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부사 정현덕의 부산 유적
금강원시비;금강공원 독진대아문 옛 이전터
태평원 시비;동래유치원(상춘정 터)
부사정현덕흥학비;동래향교
부사정현덕영세불망비;금정산성 국청사
봉래별곡蓬萊別曲;
설명1.참고(박하의 세상읽기)
설명2.봉래별곡 해석
逢萊別曲 - 鄭顯德 東萊府使 作
逢萊山 옛말 듯고, 예 와 보니 咫尺이라
東海水 淸明한데, 魯仲連이 간 곳 없다.
徐氏 採藥舟에 童男童女 못 보와라
安期生 赤松子난 白雲深處 자치 없다.
神仙말이 황당하니 다 후려 더져두고
所見을 말을 내니, 別曲이 되었도다.
丈夫慷慨 못 이겨서 多遊하야 살펴보니
金井山城 大排布에 梵魚寺가 더욱 조타
蘇蝦亭 드러가니 處士난 간곳 업고
遊仙台 울나가니 道士난 어대 간고
溫井 藥水 神效하니 病人治療 근심 업다.
盃山이 案山되고 슈무막이 되였도다
靖遠樓 바래보니 노교수 어대매요
安樂書院 드러가니 忠臣烈士 거룩하다
荒嶺峰 올나갈제 竹杖芒鞋 醉한 몸이
左편은 水營이요 右편은 釜山이라
對馬島 一岐島난 海外에 둘러 잇다
沒雲臺 海雲臺난 勝地라 이르니라
永嘉臺 노푼집은 釜山景槪 제일이라
節制使 主鎭되고 兩浦 萬戶 附庸대야
倭館을 防衛하니 南徼鎖鑰 여기로다
壬辰年 八年兵火 忠臣烈士 긔뉴신고
宋忠臣 鄭忠將은 紫衣黑衣 거룩하다
形色 千秋 못 이져서 殉節터의 築壇하니
烈女로 扶稙하고 壯士로 配享한다.
子城臺 一片石은 萬古史蹟 그뉘 아리
大明恩德 갚으랴면 昊天이 罔極하다
鄭墓라 이른 말은 東萊鄭氏 始祖로다
東平縣 古邑 터의 人家도 櫛比하다
烈女閣 孝子碑난 大路邊의 포량이라
甑臺城上 들너보니 倭城턴이 분명하다
龜峰峰 泰平하니 邊方에 일이 업다.
개원 豆毛 다 지내니 草梁浦 分明하다
守設門 嚴肅하니 客舍 大廳 雄壯하다
四屛山下 宴大廳은 倭使接對 무삼일고
東西舘 완담안에 동헌서가 더욱 죠타
大峙 넘어가니 多大鎭이 거룩하다
降仙臺 어대매요 神仙이 노단말가
陸地를 다 본 후에 道中을 향하리라.
絶影島 드러가니 水路十里 的實하다
山下는 牧場되여 三千駿馬 聳動이라
山上은 封山되여 왜시 入禁 多事하다
점점 지퍼 드러가니 數三漁村뿐이로다.
伐木겨경 차자가셔 太宗臺 다달으니
海上의 높은 바외 千丈萬丈뿐이로다
관청대가 그 앞이요 동우섬이 압임이라
五六島난 東편이요 牛岩浦난 北便이라
滄浪歌 한 曲調에 仙境이 的實하다
仙綠이 업돗던지 紅塵의 일이 만타
秦始皇 漢武帝도 이곳을 어이 보리
니내몸 무삼 緣分 仙境을 遍踏하고
不死藥 잇다 말이 方士의 빈말이라
吳道子의 腹中山川 긔 누라셔 아라내리
니내몸 虛浪하여 江山을 周遊하니
歲月이 如流하여 三年이 如夢이라
도라가 傳하고져 洛陽親舊 이러리라
입아 蓬萊 벗님들아 내 길 막아 무어하리
나도 가기 실타마난 聖恩이 罔極하니 가프러 가노라.
■ 봉래별곡의 註解
봉래산(蓬萊山,逢萊山) : 중국의 전설에 동해에 있어 신선이 산다는 三神山의 하나.
지척이라 : 동해가 咫尺으로 가깝다는 뜻
魯仲連 : 戰國時代 齊나라의 사람으로 웅변가이며 용기와 절개로 유명하였으나 뒤에 바다로 도망하여 숨어서 살았다 함.
徐氏 : 진나라 때 사람으로 徐福이다. 진시황의 명령으로 童男童女 3천명을 배에 싣고 떠났 으나 돌아오지 않았다.
安期生 : 옛날 오래 산 사람으로 바닷가에서 약을 팔고 다녔다 함.
赤松子 : 옛날에 살았다는 神仙의 이름.
神仙말이 : 신선이 있다는 말이
金井山城 : 금정산에 둘리워진 산성으로 현재의 성은 1703년에 축성하였으며, 사적제215호이다.
梵魚寺 : 금정구 청룡동 546번지 일원에 있는 사찰.
蘇蝦亭 : 동래 온천장과 부산대학교 사이의 蘇亭마을에 있었던 정자로 蘇蝦仙人이 산 곳이라 함.
溫井 : 동래 온천
盃山 : 남구 망미동의 북쪽의 산으로 동래구 연산1동과 8동의 남쪽 사이에 있는 산이다. 동래부사청에서 보면 바로 앞산이 된다.
案山 : 집이나 墓자리의 맞은 편 산.
슈무막이 : 풍수지리의 용어로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이 빨리 돌아 흘러서 하류가 보이지 않게 된 형세의 땅.
靖遠樓 : 동래공설시장 자리에 있었던 누각으로 壬亂 때 燒失되었으나 1708년에 중건하였는데, 지금은 없다.
盧敎授 : 임란 때 동래향교의 교수로 節死한 盧蓋邦을 말함.
安樂書院 : 忠烈祠 안에 있는 1652년에 세워졌던 書院
荒嶺峰 : 양정동의 남쪽, 전포동의 동쪽, 문현동의 북쪽인 황령산 봉우리.
水營 : 慶尙左道水軍節度使營의 줄인 말로 남구 수영지역에 있었던 水軍 基地.
釜山 : 여기서는 옛날의 부산으로 지금의 좌천동과 범일동에 해당됨.
沒雲臺 : 사하구 다대동 산114번지 일원으로 기념물 제27호이다.
海雲臺 : 해운대구의 동백섬에 있었던 臺
永嘉臺 : 동구 성남초등학교 서쪽 철로 사이에 있었던 대로 조선조 때 일본으로 사신이 왕래할 당시에는 여기서 해신제를 지내고 이곳 선창에서 떠났다. 경부선철도공사와 간척으로 없어졌다.
節制使 : 僉節制사로 종3품의 무관벼슬로 지금의 자성대 성내에 있었던 釜山鎭僉使를 말함.
兩浦 : 좌천동 앞바다에 있었던 부산포와 수정동 앞바다에 있었던 두모포를 말함.
萬戶 : 당시 부산포에 있었던 開雲浦萬戶와 두모포에 있었던 豆毛浦萬戶를 말함
附庸 : 붙어 있다는 뜻.
倭館 : 조선시대 왜인들이 통상을 할 수 있도록 부산에 개설해 준 通商舘.
南要鎖鑰 : 부산진성(현재의 자성대성) 서문 양쪽에 南徹咽喉 西門鎖鑰이라는 큰 글자를 새긴 隅柱石이 있었다.(이곳은 나라의 목이되는 남쪽 국경이며, 서문은 나라의 자물쇠와 같다.)
宋忠臣 : 임진란 때 殉節한 東萊府使 宋象賢 公
鄭忠將 : 임진란 때 殉節한 釜山鎭僉使 鄭撥 公.
紫衣黑衣 : 紫衣는 송부사가 입었던 붉은 색의 朝衣, 흑의는 정첨사가 입었던 검은 색 도포를 말함.
形色 : 모습이라는 뜻
築壇 : 鄭撥將軍이 전사한 부산진성 남문 터 자리에 그의 祭壇을 쌓다.
扶稙 : 정발첨사의 비 곁에 함께 순절한 烈女 愛香의 비를 세움을 말함.
配享 : 당시에 전사하였지만 이름을 알 수 없었던 사람들을 하나의 비석으로 세운 戰亡諸人碑를 말함.
子城臺 : 임진왜란 이전은 부산진성의 枝城이었지만 임란 후에는 釜山鎭僉使營이 된 동구 범일동 소재의 공원.
一片石 : 자성대 위에 있었던 明나라 장수 萬世德의 碑石.
大明 : 명나라의 높임 말.
昊天罔極 : 하늘처럼 넓고 끝이 없다는 뜻.
鄭墓 : 거제동의 서쪽 산인 和池山에 있는 동래 정씨 시조인 鄭文道의 무덤.
東平縣 : 조선시대 오늘날의 부산진구, 동구, 중구, 서구지역을 관장하였던 행정관서로 현령이 다스렸고, 그 치소는 지금의 당감동이다.
포량(襃揚) : 칭찬하고 장려한다는 뜻.
甑臺城 : 동구 증산에 있는 凡川甑山城으로 임진란 때 倭寇가 쌓은 倭城이다.
텬이 : 터인 것이
龜峰峰 : 초량 뒷산인 龜峰山.
개원 : 開雲이 잘 못 쓰인 것으로 임진란 뒤 울산 개운포에 있었던 만호영이 부산포로 이관되었는데, 오늘날의 좌천동 앞바다인 부산포에 鎭營이 있으면서도 개운포진이라 하였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서는 부산포를 개운포라고 하기도 하였다.
豆毛 : 임진왜란 뒤 기장에 있었던 두모포만호영을 부산포로 옮겼다가 뒷날 지금의 수정동 앞바다로 옮겼다. 그래서 수정동 앞바다를 두모포라 하고, 그 진영을 두모포만호영이라 한다.
守設門 : 지금의 중구 용두산 주위에 있었던 초량왜관의 출입문으로 守門과 設門이 있었다. 수문은 왜관의 정문으로 오늘날의 동광동에 있었고, 수문에는 동래부에서 파견된 군관 3명이 왜관 출입을 검열하였다. 설문은 왜관의 수문 밖인 영주동에 있었다. 倭商들의 密賣買 행위와 지방민과 왜인의 왕래를 단속하기 위해 세워졌는데, 여기에도 군관 3명이 출입을 지켰다.
客舍 : 지금의 영주동 봉래초등학교 자리에 있엇다. 이 객사에는 조선조 역대 군왕의 位牌가 안치되어 초량왜관으로 오는 倭使臣은 이곳으로 와서 肅拜를 올리게 하였다.
西屛山 : 지금의 대청동 뒷 산.
宴大廳 : 우리나라 사신과 倭使臣이 접대를 하고 받는 宴會를 위해 지어진 大廳으로 지금의 대청동 남일초등학교 부근에 있었다. 연대청의 크기는 35餘間이나 되었고, 오늘날의 대청동이란 이름은 연대청에서 온 말이다.
東西舘 : 용두산을 중심으로 세워진 왜관 중에 오늘날의 동광동과 광복동 입구쪽에 있던 건물을 東舘이라 하고, 서쪽인 신창동쪽에 있었던 건물을 西舘이라 함.
완담 : 둘러싼 담
東軒舍 : 동관
大峙 : 지금의 서구와 사하구로 넘나드는 고개인 대티고개를 말함.
多大鎭 : 다대포에 있었던 다대첨사의 진영
降仙臺 : 하단에 있는 에덴공원의 원래 이름이다.
島中 : 절영도(영도)
聳動 : 꿈틀거림
외시(外寺) : 외사는 司僕寺로 輿馬, 廢牧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
겨경 : 작은 길
동우섬 : 태종대 전망대에서 동남쪽으로 바라보이는 주전자섬,
鍮盆島 또는 生島라고도 함
압임 : 앞 섬
吳道子 : 당나라 현종 때의 화가
虛浪 : 언행이 허황되고 착실하지 못함.
周遊 : 두루 돌아다님.
洛陽 : 서울을 이름
입아 : 이봐.
설명3.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전
「봉래별곡」은 창작 동기를 읊은 12구까지의 서사(序詞),
동래를 구경한 내용과 일본의 관문인 동래를 지키겠다는
항일 정신을 나타낸 106구까지의 본사(本詞),
성은(聖恩)을 갚기 위하여 귀경(歸京)한다는 117구까지의 결사(結詞)로 구성되어 있다.
금강원 시비金剛園 詩碑
정묘지년아마동(丁卯之年我馬東) 정묘년(1867, 고종 4)에 내가 말을 타고 동래로 오니
차방민물견번웅(此邦民物見繁雄) 이 고을 백성과 물자가 번성하구나
거인진유승평락(居人盡有昇平樂) 주민 모두 태평 시절을 즐기고 있지만
수수무한폐공(守殊無捍蔽功) 늙은 태수 자리만 지켜 특별한 공적이 없네
홍우지대가선월(紅藕池臺歌扇月) 붉은 연못 정자에 부채 부치며 달을 노래하고
녹양성곽주기풍(綠楊城郭酒旗風) 푸른 버들 성곽에 술집 깃발 날리우네
계림고사의연재(鷄林古事依然在) 계림의 옛이야기 의연히 남아 있어
만만파파일적중(萬萬波波一篴中) 만파식적 소리 아직도 한 피리 속에 들리네
월절고성대해빈(越絶高城大海濱) 큰 바닷가 유난히 높은 성
백계연화정변진(百季煙火靜邊塵) 백년토록 변진 봉화 고요하여라
조정이아위민목(朝廷以我爲民牧) 조정에선 나를 목민관으로 삼았지만
정적여하사고인(政績如何似古人) 치적이야 어찌 옛사람과 같을 수 있나
감도포편능화위(敢道蒲鞭能化僞) 감히 부들 채찍으로 거짓을 교화한다 말하리
수언훼복여위린(羞言卉服與爲隣) 오랑캐와 더불어 이웃한다 말하기 부끄러워라
군은미보신공로(君恩未報身空老) 임금의 은혜 갚지 못한 채 몸만 헛되이 늙고
옥적매화우송춘(玉篴梅花又送春) 옥피리와 매화꽃 속에서 또 봄을 보내는구나
지부 해소 정현덕(知府 海所 鄭顯德) 동래부 책임자 해소 정현덕
태평원 시비太平園 詩碑
태평교 다리 아래 태평원에는
정원의 풀과 꽃이 날로 무성해지네.
돌 위엔 큰 글바 셋 세로 새기었고
길가에선 한 지방 얘기 많이도 듣는다네.
멀리 가는 수레도 변방이 괴롭지 않으니
농사꾼도 모두 임금의 은혜를 아네.
촌 늙은이 살펴보니 머리는 눈 같은데
느릅나무 우거진 곳에서 손자 아이와 유희하네.
태평원 안의 만년대에는
도호부사 외영外營을 물가에 열었네.
경치 좋은 곳에 아지랑이와 안개 쉽게 거느리고
언덕 둘러 꽃나무도 손수 새로 심었네
1867(고종4_부터 7년간 동래부사를 역임한 정현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