307).
풍속을 연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취향을 연구할 수 있도록 나는 에밀을 공연에 데려갈 것이다. 왜냐하면 성장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 취향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곳은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연극은 진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을 즐겁고 재미있게 해 주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연극의 연구는 시의 연구로 이끈다(P.311). 연극과 시는 동일한 목적을 갖는다. 다정다감한 사람이 되라. 또한 현명한 사람이 되라(P.312).
나는 다른 곳에서 취향은 사소한 일을 잘 아는 기술에 불과하다고 말한 일이 있는데, 이는 지당한 말이다. 배려를 통해서, 우리는 좋은 것들이 우리들에게 가질 수 있는 완전한 진실성 내에서, 우리 능력의 범위 내에 있는 좋은 것들로 인생을 채우는 법을 배운다(P.312).
사람이 단체정신을 습득하는 곳은 군대뿐만이 아니며, 그 효과가 언제나 좋게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P.313).
건강은 절제에 의해서만 얻어지고 건강이 있으면 생활의 참된 기쁨도 없으므로 나는 육체적 쾌락을 위해서라도 절제할 것이다.
나는 자연으로부터 받은 감각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언제나 가능한한 자연 가까이 머물 것이다. 자연의 나의 즐거움에 적극적으로 기여할수록, 내 즐거움은 더욱 진실성을 갖게 될 것이라고 강하게 확신하면서 말이다. 모방할 대상을 선택할 때에 나는 항상 자연을 모델로 할 것이고, 욕구에서는 자연을 더 선호할 것이며, 취향에서는 언제나 자연과 의논할 것이고, .... . 쾌락을 앉아서 기다리기보다 찾으러 나설 것이다(P.314). 나는 관능적 쾌락을 만족시키기 위하서 노고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P.315).
아무도 우리 자신만큼 우리에게 소용이 되는 사람이 없다.
동양 사람들은 굉장히 향락적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간소한 집에서 간소한 가구를 놓고 산다(P.318). 세계는 정말 아름다운 궁전이다. "Ubi bene, ibi patria, 살기 좋은 곳이 조국이다."(P.319)
학문적 취향이 만들어 낸 좋은 점들 중의 하나, 아니 어쪄면 유일하게 좋은 점은 비천한 정념들을 약간은 진정시킨다는 것이다(P.321).
내 교제 관계의 유일한 유대는 상호 간의 애정, 취향의 일치, 성격의 합치일 것이다. 독립과 평등으로 인해 내가 맺고 있는 교우관계에서는 천진한 호의가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다. 의무나 이해관계가 쓸데없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곳에서는 기쁨과 우정만 지배할 것이다(P.322).
운동과 활동적인 삶은 우리에게 새로운 식욕과 새로운 미각을 만들어 줄 것이다(P.329).
5권(청년기의 마지막 단계)
성과 관계없는 모든 점에서 여성은 남성과 동일하다. 여성은 똑같은 신체 기관, 똑같은 욕구, 똑같은 능력을 가졌다(P.340).
남녀가 서로 결합할 때에 각자는 공동의 목적을 향해 또같이 협력하지만 그 방식은 서로 다르다. 한쪽은 능동적이며 강해야 하고 다른 한쪽은 수동적이고 약해야 한다.
남성의 가치는 그의 힘에 있다. 남성은 그가 강하다는 것만으로 상대의 마음에 든다. 그것은 사랑의 법칙이 아니라, 사랑 이전에 자연의 법칙이다(P.341).
지고한 존재인 신은 모든 면에서 인류에게 명예를 주고자 했다. 남성에게 무제한적인 성향을 주면서 동시에 그것들을 규제할 규율도 부여하여 남성이 자유로우면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신은 여성을 무한정한 욕망에 내맡기면서도 그것들을 억누를 수 있는 수즙음을 덧붙였다.
그러므로 여성은 남성을 밀쳐 냄으로써 언제나 자신을 방어한다.
남녀의 체질에서 오는 세 번째 귀결은 더 강한 남성이 겉보기에는 지배자이지만 사실은 더 약한 여성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P.343).
온 집안을 하나로 결속하여 유지시키려면 얼마나 많은 애정과 배려가 그녀에게 요구되는가! 그뿐만 아니라 이 모든 것은 미덕이 아니라 취향이어야한다. 그렇지 못하면 인류는 곧 소멸해 버릴 것이다.
불평등은 편견의 산물이 아니라 이성의 산물이다(P.347).
그녀가 얌전하고 세심하며 조심성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양심에서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자신의 미덕을 입증하여야 한다.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마찬가지로 그 자신의 어미를 존경하는 것도 중요하다(P.348).
그녀들의 고유한 본분은 아이를 낳는 일이다. 여성의 본분은 어머니이다(P.349). 그것이 여성의 기질과 취향이다. 여성이 노천의 거센 풍상, 험한 노동, 힘든 일, 전쟁의 위험 속으로 뛰어들겠는가?
플라톤 "국가"에서 여성에게도 남성과 똑같은 훈련을 시킨다(P.350). 인간의 마음은 가장이라는 일종의 작은 조국을 통해 있다.
성격에서나 기질에서나 남성과 여성은 동일하게 형성되어 있지 않고 또 그리되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이 일단 증명되면, 곧이어 그들이 동일한 교육을 받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자연이 정한 지침을 따라 둘은 서로 협력해서 활동하지만 똑같은 일을 해서는 안 된다(P.351).
그녀들이 예뻐서 남성의 마음에 든다고 하여, 그들이 애교를 떨어 우리 남성들을 호린다고 해서, 그녀들이 여러분에게 배운 기술로 우리의 호감을 사고 우리를 만족시킨다고 해서, 그녀들이 잘 차려입는 것을 우리 남성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그녀들이 틈틈이 우리 남성들을 정복할 무기의 날을 세우도록 내버려 둔다해서, 이 모든 것이 우리 남성들의 잘못이란 말인가?(P.352)
여성은 여성으로서 가치를 더 갖고 남성으로서는 가치를 덜 갖는 법이다.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모든 곳에서 그녀들은 우위에 선다. 반대로 여성이 우리 남성의 권리를 빼앗으려 드는 모든 곳에서 그녀들은 아무리 해 봐야 언제나 우리 아래에 있다.
그것은 여성의 자질과 우리 남성의 자질이 서로 양립할 수 없어서 이도 저도 제대로 챙길 수 없기 때문이다. 현명한 어머니들이여, 나를 믿어 달라. 자연을 부인하기 위해 그대들의 딸을 신사로 만들지 말고 숙녀로 키워라(P.353).
여성에게 그토록 상냥하고 섬세한 재능을 부여한 자연이 명한 것은 결코 그것이 아니다. 자연은 여성이 생각하고 판단하며 사랑하고 알기를 원한다. 여성이 자신의 얼굴만큼이나 자신의 정신도 가꾸기를 원한다. 여성에게 없는 힘을 보충하고 우리 남성이 가진 힘을 잘 이끌라고 자연이 그녀들에게 부여하는 무기이다. 여성은 많은 것들을 배워야 하는 데 단 그녀들에게 적합한 것들만 배워야 한다.
내가 여성의 특정할 역할을 고려하거나, 여성의 자연적 성향을 관찰하거나, 아니면 여성의 의무에 대해 생각을 해 보면, 이 모든 것이 한 목소리로 여성에게 합당한 교육의 형태가 어떤 것인지 나에게 가르쳐 준다. 여성과 남성은 서로를 위해서 만들어졌다(P.354). 자연의 법칙 자체에 의해서도 여성은 자신을 위해서나 자식들을 위해서나 남성의 판단에 좌우된다. 여성들은 남성들의 마음을 만족시켜야 한다. 그녀들이 현명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사람들이 그렇다고 인정을 해야 한다. 여성들의 명예는 그녀들의 행동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들에 대한 평판에도 있는 것이다. 여성의 교육방식은 우리 남성들의 교육 방식과는 반대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남성의 경우 세상 평판이 미덕의 무덤이지만, 여성에게는 그것이 미덕의 왕좌인 것이다.
아이들의 좋은 체질은 우선 어머니의 체질에 달려 있으며, 남성이 받는 첫 교육은 여성의 보살핌에 달려 있다. 그들의 품행, 정념, 취향, 즐거움 그리고 그들의 행복까지 여성들에게 달려 있다. 이처럼 여성이 받는 모든 교육은 남성들과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남성들의 마음에 들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그들의 애정과 칭송을 받으며, 그들이 어렸을 때는 키우고 크면 보살펴 주고, 그들에게 충고와 위로를 주며, 그들에게 삶이 즐겁고 감미로운 것이 되도록 해 주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언제나 변치 않는 여성의 의무이며 어릴 때부터 여성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들이다(P.355).
진실한 남성을 사랑하고 그의 마음에 들려는 여자는 그에 걸맞은 방법들을 택한다. 그 목적을 자연의 목적에 맞추면 여성은 자신에게 알맞은 교육을 받게 될 것이다(P.356).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 뒤에야 그들을 그와같은 규칙에 따르게 만들 수 있다.
육체가 영혼보다 먼저 태어나니, 첫 번째 교육은 육체에 대한 교육이어야 한다. 이 순서는 남녀에게 공통적이다. 이 교육의 목적은 남녀에게서 다르다. 즉 한쪽에서는 목적이 힘의 배양이며 다른 한쪽에서는 매력의 배양이다. 여성에게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우아하게 해내기 위한 만큼의 힘이 필요하며, 남성들에게는 모든 일을 쉽게 해내기 위한 만큼의 솜씨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도원 기숙여학교는 기숙생들이 먹는 것은 조야하지만 많이 뛰고 달리는 활동을 하고 밖으로 나가서 또 정원에서 놀이를 한다는 점에서 여자아이들에게 부모의 집보다 더 바람직하다.
스파르타의 소녀들은 소년들처럼 전쟁놀이로 훈련을 했다. 그리스의 교육은 매우 적절한 것이었다. 처녀들은 대중 앞에 나서기도 했는데, 청년들과 섞이지 않고 그녀들끼리만 모여서 그렇게 했다. 이 관습이 남성들의 마음에 어떤 인상을 심어주었던 간에, 그것은 기분 좋고 절도 있으며 몸에 유익한 훈련을 통해 젊은 여성에게 좋은 체질을 형성해 주고 품행을 위태롭게 하지 않으면서 남을 즐겁게 해 주려는 변함없는 욕망을 통해 여성의 취향을 갈고닦는 아주 좋은 훌륭한 관습이었다(P.357-358).
이 여성들도 결혼을 하면 대중 앞에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녀들은 집 안에 머물면서 가사와 가족을 보살피는 데에 온 정신을 쏟았다. 바로 이것이 자연과 이성이 여성에게 정해 준 생활 방식이다.
아직도 과거의 균형미가 예술에서 모델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의 사지를 사방에서 옥죄는 고딕식 속박과 여기저기 잡다하게 동여매는 끈들이 그리스인듣에게서는 하나도 없었다(P.359).
자연을 거스르고 속박하는 모든 것은 악취미이다. 이 말은 몸을 치장하거나 정신을 장식하는 것 둘 다에 해당된다. 목숨과 건강, 이성 안락함이 앞서야 한다.
어린아이의 경우 남녀에게 공통되는 놀이가 많으며 또 당연히 그래야 한다. 소년들은 움직임과 소란스런 소리를 뒤쫓아 다닌다. 북, 팽이, 장난감 마차 따위를 좋아한다. 그녀들은 거울, 보석, 정치의 그리고 특히 인형처럼 눈을 현혹시키는 것과 장신용들을 더 좋아한다. 남의 마음에 드는 기술의 구체적인 양삼은 몸치장하는 데에서 드러난다(P.360).
아이에게 행할 첫 수업의 동기가 자연스럽게 주어진다. 사실 거의 모든 소녀들은 읽고 쓰기를 배우는 것을 싫어한다. 그렇지만 바늘을 잡는 일이라면 언제나 기꺼이 배우려 든다. 나중에 어른이 될 때를 미리 상상하며 언젠가는 이 기술들이 자신의 몸을 치장하는 데 쓸모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흐뭇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발적인 발전은 쉽게 태생에까지 이어질 것이다. 나뭇잎, 과일, 꽃 등의 그림이나 옷 주름의 표현 이를테면 옷치장에 멋진 윤곽을 주는 데 도움이 되는 정도 그리고 자수를 할 때 마음에 드는 본이 없어서 스스로 하나 만들어 볼 때 도움이 되는 정도면 그녀들에게는 충분하다. 대체로 남성의 경우에도 공부를 실용적인 지식에 한정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여성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왜냐하면 여성들의 생활은 힘은 덜 들지만 남성들을 뒷바라지하는 데 더 열성을 쏟으며 또 그래야 하므로, 또한 잡다한 일들로 시간을 지속적으로 내지 못하고 또 그래야 하므로, 여성들이 할 일을 제쳐 두고 특정 재능에 몰두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보다 더 순하긴 하나 여자아이들에게는 더 많은 위엄을 행사해야 한다(P.362-363). 어머니에게 필요한 기술은 자신이 딸에게 시키는 모든 일이 어떤 쓸모를 갖는지 그녀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남자아이보다 여자아이의 지능이 더 빠르게 발달하는 만큼 그렇게 하기가 더 쉽다. 나는 남자아이에게도 억지로 읽기를 가르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하물며 여자아이에게 읽기가 어떤 쓸모가 있는지 알기 전에 그것을 가르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여자아이들은 하나같이 호기심이 매우 많아서 언제고 그럴 기회가 있고 시간만 있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배우게 될 것이다. 그녀들은 아마도 무엇보다 먼저 숫자를 배워야 할 것이다. 계산만큼 언제 어느 때나 뚜렷한 쓸모가 있고 오랜 연습이 필요하고 슬수하기 쉬운 것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읽기보다 쓰기를 먼저 배우고, 쓰는 것도 펜으로 쓰기에 앞서 바늘로 쓰기를 먼저 배운 어떤 여자아이를 알고 있다.
그녀들은 예절이라는 가장 끈질기고도 가장 모진 구속에 평생 묶이게 될 것이다(P.363-364). 우선 그녀들을 속박에 익숙하도록 훈련시켜서 그것이 별것 아닌 것이 되게 만들고 또 자신의 모든 변덕을 다스리도록 훈련시켜서 남들의 뜻에 따르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어리석은 사회 제도 안에서는 올바른 여성의 일생이란 자기 자신과의 끝없는 투쟁의 연속이다. 여성이 우리 남성에게가져온 해악의 고통을 여성 자신의 함께 겪는 것은 당연하다.
소녀들이 자신의 일거리를 지겨워하거나 놀이에 탐익하지 못하게 하라. 페늘롱의 말처럼 한쪽에는 온갖 권태를 반대로 다른 한쪽에는 온갖 쾌락을 몰아넣는 저급한 교육에서는 사실 늘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P.365). 애정이란 의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또 강요는 이런 것이 유용하지 않다. 의존은 여성에게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딸들은 스스로 순종하게끔 태어났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무엇에나 극단적인 그녀들은 남자아이들보다 더 놀이에 열중한다. 이것은 내가 말한 악습들 중 두 번째 것으로, 이처럼 놀이에 열중하는 것은 절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성들에게 특유한 여러 악덕들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변덕스러운 취향은 그녀들에게 과도한 취향만큼 해로운데, 이 둘은 같은 근원에서 생겨난다. 그녀들에게 쾌활함, 웃음, 시끄러움, 장난기 섞인 놀이 등은 금하지 말라. 그러나 싫증이 나서 다른 것으로 옮겨 가지는 못하게 하라. 습관은 자연을 보완하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습관적인 제약에서 온순함이 생긴다. 여성들에게 한평생 온순함이 필요한 것은 그녀들은 내내 한 남성에게 혹은 남성들의 판단에 매여있고,이 판단을 넘어서는 것이 절대로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자질은 온순함이다. 대개의 경우 악덕을 일삼고 늘 결점투서이인 남성 같은 불완전한 존재에게 순종할 운명을 타고난 여성은 일찍부터 옳지 않은 일조차 참아내는 법을 배워야하며, 남편의 잘못을 불평하지 않고 견뎌 내는 법도 배워야 한다. 남성이나 여성이나 자신의 성에 합당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P.367).
딸들은 언제나 순종해야 하지만, 어머니가 늘 엄한 것은 안 된다. 꾀는 여성의 타고난 재능이다.
우리의 거추장스런 제도들로 인해 어쩔 수 없어 그녀들의 정신이 예민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식탁에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못하게 금하는데, 이는 사람들이 교육에 쓸데없는 규범들을 덧붙이지 않으면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P.368).
존재하는 것은 다 좋은 것이며 보편적인 법칙은 어느 하나 나쁜 것이 없다. 여성에게 주어진 이 특별난 재주는 여성이 힘을 덜 가진 것에 대한 매우 공정한 보충이다. 재능에서의 이러한 우의를 통해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유지하고, 또 그에게 순종하면서도 그를 지배한다. 우리 남성의 결점들, 여성의 소심함과 연약함 등 모든 것이 여성에게는 불리하다. 여성은 그 재주와 아름다움 빼고는 가진 것이 없다. 재치만이 여성의 진정한 자산이다. 남성의 상황과 남성 고유의 장점들을 통용할 줄 아는 그런 재치이다. 교활하고 못된 여자들이 이를 악용한다는 사실을 나도 잘 알고 있다(P.370).
여성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것은 오히려 가장 수수한 옷일 때가 많다. 이 점에서 처녀들의 교육은 완전히 거꾸로 되고 있어서, 그녀들에게 상으로 장신구를 약속하고 지나친 치장을 좋아하게 만들고 있다. 아름다움의 진정한 힘은 바로 그 자체로 빛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 주어야 한다. 유행을 좋아하는 것은 악취미이다(P.371).
올바른 몸단장에 대한 진정한 관심은 거의 화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양가의 아가씨들은 공부와 일이 그녀들의 일과를 채운다. 지나친 화장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허영심에서 비롯된다기보다 권태에서 비롯된다. 여성의 일들을 사랑하게 만들고, 겸손하게 만들며, 자기 살림을 보살필 줄 알게 하고, 집안일을 돌보게 하라. 그러면 호사스런 화장은 저절로 없어질 것이며, 그로서 그녀들은 더 좋은 취향을 갖추게 될 것이다(P.373).
아름다움이란 타고난 것이어서 예뻐지겠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또 아직 어려서 멋을 부릴 수도 없다. 목소리의 폭이 넓어지고 단단해지고 낭랑해지며, 두 팔이 발달하고, 거동에 틀이 잡히고, 어떻게 차려입든 남의 시선을 끄는 방법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때부터는 바느질과 솜씨만이 아니라 새로운 재능들이 나타나 이미 그것의 효용이 느껴진다.
나는 엄격한 교사들이 소녀들에게 노래도 춤도 그리고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어떤 재주도 가르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속된 노래는 죄다 죄악이고 춤은 악마가 만든 것이어서 소녀들은 기도와 일 이외에 다른 즐거움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들의 성을 고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들의 나이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생기 있고 발랄하고 쾌활해야 하며, 맘껏 노래 부르고 춤추어야 하며, 그 나이 때의 순수한 모든 즐거움들을 맛보아야 한다. 더욱 몸가짐을 신중하게 하고 얌전해져야 하는 때는 언제나 너무 일찍 다가오는 법이다.
기독교는 모든 의무들을 너무 과장한 나머지 그것들을 실천 불가능하다고 유명무실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또 그것은 여성들에게 노래와 춤과 세속의 모든 즐거움을 금지함으로써, 그녀들을 가장에서 무뚝뚝하고 잔소리나 하는 참아 내기 힘든 존재로 만든다. 나는 젊은 알바니아 여인이 이스라한의 하렘을 위해 남자들을 즐겁게 하는 재능을 개발하듯이 젊은 영국 여인도 동일한 정성을 들여 장래 남편의 마음에 들 수 있는 기분 좋은 재능들을 개발하기 바란다(P.374-375).
그녀들이 배우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배웠으면 한다.
재미가 목적인 예능에서는 모든 것이 아이의 선생이 될 수 있다. 아버지, 어머니, 오빠, 언니, 친구들, 여자 가정교사, 거울 그리고 특히 아이 자신의 취향 자체가 아이의 선생이다. 소녀들이 요청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먼저 가르치려 들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상을 받는 것을 임무로 만들어서도 안 된다. 이런 종류의 학습에서는 잘해 보려 하는 것 자체가 아이 최초의 성공이 된다(P.377).
솜씨와 재능에 의해 취향이 형성된다. 그리고 취향을 통해서 정신은 온갖 종류의 아름다움에 대한 관념들을, 그리고 마침내 그것들과 관련된 도덕적 관념들을 자기도 모르는 새 받아들이게 된다. 말을 하는 재능은 남의 마음에 드는 기술들 중 으뜸가는 것이다(P.378).
남성은 자기가 아는 것을 말하고, 여성은 남의 마음에 드는 것을 말한다. 말하기 위해서 한쪽은 지식을 필요로 하고 다른 한쪽은 취향을 필요로 한다. 양쪽이 하는 말은 진실이라는 형식 말고 다른 공통의 형식을 가져서는 안 된다.
선천적으로 그녀들은 상스러운 것들을 싫어해서 교육을 통해 그녀들이 그런 것들을 피하게 가르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대체로 교제에서 남성의 예절이 더 친절하다면 여성의 예절은 더 다정다감하다. 이 차이는 제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선천적인 것이다. 여성의 예절은 우리 남성의 예절보다 거짓이 적다고 볼 수 있다. 최초의 가르침은 자연에서 오며 사람의 기술은 그것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야 하는지는 우리의 관습에 따 결정 하면 된다. 소녀들은 때로는 훨씬 더 솔직한 우정을 진심으로 주고받는다.
남자아이에게도 주제넘은 질문을 못 하게 해야 하지만 여자아이에게는 더 금지해야 한다(P.380). 그녀들을 자극해서 별 위험이 없는 동안에는, 쉽게 말하는 연습을 시키고 재빨리 대꾸 할 수 있게 하고 정신과 혀를 풀어 주는 편이 좋다. 이런 대화들은 항상 즐거움으로 바뀌어서, 기술적으로 잘 준비되고 올바로 이끌어지기만 하면 그 나이에는 매우 재미있는 놀이가 된다.
여성의 이성은 실천적인 이성이다. 그 이성은 그녀들의 이미 알려진 목적에 도달하는 방법들을 더 능숙하게 찾아낼 수 있게 해 주긴 하겠지만, 목적 자체를 발견할 수 있게 하지는 못한다. 남녀의 친교관계는 정말 놀라운 것이다. 이 친교에서 하나의 정신적 인격체가 생겨 나는데, 여성이 그 눈이고 남성이 그 팔이다. 둘은 서로 매우 의존하고 있어서 여성은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남성한테서 배우고 남성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여성에게서 배운다. 둘의 조화 속에서 보는 것은 공동의 목적을 지향한다(P.381).
여성의 신앙은 권위에 예속되어 있다. 딸은 어머니의 종교를, 아내는 남편의 종교를 따라야 한다. 자연의 질서를 따른 어머니와 딸의 순종심이 하느님 앞에서 오류의 잘못을 씻어 줄 것이다. 그녀들은 스스로 판단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아버지와 남편의 결정을 교회의 결정처럼 따라야 한다.
신앙의 원칙을 혼자 힘으로 도출해 내지 못하는 여성들은 자명한 이치와 이성의 법칙으로 자신의 신앙을 제한하지 못하고 수많은 외부적 충동에 끌려다녀서, 언제나 진리에 못 미치거나 아니면 지나쳐 간다. 여성들은 언제나 극단적이어서 불신자이거나 아니면 광신자이다. 지혜와 신앙심을 겸비한 여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P.382).
소녀들에게 종교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그녀들에게 종교와 관련된 그 어떤 것도, 기도문조차 외우게 하지 말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기도는 짧게 하라. 언제나 기도에 어울리는 조용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라(P.383).
신앙 조목을 설명할 때는 문답식이 아니라 직접 가르쳐 주는 방식으로 하라(P.384).
신의 법칙이 모든 인간에게 부과하는, 자기 이웃과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를 누구나 잘 알고 이행하는 것은 인간 사회와 그 구성원들 각자에게 중요하다(P.389).
온 민족에게는 세상 평판보다 우선시하는 하나의 규범이 있다. 다른 모든 규범들은 흔들리지 않는 이 규범과 방향이 일치해야 한다. 이 규범은 편견마저 심판한다.
내적 감정이 바로 그 규범이다. 여성의 교육에 이 두 규범이 협력하지 않는다면, 그 교육은 언제나 불완전한 것이 되리라는 점만 지적해 두겠다.
여성들에게는 두 길잡이 사이를 중재하는 능력 다시 말해 양심을 항상 바로잡아 주고 편견의 오류를 교정해 주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이 능력이 곧 이성이다(P.392).
남편에 순종하고 충실해야 하며 아이들에게는 자애와 정성을 다해야 하는 그녀의 의무는 여성이라는 상황에서 오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분명한 결과이다(P.393).
남편이 자신을 선택한 것이 옳았음을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 줌으로써아내에게 돌아오는 명예로 남편이 존경받게 해 주어야 한다(P.394).
원칙이 모든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 준다. 나는 존재하는 것을 연구하고 그 원인을 찾는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 다 좋다는 사실을 발견한다(P.394). 남편은 완벽한 배려를 실천하려 한다. 아내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보고 있다. 질서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으면서, 동석자들 중 신분이 제일 낮은 사람과 제일 높은 사람이 똑같이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P.395).
사교계의 여성은 재치에 있어서 손님을 환대하는 솜씨에 뛰어나다(P.396).
재치, 통찰력, 세심한 관찰력, 이것이 여성들의 지혜이며 그것을 활용하는 솜씨가 바로 그녀들의 재능이다.
사람들은 여성들은 진실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여성들은 후천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그녀들의 눈, 안색, 호흡, 겁먹은 모습, 나약한 저항은 자연이 그들에게 준 언어이다(P.398).
그녀에게는 남성을 아랑곳하지 않은 척하면서 남성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나는 애교도 한도만 지키면 겸손하고 진실한 것이 되어서, 그것을 정숙함의 법칙으로 삼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P.399).
그녀의 속직함, 올곧음, 신뢰할 수 있는 교제, 충실한 우정 등을 칭찬한다.
철학의 가장 확실한 효과가 우리 세기의 여성들에게 얼마 안 남아 있는 정숙의 관념마저 없애 버리는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여성이 맨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도 여성의 의무를 사랑하는 법이다. 이것이 그 의무들을 수월하게 만들어 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어떤 처지에 있든 또 나이이든 각기 나름의 의무가 있다. 하늘이 당신을 어떤 지위에 두든 여러분은 반드시 미덕을 갖춘 여성이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이 만들어 준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진리들이다. 학문적인 원리와 공리公理의 탐구같이 관념들을 일반화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들은 모두 여성의 소관이 아니다.여성의 공부는 모두 실천과 관련되어야 한다. 남성이 발견한 원리들을 적용하는 것이 여성이 할 일이고, 남성이 원리를 확립하게끔 이끌어 주는 관찰을 하는 것이 여성의 일이다. 창의적인 일이란 여성의 능력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여성은 정밀한 학문에서 성공을 거둘 만한 정확성과 주의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여성의 역학力學은 우리 남성의 역학보다 더 강력해서 그 모든 지렛대들을 수단 삼아 인간의 마음을 뒤흔든다. 여성은 남성의 정신을 철저히 연구해야 한다. 남성들의 느낌을 그의 말, 행동, 시선, 몸짓을 통해 간파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신의 말, 행동, 시선, 몸짓을 통해 그런 기색조차 없이 자기 마음에 드는 느낌들을 남성에게 불어넣을 줄 알아야 한다. 인간의 정신에 관해서는 남성이 여성보다 더철학적으로 잘 따진다(P.401-402). 실험적인 도덕을 발견하는 것은 여성이 할 일이고, 그것을 체계화하는 것은 우리 남성이 할 일이다. 여성에게는 재치가 남성에게는 재능이 더 많아서, 여성은 관찰하고 남성은 추리한다. 인간의 기술은 자연이 제공한 도구를 완성시키려고 끊임없이 노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교계는 여성들의 교본이다. 진정한 주부는 사교계 여성이 되기는커녕 수녀원의 수녀 못지않게 자신의 집에만 틀어박혀 지낸다. 프랑스에서 처녀들은 수녀원에서 살고, 아내들은 사교계를 찾아다닌다. 과거에는 정 반대였다. 처녀들에게는 숱한 놀이와 대중적인 주제가 있었다. 아내들은 집 안에 틀어박혀 살았다. 이 관습이 좀 더 합리적이어서 풍습이 더 잘 유지되었다(P.403).
내가 어머니들이 자기 딸을 사교계로 인도하기를 바라는 것은, 그녀가 딸에게 사교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을 전제하고 하는 말이다.
수녀원 부속 기숙학교는 진정 교태를 가르치는 학교이다. 내가 말한 정숙한 교태가 아니라, 여성에게 온갖 괴벽을 만들어 주고 더없이 엉뚱한 어린 멋쟁이들을 만들어 내는 교태의 학교인 것이다.
대도시에서는 개인 교육이 사라지고 말았다. 대도시에서는 사교계가 너무도 보편화되 있다(P.405). 부모를 남처럼 바라보고, 가정의 소박한 풍속은 그것의 매력을 이루던 친근함과 함께 사라지고 있다. 이 시대의 쾌락들과 그것을 지배하는 규범들에 대한 취향을 젖먹이 때부터 익히는 것이다.
이 모든 갖가지 교육들은 한결같이 소녀들을 상류 사회가 즐기는 쾌락들에 대한 취향에, 또 이 취향에서 바로 생겨나는 정념들에 빠트린다. 대도시에서는 태어나면서부터 타락이 시작되고, 작은 도시에서는 철이 들면서부터 시작된다(P.406).
언제나 중요한 것은 자연적 감정을 간직하거나 복원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도덕 교리문답은 종교 교리문답만큼이나 짧고 분명해야 하지만, 그만큼 엄격해서는 안 된다. 바로 그 의무든 안에서 자신의 기쁨의 원천과 권리의 토대를 밝혀서 보여 주어야 한다. 사랑받기 위해 사랑하는 것이, 행복해지기 위해 상냥해지는 것이, 복종을 받기 위해 존경할 만한 사람이 되는 것이, 명예를 얻기 위해 자기 명예를 지키는 것이 그토록 힘든 일인가?(P.408) 여성의 지배력은 여성의 미덕과 함께 시작된다. 여성은 매력이 피어나자마자 벌써 그 부드러운 성격으로 지배력을 갖게 되고 자신의 정숙함을 위엄 있는 것으로 만든다.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내면적 감정 즉 여성은 남성이 가진 자질의 자연적 심판자라는 내면적 감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풍양속을 가졌던 국민들은 모두 여성을 존경했었다. 그녀들의 축원이나 애도가 국가의 가장 위엄 있는 판단으로 인정받았다. 로마에서는 위대한 혁명들이 여성들에게서 비롯되었다. 한 여인 때문에 로마는 자유를 얻었고, 한 여인 때문에 평민들이 집정관 자격을 얻었으며, 한 여인으로 인해 십대관의 압제가 종식되었으며, 여인들 때문에 포위당했던 로마는 한 추방자의 손에서 구원받을 수 있었다(P.409).
사랑에서 모든 것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은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사랑이 우리에게 부추기는 감정들은 실제하는 것으로 그것은 사람이 우리로 하여금 사랑하게 만드는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감정들이다(P.411).
이성으로 미덕을 이끌어야 한다(P.414).
어머니는 여성의 으뜸가는 의무들 중 하나가 청결함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자연이 부과한, 면제받을 수 없는 특별한 의무이기 때문이다(P.419).
여성은 남성에게 순종하도록, 남성의 부당함까지 견뎌 내도록 태어났다(P.422).
기본적인 실천으로 도덕만 실천하는 그녀는 선을 행하므로써 하느님을 섬기는 데 자신의 생활을 고스란히 바치는 셈이다.
소피는 미덕을 사랑한다. 이 사랑이 그녀의 으뜸가는 정열이 되어 있다(P.423).
여성은 남성보다 판단력이 더 일찍 형성된다. 거의 여기서부터 방어적인 입장에 놓여 있고, 지켜 나가기 힘든 것을 맡고 있는 여성이 남성보다 선과 악을 핑연적으로 더 일찍 알게 되기 때문이다(P.424).
소피는 여성과 남성의 의무와 권리에 대해 배웠다. 그녀는 남성의 결점과 여성의 악덕을 알고 있으며, 그와 반대되는 장점과 미덕도 알아서 그 모든 것을 가슴 깊이 새겨 놓았다. 성실한 남성, 유덕한 남성을 생각하면 더 흐뭇해지고, 자신이 그러한 남성을 위해 태어났고 그러한 남성과 어울리며, 그 남성에게서 받을 행복에 자신이 보답할 수 있다고 느낀다.
남성이 여성의 가치에 대한 타고난 심판자이듯이, 여성은 남편의 가치에 대한 타고난 심판자이다(P.425).
천성을 잘 타고난 것이 재주가 많은 것보다 그녀에게는 더 도움이 된다(P.426).
일생의 운명이 결혼에 달려 있다.
좋은 아내를 선택하는 것도 그렇지만, 좋은 남편을 선택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도 없다. 너는 보기 드문 아내가 될 것이고 우리 일생의 명예이자 우리 노년의 행복이 될 것이다. 숱한 남성들 중에서 네게 어울리는 남성을 찾아내어, 그를 알아보고 너를 그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단다.
완전한 행복이란 이 세상에 없지만, 가장 큰 불행이면서 언제나 피할 수 있는 불행은 자신의 잘못으로 불행해지는 것이다(P.429).
자연스럽게 합치되는 것들이 있고 제도에 의해 합치하는 것들이 있으며, 세상 평판에만 기인하는 것들이 있다. 부모는 나중 두 종류의 합치점의 심판자이고, 첫 번째 것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식이다. 아버지의 권위로 성사된 결혼에서는 오로지 제도와 세상 평판에 기인한 합치점들만 따르게 된다. 그리하여 결혼은 사람들이 아니라 신분과 재산이 하게 된다. 운명과 무관하게 결혼이 행복하거나 불행해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사람 관계에 의해서만 그러하다.
부부는 서로 맞아야 한다. 서로의 애정이 부부를 묶어 주는 최초의 끈이어야 한다(P.430). 사랑의 의무에는 결합하기에 앞서 먼저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또 다른 의무가 반드시 따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아무도 없앨 수 없는 자연의 권리이다(P.431).
재산을 추구하지 말거라. 우리는 거기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하늘에 감사하고 있으니. 우리는 부를 잃고 난 다음에야 비로서 행복을 맛보았단다.
온갖 덫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것, 이성도 피하지 못하는 유일한 덫은 관능의 덧이다. 나는 너를 네 이성에게 맡기는 것이지 네 마음의 성형에 맡기는 것이 아니다. 네가 냉정을 유지하는 한은 네 자신을 판단하는 사랑으로 있어야 한다. 그러나 네가 사랑하게 되거든 곧 너를 보호되는 일을 어머니에게 넘기도록 해라.
부모는 딸의 신랑감을 고르면서 딸과는 형식적인 상의 밖에 하지 않는다. 이것이 보통의 관습이다. 출신, 재산, 신분, 세상 평판은 우리에게 아무런 이유도 되지 못할 것이다. 사람됨이 네 마음에 들고 성격이 나와 맞는 성실한 남자를 선택하길 바란다(P.433).
이탈리아 여성의 기질, 영국 여성의 감수성과 아울러 그녀를 자기 마음과 관능을 억제 할 수 있는 스페인 여성의 자존심을 갖고 있다. 스페인 여성은 애인을 구할 때조차 자신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애인을 쉽게 구하지 않는다(P.434).
자연이 아닌 것은 모두 다 자연에 어긋난다. 나는 그것을 수백 번이나 증명했다.
소피는 평범한 영혼에 좋은 천성을 가졌을 뿐이다. 그녀가 남들보다 더 가진 것은 모두 그녀가 받은 교육의 산물이다.
원시상태에서 자연스러운 것과 사회 상태에서 자연스러운 것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최초의 상태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아주 원시적이고 공통된 생존 형태만 갖고 있어서 모든 여성들은 모든 남성들에게 맞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사회 상태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성격이 사회 제도에 의해 개발되고, 그 정신도 교육뿐 아니라 천성과 교육의 - 잘되었든 잘못되었든 - 질서정연한 협력을 통해 교육의 정해진 형태를 부여받았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서로 잘 맞는지 알기 위해서는 아니면 최소한 가장 합치점이 많은 선택을 하려면 서로를 서로에게 보여 주지 않고 짝지어 줄 수 없게 되고 말았다(P.442-443).
신분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의 격차가 커질수록 부부의 유대는 더 약해진다. 또한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아버지와 남편은 적어진다. 주인도 노예도 더 이상 가족을 갖지 못하고 어느 쪽이나 다 자기 신분만 바라본다.
여러분이 그 폐단을 예방하고 행복한 결혼을 시키고 싶으면 편견을 없애고 인간의 제도를 잊게 하라. 그리고 자연에게 자문을 구하도록 하자. 주어진 조건 아래서만 서로 맞아서 그 조건이 바뀌면 더 이상 맞지 않게 될 그런 사람들을 결합시키지 말자. 이는 결혼에서 관습적인 관계는 아무래도 좋다는 말이 아니다. 자연적인 관계의 영향이 관습적인 관계의 영향을 훨씬 능가하기 때문에 일생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자연적인 관계의 영향뿐이라는 말이다. 또한 취향과 기질, 감정, 성격이 아주 잘 맞을 때, 모든 면에서 아들과 잘 맞는 그런 여성을 아들에게 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P.443).
미리 마련해 두는 일은 내가 아니라 자연이 할 일이다. 내가 할 일은 자연이 한 선택을 찾아내는 것이다. 나의 선택에 따라 결혼시킬 권한이 없었다면 나는 그의 교육을 맡지 않았을 것이다.
신분이 같다는 것은 결혼에 필수적이지는 않더라도, 이 평등이 다른 합치점들에 덕붙여지는 경우 거기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P.444).
분별 있는 아버지가 며느릿감을 찾는 데 지침이 되어 줄 신중한 준칙들이 있다. 그는 제자에게 자신의 신분보다 높은 자리를 잡아 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신분이 높아지면 그는 평생 동안 시달릴 수많은 현실적인 불행에 빠질 위험이 있다. 귀족 신분이나 돈과 같은 다른 성질의 재산을 벌충하려 하지 말라는 점도 말해 두겠다.
가족은 가장을 통해서만 사회와 연계되므로 가족 전체의 신분을 결정짓는 것은 가장의 신분이다. 자기보다 더 낮은 여성을 결합할 때 그자신은 신분이 낮아지지 않고 자기 아내의 신분이 높아진다. 신분이 높은 여성을 택하면 자기 신분은 올라가지 않고 아내의 신분은 낮아진다. 여성이 남성에게 복종하는 것은 자연의 질서에 속한다. 노예가 된 주인이란 인간들 중에서도 가장 우스꽝스럽고 가장 비참한 존재이다.
여성이 갖는 지배력은 부드러움과 능수능락함과 호의에서 나오는 지배력이다. 그녀의 명령은 애무이고 그녀의 위험은 눈물이다. 여성은 국가를 다스리는 재상처럼,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남편이 자신에게 명령하게 하면서 집안을 다스려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가장 훌륭한 가장이란 아내에게 가장 많은 권위가 부여된 가장임이 확실하다(P.446).
인간은 저절로는 생각을 거의 하지 못한다. 생각한다는 것은 훨씬 더 힘들게 배우는 기술이다. 두 계층 중 하나는 사람들의 계층이고 다른 하나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계층이다. 이 차이는 거의 대부분 교육에 의해서만 생겨난다(P.447). 이 두 계층 중 첫 번째에 속하는 남성은 두 번째 계층의 여성과 결합해서는 안된다. 양심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식견을 갖춘 철학자이다.
생각하는 습관이라곤 전혀 없는 여성은 자식들을 약삭 빠른 원숭이나 경솔한 개구장이를 만들 뿐, 훌륭한 지성의 소유자나 사랑스러운 아이로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교육을 받은 남성이 교육받지 못한 여성 따라서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신분의 여성을 아내로 삼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그러나 나는 내 집에 문학 비평회를 차리고 좌장 노릇을 할 유식하고 재치를 부리는 여성보다 교양 없이 자란 소박한 여성을 백 배는 더 좋아할 것이다. 재치를 부리는 아내는 남편, 아이들, 친구들, 하인들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의 골칫거리이다(P.448). 그녀의 품위는 알려지지 않는 데 있고, 그녀의 영광은 남편의 존경에 있다. 또한 그녀의 기쁨은 가족의 행복에 있다. 문학소녀들은 모두 평생 처녀로 남게 될 것이다(P.449).
내가 보기에 결혼에 있어서 뛰어난 미모는 구해야 할 것이라기보다 피해야 할 것인 듯하다. 미모란 소유하고 나면 즉시 퇴색하고 만다. 극도의 아름다움보다는 혐오스럽지만 않다면 차라리 극도의 추함을 나는 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남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 아름다움은 불편한 것이 되고 추함은 이로운 것이 되기 때문이다.
아름다움까지 포함하여 모든 면에서 중용을 원하도록 하라. 사랑을 불러일으지는 않더라도 호감을 주는 유쾌하고 상냥한 얼굴을 선택해야 한다. 우아한 매력은 아름다움처럼 퇴색하지 않는다(P.450).
소피가 받은 교육은 뛰어나지는 않지만 소월한 것도 아니다. 공부를 하지 않았어도 취향이 있고, 예술은 익히지 못했지만 재능이 있으며, 지식은 없어도 판단력이 있다. 그녀의 정신은 아는 것이 없어도 배울 수 있도록 바탕이 잘 가꾸어져 있어서, 수확하기 위해 씨앗만 기다리는 잘 준비된 토지와도 같다. 그녀는 결코 남편의 선생이 되지 않고 제자가 될 것이다. 남편은 그녀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는 기쁨을 맛 볼 것이다(P.451).
걸어서 여행하는 것은 탈레스나 플라톤, 피타고라스처럼 여행하는 것이다(P.455).
사람은 교육을 받은 정도에 따라 호기심을 갖게 마련이다. 그는 배우고 싶은 생각이 더 들만큼 딱 그 정도로 받고 있는 것이다(P.456).
여기서 다루고 있는 사람이 어려서부터 두려움, 탐욕, 질투, 자존심 그리고일반교육이 수단으로 삼는 온갖 정념에 빠져든 그런 젊은이가 아니라, 이것이첫사랑일 뿐만 아니라 온갖 종류의 정념중에서도 그가 최초로 느껴 보는 정념인 그런 젊은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그가 일생 동안 강렬하게 체험할 이 정념, 아마도 유일한 이 정념에 그가 앞으로 지니게 될 성격의 최종적인 형태가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사고방식과 감정 그리고 취향은 일관된 정념에 의해 결정되어 더 이상 변질을 허용하지않는 확고부동함을 얻게 될 것이다(P.464).
남성의 명예를 여성의 명예와 비교하지 말게, 그것들은 완전히 다른 원칙들을 갖고 있다네. 그 원칙들은 둘 다 자연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또 자네를 위해서는 남들의 말을 무시하게 하는 바로 그 미덕이 자네의 애인을 위해서는 자네에게 남들 말을 존중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기 때문에, 둘 다 똑같이 확고부동하고 이치에 맞네(P.467).
그들의 첫 애정은 바로 그들 마음이 비슷하고 정직한 감정이 일치하여 생겨난다. 그런 애정은 지속되기 마련이다(P.470).
이 정념은 거의 사람의 마음속에는 싹이 없고, 오로지 교육에 의해서만 그 형태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애정의 권리는 오로지 가치에만 기반을 두고, 명예는 성공에 있다(P.496).
열 살에는 과자에, 스무 살에는 애인에, 서른 살에는 쾌락에, 마흔 살에는 야망에 쉰 살에는 탐욕에 이끌린다. 자신도 모르게 지혜로 인도되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다!
훌륭한 교육의 결과를 삶 전체로 확대시키고 싶다면, 어린 시절의 좋은 습관들을 청년기에도 간직하게 하는 것이 좋다(P.497).
견실한 사람이라면 언제나 자신의 오랜 습관으로 되돌아가 어려서 좋아했던 즐거움에 대한 취미를 늙어서도 잃지 않는다(P.498).
활동적인 생활, 육체노동, 훈련, 운동이 그에게는 너무나 필수적인 일이 되어서 에밀은 고통 없이 그것들을 그만둘 수 없다. 그에게는 대기와 운동과 피로가 필요하다. 내가 그에게 복종하도록 만든 욕구이고 그에게 씌운 속박이라고 여러분은 말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사실이다. 나는 에밀을 인간의 상태에 묶어 둔 것이다.
에밀은 소피를 사랑한다. 감수성, 미덕, 올바른 것들에 대한 사랑이다(P.499).
신뢰는 영혼을 고양시키는 법이다.
에밀이 솔직한 것은 루소가 이룬 성과이다(P.503).
참되고 순수하고 감미로우며, 실제라기보다 상상의 소산인 그의 기쁨들은 그의 마음을 나약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그의 사랑을 북돋운다.
에밀은 대개 근처의 들판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자연사 공부를 계속하고, 그곳의 땅과 생산물과 재배법을 관찰하고 검토한다. 그는 자신이 눙으로 보는 작업과 머리로 알고 있는 작업을 비교하고 그것들이 차이가 나는 이유를 찾아본다. 그곳의 방법보다 다른 방법이 더 낫다고 판단하면 그것을 농부들에게 제시한다. 그가 실제로 농사를 알고 있다는 것을 그들도 보고 아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열정과 노력을 가장 중요하고 보편적으로 쓸모 있는 모든 일에 쏟으며, 거기서 그치지도 않는다(P.504-505). 에밀은 항상 그의 돈으로 하는 만큼의 좋은 일을 그의 몸으로도 하는 것이다.
에밀은 언제나 행동에 숨김이 없어서, 무엇이든 속일줄도 모르고 속일 생각도 없다. 그는 스스로의 떳떳함으로 자존심을 부추기고 북돋우는 사랑스러운 섬세함을 갖고 있다(P.506).
여인이여, 당신의 애인을 존경하라. 당신을 위해 일하고 당신에게 빵을 벌어다 주고 당신을 먹여 살리는 사람이 바로 남자다(P.510).
행복이 모든 감각적인 존재의 목적이다. 그것이 바로 자연이 우리에게 새겨 놓은 최초의 욕망이고, 결코 우리를 떠나지않는 유일한 욕망이네(P.520).
용기가 없으면 행복도 없고, 싸우지않고는 미덕도 없네. 미덕이라는 단어는 힘에서 온 것이네. 따라서 힘이 모든 미덕의 토데가 되네. 본성은 나약하지만 의지가 강한 존재만이 미덕을 갖는 것이네. 올바른 인간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P.524).
인간이 되어야 하네. 그리고 자네의 마음을 주어진 자네 조건의 한계에 제한시키고 그 안에 머물러야 하네. 이 한계를 연구하고 그것을 알아야 하네. 그 한계가 아무리 좁더라도 그 안에 있는 동안은 불행하지 않네. 우리는 그 한계를 넘어서려 할 때만 불행해지는 것일세. 말하자면 무모한 욕망에 사로잡혀 가능하지 않은 것을 가능한 것으로 여길 때 불행하네.
자만심에서 비롯된 착각들이 우리의 가장 큰 고통의 원천이네(P.527).
행복하고 현명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자네는 자네의 마음을 소멸되지않는 아름다운 것에만 묶어 두게. 필연의 법칙을 도덕적인 것들에까지 확장시키고, 빼앗길 수 있는 것은 잃는 법을 배워야 하네(P.528).
감정이란 원칙에 좌우되지 않는다네(P.532).
책을 너무 많이 읽으면 학문이 죽는다(P.538).
여행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관찰을 위해서는 볼 줄 아는 눈을 갖고 있어야 하고, 자연이 알고 싶어 하는 대상 쪽으로 눈을 돌릴 수 있어야 한다(P.541).
학식을 쌓기 위해 여행하는 학자들도 있다(P.546).
이성이 행하는 모든 일에는 규칙이 있어야 한다. 교육의 일부로 여겨지는 여행 또한 그 규칙이 있어야 한다. 여행을 위한 여행은 방황하는 것이고 방랑자가 되는 것이다. 배우기 위해 여행한다는 것 또한 너무나 막연한 목적이다. 확고한 목표가 없는 배움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우선 청년에게 배움에 대한 뚜렷한 관심을 심어 주고자 하며, 올바른 선택된 관심을 배움의 성격을 더욱 분명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것 또한 내가 실현하고자 애썼던 방법의 연장선이 있다(P.548).
현자의 행복을 위해서는 자신의 여인과 경작지만으로도 충분하다(P.551).
술책도 분쟁도 속박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합법적이고 확실한 방법이 있다면, 확신컨대, 그것은 자기 자신의 땅을 경작하면서 제 손으로 노동하고 살아가는 것이네(P.552).
홉스는 궤면에 그로티우스는 시인들에 의존한다. 그러나 그 나머지 부분에서는 같다.
이 방대하고도 무익한 학문을 창안해 낼 수 있는 유일한 현대인은 저 유명한 몽테스키외 였다. 몽테스키외는 단지 기존 정부들의 실정법을 다루는 것으로 만족했는데, 세상에 이 두 연구만큼 서로 다른 것도 없다(P.554).
정의에 대한 진실한 사랑과 진리에 대한 참된 존경이 훌륭한 재능보다 더 진실하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P.555).
우리의 기본 요소들은 분명하고 단순하며, 사물의 본성에서 직접 가져 온 것들이다.
우선 자연 상태로 거슬러 올라가, 인간이 노예로서 태어나는지 자유롭게 태어나는지, 함께 모여 살도록 태어나는지 독립적으로 살아가게 태어나는지, 그들이 자발적으로 서로 결합하는지 강제로 결합되는지 검토할 것이다(P.556).
사회계약은 모든 시민 사회의 토대이며, 사회계약을 통해 구성된 사회의 본질은 바로 그 계약행위의 본질에서 찾아야만 한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재산, 인격, 생명, 모든 일을 공동으로 일반의지의 최고 지휘 아래 두고, 각 구성원을 전체의 분할 불가능한 부분으로서 모두 함께 받아들인다(P.559).
이 결사 행위를 통해 생겨나는 것이 각 계약 당사자의 개별 인격이 아니라,집회에서 투표권을 가진 수만큼의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정신적인 집합체라는 사실에 주목할 것이다. 이 공적인 인격은 일반적으로 정치집단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고, 그것이 수동적일 때는 국가, 능동적일 때는 주권자, 그와 유사한 다른 것들과 비교해서는 권력이라고 불린다. 구성된 자신들에 대해서는 집합적으로는 국민, 도시국가의 구성된 혹은 주권의 참여자로서는 개별적으로 시민, 동일한 주권에 복종하는 자로서는 피치자라고 불린다.
우리는 이 결사 행위가 공증과 개인들 사이의 상호계약을 함축하고 있음에 주목할 것이다. 즉 주권자의 일원으로서 개인들과 맺는 관계와 국가의 일원으로서 주권자와 맺는 관계에 종속된다.
기본법이란 사회계약 외에는 존재하지도 또 존재할 수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외국에 대해서는 정치집단도 단순한 하나의 존재, 한 개체가 되기 때문이다(P.560).
사회계약에 따르면 주권자란 공동의 그리고 일반적인 의지에 의해서만 행동할 수 있으므로 그의 행위 역시 일반적인 공동의 목적만 갖게 마련이라는 것을 고찰할 것이다. 한 개인은 모든 개인이 다 침해를 당하지 않고는 주권자에게 직접적으로 침해를 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사회계약은 결코 공권력 이외의 다른 보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회계약은 그 자체에만 적합한 특별한 성질을 갖는다. 이것이 정치기구의 수단과 작용 전체를 만들어 내는 조건이며, 오직 이 조건만이 약속을 정당하고 합리적이고 위험하지 않은 것으로 만든다. 만약 이 조건이 없다면 약속들은 부조리하고 압제적인 것이 되어 엄청난 남용을 피할 도리가 없게 될 것이다(P.561).
개인들은 오직 주권자에게만 복종하고 주권은 일반의지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주권자에게 복종하는 각 개인이 어떻게 자기 자신에게만 복종하게 되는지, 어떻게 해서 자연 상태에서보다 사회계약 안에서 인간이 더 자유롭게 되는지 보게 될 것이다.
사람들에 대해서 자연적 자유와 시민적 자유를 비교한 후, 우리는 재산에 대해서 소유권과 주권을 비교하고 사유지와 공유지를 비교할 것이다. 만약 주권이 수유권에 토대를 두고 있다면, 소유권은 주권이 가장 존중해야 할 권리이다. 소유권이 개별적이고 사적인 권리로 남아 있는 한, 그것은 주권에게 신성불가침의 권리이다.
법이란 무엇이며 법의 참된 특성은 무엇인지 연구할 것이다(P.562).
법이 국가의 모든 구성원에게 동등하게 적용되는 일반적 대상만 가질 수 있다면, 그 결과 주권자는 어떤 개별 대상에 대해 결정을 내릴 권한을 전혀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주권자의 행위는 일반의지의 행위, 즉 법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법의 집행을 위해 필요한 것은 결정을 내리는 행위, 즉 강제 행위나 통치 행위인데, 이 행위들은 반대로 개별적인 대상만 가질 수 있다. 지도자를 선거로 뽑는 것을 주권자가 결정하는 행위는 법이지만, 그 법을 집행해서 그 지도자를 선출하는 행위는 통치 행위일 뿐이다(P.563).
우리는 국민이 주권을 스스로 포기하고 그것을 한 명 혹은 여러 명의 개인에게 부여할 수 있는지 검토할 것이다.
주권의 본질은 일반의지에 있는데, 개별의지가 항상 일반의지와 일치하리라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지도 전해 알 수가 없다. 오히려 개별의지가 일반의지와 자주 대립될 것이라고 추정해야 한다. 사적 이익을 특혜를 공익은 평등을 지향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P.564).
국가에는 피치자들과 주권자 사이에 중간 집단이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 명 혹은 여러 명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이 중간 집단은 공공 행정, 법의 집행,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자유의 유지를 책임진다.
이 집단의 구성원들은 행정관 혹은 왕 즉 통치자라고 불린다. 이 집단 전체는 그 구성원들로 볼 때는 군주라 불리고, 활동으로 볼 때는 정부라 불린다(P.565).
행정관은 주권자에게서 명령을 받아 국민에게 전달하므로, 항들을 모두 상쇄하고 나면 그것의 곱 혹은 제곱은 한편으로는 피치자이면서 한편으로는 주권자인 시민들의 곱 혹은 제곱과 같게 된다. 만일 주권자가 통치하려 들거나 군주가 번을 제정하려 들면 또는 피치자가 복종하기를 거부하면, 질서는 사라지고 무질서가 도래하며 불리된 국가는 전제주의 혹은 무정부 상태에 빠져들 것이다.
주권자 대 피치자 비는 1만 대 1에 해당한다. 국가의 각 구성원은 비록 전적으로 주권에 복종함에도 불구하고 주권의 1만분의 1만 자신의 몫으로 갖는다. 국가가 커질수록 자유를 더욱 줄어들게 된다(P.566).
개별의지가 일반의지에 덜 일치할수록, 다시 말해서 풍속이 법에 덜 일치할수록 억압하는 힘은 증가하기 마련이다. 국가의 규모가 커지면 공권력의 수임자들에게 그 권력을 남용할 유혹과 수단이 더 많이 제공되기 때문에, 국민을 억누르는 정부의 힘이 더 커질수록 정부를 억누르는 주권자의 힘 또한 커져야 한다.
이 이중적인 관계에서 주권자, 군주, 국민 사이의 연비례가 임의적 관념이 아니라 국가 본질의 귀결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결론은 유일하고 절대적인 정부 구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규모가 서로 다른 국가의 수만큼이나 본질이 다른 여러 정부가 존재하는 것이다(P.566-567).
이 준칙을 규명하기 위해, 우리는 행정관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 속에서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세 가지 의지를 구분하겠다. 첫째는 자신의 개별 이익만 지향하는 개인의 고유한 의지이다. 둘째는 오로지 군주의 이익과 일치되는 행정관들의 공동의지이다. 집단의지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의지는 정부에 대해서는 일반적이고, 정부가 속해 있는 국가에 대해서는 개별적이다. 셋째는 국민의지 혹은 주권자의 의지로서, 이는 전체의 일부로서 고려되는 정부에 대해서나 전체로서 고려되는 국가에 대해서 똑같이 일반적이다. 주권자의 일반의지가 모든 다른 의지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반대로 자연의 질서에 따르면, 이 세 가지 서로 다른 의지는 집중되면 될수록 더 활동적이 된다. 그 결과 각 개인은 맨 먼저 자기 자신이고 그다음 행정관이며 그다음에야 시민이다. 사회질서가 요구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순서인 것이다.
개별의지와 집단의지가 완전히 합쳐져서 그 결과 집단의지의 강도가 정점에 달하게 된다. 정부의 절대적 힘이란 항상 국민의 힘이어서 가장 활동적인 정부는 단 한사람의 정부라는 결론이 나온다(P.568).
국가가 확대될수록 정부는 축소되어야 하고 그래서 국민이 증가함에 따라 지도자들의 수는 감소한다는 것이다(P.569).
주권자가 정부를 국민 전체 혹은 대다수 국민에게 위임하여 그 결과 행정관인 시민의 수가 단순한 개인인 시민보다 더 많아지게 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정부에는 민주정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주권자가 정부를 축소하여 좀 더 소수의 수중에 들어가게 함으로써, 단순한 개인인 시민의 수가 행정관들의 수보다 많아지게 할 수도 있다. 이 형태는 귀족정이라 한다.
주권자에 의해 정부 전체가 단 한명의 행정관의 손에 집중될 수도 있다. 이 형태는 군주정 혹은 왕정이라 불린다.
스파르타에는 항상 왕이 둘 있었고, 로마제국에서는 딱히 제국이 분열되었다고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한꺼번에 8명의 황제까지 있었던 적이 있다. 정부의 각 형태가 그다음 형태의 정부와 혼합되는 어떤 지점이 있다. 따라서 세 개의 고유한 명칭이 있긴하지만, 실제로 정부는 국가에 속하는 시민의 수만큼 다양한 여러 형태를 가질 수 있다(P.570).
일반적으로 민주정은 작은 국가들에, 귀족정은 중간 정도 규모의 국가들에, 군주정은 큰 국가들에 적합하다고 결론짓겠다.
이러한 연속적인 연구들을 통해서 우리는 시민의 의무와 권리는 무엇이고 이 둘은 서로 분리될 수 있는지, 또 조국이란 무엇인지, 조국은 정확히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 무엇을 통해 각 개인은 자기에게 조국이 있는지 없는지를 인식할 수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어떤 사회는 서로 공격하고 모욕하고 서로를 파괴한다. 그리고 끊임없는 작용과 반작용 속에서, 그것들은 비참한 사람들을 더 많이 양산하고 더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희생시키고 있다. 만약 인간들 모두다 최초의 자유를 간직하고 있다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P.571).
폭정과 전쟁은 바로 이 부분적이고 불완전한 결합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폭정과 전쟁이야말로 인류의 가장 큰 재앙이 아닌가?
우리는 이러한 재난을 막기 위해 동맹이나 연합을 통해 모색된 치유책의 종류를 살펴볼 것이다.
생피에르 신부가 유럽 국가들 사이의 영구적인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유럽 국가 연합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P.572).
우리는 전쟁법의 진정한 원리들을 설정하고, 그로티우스와 다른 작가들이 왜 그릇된 원리들만 제공했는지 검토할 것이다(P.573).
법은 인간의 정념에 따르지 않는다는 것과, 우리에게 중요했던 것이 정치법의 진정한 원리를 정립하는 것임을 생각하게나(P.573).
우리는 똑같은 임무가 모두에게 주어져 있음을, 진실로 선을 사랑하고 온 힘을 다해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 임무를 완수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P.574).
인구의 밀집과 부의 불평등이 도처에 어떤 풍속을 낳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잘 알려져 있다(P.575).
한 국민의 특성과 풍속을 연구하러 가야 할 곳은 바로 외딴 지방인데, 그곳에서는 이동이나 거리가 더 적고 외국인들이 여행을 덜 오고 주민들이 이사를 덜 다니고 재산과 신분의 변동도 덜 이루어진다. 수도는 지나가는 길에 보라. 하지만 지방은 먼 곳까지 찾아가서 관찰해야 한다. 프랑스인들이 있는 곳은 파리가 아니라 투렌이다. 영국인들은 런던에서보다는 머시아에서 더 영국인답고, 스페인 사람들은 마드리드에서보다 갈리시아에서 더 스페인 사람답다. 한 국민의 특성이 나타나고 그 국민이 다른 것과 뒤섞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것은 이렇게 멀리 떨어진 지방에서이다. 그곳에서야말로 정부의 좋은 효과와 나쁜 효과가 더 잘 느껴진다.
풍속과 통치 사이에 필연적 관계는 "법의 정신"에 너무나 잘 설명되어 있어서 그 책을 창조하는 것이 이러한 관계를 연구하는 최상의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통치의 상대적 정당성을 판단하는 데 쉽고 간단한 두 가지 기준이 있다. 하나는 인구이다. 인구가 감소하는 지방에서는 국가가 몰락해 가는 경향이 있고, 인구가 가장 많이 늘어나는 지방은 가장 가난한 곳이라 해도 틀림없이 통치가 아주 잘되고 있는 나라이다(P.576).
이러한 인구 증가가 통치와 풍속의 자연스런 결과이어야 한다. 풍속의 영향과 통치의 자연스런 경향에서 생겨난 것들을 조사해야 한다. 그러한 방법들을 통해서만 지속적인 효과가 경겨나기 때문이다.
통치와 법률의 상대적 우수성의 두 번째 징후 역시 인구에서 이끌어 낼 수 있다. 다른 방식으로 즉 인구의 수가 아니라 인구의 분포를 통해서이다. 그다지 큰 도시가 없고 그래서 눈에 덜 띄는 국가가 반드시 다른 국가를 이기게 될 것이다. 국가를 소진시키고 약점을 만들어 내는 것은 대도시이며, 대도시가 만들어 내는 부는 실속도 없이 겉만 화려한 것이어서 돈은 많지만 값어치는 거의 없다. 잘못 분포된 인구는 국가에 이롭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구 감소보다 더 심한 폐해를 가져오는데, 이는 인구 감소로 인해 생산은 늘지도 줄지도 않고 그대로일뿐인데 비해 터무니없는 소비는 생산을 오히려 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그렇다(P.577-578).
한 국민을 연구하려거든 그 나라의 도시들이 아닌 곳에서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그 국민을 알 수 있다. 형태와 내용의 차이는 천차만별의 등급으로 나뉘어 있으므로, 그 등급들을 모두 파악해야만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어떤 나라에서는 지방 주지사 밑에 있는 행정관들의 행동 방식을 통해서야 내각의 기품이 감지되기 시작한다. 한 나라를 만들어 내는 것은 농촌이고, 국민을 이루는 것은 농촌 사람들이다.
어느 나라의 국민이든 자연과 더 가까울수록 선량함이 성격의 구조를 이룬다. 오로지 도시에 갇혀 있을 때만 또 문화로 인해 변질되었을 때만 국민들은 타락하며, 해롭다기보다는 세련되지 못한 몇몇 결점들을 유쾌하지만 해로운 악덕으로 바꾸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찰의 결과에서 내가 제안하는 여행 방식의 새로운 이점이 생겨나는데, 그것은 젊은들이 꿈찍한 타락이 지배하는 대도시에서 별로 머물지 않아 타락에 물들 위험이 적고, 더 소박한 사람들 사이에서 또 더 숫자가 적은 모임에서 교재를 할 때 더욱 확실한 판단력, 더욱 건전한 취향, 더욱 올바른 품행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그렇다(P.578-579).
모든 미덕과 모든 의무에서 사람들은 겉치례만 찾지만 나는 진실성을 찾는다(P.580).
정념의 외적인 징후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매우 유사하기는 하지만, 겉으로 드러날 때 국민에 따라 차이가 있기 때문에 자칫 오해하기가 쉽다. 국민마다 얼굴에 나타나는 언어도 입에서 나오는 언어들 만큼이나 다양하다(P.581).
국민적 편견이란 평생도록 우리를 공격하기 때문에 조만간 우리에 대해 어느 정도 지배력을 갖는다(P.582). 이러한 국민적 편견의 지배력을 없애는 데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양식 있는 사람들과의 사심 없는 교류보다 더 적합한 것도 없다. 외국인들을 우리나라에서 사귀는 것과 그들 나라에서 사귀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첫 번째의 경우, 그들이 여기에 사는 동안에는 항상 조심하면서 자기가 그 나라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감추거나 아니면 호의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자기네 나라로 돌아가면 과대 평가를 멈추고 오직 정확하게만 판단한다(P.583).
인간의 제도 안에서 인간이 해 온 일을 살펴보면 볼수록, 인간이 무리하게 독립을 원한 나머지 결국 노예로 전락하고, 자유를 확보하려다가 그 자유마저 헛된 노력으로 없애 버린다는 것을 더 잘 알게 됩니다. 제에게 필연을 따르라고 가르쳐서 저를 자유롭게 만들어 준 분은 제 스승이신 바로 당신입니다. 저를 지배와 자유는 양립할 수 없는 두 단어에서, 제가 자신의 주인이기를 포기하지 않고는 초가집의 주인마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나의 소원은 바로 보통 크기의 땅이다(호라티우스의 풍자시)(P.584).
저는 오로지 자연에 종속될 때만 인간에 대한 종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를 재산에 묶어 두는 모든 끈들을 풀어 버리겠습니다. 저는 세상 어디에서나 자유로울 것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저는 그 필연의 사슬을 짊어지는 법을 배웠고 죽을 때까지 짊어질 것입니다(P.585).
죽음은 가난의 형벌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이니까요.
우리의 제도는 신뢰를 받을 자격이 조금도 없네. 법의 보호아래서는 자유를 열망하는 것이 헛된 일이네(P.586). 자네는 도처에서 법의 이름 아래 개인의 이익과 인간의 정념만 판치는 것을 보았네. 그러나 자연과 질서의 영원한 법은 존재한다네. 그 법이 현자한테서 실정법을 대신하네. 그 법은 양심과 이성을 통해서 현자의 가슴속 깊이 새겨져 있네. 자유로워지기 위해 현자가 복종해야 할 법이 바로 그것들일세. 자유는 어떤 형태의 정부에도 없네. 자유는 자유로운 인간의 마음속에 있다. 반면 비천한 인간은 어디서나 예속상태에 빠져 있네(P.587).
그가 누구든 그는 나라 덕분에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 즉 자기 행동의 도덕성과 미덕에 대한 사랑을 갖게 되는 것이네. 깊은 숲속에서 태어났다면 그는 더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았을 것이네. 그는 자기와 싸우는 법, 자기를 극복하는 법, 공동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는 법을 배우네. 법이 그를 자유롭게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니며, 법은 그에게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가르쳐 주었네.
자네가 자신의 모든 의무를 완수 할 수 있는 곳에 있다는 것이 중요하며, 이 의무들 중 하나는 자네가 태어난 곳에 대해 애착을 갖는 것일세(P.588).
부부애의 사랑은 삶이 지속되는 한 계속될 존경과, 아름다움과 함께 사라지지 않을 미덕과, 그들의 관계를 다정하게 만들어 최초의 결합이 주는 매력을 노후까지 연장시켜 주는 성격의 일치에 기반을 두고 있다(P.591).
비법은 부부가 되어서도 계속 연인으로 맘는 것이네.
매듭을 너무 세게 잡아당기려 하면 끊어지는 법이네. 결혼이라는 매듭에 너무 과도하게 힘을 주면 거기서도 바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네(P.594). 구속과 사랑은 어울리지 않고, 기쁨은 억지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네.
싫증나게 하는 것은 소유보다 속박이어서, 아내보다는 정부情婦에게 훨씬 오래 애정을 간직하기 마련이네. 권리를 만드는 것은 서로의 욕망이고, 자연은 다른 원리를 인정하지 않네. 관능은 그 자체로 얼마나 달콤한 것인가? 결혼을 통해 마음은 연결되지만 육체는 전혀 예속되지는 안네. 자네들은 서로 충실해야 할 의무는 있지만 환심을 살 의무는 없네. 두 사람은 저마다 상대방에게만 속할 수 있지만, 자기가 원하는 만큼만 상대방에게 속해야 하네.
자네가 진정 자네 아내의 연인이고 싶다면, 그녀는 늘 자네의 주인이면서 또한 자기 자신의 주인이어아 하네. 아무것도 의무에 요구하지 말고 모든 것을 사랑에서 구하도록 하라. 그래서 가장 하찮은 애정의 표현도 자네한테서 결코 권리가 아닌 은혜가 되어아 하네(P.595). 두 사람은 각자 늘 자기 자신의 주인이고 자신의 애정 표현의 주인이 되어, 오직 자신의 의지로만 상대방에게 그것을 베풀 권리를 가져야 하네. 결혼에서조차 욕망이 공유되었을 때만 쾌락이 정당화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이 준칙은 두 사람 모두가 서로를 기쁘게 하는 일에 더 세심한 배려를 하게 만들고 싫증을 막아 줄 것이네. 오직 서로에게만 매이는 자녀들을 자연과 사랑이 충분히 가깝게 해 줄 걸세(P.596).
당신의 배우자가 되면서 에밀은 당신의 주인이 되었소. 복종해야 하는 것은 당신이며, 그것이 자연이 원하는 바요. 그런데 소피 당신과 같은 여성의 경우는 남성이 여성에 의해 인도되는 것도 바람직하오. 그것 또한 자연의 법칙이오(P.599).
자기 집에 있기를 좋아하는 남성은 모두 자기 부인을 사랑하는 법이오.
스스로 부과한 속박은 훌륭하게 견딜 줄 알아야 하네. 사람은 평생토록 조언과 안내가 필요한 법이네(P.601).
요약
1권: 유아기
루소의 에밀을 짧게 간추리면 "모든 것은 조물주의 손에서 나올 때는 선하나 인간의 손에 들어오면 변질되고 만다."라고 했다. 그러나 교육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최초의 교육은 가장 중요한 교육으로써 여성의 소관이다. 인간은 교육을 통해 형성된다. 교육은 자연이나 인간 또는 사물로부터 우리에게 온다. 우리의 능력과 기관의 내적 발달은 자연의 교육이다. 이러한 발달을 우리가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것은 인간의 교육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작용하는 사물에 대해 우리 자신의 체험을 통해 획득하는 것이 사물의 교육이다. 교육은 일종의 습관이다.
교육제도는 공동체적인 공공교육 제도와 개별적인 가정교육제도이다. 교육은 그의 운용이 부모의 직업과 조화를 이루는 한에서만 유용하다. 삶을 사는 것이 직업이다. 진정한 교육이란 훈계보다 실제훈련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삶을 시작하면서 배움을 시작한다. 최초의 선생은 유모이다. 산파는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고 유모는 키우며, 교육자는 훈육하고 스승은 지도한다(Marcus Terentius Varro<기원전 116-기원전27>)
습관이 본성을 바꾸어 놓아야 한다. 진정한 유모가 어머니이듯이 진정한 교사는 아버지이다. 교사의 임무는 중요하다. 에밀은 고아이다. 루소는 에밀의 교육과정을 서술한다.
결혼은 배우자들 사이에 체결된 계약이면서 또한 자연과의 계약이기도 하다. 장수한 사람은 운동을 아주 많이 하고 피로와 노동을 최대한 견뎌 낸 사람이다. 감각을 가진 살아 있는 존재들에게 모든 것은 교육이다. 감성적 감각의 반복을 통해 어린이들은 습관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다. 어린아이는 감각적인 온갖 성질들을 판단하는 법을 배운다. 이성만이 우리에게 선과 악을 인식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어린아이는 말하는 법과 먹는 법, 걷는 법을 거의 같은 시기에 배운다.
2권; 아동기(7-12세)
한 개인으로써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 두 번째 단계이다. 어린아이는 자의식을 갖게되고 정신적 존재로 간주되기 시작한다. 첫 번째의 의무는 인간답게 되는 것이다. 행복의 길은 능력과 의지를 완전히 동등하게 만드는 데 있다. 상상력은 욕망을 충족시키겠다는 기대로 욕망을 부추기며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자연에 따라 살고 인내심을 가져라. 체념은 자연에서 비롯된 법칙이다. 이 법칙이 깨지면 이성에서 비롯된 다른 법칙이 만들어진다.
자유로운 사람은 자연이 할 수 있는 것만 원하고, 자기 마음에 드는 일을 한다. 교육의 모든 준칙들은 거기서 생겨난다. 의존상태는 사물에 대한 의존으로써 자연적인 것이고, 인간에 대한 의존으로써 사회적인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사물에 대한 의존 상태에서만 머물면 자연의 교육이 진행되는 가운데 자연의 질서를 따르게 될 것이다. 지나치게 엄격함과 관대함은 피해야 한다. 훌륭한 교육의 걸작은 이성적인 인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아이는 체험을 통해서만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기간은 태어났을 때부터 열두 살까지이다.
교사는 단순하고, 신중하고 자제해야 한다. 아이에게 심어 주어야 할 최초의 관념은 소유의 관념이다. 도덕의 세계로 들어선다. 로크는 아이들이 경험을 통해 가장 인심이 후한 사람이 언제나 가장 많은 것을 나누어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선생은 덕을 갖춘 선량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인간은 모방을 잘한다. 아이를 제 나이에 맞게 다루어야 한다. "국가"에서 플라톤은 축제와 놀이, 노래, 오락을 통해서만 아이들을 교육시킨다. 아이는 낱말을 받아들이고 관념을 반사시킨다. 뭔가를 이해할 때는 비교한다. 우리의 감각은 순전히 수동적인 데 반해, 지각이나 관념은 모두 판단을 하는 능동적인 원리에서 생겨난다. 아이들이 가진 모든 지식은 감각 속에 있고 어떤 것을 이해하기까지 이르지 못한다. 12세 내지 15세가 될 때까지 두 가지 언어를 제대로 배울 수 없다. 아이들은 진실을 말해야 한다. 로크는 아이가 주사위를 가지고 읽는 법을 배우기를 원한다. 힘과 이성이 동시에 성장하면서 서로를 통해 확장되는 것이다. 자연에서 교훈을 얻는다. 강한 신체와 강한 정신, 현자의 이성과 장사의 기운을 언젠가 갖게 되는 방법이다. 인간의 최초의 이성은 감각적 이성으로 지적인 이성의 토대가 된다. 생각하는 법을 배우려면 지성의 도구가 되는 우리의 사지, 감각, 기관을 단련시켜야 한다. 매일 보는 사물들에 대해서는 기억력이 작용한다.시각은 정신의 판단력과 감각이다. 감각의 작용은 육체적이고 물질적이다. 후각과 미각의 관계는 시각과 촉각의 관계와 같다. 후각은 상상력의 감각이고 뇌를 자극한다. 정신을 명확하게 만드는 것은 관념의 명확성, 명료성이다. 인간적인 이성은 관념들을 비교하는 기술이다. 지적인 이성 혹은 인간적인 이성은 여러 단순한 관념들을 종합해서 복잡한 관념을 형성시키는 것이다.
에밀은 암기를 못하지만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자연이 쓴 책을 더 잘 읽는다 그리고 기억력보다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 놀이는 일이다. 에밀은 어린아이로서 삶을 살아왔다.
3권:청년기(13-18세)
12세 내지 13세가 되면 어린아이의 힘은 욕구보다 훨씬 더 빨리 발달한다. 이 시기가 일과 학습과 공부를 해야 할 시기이다. 지식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창안하게 만들라. 아이가 배우는 방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루소의 교육 방침은 어린아이 머리 속에 옳고 명백한 관념들만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아이에게 학문을 사랑하는 취향이 개발되었을 때 학문을 배우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모든 올바른 교육의 기본 원칙이다. 자연의 법칙에 대한 공부는 가장 평범하고 가장 뚜렷한 현상들부터 시작하라. 우리의 진정한 스승은 경험과 느낌이다. 아이가 배워야 할 것을 원하고 구하고 발견하는 것은 아이가 해야 할 일이다. 아이에게 우리의 견해를 평가하는 법부터 가르쳐라. 아이들의 판단력을 잘 키워 주어야 한다.
농업은 가장 존경할 만한 첫 번째 기술이다. 노동은 사회적 인간에게는 필수적인 의무이다. 아이들이 관찰하는 기술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에밀은 도시에서 자신의 필수품을 찾아내고 주민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하며 더불어 사는 법을 알아야 한다. 루소의 목표는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지식을 습득하는 법을 가르치고, 그것의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며, 진리를 사랑하게 하는 것이다.
4권:사춘기
에밀의 목소리는 변성기에 접어든다. 눈은 어떤 언어와 표현력을 발견한다. 이것이 제2의 탄생이다. 통상적인 교육이 끝나는 이 시기야말로 바로 우리의 교육이 시작되어야 할 시기이다. 유일한 정념은 자기애이다. 자기애는 언제나 선하고 질서와 일치한다. 사람은 자기를 보존할 임무를 지고 있다.
한쪽의 성이 다른 쪽의 성에 이끌리는 것이야말로 자연의 운동이다. 자연이 행하는 교육은 서서히 더디게 진행되는 반면 인간이 행하는 교육은 거의 언제나 시기를 앞질러 이루워진다. 전자는 감각이 상상력을 일깨우지만 후자는 상상력이 감각을 일깨워 그것을 때 이르게 활동하게 한다.
청년기는 복수와 증오의 시기가 아니라, 동정심과 너그러움과 관대한 시기이다. 인간을 경멸하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하도록 가르쳐라. 청년기의 불길은 교육이 이루어지고 완성된다. 가르치는 재능이란 제자가 가르침을 좋아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평화의 정신은 그가 받은 교육의 결과들 중 하나이다. 로크는 사람들이 정신의 연구에서 시작하여 그 다음에 물체의 연구로 이해하길 원한다. 정신이란 단어는 어원에서 보면 '입김"과 "바람"을 의미한다. 진리는 사물들 속에 있다. 루소는 이성에 귀를 기울일 때는 능동적이 되며, 정념에 끌려다닐 때는 수동적이 된다고 한다. 인간의 의지를 결정하는 원인은 그의 지적인 능력이고 그의 판단력이다. 신들은 인류의 사법관이다.
성욕의 절제는 자연의 질서에 합치되고 도덕적 의무이다. 자기 자신을 다스리고 언제나 욕망을 지배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취향의 진정한 모델은 모두 자연 속에 있다. 좋은 취향은 좋은 풍습에서 기인한다. 물질적인 것이나 감각적인 판단은 여성의 취향이고 정신적인 것이나 이해력은 남성의 취향이다. 독서의 시기로써, 재미있는 책들을 읽을 시기이다.
5권:성년기
인간의 마음은 가정이라는 일종의 작은 조국을 통해 있다. 루소는 여자와 남자는 동일한 교육을 받으면 안된다고 결론을 내린다. 자연은 여성이 생각하고 판단하며 사랑하고 알기를 원한다. 자연의 법칙 자체에 의해서도 여성은 자신을 위해서나 남성의 판단에 좌우된다. 여성의 교육방식은 남성들의 교육방식과는 반대라고 한다. 남성의 품행, 정념, 취향, 즐거움 그리고 그들의 행복까지 여성들에게 달려 있다. 교육의 목적은 남녀에게서 다르다. 한쪽에서는 목적이 힘의 배양이며 다른 한쪽에서는 매력의 배양이다. 여성은 집 안에 머물면서 가사와 가족을 보살피는 데에 온 정성을 쏟았다. 이것이 자연과 이성이 여성에게 정해 준 생활 방식이다. 여성은 일찍부터 옳지 않은 일조차 참아내는 법을 배워야 하며, 남편의 잘못을 불평하지 않고 견뎌 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여성은 순종하면서도 남성을 지배한다. 재치만이 여성의 진정한 자산이다. 말을 하는 재능은 남의 마음에 드는 기술들 중 으뜸가는 것이다.
최초의 가르침은 자연에서 오며 사람의 기술은 그것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여성의 이성은 실천적인 이성이다. 여성은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남성한테서 배우고 남성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여성에게서 배운다. 그녀들은 아버지와 남편의 결정을 교회의 결정처럼 따라야 한다. 내적인 감정이 바로 그 규범이다. 양심을 바로잡아 주고 편견의 오류를 교정해 주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이 능력이 이성이다. 재능, 통찰력, 세심한 관찰력은 여성들의 지혜이며 그것을 활용하는 솜씨가 그녀들의 재능이다. 실험적인 도덕을 발견하는 것은 여성이 할 일이고 그것을 체계화하는 것은 우리 남성이 할 일이다. 여성은 관찰하고 남성은 추리한다.
일생의 운명이 결혼에 달려 있다. 가족은 가장을 통해서만 사회와 연계되므로 가족 전체의 신분을 결정짓는 것은 가장의 신분이다. 여성이 남성에게 복종하는 것은 자연의 질서에 속한다. 가장 훌륭한 가정이란 아내에게 가장 많은 권위가 부여된 가정임이 확실하다. 생각하는 것은 더 힘들게 배우는 기술이다. 소피의 교육은 재능과 판단력에 있다.
정념은 교육에 의해서만 그 형태가 정해진다. 애정의 권리는 오로지 가치에만 기반을 두고, 명예는 성공에 있다. 열 살에는 과자에, 스무 살에는 애인에, 서른 살에는 쾌락에, 마흔 살에는 야망에, 쉰 살에는 탐욕에 이끌린다. 훌륭한 교육의 결과는 어린 시절에 좋은 습관을 청년기에도 간직하는 것이다. 여인을 위해 일하고, 빵을 벌어다 주고, 먹여 살리는 사람이 남자다. 행복은 모든 감각적인 존재의 목적이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재산, 인격, 성명, 모든 힘을 공동으로 일반 의지의 최고 지휘 아래 둔다. 자연과 질서의 영원한 법은 존재한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자기 행동의 도덕성과 미덕에 대한 사랑을 갖게 되는 것이다. 부부의 비법은 계속 연인으로 남는 것이다. 복종해야 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사람은 평생토록 조언과 인내가 필요한 법이다.
위와 같이 루소의 교육이론은 현재까지 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여성이 전문인력이 되면서부터 인구의 절벽이며 생활이 비싸지면서 부부가 맞벌이를 해야하는 시대에 살고 있어서 이 원칙들이 깨지고 있다. 여성들이 이제는 더 이상 희생하려들지 않고 남성들도 동참한다. 임신과 출산으로 전문여성인력이 경력단절이라는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더 똑똑해지고 있다. 현재 사회가 안고있는 고민거리이다. 그래서 루소의 교육이론이 부분적으로 요즘에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
참고문헌
에밀/ 장 자크 루소/ 이용철 문경자 옮김/ 2021/세창출판사( 상 하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