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네~~~!!!"
마지막 내리막 2.2k,
거의 굴러 내려오다시피 하면서도 이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정식 대회명은 "제2회 너릿재 옛길 혹서기 마라톤".
이름이 타 대회와 달리 여러가지 의미가 포함된 듯 합니다.
광주나 인근에 사시는 분들에게는 친숙한. 광주~화순 사이에 위치한 고개 "너릿재".
"옛길"이라 하는걸 보니, 고갯길 아래로 터널이 뚫리고 도로가 놓이기 전 사람들이 넘어다녔던 길인데서 유래한 듯 합니다.
마지막으로 "혹서기".
사실 처음 대회 얘기를 들었을 때 참가 할까 말까 많이 망설이게 했던 단어였습니다.
100여년만의 무더위라는데, 그것도 제일 더운 8월 중순에,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나는 이 더위에...
평지길도 아닌 고갯길을 25키로나???
올해가 2회 대회라 정보가 많은 것은 아니였지만, 작년 대회를 뛰어본 대부분의 사람들의 의견이 대체로 모아집니다.
"멋진 숲길", "힘들지만 재밌는 고갯길", "강추!"...
마침, 광복절이 낀 연휴를 광주 처갓집에서 보낼 계획이라, 토,일 이틀간은 집사람과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봉사를 하고,
대신 대회가 있는 월요일은 오롯히 저만의 시간으로 보내기로 가족들과 미리 타협(?)을 하고 대회를 준비합니다.
참가하기로 마음을 먹고 나니, 정말 간만에 느껴보는 적당한 긴장감+기대감 덕분에 대회 몇 일 전부터 즐겁습니다.
사실, 올해 총무를 맡았다는 핑계로 거의 달리기는 안하고 오직 술로만 달렸던 지난 몇 개월.
덕분(?)에 상반기 동마를 비롯, 참가비까지 송금해놓고 포기한 대회만 3개.
정신 차려보니, 체중은 이미 90kg대에 6분 페이스도 버거운 달.포(달리기 포기)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
다행히, 백의종군(?)해서...ㅎㅎ
하프는 완주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되는 몸 상태가 된 후 참가하는 첫 대회.
정말이지, 5년 전 담양에서 첫 하프를 참가했을 때 느꼈던 그 기분, 그 설레임으로 대회장을 찾았습니다.
8월 15일 광복절날 아침,
처갓집이 수완지구쪽이라 광주 외곽 순환 도로를 타고 화순으로 향합니다.
전 코스 모두 동시에 8시 출발이라, 또 대회장 주변 주차 여건이 좋지 않다는 얘기가 있어서 6시 경에 집을 나섰습니다.
순환 도로를 빠져 나와 화순으로 막 접어드는데, 네비를 보니 차가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
초행길이라 주최측에서 알려준 대로 네비에 "화순 소아르갤러리"를 찍고 가는데, 화순 초입 갈림길에서 최근에 새로 생긴듯한 " 신 너릿재 도로"로 빠진게 화근. 업데이트가 안된 제 네비로 보니, 목적지는 오른쪽에 보이는 데 차는 길도 없는 산 위를 날고 있었습니다. 급 당황, 화순까지 갔다가 유턴, 다시 대회장을 찾아 가는데, 어.. 아까 그 길이네...^^;; 아놔...
이렇게 두 세번 유턴을 했더니, 20분 거리를 거의 한 시간 걸려 도착합니다. ^^;; (대회장은 너릿재 구 도로 터널 막 지나면 오른쪽에 있습니다. 화순 진입전 신/구 도로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 "소아르갤러리"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대회장.
제가 지금껏 다녀본 대회장 중 가장 작습니다. 주차는 당연히 어렵고, 500여명 참가자들 모이기도 조금 빡빡할 정도..
해서 주최측이 마련해 둔 너릿재 도로 2차선에 주차를 하는데, 일렬로 주차를 하다보니 대회장과는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워놓고 다시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그 경사도가 만만치 않아 때마침 도착한 병관형이 한마디 합니다.
"아따, 달리기도 전에 지치것다..." ㅎㅎ
대회장 공기는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그리고 산속이라, 시원 상쾌합니다.
하지만, 짙은 안개가 오늘도 무척 더울거라 미리 말해주는 듯 합니다.
거의 비슷한 시간에 도착한 손동완 전회장님과 병관형이랑 한 컷. 진호와 재무님은 조금 후 합류합니다.
배번이 비슷한 건, 함께 현장 접수 했기 때문. (7시 30분까지 현장 접수 가능하다고 합니다.)
8시까지 여타 대회와 비슷한 순으로 행사가 진행됩니다.
작년 참가자가 400여명, 올해는 500여명이라고 하는데 인원이 적어서 그런지(2회차 대회에, 산길 대회라는 걸 고려해 보면 많은 편, 코스가 좋아 내년엔 더 많이 참가할 듯) 참가자 면면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서인지 발견한 한가지 특이한 점. 남녀 불문 참가자 대부분이 날렵하고 근육질로, 매니아 포스가 물씬 풍깁니다.
한마디로 저같은 몸매를 가진 분들 찾기가 어려웠다는....^^;; (이 와중에 3위한 재무님은 정말 대단. ^^)
하긴 "혹서기"에 "언덕길"을 25k, 42k를 달리고자 오신 분들이라 어찌보면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괜히 참가했나 생각이 확...ㅎㅎ
코스는 간단합니다.
출발점부터 바로 경사 10~15도 오르막 2.2k, 정상 찍고 내리막 2k, 반환후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면 1회전.
이걸 8.5k는 1회, 25k는 3회, 풀은 5회 왕복. 아~주 간단합니다. 그냥 오르락 내리락만 하면 됩니다. ㅋㅋ
근데 머리 속은 복잡. 출발점과 반환점이 해발 같은 높이라고 가정했을 때, 거리가 짧아지면 경사도는 up, 그럼 전반부 2.2k보다 후반부 2k가 조금 더 급경사....
아놔, 그냥 끝까지 걷지만 말고 뛰자...ㅋㅋ
출발선에 섭니다. 모든 코스 주자들이 8시 정각에 동시 출발.
주자들 수에 비해 산길이 생각보다 넓기 때문에, 굳이 자리 싸움을 하지 않고 어울려 출발합니다.
주로는 비포장이지만 사람들 발길에 길이 잘 들여진 자갈길. 하늘은 아름드리 나무들이 시원한 터널을 만들어 줍니다.
무엇보다, 첫 발을 딛는 순간 폐 깊숙이 스며드는 청량하고 달달한 숲 공기가 끝내주게 좋습니다.
정상까지 2.2k 오르막. 첫 1km를 거의 7분여에 뜁니다. 대략 계획했던 페이스.
오르막 7분, 내리막 5분. 해서 평균 6분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정상에서 첫 급수. 아직 많이 목이 마르지는 않지만, 땀을 많이 흘릴걸 대비 충분히 마셔둡니다.
그리고 내리막. 역시 예상대로 전반부보다 경사가 급합니다. 벌써 올라올 일이 걱정.
중간쯤이나 내려왔을까? 벌써 반환점을 찍고 오는 진호 부부와 병관형을 만납니다.
출발후 26분만에 1차 반환점 도착. 대략 6분 10초 페이스. 계획대로 잘 달리고 있습니다.
이번 대회는 언덕길이지만, 일반 대회보다 급수 구간이 짧아(2k) 도움이 많이 됩니다.
음료수도 충분하고, 간식도 바나나, 초코파이, 떡, 오이, 방울토마토...탈수 대비 식염포도당까지...
주최측에서 대회 준비에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역력합니다.
반환점을 돈 후, 바로 오르막이라 역시나 힘듭니다. 걷지만 말자, 하면서 천천히 오릅니다.
후반부 2k도 여전히 숲이 우거져 햇볕을 잘 막아주지만, 공기가 조금씩 더워짐을 느낍니다.
다시 아까왔던 정상에 도착합니다. 물 한잔 마시고, 이제 즐거운 마음으로 내리막을 갑니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무렵, 멋모르고 내리막길을 내달렸다가 부상이 온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몸도 적당히 풀리고 내리막이라 점점 빨라질려는 발걸음을 되도록이면 천천히 추스려 봅니다.
그리고 출발점에 도착. 1회전 대략 52분.
한 바퀴를 달려보니 원래 계획을 수정해야 될 것 같습니다.
두 바퀴까지는 어떻게 가겠는데 세 바퀴째 퍼질까 걱정이 됩니다. 해서 좀 더 페이스를 늦춰 가기로...
신발은 벌써 땀에 젖어 철벅거리고 배도 고파, 2 회전 출발 전에 양껏 먹어 둡니다.
다시 출발.
그리고...2회전과 3회전을 걷지 않고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
(아무리 사진을 찾아봐도 제 사진은 꼴랑 2장, 잘 생긴/이쁜 사람들만 많이 찍어주나 봅니다. ㅎㅎ)
재무님 2시간 30분. (25k 여자부 3위)
병관형 2시간 35분.
채수현 2시간 40분.
약속이나 한 듯 5분 간격으로 들어왔네요.ㅎ 재무님은 이제 정말 넘사벽이...ㅎㅎ 축하드립니다.
도착하자마자 기록증을 바로 뽑아줍니다. 그리고 물품 보관소 옆에선 막걸리와 두부 김치를 나눠 줍니다.
무엇보다 반가웠던 수박 화채. 3잔을 연속해서 들이켰더니 이제서야 살 것 같습니다.
탈의실 안에 간단하게 씻을 수 있는 시설이 되어 있어 물 몇 바가지로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점심 먹으러 갑니다.
메뉴는 화순에서 유명하다는 양탕과 흑염소 수육?! 현지분들이 추천해주는 곳이 있어 찾아갔습니다.
제 입맛엔 괜찮았는데(뭔들..ㅋㅋ) 여자분들이 드시기엔 조금 헤비할 수도...
정말 오래간만에,
정말 즐겁고 신나게,
여름 달리기를 한것 같습니다.
화순 너릿재 옛길 혹서기 마라톤.
앞으로 또 하나의 "must-run" 대회가 될 것 같습니다.
내년에는 목마클 단체로 함 가볼 수 있길 "강추" 합니다!!! ^^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8.26 09:01
첫댓글 생생한 후기 내가 다녀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푹 빨려들어 감동적이고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대회 다녀온 분들 충분히 만족하는 것 같고 행복감이 느껴집니다. 후반기 대회 좋은 기록들이 기대됩니다. 화이팅
다른것은 모르겠고 수현아 옷이 쬐끔 크다~~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