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포 이야기 II] 수선화 꽃 만발한 천리포수목원의 아름다운 봄
[2010. 4. 5]
식목일 아침입니다. 잇단 대형 사고가 온갖 미디어의 표지를 메우고 있지만, 그래도 나무 이야기를 빼놓기 어려운 날입니다. 그 바람에 저도 지난 주말을 좀 분주하게 보냈습니다. 오늘 아침, KBS-TV의 프로그램에 나무와 가까이 하는 사람 이야기로 얼굴을 내비쳤고, 케이블티비 한 곳에도 제 책을 소개하기 위해 얼굴을 비쳤습니다. 짧은 방송이지만, 지난 금요일과 토요일은 그렇게 카메라 앞에서 쑥스럽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 얼굴보다는 더 많은 매체에서 식목일 뿐 아니라, 평소에도 더 자주 나무를 이야기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러려면 사람들을 놀래키는 사건 사고들이 잦아들어야 할텐데, 날이면 날마다 대형사고가 연발하니, 안타까운 마음 큽니다. 신문 기자들이 심심해져야 세상에 평화가 온다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는데, 우리 사는 세상에 그런 날이 올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시절 하 수상해도 어김없이 수선화(Narcissus 'Tete a tete')는 노란 꽃을 피웠습니다. 알뿌리 상태로 움츠리고 땅 밑에서 추운 겨울을 보낸 수선화가 화들짝 피어오른 것입니다. 무르익은 봄볕을 확인시켜주는 천리포수목원의 대표적인 봄꽃입니다. 우리 수목원에는 다양한 종류의 수선화가 있습니다. 노란 빛의 수선화가 수줍은 듯 고개를 살짝 수그린 채 꽃을 피워내면, 차츰 수목원 안에서 자라는 다양한 수선화 꽃들이 잇달아 피어납니다.
그 중에 가장 먼저 피어나는 수선화가 Narcissus 'Tete a tete' 입니다. 개체 수로 헤아려도 수선화 종류 가운데에는 가장 많은 종류입니다. 큰 연못 주변은 물론이고, 얼마 전에 보여드렸던 설강화가 무리를 지어 활짝 피어나는 소사나무집 앞의 너른 화단에도 온통 노란 수선화 천지입니다. 생명력이 강한 설강화가 여전히 하얀 꽃을 간당거리고 있는 그 자리에 샛노란 꽃이 올라온 겁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봄 내음을 살짝 감지한 크로커스의 노란 꽃이 활짝 피었던 자리이지요. 예쁘기로 치면 봄꽃 가운데 첫손에 꼽히는 크로커스는 비교적 개화 시기가 짧아서 먼저 피었던 꽃이 이미 다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크로커스도 종류가 여러 가지여서, 좀 있으면 보라 빛과 하얀 빛의 크로커스 꽃이 피어날 겁니다. 그때는 노란 크로커스 꽃 대신에 수선화가 그들과 어울리겠지요.
봄 꽃의 색깔 가운데 가장 많은 색깔이 흰 색과 노란 색이라는 이야기는 얼마 전에 괴테의 '색채론'이라는 책을 통해 전해드렸습니다. 괴테의 이야기처럼 지금 천리포수목원에는 노란 색과 흰 색이 한창입니다. 대개의 수선화 꽃은 노란 색이지만, 위의 수선화(Narcissus scaberulus) 처럼 흰 색과 노란 색이 어울려 피어나는 꽃도 있습니다. 앞의 Narcissus 'Tete a tete' 보다는 조금 덩치가 큰 수선화이지만, 꽃의 생김새는 똑같은 수선화입니다.
뿐만 아니라, 흰 색에서부터 노란 색까지 약간의 차이가 있는 꽃을 다양하게 피워내는 수선화(Narcissus romieuxii)도 있습니다. Narcissus romieuxii 는 여느 수선화에 비해 전체적으로 몸피가 작고, 꽃 송이 하나하나도 앙증맞습니다. 처음에 저는 이 수선화를 보고 그냥 '애기 수선화'라고 부르기까지 했으니까요.
꽃의 생김새도 독특합니다. 수선화 꽃의 가운데 부분에 툭 튀어나온 부분을 '부관(副冠)'이라고 하는데, Narcissus romieuxii는 이 부분이 마치 나팔처럼 활짝 열린 채로 피어납니다. 작은 나팔 모양의 이 꽃이 마치 봄의 교향악을 연주하는 우렁찬 나팔처럼 보입니다. 또 부관 아래 쪽으로 돋아나는 여섯 장의 꽃잎도 다른 수선화들과는 사뭇 다릅니다. 대개의 수선화 꽃들의 꽃잎과 달리 Narcissus romieuxii 의 꽃잎 여섯 장은 작고 가느다랗습니다.
변산바람꽃(Eranthis byunsanensis) 이 피어난 건 수선화보다 먼저였습니다. 열흘 쯤 전일 겁니다. 하얀 색의 꽃잎 여섯 장이 10센티미터가 채 안 되는 낮은 키의 풀 위에 살포시 피어나는 예쁜 우리 토종 꽃입니다. 이름에서 보시다시피 바람꽃 종류 가운데 우리나라의 변산반도 지역에서 처음 발견돼 학계에 보고된 식물입니다. 변산바람꽃은 변산반도 외에 지리산과 한라산 설악산 마이산 등 우리나라의 산 양지녘에서도 자라는 특산종입니다만 개체 수가 그리 많지 않아서 그 보존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식물입니다.
꽃잎처럼 보이는 다섯 장의 흰 부분은 꽃받침입니다. 꽃이 작아서 자신의 혼사를 이뤄줄 벌과 나비와 같은 수분곤충의 눈에 잘 안 뜨일까봐 스스로의 몸을 과장해 보이려고 유난스레 키운 꽃받침입니다. 색깔까지도 여느 꽃잎을 닮았습니다. 그러나 혼사를 이룬 뒤에 금세 시들어 떨어지는 꽃잎과 달리 꽃받침은 꽃의 혼사, 즉 수정과 무관하게 오래 남습니다. 그게 아마 꽃잎과 꽃받침의 가장 중요한 차이일 겁니다.
변산바람꽃처럼 꽃잎이 아니라 꽃받침으로 스스로를 꾸미는 예쁜 꽃은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이 즈음 활짝 피어나는 꽃으로 '사순절의 장미'라고 부르는 Helleborus orientalis 가 있습니다. 마침 교회에서는 지난 주까지 사순절을 마치고 바로 어제 부활절을 맞이했다고 합니다만, Helleborus orientalis 에게는 아직도 수행해야 할 고행이 아직 남아있는 듯 붉은 꽃이 한창입니다.
원래 사는 지역과 이곳의 기후가 다른 때문이겠지요. 헬레보러스의 고향인 유럽 지역에서 이 식물은 사순절이 시작하는 즈음에 꽃이 피어난다고 합니다. 꽃잎처럼 보이는 붉은 부분은 변산바람꽃과 마찬가지로 꽃받침입니다. 이게 꽃받침이다 보니, 다른 꽃들에 비해 개화 기간이 긴 편인데, 대개는 사순절 사십일 동안 내내 피어있습니다. 우리 천리포수목원에서는 유럽에서보다 훨씬 늦게 피어나지만, 역시 오래도록 피어있는 꽃입니다.
우리 민족의 상징인 봄꽃들도 서서히 꽃망울을 통통하게 올렸습니다. 지난 해에 비하면 적어도 열흘 정도 뒤늦은 개화 채비입니다. 천리포수목원의 봄꽃 개화시기는 대략 중부지방보다 조금 늦은 편입니다. 중부 지방에서도 벌써 진달래(Rhododendron mucronulatum)는 꽃망울을 열었다지만, 우리 수목원의 진달래는 성급한 꽃 송이 몇 개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아직 봉오리인 채입니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활짝 피어날 기세로 통통하게 살이 올랐습니다.
진달래와 함께 대표적인 우리 시골 마을의 꽃인 개나리(Forsythia koreana) 꽃도 한참 늦네요. 이제 겨우 꽃망울 끝에 노란 색을 드러낸 정도이니까요. 그러나 일단 여기까지 채비를 한 개나리 진달래의 꽃송이들은 이제 사정없이 피어날 겁니다. 날씨가 궂고, 험한 사고 끊이지 않는 세상사와 무관하게 식물들은 그렇게 제게 주어진 생명을 더 아름답게 찬미할 겁니다.
이제 곧 천리포수목원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목련 꽃이 피어날 겁니다. 개나리 진달래가 꽃망울을 열려 안간힘 하는 것도 그 찬란한 봄 향항 그리움의 끝이라는 신호입니다. 이제 곧 피어날 1천 6백 그루나 되는 천리포의 아름다운 목련들. 그 가운데 해마다 가장 먼저 피어나는 Magnolia biondii도 하얀 속살을 살짝 내밀었거든요. 잃어버린 봄이라고 생각했었기에 목련의 개화 향한 설렘 더 깊어지는 식목일 한낮입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
첫댓글 꽃을 몰랐을때는 누가 꽃창포를 수선화라고 했는데 그런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게 꽃창포인줄 알게되고 붓꽃종류라는것도 알게 되었지요 수선화를 보니 제가 많이 접하지 못했던 꽃이네요 주변에 수선화가 있으면 자세히 봐둬서 익혀둬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