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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대자연 풍요로운 관악산(冠岳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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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은 첫날부터 대관령의 아침기온이 영하1.7도까지 떨어져 길가의 풀잎과 꽃에 서리가
맺혔다는 신문보도가 있었다.
이날 대관령은 6월 얼음에 깜짝 놀라고 서울은 쨍한 여름에 감동을 먹은 하루였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도 엄청나게 크고 넓은 면적을 가진 나라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6월에 남한지역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지거나 물이어는 현상이 공식적으로 관측된 것은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 했다.
이번 추위는 찬 성질의 오호츠크海 고기압이 우리나라로 확장한가운데 밤사이 복사냉각현상이
나타나 발생했다고 기상청은 설명했다.
유월은 호국보훈의 달이고 오는 6일은 현충일 날이다.
절기상으로는 곡식의 종자를 뿌리기에 적당한 시가라는 망종(芒種)이다.
이때는 모내기와 보리 베기로 농촌에서는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이다.
또한 2일은 전국투표구 1만3388곳에서 3991명의 지방일꾼들을 뽑는 선거일이었다.
54.5%라는 역대지방선거사상 두 번째로 높은 투표율을 보인 이번선거에서는 민심의
동향이 여러 측면으로 나타났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전쟁불사를 내비친 천안艦 북풍은 되레 역풍으로 돌아와 여권의 참패를 가져다주었으며,
방심한 보수층에 비해 젊은 층의 표 결집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지방선거는 여당에 불리하다는 패배징크스를 확인시켜주었다.
다시 분 盧풍으로 친노세력의 정치적 부활이 점쳐지기도 했고,
충청민심은 세종시수정안을 거부한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진보세력의 “교육감단일화”는 그 파괴력이 엄청났다고도 분석하기도 했다.
어째 던 간에 “국민들은 21세기에서 살고 있는데 정치하는 사람들은 20세기의 생각에
머물러있지 않았는가?” 생각도 해본다.
오늘은 금광에서 큰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동안 유아적 행동으로 남도의 품을 벗어나지 못하고 빙빙 맴돌더니 급기야 관악산을 산행한다고 한다.
관악산!
관악산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과 경기도 안양시, 과천시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북한산, 남한산 등과 함께 서울분지를 이중으로 둘러싸고 있는 자연방벽의 역할을
하고 있는 옛 서울의 요새지다.
예로부터 수많은 전설과 문화유적을 남겼으니
1968년 건설부 고시 제34호에 따라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73년 관악구가 영등포구에서 분구되면서 山 이름이 區의 명칭이 되었다.
문화재로는 원각사, 연주庵, 자왕암, 불성寺, 삼막사, 관음사, 과천향교 등이 있다.
관악산은 예로부터 개성의 송악산, 파주의 감악산, 포천의 운악산, 가평의 화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에 속했던 산이다.
서울의 남쪽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그 줄기는 과천 청계산을 거쳐 수원의 광교산까지
이어지고 있다.
북서쪽으로 국립서울대학교,
동쪽으로 정부 과천청사,
남쪽으로는 안양유원지가 자리 잡고 있으며 높이는 629.9m로 주봉우리는 연주대다.
산정(山頂)의 영주대(靈珠臺)는 세조(世祖)가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산중에 있는 원각사는 태조 이성계가 서울을 도읍지로 정할 때 건축하였으며 나라에
위급에 대처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연주庵(戀主:경기기념물20), 자왕암(慈王庵), 불성寺(佛成), 삼막사(三幕寺), 관음사
(觀音寺) 등의 산사(山寺)와 과천향교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삼막사는 원효, 의상 등의 고승들이 수도하였다고하며 산정에는 기상청의
기상 레이더 시설이 있다.
산세는 험한 편이나 규모가 그리 크지 않고 도심에서 가까워 많은 등산객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
“생활이 유죄이지 사는 게 무슨 죄일까?”
어려운 산악회 살림을 하느라 고생하는 총무님이 감기몸살로 산행에 불참했다.
요즘 금광의 인적구성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산악회분위기 또한 바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 시대가 바뀌면 그 시대를 주도할 주인이 바뀌는 현상이라 생각해도 되려는지.
오늘은 금호멤버들이 4명이나 동참을 해주었고 젊은 여성회원들도 지속적으로 참여해
차내 분위기가 한결 젊고 활기차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서방 팀이 집단파업이나 하듯 모두 불참을 해 다소간 섭섭했었다.
“산행촬영기사를 자처하는 송 국장님은 무슨 일로 불참하셨습니까?
이상설회원님의 막강한 인적세력 좀 대동하시고 참여하라고 권유도해보세요.
산행버스는 햇살 좋은 호남고속도를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아! 벌써 산행버스 차내에는 에어컨이 가동되어 찬바람을 내뿜고 있군요.”
여름은 소리 소문 없이 곁으로 바싹 다가와 처음부터 우리를 겁주고 있다.
산행버스는 복잡한 서울의 관악시내를 이리저리 달려 서울대정문에 도착했다.
서울대 심불마크가 설치돼있는 정문아치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난생 처음 와 보는 서울대학교였다.
1946년에 설립된 한국 최초의 국립 종합대학으로 대학본부와 14개 단과대학으로
이루어진 관악캠퍼스였다. (의과대학, 간호대학은 연건캠퍼스에 있다.)
이 명희회원과 “산에 살고파”순천친구가 서울대입구에서 동승을 했다.
대학정문을 통과한 산행버스는 구내도로를 달려 올라가다가 工學관 뒤에다 우리를
내려주고 조심스럽게 학교를 빠져나갔다.
산행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오늘 산행코스는:-
工學관 -자운庵 -475봉 -514봉 -관악산(629.9m) -연주대 -연주庵 -계곡 따라
-제2종합청사 뒤쪽으로 내려오는 약4시간30분이 소요되는 거리다.
산행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山行로 입구를 찾지 못해 잠시 방황도 했었지만,
이 나라 최고의 젊은 知性들이 공부하고 있는 서울대공학館,
이동 중인 학생들과 어께를 부딪치며 겨우 찾아낸 자운庵 입구에서 山을 오르기
시작했다.
경기오악(五岳)의 하나인 관악산은 빼어난 기암절벽과 울창한 산림이 어우러진
“갓” 모양을 닮은 아름다운 산이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수십 개의 岩봉과 기슭마다 흩어져있는 바위들로 산세가 매우
험했으나 확 열린 시야가 시원했고 계곡은 깊어 산의 다양한 모양새를 보여주는
산이었다.
산봉우리의 모양이 불과 같아 풍수적으로 火山이 된다고도 하는데,
원래 산 이름에 “악”자가 들어가면 만만하게 볼 수없는 험한 산이라는 뜻도 있다.
관악의 깊은 골자기 끝에서 시작되는 山行길은 시작부터 끝까지 크고 작은 바위와
무성한 나무뿐이었다.
바위가 많은 탓에 로프를 잡고 가는 코스가 꽤 많았다.
원거리산행으로 12시부터 시작된 산행은 힘이 들고 배도 곱았으나 위험한 바위를
오르는 긴장감 때문에 밥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주위를 바라볼 여유도 없이 정신없이 정상에 오르고 보니 오후2시가 다 되었다.
정상에서 서서보니 일천만이 산다는 서울시가지와 일천만의 경기도 땅이 내려다보인다.
인간이 자랑하는 도시라는 것도 실상은 하나의 거대한 콘크리트 숲에 불과하다.
사막개미가 만들어 놓은 개미모래집과 다를 게 무엇일까,
그 안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반복으로 이루어지는 게 우리의 생활이 아닐까?
정상의 연주(戀主)대는
관악산의 최고봉으로 대학동과 과천시와의 경계에 우뚝 솟은 자연 바위벽으로 절 암자
바위다.
관악산 정상에서 南南東으로 약 40m 되는 곳에 있는 이 암자바위는 10여개의 창(槍)
을 모아 세워 놓은 모양새이며 50m 이상의 절벽으로 3면이 둘러싸여 있었다.
의상대사가 관악寺를 창건하고 이곳에 앉아 참선했다고 해서 “의상대”라 부르던 것을
조선 초 고려의 유신들이 이곳에 올라와 옛 고려를 그리워하며 “연주대”라 불렀다고
한다.
혹자는 효령대군이 왕위를 포기하고 관악寺에 들어와 수행하다 이곳에 올라와 그리운
마음으로 왕궁을 바라본 뒤 이름이 달라졌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기상청 레이더시설도 있었다.
방호벽 안에 설치된 기상모니터에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우리나라의 기상상황이
화면 가득히 담겨져 있었다.
담당하는 여직원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내 전라도사투리가 우스웠던지 환한 얼굴로 웃어주었다.
시원한 바람이 바위사이로 불어와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아슬아슬한 벼랑위에 자리 잡고 있는 연주대는 관악산의 모든 등산로가 집결하는
곳이었다.
도심 속의 산이라 그런지 정상에는 먹 거리를 파는 장사도 있었다.
정상에서 점심을 먹고 하산 길에 연주庵에 들렸다.
연주庵은
영험한 기도사찰로 관악산등산의 필수코스다.
677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관악寺를 조선 太祖 이성계가 개국과 함께 호국도량으로
크게 중건했으며,
세종대에 이르러 효령대군이 연주대 밑으로 관악寺를 옮긴 것이 지금의 연주庵이란다.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른 것이다.
연주庵에는 삼층석탑이 있었다.
여러 번의 중수를 거친 전형적인 고려시대 탑이란다.
효령대군이 세종에게 왕위를 양보하고 이곳에 와 수도할 때 쌓은 것이라고 하는데
1층 기단에 두툼한 지붕들을 얹은 탑신 등 고려 석탑의 특징이 그대로 엿보인다.
연주庵 위쪽에는 효령대군(1396-1486년)영정을 모신 효령각이 있었다.
조선 태종의 둘째아들로 효성이 지극하고 불심이 깊었다한다.
동생인 세종이 왕위에 오른 후 관악산에 들어와 당시 관악사라 불리던 연주庵에 머무른 연유로
그의 영정이 연주庵에 전해지게 된 것이며 현존하는 조선전기(朝鮮前期)의 초상화로 귀중한 연구
자료이다.
하산 길 계곡은 멀고 지루 했다.
하루 종일 돌길을 걸어서 다리도 아프고 발바닥도 무지근했다.
산행 중에 안전사고가 발생했는데 나 회장님이 넘어지면서 왼쪽 팔꿈치부위에 찰과상을 입었다.
다행히 큰 부상이 아니어서 김 종수회원이 응급조치를 했지만 회원들은 모두가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상섭회원은 바위산을 오르내리면서 힘이 무척 들었는지 얼굴이 몹시 피곤해 보였다.
산행뒤풀이는 금호 팀이 주도를 하고 새로 온 여성회원들이 主演이 되어 신나는 한판
무대가 연출되었다.
하지(夏至)직전의 긴 하루도 저물어 하늘엔 어둠이 짙게 갈 안고 우리들의 지친산행은
고운 나래를 접고 그리운 집으로 향했다.
-서울관악구, 경기 과천시, 안양시 관악산을 다녀와서-
(2010년 6월 4일)
첫댓글 걱정 해주셔 감사합니다. 힘이 불끈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