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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은 어떤 조직에 몸을 담고 있든 항상 신분을 가지고 살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43:1)고 선포하셨습니다. 복음가수 최덕신은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너는 부유해도 가난해도
너를 사랑하여 구원했으니
너는 내 것이라
너는 현명해도 미련해도
너의 지혜 되어 사용하리니
너는 내 것이라
너는 잘났으나 못났으나
너의 모든 것을 알고있으니
너는 내 것이라
너는 강하여도 약하여도
너의 힘이 되어 일으키리니
너는 내 것이라
너는 의로워도 악하여도
너를 나의 피로 바꾸었으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의 것 곧 하나님의 소유”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저와 여러분의 신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녀는 아프리카에서 복음을 전하던 세 아들이 모두 식인종들에게 잡혀 순교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세 아들을 잃은 것이 후회되지 않느냐?”고 묻는 친구에게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네 번째 아들이 없다는 사실이 후회스럽다고 대답한 그녀는 “주님! 온 세상을 모두 주님께 드려도 여전히 부족함을 느낍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 고백을 듣고 감동한 한 시인은 “온 우주를 다 준다 해도 그것으로 주 섬기기 부족해. 놀랍고 깊은 사랑 인해 내 마음과 내 목숨, 모든 소유 드리리.”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자신의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시인은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시100:3)라고 외쳤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을 뿐 아니라, 드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인은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을 통해 자신을 하나님의 소유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하나님의 말씀을 찬양했습니다. 89-93절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천지가 주의 규례 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내가 주의 법도를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것들로 나를 살게 하심이니이다”
여기서 “주의 말씀”(데바르카 : debarka)은 원래 하나님의 모든 목적과 뜻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였지만, 후대에 이르러서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까지도 포함해서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시89:2)는 말씀에 비추어볼 때, “하늘에”는 본 절에서 하나님의 목적과 뜻과 성문화(成文化)된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고 변하지 않음을 암시하기 위해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인간의 마음은 너무도 쉽게 변합니다. 끊임없이 스스로 변화하고,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것을 추구합니다.
변화 자체를 인생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과 관계된 모든 것들은 확고히 고정될 틈이 없습니다. 인간의 생각과 계획과 교훈과 신앙 등 모든 것은 계속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한결같습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세상 어느 누구의 손도 닿을 수 없는 하늘에, 천상의 권능과 영광에 너무도 확실하게 고정되어 있는 까닭에 그것은 영원히 똑같은 의미를 가지고 존재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율법으로 명하신 것은 항상 율법입니다. 하나님께서 확증한 진리는 항상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역시 영원합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강과 시내와 물의 근원, 땅이 내는 과실과 화초들, 부드러운 공기, 따사로운 햇살, 금은 등 땅 속의 진귀한 광물들, 물 속의 각종 어류들, 그것들은 비록 부패되기도 하고 고갈되기도 하지만 땅이 존재하는 한 천지 창조 때 지어진 모습으로 계속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지구는 궤도를 이탈하지 않습니다.
계절은 정해진 순서를 지키고, 바다는 조수간만의 법칙을 지키고, 그 어떤 미립자와 세상도 일사분란(一絲不亂)하게 정해진 지시에 따르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 곧 온 우주 만물은 오늘날까지 굳게 서서 마치 종이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듯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있습니다. 견고하고 지속적인 하나님의 통치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실”(에무나 : emoonaw')하신 곧 “확고하고, 안전하고, 신실하고, 진실하고, 충성스럽고, 견고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습니다. 태양이 계속 돌고, 산이 원래의 자리를 지키고, 시내가 변함없이 흐르듯 인간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로운 약속인 하나님의 말씀 역시 모든 시대에 존재하고 모든 세대에게 똑같이 적용됩니다.
성경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사40:8),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1:24-25)고, 하나님의 말씀의 영원성과 불변성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쇠잔(衰殘)하지도 피곤하지도 않으신 여호와 하나님, 결코 쇠퇴(衰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각하는 순간, 우리의 영혼이 깊은 절망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기막힌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구원을 호소했던 시인이 본 절에 이르러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한편, 당시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영적 위로가 자신을 고무시키지 않았었다면, 고통 가운데 쓰러져 죽었을지도 모를 긴박한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그가 믿음을 놓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혹독한 고통으로 인해 정신이 멍해지고 판단력마저 희미해진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그에게 소중한 확신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극한 시련에 의해 자연스럽게 야기되는 모든 낙심과 절망을 이기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살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행함으로 큰 기쁨을 누렸습니다. 욥은 구더기와 먼지 더미에 내던져진 상황에서도,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았습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욥19:25)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설령 하나님이 다른 모든 은혜와 위안들을 사라지게 하시며 심지어 내 영혼마저 멸하실지라도, 내 믿음만은 멸하지 않으실 것이다. 설령 그분이 내 영혼을 내 몸에서 분리시키실지라도, 내 영혼으로부터 믿음을 분리시키지는 않으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환난과 시험의 때에 어떻게 처신하십니까?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기막힌 절망에 빠졌을 때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십니까? 하나님의 뜻에 얼마나 순종하십니까? 조셉 트러프(Joseph F. Thrupp)는 “여호와의 말씀은 변함이 없고, 모든 나쁜 예감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나와 관련하여 이미 시작하신 일을 완수하실 것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영원히 잊지 않는 것이 환난과 시험으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첩경입니다. 그러므로 환난과 시험의 때에 영원하시고 성실하시고 약속에 신실하시고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십시오. 결코 쇠하지 않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지하십시오.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그것을 통해 모든 위험으로부터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건지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당신의 뜻대로 살기를 소원하는 경건한 자들을 반드시 구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자기 확신을 가졌던 시인은 또 자신이 하나님의 것 곧 하나님의 소유라고 고백했습니다. 94-96절입니다.
“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법도를 찾았나이다 악인이 나를 멸하려고 엿보오나 나는 주의 증거를 생각하겠나이다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은 심히 넓으니이다”
여기서 “생각하겠나이다”(빈 : bene)는 “숙고하다, 유의하다, 민첩하다, 집착하다, 고수하다” 등의 뜻으로, 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겠다는 시인의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완전하다고 말하는 세상 모든 것들에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은 한없이 넓습니다. 완전합니다. 거기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살리시고 주의 의로 내 영혼을 환난(患難)에서 끌어내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나의 원수들을 끊으시고 내 영혼을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멸하소서 나는 주의 종이니이다”(시143:11-12)라는 그의 기도 속에는, 하나님의 소유인 자신을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라는 확신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그는 대적들이 자신을 멸할 구체적인 음모를 꾸미고 그것을 실행할 기회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자신은 하나님의 소유라는 확신 속에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한없이 넓고 완전한 하나님 말씀만을 고수하고 집착할 뿐 아니라 의지할 것이라고 다짐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자신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심을 믿는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아무런 공적이 없음을 알면서도 자신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하기를 주저하거나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담대히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호소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반드시 구원해 주실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와 선택과 구속과 받아들이심 등의 과정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소유로 거듭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역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영원한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을 확고히 믿고 소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순간도 자신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한없이 넓고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가득 채우십시오. 순종하기를 힘쓰십시오. 환난과 시험의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그것을 통해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전문직에서 종사하다 선교사로 부름을 받은 그는, 가능한 한 많은 물건을 현지로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준비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양을 배에 실어 현지로 보냈습니다. 배를 타러가기 위해 여행하는 동안 필요한 물건들은 차량 꼭대기까지 가득 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행 도중 모든 물건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가 식사를 하기 위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도둑들이 차량의 유리를 깨고 모든 물건을 다 가져가 버렸던 것입니다. 그는 그때서야 비로소 차안에 들어 있던 물건들을 쥐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최병문 장로는 “되고 안 되는 것”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같이 하시니
두려움 없노라
하나님 같이 하시니
걱정할 것 없노라
하나님 같이 하시니
안 될 것 없노라
되어도 하나님의 것
안 되어도 하나님의 것
되고 안 되는 것
하나님께 맡겼노라.
일의 성사 여부를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맡기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창조하시고, 구속하시고, 지명하여 불러주셨습니다. 당신의 소유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소유인 저와 여러분을 끝까지 책임져 주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환난과 시험의 때에 자신의 신분을 돌아보십시오. 하나님의 소유임을 고백하십시오. 한없이 넓고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순종하십시오. 그것을 통해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실 뿐 아니라, 환난과 시험에서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