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폭설이 크게 내렸으나 어김없이 새싹이 돋는군요.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이 기억하실 십여 년 전에 영면한 화가 주재현을 기리고자하는 당위성과 소회를 말씀드리고자합니다.
저는 강원도 영월에서 그림 그리는 백중기입니다.
오늘 이 초청장을 보냄에 있어 저의 주관적인 생각이 여러모로 이야기 될 수 있겠지만, 너그러운 양해를 바랍니다.
주재현은 81년도 강원대학교 미술교육과에 입학한 후부터, 스스로 자칭 화업 원년 운운하며 94년 영면할 때까지 그리 길지는 않으나 집요하도록 그림이라는 하나의 화두에 몰두해왔습니다.
유달리 기행적인 면모도 있었고 삶에 대한 애정과 불만과 적응과 부적응의 부대낌이 남달랐다고 생각되어집니다.
화가의 삶과 그림이 따로 분리되어 질 수는 없는 노릇 일 겝니다.
더불어 그림이 한 사람의 삶과 인격을 결국 말해주는 가장 중요한 증거일 것입니다. 삶을 이미 마감한 한 인격에 대해선 더욱 잣대가 엄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영면한 지 십년이 흘러 강산과 문화풍토가 크게 변하였으나 변함없이 남아있는 화가 주재현의 유작들을 그의 삶과 더불어 객관적으로 사려 깊게 살펴 보아야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화업 십 몇 년, 그리고 일찍 요절한 작가이지만, 화업의 길고 짧음이 결코 화가의 일생과 그림에 대한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평범한 상식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몇 가지 근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그가 남긴 그림이 이천오백여점을 헤아립니다.
일차로 그가 틀림없이 사인하여 완성작이라고 남긴 그림들의 그 방대한 분량에 첫째로 주목해야할 것입니다.
2. 아마도 그의 방대한 그림 전체를 꼼꼼히 살펴보았을 관객은 거의 없었다고 보입니다. 전체를 보았건 절반을 보았건 혹은 대강을 보았건... 제가 돌이켜 살펴본 관객의 반응들은 이랬습니다. 대부분 일단 충격을 느낍니다. 일반적 가치기준으로 보는 그림의 완성도를 따질 꺼리는 별로 없어 보입니다. 유화를 그릴 때 거쳐야하는 과정을 그는 애초에 공부하려거나 시도하려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원하는 그림의 방편으로 필요했을 뿐입니다.
다만 편하지는 않다. 불편한 점도 있다. 어떻게 판단해야 할런지 잘 모르겠다. 혹은 어떤 이들은 그의 그림을 낱낱이 살펴보며 눈물을 펑펑 흘리기도 합니다.
그는 그의 그림에 대해 스스로 설명한 적이 없습니다. 상징적으로 가끔 이야기하긴 했지만.. “작가는 다만 그림으로 말해 줄 뿐이다” 정확히 이 입장이었습니다.
3. 그 스스로 몇 번의 그림 전을 열기는 했으나. 제도권의 화랑이 아닌 거리에 빨랫줄에 주렁주렁 그림을 매달았습니다.
<그림소풍전>이라 스스로 명명했고, 한꺼번에 수백 점의 그림을 수백 미터에 걸쳐 늘어놓는 전시방식을 택하였습니다. 무모한 방식이었지요.
하지만 그 때 몇몇 언론에서 상당한 지면으로 주목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언론의 주목과 상관없이... 소풍객들이 그의 그림을 어떻게 제대로 바라보았을 것인가...다섯 걸음에 일고여덟 그림이 함께 걸었을 겝니다.
4. 딱 한 번 제도권 화랑에서 대작위주의 그림으로 상당히 성공적인 전시를 치른 후 그는 모든 것을 접고 낙향했습니다.
상식적으론 그 제도권화랑에서의 그림은 그의 사절지 그림과는 다른 엄청난 에너지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더욱 시도해 보았더라면...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만, 그는 그 점에 대해 미련이 없었습니다.
한 번 그런 곳에서 해 보았으니.. 다시 할 생각은 없고.. 사절지가 천상 편하고ㅡ 골방이 편하다..그랬지요.
낙향하여 일년 여간 죽어라 그림 그린 곳이 하필 그 나름의 연고도 하나 없는.. 제가 살고 있는 산골짜기 연당이란 곳이었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 한 번 온 셈입니다.
왜 몽땅 다 버리고 여기 와서 그림 그렸는가는.. 저도 아직 모릅니다.
그는 어느 때부터인가 그가 그때껏 그려왔던 모든 그림들에 지문을 찍었습니다. 늦게야 그림이 제대로 평가되리란 말도 했습니다.
또 자신의 그림이 하나의 종결 점에 이르렀다는 암시를 자주 했음을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론, 그는 아주 지독히 삶과 죽음, 아름다움과 추함, 삶의 희망과 아름다움과 절망에 몰입했거나 당당히 그 시점을 추구했고, 그 것은 그 개인만이 가진 삶의 운명이었고 독특한 개성이었습니다.
그 점에선 애초부터, 시대의 유행에 눈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시대와 화해하는 인연을 대부분 거부해왔습니다.
또 하나 분명한 것은, 그 갈등 속에서 그는 늘 사랑을 꿈꾸었고, 그의 기질은 이 상식적인(?) 사회와 늘 정신적 육체적 마찰 속에 있어왔다는 것입니다. 그의 삶 앞에 어정쩡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의 삶이 세상과 그다지 화해하지 못하였으나, 그는 분명 자신의 삶과 그림에 엄정하고 치열했으며 자기 스스로에 대해 냉엄했습니다.
이상이 제가 십년이 지난 후 개인적 감정을 자제하고 지독하게 냉정히 내린 결론입니다.
그 전의 그의 행동은 기질과 감정이 앞선 면이 있으나... 나중 정작 교사의 길을 그만 두고 강릉으로 춘천으로 떠돌며 그림그릴 때의 그의 심장은 근본적인 그 무엇이었습니다. 그는 분명 그림을 그려볼 자신은 있었으나, 미술교사를 할 자신은 없었습니다. 선택의 여지 따로 없는 운명적인 그의 팔자소관이었습니다.
예술이 무엇이고 문화가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화가 주재현이 무명화가이고 비 제도권 화가이고 지방화가인.. 여러 가지 여건 속에서 그의 그림이 정당하게 평가받을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고 이후로도 누군가 애써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면 쓸쓸히 잊혀질 수 있다는 생각에 때로 공포감을 느낍니다. 알뜰살뜰 누군가의 그림을 챙겨 보아줄 만큼 이 시대가 여유 있지 않기 때문이지요. 더구나 잊혀질 만한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옛 작가를 주목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정당하게 평가받을 기회, 혹은 그러한 여건은 있어야 이 나라 문화가 정상적이란 판단합니다.
물리적인 그림 숫자로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백 번을 생각해 보아도, 정당한 평가의 장이 마련되어야한다는 판단입니다.
3월 28일 <주재현을 기리는 모임>십주기 행사를 갖고자합니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십년만의 소회와 만남의 정과 주재현을 생각하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길 소망합니다.
십주년행사에 참가하는 것과는 별개로, <주재현을 기리는 모임>의 발족이야말로 그의 유고전을 마련하기위한 작지만 큰 출발입니다.
관심과 애정으로 지켜보아 주시길 호소 드립니다.
이 모임에 흔쾌히 동참을 약속해주신 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건강과 평화를 기원 드립니다.
▣3월 13일(토요일)에 몇몇 분이 춘천에서 만나 궁리를 하였습니다.
그 때 궁리한 결과는 이러합니다.
<주재현을 기리는 모임>이라는 명칭은 <주재현 유작전을 준비하는 모임>과 같은 딱딱한 명칭보다 부드럽게 하자는 의미로 그리하였습니다.
대표나 총무같은 자리를 만들지 말고 모두가 함께 주재현을 기리는 친구로 하자는 것이지요..
이 모임의 발족을 위해 동문제위 분들께는 제 능력상 일일이 연락을 취해 부탁을 드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저 눈에 띄는 데로(표현의 무례함을 용서하세요. 달리 표현할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죈 종일 전화통을 잡고 모임에 동참하는 이름 석자 올려 주십사 부탁드렸습니다. 전화통화가 가능했던 동문들과 동문이 아닌 분들의 동의를 얻어 <주재현을 기리는 모임의 친구들> 명단을 올립니다.
“당장 무슨 도움이 필요한가?” 물으신 분들이 많으셨는데... 당장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심정의 동감만으로도 황송할 뿐입니다. 연락을 드리지 못한 분들께는 적당한 기회에 설명 드리고 고견과 도움을 요청 드리겠습니다.
<<주재현을 기리는 모임의 친구들>>... 가나다와 같은 순서 없이 수첩에 적힌 대로 올리겠습니다.
동문 선배님들과 동료 후배님들께 연락드려야 마땅하나, 열 분 정도에게는 전화연락이 되질 않았습니다. 화가 주재현을 아시는 동문들께서는 이 모임의 발족이 다만 모임을 알리는 상징적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여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화가 주재현 십주기 추모행사에 관해 드리는 말씀>
이 번 십주기 추모 행사는 <화가 주재현을 기리는 모임>에 선뜻 동참해 주시는 분들 중 참석이 가능한 분들이 일차로 함께 모여 그를 추모함과 동시에, 이제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 볼 것인가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유작전에 대해 미리 나누어본 의견은 이렇습니다.
화가 주재현의 그림들을 제대로 세상에 드러내고 우리 모두가 함께 공유할 비전과 틀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의 그림을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형식과 내용 공간을 함께 연구해 보는 것이 그 것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시작과 준비와 결과에 이르는 기간은 어떤 형식이 될 런지, 몇 년이 걸릴 런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런 글을 띄우는 주체는 누구인가?
진척된 어떤 결과물이 있는가? 없습니다..
역부족이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역부족이었음으로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무슨 도움을 청하겠는가...그 역시 또한 말씀드릴 것이 없습니다.
동참하시는 분들의 고견을 듣고 싶고, 향후 도움을 받을 일이 있으면 도움을 청하겠습니다.
진지한 이야기들이 오가고, 여러 가지 궁리들이 있으면, 그 중 바람직하고 예쁜 것들을 모아 추진하게 될 것입니다.
추진하는 사람들은 입장이 서고 전망이 서면, 행동할 것입니다.
행동하는 과정의 결과 또한 소상하게 밝혀드릴 것입니다.
유작전을 추진함에 있어 열 가지 스무가지의 가능성, 아이디어 모든 것을 의론해보고 핵심적으로 가능하다 여기는 몇 가지를 중점적으로 실행에 옮기게 될 것입니다.
여러 가지 고언과 질책과 격려와 사랑을 주시길 바랍니다.
▣화가 주재현 십주기 행사<주재현을 기리는 모임>의 내용을 알립니다.
●. 십주기추모식 장소와 시간/ 3월28일 오후2시/강원도 영월군 남면 연당리 강변
● 연락처/ 033- 372- 4398 핸드폰/ 011- 9793- 4398
(오시는 분은 미리 연락주시면 고맙겠고요, 길이 헷갈릴 땐, 전화 로 연락주고 받음이 젤로 확실하고 편하더라고요)
● 행사내용/ 연당강가에서 화가 주재현의 친구들이 풍물 비나리로 시작합니다. 세부적 일정은 여기에서 마련하겠습니다. 노래를 부르실 분이나 나름대로 가진 노하우가 있으시면 그 날 펼쳐주시면 되겠습니다.
● 행사 끝난 후에 화실로 이동하여 <주재현을 기리는 모임>에 대한 여러 의견을 나누게 됩니다. 그의 그림 일부를 감상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 시간을 2시로 정한 것은 당일 오셨다 가실 분들을 고려하여 정하였습니다.
잠자리 편히 모시겠습니다. 먹거리도 푸짐하게 준비하겠습니다.
기타 궁금한 점은 조☝ 위에 전화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메일주소/dongsane@dongsane.com)
▣주재현 프로필
1961 강원도 홍천 生
1980 춘천고등학교 졸업
1988 강원대학교 미술교육과 졸업
1990 춘천 강원 도청앞 거리전
1990 인사동 거리전
1990 강릉 경포대 그림소풍전
1991 그림일기 초대전(강릉. 갤러리 자화상)
1991 그림일기 초대전(대구. 대백갤러리)
1991 개인전(서울. 청남미술관)
1992 강원도 영월에서 그림에만 열중하다
1994년 3월 29일 세상 떠남
따로 주재현 프로필에 대해선, 어설픈 홈페이지에 선명하지 못한 그림 수십 점과, 그에 대한 단상이 소설식으로 소개되어있습니다.
http://dongsane.com/주재현/재현프로필.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