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부부가 건강진단을 위해 내원하였다. 특별한 증세를 호소하지는 않았고 과거에도 큰 병을 앓았거나 수술을 받았던
병력도 없었다. 다만 두 사람 공이 소위 '혈액순환개선제'라는 것을 복용하고 있었다. 그 이유인즉 손발이 저린 증세가
가끔 나타나 혈액순환이 잘 안되어서 그런 것 같아 복용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정말로 걱정되었던 것은 손발 저린 것이
동맥경화의 증세가 아닌지 혹은 자신들이 뇌졸증(중풍)에 걸리는 것은 아닌지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예방을 위해
혈액순환개선제를 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최근 들어 이른바 '혈액순환개선제'라는 이름으로 여러 종류의 약물들이 많이 이용되고 있는데, 과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발이나 신체의 일부분이 저릴 때 이 약재를 많이 찾는데, 이러한 손발저림의
가장 흔한 원인은 손발의 과도한 사용이나 말초신경염, 또는 관절염이지 결코 혈액순환이 잘 안되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손발저림이 증세로 나타날 정도로 혈액순환이 안되려면, 동맥이 거의 막혀 손발이 국소적으로 창백해지거나 맥박이 느껴
지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담배를 오래 핀 사람들에게 생길 수 있는 버거씨병이나 혈전증 등이 이런 경우나 실제로는
매우 드물다. 그럼에도 혈액순환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상식은 어디서 유래하는 것일까? 우리나라에 뇌졸증이
흔하고 많은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노졸증이 흔한 만큼 그 치료나 예방책에 대해서도 너무나
많은 학설과 주장이 범람하여 일반인 으로서는 어느 것이 옳은지 갈피를 잡기가 어렵고 오히려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혈액순환개선제'도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혈액순환을 개선한다는 말 자체가 마치 뇌졸증을
예방한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지만, 이러한 약들은 전혀 그러한 효과를 갖고 있지 못하다.
손발이나 몸의 한쪽이 저릴 때에는 먼저 자신이 그 부분을 지나치게 사용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하고, 두번째로는 지나치게
술을 많이 들지 않는가를 자문해봐야 한다. 지나친 음주는 바로 말초신경염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적절한 휴식과
금주 후에도 저린 증세가 계속되면 의사를 방문하여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한다. 당뇨병성 말초신경염이 더러 진단되기도
하고, 척추신경이 뼈나 디스크에 눌려서 손발저림증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혈액순환개선제'를 복용하고 있으니 괜찮
겠지 하는 거짓 안도감이 자칫 질병을 키워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진단결과 부부중 부인의 손발저림의 원인은 과도한 집안일(빨래, 행주짜기 등)이 원인이었고 남편은 사업상 일주일에
3회 이상 들어야 하는 음주가 그 이유였다. 그 외에는 동맥경화가 빨리 왔다는 소견도 없었고, 동맥경화를 유발시키는 위험
요인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세탁기를 적절히 이용하고 음주를 절제하기 시작한 이들 부부는 요즈음 '혈액순환개선제'를
복용하지 않고도 더 이상 손발저림의 증세를 호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