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4 / 최민식, 장백지 주연
아주 오래된 영화.
영화를 너무 안 보고 살았더니 볼 영화가 참 많아서 좋다^^
이강재(최민식 역)와 장백지(파이란 역)는 서류상 부부다. 장백지는 불법체류자로 연고가 없어 현지 조직원들에게 팔아
넘겨지는데 그 똘마니 중 하나가 이강재다.
97년도 나온 영화 '접속'도 서로를 그리워 하며 만나지 못하는데, 이강재는 아내가 죽었다는 통보를 받으면서 그녀의 실존
을 깨닫는다. 실존해 있을 때는 부재했고, 부재함으로 실존하게 된 파이란은 교차편집으로 이강재의 마음 속에 풋풋하게
살아나 상징으로서의 '아내'가 된다.
양아치 주제에 꽤 친절했던 강재는 친절하다는 이유로 조직의 호구이자 가장 무능력한 양아치로 까마득한 후배들에게조차
비웃음을 사는데, 파이란은 애써 배운 한국말로 강재한테 편지를 쓴다.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강재씨라고 말이다. 친절함이
라는 미덕이 처음으로 강재를 흐뭇하게 웃게한다.
아름다운 영화한 편 보고 이런 감상을 갖는다는 것도 참 현실적이긴 한데 --;; 일상을 나누지 않으므로 강재씨는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도 되고 항상 웃는 사람도 된다.
보스의 죄를 대신 뒤집어 쓰고 10년 감옥 살이를 하기로 결정한 후, 강재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내를 만나러 가는데
그 길이 장례식 가는 길이다. 처음 본 아내의 살아 있는 얼굴은 시신이므로 그는 '아내'와 함께 살아보지 못한다. 강재는 그
녀의 마지막 길을 지켜주는데, 떨어진 영정사진을 반듯하게 놓아주고 촛불을 켜고 향을 켠다. 아내에게 예의없게 군 사람들
을 혼내 주고, 이승에서 고통스러웠을 육체가 화장이 될 때는 비통한 심정을 감추지 못한다. 그게 사람에 대한 예의이다.
낯선 땅에서 힘들게 살다가 몹쓸 병을 얻어 홀로 고통스러워하며 두려워하며 외로워하며 죽어갔을 파이란, 강재는 자신의
처지와 다를 바 없는 파이란 불쌍해서 통곡을 한다.
그리고 강재가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주고 보내주었던 것처럼 조직의 똘마니에게 교사를 당하는 강재를 비디오속 파이란이
지켜준다.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장송곡이 된다. 강재는 처음으로 살아 있는 그녀를 본다.
병원에서 죽음이 임박하여 파이란은 강재한테 사전을 찾아가며 편지를 쓴다.
- 나는 죽습니다. 부탁이 한가지 있습니다. 당신의 아내로 죽는다는 것, 괜찮습니까?
그리하여 강재는 파이란의 남편으로서 죽음을 맞는다. 어여쁜 아내가 지켜보고 있어서, 돌아가는 길이 조금은 덜 쓸쓸했을까?
영화와 상관없이, 영화 '접속'에서 접속만 하던 그와 그녀는 만나서 접촉을 했을까? 일상을 살았을까? 내가 상상했던 사람하고
너무 다르다며 실망했을까? 애인 사이가 다 그렇지 뭐, 하면서 대충 포기하며 살았을까? 어쩌면 왜 진작 만나지 못했을까? 하
면서 알콩달콩 천년만년 살았을까?
강재와 파이란의 엇갈린 인연은(파이란이 강재를 만나서 갔을 때 강재는 미성년자한테 포르노를 빌려줬다는 이유로 검거된다.)
그 둘을 진짜 '남편과 아내'로 살게 한 걸까? 아니면 그 둘을 죽음에 이르게 한 걸까?
아무튼 최민식의 연기는 도취 그 자체였다^^
- 예술가의 심리학 ; 예술이 있으려면, 어떤 미적 행위와 미적 인식이 있으려면 특정한 생리적 선결조건이 필수불가결하다.
즉 도취라는 것이, 도취는 우선 기관 전체의 흥분을 고조시켜야만 한다.: 그러기 전에는 예술이 발생하지 않는다. 다양한
기원을 갖는 온갖 종류의 도취는 모두 예술을 발생시키는 힘을 갖추고 있다. :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근원적인 도취인 성적 흥분
의 도취가 특히 그러하다. (중략) 도취에서 본질적인 것은 힘이 상승하는 느낌과 충만함의 느낌이다.
(니체 '어느 반시대적 인간의 편력' 중에서)
첫댓글 취하라!!
선생님의 영화이야기가 좋습니다.^^
파이란, 너무 어려서 봤던, 그러나 맘이 아프다고 느꼈던 기억만 있는 영화.
다음 영화이야기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