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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전투 이전부터 시작된다 승리의 기운을 갖추는 '사군자탕'
사군자탕上 : 전쟁 이전의 계책
손자병법에 따르면 전쟁을 치르기 전에 헤아려야 할 다섯 가지 일이 있다. 도(道), 천(天), 지(地), 장(將), 법(法)이 그것이다. 도(道)는 민심의 향배다. 민심을 얻어야 임금과 군인들이 힘을 얻는다. 천(天)은 천시(天時), 즉 기후 등의 자연현상이고, 지(地)는 지형(地形)을 말한다. 운기(運氣)와 지리적 특성은 전투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바람의 방향과 전투 할 곳이 산악인지 혹은 평지인지가 누구에게 유리할지 가늠하는 것이 승패를 가를 수도 있다. 제갈량은 천문(天文)과 지리(地理)를 살폈기 때문에 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예견할 수 있었다. 장(將)은 장수를 의미한다. 장을 살핀다는 건 어느 쪽 장수가 더 유능한가를 헤아리는 것이다. 법(法)이란 군대의 편제와 제도, 군비(軍備)의 주관을 말한다. 좋은 법령은 실무자들이 바로 실전에 쓸 수 있는 실용성을 담고 있다. 전쟁에도 실용적인 법령이 필요하다. 징병에서부터 물자 공급, 훈련과 군대 배치 등 전투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법이 전쟁을 치르기 전에 헤아려야 할 기본 조건이다.
손자가 말했다. 전쟁은 나라의 중대사다. 생사(生死)의 마당이요, 존망(存亡)의 길이므로 깊이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다음 다섯 가지 일(五事)을 기본으로, 적과 계책을 비교하고 정황을 탐색하라! 그 첫째는 도(道)이고, 둘째는 천(天)이고, 셋째는 지(地)이고, 넷째는 장(將)이고, 다섯째는 법(法)이다. 도(道)란 백성으로 하여금 임금과 한뜻이 되게 하여, 더불어 죽고 더불어 살며, 위기에도 피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천(天)이란 음양의 움직임과 추위와 더위, 계절의 변화를 말한다. 지(地)란 지형의 멀고 가까움, 험함과 평탄함, 넓음과 좁음, 죽을 땅과 살 땅을 말한다. 장(將)이란 지혜, 어짊, 용맹, 위엄을 말한다. 법(法)이란 군대의 편제와 제도와 군비(軍備)의 주관을 말한다. 이 다섯 가지는 장수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항목이니, 이것을 아는 자는 승리하고, 이것을 모르는 자는 패배한다.
- 손무, 『낭송 손자병법/오자병법』손영달 풀어 읽음, 북드라망, 23~24쪽
전쟁을 치르기 전 헤아려야할 도, 천, 지, 장, 법 중 지(地)는 지형을 살피는 것을 말한다.
전쟁은 본격적인 전투 이전에 시작된다. 어떤 준비태세를 갖추는가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 물론 아무리 치밀하게 준비를 해도 안 될 때가 있다. 대학을 가기 위해 몇 년을 준비했지만 수능 날 컨디션 난조로 시험을 망치는 사례를 우리는 주변에서 흔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전쟁에서는 그런 날까지 예견하고 피해야 한다. 천시(天時)를 고려한다는 건 가장 유리한 때를 살피는 것이다. 아군의 승리로 갈 수 밖에 필연의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 세력(勢力)이 아군 쪽으로 기운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승기를 잡은 것이다.
승리하는 군대는 먼저 반드시 승리할 조건을 갖추어 놓은 뒤에 전쟁을 하고, 패배하는 군대는 먼저 전쟁을 일으킨 두에 승리를 구한다.
- 손무, 『낭송 손자병법/오자병법』손영달 풀어 읽음, 북드라망, 42쪽
결전 이전부터 이미 승패의 기운이 결정되는 이러한 이치는 방제(方劑)에서도 유효하다. 이제 그 얘기를 해보자. 기허에 쓰는 대표적인 방제가 있다. 사군자탕(四君子湯)이다. 피곤하고 기운이 빠지는 증상을 흔히 기(氣)가 허(虛)하다고 하며, 줄여서 ‘기허(氣虛)’라 한다. 한의학적으로 기허를 감별하는 몇 가지 증상이 있다. 항상 피곤하고 식욕이 없으며 조금만 많이 먹어도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또한 변이 무르고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오르며 목소리가 미약해 진다. 이럴 때 사군자탕을 복용하면 기운을 보충할 수 있다.
항상 피곤하고 기운 없는 기허증, 사군자탕을 먹으면 기운을 보충할 수 있습니다. 으잡!
사군자탕은 인삼(人蔘), 백출(白朮), 복령(茯苓), 자감초(炙甘草)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서 인삼이 군약(君藥)이다. 군약이란 군주와 같은 지위와 역할을 수행하는 중심약물이란 뜻이다. 즉, 그 방제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약재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군자탕의 주요 효능인 보기(補氣)의 중심은 인삼이다.
인삼은 예부터 귀하게 여겼고 재배 농가가 많아진 지금도 다른 약재에 비해서 꽤 비싸다. 그도 그럴 것이 4년 정도 커야 약으로 쓰일 수 있고 재배과정도 까다롭다. 4년근이라 해도 인삼밭 예정지를 관리하는 데만 2년이 걸린다고 하니 총 6년의 공이 필요한 것이다. 그만큼 약효도 뛰어나다. 인삼은 햇볕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늘막을 쳐서 기른다. 즉, 음지에서 자라는 것이다. 이렇게 인삼은 음지에서 자라면서 양기(陽氣)를 기른다. 청나라 명의 당종해가 지은 본초문답(本草問答)에서는 음지에서 자라는 조건과 인삼의 가지가 3개에 잎이 5개인 점을 주목한다. 그늘이라는 환경은 음이고, 홀수는 양의 숫자다. 그래서 인삼은 “음에서 생겨 양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이런 환경과 모양은 인삼의 효능과 연결된다. 인삼이 음지에서 생기니 진액(津液)을 만들 수 있고, 양수의 가지와 잎을 가졌으니 양기(陽氣)를 보한다. 이를 보기(補氣)와 생진(生津)이라 한다. 양기는 일종의 화기(火氣)이며 활동의 에너지다. 그래서 인삼을 먹으면 화기가 일어나면서 기력이 생기는데, 이 화력 때문에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이 먹으면 부작용이 일어나기도 한다. 인삼은 진액도 만든다. 진액은 양기의 원천이다. 진액이 있어야 양기가 원활하게 활동할 수 있다. 인삼이 음지에서 양기를 품고 자라듯, 몸에서도 진액의 환경을 만들고 양기를 북돋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더욱이 인삼이 만드는 진액은 기운으로 빠르게 전화(轉化)될 수 있다. 이 진액이 비장(脾臟)으로 들어가면 소화가 잘 일어나고 사지(四肢)에 기운이 빠르게 퍼져 몸의 컨디션이 회복된다. 과연 기허의 대표 방제인 사군자탕의 군약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인삼이 기를 보하는데 이렇게 좋은 약재라면 나머지 백출, 복령, 자감초는 왜 같이 섞여 있는 걸까? 이 약들 대신 인삼을 더 많이 넣으면 기운을 더 북돋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여기서 위에서 인용된 병법의 이치를 적용해 볼 수 있다.
인삼이 본격적인 핵심 치법이라면 백출, 복령, 자감초는 인삼이 가장 좋은 환경에서 보기(補氣)를 할 수 있도록 물밑작업을 한다.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기 전 아군의 세력을 최대화하기 위해서 도(道), 천(天), 지(地), 장(將), 법(法)을 헤아리는 것처럼 말이다.
백출은 인삼을 돕는 신약(臣藥)이다. 인삼이 군주라면 백출은 신하가 되는 셈이다. 백출도 인삼처럼 보기(補氣)하여 인삼의 보기를 돕는다.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면 습기(濕氣)를 제거하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비(脾)는 항상 습한 편이다. 소화되어 흡수된 수곡(水穀)의 맑은 기운이 비에 모이기 때문이다. 비는 이 수곡정미(水穀精微)를 폐(肺)로 올리고 폐는 이 영양분을 전신으로 산포시킨다. 그런데 비의 기운이 약해지면 수곡정미를 폐로 올리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비에 습기가 찬다. 비에 습이 차면 윗배가 팽만해지고 답답하며 소화가 잘 안 되고 사지가 무거운 증상이 나타난다. 그래서 비는 습을 싫어한다는 말도 있다. 비에 습이 찰 때 습을 제거하는 약이 대체로 소화제 역할을 한다. 한방 소화제라 불리는 평위산(平胃散)의 군약인 창출(創出)도 습을 제거하는 약이다. ‘삽주뿌리’라고 하는데 옛날 시골에서는 이걸 갈아서 소화제로 쓰곤 했다. 백출은 창출의 사촌이다. 백출은 흰삽주뿌리다. 백출 역시 비의 습기를 제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창출보다 습기를 제거하는 능력은 약하지만 대신 비기(脾氣)를 보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요컨대 백출은 비의 습을 빼면서 기를 보하는 약이다.
왜 보기를 하는데 비의 습기를 빼는 약을 쓰는가? 보기를 위해 진액을 생성하는 인삼을 비에 넣어준다. 진액도 습한 물질이 아니던가. 어째서 진액을 넣어주면서 다시 진액을 뺀단 말인가? 그것은 기존의 수분을 제거한다는 의미가 있다. 비에 남아 있는 습기는 몸을 무겁게 하고 기의 흐름을 방해하는 묵은 기운이다. 새로운 진액이 들어가서 기운을 발휘하려면 묵은 기운을 제거하는 것이 좋다. 백출이 인삼을 도와 보기를 하면서도 인삼과는 달리 진액을 말리는 역할을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인삼이 최대의 효과를 발휘하기 위한 첫 번째 물밑작업은 바로 백출의 습기제거 작전이다. 이 작전은 지형(地形)에 대한 탐사다. 습을 제거한 비장이 인삼의 활동에 가장 유리하다. 백출이 고려한 지형은 그런 조건의 비장이다.
사군자탕은 군약인 인삼과 백출, 복령, 자감초로 구성되어 있다.
비의 습기를 빼는 데는 복령도 가세한다. 복령은 좌약(佐藥)이다. 신약이 군약의 약성을 도와 군주의 권력을 최대화하는데 일조한다면, 좌약은 군주의 권력을 견제한다. 역사적으로 국왕을 간쟁, 봉박하는 임무를 가진 대간(臺諫)에 해당한다 할 수 있다. 물론 이 세력은 조정의 정체성을 해치려하는 것이 아니라 군주의 과도한 권력 남용을 견제해서 왕조를 더욱 건강하게 운영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복령의 역할도 이와 비슷하다. 인삼과 백출이 보기약이라면 복령은 사약(瀉藥)에 해당한다. 사약은 잉여의 기운을 빼는 약이다. 본초학 분류상 이수삼습약(利水滲濕藥)에 속한다. 쉽게 말해 이뇨(利尿)와 제습(除濕)을 하는 약이다. 습을 뺀다는 점에서는 백출과 비슷하지만, 백출과는 달리 보약의 효능도 같이 빠진다. 왜 그런 역할을 맡은 것일까? 기가 허할 때 보약을 강하게 먹으면 답답해진다. 양기는 음기와 화합해야 한다. 그런데 갑자기 보기를 위해 외부의 양기가 강하게 새로 들어오면, 이 기운은 정착하지 못하고 위로 떠서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타지 사람이 이사 와서 동네를 위한답시고 이리저리 설치고 다니면 현지인들과 섞이기 힘든 것과 같은 이치다. 현지인들과 섞이려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이것이 민심(民心)이며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도(道)에 해당한다. 복령은 기를 보할 때 오히려 기의 흐름이 따로 놀거나 막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쓰인다. 제거한 습기를 오줌으로 내리는 것이 그런 예에 해당한다. 이 과정에서 기운의 소모가 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약간의 기를 설기(泄氣)하는 것은 보기로 인한 기운의 정체를 막기 위해서다. 마치 군주의 힘을 견제해서 균형을 맞추는 대간의 역할과 비슷하고 볼 수 있다. 이 역할이 민심을 달랜다. 복령은 기존의 몸이 새로운 기운을 수용할 수 있도록 조절한다. 몸에 꼭 필요한 기운이라도 약으로 들어온 것은 이질적이다. 이 이질성을 최소화하고 몸의 민심을 달래기 위해 복령은 인삼의 속도와 기운을 제어하는 것이다.
자감초(炙甘草)는 구운 감초를 말한다. 감초는 약물들이 서로 조화롭게 섞여서 약효를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서로 다른 약성을 가진 약들끼리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중재하며 약물들이 작용하는 순서를 정해준다. 더불어 약효가 서서히 스며들도록 한다. 효과가 빠른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약효가 지속될 수 있도록 속도를 조절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장수의 역할이다. 유능한 장수는 서로 다른 지역에서 소집된 군사들이 잘 섞일 수 있도록 종용하고 하나의 체계 안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통솔한다.
사군자탕은 효과적인 보기(補氣)를 위해 인삼이라는 군약과 함께 다른 약들로 구성되었다. 이 약들은 인삼이 궁극의 효과를 발휘하도록 물밑작업을 하게 되는 셈이다. 이런 사전 작업들은 정기(正氣)를 북돋아 기허를 치료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인삼 홀로 진격을 했다면 비의 습기에 묻혀버렸을 수도 있고, 너무 강하게 밀어붙인 탓에 정기를 돕기는커녕 정기의 순행을 막아버려 답답해 질 수도 있다. 인삼이 승리할 수밖에 없는 필연의 조건을 만들어주는 일이 바로 군약을 돕는 보좌약들이다. 결국 사군자탕의 인삼 효과는 조직의 형세(形勢)가 만든 작품이다.
사군자탕의 인삼 효과는 조직의 형세가 만든 작품이다.
사군자탕의 이러한 형세의 배치를 보면 일상에서 기를 어떻게 보충해야 하는 지를 응용할 수 있다. 기가 허한 사람은 우선 몸의 습(濕)을 없애야 한다. 습은 무거운 기운이다. 사지를 무겁게 하고 생각을 둔하게 만든다. 특히 비위의 습을 빼는 것이 중요하다. 위에선 비의 습을 제거하기 위해 백출을 썼다. 일상에선 음식조절과 운동으로 습을 빼면 된다. 습을 조장하는 음식은 대개 고량진미에 많다. 또한 땀이 나는 유산소 운동도 비의 습을 제거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다. 비(脾)는 사지(四肢)를 주관한다. 그래서 비에 습이 차면 사지도 무거운 것이다. 사지를 써서 땀을 빼면 비의 습기도 빠진다.
이렇게 땀을 내는 것이 복령의 역할이었던 일종의 설기(泄氣)다. 운동을 하고 땀을 빼는 과정은 기운을 더 소모시킬 수 있고, 그래서 기허를 더 조장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기운이 좀 빠진다 해도 운동은 비의 습을 빼고 입맛을 돋우며 소화를 원활하게 한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보면 운동은 기허에도 유리하다. 다만 처음부터 심하게 하면 안 된다.
비위의 소화가 잘되면 먹는 음식마다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이때의 음식은 군약인 인삼의 역할에 비유될 수 있다. 음식이 잘 흡수되면 양기가 된다. 양기가 회복되면 몸을 따뜻해지고 피로를 멎게 된다. 양기의 회복이 인삼의 목표다. 습이 빠지고 소화가 원활한 상태에서 먹는 음식이 바로 양기를 생성하는 인삼의 역할을 한다. 이렇게 일상에서도 사군자탕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오히려 이런 방식의 치법이 약을 먹는 것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다.
양기를 보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운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중요하다. 기운을 잘 못 사용하면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된다. ‘치병필구어본(治病必求於本)’이란 말이 있다. 병을 치료할 때는 반드시 질병의 근본원인을 파악해야 한다는 뜻이다. 기허의 원인은 무엇일까? 선천적인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는 음식의 부절제, 운동부족, 신경과민, 과로, 산만함, 망상 등이 기운을 많이 소모시킨다. 그러니 이런 생활의 습관들을 고쳐나가는 것이 본치(本治)가 아니겠는가.
운동을 해서 땀을 내고, 음식을 조절하는 것, 병의 원인이 되는 습관들을 고쳐나가는 것이 기허의 근본적인 치료법이다.
그런데 이런 생활 습관을 고치는 것은 쉽지 않다. 음식을 조절하고 운동을 하고 욕망을 통제하는 건 거의 수행에 가깝다. 의지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럴 때 병법이 다시 필요하다. 즉, 습관을 억지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습관을 바꿀 수밖에 없는 필승의 장치를 삶에 구조화시키자는 것이다. 기허를 예방하는 삶의 기술로서의 병법. 그 이야기는 다음 회에서 이어가기로 하자.
글_도담(안도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