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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0m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의 아침은 잔뜩 흐림이다.
지구용마루의 장엄한 일출을 보기 위해 비몽사몽 간에 새벽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밖에 나가니 한치 앞이 안 보이는 안개 속이다.
잔뜩 흐리고 안개가 낀데다 빗방울 까지 떨어진다.
해돋이는 고사하고 눈 덮힌 에베레스트의 모습도 보기 힘 들 것 같다.
골이 띵하고 숨이 가쁜 게 컨디션이 별로다.
어제 자정이 넘어 파김치가 된 몸을 뉘었으나 뒤척이다 거의 날밤을 샜다.
롯지 쪽을 보니 조용한 게 일행은 아직 기상 전인 것 같다.
사위가 어둠 속에 괴괴하다.
숨쉬기조차 힘든 에베레스트의 이름 모를 골짜기를 홀로 거닐어 본다.
세상에 나 혼자 인 것 같은 지독한 외로움에 빠져든다.
늦은 아침식사를 하러 식당에 가니 모두 들 누적된 피로와 고소증으로
잠을 설친 것 같은 표정이다.
여러 사람이 식사를 제대로 못하고 고통을 호소한다.
어둠 속 험한 비포장도로를 5시간 이상 달려 자정가까이에 도착한 데다 잠자리가 갑자기
5200m로 높아져 대부분 구토, 두통, 식욕부진 등의 고소증에 시달리고 있는 모습이다.
아침식사 중 고소증과 흐린 날씨를 핑계로 ebc를 가지 말고 일찍 출발하자는 의견이
여기저기서 튀어 나온다.
오지여행자로서 자존심 문제까지 거론하며 나 혼자라도 가겠다고 버틴다.
두 번 다시 오기 힘든 히말라야 깊은 골짜기 끝까지 와서 ebc를 코앞에 두고 포기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쪽으로 분위기를 몰고간다.
못가겠다고 끝까지 버티던 너댓 명도 출발 직전 가세해 결국 전원이 가기로 한다.
랜드 크루저로 자갈길을 20여분 달려 ebc전망대행 셔틀버스를 타는 텐트촌에 도착한다.
전망대까지는 이곳서 운영하는 셔틀 봉고차를 타고 가야한다.
옛날에는 왕복 5시간에 걸쳐 걸어가거나 마차(3시간)를 타고 다녀왔다.
텐트촌은 초등학교 운동장 만한 공간을 가운데 두고 많은 대형텐트들이
ㅁ자형으로 쳐있다.
여행객을 위한 숙소 겸 식당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서 하루 묵고 ebc에 오른다.
텐트 안을 들여다보니 숙소, 식당, 기념품 가게를 겸한 다용도의 멀티생활공간이다.
특히 이곳 우체국은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어 방문 기념으로 엽서를 붙이는
여행객들로 항상 붐빈다.
줄을 서 기다리다 셔틀버스가 와 막 타려는데 갑자기 중국인 관광객들이 떼거지로 몰려와
양해 한마디 없이 줄을 선 우리 앞에서 새치기를 하며 막무가내로 차에 올라탄다.
그들의 어이없는 무례함과 무질서에 올림픽을 치룬 나라의 국민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인 관광객들의 공중도덕을 무시하는 무질서하고 난잡한 행위는 관광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 같은 꼴불견은 점령군이라는 우월감이 부지불식간에 작용하며 티벳인 들을
얕잡아보는 행위 같아 더욱 불쾌한 생각이 든다.
어딜 가나 호떡집에 불난 듯 시끄럽고 깃발이 보이면 깃발관광에 나선 중국인 들이다.
가는 길은 황량함 그자체이다.
잔득 낀 구름사이로 보이는 주변의 풍경은 애매한 색깔의 바위산과 빙하 녹은 물이
내를 이루며 흐르는 거친 자갈밭이 전부다.
에베레스트는 여전히 구름에 가려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니 군인이 보초를 서며 출입을 체크한다.
전망대가 생각보다 단촐하고 초라해 보인다.
차량통행을 막는 차단기를 지나니 눈앞에 자그마한 동산이 보이고 타루쵸가 휘날린다.
전망대에 오르기 전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해발5200m라 쓰여진
시멘트로 만든 표지석이 여행객을 맞는다.
20여m의 언덕배기 전망대에 힘겹게 오르니 앞이 확 트이며 넓은 모래자갈 밭 너머로
만년설의 에베레스트(8848m)가 구름사이로 윤곽을 드러낸다.
에베레스트는 1852년 정확한 삼각측량에 의해 세계최고봉임이 확인되기 전까지
15봉(피크15)으로 불리는 이름 없는 산이었다.
1865년 인도 삼각측량국장인 앤드류 워가 전임국장인 조지 에베레스트의 공을 기려
이봉을 마운틴 에베레스트라 명명하면서 공식 명칭이 된다.
그러나 옛날부터 에베레스트를 티벳에서는 초모룽마(Chomo Lunma:세계의 어머니신)로,
네팔에서는 사가르마타(하늘의 여신)로 불러 왔다.
최고의 산답게 초모룽마에는 티벳의 창세기 신화 비슷한 설화가 전해진다.
망망대해에 파도거품이 쌓이고 쌓여 해안선이 생기고 육지가 형성된다.
육지는 동식물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낙원이 된다.
이때 머리 다섯인 독룡이 나타나 낙원을 짓밟으며 폐허로 만들자
바다 쪽 하늘에서 오색구름이 나타나 다섯 여신으로 변하면서
독룡을 물리치고 낙원을 회복한다.
5여신이 하늘로 오르려하자 뭇 중생이 낙원을 지켜달라고 간청해 이를 수락한다.
바닷물을 멀리 불어내자 동쪽은 울창한 삼림, 서쪽은 넓은 농경지, 남쪽은 사시사철 꽃이 피는 낙원,
북쪽은 광대무변한 평원의 목장으로 변한다.
5여신은 그곳에서 나란히 큰 산으로 변했는데 그중 큰 언니 신이 초모랑마다.
나머지 네 여신은 샤르체(동), 눕체(서), 로체(남), 창체(북)로 변한다.
티벳어로 동서남북은 샤르, 눕, 로, 창이다.
시즌이 아니라 그런지 등반대의 텐트는 보이지 않는다.
에베레스트 산자락이 손에 잡힐 듯 눈앞에 있는데 직선거리로 20km가 넘는단다.
에베레스트는 네팔 쪽보다는 티벳 쪽 베이스캠프에서 보아야 웅장하고 아름다운
전체 모습을 볼 수 있다.
네팔 쪽 베이스캠프나 칼라파트르 등 몇 곳의 전망대에서는 로체 어깨너머로 살짝
고개를 내민 에베레스트의 정상 봉우리만 일부 볼 수 있다.
그러나 티벳 쪽 베이스캠프는 코앞에서 밑 둥서 봉우리 까지 만년설에 뒤 덮힌 에베레스트의
온전한 모습을 한눈에 조망 할 수 있어 기대가 컸다.
그러나 히말라야 신이 우리의 범접을 시샘했는지 에베레스트는 잔뜩 흐린 날씨에 구름에 가려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으로 보는데 만족해야 했다.
전망대가 네팔 쪽과는 달리 앞 쪽의 에베레스트 주위 몇 개 산군 외에는 히말라야의 장엄한
파노라마를 좌우전후로 조망할 수 없는 위치에 있어 아쉬움이 앞선다.
지난 3월 칼라파트르, 교쿄리, 촐라패스에서 본 사방으로 펼쳐진 에베레스트를 포함한
쿰부히말 산군의 웅자와 스카이라인은 경이로움을 넘어 환상이었다.
그래도 지구의 꼭대기인 에베레스트를 네팔과 티벳 양쪽 베이스캠프에서 모두 보았다는
자긍심에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에베레스트는 네팔과 티벳 국경에 걸쳐있다 보니 남쪽인 네팔 쪽 베이스캠프는
남동릉과 남서벽 등정루트로, 북쪽인 티벳 베이스캠프는 북릉과 북서릉 등정코스로
두 군데에서 정상에 오른다.
중국은 2008년 북경올림픽 때 ebc를 정치적 목적으로 크게 활용해 눈총을 받기도 한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성화를 에베레스트 정상까지 봉송하는 이벤트를 벌이면서 홍보효과를 극대화 한다.
당시 중국은 성화 봉송행사를 위해 ebc까지의 진입로를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대거 초청한 외국기자 들의 휴대폰사용을 위해 임시 기지국을 설치한다.
또 대형 발전차량을 동원해 전기를 공급하고 레이져 쇼등 각종 이벤트성 행사를 기획한다.
이는 서남공정의 완결판으로 티벳이 중국의 변방자치주임을 만방에 알리는 효과를 노린 측면이 많다.
그리스에서 채화된 올림픽 성화는 이곳 베이스캠프를 출발, 정상부근서 특수제작된 성화봉에
점화한 뒤 릴레이로 2~3m씩 이동해 2008년 5월 8일 오전3시 정상에 오른다.
이를 위해 티벳인을 단장으로 19명의 전문 산악인으로 구성된 성화 봉송단이 꾸며지고
성화는 영하30도이하의 혹한과 강풍 등 악천후에도 견딜 수 있도록 특수제작 된다.
ebc 근처에 있는 롱북사원(5030m)은 시간이 빠듯해 수박 겉핦기 식으로 보고 지나친다.
불자들의 은둔 수행장소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닝마파 사원이다.
롱북사원서 에베레스트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는데 흐린 날씨로 구름만 보인다.
차가 절까지 들어와 게스트하우스와 식당을 함께 운영한다.
1974년 문화혁명 때 파괴됐다가 복원됐다.
일찍 서둘러 ebc를 빠져나가기로 하고 올드 팅그리를 향해 출발한다.
자갈밭에 패이고 무너져 내리고 물이 고인 웅덩이 길이 눈앞에 희미한 흔적으로 이어진다.
길 아닌 길인 Off Road를 달리는 랜드 쿠르저가 요동을 친다.
제법 넓고 깊은 개울을 건널 때나 좁은 언덕 벼랑길을 오를 때는 전율 비슷한
스릴감이 온몸을 스쳐 지나간다.
시간여가 지났는데도 마을이나 차, 사람 흔적을 찾아 볼 수가 없다.
거칠고 황량한 벌판과 산은 삭막하면서도 고요한 평화로움이 깔려있다.
힘 좋다는 랜드쿠르저가 가쁜 숨을 토해내며 헐떡인다.
사진에서 본 화성의 바짝 메마르고 황폐한 이름없는 골짜기를 달리고 있는 느낌이다.
짚차 아니면 갈 수 없는 험한 길을 달리다 보니 엉덩이에서는 불이 나고 골이 흔들린다.
간혹 평원 저 멀리 유목민의 텐트가 보이고 주위로는 양 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다.
사람 흔적 없는 삭막하고 텅빈 들판에서 하루 종일 혼자서 수십에서 수백 마리의 양떼를 몰고 다니는
유목민들, 그들의 생활이 상상으로도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유목민과 양들의 쉼터인 얕으막한 원형의 돌담 울타리 들이 여기 저기 눈에 띈다.
2시간 30여분을 달려 올드 팅그리(4390m)에 도착한다.
첫인상이 서부개척시대 거칠고 황량한 시골 광산마을에 온 것 같다.
올드라는 지명이 말해주듯 우리가 지나온 쉐가르에 밀려
이제는 ebc를 오갈 때 잠시 들르거나 식사를 하는 한적한 마을이 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올드 팅그리는 티벳과 네팔을 잇는 우정공로 상의
교통요지로 에베레스트 등정의 관문이었다.
ebc가 바로 지척에 있어 에베레스트를 찾는 원정대나 여행객들이 마지막 밤을 머물던
역사가 깊은 마을이었다.
북경올림픽을 전후해 ebc까지 차가 씽씽 달리고 캠프가 번듯하게 재정비되면서 올드 팅그리는 지고
쉐가르가 뉴팅그리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뜨며 관문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사가로 가는 도중 페이쿠쵸호수를 끼고 달리다보니 왼쪽 앞으로 만년설의 거대한
히말라야 산봉우리들이 우리를 따라온다.
히말라야 14좌 중 막내로 티벳에 있는 사샤팡마산(8027m)이 군계일학으로 눈에 잡힌다.
아쉽게도 구름에 가려 전체 모습을 카메라에 담지는 못했지만 평원을 낀 호수와
어우러진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강을 낀 군사도시 사가(4600m)에 도착하니 온 도로를 파헤쳐 숙소도착에 애를 먹었다.
저녁은 동충하초 닭백숙 탕으로 포식을 했다.
버섯과 동충하초, 닭을 토막 내 끓인 탕은 우리의 삼계탕맛과 비슷해 먹을 만하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산소부족 탓인지 잠이 안 온다.
첫댓글 날씨 영향으로 조망이 좋지는 않았지만 에베레스트를 네팔쪽과 중국 양쪽에서 바라본 사람은
정말 극소수일 것 같은데요...자부심 느낄만 하십니다...
설산아래 시원스럽게 뚫린 길을 랜드크루저 타고 가는 저 장면은 많은 오프로더들의 꿈이죠....
장쾌한 풍경에 눈이 시원해지는군요!
좋은사진 감사합니다.
신화 얘기 흥미롭네요..
하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저 장엄한 뒤에 설화 그 이상의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있을 것만 같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이 지구상 어딘가에 저런 풍광이 있다는 사실조차 믿기 힘들정도로 비현실적인 모습이예요.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