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리가 없는 자는 사람도 아니다
김보성 성님 의리 보소 ㅋㅋㅋ
요즘 ‘김보성의 의리’가 대세다. 한 음료광고가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말이다. 불의가 판치는 세태에 대한 반감에서 의리라는 우상을 찾다보니 방송가에서 의리의 사나이로 불리던 김보성씨가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살면서 인간관계 속에서 자주 쓰는 말이 의리다. 참 민감한 말이다. 의리는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의리가 무엇이기에...
필자의 경우만 보아도 어릴 적 친구들 끼리 뭉쳐서 등하교를 하면서 한 친구가 남을 험담할 때, “그 애는 의리가 없다”라는 말을 썼었다. 필자는 ‘의리가 없다’는 표현을 듣고 왠지 모르겠지만 기분이 언짢았다. 이런 기억의 단면은 여러분들도 한 번 쯤은 있었을 것이다. ‘그 애’라는 말 속에는 결국 나도 너도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도대체 의리가 무엇이기에 아이의 마음속에서도 ‘의리가 없다’는 말은 듣기 거북한 문장으로 느껴졌을까?
* 나는 천지의 모든 보배를 가지지 않은 것이 없으나 의로움을 가장 으뜸가는 보배로 삼느니라. (증산도 道典 4:15)
먼저 의(義)에 대한 정명부터 해보자.
의란 여러 가지 뜻이 있다. “옳다, 착하다(善良), 순응(順應)하다, 바르다, 의롭다, 공익(公益)적이다” 등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선한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할 떳떳하고 공적인 도리”라 정의할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에서 보듯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벗어나 살 수 없다. 사람이란 감성과 이성을 가지고 있다. 이 두 가지를 명확히 뗄 수는 없다. 감성 속에 이성이 있고 이성 속에 감성이 있기 때문이다. 굳이 이 둘을 분리하자면 감성적인 면을 앞세우면 정(情)이라 표현 할 수 있고 이성적인 면을 부각시키면 의(義)라 할 수 있다.
난법자에 대한 경계
* 하루는 공사를 보시며 글을 쓰시니 이러하니라.
非人情이면 不可近하고
비인정 불가근
非情義면 不可近하고
비정의 불가근
非義會면 不可近하고
비의회 불가근
인간다운 정이 아니거든 가까이 말고
그 정이 의롭지 않거든 가까이 말며
의로운 모임이 아니거든 가까이 말라. (증산도 道典 6:99)
그래서 의(義)라는 말의 쓰임은 다양하다. ‘예의(禮義)’ --> ‘신의(信義)’ -->‘충의(忠義)’ --> ‘도의(道義)’로 점점 확장된다. 이것 말고도 더 있겠지만 앞의 단어들만 보아도 우리는 '의'라는 말 속에 스며들어 있는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 모든 관계에 속에서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를 한 단어로 ‘의리(義理)’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천지신명도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다.
증산도에서 말하는 ‘해원(解寃; 원한은 풀고)’, ‘보은(報恩: 은혜는 갚고)’, ‘상생(相生: 같이 잘살자)’도 모두 ‘의’라는 범주 안에 있다. 우주가을의 정신이 ‘의’이다. 왜 ‘義’이어야만 하는가. 선천의 봄과 여름은 분열하고 성장하는 역사 과정이다. 이 속에서 행하고 만들어졌던 모든 가치들과 삶을 가을개벽기를 맞아 평가할 때는 ‘옳고’ ‘바름’으로써 심판해야 한다. 정의로 불의를 응징하는 것이다. 그래야 사사로움이 없고 ‘공정’해지는 것이다. 이게 의 정신이다. 의는 세상을 개벽하고 새롭게 존속하게 만들어 모든 것을 바른 자리로 되돌리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의로 심판하는 과정이 없다면 그냥 ‘금수(禽獸: 짐승)’시대의 연장일 뿐이다.
거창하게 우주론까지 나갈 필요도 없다. 의의 중요성은 일상생활이나 역사 속에서 보아도 많은 예가 있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깡패들끼리의 의리나, 군신 간의 의리, 사제 간의 의리 등등 사람이 모여 만들어진 조직이 유지되는 덕목과 명분이기 때문이다. 깡패들의 모임을 옹호하는 게 아니다. 그들의 룰을 말하는 것이다.
* 하늘이 하지 못할 바가 없지마는 오직 의로운 사람에게만은 못 하는 바가 있느니라.
사람이 의로운 말을 하고 의로운 행동을 하면 천지도 감동하느니라. (증산도 道典 4:15)
('영웅본색2' : 평생을 두고 잊혀지지 않을 장면)
우스갯소리로 중국이나 홍콩 영화를 보면 조폭들이 관운장의 상 앞에서 의리를 맹세하는 걸 볼 수 있다. 중국의 조직폭력 집단인 삼합회는 청나라를 전복하고 명나라를 회복하려던(反淸復明) 조직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만주족에 대항한 비밀결사조직이었기 때문에 무엇보다 명에 대한 충의가 중요했다. 이런 연유로 관운장 형상을 두고 조직입단을 맹세하는 것이다.
*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믿는 자를 가려 손을 꼽는데, 만일 배신하는 행위가 있어 꼽혔던 손이 펴지는 때에는 살아남지 못하리로다." (증산도 道典 8:103)
필자에게 생소했던 의리의 세계와 소중함을 가슴 속에 확실하게 심어준 고마운 영화가 있다. 학창시절 많이 보았던 [영웅본색] [천장지구] [지존무상]이다. 철없던 나이에 정말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왔다. 저와 비슷한 세대들은 거의 공감하지 않을까. 당시 창피하게도? 관객들 사이에서 저 영화들을 보면서 울었다. 학교에서 단체관람 갔던 [하늘나라 엄마별이] 같은 슬픈 영화를 보고도 울었지만... 필자는 울보가 아니다. 그냥 볼 때 눈물이 나더라... 사나이의 눈물과 허세 사이 ㅋㅋㅋ
( -> 지존무상: 도신급의 실력자인 유덕화가 친구를 위해 칼날을 손으로 받아내고, 친구의 아내를 위해 독약도 마다않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ㅠ.ㅠ)
지금도 간혹 이 영화들을 다시보곤 하는데 볼 때마다 여전히 눈물이 나온다. "캬~~~ 의를 위해서 목숨도 마다하지 않는 그런 용기와 우정!!!". 우습지만 남자들이 여자가 드라마를 보면서 우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듯 아내도 내가 이 영화들을 보면서 우는 걸 이해하지 못하더라. 남녀의 감성 차이 ㅎㅎㅎ..
비록 조폭 의형제 사이의 의리지만 감동이 밀려오는 걸 어쩔 수 없다. 믿었던 사람에게 발등 찍히고 배신을 당하면 울음이 나올 정도로 분한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정의를 사랑하고 불의를 미워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이유를 불문하고 친한 사람끼리는 뒤통수치지 말자. 만나서 차분하게 말하던지 그것도 어려우면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퇴장하시던지. 왜 뜬금없이 친했던 사람의 뒤통수를 치고 배신을 때리는지... 참으로 몹쓸 사람들. 그런 마음으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러는지 허허 참..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될 일을... 부처의 가르침이 싫증나거나, 주지가 자기 맘에 들지 않거나, 절 생활이 싫으면 그냥 조용히 가시라. 굳이 스승과 도반들을 험담하고 심지어 자신이 몸담았던 곳을 해코지 하는 그런 못된 심보는 대체 뭔지? 언젠가 반드시 되돌려 받는다는 인과응보의 절대법칙을 정녕 모른단 말인가! 삼계복마대제이신 관운장이 정의의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그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는데.. 상제님께서 괜히 운장주를 내려주신게 아닌데...
또한 우리는 불의한 사람의 심성 밑바닥에는 항상 남을 탓하는 비겁한 기질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배신을 해도 항상 자신만 이해되는 논리로 변명거리를 만든다. 이런 자들은 무슨 일이 생기서 ‘주변 탓’, 누구누구 때문에 ‘남 탓’, 심지어 낳아 주었다고 ‘부모 탓’, 세상을 핑계 대며 ‘사회 탓’, 이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나라 탓’을 하면서 매사를 불신하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마저도 없다. 혹시나 '아니겠지?'라는 소박한 일말의 기대조차 태워버린 그대들은, 상제님 말씀처럼 ‘자아유지(自我由之)’이고 ‘자작사당(自作死黨)’의 형국이다. 스스로에게서 비롯된 것이고, 스스로 무덤을 판 것임을 알아야 한다.
지극히 사적인 자신의 모자람을 왜 공적인 일에다 떠넘기는가? 공산주의가 아니잖은가. 공사(公私)를 구별하지 못한 탓이다. 살아가면서 너무도 당연한 '소탐대실(작은 것을 탐하면 큰 것을 잃어버린다)'을 알지 못한 작은 심법과 좁은 안목에 대해 실망한다.
너, 불의한 자여 목을 내놓아라. 일도류! 뎅강?
신도의 병마대권자 관성제군
* 관운장(關雲長)은 병마대권(兵馬大權)을 맡아 성제군(聖帝君)의 열(列)에 서게 되었나니 운장이 오늘과 같이 된 것은 재주와 지략 때문이 아니요 오직 의리 때문이니라. (중략)
나는 추상 같은 절개와 태양같이 뜨거운 충의(忠義)를 사랑하노라. (증산도 道典 4:15)
그렇다면 만세충신의 표본인 관운장이 왜 의리의 표상이 되었을까?
20년 전 즈음인데 [도전]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한때 중국의 도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우연히 놀러갔던 차이나타운 거리를 지나가던 중 길가에 도관이 보이기에 일단 들어가 보았다. 증산도 도생이니 당연히 관심 깊게 살펴보던 중 우연히 벽에 걸린 그림 한 점을 보았다. 천상의 모습을 그린.. 구름 같은 풍경의 맨 윗자리에 옥황상제와 부인이 앉아 계셨고 바로 밑 왼쪽 편에 석가모니로 보이는 부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약간 오른쪽 편 아래에 관운장이 천룡언월도를 들고 서 있는 게 아닌가. 도관이라면 도교를 믿는 사원인데..
‘햐~~ 이런 그림이 있다니, 도교가 이런 정도의 수준인가’.. 필자는 내심 놀랐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도교가 당송시대를 지나 원나라 때 뛰어난 도사들이 대게 배출되었고 비슷한 그림이 많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책자도 보았는데 관운장과 관련된 주문도 있었다. 휴대폰이 있던 시절도 아니고 하필 사진기도 지참하지 않았었다.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 주문은 우리 증산도의 관운장주와 상당히 비슷한 구절들이 많이 있었다(쇼킹. 필자가 만일 도교학자라면 이거 논문으로 썼을 것이다). 이후 중국도교에 대해 공부해 보게 되었다. 앞으로 필자가 쓰는 글들 안에 공부하고 정리한 결론들이 조금씩 문장 속에 스며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상황인데 중국 도교의 유물을 전시한다고 하기에 방문한 적도 있었다. 한 방을 가득채운 신비로운 그림. 이건 다른 천신과 관련된 내용이다. 이글과 관련이 없으니 일단 패스하자~~ 아무튼 증산도 [도전] 속의 인물들이 신선세계의 최상위의 신들과 직결된 것을 알았다. 명불허전! 여동빈의 가르침으로 부흥했던 선맥 위에 유불선을 습합한 중국의 도교가 대단하다는.. 만일 우리 도생님들도 여유가 있다면 중국의 도관 중에서 최고로 치는 백운관을 한번 방문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 저도 가보고 싶다는...
* 한 성도가 여쭈기를 “최익현이 국난으로 죽고자 하였으니 충의로운 사람이 아닙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익현은 벼슬이 참판(參判)에 이르러 국은(國恩)을 많이 입었으니 이제 국난을 당하여 마땅히 죽음으로써 갚는 것이 의리상 옳으니라. 익현이 또한 이러한 뜻을 가져 나라를 위해 한 목숨 바치고자 하니 나는 그 뜻을 가상하게 여기노라. (증산도 道典 5:139)
다시 본론으로 와서, 관운장이 추앙받는 것은 ‘충의’ 때문이다. ‘충의’는 ‘예의’나 ‘신의’ 보다 상위 개념이다. 타인과의 관계를 지속할 때 예의를 지키거나 주변의 지인들에게 신의를 지키는 것보다, 충의는 나라라는 더 큰 ‘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충의가 큰 이유는 위인전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대다수의 위인이란 나라를 지키거나 빛낸 큰 인물들을 말한다. 그 중에서도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 의리를 지킨 인물이 가장 빛나는 법이다. 반대로 아무리 출중한 개인 능력을 지녔더라도 충의를 저버린 인물이 있다면 매국노로 취급받는다.
민영환의 충의에 혈죽을 내리심
1 하루는 한 성도가 여쭈기를 “민영환이 나라를 위하여 자결하였는데
2 벽혈(碧血)이 나오고 그 자리에서 청죽(靑竹)이 생겨났다 하니 이는 어떤 연고입니까?” 하거늘
3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민영환이 나라를 위하여 의롭게 죽었으므로 내가 혈죽을 내려 그의 충의(忠義)를 표창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5:140)
( -> 민영환 사진) 민씨 가문은 태종 이방원의 등극을 도운 일등공신임에도 부귀영화는 고사하고 거의 멸족을 당할 뻔 했었다. 조선말 국운이 다해가자 못다 푼 한을 맘껏 풀어내면서 왕조를 말아먹는 지경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그나마 충의지사인 민영환이 나왔기에 다행히(?) 역적가문이라는 오명만은 피했다. 민영환의 자결이후 마루바닥에서 갑자기 혈죽이 나온 일은 당시 백성들에게 대나무같은 독립심을 고취시킨 큰 사건이었다.
뛰어난 학식으로 공덕을 쌓아 국가적인 위인으로 평가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심금을 울리는 감동이 의인보다 작은 것도 사실이다. 알 듯 모를 듯 이런 차이는 바로 나라를 위하는 충의라는 행동에서 나오는 감동의 차이 때문인 것이다. 의로운 행동이란 자신을 버리고 남을 위하는 길(道) 이지만, 누구나 쉽사리 실천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전체를 위하는 고마움을 향해, 그대들 속에 잠자고 있던 인간의 양심이 무의식적으로 경외하는 것이다. 예의와 신의를 잃어버리는 것은 자신만의 믿음을 잃어버리는 작은 것이지만 충의을 잃어버리면 국가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사람이 모여 살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사회이고 이런 공동체가 점점 발전하여 국가가 이루어진 것이다. 반대로 국가가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지고 가족이 무너지는 법이다.
충의라는 것의 대표성이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관운장으로 대표되는 충의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충(忠)이라는 말을 보면 가운데 중(中)에 마음 심(心)이 밑에 붙어 있는 모양이다. 먼저 중심(中心)이 올바로 서있어야 충의가 비로소 나오는 것이다.
충의의 상징
[삼국지]에 나오는 관운장에게서 풍기는 기운에 대한 느낌을 전해주는 두 사람의 평이 있다. 관운장의 인정과 의리에 대해선 수많은 대목들이 있지만 필자는 두 사람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관운장의 풍모와 기상은 과연 어땠을까? 사람을 알아보고 잘 쓰는 지인지감에다 카리스마까지 넘치는 조조는 운장의 풍모와 인격에 깊이 감동하여 곁에 두고 싶어 했다. 같은 시대 난세의 천하를 돌며 수많은 사람을 접하고 치료하며 한 눈에 환자의 병명을 알아볼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던 화타가 있었다. 이 둘은 신인과 천신으로 평한다. 아마도 관운장은 일반인들은 범접할 수조차 없는 어마어마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던 듯하다.
* 조조가 말하기를 “공(운장)은 진정으로 신인(神人)이오” 하며 찬탄해 마지않자..
* 화타가 말하기를 “저는 의사로 한평생 살았어도 이런 모습을 일찍이 본 적이 없습니다. 군후께서는 진실로 천신(天神)입니다!”
으리의 시작점인 도원결의. 하필 복숭아 농원?
복사꽃은 귀신을 부르고, 가지는 잡귀를 쫓아낸다..
관운장의 전생이 화룡성이고 인간으로 귀향 온 내력부터 이미 의로움의 조짐을 보인 전설이 있었다. 하지만 관운장의 의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관운장의 시작이 되는 의형제들과의'우의', 한나라에 대한 '충의', 약한 사람을 돕는 '인의'까지 실천한 분이다.
관운장이 의인의 표상이 된 것은 단지 후대 임금들이 나라와 자신에게 충성하라고 만들어 낸 허수아비가 아니다. 왜냐면 관운장 신앙의 시작은 백성들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불의한 일이 생겼을 때 간절히 기도하면 어김없이 나타나 응징한다. 이것이 입소문을 타면서 퍼지게 되고 억울함이 많을 수밖에 없는 민초들은 관운장의 도움을 받았다. 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깊숙이 널리 번저나갔다. '유구필응(有求必應)'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ㄱ
관운장의 안면상.
'유구필응(간절히 구하면 반드시 응한다)'이라는 한자가 머리 위에 새겨져 있다
관운장의 성제군으로 재탄생한 이유
[삼국지]를 보자. 관운장은 오나라와 형주를 놓고 치열하게 싸운다. 그러다 여몽의 계략에 말려 사로잡히게 된다. 오나라에서 죽음을 맞이한 관운장. 유비의 보복이 두려운 손권은 조조에게 관운장의 머리를 보낸다. 운장을 존경한 조조는 제후의 격식으로 성대히 장사를 지내준다. 그리고 운장의 몸체는 호북성 옥천사 근처 관릉에 묻힌다. 이 당시 관운장의 혼령은 옥천사를 떠돌며 머리를 내놓으라고 소리친다. 이때 옥천사에는 관운장이 유비를 만나기 위해 조조를 떠나 오관을 돌파할 때 도움을 준 보정스님이 암자를 짓고 참선수행을 하고 있었다. 어느날 밤 관운장은 관평과 주창을 대동하여 적토마를 타고 나타나 머리를 돌려달라고 소리쳤다. 보정 스님은 관운장을 불러 설법한다.
(->호북성 옥천사 대웅전 모습. 이곳에는 관운장이 나타났다는 현성비가 있다. 장강삼협을 여행하는 코스에 포함되어 있다)
보정스님이 외쳤다. “관우는 어디에 있느냐?”
관우의 혼은 곧바로 말에서 내려 바람을 타고 보정 앞으로 내려왔다.
관우가 물었다.
“스님은 도대체 누구시오?”
“이전 사수관 진국사에서 만나지 않았소. 어찌 잊었단 말이오.”
관우는 그때 일에 감사를 표하고 “저는 화를 당해 죽은 몸이 되었습니다. 부디 미혹에서 벗어날 길을 알려주시오”하고 부탁했다. 보정이 대답했다.
“과거와 현재의 시비를 말하지 마시오. 장군은 여몽에 죽어 목을 돌려달라고 하나 그렇다면 옛날에 장군에게 죽은 안량과 문추, 그리고 오관의 장수들은 누구에게 머리를 돌려달라고 했야겠소.”
이 말을 듣고 관우는 홀연히 깨닫고 보정에게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후에 옥천산에는 가끔 관우의 신령이 나타나 백성들을 보호했다. 그래서 주민들은 산꼭대기에 사당을 세워 춘하추동으로 제사를 지냈다. [삼국지연의]
보정스님의 설법 이후,
관운장은 굳은 결심을 세우게 된다. 자신이 아닌 억울하게 죽은 수많은 사람을 도울 것이라고... 깨달음으로 가슴 속의 원한을 풀고 넉넉해진 마음자리에 자비로움과 정의가 충만하게 채워진 것이다. 더 강력한 모습으로 재탄생!
관운장의 1라운드의 활약은 선천시대 모든 술수와 배신이 어지럽게 춤추던 삼국천하에서 만세의 귀감이 되는 충의의 푯대를 세운 것이다. 2라운드는 신명계에서 불의한 귀신들을 물리치고 선량한 사람을 돕는 '인의(仁義)'를 행동으로 보인 것이다.
大仁大義는 無病이니라
대인대의 무병
- 대인대의하면 병이 없느니라.
三界伏魔大帝神位는 遠鎭天尊關聖帝君이라
삼계복마대제신위 원진천존관성제군 (증산도 道典 5:347)
자신의 나라를 위한 충의를 넘어 온누리를 위한 보편적 정의를 향해 나간 것이다. 천지간의 옳음과, 마땅한 도리를 인세(人間世)에 실천하는 신(神)의 위격으로 금선탈각(金蟬脫殼)하는 순간이다.
관운장의 신명세계에서 활약이 얼마나 대단했냐면, 괴이소설의 최고봉인 '포송령'이 쓴 [요재지이]라는 책을 보면 단편적으로 알 수 있다. 이 책은 중국에서 전해져 오는 민담과 전설을 모은 것이다. 여기에 관운장과 관련된 내용이 적지 않다. 유생, 스님, 도사는 물론이거니와 신선과 저승세계도 나오고 요괴, 마신, 호선(狐仙: 여우가 도를 닦아 된 신선) 및 정령들도 나온다. 불의한 존재들을 벌벌 떨게 만드는 그 이름이 바로 관운장이다. 도생들은 시간이 나면 꼭 이 책을 잃어보시길.. 신명세계를 보는 안목과 이해가 커진다. 증산도 도생들의 신도체험을 두고 무조건 미신이니 신기가 있다는 둥하면서 무시부터 하는 철없는 소리를 할 정도의 안목을 이젠 벗어나야하지 않겠는가. 단지, 이 책은 분량이 상당하여 편수가 엄청 많다. 책값이 많이 들어간다는...
결국 관운장은 스스로의 노력과 행위로써 일반백성들의 인정을 받아 신으로 화한 것이다. 그리고 당당히 성제군이라는 천신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마침내 옥황상제님이 머무는 도솔천 옥경의 삼문을 지키는 수문장으로 임명받게 된다. 옥경삼문(玉경三門)의 수문장이라면 수도방위사령부라는 것인데 천상에서는 이 보다 훨씬 더 높은 가치를 지닌 자리이다. 한 나라의 수도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우주를 총괄하시는 옥황상제와 천존들을 비롯한 상위의 신선들 안위를 지키는 총책임자이기 때문이다. 의리와 실천으로 이 자리까지 올라간 것이다.
* 상제님께서 (관왕묘 공사 때) 말씀하시기를 “이제 동양에서 서양 세력을 몰아내고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한 약소국을 건지려면 서양 열강 사이에 싸움을 일으켜야 하리라.
관운장이 조선에 와서 극진한 공대를 받았으니 그 보답으로 당연히 공사에 진력 협조함이 옳으리라.” 하시고 이 때 자못 엄숙한 가운데 상제님께서 세계대세의 위급함을 설하시고 서양에 가서 대전쟁을 일으키라는 천명을 내리시거늘 관운장이 감히 거역할 수는 없으나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아 머뭇거리는지라
상제님께서 노기를 띠시며 “때가 때이니만큼 네가 나서야 하나니 속히 나의 명을 받들라. 네가 언제까지 옥경삼문(玉京三門)의 수문장 노릇이나 하려느냐!” 하고 엄중히 꾸짖으시니라. (~ 하략) (증산도 道典 5:166)
옥천사에 있는 관운장과 관평 주창
위 [도전]을 보자. 상제님께서 선천시대의 악업을 끝내기 위해 큰 화를 작은 화로 막는 천지공사를 보신다. 그것이 서양에 큰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다. 서구 열강이 저질렀던 죄악이 너무도 크기에!... 이 일을 맡을 최적임자는 관운장 뿐이다. 왜냐? 만고원신들이 한을 풀어내는 과정이 세계전쟁인데, 아무 기준없이 온갖 원신들이 막무가내로 한풀이를 하면 되겠는가. 오직 추상같이 정의로운 존재가 중심자리를 지키고 있어야만 '공(公)심판' '사(私)심판'이 바르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개벽 때에도 사정을 봐주는 예외가 없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너무 팍팍한 이야기인가? 아니다. 실제 천상에서는 우리들이 상상하는 살벌한 차원을 넘어서서 전개되고 있다. 헐~ 그럼?... 우리는 그냥 바르게 살고 바르게 수도를 하면 된다. 불의한 심법을 자진 사람과 범죄자는 법도를 무서워하지만, 일반서민이 상식을 지키면서 살아가면 평생토록 문제되는 일이 없는 것과 같다.
( -> 사진: 충의재신. 충의와 복록을 뜻하는 재신이 합쳐진 말이 와닿는다) 중국의 사당을 보면 거의 관제묘이다. 공자와 석가모니보다 훨씬 많다. 비교도 안된다. 그 만큼 민중의 삶 속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민중들은 주판을 처음 만든 사람이 관운장이라하여 재신(財神)으로도 받든다. 인간이 바라는 복록과 수명도 의에 달려있다는 걸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관운장의 고향이 산서성이다. 예로부터 소금 산지로 유명하여 장사가 발달하였다. 세계에서 활약하는 화교들의 원조가 산서성 출신들이다. 이들이 중국각지와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큰 돈을 벌어들이면서 이런 재신 신앙이 민중 속으로 더욱 확대되었다.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거의 모든 상점의 문 앞에 붙어 있는 긴 수염에 관복을 입은 신이 바로 관운장이다. 재신뿐만 아니라 수명, 입시, 승진 등도 빌면 효력이 있다고 한다. 관운장의 전방위적인 활약을 알 수 있다.
또한 유불선 모든 종파에서도 관운장 만큼은 인정하고 받든다. 유가에서는 공자가 쓴 [춘추]를 생전에 즐겨 읽었고 무엇보다 유생들이 중요시 여기는 덕목인 충을 실천하였기에 추앙한다. 불가에서는 부처와 불법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모시며, 도교에서는 옥경삼문을 지키는 천존으로 등장한다.
여기에 중국왕조가 바뀌면서 관운장의 충의를 기리는 임금들을 통해 호칭의 등급도 급상승한다. 관작이 살아있을 땐 ‘한수정후’라는 제후에 불과했지만 송나라 때 공자의 문묘(文廟)와 쌍벽을 이루는 무묘(武廟)에 모셔지고, ‘관왕(關王)’이라는 호칭을 넘어서 ‘관제(關帝)’가 되더니, 성인 성(聖)을 붙여 ‘관성제군(關聖帝君)’으로 봉해진다. 나아가 명나라 신종 때는 ‘삼계복마대제신위 원진천존관성제군(三界伏魔大帝神位 遠鎭天尊關聖帝君)’으로 까지 추봉된다. 살아있는 절대 권력자인 황제보다 더 위의 자리로 올라간 것이다.
[삼국지연의]에는 그의 생애와 업적을 찬양하는 두 편의 시가 있다. 햐~~ 본디 의리없고 무심하기로 유명한 중국인들이 이런 시를 써서 백성들을 고양할 정도다. 중국인들에게 관운장이 없었다면 중원은 오래 전에 사라졌으리라~~
한나라 말년에 그 재주 당할 자 없고
관운장이 홀로 뛰어 났도다
신(神)다운 위엄은 무(武)를 분발하고
선비의 아량은 겸하여 글을 알았도다
하늘의 해 같은 마음은 바로 거울이요
춘추의 의기는 구름을 쓸었도다
그 빛남이여, 만고에 전하니
삼분천하의 으뜸만이 아니니라(*)
뛰어난 인물을 말할 때는 예부터 해량(관운장의 고향) 땅을 일컫고
백성들은 다투어 한나라 관운장께 절하는도다
어느 날 도원에서 한번 형과 동생이 되더니
천추에 황제와 왕으로서 제사를 받는도다
그의 기상은 바람과 우레를 옆에 낀 듯 대적하는 자가 없고
그 뜻은 해와 달을 드리운 듯 불멸의 빛이로다
오늘에 이르도록 천하 도처에 사당과 초상이 있으니
늙은 나무 싸늘한 까치 소리에 몇 번이나 황혼은 되풀이 됐던고(*)
필자가 관운장의 의리를 찬양하는 건 당연하다. 별다른 이유가 없다. 아니 관운장이 왜 사람들에게 추앙받는지만 확실히 알면 된다. 오직 '의리' 때문이다. 민초, 신하, 임금, 신명 모두 이 ‘의리 의(義)’ 한 자를 실천한 최고의 인물로 관운장을 꼽고 있는 것이다. 의리는 신분과 남녀노소 그리고 시대를 뛰어넘는 최고의 가치를 지녔다. '의(義)' 하나만 잘 지켜도 인생의 본전 이상을 얻는 것이다.
재능과 학식이 많아도 의가 없으면 매장되고, 내세울 것 없이 살아도 급박한 순간에 의를 실천하면 일약 의인으로 남는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될 수 없는 것이 의인이다. 우리 도생들도 마찬가지다. 가을 개벽을 맞아 최소한의 인간 도리인 의를 버린다면, 그 사람은 1만2천 도통군자의 자격을 갖는 것은 고사하고 개벽기에 살아남는 것도 심각하게 재고될 것이다. 가을의 정신은 바로 '정의'이기 때문이다!!!
자 그럼 상제님께서 던진 '의리' 구절을 보고 마무리 짓겠다.
먼저 '사제간의 의리'다.
*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선천에는 도수가 그르게 되어서 제자로서 스승을 해하는 자가 있었으나 이 뒤로는 그런 불의를 감행하는 자는 배사율(背師律)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사강육륜의 도륜을 내심
*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유가에서 군사부일체를 주장하나 삼강오륜(三綱五倫) 어디에도 스승과 제자의 도리는 없지 않으냐. 이에 삼강오륜을 보전(補塡)하니 앞으로는 사강육륜(四綱六倫)의 도륜(道倫)이 나오리라.” 하시며 일러 주시니 이와 같으니라.
夫爲婦綱 父爲子綱 師爲弟綱 君爲臣綱
부위부강 부위자강 사위제강 군위신강
夫婦有別 父子有親 師弟有禮 君臣有義 長幼有序 朋友有信
부부유별 부자유친 사제유례 군신유의 장유유서 붕우유신 (증산도 道典 2:27)
'군신 간의 의리'도 보지 않을 수 없다.
* 상제님께서 큰 소리로 맹자를 부르시어 “맹자야, 이 역적놈아!” 하고 꾸짖으시니라.
이에 한 성도가 여쭈기를 “맹자를 역적이라고 꾸짖으시니 무슨 까닭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마음속에 임금과 신하의 의리가 있다면 임금을 임금 같지 않게 볼 수가 있겠느냐.
신하가 임금을 원수같이 보았으니 내쳐도 무방하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4:46)
마지막으로 상제님께서 어천 전에 확실하게 의리를 말씀하셨다.
이건 일꾼을 자칭한다면 절대 잊어버리면 안되는 상제님 최후의 당부이다.
* 증산 상제님께서 어천하실 즈음에 성도들에게 몇 차례 깨우쳐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큰 복을 구하거든 일심(一心)으로 나를 믿고 마음을 잘 닦아 도를 펴는 데 공을 세우고 오직 의로운 마음으로 두 마음을 두지 말고 덕 닦기에 힘써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10:62)
시퍼런 갑옷을 입고
시퍼런 두건을 쓰고
날 시퍼런 청룡언월도를
서슬퍼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일꾼들이여, 운장주를 열심히 읽자!!
바로 위 사진의 관성제군의 청룡언월도를 자세히 보면 상징성이 담겨 있다. 청룡의 입에서 내뿜어져 나온 칼날이 곧 불의를 응징하는 불칼이라는 것이다. '청룡'과 '언월'에 담긴 의미를 잘 되새겨 보시길.. 세상에서 일어나는 큰 일은 허투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깊이 알고보면 숙명이 있다. '적토마'도 같은 의미다.(*)
*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남조선배가 떠나오니 어떠하냐? 이 일이 우리들의 기초니라.” 하시거늘
모두 일어나 절하며 아뢰기를 “참 무섭습니다. 선생님이 아니면 다 죽겠습니다.” 하니
말씀하시기를 “이렇게 허약한 무리들이 어찌 일을 재촉하느냐.
육정육갑(六丁六甲) 쓸어들이고 갑을청룡이 내달릴 때는 살아날 놈이 없으리라.
이처럼 급할 때 나를 부르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5:113)
첫댓글 이 글을 쓰면서 여러명이 생각나는군요..
시퍼런 봄과 여름을 시퍼른 빛으로 심판하는..... 관운장님께서 시퍼런 옷을 입은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