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는 길 (사도행전 20:1-16)
2007년 북방선교현장 방문, 이번 여행길에도 여러 차례 비행기를 타야 했습니다. 멜본에서 출발하여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에 도착하기까지, 그리고 돌아올 때까지, 모두 열 번의 비행기 여행을 했습니다. 비행기는 이륙할 때와 착륙할 때가 위험하다 하지요. 지난 주간에도 브라질에서 비행기 착륙 사고로 25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해서, 저는 비행기가 이륙하고 착륙할 때마다,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성경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합니다. 이번에는 시편 23편을 묵상했습니다. 홍원표 장로님이 새벽기도회 때마다 암송하시던 말씀인데요, 이륙하고 착륙하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4절 말씀만 묵상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죽음 같은 고통의 때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죽음 그 자체, 죽음의 순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내 가는 길 마지막 순간에도,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에도,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캄보디아 비행기 사고로 한국인 십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희생자 중에, KBS 방송사 조종옥 기자가 포함되어 있었는데요, 그는 모처럼 가족과 함께 해외여행을 떠났다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시신을 발굴했을 때, 두 살 난 막내아들을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버지 조 기자의 시신은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가는 등 크게 손상되었지만, 아들의 시신은 거의 온전했습니다. 비행기가 추락하는 죽음의 순간에, 어린 아들을 가슴에 품었던 아비의 사랑, 바로 하늘 아버지의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가는 길 마치는 그 죽음의 순간에, 그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하늘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내 영혼을 가슴으로 품어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캄보디아 비행기 사고 희생자 중에, 현지에서 여행 가이드로 활동하던 박진완 님도 있었습니다. 지난 2004년 다일공동체 선교사 자격으로 캄보디아에 들어가, 노숙자와 고아들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밥퍼 사역’을 했습니다. 현지인들로부터 ‘한국에서 온 천사’로 불렸다 합니다. 여행 가이드를 하게 된 것도 현지 활동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캄보디아는 우리교회가 후원하고 있는 인도차이나 반도 선교지역, 초승달 선교벨트에 포함되어 있지요. 한국에서 온 천사, 박진완, 그가 다하지 못한 사랑, 아직 살아있는 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짧지만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박진완 형제의 영혼, 하늘 아버지께서 품어주신 줄로 믿습니다.
한국으로 가는 동안, 몇 차례 난기류(Turbulence)를 만났습니다. 특히 인천 도착 한 시간 반 정도를 남겨두고, 약 3분 동안 비행기가 아주 심하게 요동을 쳤는데요, 제가 경험한 것 중에서 가장 심각한 난기류였습니다. 비상구에 불이 깜빡이고, 승무원들이 분주히 다니다가 자리에 앉았습니다. 기체가 흔들릴 때마다 잔뜩 긴장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거나 신음소리를 냈고, 이러다가 정말 무슨 일이 나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때 기장이 방송을 했습니다. “우리는 불안정한 기류를 만나 잠시 동안 더뷸런스를 통과하겠습니다. 속히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안전벨트를 매주십시오.”
내 가는 길, 내 믿음의 순례길에도 난기류가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고난의 때, 위기의 순간이 있습니다. 비행기가 난기류를 피할 수 없듯이, 내 가는 길도 견디기 힘든 시간들을 피할 수 없습니다. 비행기가 난기류를 통과해야 하듯이, 내 가는 길도 때로 고통의 터널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터뷸런스는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 통과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터뷸런스를 통과할 때,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시련이 닥쳐올 때 우리가 할 일은 속히 내 자리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내 본연의 자리로, 내 생명의 근원이시고 내 삶의 근거이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세상 것에 사로잡혔던 어리석은 마음, 그 모든 욕망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말씀의 안전벨트를 매야 합니다. 말씀의 안전벨트, 바로 이 말씀이지요. 함께,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여러 사람을 만났습니다만, 그 중에서 두 사람과의 만남이 저에게 특별한 의미로 남습니다. 우리교회 영어목회자 후보자인 윤복현 교수님과의 만남, 그리고 “내 친구 해근이” 유해근 목사와의 만남입니다.
영어목회. 영어권에서 자란 자녀들을 믿음으로 양육하기 위해서, 또한 국제결혼 가정 목회와 입양인 가족 선교 등을 위해서, 영어목회는 꼭 필요하고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많은 이민교회들이 영어목회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미국의 경우, 이민교회 역사가 100년을 넘었음에도, 열 교회 중 여덟 교회가 영어목회 때문에 힘들다고 합니다. 주로, 마땅한 영어목회자를 찾지 못한 때문이고, 영어목회자가 있다 해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힘들다고 합니다. 호주에서도 영어목회자를 청빙한 교회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그리 순탄치는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교회는 이미 풀타임 영어목회자를 위한 예산을 편성해 두었고, 영어목회위원회를 중심으로 영어목회자 청빙을 위해 수년간 기도하며 노력해왔습니다. 감사하게도, 지난주일 교회의회에서 목포대학교 윤복현 교수님을 청빙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오늘 제직회에서 승인해주시면 내년 초에 부임하시게 됩니다. 2년 동안 교수직을 휴직할 수 있기 때문에, 적어도 2년 동안 우리교회에서 사역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윤복현 교수님은 미국에서 공부하는 9년 동안 이민교회를 섬기면서, 이민자 자녀들의 정체성 문제에 주목하게 되셨습니다. 자신의 자녀들 역시 정체성의 혼란으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부모로서 자녀들의 고통을 품고 기도하며 노력하셨습니다. 한국으로 귀국해서는 광주 벧엘교회를 섬기면서, 지난 7년 동안 영어예배부 책임을 맡으셨고, 호남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부터 영어설교도 전담하게 되셨습니다. 영어는 잘 하시는가? 우리교회 영어청년부장이신 더글라스 스미스(Douglas Smith) 집사님이 전화로 인터뷰하셨는데요, 교수님의 영어능력이 엑셀런트하다고 평가하셨습니다. 저도 그분을 처음 만났는데요, 겸손과 열정과 비전을 갖춘 좋은 사역자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동안 우리교회는 1.5세 사역자를 찾아왔습니다. 해서, 윤 교수님이 서류를 보내왔을 때, 나이가 많은 1세라는 점 때문에 처음에는 부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보내오신 편지를 읽으면서, 이분이라면 1.5세 사역자를 청빙하기 어려운 이 공백을 잘 메워 줄 수 있겠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민자 자녀들을 부모의 심정으로 품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한국교회의 소중한 신앙전통을 심어줌으로써, 부모와 자녀가 한 교회 한 지붕 아래서 함께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하는데 큰 도움이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어목회위원들도 같은 생각으로 이분을 선택하고 추천해주셨습니다.
청빙이 확정되고 내년 초에 부임하신다면, 윤복현 전도사님이 되시겠지요. 하지만 여러분,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영어목회자의 청빙은 모든 문제의 해결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문제해결을 위한 출발일 뿐이지요. 윤 전도사님의 청빙을 계기로 우리교회 영어목회의 디딤돌이 잘 놓여지기를 소망합니다. 내 가는 길, 우리 함께 가는 이 길에, 우리 자녀들과 동행하게 되기를.. 우리 자녀들이 우리 가는 이 믿음의 순례길을 대물림해서 걷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내 친구 해근이, 유해근 목사. 작년 북방선교지 방문길에 김영섭 장로님을 통하여 다시 찾게 된, 저의 초등학교 동창생입니다. 십여 년 동안 외국인 노동자, 특히 몽골 노동자들을 돕는 나섬공동체를 섬겨왔습니다. 서울 광장동에 몽골 노동자 자녀들을 위한 몽골학교와 어린이집을 세우고 한국교회의 몽골선교 중심에서 헌신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나섬공동체 사역이 많이 알려졌지만, 해서 몽골 대통령의 훈장까지 받았지만, 초창기에는 몹시 힘들었습니다. 너무 무리한 탓인지 시력을 잃게 되었고, 지금은 전혀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입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정신지체장애자인 둘째 아들을 고통스러워하면서, 눈마저 멀게 된 신세를 절망하면서,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눈 먼 자가 눈 뜬 자를 위로했다.” 그런 시가 있지요. 오히려 두 눈이 멀쩡한 나보다 더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는 내 친구 해근이를 보면서, 큰 도전을 받았고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힘들지 않냐?” 제가 위로한답시고 물었을 때 웃으면서 대답하더군요. “눈에 뵈는 게 없는 놈이 무엇이 두렵겠냐? 뵈는 게 없으니 오히려 좋다. 그저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 손 꼭 붙잡고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는 거지. 주님께서 인도하시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니? 성령님께서 나와 동행하시는데 무엇이 두렵겠니?”
“친구, 우리 함께 가는 거야.” 유 목사와 굳센 포옹을 나눈 뒤, 그 녀석이 꿈꾸고 있는 위대한 나라, 몽골 땅에 이루어질 하나님나라를 향해 길을 재촉했습니다. 내 가는 길에 동행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 한 걸음 앞서가는 믿음의 친구가 있다는 것, 참 감사했습니다.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 징기스칸의 외침이 서려있는 드넓은 몽골 땅에서, 우리는 새로운 도전을 받았습니다. ‘내려놓음’의 저자 이용규 선교사님은 몽골국제대학 부총장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요즈음 또 하나의 책을 쓰고 있다 했는데요, 제목이 ‘더 내려놓음’이랍니다. 하버드대학 졸업장도 내려놓고, 보장된 미래를 다 내려놓고 황야와 같은 몽골로 간 분인데요, 아직도 더 내려놓을 것이 있다 했습니다. 내 가는 길, 내 믿음의 순례길은 끊임없이 나 자신을 내려놓는 싸움의 길이라는 것,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몽골선교 하면 이용규 선교사님을 떠올립니다만, 선교사님은 몽골선교의 한 부분에 불과합니다. 몽골선교를 일구고 섬기는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가령, 울란바타르 한인교회와 몽골연합신학교를 섬기는 안광표 목사님, 그리고 울란바타르 대학 윤순재 총장님을 통하여 몽골선교 현황과 구체적인 방법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넓은 땅을 개간해서 콩농사를 짓고 있는 허성환 선교사님은 식량사역의 비전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교회가 후원하고 있는 신학생들과 김영섭 장로님 가정이 후원하고 있는 대학생선교회와 군인선교회 청년들도 만났습니다. 몽골선교의 역사가 16년밖에 되지 않고 전통적으로 라마불교의 나라이기 때문에, 아직 기독교인 숫자가 매우 적습니다. 하지만 선교사들이 연합하여 한 마음 한 뜻으로 섬기는 모습 속에서, 몽골 그리스도인의 대부분인 청년들의 순수하고 정열적인 모습 속에서, 몽골기독교의 밝은 미래를 보았습니다.
몽골에 대해서 자세한 것은 이번 주 수요찬양예배 때 “나의 몽골선교 답사기”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분당 샘물교회 봉사팀 20명 정도가 납치되어 있는 상태지요. 무엇보다 모두가 무사히 풀려나기를 기도합니다. 하지만, 기독교에 적대적인 나라를 선교하는 방법에 대해서 반성하게 하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프가니스탄만큼 위험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섬기는 중국 북한 몽골 역시 공식적인 선교가 불가능한 나라들입니다. 비둘기 같이 순결하게, 그러나 뱀같이 지혜롭게 하라, 주님 말씀하셨지요. 타문화권, 타종교권 선교방법에 대한 지혜가 필요합니다. 몽골을 비롯한 북방선교의 비전과 전략과 방법에 대해서 수요일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많이 오셔서 함께 생각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오늘은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 이 말을 남긴 징기스칸은 아마도 지난 천년의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일 것입니다. 801년 전에 몽골제국을 건설했는데요, 인류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이었고, 가장 넓은 제국이었습니다. 징기스칸의 제국은 300년 만에 망하고 말았지만, 그가 남긴 유목주의(Nomadism)은 21세기 글로벌 시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유목민을 노마드라고 하지요. 유목민적인 삶, 노마드적인 삶은 오늘날 글로벌 시대 속에서, 디지털 문명 속에서 소위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한 새로운 코드가 되고 있습니다. 노마드의 첫 번째 특성은 이동입니다. 노마드는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합니다. 한 곳에 머무는 것,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 한 가지 전통을 고수하는 것은 퇴보를 의미합니다. 성을 쌓고 그 성 안에서 비단옷 입고 안주하면 망합니다. 지리적으로 이동하든, 인터넷을 통해 이동하든, 생각으로 이동하든, 기도 가운데 이동하든, 끊임없이 이동하며 새로운 길을 내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 살아남을 수 있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노마드에게는 또한 속도가 중요하지요. 몽골제국의 전사들은 조랑말로 빠르게 움직이며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그들이 말을 타고 달리는 속도와 그들이 차지하는 땅의 넓이는 정비례했습니다. 빠른 이동을 위하여, 전투복장도 무기도 간편했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여행할 때 짐이 간단하지요. 심한 경우엔, 랩톱 하나만 들고 다니지요. 조만간 간단한 단말기 하나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의 시대가 올 것입니다. 이동의 속도, 변화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가, 여기에 성패가 달려있습니다.
노마드에게는 또한 적응력이 필요합니다. 빠르게 이동하는 곳마다 다양한 사람, 다양한 문화를 만납니다. 해서, 나와 다른 사람, 나와 다른 문화에 대한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언어능력은 기본이지요. 다인종 다문화 상황에 적응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끊임없이 빠르게 이동하며 적응하는 노마드들이 지금도 새로운 몽골제국을 세우고 있습니다. 갈래갈래 나뉘어 있던 나라와 민족들을 거대한 네크워크로 연결하며, 지구촌의 새로운 질서와 문화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노마드들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펼치셨습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노마드의 순례가 시작되었지요. 신약시대에 하나님이 사용하신 대표적인 노마드는 사도 바울입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하신 예수님의 명령을 몸과 영혼에 새긴 바울이었습니다. 결코 한 곳에 정착하거나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 중심의 현실안주형 교회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배설물처럼 여기고, 간편한 몸가짐 마음가짐으로, 이방땅을 향해, 땅끝을 향해, 끊임없이 빠르게 길을 내며 이동했습니다. 발길 닿는 곳마다 그 지역 특성에 적응하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교회들을 자신의 교회라 주장하며 눌러앉지 않았습니다. 복음전파라는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는 바울이었기에, 그는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소아시아와 유럽에 세운 교회들이 서로 통하도록 서신으로 기도로, 요즈음 같으면 이메일과 홈페이지와 사이월드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새로운 세계의 질서, 새로운 복음의 역사를 창조했습니다.
김명숙 집사님 읽어주신 오늘 본문말씀, 사도행전 20장 1절부터 16절까지는, 바울이 선교여행을 하며 복음을 전하는 한 장면입니다. 이 짧은 말씀에 ‘떠나다’, ‘가다’, ‘들리다’라는 표현이 한 절에 한 번 가까이 나옵니다. 숨 가쁘게 이동하는 바울의 모습입니다. 아주 급히 떠난 경우도 있고, 잠시 들린 경우도 있고.. 하지만 경우에 따라 좀 더 오래 머물기도 했습니다. 빠르게 이동하며, 상황에 잘 적응하는 노마드 바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과 같은 믿음의 노마드, 천국 노마드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지금도 이 글로벌 시대 속에서, 이 디지털 문명 속에서,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창조하고 계십니다.
선교여행을 떠나는 날, 강신홍 장로님이 공항까지 운전해주셨습니다. 멜본 시내의 야경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그 아름다운 밤하늘에 초승달이 떠있었습니다. ‘초승달 선교벨트’를 마음에 새기며 떠났습니다. 울란바타르에서 돌아오는 날, 어느 선교사님이 공항까지 우리를 태워주셨습니다. 울란바타르 밤하늘에 보름달이 떠있었습니다. 초승달 선교벨트를 밟으며 오가게 될 우리 멜본한인교회 노마드들을 생각했습니다. 그 노마드들이 꿈꾸는 보름달 같은 하나님나라가 아름다웠습니다.
내 가는 길, 내 믿음의 순례길, 바울의 길이고, 천국 노마드의 길입니다. 대를 이어 함께 가야 할 길입니다. 멜본한인교회 천국 노마드 여러분, 여러분 가시는 길에 하늘의 복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대 가는 길에 축복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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