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수르에까지 거하였는데 수르는 네가 아시리아 쪽으로 갈 때에 이집트 앞에 있느니라. 그가 자기의 모든 형제들 얼굴 앞에서 죽었더라.(창 25:18)"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더라.(개정개역)"
창세기 25장 18절의 번역에 있어서 킹제임스 흠정역성경과 현대 역본들은 서로 정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성경은 이스마엘이 자기의 모든 형제들 앞에서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다른 역본들은 이스마엘의 자손들이 모든 형제의 맞은 편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다"로도 번역되고, "죽다"로도 번역될 수 있다면 정말 두 번역은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것인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차이점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원래 이 문장에는 동사가 두 개 들어 있습니다. 그들 곧 이스마엘의 자손들에 대해서는 거하다(dwell)라는 동사가 있고, 그(이스마엘)에 대해서는 죽다(die)라는 동사가 있습니다. 두번째 동사 죽다(die)에 대한 히브리어는 "나팔"인데 이는 "떨어지다, 던지다, 죽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 역본들은 이 단어를 번역하지 않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스마엘이 죽다"라는 내용은 빠지고 "자기의 모든 형제들 앞에서"(in the presence of all his brethren)만 남게 되었고, 결국 이것이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살던 위치를 나타내는 것처럼 번역된 것입니다.
어쩌면 이는 단순한 번역 상의 실수로 인한 누락이 아니라, "이스마엘이 형제들의 동방에서 살았다"고 주장하는 창세기 16장 12절의 잘못된 번역과 내용을 맞추기 위해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이스마엘의 세대들에 대한 기록은 창세기 25장 12절부터 시작하여 18절에서 끝나고, 그 이후로는 더 이상 이스마엘 자손들에 대한 기록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18절에서 이스마엘이 죽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마무리를 짓는 것이 옳습니다. 창세기 25장 17절과 18절을 나란히 펼쳐 놓으면 보다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이스마엘이 누린 삶의 햇수가 이러하니 곧 백삼십칠 년이니라. 그뒤에 그가 숨을 거두고 죽어 자기 백성에게로 거두어졌더라. 그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수르에까지 거하였는데 수르는 네가 아시리아 쪽으로 갈 때에 이집트 앞에 있느니라. 그가 자기의 모든 형제들 얼굴 앞에서 죽었더라.(창 25:17,18)"
"이스마엘은 137년 동안 살다가 죽어서 자기 백성에게로 거두어졌는데, 그의 백성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수르에까지 거하였다. 이스마엘은 자기의 모든 형제들 얼굴 앞에서 죽었다."라는 내용입니다. 개역성경과 같이 이스마엘의 자손들이 다른 형제들의 맞은 편에 거주한 것이 아닙니다. 하윌라와 수르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맞은 편이 아니라, 가나안 땅에서 남쪽과 남동쪽에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보듯이 성경을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서 "이스마엘이 죽었다"는 것을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살았다"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고 하실지도 모르지만 생명과 사망을 서로 바꾸어 놓는 것은 중대한 오류에 해당합니다. 잘못 번역된 역본들은 "지옥은 없다"라고 주장하여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 생명을 얻고자 주님 앞으로 나아오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고, "몸의 부활이 없다"라고 주장하여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부활의 소망을 갖지 못하고 사망에 대한 두려움에 빠져있게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흠없이 보존되고 바르게 번역된 성경을 가지고 있어야 생명과 사망에 대해서 올바른 교리를 발견하고 믿을 수 있습니다.
참고로 개역성경과 개정개역의 구약성경에는 "지옥"이 한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증인들은 개역성경을 참 좋아합니다. 그들은 지옥은 그냥 무덤을 의미하는 것이지 영원한 지옥의 형벌이라는 건 없다고 합니다. 개역성경은 욥기 19장 25-27절에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실 때 우리의 몸은 썩어 없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육체 밖에서 영의 상태로 주님과 만난다고 합니다.
* 출처 : 킵바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