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만, 한국의 '꽃보다 남자' 드라마의 성공은 원작 만화의 힘

[세월]

"3국 '꽃남' 성공은 원작 만화의 힘"

한국·일본·대만 제작자 한자리…흥행 비결, 제작 뒷얘기 등 들려줘

2009년 09월 14일 (월) 09:30:01

권경성 기자 ( ficciones@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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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남자'(꽃남)의 성공이 갖는 중요한 의미 중 하나는 검증된 스토리의 힘이 역시 굉장하다는 것을 업계에 입증했다는 점이다."

TV 드라마 <꽃남> 한국판의 제작사인 그룹에이트의 송병준 대표는 지난 1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국제방송영상견본시·포럼(BCWW) 2009'의 부대행사로 열린 '글로벌 미디어 포럼-3개국 제작자와 함께하는 꽃보다 남자 이야기'에 연사로 나와 이렇게 역설했다.

일본 작가 가미오 요코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제작된 <꽃남>은 대만(2001)과 일본(2005)에 이어 국내에서도 지난 1~3월 KBS 2TV를 통해 방영되면서 아시아 전역에서 큰 성공을 거뒀고 주인공인 F4를 연기한 배우들로 하여금 모두 아시아권 스타로 발돋움하도록 했다.

	▲ 지난 1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국제방송영상견본시·포럼(BCWW) 2009'의 부대행사로 '글로벌 미디어 포럼-3개국 제작자와 함께하는 꽃보다 남자 이야기'가 열렸다. 왼쪽부터 김영덕 한국콘텐츠진흥원 수석연구원, 뤼쉬엔차이 대만 '프라즈냐 웍스 엔터테인먼트' 대표, 이시이 야스하루 일본 TBS 감독, 송병준 그룹에이트 대표. ⓒ이치열 기자 truth710@

송 대표는 "KBS 쪽에선 '꽃남'이 해외에서 드라마화된 사례가 있는 데다 다른 트렌디 드라마가 이미 '꽃남' 캐릭터를 많이 차용해온 점 등을 우려해 당초 원작을 다 바꾸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그런 '친숙함'이 성공을 가능케 하는 요인이라고 판단해 한때는 편성을 포기하려 하기까지 했었다"며 "만화 원작은 탄탄한 스토리와 매력적인 캐릭터, '통통' 튀는 에피소드 등 흥행을 위한 삼박자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화는 시각적인 정보도 함께 주는 만큼 영상화하는 데 용이한 데다 판타지를 가장 잘 전달해주는 장르여서 현실로부터 벗어나 쉴 수 있는 안식처를 제공하는 드라마의 역할과도 잘 맞는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송 대표뿐 아니라 이날 그와 함께 포럼에 연사로 참석한 '꽃남'의 대만판 제작자 유슌차이 '프라즈냐 웤스 엔터테인먼트' 대표나 일본판 제작자 이시이 야스하루 TBS 감독 역시 원작이 다룬 사랑이란 보편적 소재와 잘 다듬어진 원작 캐릭터의 힘을 드라마 성공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다. 특히 유슌차이 대표는 "소재와 캐릭터 면에서 완벽하게 작품을 만들어준 원작 작가에게 가장 감사한다"고 거듭 말했다.

▷불가피한 현지화 빼곤 원작 그대로=한국과 대만의 '꽃남' 제작자들은 원작의 일부를 자국 사정에 맞춰 '로컬라이제이션(현지화)'하기도 했지만 원작의 전반적 내용과 원작자의 의도는 최대한 충실히 살리려 했다고 입을 모았다. 일본 제작자도 "원작자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했다.

	▲ 한국판 <꽃보다 남자> 제작자인 송병준 그룹에이트 대표. ⓒ이치열 기자 truth710@

유슌차이 대표는 "대만 시청자의 수용도를 감안해 원작에선 고등학생인 주인공들을 대학생으로 바꾸거나 대만에선 없는 일인 해외 휴가 같은 것을 삭제하기도 했지만 원작에 녹아 있는 일본 문화는 가능한 한 수용하고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공간도 남겨두려 했다"고 말했다.

한국판 '꽃남'의 경우, 가령 여자 주인공이 따돌림을 당하는 장면에선 원작의 야구방망이나 오물 등을 물풍선이나 밀가루 등으로 대체해 폭력의 강도를 완화했다. 국내엔 존재하지 않는 '귀족만 다니는 특수학교'의 합리화를 위해 입학 계기 등을 재설정하고 드라마의 상당 부분을 이를 설명하는 데에 할애하기도 했다. 또 한국 여고생의 고민을 드라마에 반영, 원작에선 야망이 없고 소박한 여고생인 여주인공에게 수영 선수나 의사 등과 같은 목표 의식을 불어넣었고, '가족' 코드 강화를 위해 원작엔 없는 가족간 에피소드도 보강했다.

이에 대해 송 대표는 "국내 정서를 감안해 표면적인 이야기를 손질했지만 불가피하게 한국화해야 하는 부분을 제외하곤 원작의 '향기'를 최대한 살리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판의 여주인공인 금잔디(구혜선 분)의 이름이 일본식 이름인 츠쿠시가 될 뻔한 사연도 소개했다. 판권 계약 협상 당시 원작 속 이름을 그대로 살리라는 원작자 쪽 요구를 일단 수용한 뒤 츠쿠시(잡초)란 이름이 갖는 본래 뜻을 살려 캐릭터의 한국식 이름을 짓겠다고 나중에 제안해 겨우 양보를 받아냈다는 것이다.

이시이 감독은 "원작을 최대한 살리되 촬영 환경과 스케줄에 맞춰 적절하게 수정하는 식으로 작업했다"고 말했다.

▷원작과 외모 흡사한 신인 캐스팅=세 나라 '꽃남' 제작자들은 모두 원작 캐릭터와 외모가 흡사한 신인 연기자들을 새로 발탁해 흥행에 성공했고, 그들을 모두 스타로 만들었다. 그러나 발탁이나 훈련 단계에선 적잖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 일본판 <꽃보다 남자> 제작자인 이시이 야스하루 TBS 감독. ⓒ이치열 기자 truth710@

가장 나중에 드라마를 만든 송 대표는 "원작 캐릭터의 그림과 실제 배우의 외모 일치율을 높이는 것으로 차별화하려 했고, 전작이 있는 상황에서 우리 배우들이 원작에 가장 가깝다는 얘기를 듣고 싶었다"며 "가장 먼저 캐스팅된 배우는 윤지후 역의 김현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김현중이 외모도 잘 맞았던 데다 쌓아둔 인지도도 있었고 '4차원' 또는 '엉뚱한'이란 이미지도 캐릭터에 잘 맞았지만 문제는 연기력이었다"며 "대본 리딩이 뭔지도 몰랐던 김현중에게 선생님을 두 명 붙여 매일 4시간씩 연기 연습을 시키고 작가까지 붙여 또 훈련시켰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또 구준표 역의 캐스팅 비화도 들려줬다. "가만히 있으면 건방지고 도도해 보이지만 이를 드러내고 웃을 땐 순수함이 엿보이는 양면적 이미지의 배우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우연히 지인이 보내준 이민호의 사진을 보고 캐스팅하는 데 10초도 안 걸렸다. 원작 캐릭터의 키와 배우의 키도 공교롭게 186㎝로 같았다. 주인공과 같은 곱슬머리를 만들기 위해 네 차례나 파마를 다시 해보도록 했고 기획팀도 환영했다."

송 대표는 "한국판 '꽃남'이 여러 제약 탓에 기술적이고 세부적인 면에서 부족해진 건 사실이지만 흥미로운 스타일링과 더불어 신인 배우들의 수려한 외모가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유슌차이 대표는 "전통적인 기성 배우의 기용이 일반적이던 제작 당시 대만 상황에서 젊고 잘 생긴 배우를 오디션으로 선발한다는 건 상당히 도전적인 시도였지만 결과적으로 드라마 환경의 새로운 출구를 찾은 셈이 됐다"며 "만화 원작에 가까운 배우를 캐스팅한다는 원칙이 있었고 과거와 다른 신선한 캐릭터와 연기가 필요했던 만큼 주인공을 모두 신인으로 기용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시이 감독은 "여주인공인 츠쿠시 역할을 맡은 이노우에 마오의 경우 아역부터 했기 빼문에 잘 할 걸로 생각했지만 힘이 들어간 주먹을 날리는 말괄량이 역할에 적합해지도록 한 달 간 복싱을 배우도록 하기도 했다"는 뒷이야기를 전했다.

▷사회문화적 반향, 상업적 성공=세 나라 제작자 모두 준비와 촬영, 편집 등 전 제작 과정 상에서 곤란을 겪은 탓에 결과물에 썩 만족하진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세 나라 '꽃남'은 높은 시청률에 따른 사회·문화적 반향과 더불어 상업적 성공을 이끌어내며 업계 통설과 관행까지 흔들어놓았다. 전형적이지만 잘 만들어진 원작의 이야기와 캐릭터에 새로운 볼거리가 합쳐진 결과다.

	▲ 대만판 <꽃보다 남자> 제작자인 뤼쉬엔차이 '프라즈냐 웍스 엔터테인먼트' 대표. 이치열 기자 truth710@

송 대표는 "한국판 '꽃남'은 새로운 시청자층을 만들어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며 "더 이상 TV의 주 시청층이 아닌 것으로 분류되는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불러모아 50% 미만이었던 해당 시간대 전체 시청률을 70%까지 끌어올린 것"이라고 자평했다.

또 "초상류층과 서민간의 소통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갈등을 극단화하다가 '외모지상'이나 '재벌옹호', '물질만능' 등 정서를 조장한다는 사회·문화적 지탄을 많이 받았지만 저작권을 토대로 한 부가사업으로 큰 수익을 얻었고 스타를 발굴해 광고 시장에도 활력을 불어넣는 등 산업·경제적인 측면에선 긍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시이 감독은 "일본판 '꽃남'은 DVD로 출시되고 영화로도 만들어져 모두 성공했는데 이는 기존 상식에선 생각하기 어려웠던 일"이라며 "순정만화는 드라마로 만들면 인기가 없다는 업계 통념을 바꿔놓은 것도 성과"라고 말했다.

유슌차이 대표는 "대만판 '꽃남'은 대만에 트렌디 드라마 시대를 열었으며 F4란 스타를 발굴, 동남아시아에 '화류(華流)'를 만들어내는 한편 체계적인 스타 발굴의 단초도 마련했다"며 "이는 드라마가 상품이 돼 국가간 시장도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