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바로 알기 - 역사를 모르고 알려고하지 않는 민족은 사라지는 문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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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선구자'의 탄생 비화 - 원래 시 "용정의 노래"에서 출발.
당시 간도에서 시를 쓰던 윤해영 (尹海榮,- 친일제부역자 1909-1956 )이 ‘용정의 노래’라는
시를 써서 작곡가 조두남 (趙斗南, 친일제부여역자, 1912-1984)에게 주고 1932년
가곡 '선구자'가 탄생했다. 우리들에게 친숙했던 가수 조영남 또는 터너 가수들이 열창했던 곡.
선구자를 작곡한 당시 21세의 청년 조두남은 하얼빈의 한 여관에서 윤해영을 만나 가사를
전해받았고, 이후, 윤해영은 홀연히 사라져졌고, 다시는 그를 보지 못했으며 그에게서
독립운동가의 냄새가 났다고 하여, 한때는 윤해영이 신비스런 베일에 가려진
독립운동가로 알려졌는데, 조두남의 이 증언은 모두 허위였던 걸로 판명 드러났다.
[ 가사 선구자 전문 ] - 과거 침략군 찬양 조 .
일송정 푸른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용두레 우물가에 밤새 소리 들릴때
뜻깊은 용문교에 달빛 고이 비친다
이역 하늘 바라보며 활을 쏘는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용주사 저녁종이 비암산에 울릴때
사나이 굳은 마음 길이 새겨 두었네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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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순 음악으로서의 가사는 잘 쓴 글이라 생각된다. 누구는 말 달리던 선구자를
홍범도 장군이나 독립투사로 미화하나,, 당시 독립군 들은 말타고 전쟁놀이
할만큼 여유도 없었던 것이다. 독립 투사들은 말탄 적을 보면 숨어서 총 쏘기 바쁜 것이었다.
사나이 굳은 마음과 조국은 침략자들의 나라번성인 것이다. 당시 이 시 썻던 자들은
친일제 부역자들로, 기회주의적 발상이었던 것이다. 해방후에도 조두남의 위선은 가려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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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를 쓴 '윤해영'은 일제가 세운 만주국에서 ‘오족협화회’ 간부로 활동하면서 일제를
찬양하고 옹호하는 시를 썼던 대표적 친일 부역자 시인이었다. 1945년 일제 패망 후에
윤해영은북한에서 토지개혁정책을 찬양하는 '분배받은 땅'이라는 노래를 발표하기도 하여
대표적인 '꺼삐딴 리' (기회주의자)의 면모를 과시했다.
(*오협화회는 당시 일제의 괴뢰정부인 만주국에 살던 다섯 민족, 즉 만주족, 몽고족,
한족 일본족 조선족 5족이 협조해야 한다는 일본의 통치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만든
친일조직이다.)
윤해영 (尹海榮,1909-1956 )은 해란강, 아리랑 만주, 낙토 만주 등 만주국의 건국이념을
찬양하는 다수의 친일시를 발표했다. 낙토만주는 만주국에서 정책적으로 널리
보급한 노래이며 아리랑 만주는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한 만선일보의 공모전에
당선된 작품이다.
조두남이 윤해영을 베일에 싸인 독립운동가로 둔갑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첫째, 그는 자신이 작곡한 가곡 '선구자'의 인기를 누리고 싶었을 것이다. 당시에 윤해영이
친일인사라는 사실이 알려졌다면 기독교방송에서 7년간이나 선구자를 시그널뮤직으로
사용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더우기 각종행사와 집회의 애창곡이 될 리는 만무했을 것이다.
선구자의 인기에 힘입어 조두남은 '선구자'라는 제목의 수필집까지 발간하며 국민예술가로서의
영예를 누렸다. 윤해영에 대한 신비주의 작전이 잘 먹혀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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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구자 가사를 옛 독립군 및 의로운 선각자들을 기리며 바꾸어 본다 - 작사 김광수.
[ 백두산 탐방 선각자 가곡 1, 2, 3 절 - 유두브 동영상 ]
https://youtu.be/JEDqI4360Pc?si=a_NH846JDz15Bvt4 동영상 클릭.
선각자 (先覺者) -
무궁화 삼천리는 퍼져펴저 가면서
한줄기 백두(白頭)발원 송화강도 흐른다
그날을 생각하며 내달리던 선각자
지금도 어디라도 뛰어 가리 이한몸
한많은 송화강에 갈증만을 축일때
간도(間島)의 산야에도 무궁화를 심고파
산천계곡 내달리며 불길 당긴 선각자
지금도 어디라도 뛰어 가리 이한몸
봉오동 산천계곡 총성소리 울릴때
드높은 청산리도 승전깃발 넘친다
산천계곡 호령(號令)하며 맹세하던 선각자
지금도 어디라도 뛰어 가리 이한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