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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것이 아니라는 '음모론'이 일었다. 아타까마 사막 달의 계곡이 우리가 본 그 달의 표면과 너무도 닮아있었기 때문에,, |
칠레, 오아시스의 도시 "산 페드로 데 아타까마"에 들어서다
오전 9시
알티플라노 볼리비아 국경을 떠나 20여분 만에 '산 페드로 데 아타까마'의 외곽에 있는 칠레 출입국사무소에 도착했다.
입국절차가 까다롭다는 소문대로 살아있는 식물이나 동물의 반입을 철저하게 가려내려는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의 완벽함은 우리의 입국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입국수속이 시작되자 사무소 안으로 가방을 들고 들어간 우리 일행은 누구 한사람 예외 없이 컨베이어벨트에 크고 작은 가방을 올려 놓고 그 모두를 다 열어야 했다. 단단하게 조여놓은 가방의 안전벨트를 풀고, 서너 개씩 채워 놓은 자물쇠를 전부 여는 것은 물론, 심지어는 속옷 파우치까지 다 확인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살아있는 동식물을 소지하지 않았으니 라면이나 과자 등 밀폐된 용기에 포장된 먹거리들은 아무런 문제없이 통과됐다.
볼리비아에서 칠레로 넘어오는 길목의 칠레 구간. 아스팔트 포장이 잘 된 이 길의 왼쪽 능선을 넘어가면 볼리비아 국경이다.
산 페드로 데 아타까마의 출입국사무소.
숙소에 도착하여 아타까마 사막의 뜨거운 태양을 잠시 피하고 있다
여행자들의 도시, 산 페드로 데 아타까마
입국수속을 받기 위해 내렸던 가방들을 다시 차에 싣고 출입국관리소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숙소에 도착했다.
자동차로 5분이면 도시를 한바퀴 돌아도 될만큼 작은 아타까마 사막의 작은 오아시스 도시는 지리적 특성상 페루와 볼리비아르 거쳐 온 여행자들이 잠시 머물며 호흡을 고르는 곳이자 칠레에서 볼리비아와 페루를 들어가려는 여행자들의 발걸음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그러기에 도시의 모든 기능은 여행자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여행사, 숙소, 카페, 은행, 그리고 기념품점 등이 이 도시의 전부라해도 될만큼,,,
칠레에 들어왔으니 먼저 칠레 화폐를 마련해야 했다. 그러나 뜨거운 사막의 햇빛 아래서 도시의 중심인 아르마스 광장을 가운데 두고 몇군데 ATM기를 돌았지만 칠레화폐를 인출하기가 쉽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아르마스 광장을 지나 작은 거리에 있는 은행을 찾아냈다. 이곳은 여행자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금융업무를 보는 곳인데 입구부터 줄이 길게 늘어서 있기는 하지만 여행자용 ATM에서는 칠레 화폐가 잘 인출되었다. 필요한 만큼의 경비를 마련하고 나서 도시의 중심 골목을 가볍게 돌아보았다.
한낮의 태양을 맞으며 칠레 화폐를 구하러 숙소를 나섰다. 환전소에 들러 환율을 알아보고. ATM기에서 인출을 하려면 아르마스 광장과 교회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면 작은 골목길 코너에 은행이 있다. 그곳 외의 다른 ATM기는 인출이 안됐다.
흙벽돌로 지은 집, 흙으로 된 도로, 하얀색과 파란색이 잘 어울리는 카페, 집집마다 독특한 멋을 지닌 간판들이 늘어선 좁은 골목길에 작은 차 한 대가 지나가자 뽀얀 먼지가 일었다. 그래서인지 카페와 레스토랑의 앞 길에는 축축하게 물이 뿌려져 있었다.
흙먼지 풀풀 날리는 한낮의 골목들은 하늘과 땅으로부터 뜨거운 열기를 쏟아냈다. 그늘진 곳을 찾아 걸음을 옮겨보지만 작렬하는 태양을 작은 손으로 가리기는 불가능했다. 뜨거운 정오의 태양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뫼르소의 심정을 이해했다. 한낮의 사막에 뜬 태양은 죽음의 태양이었다. 하지만 습도가 거의 없는 덕분에 그늘에 들어서면 이내 시원해졌다. 서둘러 숙소로 돌아와 해지기를 기다리며 휴식을 취했다.
저녁 6시, 해가 지는 시간을 기다려 인근 숙소 옆 마트에 가 쌀과 마늘, 양파, 고추 등속을 사 저녁을 지었다. 쌀이 우리 것처럼 찰지지 않기 때문에 밥이라기보다는 죽이 더 어울리는 저녁이 준비됐지만 비싼 돈 들여 분위기를 즐길 일 아니니 이것으로 저녁이 해결되었다. 반찬이라고는 집에서 가져온 김과 라파즈에서 들고 온 김치, 깻닢조림 몇 장, 그리고 된장국이 전부였지만 모두들 달려들어 마파람에 게 눈 감추 듯 그릇을 비우고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나서 시원한 맥주를 한 박스 샀다. 볼리비아 높은 고원에서 쌓인 피로가 이만저만이 아니겠지만 몇몇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힘이 넘쳤다. 쌀쌀한 사막의 작은 숙소 뜰에 앉아 두꺼운 옷을 꺼내 입고 눈에 술이 찰랑일 때까지 마셨다. 그래봐야 맥주 몇 캔 정도가 한계지만,,,,
젊은이들은 여행을 하면서도 고민이 많다. 학교는 졸업했지만 당장 오라는 곳 없으니 '백수'라는 꼬리표를 던져버릴 곳도 없다. 여행하는 동안 모든 것을 잠시 멈춰두었지만 돌아가면 당장 눈 앞에 다가올 현실을 힘들어했다. 그렇다고 답이 보이지 않는 일에 미련스럽게 매달릴 청춘들이 아니었다. 이맘 때의 나이에는 역시 사랑 이야기가 제격이다. 얼큰하게 취한 한 시니어가 부지런히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사이 살며시 자리를 일어섰다. 이쯤이면 적당했다.
숙소 앞 골목의 아침 풍경. 흙벽돌 낮은 집들이 조용히 아침을 맞고 있다.
2015년 4월 7일
누군가의 인기척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니 아침 7시, 모처럼 게으름을 피며 늦게까지 잠을 잤다.
볼리비아보다 한 시간이 더 빠른 이곳은 우리 나라와 12시간의 시차가 있다. 해가 뜨면 더워서 움직이기 어려울 테니 더워지기 전에 도시를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오늘은 오후에 있을 '달의 계곡 투어' 전까지 시간 여유가 넉넉했다.
숙소를 나서 왼쪽 길로 접어들자 인적하나 보이지 않는 낮은 언덕길이 나왔다. 천천히 그 길을 올라서자 인조잔디가 깔린 축구장이 있었는데 전광판에다 관중석까지 갖춘 모양새가 규모 있어 보였다. 축구장을 지나 조금 더 나아가자 칠레 국기가 걸린 공공건물과 하얀 담장으로 둘러싸인 묘역이 나타났는데 그제서야 등교하는 아이들과 도로를 분주히 오가는 출근차량들로 분주한 아침 분위기가 느껴졌다.
묘지는 사막의 모습을 닮아 황량했다. 흙으로 된 봉분은 작은 팻말이 없었다면 무덤인지조차도 모를 만큼 닳아 낮아졌고, 관리의 손길이 끊긴 듯한 무덤들은 방치한 표시가 그대로 드러났다. 어떤 삶들이 무슨 이유로 이곳에 잠들어 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떠오르는 태양의 기를 빌어 그들 모두의 평안을 기도했다.
알티플라노 고원의 리칸카브르 화산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맞으며 칠레 국기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봉분이 무너져내린 무덤 위의 검은 십자가들이 없었다면 누군들 이곳이 죽은 이들의 안식처임을 알겠는가.
아르마스 광장으로 가는 길. 흙으로 다져진 길, 흙으로 만든 담벽들에서 안데스 도시임이 역력했다.
아르마스 광장 주변
아타까마의 중심지역인 아르마스 광장은 숙소에서 골목 하나를 지나는 곳에 있었다.
광장 주변에는 교회와 지역 방위대, 여행사, 카페와 레스토랑, 여행자들의 숙소와 기념품점들이 가득 들어서 있었고, 어제 고생끝에 겨우 칠레 화폐를 마련했던 ATM기를 갖춘 은행도 그 골목 어디쯤에 들어있었다.
광장으로 들어가는 길목, 부지런한 도시의 청소부가 이른 새벽부터 공들여 쓸어놓은 쾌적한 흙길로부터 출근하는 직장인의 경쾌한 뾰쪽구두의 금속음이 똑똑똑 들리는 듯했다. 상쾌한 사막의 아침이었다.
인류학박물관. 1955년부터 1980년까지 이곳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Custavo Paige의 개인 소장품을 중심으로 선사시대부터 잉카의 침입, 스페인 침략에 이르기까지의 문화 유적들이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아르마스 광장의 여행사와 카페.
산 페드로 교회. 17세기경 건립된 이 교회는 이 도시의 다른 건축물들과 마찬가지로 흙벽돌의 아도베 양식으로 지었다. 내부는 보수 중이었다
아르마스 광장 앞의 지역방위대
광장 옆 번화가의 오토바이크 여행자들. 이 무더운 사막에서 무거운 장비를 갖추고 여행한다는 것이 참으로 대단했다.
기념품점의 수많은 메달들
여행자들의 쉼터
갓 칠을 끝낸 짙은 파란 색 문이 돋보이는 골목에는 황금색으로 도장된 가로등이 균형을 맞추고 있다.
축구장 인근에서 본 리칸카브르 화산
도시외곽의 버스터미널.
산 페드로 데 아타까마의 초등학교
아타까마 "달의 계곡" 투어
오아시스 도시인 산 페드로 데 아타까마 남쪽에는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인 아타까마 사막이 펼쳐져 있다.
아타까마 사막은 안데스 산맥과 안데스 산맥의 지류로 둘러싸인 곳으로 원래 바다였던 곳이 솟아오르면서 미쳐 빠져나가지 못한 바닷물에 의해 소금호수가 만들어지고 건조한 기후로 인해 물이 증발하면서 소금층과 암염이 형성된 곳이다. 그 지역에 오랜 세월동안 세찬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면서 깎이고, 쓸리고는 풍화작용이 이루어져 지금과 같은 사막이 만들어졌는데, 이 사막에는 지하수가 흘러들어 이룬 여러 개의 호수와 뜨거운 물이 솟구치는 간헐천 등이 있고, 산 페드로 데 아타까마와 인접한 곳에 '달의 계곡'이 있다. 사막의 지형이 달의 표면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산 페드로 데 아타까마'의 여행사들은 달의 계곡 투어를 비롯하여 사막호수 투어, 간헐천 투어 등등 다양한 프로그램의 투어를 진행하지만 볼리비아 우유니를 거쳐오면서 많은 호수들과 간헐천을 지나온 데다, 최근 아타까마의 사막호수 투어나 간헐천 투어 등의 경비가 지난 해 보다 두 배나 올라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기에 우리는 달의 계곡 투어만 하기로 했다.
오후 4시,
'달의 계곡' 투어차량이 숙소에 도착해 우리 일행을 싣고 출발하는데, 인원을 체크하던 가이드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뭔가 안 맞는 모양이었다. 다시 체크를 했는데 역시 한 명이 없다. 버스 뒷창을 내다보니 저 멀리 뙤약볕 아래서 누군가가 버스를 향해 종종거리며 뛰어오고 있었다. 투어를 할 때마다 화장실부터 다녀와야 하는 숙명(?) 때문에 일행을 벗어난 그 잠깐의 사이에 버스가 도착하여 모두를 싣고 떠나버렸노라며 그녀는 안도의 숨을 헐떡였다.
아타까마 사막 입구. 숙소에서 10여분 거리에 있다.
아타까마 사막 입구에서 본 리칸카브르 화산. 저 산 너머에는 볼리비아 베르데 호수가 있다.
소금과 모래언덕(사구, Big Dune) 그리고 하늘. 아타까마 사막은 바다가 융기하여 형성된 소금 사막이다.
세 개의 마리아상
달의 계곡 관리사무소에서 투어 신고를 마치고 맨 처음 도착한 곳은 세 개의 마리아 상이 있는 지역.
이 마리아 상들은 볼리비아 고원의 돌나무처럼 풍화작용에 의해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석상들로 마치 기도하는 마리아의 모습을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사소한 자연의 형상마져도 신성한 숭배의 대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이 지역 사람들의 신심에 경의를 표했다. 이 사막의 도시가 '산 페드로 데 아타까마, 아타까마의 베드로'라 불리는 것도 카톨릭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곳의 석상은 이름 그대로 원래 세 개의 상이 있었는데 몇해 전 누군가가 하나를 무너뜨려(혹자는 술에 취한 유럽 방문객이 그랬다 하고, 혹자는 칠레 사람이 기대어 사진을 찍다가 그랬다고도 한다) 현재는 두 개만 남아있다. 그런 이유로 현재는 이 마리아 상 둘레에 줄을 쳐서 가까이는 다가갈 수 없도록 해두었다.
세 개의 마리아상. 마리아 상의 실체는 각자의 마음으로 그려보기로 했다.
안피테아트로Anpiteatro(원형극장)
세 개의 마리아 상을 둘러보고 돌아나오는 길에 잠시 걷는 시간이 주어졌다. 이 지역은 거대한 분지의 바닥에 해당하는 곳으로 왼쪽에 안피테아트로(원형극장) 라는 파노라마 지형이 있다.
바다가 솟아오른 지형이 오랜 세월 비바람을 겪으면서 마치 로마의 원형극장 같은 형상을 갖춘 안피테아트로(반원형 분지, 원형극장)는 겉에서 보기에 수많은 층들로 이루어져있는데 아마도 바다밑 토양의 흔적이 아닐까? 주변의 토양은 붉은색 흙들과 하얀 염분들로 수천, 수만 년 전의 원형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안피테아트로 외부
사막 속의 또다른 사막.
하얀 소금이 깔린 달의 계곡에는 여느 모래 사막 못지 않게 비록 규모는 적지만 멋진 사구(모래 언덕)도 형성되어 있었다. 우리는 이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있는 높은 언덕에 올라가 이 지역을 내려다 보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지만 걸어서 가기에는 결코 만만치 않은 거리를 가이드가 마냥 걷도록 내버려 두지않았다. 정해진 시간 안에 투어를 마무리해야 하는 그들에게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다. 이내 투어 차량이 다가와 일행들을 태웠다.
도로 좌우의 하얀 것들은 소금이지만 저 멀리 보이는 안데스 산맥의 흰 봉우리들은 만년설이다. 오른쪽에 커다란 모래 사막인 빅 듄 Big Dune이 있다.
빅듄 뒤편으로 난 작은 골을 따라 높은 지역으로 오르고 있다.
달의 계곡 투어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Big Dune 능선에 오르면 계곡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왼쪽에 사구인 빅 듄이 있고, 가운데에 원형극장이 보인다.
언제 보아도 멋지게 다가오는 리칸카브르 화산
Big Dune. 큼직한 사구 위로 오후의 태양이 내리고 있다.
죽음의 계곡 Valle De La Muerte
이름으로만 상상하면 오싹 소름이 돋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원래 명칭은 화성의 계곡이라 했다.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은 '죽음'과 '화성'의 스페인어 발음이 유사한 데서 온 오류라고 했다. 그러나 계곡은 어느 이름이라해도 어울릴 만큼 깊고 오묘했다. 자연은 언제 봐도 신비로운 존재였다.
하얀 염분이 들어있는 죽음의 계곡은 마치 압축된 하나의 세계와도 같았다.
늦은 오후의 태양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계곡수와 그 안에 담긴 반영이 장관이다.
Cordillera De La Sal 소금 산맥
코르디예라, 아카까마 달의 계곡 투어의 하이라이트 중의 하이라이트인 코르디예라는 '끈' 또는 '작은 밧줄'이라는 스페인 고어 Cordilla에서 유래한 말이다. 절벽아래로 펼쳐지는 길고 평행한 산맥의 멋진 모습을 바라보며 서산에 지는 노을을 감상하면서 달의 계곡 투어를 마무리 짓기 위해 투어에 나선 모든 차량들은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달에 가보지 않았으니 알 수는 없었지만 우리가 언제 눈으로 직접 본 것만 믿었던가? 실체는 알 수 없지만 모든 자료들과 모든 정보들이 이곳이 달의 표면과 가장 닮았다하니 여행자는 그리 받아들였다. 여행이 보다 신비롭고 풍요로우려면 여행지의 이야기가 보다 신화적이고 역사적이어야 했다.
계곡아래로 펼쳐진 형상이 마치 달의 표면과 흡사하다는 코르디예라.
코르디예라의 석양
코르디예라 동쪽
서쪽으로 해가 기울자 동쪽의 안데스 산맥의 만년설봉들이 붉게 물들고 있다. 석양은 그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그 맞은편에 이루어지는 환상적 풍경으로 더욱 빛을 발한다.
해가 떨어지자 어둠과 함께 바람이
불고 쌀쌀해졌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남미의 변화무쌍한 날씨에 대비해 다양한 옷들을 준비했지만 지역별로 극심한 일교차를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었기에 항상 아침 저녁으로는 추위를, 한낮에는 엄청난 더위를 견뎌야했다. 서둘러 버스에 올라 숙소를 향했다.
아타까마에서는 달의 계곡을 둘러보는 투어말고도 다양한 투어가 있었지만 쫒기는 일정이 싫었고, 경비도 지나치게 비합리적이어서 가장 핵심적인 "달의 계곡" 투어만으로 일정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 내일은 이른 아침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로 갈 예정이다.
아따까마에서 산 목각 부부상
첫댓글 하 멋지기도 하고
여러가지로 어려운곳입니다
볼리비아는 여행자들도 힘들지만
현지여행사도 취약하고
사고도 자주나고...
암튼 핸드링하기 힘든나라입니다.
여행지로는 베스트죠
아직 준비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중미 여행을 하게 될 기회가 오면 페루와 볼리비아지역을 다시 한번 돌아볼 생각입니다. 핸들링하기 힘든 곳일 수록 여행지로서의 매력은 더 크기 마련인가 봅니다. 베스트라는 말이 사라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