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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 세력에게 가려 잊혀진 역사, 600만의 보천교
일제와 친일언론, 보천교와 민족종교를 사이비종교로 매도
일제는 1915년 8월에 조선총독부령으로 포교규칙을 선포하여 독립활동에 적극적인 민족종교를 유사종교단체로 분류하여 건전하지 못한 반사회적집단, 미신집단, 사이비종교단체로 규정했다. 언론도 일본 총독부의 선전도구로 전락해 보천교와 민족종교를 유사종교 및 사교와 같은 사회악의 존재로 취급하였다. 친일 언론들은 보천교를 비윤리적 반사회적 사상과 가르침을 펴는 미신, 사교집단으로 매도했다.
일제는 민족종교를 독립운동이나 민족운동과 같은 정치적 변혁을 꾀한다고 판단해 민중과 격리시키고 통제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이비종교단체라는 올가미를 씌워 종교가 아닌 일반결사단체로 취급하여 '보안법', '집회취체에 관한 건'을 적용시켰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후 일제는 '정치에 관한 범죄처벌의 건'을 만들어 보천교를 비롯한 민족종교를 탄압하고 파괴시켜 나갔다. 1920년 청송군 일본경찰서는 안동을 비롯한 경상북도 북부지역의 보천교 신도 3천여 명을 체포하여 감금하였고, 그 중 수십 명이 고문치사, 700여 명을 기소하였고,
고등법원에서 징역을 받은 사람이 129명이나 되었다. 당시 전국에서 검거된 보천교 신도가 3만여 명에 이르렀다." (출처:강영한 상생문화연구소 연구원, 일제의 보천교 탄압과 해체)
일제, 유사종교해산령 만들어 보천교와 민족종교 강제 해산시켰다.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계기로 민족말살정책을 펼쳤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 일제는 한국의 민족성, 독립 등을 풍기는 모든 단체는 철저하게 해체시켰다. 그 정점은 1936년에 내린 '유사종교 해산령'이다. 두 사람 이상의 집회가 금지되고, 1원 이상의 금전수합 역시 금지되었다. 유사종교 해산령에 따라 각도 경찰국은 종교 시설물을 폐쇄시키고, 종교지도자들을 검거하는 등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하였다.
1936년 6월 6일, 일경이 보천교 간부 24명을 연행하였고, 6월 15일에는 보천교 건축물을 강제로 경매에 부쳐졌다."
민족종교는 사이비, 외래종교는 진짜
1924년에 최남선이 창간한 시대일보時代日報 사건이 있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더불어 그 당시 민간 3대 신문 중 하나가 시대일보다. 경영난에 처한 시대일보를 보천교에서 인수하자, 보천교의 교주가 천자로 등극할 것이다라는 천자등극설을 유포하게 된다.
천자 등극설은 당시 보천교를 탄압하기 위한 일제와 친일언론이 만들어낸 자작극이었다. 이를 빌미로 이 해 9월 일제와 친일언론들에 의해 보천교 박멸운동이 전개 된다.
이러한 난국을 극복할 방법으로 보천교 주요간부들을 일본 동경으로 보내 보천교의 취지를 한번 설명하기로 한다. 그래서 동경을 방문해 조선총독으로 오게 될 사람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일제가 제시한 것이 '시국광구단'을 만들어 총독정치를 홍보하는 연설회를 만들어 전국을 순회하면 우리도 보천교를 적극 지원해주겠다는 취지였다. 그렇게 해서 "시국대동단"을 만들게 되는데
결과적으로는 1925년 1월부터 6개월정도 운영하다가 지지부진하게 되는데, 여기에 당시 11개 친일단체가 결성된 '11연맹'이라는 단체가 보천교라는 명칭을 빌려 "시국대동단"이란 이름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일제의 정책들을 지지하게 되는데,
그래서 당시 조선민중들은 보천교 박멸운동에 가담을 하며, 보천교 성토대회가 여러 곳에서 열린다. 이것은 보천교 입장에서는 친일이라는 오명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것은 철저하게 일제의 간계에 속아 넘어간 것이다.
이 때문에 민족의식 선양과 대한독립의 큰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이 위대한 업적은 역사속으로 묻히고 친일파라는 꼬리표가 붙게 되었다. 보천교는 일제와 친일세력이 의도한대로 1925년을 지나면서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걸었다.
1929년 십일전이 완공되자, 다시 일제와 친일언론은 보천교 교주 차월곡이 천자에 오를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리고, 이를 빌미로 보천교 간부들을 체포하고, 1936년 일제는 보천교를 해산시키고, 흔적을 제거하기 위해 보천교 본소 건물들을 해체하기 시작한다.
해체한 보천교 본소 십일전의 자재들은 서울 조계사에 보내고, 보천교 청기와는 청와대의 전신, 경무대에로 보낸다. 완전히 보천교 흔적을 지워버린 것이다.1936년 보천교 해체와 더불어 조선인을 일제 황국신민으로 만들자는 심전개발운동(心田開發運動)이 이때부터 본격화되었다. 조선민중을 일제와 친일세력들의 노리개로 만들겠다는 정책이었다.
보천교 십일전 청기와(靑蓋瓦)가 청와대(靑瓦臺)로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성계리에서 태어난 차일혁은 1936년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난 해이다. 바로 독립운동가 김성수를 만난 것이다. 김성수는 밀양에서 3.1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의열단, 남화한인청년연맹에 가입해 무장투쟁을 벌였던 인물이다.
김성수의 권유로 중국 중앙군관학교에 들어간 차일혁은 졸업 후 중국군 중앙군 제1전구 32사단 포병중대장으로 일본군과 맞섰다. 이어 그는 조선의용대에 가입해 화북 태항산 일대에서 무장투쟁에 전념했다.
일본이 패망하자 다시 고향으로 내려온 차일혁은 향토방위를 담당하는 청년방위대에서 일하던 중, 6.25 전쟁이 발발한다. 1950년 12월 차일혁은 중국에서 같이 항일투쟁을 했던 동료 전북지구 전투사령관 최석용의 권유로 제18전투경찰 대대장으로 취임한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지리산 빨치산들을 토벌하는 것이었다. 1953년 9월 ‘빨치산 총수’라 불리는 남부군총사령관 이현상을 사살하면서 빨치산 토벌을 사실상 마무리 지었다.
1991년 방송된 MBC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속 주인공(장하림)은 경찰 차일혁을 모티브로한 것이다. 이 드라마 뿐 아니라 오페라 '카르마' 역시 그의 삶의 그린 오페라라고 한다. MBC ‘서프라이즈’에도 소개 된 바 있다.
차일혁 총경의 할아버지는 동학군의 수장 차치구(車致九, 1851-1894)
차일혁 경무관의 할아버지 차치구(車致九, 1851-1894)는 농민군 5,000여 명을 이끌고 동학군의 맨 앞에 섰던 인물이다.
2차 봉기 때 차치구의 휘하에 농민군 5,000명이 있었다. 차일혁선생의 할아버지 차치구는 후일 일본군에게 잡혀 분살형(焚殺刑)이라는 참혹한 형벌을 당한다.
차일혁 총경의 아버지 차경석(車京石, 1880~1936) 일제시대 보천교 600만명을 이끌었던 창시자
1894년 정읍 고부에서 전봉준장군이 동학혁명을 일으켰을 때, 차일혁의 아버지 차경석(車京石, 1880~1936)은 할아버지 차치구(車致九, 1851-1894)를 따라 전쟁터를 누볐다. 할아버지 차치구는 농민군 5,000여 명을 이끌고 동학군의 맨 앞에 섰던 인물이다.
차일혁 경무관 아들 차길진 선생의 증언
“차일혁의 아버지는 차경석이란 인물로, 증산도의 맥을 이은 보천교의 창시자이다. 일찍부터 항일정신을 배운 차일혁은 중국으로 건너가 중앙군관학교 황포분교 정치과를 졸업한 뒤 조선의용대에 들어가 김학철 등과 함께 항일유격전에 참가한다.
민족주의자인 차일혁이 좌익계열인 조선의용대에 들어간 것은 당시 중국의 조선인 민족주의 세력들이 일본과의 무력투쟁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해방 후 귀국한 차일혁은 미군정의 보호를 받고 있던 악랄한 일본인 경찰 ‘삼륜’을 저격하고 수배되어 공장의 경비대장을 하던 중 조선노동조합 전국 평의회의 총파업을 맞아 좌익노동자들의 공격을 받으면서 생명의 위협을 느낀 그는 우익의 선봉으로 나선다.
한국전쟁이 발발해 남한이 3개월 간 인공 치하가 되자 유격대를 결성해 인민군과 싸우던 그는 경찰에 특채되어 이현상의 남부군과 맞서게 된다.
이념이라는 집단적 광기에 빠져 있던 시절이었다. 좌우익 할 것 없이 반대편에 선 사람이라면 심지어 그 가족들까지 몰살시키던 시절이었다. 특히 친일파 출신 남한 군경의 잔혹함은 악명 높았다.
그러나 일제하 사회주의자들의 헌신적인 투쟁을 잘 알고 있던 차일혁은 경찰연대장으로써 빨치산 토벌에 큰 공을 세우면서도 가능한 한 한 명이라도 살리려 애쓴다. 생포된 빨치산 중에는 그와 함께 만주에서 항일투쟁을 했던 동지들도 있었다. 그는 어떻게든 이들을 전향시켜 경찰에 편입시켰고, 심지어 부상한 빨치산 간부에게 자신의 피까지 수혈해 준다.
적장 이현상의 장례를 치러준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차일혁의 남다른 인명존중의 정신은 극단적 반공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남한 사회에서는 용납되기 어려웠다. 전쟁이 끝난 후, 차일혁은 이현상의 장례를 치러주었다는 점, 생포한 빨치산들에게 남다른 관용을 베풀었다는 점, 무엇보다도 과거 팔로군 산하 조선의용대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사상적인 의심을 받게 된다.
진해경찰서장으로 근무하던 중 좌익 혐의로 이틀간 조사를 받고 나온 그는 공주경찰서장으로 좌천된 후에도 수사 대상이 되어 심리적으로 큰 타격을 받는다. 죽기 2주전, 그는 11살짜리 아들 차길진에게 이현상의 시신에서 찾아낸 가래(호두처럼 생김) 두 알을 자신의 유품이라며 건네주고, 1주일 전에는 ‘죽음도 삶의 연속이다’ ‘절대 벼슬을 하지 말라’는 등 유언 같은 말들을 남긴다.
사망 당일, 가족과 함께 금강으로 물놀이를 간 그는 어린 아들을 강 가운데 바위에 앉혀놓은 채 조선의용대 팔로군의 노래인 <볼가강의 노래>를 부르며 홀로 천천히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아들은 엉엉 울며 아버지를 외쳐 불렀으나 그는 다시는 떠오르지 않았다. 시신은 19시간 뒤, 곰나루 근처를 도강하다 가라앉은 인민군 탱크를 끌어안은 자세로 발견되었다.” -차길진과 ‘이현상 평전’ 저자 안재상의 대화에서 일부인용-
일제시대 보천교 600만명의 경전, 약 150년 전, 말씀인 도道의 원전原典, 도전(道典) 책에서 간추린 내용
道典 4:7) 모든 법을 합하여 쓰심
지난 임진왜란에 정란(靖亂)의 책임을 ‘최 풍헌(崔風憲)이 맡았으면 사흘 일에 지나지 못하고, 진묵(震黙)이 맡았으면 석 달을 넘기지 않고, 송구봉(宋龜峯)이 맡았으면 여덟 달 만에 끌렀으리라.’ 하니, 이는 선도와 불도와 유도의 법술(法術)이 서로 다름을 이름이라. 옛적에는 판이 작고 일이 간단하여 한 가지만 따로 쓸지라도 능히 난국을 바로잡을 수 있었으나 이제는 판이 넓고 일이 복잡하므로 모든 법을 합하여 쓰지 않고는 능히 혼란을 바로잡지 못하느니라.
송구봉(宋龜峯, 1534~1599): 본관은 여산(礪山). 본명은 익필(翼弼), 호는 구봉, 현승(玄繩). 자는 운장(雲長). 학식이 뛰어나 율곡(栗谷), 우계(牛溪) 등과 교유하였고 사계(沙溪), 신독재(愼獨齋) 등의 걸출한 학자들을 길러냈으며 당대 8문장가의 하나로 꼽혔다. 그러나 서얼 출신이었으므로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버렸다.
道典 4:138) 진묵대사의 참혹한 죽음과 서양문명 개척
전주 서방산(西方山) 봉서사(鳳棲寺) 아래에 계실 때 하루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김봉곡(金鳳谷)이 시기심이 많더니 하루는 진묵(震黙)이 봉곡에게서 성리대전(性理大全)을 빌려 가면서
봉곡이 곧 후회하여 찾아올 줄 알고 걸어가면서 한 권씩 보고는 길가에 버려 봉서사 산문(山門) 어귀에 이르기까지 다 보고 버렸느니라.
봉곡이 책을 빌려 준 뒤에 곧 뉘우쳐 생각하기를 ‘진묵은 불법을 통한 자인데 만일 유도(儒道)까지 정통하면 대적하지 못하게 될 것이요, 또 불법이 크게 흥왕하여지고 유교는 쇠퇴하여지리라.’ 하고, 급히 사람을 보내어 그 책을 도로 찾아오게 하니, 그 사람이 뒤쫓아가면서 길가에 이따금 한 권씩 버려진 책을 거두어 왔느니라. 그 뒤에 진묵이 봉곡에게 가니 봉곡이 빌려 간 책을 돌려달라고 하거늘
진묵이 ‘그 책은 쓸데없는 것이므로 다 버렸노라.’ 하니 봉곡이 크게 노하는지라. 진묵이 말하기를 ‘내가 외우리니 기록하라.’ 하고 외우는데 한 글자도 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천하를 크게 문명케 하고자 하였더니
봉곡이 이로부터 더욱 시기하더니, 그 뒤에 진묵이 상좌(上佐)에게 단단히 이르기를 ‘내가 8일을 기한으로 하여 시해(尸解)로 천상에 다녀올 것이니 절대로 방문을 열지 말라.’ 하고 떠나거늘, 하루는 봉곡이 봉서사로부터 서기가 하늘로 뻗친 것을 보고 ‘내가 저 기운을 받으면 진묵을 능가할 수 있으리라.’ 하며 즉시 봉서사로 올라갔느니라. 봉곡이 서기가 뻗치는 법당 앞에 당도하여 진묵을 찾으매 상좌가 나와서 ‘대사님이 출타하신 지 얼마 안 됩니다.’ 하니
봉곡이 ‘옳거니, 법당의 서기를 이 참에 받아야겠다.’ 하고 ‘법당 문을 열라.’ 하매 상좌가 ‘대사님께서 자물쇠를 가지고 가셨습니다.’ 하거늘, 봉곡이 큰 소리로 호령하며 기어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니 뜻밖에 진묵이 앉아 있고 그의 몸에서 서기가 뻗치더라.
봉곡이 잠시 당황하다가 문득 진묵이 시해로 어디론가 갔음을 알아차리고 ‘서기를 못 받을 바에는 차라리 돌아오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상좌에게 ‘어찌 시체를 방에 숨겨 두고 혹세무민하느냐! 중은 죽으면 화장을 해야 하느니라.’ 하며, 마침내 마당에 나무를 쌓고 진묵의 시신을 화장하니 어린 상좌가 울면서 말리거늘 봉곡은 도리어 화를 내며 상좌를 내쳤느니라.
이 때 마침 진묵이 돌아와 공중에서 외쳐 말하기를 ‘너와 내가 아무 원수진 일이 없는데 어찌 이러느냐!’ 하니 상좌가
진묵의 소리를 듣고 통곡하거늘
봉곡이 ‘저것은 요귀(妖鬼)의 소리니라. 듣지 말고 손가락뼈 한 마디, 수염 한 올도 남김없이 잘 태워야 하느니라.’ 하며 일일이 다 태워 버리니, 진묵이 다급한 음성으로 상좌에게 ‘손톱이라도 찾아 보라.’ 하는데 봉곡이 상좌를 꼼짝도 못하게 하며 ‘손톱도 까마귀가 물고 날아갔다.’ 하는지라
진묵이 소리쳐 말하기를 ‘내가 각 지방 문화의 정수를 거두어 모아 천하를 크게 문명케 하고자 하였으나 이제 봉곡의 질투로 인하여 대사(大事)를 그르치게 되었으니 어찌 한스럽지 않으리오. 나는 이제 이 땅을 떠나려니와 봉곡의 자손은 대대로 호미질을 면치 못하리라.’ 하고, 동양의 도통신(道通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갔느니라.” 하시니라.
전주 서방산(西方山) 봉서사(鳳棲寺): 봉서사. 전북 완주군 용진면 간중리 종남산(終南山)과 서방산(西方山)의 계곡에 위치한 절. 서방산이 봉(鳳)의 형상을 하고 깃을 드린다 하여 봉서사라 하였다. 진묵대사가 출가한 곳으로 유명하다.
김봉곡(金鳳谷, 1575~1661): 이름은 동준(東準). 자는 이식(而式), 봉곡은 호. 조선 선조 때의 유학자.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에게 수학하였고, 병자호란 때 화의(和議)가 이루어지자 비분강개하여 숨어 살면서 『계몽도설(啓蒙圖說)』, 『심성서언(心性緖言)』 등을 저술했다.
진묵(震黙)이 봉곡에게서 성리대전(性理大全)을 빌려 가면서: 성리대전. 명나라 영락제(永樂帝)의 명을 받아 호광(胡廣) 등 42명의 학자가 사상적 통일을 도모하기 위해 성리설에 관한 이론을 집대성한 책.
봉곡이 상좌를 꼼짝도 못하게 하며: 상좌. 사승(師僧)의 대를 이을 여러 제자 가운데 높은 사람을 뜻하나 여기서는 행자(行者)를 말한다.
진묵에 관한 기록은 조선 후기에 초의(草衣) 스님이 지은 『진묵대사유적고』와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79~1987)가 대표적인데, 진묵대사의 죽음에 대한 기록이 판이하게 다르다. 본문 내용은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실린 것과 같다. 상제님께서 구전되어 오는 내용을 사실로 인정해 주신 것이다.
봉곡의 자손은 대대로 호미질을 면치 못하리라: 이 구절은 진묵대사의 천하를 크게 문명코자 한 대의를 꺾어 버린 봉곡에 대한 천지신명의응징이다. 봉곡이 살던 완주군 용진면 간중리 봉서골은 1924년에 저수지가 되었는데, 이는 상제님께서 진묵을 해원시키기 위해 봉곡이 살던 마을을 물에 잠기게 하신 것이다.
道典 4:5) 모든 일을 신도神道로 다스리심
크고 작은 일을 물론하고 신도(神道)로써 다스리면 현묘불측(玄妙不測)한 공을 거두나니 이것이 무위이화(無爲以化)니라.
내가 이제 신도를 조화(調和)하여 조화정부(造化政府)를 열고 모든 일을 도의(道義)에 맞추어 무궁한 선경의 운수를 정하리니 제 도수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무위이화(無爲以化): 애써 힘들이지 않은 듯하여도 조화가 작용하여 꼭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다. 상제님께서는 신神도의 조화로 천지와 인간세계를 다스리시므로 인간의 이성과 세속적 지혜로는 그 변화세계의 실상을 도저히 헤아리기 어렵다.
조화정부(造化政府)를 열고: 무궁한 신神도의 조화로 역사의 변화 질서를 바로잡아 다스리는 천상 신명세계의 통일정부. 하늘과 땅과 사람을 통치하는 우주 문명개벽의 사령탑이다.
이제는 성사재인(成事在人)의 시대
선천에는 모사(謀事)는 재인(在人)이요 성사(成事)는 재천(在天)이라 하였으나 이제는 모사謀事는 재천在天이요, 성사成事는 재인在人이니라.
성聖과 웅雄을 합해 천하를 다스리는 때
이전에는 판이 좁아서 성(聖)으로만 천하를 다스리기도 하고 웅(雄)으로만 다스리기도 하였으나 이제는 판이 넓어서 성聖과 웅雄을 합하여 쓰지 않으면 능히 천하를 다스리지 못하느니라.
道典 4:4) 명부의 정리 공사장을 임명하심
이 달에 형렬의 집에서 여러 날 동안 명부 공사(冥府公事)를 행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명부 공사의 심리(審理)를 따라서 세상의 모든 일이 결정되나니, 명부의 혼란으로 말미암아 세계도 또한 혼란하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명부를 정리(整理)하여 세상을 바로잡느니라.” 하시고, “전명숙은 조선 명부, 김일부는 청국 명부, 최수운은 일본 명부, 이마두는 서양 명부를 각기 주장케 하여 명부의 정리 공사장(整理公事長)으로 내리라.” 하시며 날마다 밤낮을 쉬지 않고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라.
명부의 혼란으로 말미암아 세계도 또한 혼란하게 되느니라. 명부(冥府): 죽음의 질서를 다스리는 천상의 부서. 인간과 신명의 생사를 다스리는 곳으로 공덕과 죄업을 따져 심판한다. 명부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 천지 생명계의 생사 질서를 바로잡는 근본 동력이다.
道典 4:3) 개벽장 하느님으로 오심
임인(壬寅 : 道紀 32, 1902)년 4월에 상제님께서 김형렬의 집에 머무르실 때 형렬에게 이르시기를 “시속에 어린아이에게 ‘깨복쟁이’라고 희롱하나니 이는 개벽장(開闢長)이 날 것을 이름이라. 내가 삼계대권(三界大權)을 주재(主宰)하여 천지를 개벽하여 무궁한 선경의 운수를 정하고, 조화정부(造化政府)를 열어 재겁(災劫)에 싸인 신명과 민중을 건지려 하나니,
너는 마음을 순결히 하여 천지공정(天地公庭)에 수종하라. 내가 세상에 내려오면서 하늘과 땅의 정사(政事)를 천상의 조정(天朝)에 명하여 다스리도록 하였으나 신축년 이후로는 내가 친히 다스리느니라.”
삼계대권(三界大權)을 주재(主宰)하여: 천도(天道)와 지리(地理)와 인사(人事)를 뜻대로 집행할 수 있는 우주 주재자의 대권능. 삼계란 하늘(天), 땅(地), 인간(人) 세계로서 삼재(三才)라고도 하며 하늘은 천지조화의 주재위격인 신명세계를 포함한다.
조화정부(造化政府)를 열어: 신神의 조화로 역사의 변화 질서를 바로잡아 다스리는 천지신명세계의 통일정부. 하늘과 땅과 사람을 통치하는 우주 문명개벽의 사령탑이다.
너는 마음을 순결히 하여 천지공정(天地公庭)에 수종하라. 천지공정: 천지신명과 인간이 함께 참여하여 개벽세계를 여는 새 역사 창조의 공판(公判) 무대, 곧 천지공사장을 말한다. 천지신문(天地神門), 대신문(大神門), 천지대신문이라고도 하셨다.
道典 4:6) 신神도 개방과 각 민족신인 지방신(地方神)을 통일하심
선천은 삼계(三界)가 닫혀 있는 시대니라. 그러므로 각국 지방신地方神들이 서로 교류와 출입이 없고 다만 제 지역만 수호하여 그 판국이 작았으나 이제는 세계 통일 시대를 맞아 신도神道를 개방하여 각국 신명들을 서로 넘나들게 하여 각기 문화를 교류케 하노라.
道典 4:8) 선천 종교의 종장을 교체하시고 종교문화를 통일하심
선도와 불도와 유도와 서도는 세계 각 족속의 문화의 근원이 되었나니 이제 최수운은 선도의 종장(宗長)이 되고, 진묵은 불도의 종장이 되고, 주회암은 유도의 종장이 되고, 이마두는 서도의 종장이 되어 각기 그 진액을 거두고 모든 도통신(道統神)과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려 각 족속들 사이에 나타난 여러 갈래 문화의 정수(精髓)를 뽑아 모아 통일케 하느니라.
이제 불지형체(佛之形體) 선지조화(仙之造化) 유지범절(儒之凡節)의 삼도(三道)를 통일하느니라. 나의 도(道)는 사불비불(似佛非佛)이요, 사선비선(似仙非仙)이요, 사유비유(似儒非儒)니라. 내가 유불선 기운을 쏙 뽑아서 선(仙)에 붙여 놓았느니라.
주회암(朱晦庵, 1130~1200): 주자(朱子). 남송 시대 대유학자로서 북송 오현(五賢)의 학설을 계승, 종합하고 동시대의 불교, 도교 이론까지 섭렵하여 방대한 사상 체계를 정립하였다.
도통신(道統神)과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려: 각 종교를 창도한 교조 신명과 후대에 중흥을 일으켜 교맥(敎脈)을 이은 중시조 신명.
내가 유불선 기운을 쏙 뽑아서 선(仙)에 붙여 놓았느니라. 선(仙): 선천의 선(仙)을 넘어, 가을 천지의 관왕 도수를 맞이하여 상제님의 조화권으로 선천의 유불선과 생명과학 등이 합덕되어 열리는 후천의 선이다.
道典 4:9) 하루는 여러 성도들을 앉혀 놓고 말씀하시기를 “최수운이 성경신이 지극하기에 내가 천강서(天降書)를 내려 대도를 열게 하였더니 수운이 능히 대도의 참빛을 열지 못하므로 그 기운을 거두고 신미(辛未,1871)년에 직접 강세하였노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천지도수(天地度數)가 정리되어 각 신명(神明)의 자리가 잡히는 때라.” 하시며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하시니라.
천지도수(天地度數): 상수(象數) 원리에 근거하여 일정한 시간의 마디를 가지면서 전개되는 천리天理와 인사人事의 변화 질서를 뜻한다. 또한 상제님께서 쓰시는 ‘도수度數’, ‘천지도수天地度數’를 뜯어고친다.’는 말씀은 그 변화 질서의 정신까지를 내포한다.
道典 3:58) 신축(辛丑)년 이후 연사는 내가 맡았다
7월에 쌀값이 오를 뿐더러 농작물에 충재(蟲災)가 심하여 벼가 썩어 문드러져서 인심이 불안하거늘, 상제님께서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신축년 이후로는 연사(年事)를 내가 맡았으니 금년 농사를 잘되게 하여 백성의 생활을 넉넉하게 하리라.” 하시고 우레와 번개를 크게 일으키시니, 수일이 지나지 않아 충재가 그치고 이 해에 농사가 크게 풍등(豊登)하여 온 들에서 풍년을 노래하더라.
신축辛丑년 이후로는 연사를 내가 맡았으니: 상제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지상에 강세하시면서 하늘과 땅의 정사(政事)를 천상의 조정에서 맡아 다스리도록 하셨으나, 신축(道紀 31, 1901)년부터는 상제님께서 직접 삼계대권을 주재하심으로써 우주 친정 시대를 여셨다는 말씀이다. 그 이전에는 4대 성자를 내려보내시어 그들이 개창한 유·불·선·기독교 등의 지역 문화가 발전하며 서로 융섭하였으나 이제는 상제님의 추수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道典 3:118) 원일의 소원을 들어주심
하루는 원일이 상제님께 청하기를 “가친이 본래 어업을 경영해 왔는데, 지난해에는 폭풍으로 인하여 큰 손해를 보았으니 금년에는 풍재(風災)를 없게 하시어 고기잡이가 잘되게 해 주시면 가친을 위하여 다행한 일이겠습니다.” 하고 여러 날을 지성으로 발원하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의 아비를 위한 정을 물리치지 못하겠도다.
그 일은 어렵지 않으니 많은 이익을 얻은 뒤에 천 냥을 바칠 것을 천지신명들과 약속하면 이를 허락하리라. 장차 쓸데가 있노라.” 하시거늘, 원일 부자가 기뻐하며 굳게 다짐하매 이 해에 과연 풍재가 없어지고 칠산바다에서 원일 부친의 고기잡이가 가장 잘되어 큰돈을 버니라.
신원일(辛元一, 1867∼1916): 본관 영월(寧越). 족보명 정석(丁錫), 원일(元一)은 자(字). 이름이 후천 가을(辛)개벽에 하나로 통일(元一)된다는 뜻을 담고 있어, 상제님께서 그 기운을 취해 주요 공사에 많이 참여시키셨다.
원일 부친의 불의를 응징하심
이에 상제님께서 원일의 부친에게 사람을 보내어 “약속한 돈 천 냥을 보내라.” 하시거늘 원일 부친이 전일의 언약을 어기고 보내오지 않는지라 상제님께서 원일에게 이르시기를 “이는 대인(大人)을 속임이라. 내 일은 모든 것을 신명과 더불어 작정하는 것이므로 한 가지도 사사로이 못하나니 신명의 노여움을 사고서 무슨 일을 계속할 수 있겠느냐. 이 뒤로는 네 아비의 고기잡이가 철폐되리라.” 하시더니 과연 그 뒤로는 고기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아니하매 마침내 고기잡이를 폐지하니라.
道典 4:94) 천지신명과 함께하시는 상제님
공우가 도문에 들어온 직후부터 자주 상제님을 모시고 다니거늘, 상제님께서 머무시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떠나려 하실 때는, 밤이면 달무리가 나타나고 낮이면 햇무리가 나타나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하니라. 이에 언제든지 달무리(月暈)나 햇무리(日暈)가 나타나면 출행하실 줄을 알고 미리 신발과 행장을 준비하여 명(命)을 기다리는데, 그 때마다 어김없이 공우를 부르시어 “어디로 가자.” 하시며 출발하시니, 대저 상제님께서는 어디를 가시든지 미리 말씀하지 않으시니라.
천지신명이 옹위하는 모습
출행하실 때는 어느 때를 막론하고 낮에는 햇무리가 지고 밤에는 달무리가 지며 또 동구 양편에 구름기둥이 깃대와 같이 높이 솟아 팔자형을 이루므로 성도들이 그 이유를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햇무리와 달무리는 신명이 나에게 준비가 되었음을 알리는 것이요, 팔자 모양의 기운은 장문(將門)이니라. 언제 어디서나 내 몸에는 항상 신장(神將)들이 따르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4:100) 도통문을 여는 심법 닦는 대도를 내려 주심
무신년 6월 어느 날, 태인에 사는 신경원(辛京元)이 급히 사람을 보내어 상제님께 아뢰기를 “경관의 조사가 심하여 날마다 제 집에 와서 선생님의 주소를 묻습니다.” 하니, 상제님께서 심부름 온 사람에게 물어 말씀하시기를 “급한 일로 오면서 도중에 지체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냐?” 하시거늘, 그 사람이 대답하여 아뢰기를 “길에서 주역(周易)으로 운명을 보는 자가 있어 구경하다 늦었사오니 용서하옵소서!” 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글을 써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글을 경원에게 전하여 한 번 읽고 곧 불사르게 하라.” 하시니 그 글은 이러하니라.
天用雨露之薄則 必有萬方之怨하고, 地用水土之薄則 必有萬物之怨하고, 人用德化之薄則 必有萬事之怨하니라
하늘이 비와 이슬을 적게 내리면 반드시 만방에서 원망이 일고, 땅이 만물을 기르는데 물과 흙을 박하게 쓰면, 반드시 만물이 원성을 발하며 사람이 덕화(德化)가 부족하면, 반드시 만사에 원망이 붙느니라.
天用地用人用이 統在於心하니, 心也者는 鬼神之樞機也요 門戶也요 道路也라
하늘이 비와 이슬을 내리고, 땅이 물과 흙을 쓰고, 사람이 덕화에 힘씀은 모두 마음자리에 달려 있으니, 마음이란 귀신(鬼神)의 문지도리요, 드나드는 문호요 오고가는 도로이라.
開閉樞機하고 出入門戶하고 往來道路에 神이 或有善하고 或有惡하니, 善者師之하고 惡者改之하면, 吾心之樞機門戶道路는 大於天地니라
그 문지도리를 여닫고 문호에 드나들고, 도로를 왕래하는 신이 혹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니, 선한 것을 본받고 악한 것을 잘 고치면, 내 마음의 문지도리와 문호와 도로는 천지보다 더 큰 조화의 근원이니라. 경원이 이 글을 받아 읽은 후에 곧 불사르니 그 뒤로 경관의 조사가 그치니라.
마음: 사람은 천지의 기(氣)를 얻어 몸을 삼고, 천지의 리(理)를 얻어 본성을 삼는다. 이때 ‘기氣의 정상(精爽)’으로서 본성을 갖추고 일신(一身)을 주재하는 것이 마음(心)이다. 마음은 형체는 없으나 지극히 영명하여 모든 사물을 꿰뚫어 보고 이치를 깨닫을 수 있다(虛靈知覺). 그러나 기氣가 동動함에 따라 마음도 항상 동動하므로 마음을 바루려면 의지(意志)를 성실히 하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신神이 내 마음에 감응하느냐 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의지를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달린 것이다.
道典 3:113) 어사 박제빈 면직 공사
11월에 원평에 계실 때 어사(御史) 박제빈(朴齊斌)이 정읍, 부안, 태인, 김제 등 전라북도 몇몇 고을 군수를 파면하고 장차 전주에 출두하려 하니 군수 권직상(權直相)의 지위도 위태롭게 된지라 김병욱은 전주 육군 장교로서 권직상과 친분이 있을 뿐 아니라 그가 파면되면 자기도 또한 낭패될 일이 많으므로 그 일이 걱정되어 상제님께 대책을 여쭈거늘, 말씀하시기를 “그 일은 무사하도록 끌러 주리니 근심치 말라.
조선이 오래도록 여러 악폐를 쌓았거니와 이제 운마저 다하여 망할 순간이 눈앞에 닥쳤거늘 한갓 민폐만을 더하고 있구나.” 하시고 즉시 신명에게 명을 내리시니라. 그 뒤에 박 어사가 권직상을 파면하려고 전주에 들어오자 때마침 박 어사를 소환한다는 훈령(訓令)이 전라북도 관찰사에게 이르니라. 이에 병욱이 상제님께 와서 크게 감사를 드리니 말씀하시기를 “내가 신명에게 명하는데 어느 신명이 감히 나의 명을 어기리오.” 하시니라.
박제빈(朴齊斌, 1858~1921): 조선 말기의 친일 관료. 서울 출신으로 갑진(1904)년 8월(양력) 전라북도 순찰사가 되었으나 그 해 12월 27일 어명으로 파면된다.
道典 3:80) 과부 될 여인을 구해 주심
하루는 운봉에서 지장골로 가시니 어느 집에서 여인이 머리를 빗고 있더라. 상제님께서 “물 한 그릇 가져오라.” 하시니 그 여인이 “하필 머리를 빗는데 그러십니까?” 하거늘, 상제님께서 “네가 곧 상부(喪夫)하게 생겼다.” 하시니 “멀쩡한 밥 먹고 별소리가 다 많네.” 하며 믿지 않더라. 이에 상제님께서 “얼른 마당에 가서 ‘아이고!’ 하고 큰 소리를 질러라!” 하고 재촉하시는데, 여인이 여전히 믿지 못하여 “어디서 미친놈이 들어와 날더러 상부하겠다고 ‘아이고’ 하라네.” 하며 계속 머리만 빗는지라
상제님께서 작대기를 들고 “가만있으면 쳐죽일 테니, 안 죽으려거든 얼른 마당에 가서 소리를 질러라.” 하고 호통을 치시니라.
여인이 하는 수 없이 마당으로 나가 “아이고, 아이고~!”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이랬으니 어쩔라우?” 하며 빈정대거늘, 상제님께서 개의치 않으시며 “네가 하마터면 상부할 터인데 그 소리 때문에 면했느니라.” 하고 이르시니라.
잠시 후 남편이 다급하게 집으로 뛰어들어 오며 “왜 그러오?” 하고 연유를 묻거늘 부인이 “이 양반이 곧 상부한다고 막 울라고 하기에 그랬소.” 하니 남편이 상제님께 다가와 “그리하지 않았더라면 제가 죽었을 터인데, 이렇게 살았습니다.” 하며 지성으로 절을 올리니라.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본즉, 나무를 하러 산에 간 남편이 지게를 벗고 막 나무를 하려던 차에
갑자기 “아이고, 아이고!” 하는 아내의 통곡 소리가 생생히 들리므로 ‘금방 밥을 먹고 왔는데 어찌 소리치며 우는고? 무슨 일이 생겼는가?’ 하여 집 쪽으로 몇 걸음을 떼니 갑자기 자기가 섰던 곳으로 산이 무너져 내렸다 하더라. 그 내외가 은혜에 보답하려고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자 하나 상제님께서 이를 마다하시고 “목숨 하나 건져 주고 간다.” 하시며 떠나시니라.
道典 3:224) 죽은 아들을 살려 주옵소서
무신년에 최창조의 열네 살 된 아들 상열(相烈)이 급병이 들어 백방으로 치료하였으나 별다른 차도를 못 보고 그대로 절명(絶命)한지라 창조 내외가 정신이 나간 채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상제님께서는 천의(天醫)로서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말을 생각하고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드니라. 이에 창조가 상제님을 찾으러 이리저리 다니다가 엿새가 지나도록 만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마침 그 날 저녁에 상제님께서 창조의 집에 오신지라
창조 내외가 마치 미친 사람처럼 상제님 앞에 엎드려 “죽은 아들을 살려 주옵소서!” 하고 울면서 애걸하거늘, 상제님께서 “죽은 사람을 어떻게 하겠느냐.” 하시더니 잠시 후 “어디 한번 보자.” 하시며 시체를 보시니 이미 눈알이 썩었더라. 이 때 황응종이 상제님을 뵈려고 창조의 집에 이르매 마침 곡성이 들리거늘 응종이 들어가지 않고 창조를 불러내어 자신이 왔음을 여쭈게 하니, 창조가 들어가 상제님께 아뢴 뒤에 나와서 말하기를 “선생님이 지금 보시는 일이 있으니 좀 기다리라.” 하는지라
응종이 그 앞 주막에 나가 기다리려 하는데 곧 상제님께서 부르시므로 들어가 상제님을 뵈니라. 상제님께서 손으로 아이의 배를 어루만지시고 “여물지 않은 보리를 잘라 오라.” 하시어 보리의 즙을 내어 죽은 아이의 입안에 몇 방울 흘려 넣으신 뒤에 모두 방 밖으로 나오게 하시며 “두어 시간 후에 들어가 보라.” 하시니라.
이 아이가 머나먼 천 리 길을 갔다 왔으니
얼마 후 창조의 아내가 방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숨을 크게 몰아쉬며 왼다리를 움직이거늘, 상제님께서 들어가시어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찌 어른 앞에 누워 있느냐.” 하시니 죽은 아이가 문득 눈을 뜨고 깨어나니라. 상제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사담(私談)을 금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아이가 머나먼 천 리 길을 갔다 왔으니 고요히 있어야 할지라. 안방으로 옮겨 눕히고 미음을 쑤어 먹이라.” 하시거늘, 이에 명하신 대로 하니 아이가 항문으로 추깃물을 쏟아 내며 정신을 차리니라. 이튿날 그 아이가 사랑에 나오니 입에 참기름을 발라 주시고 밥을 먹이시니라.
최상열(崔相烈, 1894∼?): 최창조 성도는 장창엽(張昌燁)과의 사이에 아들 상열을 두었고, 최씨와의 사이에 3남 3녀를 두었다.
최창조(崔昌祚, 1865∼1935): 본관 경주. 정읍시 옹동면 매정리에서 부 주한과 모 김씨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자주 이사를 다녔는데 상제님을 추종하던 시기(43세 입문)에는 새울에서 살았다. 2명의 아내가 있었는데 장창엽과의 사이에서 아들 상열을, 최씨와는 3남 3녀를 두었다.
道典 4:12) 천지신명이 받드는 마테오 리치 대성사
이마두의 공덕을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나 천지신명들은 그를 떠받드나니 이마두는 신명계(神明界)의 주벽(主壁)이니라. 항상 내 곁에서 나를 보좌하여 모든 것을 맡아보고 있나니 너희는 마땅히 공경할지라.
이마두가 24절(節)의 역(曆)을 개정하여 때(時)를 밝히매 백성들이 그 덕(德)을 입어 왔으나 이 뒤로는 분각(分刻)이 나리니 분각은 우리가 쓰리라. 이마두는 보민신(保民神)이니라.
이마두는 신명계(神明界)의 주벽(主壁)이니라: 천상 신명계에서 실무진의 우두머리 되는 신명.
이마두가 24절(節)의 역(曆)을 개정하여 때(時)를 밝히매: 이러한 이마두 대성사의 노력의 결실로 청나라 순치(順治) 2년(1645)부터 시헌력(時憲曆)이 반포·시행된다. 시헌력은 태음력에 태양력의 원리를 적용하여 24절기의 시각과 하루의 시각을 정밀하게 계산하여 만들었다. 우리나라에는 1653년(효종 4)부터 1910년 한일합방 전까지 쓰였다.
道典 4:13) 동서양의 벽을 허문 우주 역사의 큰 공덕
이마두가 천국을 건설하려고 동양에 왔으나 정교(政敎)에 폐단이 많이 쌓여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닫고, 죽은 뒤에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갔느니라. 이마두의 공덕이 천지에 가득하니 신명계의 영역을 개방하여 동서양의 신명들을 서로 자유롭게 넘나들게 한 자가 이마두니라. 선천에는 천지간의 신명들이 각기 제 경역(境域)을 굳게 지켜 서로 왕래하지 못하였으나 이마두가 이를 개방한 뒤부터 지하신(地下神)이 천상에 올라가서 천국의 문명을 본떠 사람들의 지혜를 열어 주었나니 이것이 오늘의 서양 문명이니라.
道典 4:14) 신농씨와 태공의 큰 은혜
신농씨(神農氏)가 농사짓는 법과 의술로 천하 만세를 윤택하게 하였고 태공(太公)이 병법과 정치로써 천하 만세에 은혜를 주었나니 이제 하늘과 땅이 성공하는 가을철을 맞아 천지간의 모든 신들이 그들을 높이 받들어 모시느니라.
주자를 칭찬하심
유가(儒家)의 인물들이 흠이 많으나 주회암(朱晦庵)은 흠잡을 데가 없느니라.
진묵대사를 선경 건설에 역사케 하심
진묵이 천상에 올라가 온갖 묘법(妙法)을 배워 내려 좋은 세상을 꾸미려 하다가 김봉곡에게 참혹히 죽은 뒤에 원을 품고 동양의 도통신을 거느리고 서양에 건너가서 문명 개발에 역사(役事)하였나니 이제 그를 해원시켜 고국으로 돌아와 선경 건설에 역사하게 하리라.
道典 4:15) 신神도의 병마대권자 관성제군
관운장(關雲長)은 병마대권(兵馬大權)을 맡아 성제군(聖帝君)의 열(列)에 서게 되었나니 운장이 오늘과 같이 된 것은 재주와 지략 때문이 아니요 오직 의리 때문이니라.
천지에서 으뜸가는 보배, 의로움
천지간에 의로움보다 더 크고 중한 것은 없느니라. 하늘이 하지 못할 바가 없지마는 오직 의로운 사람에게만은 못 하는 바가 있느니라. 사람이 의로운 말을 하고 의로운 행동을 하면 천지도 감동하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천지의 모든 보배를 가지지 않은 것이 없으나 의로움을 가장 으뜸가는 보배로 삼느니라. 나는 추상 같은 절개와 태양같이 뜨거운 충의(忠義)를 사랑하노라.
관운장(關雲長, ?~219): 관우(關羽). 촉의 장수로 자는 운장(雲長). 송대 이후에 관제묘(關帝廟)가 세워져 무신(武神), 군신(軍神), 복록 장수신(福祿 長壽神)으로 모셔지는 등 민중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만력 42년(1614) 제호(帝號)를 받으며 삼계복마대제신위원진천존관성제군(三界伏魔大帝神威遠鎭天尊關聖帝君)에 봉해졌다. 세속에서는 ‘관성제군’, ‘관제(關帝)’라 불린다.
道典 4:16) 영원한 화평의 바탕, 해원(解寃)
이제 예로부터 쌓여 온 원(寃)을 풀어 그로부터 생긴 모든 불상사를 소멸하여야 영원한 화평을 이루리로다. 선천에는 상극의 이치가 인간 사물을 맡았으므로 모든 인사가 도의(道義)에 어그러져서 원한이 맺히고 쌓여 삼계에 넘치매 마침내 살기(殺氣)가 터져 나와 세상에 모든 참혹한 재앙을 일으키나니 그러므로 이제 천지도수(天地度數)를 뜯어고치고, 신도(神道)를 바로잡아 만고의 원을 풀며 상생의 도(道)로써 선경의 운수를 열고 조화정부를 세워 함이 없는 다스림과 말 없는 가르침으로 백성을 교화하여 세상을 고치리라.
道典 4:17) 뿌리 깊은 단주의 원한
무릇 머리를 들면 조리(條理)가 펴짐과 같이 천륜을 해(害)한 기록의 시초이자 원(寃)의 역사의 처음인 당요(唐堯)의 아들 단주(丹朱)의 깊은 원을 풀면, 그 뒤로 수천 년 동안 쌓여 내려온 모든 원의 마디와 고가 풀리게 될지라. 대저 당요가 단주를 불초히 여겨 두 딸을 우순(虞舜)에게 보내고 천하를 전하니
단주가 깊은 원을 품은지라 마침내 그 분울(憤鬱)한 기운의 충동으로 우순이 창오(蒼梧)에서 죽고 두 왕비가 소상강(瀟湘江)에 빠져 죽는 참혹한 일이 일어났나니, 이로 말미암아 원의 뿌리가 깊이 박히게 되고 시대가 지남에 따라 모든 원이 덧붙어서 드디어 천지에 가득 차 세상을 폭파하기에 이르렀느니라.
선경 건설의 첫걸음, 해원(解寃) 공사
그러므로 이제 단주 해원을 첫머리로 하고, 또 천하를 건지려는 큰 뜻을 품었으나 시세(時勢)가 이롭지 못하여 구족(九族)이 멸하는 참화를 당해 철천의 한(恨)을 머금고 의탁할 곳 없이 천고(千古)에 떠도는 모든 만고역신(萬古逆神)을 그 다음으로 하여 각기 원통함과 억울함을 풀고, 혹은 행위를 바로 살펴 곡해를 바로잡으며, 혹은 의탁할 곳을 붙여 영원히 안정을 얻게 함이 곧 선경을 건설하는 첫걸음이니라.
천륜을 해(害)한 기록의 시초이자: 단주의 원한은 천륜이 파괴된 원한으로서 역사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는 의미에서 가장 큰 원한이다.
당요가 단주를 불초히 여겨 두 딸을 우순(虞舜)에게 보내고 천하를 전하니: 요순 선양(禪讓)을 논한 최고(最古)의 문헌은 『상서(尙書)』이며 이후 맹자나 사마천 등이 이를 근거로 요순선양설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순자(荀子)는 「정론(正論)」편에서 ‘세속에서 만들어낸 말’이라 비판하였고, 한비자(韓非子) 역시 요순 선양 고사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였다.
구족(九族)이 멸하는 참화를 당해 철천의 한(恨)을 머금고 의탁할 곳 없이 천고(千古)에 떠도는 모든 만고역신(萬古逆神)을: 선천 인류사에 쌓여 온 역신을 통칭하는 말.
道典 4:28) 모든 역신(逆神)을 별자리로 붙여 보내심
이 때는 해원시대라. 사람도 이름나지 않은 사람이 기세를 얻고 땅도 이름 없는 땅이 기운을 얻느니라. 나는 동서양의 만고역신(萬古逆神)을 거느리느니라. 원래 역신逆神은 시대와 기회가 지은 바라. 역신逆神이 경천위지(經天緯地)의 재능으로 천하를 바로잡아 건지려는 큰 뜻을 품었으나 시세가 이롭지 못하므로 그 회포(懷抱)를 이루지 못하고 멸족의 화(禍)를 당하여 천추에 원귀가 되어 떠돌거늘,
세상 사람들은 사리(事理)를 잘 알지 못하고 그들을 미워하여 ‘역적놈’이라 평하며 일상용어에 모든 죄악의 머리로 일컬으니 어찌 원통치 않겠느냐. 그러므로 이제 모든 역신을 만물 가운데 시비(是非)가 없는 별자리(星宿)로 붙여 보내느니라. 하늘도 명천(明天)과 노천(老天)의 시비가 있고, 땅도 후박(厚薄)의 시비가 있고, 날도 수한(水旱)의 시비가 있고, 때도 한서(寒暑)의 시비가 있으나 오직 성수(星宿)에는 그런 시비가 없느니라.
道典 4:29) 우주일가 문명의 큰 기틀
인륜(人倫)보다 천륜(天倫)이 크니 천륜으로 우주일가(宇宙一家)니라. 인사는 기회(機會)가 있고 천리는 도수(度數)가 있느니라.
아무리 큰 일이라도 도수에 맞지 않으면 허사가 될 것이요, 경미하게 보이는 일이라도 도수에만 맞으면 마침내 크게 이루어지느니라.
모든 일을 있는 말로 지으면
모든 일을 있는 말로 지으면 천지가 부수려 하여도 못 부술 것이요, 없는 말로 꾸미면 부서질 때에 여지가 없느니라. 나는 선천에 이름이라도 있는 것을 쓰느니라.
道典 4:32) 난법(亂法)을 지은 후에 진법(眞法)을 내는 통치 정신
원래 인간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면 분통이 터져서 큰 병을 이루나니, 그러므로 이제 모든 일을 풀어놓아 각기 자유 행동에 맡기어 먼저 난법을 지은 뒤에 진법을 내리니 오직 모든 일에 마음을 바르게 하라. 거짓은 모든 죄의 근본이요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니라.
운수는 좋건마는 목 넘기기 어렵다
이제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에게 임감(臨監)하여 마음에 먹줄을 잡아 사정(邪正)을 감정케 하여 번갯불에 달리리니, 마음을 바르게 못 하고 거짓을 행하는 자는 기운이 돌 때에 심장과 쓸개가 터지고 뼈마디가 튀어나리라. 운수는 좋건마는 목 넘기기가 어려우리라.
이제 모든 일을 풀어놓아 각기 자유 행동에 맡기어 먼저 난법亂法을 지은 뒤에: 난법에는 크게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 증산 상제님의 진리를 오도하고 왜곡시키는 그릇된 가르침과 구도 행위, 둘째, 상제님의 대도로 광구천하를 실현해 나가는 과도기 과정에서 진법이 드러나기까지 나타나는 도법의 성격을 총체적으로 규정하는 말이다. 난법은 진법이 나오기 위한 고통스러운 성장과정인 것이다.
먼저 난법을 지은 뒤에 진법眞法을 내리니: 참법이며 정법이다. 곧 가을개벽의 문턱에서 일어나는 인류 문명개벽의 참된 도리를 말한다. 삼변성도(三變成道)의 원리에 의해 도운도 3변이 되어야 난법이 종결되고, 일꾼들이 상제님과 태모님을 올바로 모시고 개벽을 참되게 인식하는 진법이 열리게 된다. 그리고 이 진법문화를 통해 개벽상황을 극복하고 후천선경을 건설하는 것이다.
道典 4:18) 각 민족의 지방신(地方神)과 땅기운, 지운(地運)을 통일하심
대개 예로부터 각 지방에 나뉘어 살고 있는 모든 족속들의 분란쟁투는 각 지방신(地方神)과 지운(地運)이 서로 통일되지 못한 까닭이라. 그러므로 이제 각 지방신地方神과 지운地運을 통일케 함이 인류 화평의 원동력이 되느니라.
모든 문화의 진액을 뽑아 모으심
또 모든 족속들이 각각 색다른 생활 경험으로 유전된 특수한 사상으로 각기 문화를 지어내어 그 마주치는 기회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큰 시비를 이루나니 그러므로 각 족속의 모든 문화의 진액을 뽑아 모아 후천문명의 기초를 정하느니라.
모든 족속들의 분란쟁투는 각 지방신(地方神)과 지운(地運)이: 지방신(地方神)은 각 나라의 민족신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여호와는 유대족의 지방신이다.
모든 문화의 진액을 뽑아 모아: 이 한 구절의 말씀에서 상제님께서 여신 무극대도의 새 문화 성격을 이해할 수 있다.
道典 4:19) 선경을 세우려면
천지를 개벽하여 선경을 세우려면 먼저 천지도수(天地度數)를 조정(調整)하고, 해원으로써 만고신명(萬古神明)을 조화하며, 대지강산(大地江山)의 정기(精氣)를 통일해야 하느니라.
지운(地運) 통일은 부모산으로부터
전주 모악산(母岳山)은 순창 회문산(回文山)과 서로 마주서서 부모산이 되었나니 부모가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모든 가족을 양육 통솔하는 것과 같이 지운(地運)을 통일하려면 부모산으로부터 비롯해야 할지라. 그러므로 이제 모악산으로 주장을 삼고 회문산을 응기(應氣)시켜 산하의 기령(氣靈)을 통일할 것이니라.
후천 선경시대를 여는 사명당(四明堂) 발음 공사
또 수운의 글에 ‘산하대운(山河大運)이 진귀차도(盡歸此道)라.’ 하고, 궁을가에 ‘사명당(四明堂)이 갱생(更生)하니 승평시대(昇平時代) 불원(不遠)이라.’ 하였음과 같이 사명당을 응기시켜 오선위기(五仙圍碁)로 천하의 시비를 끄르며,
호승예불(胡僧禮佛)로 천하의 앉은판을 짓고, 군신봉조(群臣奉朝)로 천하의 인금(人金)을 내며, 선녀직금(仙女織錦)으로 천하 창생에게 비단옷을 입히리니 이로써 밑자리를 정하여 산하대운을 돌려 발음(發蔭)케 하리라.
모악산과 회문산은 간동방(艮東方)의 부모산이자 후천 새천지의 부모산이다.
사명당(四明堂)이 갱생(更生)하니: 지구의 지기(地氣)가 최종적으로 응축되어 있는 곳으로, 오선위기·선녀직금·호승예불·군신봉조의 4대 혈처(穴處)를 말한다. 소우주인 인간의 몸에 천지기운이 그대로 내려와 기혈이 운행하듯, 거대한 영적 생명체인 땅에도 기령의 혈맥이 흐르고 있으며 이는 신神도와 함께 변화의 근본 요인(要因)이 된다.
상제님께서는 이러한 땅 속의 기령(氣靈)을 취해 인류사를 바로잡는 동력(動力)으로 쓰셨다. 이 사명당(四明堂)기운이 발동되면서 유불선 기독교의 이상이 실현된다.
오선위기(五仙圍碁)로 천하의 시비를 끄르며: 다섯 신선이 바둑판을 에워싸고 있는 형국.
호승예불(胡僧禮佛)로 천하의 앉은판을 짓고: 늙은 중이 예불 올리는 형국.
군신봉조(群臣奉朝)로 천하의 인금(人金)을 내며: 신하들이 왕명을 받드는 형국.
선녀직금(仙女織錦)으로 천하 창생에게 비단옷을 입히리니: 선녀가 비단을 짜는 형국.
道典 4:20) 단주 해원(解寃)도수는 오선위기(五仙圍碁)로부터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회문산에 오선위기五仙圍碁가 있나니 바둑은 당요가 창시하여 단주에게 전수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단주의 해원(解寃)은 오선위기五仙圍碁로부터 비롯되나니 천하의 대운이 이로부터 열리느니라.” 하시고, 다시 말씀하시기를 “이로써 또한 조선의 시비를 푸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4:154) 사람마다 신명이 호위하여 있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마다 그 닦은 바와 기국(器局)에 따라서 그 임무를 감당할 만한 신명이 호위하여 있나니 만일 남의 자격과 공부만 추앙하고 부러워하여 제 일에 게으른 마음을 품으면 신명들이 그에게로 옮겨 가느니라. 못났다고 자포자기하지 말라. 보호신도 떠나느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일심으로 하라. 일심하지 않으면 막대기에 기운 붙여 쓸란다.” 하시니라.
道典 4:155) 어찌할 수 없이 맡게 되었노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공사를 맡고자 함이 아니로되 천지신명(天地神明)이 모여들어 ‘상제님이 아니면 천지를 바로잡을 수 없다.’ 하므로 괴롭기는 한량없으나 어찌할 수 없이 맡게 되었노라.” 하시니라.
치천하(治天下)는 너희들이 하라
하루는 성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평천하(平天下)는 내가 하리니 치천하(治天下)는 너희들이 하라.” 하시니라.
道典 4:21) 백보좌 하느님의 서신사명, 가을 대개벽의 심판과 구원
이 때는 천지성공 시대라. 서신(西神)이 명(命)을 맡아 만유를 지배하여 뭇 이치를 모아 크게 이루나니 이른바 개벽이라. 만물이 가을바람에 혹 말라서 떨어지기도 하고 혹 성숙하기도 함과 같이 참된 자는 큰 열매를 맺어 그 수(壽)가 길이 창성할 것이요, 거짓된 자는 말라 떨어져 길이 멸망할지라. 그러므로 혹 신위(神威)를 떨쳐 불의를 숙청(肅淸)하고 혹 인애(仁愛)를 베풀어 의로운 사람을 돕나니 삶을 구하는 자와 복을 구하는 자는 크게 힘쓸지어다.
서신(西神)이 명(命)을 맡아 만유를 지배하여: ‘서(西)’는 성숙과 통일의 때인 가을을 의미한다. 즉 서신은 천지의 여름과 가을이 교역하는 극적인 대변혁의 시간대에 오시는 우주의 주재자를 말한다. 서신사명은 상제님 위에 누가 또 있어 사명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우주의 통치자 하느님이 우주 정신의 결실기에 인간으로 강세하시어 대개벽의 통일 세계를 열어 다스리시는 것을 말한다.
道典 4:23) 천지공사에 신명을 부르시는 부호(符號)
상제님께서 계묘(癸卯 : 道紀 33, 1903)년 정월에 날마다 양지 두세 장에 글을 쓰시거나 물형(物形)을 그리시어 손이나 무에 먹물을 묻혀 찍고 불사르시니 성도들이 그 글과 물형의 의미를 여쭈거늘, 말씀하시기를 “이는 천지공사에 신명을 부르는 부호(符號)니라.” 하시니라.
道典 4:109) 회문산은 산군(山君) 도수, 변산은 해왕(海王) 도수
하루는 종이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이러하니라.
天下自己神은 古阜運回하고, 天下陰陽神은 全州運回하고, 天下通情神은 井邑運回하고, 天下上下神은 泰仁運回하고
天下是非神은 淳昌運回하니라
천하의 자기신自己神은 고부古阜로 운이 돌아오고, 천하의 음양신陰陽神은 전주로 운運 이 돌아오고, 천하의 통정신通情神은 정읍으로 운運이 돌아오고, 천하의 상하신 上下神은 태인으로 운이 돌아오고, 천하의 시비신是非神은 순창으로 운이 돌아오느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몸에 24추(椎)가 있듯 회문산과 변산에도 24혈(穴)이 있어 큰 기운을 간직하였나니 이제 회문산은 산군(山君) 도수, 변산은 해왕(海王) 도수를 정하여 천지공사에 그 기운을 쓰노라.” 하시니라.
天下自己神은 古阜運回하고: 상제님께서 가을개벽의 추수운을 맞아 고부古阜땅에 강세하신 것을 말한다.
天下陰陽神은 全州運回하고: 음양질서를 바로잡는 정음정양의 도수는 전주 건지산, 곤지산의 발음으로 실현하신다는 뜻이다.
天下通情神은 井邑運回하고: 통정신은 뜻과 마음을 통하는 신이다. 정읍에서 수부님과 그 이종동생 차경석(개벽대장 박공우 성도 포함)을 만나실 것을 말한다.
天下上下神은 泰仁運回하고: 태인 군신봉조의 혈(穴)을 발음시켜 지도자를 내신다는 뜻이다.
天下是非神은 淳昌運回하니라: 순창 회문산 오선위기로 선천 인류사의 상극 시비를 끌러 내어 개벽 세계의 통일 질서를 여는 데 쓰신다는 뜻이다.
道典 4:115) 귀신을 뜻대로 부리는 조화
무신년 여름에 대흥리에서 공사를 보실 때 종이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이러하니라.
姜太公이 用七十二候하여 使鬼神如奴之하고, 張子房이 用三十六計하여 使鬼神如友之하고, 諸葛亮은 用八陣圖하여 使鬼神如師之하니라
강태공은 칠십이후를 써서 귀신을 종처럼 부렸고, 장자방은 삼십육계를 써서 귀신을 친구처럼 부렸으며, 제갈량은 팔진도를 써서 귀신을 군사처럼 부렸느니라. 하루는 성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귀신이 사람의 법을 쥐고 있으나 앞세상에는 사람이 귀신의 법을 쥐게 되느니라. 그러니 어서 부지런히 닦으라.” 하시니라.
팔진도八陣圖: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제갈량이 창안한 여덟 가지 진형(陣形) 그림. ‘팔진(八陣)’ 또는 ‘팔진법(八陣法)’이라고도 한다.
道典 4:116) 장수 해원 공사
하루는 무주에서 전주로 오실 때 진안 봉촌(鎭安 鳳村)에 있는 어느 산의 한 무덤 앞에서 호연을 안고 앉으시어 주문을 읽으시니 갑자기 무덤이 들썩들썩하거늘 호연이 “아이고, 저기서 무엇 나오네.” 하고 계속 지켜보니 관운장과 같이 생긴 장수가 흙을 떨며 나오더라. 잠시 후 장수가 자리에 앉으니 상제님께서 “괜찮으니 누워 있거라.
이 다음에 때가 되어 우리가 일을 할 때는 죽었다 말고 혼이라도 애를 써라. 그리하면 네 원을 풀어 주마.” 하시니라. 이에 장수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드니 다시 말씀하시기를 “아무리 죽었다 해도 넌들 몸뚱이에 쓸개가 없을 것이냐? 네 부하들이 다 죽은 것을 애석하게 여겨 한을 품지 말아라.” 하시니
장수가 도로 벌떡 드러눕거늘 땅을 다시 다독거려서 덮어 주시니라. 하루는 호연에게 말씀하시기를 “일이 되면 너도나도, 죽었던 송장도 다 일어난다. 장수들이 나오는데 그 가운데에 인자가 있느니라.” 하시니라.
진안 봉촌(鎭安 鳳村)에 있는 어느 산의 한 무덤 앞에서: 진안 봉촌. 현재 전북 진안군 성수면 좌포리(佐浦里) 봉촌 마을. 상제님께서 자주 가셔서 공사 보신 마이산과 신흥사의 중간에 위치한다. 봉촌을 감싸고 있는 봉황산과 알미산은 봉황이 알을 품는 형국이고, 주변에 풍혈냉천(風穴冷泉)으로 유명한 대두산(大頭山)이 있다.
송장도 다 일어난다: 신명이 인간으로 태어나거나, 신명으로서 신도(神道)에서 가을개벽의 천명을 받아 분주히 서두르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道典 4:117) 문턱 밖이 곧 저승길
또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죽음길이 먼 것이 아니라 문턱 밖이 곧 저승이니, 나는 죽고 살기를 뜻대로 하노라.” 하시니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니 이러하니라. 生由於死하고 死由於生하니라. 삶은 죽음으로부터 말미암고, 죽음은 삶으로부터 말미암느니라.
道典 4:121) 콧구멍으로 드나드는 사람의 혼기(魂氣)
하루는 비가 내리니 한 성도가 약방 사랑에서 비를 구경하다 잠이 들거늘, 상제님께서 호연에게 가만히 오라는 손짓을 하시므로 호연이 다가가니 “가만 앉아 봐라. 저거 봐라, 저거! 저 사람 콧구멍에서 나오는 것 좀 봐라.” 하고 속삭이시니라.호연이 신안이 열려서 보매 꼭 생쥐같이 생긴 것이 콧구멍에서 토방까지 나오더니
빗물에 잘박잘박하며 발을 대 보다가 다시 콧구멍으로 들어가고, 또 나왔다가 들어가고, 그러기를 계속하는지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저것이 사람의 혼이여. 저것이 하나라야 내 본심이고, 둘이면 도둑놈이다. 쥐가 둘이어서 양쪽 콧구멍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마음보가 커서 담장을 넘어 도둑질을 하니, 그중 하나를 때려 죽여야지 그냥 놔두면 커서 일을 저지른다.”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저놈이 다시 콧구멍으로 안 들어가면 사람이 죽어 버리니 들어가야 산다. 저놈을 다시 들여보낼까, 말까?” 하시거늘, 호연이 놀라며 “아이고, 내버려둬요. 이 집에서 송장 치우려고 그래요?” 하니, 상제님께서 손가락을 조용히 입에 대시며 “아무 말도 마라.” 하시고,
이어 말씀하시기를 “자는 사람을 억지로 깨우면 농판이 들거나 죽거나 할 테니 쥐가 나갔다가 안 들어올까 싶어 혼구멍도 못 준다.” 하시며 깨우지 않고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시니라. 한참 후에야 그 사람이 깨어나니 “요놈이 제 마음대로 자빠져 잔다.” 하시며 불호령을 내리시니라.
혼과 본심: 혼(魂)은 신(神)을 따라 왕래하는데 입과 코의 호흡을 통해 출입·왕래한다. 그리고 심장은 신神이 머무는 장소다. 때문에 마음이 분열되면 신을 따라 출입하는 혼魂 자체도 둘로 분열되어 코로 출입하게 된다. 따라서 정신과 혼백이 둘이 아닌 한마음(一心)으로 작용할 때 비로소 본래의 마음자리(光明)를 얻어 일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道典 4:122) 자손 싸움이 선령신 싸움으로
사람들끼리 싸우면 천상에서 선령신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나니, 천상 싸움이 끝난 뒤에 인간 싸움이 귀정(歸正)되느니라. 전쟁사(戰爭史)를 읽지 말라. 전쟁에서 승리한 자의 신명은 춤을 추되 패한 자의 신명은 이를 가나니 도가(道家)에서 글 읽는 소리에 신명이 응하는 까닭이니라.
道典 4:123) 죽음의 세계로 들어갈 때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살다가 죽게 되면 삼신(三神) 따라 떠나느니라. 그러므로 밥을 해 놓고 적삼을 흔들어 초혼(招魂)하는 것은 다 부당한 일이니, 삼신에게 고함이 옳으니라.” 하시니라. 어떤 사람이 여쭈기를 “제사 때 우는 것이 옳습니까, 울지 않는 것이 옳습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원통히 죽은 신에게는 우는 것이 옳으나, 원통함이 없이 죽은 신에게는 울지 않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니라.
초혼(招魂)하는 것은 다 부당한 일이니: 초혼. 유가의 전통 상례 의식으로 사람의 숨이 끊어지면 즉시 망자의 옷을 들고 지붕에 올라가 북쪽을 향해 ‘아무개 복(復)’이라고 세 번 부른다. 이는 빠져나간 혼(魂)을 불러 다시 백(魄)으로 돌아오게 한다는 의미이다.
道典 4:124) 죽은 아이를 살려 주심
구릿골에서 술장사하는 김사명(金士明)의 아들 성옥(成玉)이 어느 날 급증에 걸려서 나흘 만에 죽거늘, 한나절이 넘도록 살리려고 백방으로 주선하여도 회생할 여망(餘望)이 없는지라. 할 수 없이 그 어머니가 숨이 끊어진 아이를 안고 구릿골 약방으로 찾아오니 상제님께서 미리 아시고 문득 말씀하시기를 “약방이 안 되려니 송장을 안고 오는 자가 있도다.” 하시니라.
성옥의 어머니가 죽은 아들을 상제님 앞에 눕혀 놓고 애처로이 울면서 살려 주시기를 애걸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죽은 자는 다시 살아나지 못하는 법인데 나라고 어찌 살리겠는가?” 하시거늘, 아이의 어머니가 더욱 슬피 울부짖으며 “이 아이는 외아들입니다. 아이가 살아날 수 없다면 저도 아들을 따라 죽어 버리렵니다. 가련한 이 모자의 형편을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하고 애원하니 그 애절한 울음소리가 하늘에 닿을 듯하더라.
미수야, 우암을 잡아 오너라
상제님께서 차마 보지 못하시고 죽은 아이를 무릎 위에 눕혀 배를 만져 내리시며, 허공을 향하여 큰 소리로 “미수(眉叟)야, 우암(尤庵)을 잡아 오너라.” 하고 외치신 뒤에 모과를 씹어 그 즙과 함께 침을 흘려서 죽은 아이의 입에 넣으시니 아이가 문득 항문으로 추깃물을 쏟거늘, 상제님께서 “나가서 회초리 하나 끊어 오라.” 하시어 회초리로 아이의 종아리를 탁탁 때리시매 죽었던 아이가 크게 소리를 지르며 홀연히 살아나더라.
이에 아이의 어머니가 기쁨에 넘쳐 눈물을 흘리며 미친 듯 술 취한 듯이 말하기를 “하느님이시여! 하느님이시여! 죽은 자식을 살려 주시니 이 큰 은혜 호천망극(昊天罔極)하옵니다.” 하니라. 상제님께서 아이에게 미음을 쑤어 먹이게 하신 후 그 어머니에게 이르시기를 “요 모퉁이에 가면 걸인이 하나 죽어 있으리니 옷 입혀서 양지바른 곳에 잘 묻어 주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죽은 아이가 다행히 살아났으니 잘 가르쳐서 어진 사람을 만들라.” 하시며 아이를 걸려서 돌아가게 하시니라.
김성옥(金成玉, ?`~?). 김성옥은 그 후 환갑이 넘도록 살았는데 본부인에게서 아들이 없자 작은 부인을 얻어 용덕을 낳았다. 용덕은 현재 대전에 살고 있다.
허공을 향하여 큰 소리로 “미수(眉叟)야, 우암(尤庵)을 잡아 오너라.” 하고 외치신 뒤에: 미수(眉+), 우암(尤庵).허목(許穆, 1595~ 1682)과 송시열(宋時烈, 1607~1689). 주자를 통해서만 유학이 이해되던 시대에, 우암은 주자를 절대적으로 존숭한 반면, 미수는 성인에 뜻을 두고 선진유학으로 직접 뛰어들어가 공부했다. 둘의 2차에 걸친 예송논쟁으로 인해, 결국 우암의 서인 정권은 축출되고 미수의 남인 정권이 정계를 장악하게 되었다. 우암이 북벌론을 주장하는 등 이상주의적인 의리론을 폈다면, 미수는 북벌론을 반대하고 농민부흥 정책을 도모하는 등의 현실적인 의리론을 펴 나갔다.
道典 4:125) 네가 천하에 맥을 전하니
무신년에 하루는 호연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람이란 낳기는 제 어미가 낳았어도 맥이 떨어지면 죽는 것인데, 네가 천하에 맥(脈)을 전해 주니 할애비 같은 사람도 너를 보고 굴복할 것이다. 걱정을 말아라. 너는 천하에서 돌보는 사람이 있느니라.” 하시며 마음을 달래 주시니라.
네가 천하에 맥(脈)을 전해 주니: 맥. 첫째, 후천선경의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조화 선(仙)문명 개벽 공사의 모델로서 첫 월경을 천지에 뿌려 선맥의 역사 정신을 이어주는 선매숭자 공사이다. 둘째, 그 누구도 밝히지 못한 조화옹 상제님의 진면모와 숨겨진 천지공사의 행적을 증거하여 진리를 온전하게 드러내는 진법맥 전수 사명이다.
道典 4:126) 먹장난하다 한 맺고 죽은 신명을 위로하심
하루는 경석에게 “검은 두루마기를 가져오라.” 하여 입으시고, 또 속옷을 벗으시고 긴 수건으로 허리를 매신 뒤에 여러 성도들에게 물으시기를 “이리하면 일본 사람과 같으냐?” 하시니 모두 대답하기를 “같습니다.” 하니라. 이에 다시 벗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려서 서당에 다닐 때에 한 아이와 더불어 먹장난을 하였는데,
그 아이가 지고 울며 돌아가서는 다시 오지 않고 다른 서당에 다니다가 그 후에 병들어 죽었거늘, 그 신명이 그 일로 원한을 품었다가 이제 나에게 와서 해원시켜 주기를 원하므로 ‘어떻게 하면 해원이 되겠느냐?’ 물으니, 그 신명이 내가 일본옷을 싫어하는 줄 알고 ‘일본옷을 입으라.’ 하므로 내가 이제 그 신명을 위로함이로다.” 하시니라.
道典 4:129) 나의 말은 온 우주에 사무치느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대인의 말은 구천에 사무치나니 나의 말도 그와 같아서 늘지도 줄지도 않고 부절(符節)과 같이 합하느니라.” 하시니라. 하루는 공사를 보시며 글을 쓰시니 이러하니라. 閑談敍話로 可起風塵이요, 閑談敍話로 能掃風塵이라, 한가롭게 주고받는 말로 천하의 난리를 일으킬 수 있고, 한가롭게 주고받는 말로 천하의 난리를 쓸어낼 수도 있느니라.
하루면 마음이 천 가지로 들어간다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렇게 앉아 있어도 내 혼은 돌아다니면서 일을 하느니라. 하루면 마음이 천 가지로 들어간다.” 하시니라.
道典 3:284) 마마 앓는 자현의 딸을 구해 주심
무신년 겨울에 자현의 두 살배기 딸 필순(必順)이 마마를 앓아 밤새도록 몸을 긁으며 죽을 듯이 울어대거늘 양손을 묶고 기(旗)를 세워 놓아도 차도가 보이지 않는지라. 자현이 상제님께 찾아와 “제 딸아이가 지금 손님을 하는데 죽으려는지 울어대기만 하고 먹지도 않습니다.” 하고 아뢰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가 보자.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자네 딸은 내가 건져야지.” 하시고, 작대기 하나를 질질 끌고 자현의 집에 이르시어 꽂아 놓은 깃대를 뚝 끊어 마당에 던지시며 말씀하시기를 “어찌 조선 땅에 발을 붙이느냐! 서양으로 썩 물러가라!” 하시고 작대기로 마룻바닥을 쾅쾅 두들기시니라. 필순의 모친과 그 가족들이 모두 놀라 “아이고 손님에게 저러면 어째.” 하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 벌벌 떠는데,
상제님께서 필순에게 “울기는 왜 우느냐.” 하시며 뺨을 때리시고 “물 한 바가지 떠 오너라.” 하시어 손수 아이에게 부으시매 필순이 울음을 뚝 그치거늘, 이내 온몸에서 딱지가 우수수 떨어지며 마마가 곧 나으니 콧등만 약간 얽었을 뿐이요 다른 곳은 흔적도 없이 말끔하더라. 상제님께서 필순의 손님을 물리치신 후에 말씀하시기를 “이후로는 시두손님을 내가 맡아 보노라.” 하시고,
“시두손님을 전부 서양으로 몰아 보낸다.” 하시더니 이후로 구릿골에 마마 앓는 아이가 없어지고, 조선 땅에서 시두손님이 점차로 사라지니라. 이 날 상제님께서 자현의 집을 나서시며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시두가 대발하면 내 세상이 온 줄 알아라.” 하시니라.
자현의 두 살배기 딸 김필순(金必順, 1907∼1997)이 마마를 앓아: 김자현의 막내딸로 전남 순천 장기동(1868~1952)의 아들 장보만과 혼인. 김형렬 성도와 김자현 성도는 사종(四從: 10촌)간이고, 장기동의 딸은 김형렬 성도의 며느리이므로, 김형렬 성도와 장기동은 겹사돈이다.<김형렬 성도의 손자 김충식(1923∼ )의 증언>
마마를 앓아: “긍게 우리 외삼촌(김태진)이 어머니 두 살 때 열여섯 살 먹어서 장가가서 초상집에 다녀왔는데 그 동네 손님(마마)이 따라온 거야. 그래 가지고 제일차로 우리 어머니가 걸린 거야.”(김필순의 아들 장영주(1930~ ) 증언)
손님깃대: 역귀를 물리치는 기양법(祈禳法)의 하나. 집안에 시두 환자가 발생하면 마마신을 크게 받들어 달래는 의미로 문 앞에 깃대를 세우는 풍습이 있었다.
道典 3:226) 본처를 사랑하여 저버리지 말라
김보경이 곰개(熊浦)에 소실을 두고 본가를 돌보지 않거늘, 상제님께서 보경에게 글을 써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네 소실과 마주한 자리에서 불사르라. 그러면 좋은 일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에 보경이 그대로 하니 뜻밖에 임질(淋疾)을 얻어 본가로 돌아가 한 달 남짓 머무르게 되매 그 사이에 소실이 다른 곳으로 가 버리니라.
상제님께서 보경을 부르시어 타일러 말씀하시기를 “이제는 집안이 편안하여야 좋은 운수가 열리리니 본처를 사랑하여 저버리지 말라.” 하시고 임질을 낫게 하여 주시니라.
곰개(熊浦)에 소실을 두고: 현재 익산시 웅포면 웅포리로 금강가에 있다. 금강은 곰과 나무꾼의 전설이 있어 ‘곰강’이라고도 불렸다.
道典 3:227) 하루는 여러 성도들과 함께 태인 금상리(琴上里)를 지나시면서 보니 오랜 가뭄으로 사람들이 모심기를 못하고 있더라. 이 때 동학 신도 류한필(柳漢弼)이 전날 구름이 낀 것을 보고 비가 오리라 생각하고 마른 논에 호미로 모를 심었으나 이내 비가 오지 않아 모가 마르거늘, 한필이 애가 타서 “가뭄이 이렇게 심하여 비 올 뜻이 없으니 모 심었던 것을 치우고 콩이나 심을 수밖에 없도다.” 하며 탄식하니라.
마침 상제님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모 심은 것을 갈아 치우고 다른 곡식을 심는 것은 변괴가 아니냐.” 하시며, 한필을 앞세우고 그곳에 가서 참혹한 광경을 보시고는 서쪽 하늘을 향하여 만수(萬修)를 부르시니 갑자기 검은 구름이 피어오르며 소나기가 내리거늘, 한필은 무슨 까닭인지 알지 못하고 다만 미리 아는 법이 있는가 하여 이상히 여기니라.
태인 금상리(琴上里): 현재 전북 정읍시 옹동면 오성리(五成里) 금상동. 마을 뒤쪽에 거문고혈이 있으며 그 옆으로 까치집 혈이 있는 작소 마을이 있다.
道典 3:281) 날씨로나 부조하리라
덕찬이 아들의 혼사를 치르려 하매 여러 사람이 물품과 돈으로 부조(扶助)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조할 것이 없으니 날씨로나 부조하리라.” 하시니 이 즈음 연일 날씨가 험악하여 매우 염려하였는데 혼인날에 이르러서는 뜻밖에 온화하여지니라.
道典 3:312) 백성의 근심이 내 근심이니라
상제님께서 구릿골에 계실 때 하루는 경학이 와 뵙고 백성들이 오랜 가뭄으로 모를 내지 못하여 불안해함을 아뢰거늘, 상제님께서 “만민의 근심이 곧 내 근심이니라.” 하시며 갑칠에게 “청수 한 동이를 길어 오라.” 하시고, 미리 양지 두루마리에 글을 가득히 써 두신 것을 경학에게 내어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청수에 적셔 가루가 되도록 비비라.” 하시니라.
이에 경학이 명하신 대로 하여도 비가 오지 않거늘 상제님께서 갑칠에게 이르시기를 “네게 장령(將令)을 붙여 서양으로부터 우사(雨師)를 불러와 만민의 갈증을 풀어 주려 하였더니 네가 어제 저녁에 나의 명을 어기고 잠을 잤으므로 비가 오지 않으니 옷을 벗고 청수 앞에 합장하고 서서 사죄하라.” 하시니라.
잘 닦으면 마음대로 되리라
갑칠이 명하신 대로 하니 갑자기 서쪽 하늘로부터 검은 구름이 일어나며 큰비가 쏟아져서 삽시간에 앞내가 넘쳐흐르거늘, 경학이 “이만하면 넉넉하겠습니다.” 하고 아뢰니 상제님께서 부채를 들어 한 번 흔드시매 비가 곧 그치니라. 상제님께서 다시 갑칠에게 명하시어 “청수를 쏟아 버리고 옷을 입으라.” 하신 뒤에 모든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들도 잘 수련하면 모든 일이 마음대로 되리라.” 하시니라.
서양으로부터 우사(雨師)를 불러: 천상에서 강우(降雨)를 담당한 신명. 우리 동방 배달과 조선의 고대 농경문화 시대에, 삼신사상에 근거한 관직 이름(三師의 하나)이기도 하다.
너희들도 잘 수련하면 모든 일이 마음대로 되리라: 이 한마디는 선천 성자에 매달려서 오로지 믿어야만 구원 받는다고 믿는 중생들의 무지와 신앙의 허구를 부수어 버리는 말씀이다. 앞으로 인류는 후천개벽을 거쳐 상제님 도에 의해 누구라도 석가·예수 이상의 성인이 될 수 있는 무극대도의 문명을 맞이하게 된다. 이로써 진정한 인간 성숙의 길이 활짝 열린 것이다.
道典 3:68) 백남신의 관액을 끌러 주심
11월 말에 서울로부터 백남신을 불러 올리라는 공문이 전주부(全州府)에 이르니 남신이 어찌할 바를 몰라 몸을 숨기고 있는데 김병욱이 남신에게 말하기를 “지난번에 저의 화란(禍亂)을 선생님께서 끌러 주셨습니다.” 하니 남신이 병욱을 통하여 상제님께 풀어 주시기를 간청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부자는 돈을 써야 하나니 10만 냥의 증서를 가져오라.” 하시니라. 이에 남신이 곧 10만 냥의 증서를 올리니 상제님께서 그 증서를 불사르시거늘 그 뒤로 남신의 관액이 풀리니라.
남신이 이 일을 겪고 난 뒤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교자상(交子床)에다 음식을 성대히 차려 상제님을 모시니 상제님께서 “남신아, 음식은 많다만 이것보다 더 걸게 장만은 못 하겠느냐?” 하시는지라
남신이 아뢰기를 “일등 요리사들을 모두 불러 한껏 장만하였습니다.” 하거늘, “그렇긴 하겠다만 후천 농민 음식보다 못하구나.”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젓가락을 들어 음식을 드시려다 그만두기를 세 번 거듭하시더니 일어나 남신의 집을 나오시매 성도들은 영문을 몰라 아쉬워하며 뒤따르니라.
상제님께서 성도들을 데리고 어느 허름한 주막집에 드시어 주인에게 밥을 해 오라고 명하시니 주인이 아뢰기를 “당장 해 드릴 양식이 없고 단지 안 찧은 겉보리만 있습니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그놈 찧어서 어서 밥을 해 오라.” 하고 재촉하시니라. 이에 성도들까지 나서서 겉보리를 찧어 서둘러 밥을 지어 올리니 상제님께서 “그 밥맛 참 좋다.” 하시며 맛있게 드시니라. 이에 옆에 있던 한 성도가 “왜 진수성찬을 두고 겉보리밥을 드십니까?” 하고 여쭈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상 밑에 척신들이 가득 차서 내가 젓가락을 드니 척신들이 벌벌 떨며 ‘그걸 드시면 저희들은 어찌 됩니까?’ 하고 하소연하므로 내가 남신의 성의를 보아 젓가락만 세 번 들었다 놓았느니라.” 하시니라. 남신은 관액이 풀린 뒤 갑진년 7월에 육군 전주 진위대(鎭衛隊) 대장이 되고, 이어 10월에는 전북(全北)의 징세 독쇄관(督刷官)이 되어 큰돈을 모으니라.
백남신(白南信, 1858∼1920): 본관 수원(水原). 족보명은 낙신(樂信). 완주군 관두면 관철리에서 태어나 생부의 종제인 백현수의 양자로 들어갔다. 고종의 칙명으로 동학란을 평정하는 임무를 맡았으며, 동학란이 진정된 후에 고종이 ‘삼남(三南)을 믿고 맡길 신하’라 하여 ‘남신’이란 이름을 하사하였다. 조선의 이름난 갑부로 상제님 천지공사시에 재정적으로 가장 큰 공을 세웠다.
공문: 당시 백남신은 진위대 육군일등군사(陸軍一等軍司)라는 무관 신분으로 전라북도 시찰사를 겸하였는데 독세(督稅) 업무를 가혹하게 보았다는 이유로 소환되었다.
진위대(鎭衛隊):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1895년(고종 32) 9월 지방의 질서 유지와 변경 수비를 목적으로 설치한 근대적 지방 군대.
독쇄관(督刷官): 세금을 독촉하여 받아들이는 관리. 전라북도에 2명이 있었다. 백남신이 독쇄관에 임명된 것은 갑진(道紀 34, 1904)년 10월 29일이다.
道典 3:135) 김광찬·소진섭·김성화의 입문
8월 2일에 김형렬이 선돌리에 와서 상제님을 뵈니 수종다릿병이 다소 회복되신지라 이에 상제님을 모시고 하루 이삼십 리씩 걸어서 함열 회선동 김보경의 집으로 가니라.
상제님께서 보경의 집에 여러 날 머무르실 때 함열 사람 김광찬(金光贊)이 보경의 인도로 상제님을 따르니라. 광찬이 상제님을 처음 찾아뵐 때 호박풍잠(琥珀風簪)에 큰 갓을 쓰고 풍채 좋게 도포를 차려입고는 종을 앞세워 말을 타고 와서 인사를 하는데 그 품새가 거만하기 그지없거늘
상제님께서 아무 말씀 없이 담뱃대를 무신 채 거들떠보지 않으시니라. 이에 광찬이 방약무인(傍若無人)으로 거드름을 피우며 맞담배를 피우고 제 자랑을 하매,
상제님께서 담뱃대로 광찬의 인중(人中) 주위를 한 바퀴 두르시고 다시 담뱃대를 무시니 이내 방 안으로 시커먼 구름이 몰려들어 갑자기 뇌성벽력이 일면서 광찬의 앞으로 번갯불이 번쩍번쩍 들이치거늘,
광찬이 소스라치게 놀라 마당으로 도망하는데 먹구름이 광찬을 따라다니며 번갯불을 쳐대니라. 이에 광찬이 두려움에 떨며 무릎을 꿇고 상제님의 다리를 덥석 끌어안은 채 “죽을죄를 졌으니 살려 주십시오.” 하며 울부짖거늘, 상제님께서 “죄가 없는데 무엇이 두려운고?” 하시며 한참 동안 혼쭐을 내신 뒤에야 번개를 거두시니라. 이후로 소진섭(蘇鎭燮)과 임피 군둔리(臨陂 軍屯里) 김성화(金聖化)가 차례로 따르니라. 이 때 형렬은 집으로 돌아가고 상제님께서는 한동안 함열과 임피 사이를 왕래하시며 공사를 행하시니라.
김광찬(金光贊, 1869∼1917): 본관 김해. 본명은 준남(俊湳). 현재의 남원시 남원면 하정리에서 출생하였으며 16세에 익산시 함라면 먼 친척 집안에 양자로 들어갔다. 기억력이 비상했으나 성격이 거칠어 남과 싸우기를 잘하였다. 아전, 참봉을 거쳐 황등면장을 지냈으나 상제님 어천 후 정읍으로 가서 교단 일을 맡아 하였다.
호박풍잠(琥珀風簪): 갓모자가 넘어가지 않도록 망건당 앞쪽에 꾸미는 반달 모양의 장식.
임피 군둔리(臨陂 軍屯里): 군산시 나포면 장상리(將相里) 군둔 마을. 말이 서 있는 모양의 입마산(立馬山)을 비롯해 사방의 지형이 군대가 막을 치고 있는 형국이며 장군대좌혈(將軍對坐穴)이 있다. 김해 김씨 집성촌이다.
김성화(金聖化, 1858∼1931): 본관 김해. 부인 전주 이씨와의 사이에 3남을 두었다. 키는 165cm 정도이며 호리호리하고 강직하게 생겼다고 한다. 한학을 하였고 한의학에도 조예가 있었다.
道典 3:138) 부자는 악척이 많나니
하루는 한 성도가 여쭈기를 “조금 전에 거부(巨富) 세 사람이 선생님 모시기를 원하여 찾아왔는데, 그들이 오기 전에 형개(荊芥)를 묶어 놓으시고 도착한 뒤에는 글을 쓰시며, 뵙기를 청하매 큰 소리로 꾸짖으시고, 도문에 들어오고자 원하니 목록을 보이시며 ‘그 목록에 적힌 대로 헌성하라.’ 하시어 ‘그 물목에 적힌 액수가 세 사람의 재산을 모두 다 바쳐도 모자란다.’ 하여 스스로 포기하고 돌아가게 하심은 무슨 까닭입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형개를 묶은 것은 형가(荊軻)를 묶은 것이요 물목(物目)을 보인 것은 스스로 물러가게 함이니라.
무릇 부자들은 척(隻)이 많으니 그들을 다 구해 주려 하다가는 어느 겨를에 천지공사를 행하겠느냐. 부잣집 마루와 방과 곳간에는 살기와 재앙이 가득히 채워져 있느니라. 이놈들아, 부자 좋아하지들 말아라! 붓대 하나 까딱하면 다 죽는다.” 하시니라.
그들이 오기 전에 형개(荊芥)를 묶어 놓으시고 형개: 약초의 일종. 두통을 다스리고 피를 깨끗하게 하는, 산후 약재의 하나.
형가(荊軻, ? ∼서기전 227): 중국 전국시대의 협객. 위나라 사람으로 연나라 태자 단(丹)의 부탁을 받고 진시황을 암살하려 했으나 실패하여 죽음을 당했다.
道典 3:149) 한 사람의 소리가 곧 대중의 소리
을사년 12월 21일에 신원일이 와서 여쭈기를 “제가 일찍이 역둔토(驛屯土)의 사음(舍音)이 되어 도조(賭租) 수십 석을 사사로이 써 버렸더니 이제 궁내부(宮內府)에서 부안군수에게 위탁하여 독촉이 심할 뿐 아니라 장차 가산을 몰수하려 하므로 할 수 없이 피하여 왔습니다.” 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일을 끄르기는 어렵지 않으니 이곳에 머물러 있으라.” 하시니라. 이에 원일이 “이 일을 끄르려면 조정(朝廷)을 변혁시키거나 법제(法制)를 고치는 두 가지 도리밖에 없는데
한 사람의 액을 끄르기 위해 이렇듯 중대한 일을 이룬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까?” 하고 여쭈니, “한 사람의 소리가 곧 대중(大衆)의 소리니라.” 하시니라. 원일이 달포를 머문 뒤에 상제님을 모시고 서울을 다녀와서 집에 돌아가니 잡세혁파(雜稅革罷)의 조칙(詔勅)이 발표되고 이에 여러 사음의 범포(犯逋)도 모두 면제되거늘, 원일이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나로 인하여 까다로운 궁폐(宮弊)가 없어지고 여러 마름들이 모두 살길을 얻었다.” 하더라.
역둔토(驛屯土): 역의 경비를 충당하는 역토와, 역에 주둔하는 군대가 경작하는 둔전을 아울러 이르는 말. 신원일은 궁중의 가마, 말, 목장에 관한 일을 맡아 관아의 경비를 조달하는 사복둔의 사음이었다.
도조(賭租) 수십 석을 사사로이: 신원일은 경자(1900)년 당시 세금을 5년 동안 미납하였는데 이는 부안군에서 가장 큰 액수임을 정부기록문서에서 알 수 있다.
잡세혁파(雜稅革罷)의 조칙(詔勅)이 발표되고: 병오(1906)년 2월 17일 고종이 조칙으로 발표한 ‘잡세혁파’다.
여러 사음의 범포(犯逋)도 모두 면제되거늘: 국고에 바칠 돈이나 곡식을 끌어 써 버림.
道典 3:174) 동학 신앙 때 천상보좌의 상제님을 알현한 김경학
김경학(金京學)은 태인 사람으로 대부호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하며 학문에 열중하더니 동학 접주였던 셋째 형 경은(景恩)을 따라 동학을 신앙하니라. 그 후 칠보산 줄기인 태자봉 아래 백암리(白岩里)로 이거하여 훈장을 하다가 47세에 상제님을 뵙고 따르게 되니라.
일찍이 경학이 석 달 동안 시천주주(侍天主呪) 수련을 하던 중 꿈에 천상에 올라가 옥황상제(玉皇上帝)를 뵈온 일이 있었는데
하루는 상제님께서 이르시어 “네 평생에 제일 좋은 꿈을 꾼 것을 기억하느냐?” 하고 물으시거늘, 경학이 일찍이 상제님을 뵙던 꿈을 아뢰며 “선생님의 형모가 곧 그때 뵌 상제님의 형모이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고 아뢰니 증산 상제님께서 여러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로 옥황상제니라.” 하시니라. 경학은 상제님을 만난 후로 오직 상제님께 절을 올릴 뿐 다른 곳에 가서는 절을 하지 않으니라.
김경학(金京學, 1862∼1947): 본관 김해. 족보명 연상(演相), 자(字) 경학(景學), 호는 시은(市隱). 경학(京學)은 도명(道名)이다. 부 형태(瀅兌)와 모 김씨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부인 은(殷)씨와의 사이에 용주(龍胄) 등 3남 1녀를 두었다. 13대째 원백암 마을에서 살며 어릴 때 김경학 성도를 직접 본 박기만(1927∼ )의 증언에 의하면, 키가 크고 풍채가 좋으며 얼굴 혈색이 좋고 하얀 수염이 길게 난 멋쟁이 노인이었다고 한다.
김경학(金京學)은 태인 사람으로 대부호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김경학 성도의 맏형은 태인 칠천 석 중 이천 석을 경영하였으며 집도 2,700평으로 태인에서 가장 컸다.(김경학 성도 둘째 형의 손자 김완수(1933~ ) 증언)
칠보산: 정읍시 칠보면, 북면, 상동에 걸친 산(472m). 일곱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칠보임학(七寶林壑)이라 하여 산세가 수려하고 골이 깊다.
道典 3:175) 그 날로 상제님을 따르니라
상제님께서 백암리 김경학의 집에 계실 때 하루는 사랑에서 “물 한 그릇 떠 오너라.” 하시어, 그 물을 문밖에 뿜으시며 “해인사에서 큰불이 날 것을 껐느니라.” 하시니라. 또 어느 날 아침에 문득 문을 열고 산을 쳐다보시더니 “아, 여기도 명당 하나가 있구나.” 하시거늘, 경학이 “명당을 가르쳐 주시면 그곳에다 묘를 쓰겠습니다.” 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묘를 쓴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하시니라.
하루는 경학을 조용히 방 안으로 부르시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물으시기를 “경학아, 네 재산이 얼마나 되느냐?” 하시니, 경학이 “한 삼백 석 거리는 됩니다.” 하고 대답하거늘, 말씀하시기를 “돈이 많으면 돈에 정신이 팔려 나의 도를 믿지 않게 되나니 나를 좇으려면 먼저 망하고 들어서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이에 경학이 작심하여 삼백 석지기 논을 팔아 성금으로 바치고, 그 날로 아예 걷어붙이고 상제님을 따르니라.
道典 3:173) 천륜을 버린 여자에게 벼락을 내리심
상제님께서 이치안의 집에 계실 때 수차 구릿골을 왕래하시는데 하루는 치안과 그의 아들 직부를 데리고 구릿골로 떠나시니라.
이른 새벽에 일행이 금구에 이르러 숙호재 주막을 지날 때 한 젊은 여자가 머리를 푼 채 보따리를 안고 주위를 살피며 황급히 걸어가거늘 문득 상제님께서 노기를 띠시며 “저런 괘씸한 년이 있나!” 하고 소리치시니라.
직부가 놀라 여쭈기를 “어이하여 그렇게 역정을 내십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저년이 젖먹이 어린것을 떼 놓고 샛서방을 보아 야반도주한다. 저런 것은 내 용서할 수 없다.” 하시고 주막의 주모를 불러 “벼루하고 종이 좀 가지고 오라.” 하시어 부를 그려 불사르시니 곧이어 천둥과 번개가 일어나더라.
얼마 후 산에서 나무꾼들이 서로 부축하여 내려오는지라 직부가 연유를 물어보니 방금 내려친 벼락에 나무꾼들이 허리와 다리를 다쳤다고 하거늘, 상제님께서 “너희들 참 안됐구나. 이리 오너라.” 하시어 환부를 만져 주시고 친히 ‘후’ 하고 불어 주시니 금세 나으니라. 이에 나무꾼들이 감사드리며 여쭈기를 “오다가 놀라운 일을 보았습니다.
방금 고개에서 여자 하나가 벼락에 맞아 타 죽었습니다.” 하는데, 그 때 한 노파가 쫓아와 묻기를 “여기 계신 양반들, 젊은 여자 하나가 보따리 안고 가는 것 못 보셨소? 제 며느리가 아들을 낳은 지 이레가 못 되어 어젯밤에 남편이 죽었는데 초상도 치르기 전에 갓난애를 버리고 집을 나갔다오.” 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 고개 위에 불에 탄 시체가 있을 테니 가져다 양지 밭에 묻어나 주게.” 하시니라.
인정상 차마 못할 일
잠시 후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일은 실로 인도상 용서치 못할 죄악이니라. 더구나 그 작배(作配)는 저희들끼리 스스로 지은 것이라 하니 대저 부모가 지어 준 것은 인연(人緣)이요, 스스로 지은 것은 천연(天緣)이라. 인연은 오히려 고칠 수 있으되 천연은 고치지 못하는 것이거늘 이제 인도에 거스르고 천연의 의를 저버리니 어찌 천벌이 없으리오.
남편이 죽어 하루 만에 장사도 치르지 않고 젖먹이를 버리고 다른 데로 감은 천하의 대패륜이요, 인정상 차마 못할 일이라 내가 벼락을 써서 죽였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6:11) 하루는 형렬이 상제님께서 출세하실 때를 여쭈니 “응.” 하시고 “나의 말을 듣기가 어렵다.” 하시며…, 똑똑히 들어 두어라. 내가 도솔천궁에 있다가 서양 대법국 천개탑으로 내려와 모악산 금산사 삼층전에 머물며 경주용담 구경하고, 고부 객망리 강씨 문중에 탄생하여 기해년에 포(胞)하고 경자년에 득천문(得天文)하고
신축년에 대원사에서 도통하고, 임인년에 너와 상봉하고 계묘년 봄에 동곡에 들었노라. 나의 말은 쌀에서 뉘 가리기와 같으니라. 알아듣겠느냐? 알기 쉽고 알기 어렵고 두 가지다. 알아듣겠느냐? 우리 일은 쉽고도 어려운지라, 알고도 어렵고 모르고도 쉬우니라. 똑똑한 것이 병통이니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 아는 것도 병이 되느니라.” 하시니라.
서양 대법국(大法國) 천개탑(天蓋塔): 대법국은 로마의 바티칸 시국(市國), 천개탑은 교황청의 중심 건물인 베드로 성당을 말한다. 기독교 문명을 서양으로 전파한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당이므로 천개탑이라 한다.
모악산 금산사 삼층전에 머물며: 금산사(大金山寺) 백제 법왕 원년(599)에 지명법사(智明法師)가 창건, 신라 경덕왕 21년(762)에 진표율사(眞表律師)가 미륵전을 세움으로써 미륵신앙의 근본 도량이 되었다. 이후 임진왜란으로 절의 대부분이 소실되자 선조 34년(1601) 수문대사(守文大師)가 34년에 걸쳐 복원하였다. 현재 미륵전을 비롯해 대적광전, 대장전, 석연대, 육각다층석탑 등이 있다.
경주용담 구경하고: 동학의 창시자 최수운 선생이 상제님으로부터 천명(天命)을 받은 곳(천상문답天上文答)이 이루어진 곳.
임인년에 너와 상봉하고: 道典 2:15) 상제님께서 임인(壬寅 : 道紀 32, 1902)년 4월 13일에 전주 우림면 하운동(全州 雨林面 夏雲洞) 제비창골 김형렬의 집에 이르시니라. 이 때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심회를 푸시고 형렬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나는 본래 서양 대법국(大法國) 천개탑(天蓋塔)에 내려와 천하를 두루 살피고,
동양 조선국 금산사 미륵전에 임하여 30년 동안 머물다가 고부 객망리 강씨 문중에 내려왔나니, 이제 주인을 심방함이니라.” 하시고, “시속에 ‘아무 때 먹어도 김가가 먹을 밥’이라는 말이 있나니, 대저 무체(無體)면 무용(無用)이라. 서(西)는 금(金)인 고로 김(金)씨에게 주인을 정하였노라.” 하시니라.
이로부터 형렬의 집에다 식주인(食主人)을 정하고 머무르시면서 도문(道門)을 열어 천지공사를 행하실 때, 형렬에게 신안(神眼)을 열어 주시어 신명(神明)이 모이고 흩어지는 것과 어명(御命)을 받드는 모습을 참관케 하시니라. 형렬이 모시면서 보니 밤이면 상제님께서 기거하시는 방에서 ‘웅웅웅’ 하고 벌이 나는 듯한 소리가 나더라.
무체(無體)면 무용(無用)이라: 천지의 모든 변화는 그 근원이 없으면 작용할 수 없다는 뜻으로, 변화의 본체와 본체의 구체적인 작용과의 일체적 상관관계를 말씀하신 것이다.
서(西)는 금(金)인 고로 김(金)씨에게 주인을: 상제님께서는 가을 기운인 금(金)기운을 취하시어 김형렬 성도를 식주인(食主人)으로 정하시고 금산(金山), 김제(金堤), 동곡(銅谷) 등을 천지공사의 주무대로 삼으셨다. 또한 김형렬 성도를 4월 4일 원평 장터에서 만나시고 충청도에 들러 9일간 공사 보신 후 4월 13일에 다시 그의 집을 찾으신 것도 ‘4·9金’ 원리에 따른 것이다.
계묘년 봄에 동곡에 들었노라: 道典 5:347) 인류가 앓고 있는 병의 대세
병유대세(病有大勢)하고 병유소세(病有小勢)하니, 대병(大病)은 무약(無藥)하고 소병(小病)은 혹유약(或有藥)이라
병에는 큰 병세가 있고, 작은 병세가 있나니, 큰 병은 약이 없고, 작은 병은 혹 약이 있으나
연(然)이나 대병지약(大病之藥)은 안심안신(安心安身)이요, 소병지약(小病之藥)은 사물탕팔십첩(四物湯八十貼)이라
대병을 고치는 약은 마음과 몸을 편히 하는 데 있고, 작은 병의 약은 사물탕 팔십 첩이니라.
祈 禱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至氣今至願爲大降이라
기 도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 지기금지원위대강
대병(大病)도 출어무도(出於無道)하고 소병(小病)도 출어무도(出於無道)하니, 득기유도(得其有道)면 측대병(則大病)도 물약자효(勿藥自效)하고 소병(小病)도 물약자효(勿藥自效)니라
큰 병도 무도無道에서 비롯하고, 작은 병도 무도無道에서 생기나니, 도를 얻으면 큰 병도 약 없이 스스로 낫고, 작은 병도 약 없이 스스로 낫느니라.
왜 의통성업으로 세상을 끝막는가
의 통(醫 統) 망기군자무도(忘其君者無道)하고 망기부자무도(忘其父者無道)하고 망기사자무도(忘其師者無道)하니, 세무충(世無忠) 세무효(世無孝) 세무열(世無烈)이라 시고(是故)로 천하(天下)가 개병(皆病)이니라
임금에게 입은 은덕을 잊은 자도 도리에 어긋난 자요, 어버이에게 입은 은덕을 잊은 자도 도리에 어긋난 자요, 스승에게 입은 은덕을 잊고 배반하는 자도 도리에 어긋난 자이니, 세상에 충(忠)도 없고, 효(孝)도 없고, 열(烈)도 없는 고로, 천하가 모두 병들어 있느니라.
병 세(病 勢) 유천하지병자(有天下之病者)는 용천하지약(用天下之藥)이라야 궐병(厥病)이 내유(乃癒)니라
천하의 병을 가진 사람은 천하의 약을 써야 그 병이 낫느니라.
성 부(聖 父) 성 자(聖 子) 성 신(聖 神) 원형이정봉천지도술약국(元亨利貞奉天地道術藥局) 재전주동곡생사판단(在全州銅谷生死判斷) 천지의 정신인 원형이정의 도를 바탕으로 천지를 받드는 도술약국이라, 전주 동곡에서 천하 사람의 생사 판단을 하느니라.
무병의 길
대인대의(大仁大義)는 무병(無病)이니라
대인대의하면 병이 없느니라.
삼계복마대제신위(三界伏魔大帝神位)는 원진천존관성제군(遠鎭天尊關聖帝君)이라
오직 대세에 눈떠야 산다
지천하지세자(知天下之勢者)는 유천하지생기(有天下之生氣)하고, 암천하지세자(暗天下之勢者)는 유천하지사기(有天下之死氣)니라. 천하대세를 아는 자에게는 살 기운(生氣)이 붙어 있고, 천하대세에 어두운 자에게는 천하의 죽을 기운(死氣)밖에는 없느니라.
동유대성인(東有大聖人)하니 왈동학(曰東學)이요, 서유대성인(西有大聖人)하니 왈서학(曰西學)이라 도시교민화민(都是敎民化民)이니라. 동방에 대성인이 있으니 곧 동학이요, 서방에 대성인이 있으니 곧 서학이라. 이는 모두 창생을 교화하는 데 그 사명이 있느니라.
공자(孔子)는 노지대사구(魯之大司寇)요 孟子(맹자)는 선세제량지군(善說齊梁之君)이라
공자는 노나라에서 대사구 벼슬을 하였고, 맹자는 제나라와 양나라의 군주에게 유세를 잘 하였느니라.
근일일본국문신무신(近日日本國文神武神)이 병무도통(竝務道統)이니라
근일 일본의 문신과 무신들이 모두 도를 받아 문명을 여는 데 힘쓰고 있느니라.
제 뿌리를 못 찾고 환부역조하는 조선인을 경계하심
조선국(朝鮮國) 상계신(上計神) 중계신(中計神) 하계신(下計神)이 무의무탁(無依無托)하니 불가불(不可不) 문자계어인(文字戒於人)이니라. 조선국 상계신(환인) 중계신(환웅) 하계신(단군)이 몸 붙여 의탁할 곳이 없나니 환부역조하지 말고 잘 받들 것을 글로써 너희들에게 경계하지 않을 수 없노라.
성인의 직업은 의통
궁상각치우(宮商角徵羽)는 성인(聖人)이 내작(乃作)이라 선천하지직(先天下之職)하고 선천하지업(先天下之業)하니, 직자(職者)는 의야(醫也)요 업자(業者)는 통야(統也)니 성지직(聖之職)이요 성지업(聖之業)이니라
궁상각치우의 오음은 자연의 소리(율려)를 듣는 성인이 지은 것이라. 성인은 천하의 직책과 천하의 업무를 우선으로 삼나니 천하의 직은 병들어 죽어 가는 삼계를 살리는 일(醫)이요, 천하의 업은 삼계문명을 통일하는 일(統)이니라. 성스러운 직職이요 성스러운 업業이니라.
도솔천궁(兜率天宮): 미륵불이 머무시는 천상의 정토(淨土)세계로 외원·내원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내원궁은 보살들이 중생 교화를 위해 하생을 준비하는 곳이다. 상계(上界)의 하늘들은 너무나 고요하여 대개 다시 태어나 자비를 내려 하지 않으나 중생을 끝까지 교화하려는 보살들은 굳이 도솔천에 강생하여 법을 받으려 한다. ‘天開於子-地闢於丑-人起於寅-物生於卯’ 하는 천지의 개벽 시간대 원리에 맞추어 하신 말씀이다.
道典 2:13) 천지만물이 나로부터 다시 새롭게 된다
상제님께서 객망리로 돌아오신 후, 집안 대대로 전하여 오던 진천군 교지(敎旨)와 공명첩(空名帖), 족보, 문집 등 일체의 문서와 서책을 가져다 불사르시며 “내 세상에는 천하의 모든 성씨(姓氏)의 족보를 다시 시작하리라.” 하시니 부모님과 수십 호 문중의 노소가 모여들어 만류하는지라. 상제님께서 “앞세상에는 이런 것에 의지해서는 아니 됩니다.” 하시고
“유도(儒道)의 구습을 없애고 새 세상을 열어야 할진대 유도에서는 범절(凡節)밖에 취할 것이 없도다.”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모든 것이 나로부터 다시 새롭게 된다.”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에 내려오면서 하늘과 땅의 정사(政事)를 천상의 조정(天朝)에 명하여 다스리도록 하였으나 신축년 이후로는 내가 친히 다스리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5:121) 조선 국운 수습과 천하대운을 정하심
하루는 상제님께서 구릿골에 머무르시며 갑칠에게 명하시어 “남원 김병선(金炳善)에게 가서 돈 사백 냥을 가져오라.” 하시니라. 2월에 대공사를 행하시려고 서울로 떠나시며 말씀하시기를 “전함을 순창(淳昌)으로 돌려 대리니 형렬은 지방을 잘 지켜 모든 일에 소홀히 임하지 말라.” 하시고, 또 여러 성도들에게 명하시기를 “이 일은 천하의 대운(大運)을 정하는 일이니 깨끗한 종이에 각기 소원을 기록하라.” 하시어 그 종이로 안경을 싸 넣으시니라.
이어 상제님께서는 정남기, 정성백, 김갑칠, 김광찬, 김병선 등을 데리고 군산으로 가서 배를 타기로 하시고, 신원일과 김선경, 김보경, 김봉규와 그 외 한 사람에게 “태전(太田)으로 가서 기차를 타라.” 하고 명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 조선의 국운을 바로잡으려 하나니 이는 수륙병진(水陸幷進)이니라.” 하시니라. 다시 원일에게 명하시기를 “너는 먼저 서울에 들어가 ‘천자부해상(天子浮海上)’이라 써서 남대문에 붙이라.” 하시니 원일이 명을 받아 일행을 거느리고 태전으로 떠나니라.
道典 5:122) 군산에서 배를 타고 서울로 가심
상제님께서 일행을 거느리고 군산으로 떠나실 때 김병선에게 명하시어 글 한 수를 외우게 하시니 이러하니라.
永世花長乾坤位요 大方日明艮兌宮이라
영원한 평화의 꽃은 건곤위에서 길이 만발하고, 대지 위의 태양은 간태궁을 밝히리라. 군산에 이르시어 성도들에게 물으시기를 “속행이 가할까, 완행이 가할까?” 하시니 모두가 대답하기를 “속행하여이다.” 하거늘 갑칠에게 “일인당 오매(烏梅) 한 개씩 준비하게 하라.” 하시고 윤선에 오르시니라.
일후에는 어찌할까
이어 상제님께서 부(符)를 써서 불사르시매 바람이 크게 일어나고 천지가 진동하거늘, 배 안의 사람들이 모두 혼비백산하여 쓰러지며 “선생님 살려 주십시오.” 하고 소리치니 “아직 큰 줄을 놓지도 아니했는데 야단치느냐. 일후에는 어찌할까.”하시며 오매를 입에 물게 하시어 안정시키시니라.
건곤이 바로잡히니 영원한 평화의 꽃 만발하고 간태궁이 자리잡히니 대지에는 광명이 충만하다는 말씀. 간태궁은 후천세계의 문화를 창조하고 조화를 이끌어갈 정역 변화의 동서궁(東西宮)이다.
오매. 껍질을 벗기고 짚불 연기에 그슬러 말린 매화나무의 열매.
道典 5:123) 북방은 살아남을 자가 없으리라
이 날 밤, 종이에 싼 안경을 꺼내시어 종이 심지로 코를 찔러 피를 낸 다음 그 피를 안경알에 발라 다시 종이로 싸신 뒤에 갑칠에게 주시며 명하시기를 “이것을 북쪽을 향하여 바다에 던지라.” 하시니라. 이에 갑칠이 뱃머리에 올라가 보니 밤이라 천지가 혼돈하여 남북을 분별할 수 없으매 한참을 머뭇거리거늘, 다시 불러들여 물으시기를 “왜 빨리 던지지 않느냐?” 하시니
“먹구름이 가득 덮여 방향을 분별치 못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하는지라 말씀하시기를 “번개 치는 곳으로 던지라.” 하시니라. 갑칠이 다시 갑판 위에 올라가 살피니 별안간 번개가 치거늘 그 방향으로 던져 놓고 들어오니 일시에 풍파와 벽력이 그치고 바다가 잔잔해지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후에 북방에는 살아남을 자 없으리라.” 하시니라. 이튿날 인천에 당도하여 보니 배에 ‘연(蓮)’이라 써 붙이셨더라. 곧 기차로 바꾸어 타고 서울에 이르시어 “각기 담배를 끊으라.” 하시고, 광찬의 인도로 황교(黃橋)에 사는 그의 종제 영선(永善)의 집에 드시니 원일 일행이 먼저 당도하여 있더라.
황교. 서울시 종로구 원남동에 있었던 다리. 황 참의(參議)가 사재를 들여서 놓았다 하여 황참의 다리, 또는 황교라 했다.
김영선(金永善, 1871∼1956). 본관 김해. 남원에서 출생, 어려서 아우 창선(昌善)과 가출하여 서울로 올라가 내무부에서 근무하였다. 1938년까지 서울 황교에서 유족하게 살았으며 이후 남원으로 내려가 세도가로 이름을 날렸다. 김병욱 성도를 잡으러 남원으로 내려간 무관이 바로 그 아우 창선이다.
道典 5:124) 온 장안 인심이 들끓는지라
상제님 일행이 서울에 도착하여 보니 원일이 아직 글을 붙이지 못한지라 상제님께서 “즉시 가서 붙이라.” 하고 추상같이 명하시니 모두 크게 놀라거늘, 원일이 곧 써서 붙이니 갑자기 명랑하던 날씨가 변하여 가랑비가 내리니라. 상제님께서 이를 바라보시고 “하늘이 응기(應氣) 아니 할 수 있나.” 하시니 즉시 온 장안이 소란하여지고 인심이 들끓거늘 관헌들이 집집마다 조사하며 이상한 분위기를 은밀히 탐지하니라.
이 때 관헌들이 여관에 와서 상제님과 성도들을 심문하거늘 상제님께서 성도들을 가리키며 말씀하시기를 “저 사람들과 동행하여 서울 구경하러 왔노라.” 하시고, 술을 불러 관헌들을 대접하시며 “그대도 조선인 나도 조선인, 무슨 관계가 있으리오.” 하시니 더 의심치 않고 돌아가니라.
道典 5:125) 조선 국운을 거두심
그 뒤에 서울 황교에 머무르시며 천지대신문을 열고 대공사를 행하시니 성도들은 명에 따라 담배를 금하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 여러 날 동안 신명들에게 칙령을 내리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 조선의 국운을 거두어 잠시 일본에 맡기려 하노니 최수운이 보증을 서리라.” 하시거늘, 한 성도가 여쭈기를 “지금 조선의 운을 거두시니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하늘의 정사(天政)가 동방에 있건만 수운이 죽음을 당하고 국운은 다하여 백성이 하늘에 호소하기 때문이니라.” 하시니라. 이에 그 성도가 다시 “최수운의 죽음이 어찌하여 그렇게 큰일이 되옵니까?”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선천의 모든 일이 그대로 인간 세상에 재앙을 일으키면 천하를 건지기 어려우므로 천지신명들이 구천(九天)에 있는 나에게 호소하매
내가 차마 물리치지 못하고 어찌할 수 없이 세상에 내려오면서 수운으로 하여금 내가 장차 세상에 내려옴을 알리게 하였더니 조선 조정이 그를 죽였으므로 천지의 모든 신명들이 분노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최수운 대성사는 상제님께 직접 천명과 신교를 받은 뒤, 상제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무극대도를 열고 천지를 개벽하시어 새 세상을 열어 주신다는 것을 선언하였다. 선천의 석가, 예수 이상의 천명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2천 년 열국 분열 시대 이후 수립된 외래사상에 찌들어 있던 조선의 묵은 정신이 그를 죽였다.
道典 5:164) 조선이 서양에 넘어가면 다시 올 날 없다
정미(丁未 : 道紀 37, 1907)년에 하루는 전주 용머리고개에서 공사를 행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조선 강토가 서양으로 둥둥 떠 넘어가는구나.” 하시고 성도들에게 물으시기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하시니 김공선(金公先)이 아뢰기를 “운세(運勢)가 부득이하면 일본에 의탁하는 것이 좋은 방편일 듯하옵니다.” 하거늘, 말씀하시기를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지역별로 동양에 붙여 두면 다시 올 날이 있으리라. 그러나 만약 서양으로 가면 다시 올 날이 없으리라.” 하시니라.
道典 5:165) 대전쟁 도수 : 천하대세를 잘 살피라
하루는 원평 김명보(金明甫)의 주점에 이르러 미리 준비된 황구(黃狗) 한 마리로 개장국을 끓여 술과 함께 잡수시고 성도들에게 “구미산(龜尾山)에 오르라.” 하신 후에 상제님께서는 유문거리를 돌아서 구미산에 올라 물으시기를 “지금 어느 때나 되었느냐?” 하시니 한 성도가 “정오시쯤 되었을 듯합니다.” 하고 아뢰니라.
이 때 김자현(金自賢)이 문득 시장 쪽을 바라보며 아뢰기를 “장꾼들이 대가리놀음을 합니다.” 하거늘 성도들이 모두 장터를 바라보니 장꾼들이 남녀 할 것 없이 서로 멱살을 잡고 머리를 부딪치고 상대가 없으면 아무 기둥이나 벽에다 자기 머리를 들이받기도 하니라.
이를 본 성도 하나가 상제님께 여쭈기를 “이것은 무슨 도수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전쟁 도수니라. 내가 한날 한시에 전 세계 사람들을 저와 같이 싸움을 붙일 수 있노라. 부디 조심하라. 나의 도수는 밖에서 안으로 욱여드는 도수이니 천하대세를 잘 살피도록 하라.” 하시니라.
이 때 한 성도가 여쭈기를 “오시(午時)에 공사를 보셨으니 오시에 전쟁이 나겠습니까?” 하거늘, 상제님께서 “그것은 너희들이 잘 생각해 보아라.” 하시니라. 공사를 마치신 뒤에 원평장의 아낙들이 밥을 하려고 보니 솥뚜껑이 모두 솥 안으로 들어가 있거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르기를 “신의 조화로다.” 하니라.
밖에서 안으로 욱여드는 도수. 선천(봄·여름)은 양도(陽道)·건도(乾道)로서 분열·생장하는 때이다. 따라서 성장과 발전의 방향이 아래에서 위로, 중심에서 바깥으로 향해 간다. 그러나 후천(가을·겨울)은 음도(陰道)·곤도(坤道)이므로 밖에서 중심으로, 위에서 아래로 만물을 수렴해 간다. 때문에 상제님께서는 모악산과 회문산을 부모산으로 하여 지구의 기령을 통일하는 공사를 보셨고, 현실 역사에서도 세상의 모든 문제가 상씨름판인 남조선의 삼팔선에서 매듭 짓게 된다.
道典 5:166) 관운장에게 세계 대전쟁의 천명을 내리심
4월에 신원일을 데리고 태인 관왕묘 제원(關王廟 祭員) 신경원(辛京元)의 집에 머무르실 때, 하루는 원일, 경원과 함께 관왕묘에 가시어 관운장(關雲長)에게 천명을 내리시며 공사를 행하시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동양에서 서양 세력을 몰아내고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한 약소국을 건지려면 서양 열강 사이에 싸움을 일으켜야 하리라.
관운장이 조선에 와서 극진한 공대를 받았으니 그 보답으로 당연히 공사에 진력 협조함이 옳으리라.” 하시고, 양지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며 관운장을 초혼하시니 경원은 처음 보는 일이므로 이상히 생각하니라. 이 때 자못 엄숙한 가운데 상제님께서 세계대세의 위급함을 설하시고 서양에 가서 대전쟁을 일으키라는 천명을 내리시거늘, 관운장이 감히 거역할 수는 없으나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아 머뭇거리는지라
상제님께서 노기를 띠시며 “때가 때이니만큼 네가 나서야 하나니 속히 나의 명을 받들라. 네가 언제까지 옥경삼문(玉京三門)의 수문장 노릇이나 하려느냐!” 하고 엄중히 꾸짖으시니라. 관운장이 그래도 대답을 아니하매 상제님께서 관운장의 수염을 휙 잡아당기시고 옷을 찢어 버리시니
이 때 조상(彫像)에서 삼각수(三角鬚) 한 갈래가 바닥에 떨어지니라. 이렇게 하룻밤을 지새시며 ‘이놈, 저놈’ 하고 불호령을 내리시거늘 관운장이 마침내 굴복하고 상제님의 명을 받들어 서양으로 가니라. 이후에 김경학(金京學), 최창조(崔昌祚), 최내경(崔乃敬), 최덕겸(崔德兼) 등 태인 사람들이 상제님의 면모를 숭배하여 상제님을 따르니라.
여기서 무슨 제사를 지내느냐
그 뒤에 하루는 상제님께서 김성연(金成淵)과 함께 말을 타고 관왕묘에 이르시어 말씀하시기를 “내가 관운장을 서양으로 보냈는데 여기서 무슨 제사를 지내느냐.” 하시고, 성냥을 그어 관왕묘에 불을 지르려 하시다가 성연의 간곡한 만류로 그만두시니라.
태인 관왕묘. 정읍시 태인면 태흥리 항가산에 있었으나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1891년에 전(前) 참봉 송석진의 꿈에 백마를 탄 관운장이 며칠 동안 나타나, 그가 살고 있는 집을 가리키며 “이 자리에 있고 싶다.” 하여 창건하게 되었다고 한다. 공자묘를 문묘(文廟)라 하는 데 비해 관성제군의 묘는 무묘(武廟)라 한다.
관운장은 의리와 용맹의 표상으로 그의 대인대의(大仁大義)를 기려 역대 왕조에서 거룩할 성(聖), 임금 제(帝), 임금 군(君) 자(字)를 놓아 성제군(聖帝君)으로 추앙해 왔다. 우리 민족이 관운장을 경애하여 잘 받들어 주어 관운장이 삼보조선(三保朝鮮)한다는 말이 전해 온다.
道典 5:164) 조선이 서양에 넘어가면 다시 올 날 없다
정미(丁未 : 道紀 37, 1907)년에 하루는 전주 용머리고개에서 공사를 행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조선 강토가 서양으로 둥둥 떠 넘어가는구나.” 하시고 성도들에게 물으시기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하시니 김공선(金公先)이 아뢰기를 “운세(運勢)가 부득이하면 일본에 의탁하는 것이 좋은 방편일 듯하옵니다.” 하거늘, 말씀하시기를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지역별로 동양에 붙여 두면 다시 올 날이 있으리라. 그러나 만약 서양으로 가면 다시 올 날이 없으리라.” 하시니라.
서양으로 넘어가는 동양을 붙들어 주심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동학(東學) 신도들이 안심가(安心歌)를 잘못 해석하여 난을 지었느니라. 일본 사람이 3백 년 동안 돈 모으는 공부와 총 쏘는 공부와 모든 부강지술(富强之術)을 배워 왔나니 너희들은 무엇을 배웠느냐. 일심(一心)으로 석 달을 못 배웠고 삼 년을 못 배웠나니 무엇으로 그들을 대항하리오...
이제 최수운(崔水雲)을 일본 명부, 전명숙(全明淑)을 조선 명부, 김일부(金一夫)를 청국 명부, 이마두(利瑪竇)를 서양 명부로 정하여 각기 일을 맡겨 일령지하(一令之下)에 하룻저녁으로 대세를 돌려 잡으리라. 이제 동양의 형세가 누란(累卵)과 같이 위급하므로 내가 붙들지 않으면 영원히 서양으로 넘어가게 되리라.” 하시니라.
동학(東學) 신도들이 안심가(安心歌)를 잘못 해석하여 난을 지었느니라: 「안심가」는 최수운이 지은 9편의 가사 가운데 하나다. 동학 신도들은 「안심가」의 “개 같은 왜적놈을 한울님께 조화 받아 일야 간에 소멸하고”라는 구절을 잘못 해석하여 그들의 손으로 일본을 물리친다고 생각했다.
道典 5:166) 관운장에게 세계 대전쟁의 천명을 내리심
4월에 신원일을 데리고 태인 관왕묘 제원(關王廟 祭員) 신경원(辛京元)의 집에 머무르실 때, 하루는 원일, 경원과 함께 관왕묘에 가시어 관운장(關雲長)에게 천명을 내리시며 공사를 행하시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동양에서 서양 세력을 몰아내고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한 약소국을 건지려면 서양 열강 사이에 싸움을 일으켜야 하리라.
관운장이 조선에 와서 극진한 공대를 받았으니 그 보답으로 당연히 공사에 진력 협조함이 옳으리라.” 하시고, 양지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며 관운장을 초혼하시니 경원은 처음 보는 일이므로 이상히 생각하니라.
여기서 무슨 제사를 지내느냐
그 뒤에 하루는 상제님께서 김성연(金成淵)과 함께 말을 타고 관왕묘에 이르시어 말씀하시기를 “내가 관운장을 서양으로 보냈는데 여기서 무슨 제사를 지내느냐.” 하시고, 성냥을 그어 관왕묘에 불을 지르려 하시다가 성연의 간곡한 만류로 그만두시니라.
태인 관왕묘. 정읍시 태인면 태흥리 항가산에 있었으나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1891년에 전(前) 참봉 송석진의 꿈에 백마를 탄 관운장이 며칠 동안 나타나, 그가 살고 있는 집을 가리키며 “이 자리에 있고 싶다.” 하여 창건하게 되었다고 한다. 공자묘를 문묘(文廟)라 하는 데 비해 관성제군의 묘는 무묘(武廟)라 한다.
관운장은 의리와 용맹의 표상으로 그의 대인대의(大仁大義)를 기려 역대 왕조에서 거룩할 성(聖), 임금 제(帝), 임금 군(君) 자(字)를 놓아 성제군(聖帝君)으로 추앙해 왔다. 우리 민족이 관운장을 경애하여 잘 받들어 주어 관운장이 삼보조선(三保朝鮮)한다는 말이 전해 온다.
道典 5:23) 조선 신명을 서양으로 보내 대역사를 시키심
계묘년 3월에 상제님께서 형렬과 여러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옛적에는 동서양 교통이 없었으므로 신명들이 서로 넘나들지 못하였으나 이제 기차와 윤선으로 수출입하는 화물의 물표를 따라 서로 통하게 되었나니 조선 신명을 서양으로 보내어 역사(役事)케 하리라.” 하시니라. 이에 한 성도가 “조선 신명에게 서양을 맡기심은 무슨 까닭입니까?”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조선 신명을 서양으로 보내어 천지에 전쟁을 붙이는 일꾼으로 쓰려 하노라.” 하시고, 이어서 “이제 재주(財主)를 얻어 길을 틔워야 할지니 재주를 천거하라.” 하시거늘, 이 때 마침 김병욱(金秉旭)이 전주 부호 백남신(白南信)을 천거하니라.
세계 전쟁 공사의 녹줄을 끄르심
그 후에 상제님께서 남신을 대하여 물으시기를 “가진 재산이 얼마나 되느냐?” 하시니 남신이 “삼십만 냥은 됩니다.” 하고 대답하거늘, 말씀하시기를 “이십만 냥으로 그대의 생활이 넉넉하겠느냐?” 하시매 남신이 “그러합니다.” 하고 아뢰니라. 상제님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이제 쓸 곳이 있으니 돈 십만 냥을 들이겠느냐?” 하시니,
남신이 한참 생각하다가 여쭈기를 “칠만 냥을 드리면 어떠하겠습니까?” 하거늘, 말씀하시기를 “불가하니라. 반드시 십만 냥이 있어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이에 남신이 아뢰기를 “십만 냥을 채우려면 서울 집까지 팔아야 하겠습니다. 현재는 가진 돈이 없사오니 곧 정리하여 올리겠습니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열흘 내로 들이게 하라. 어음으로 하여도 무방하리라.” 하시니, 남신이 열흘 내에 어음 십만 냥을 상제님께 바치겠다는 증서를 써서 올리니라. 상제님께서 그 증서를 받아 병욱에게 맡기시니 병욱이 “두 분 다 희세의 대량(大量)이로다!” 하고 탄복하더라.
천지신명의 세계 차원에서 지구촌의 역사 질서를 개편하는 주역은 증산 상제님의 천명을 받고 움직이는 조선의 대신명들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도의 역사를 현상의 인류사에 합일시켜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김병욱(金秉旭, 1874∼1938). 본관 김해. 서원규와 친하여 계묘년에 서원규의 약방에 가 있던 중 상제님을 뵙고 따르게 되었다. 이후 자신의 상관이었던 백남신 성도의 친가 막내동생에게 자신의 딸을 출가시켰다.
백남신(白南信, 1858∼1920). 본관 수원. 갑진 7월에 육군 참령으로 전주진위대 대장에 임명되어 육군 부령(副領, 지금의 중령)까지 진급하였고 종2품 가의(嘉義)에 올랐으며 정미년 군대 해산 때 해직되었다. 해마다 부채 3만 자루(당시 5만 냥에 상당)를 수십 마리의 말에 실어 왕궁에 상납하던 전주 토호로서 한말의 한지 대왕(韓紙大王)이었다
道典 5:24) 당분간 세계 경제의 녹줄은 서양에 두심
이어 부안(扶安) 바닷가에 가시어 많은 글을 써서 공사를 행하시고 병욱에게 맡겼던 증서와 함께 불사르시며, “지금 조선 신명을 서양으로 보내면 나중에 배에 실려 오는 화물표를 따라 다시 돌아오게 되리라.” 하시니라. 그 후 기한이 이르매 남신이 어음 열두 장으로 십만 냥을 드리니 이를 받아 무릎에 놓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재주(財主) 기운을 서양에다 두노니 후일에 서양으로부터 재물을 보급 받으리라.” 하시고, 어음을 도로 돌려주시며 말씀하시기를 “그대의 돈은 이미 요긴하게 썼느니라.” 하시니라. 이에 남신이 현금으로 쓰지 않으심을 죄송히 여겨 여쭈기를 “현물 시세를 보아 무역하여 이익을 냄이 어떠하옵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그것은 모리배나 하는 짓이니 옳지 않으니라.” 하시고, 탄식하며 말씀하시기를 “남신의 일이 용두사미(龍頭蛇尾)와 같도다.” 하시니라.
道典 5:25) 조선은 주인 없는 빈집
이 때 상제님께서 여러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지방을 지키는 모든 신명을 서양으로 보내어 큰 전란(戰亂)을 일으키게 하였나니 이 뒤로는 외국 사람들이 주인 없는 빈집 드나들 듯하리라. 그러나 그 신명들이 일을 다 마치고 돌아오면 제 집 일은 제가 다시 주장하게 되리라.” 하시니라.
道典 5:177) 조선을 잠시 일본에 넘겨주어야
상제님께서 인경 위를 향하여 여러 말씀을 하시는데 성도들이 들으니 그 말씀의 뜻을 알 수 없고 조선말이 아닌 것 같더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조선을 잠시 다른 나라에 넘겨주고 천운(天運)을 기다리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조선을 서양으로 넘기면 인종이 다르므로 차별과 학대가 심하여 살아날 수 없을 것이요, 청국으로 넘기면 그 민중이 우둔하여 뒷감당을 못할 것이요,
일본은 임진란 후로 도술신명(道術神明)들 사이에 척이 맺혀 있으니 그들에게 넘겨주어야 척이 풀릴지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일본을 도와 잠시 천하통일(天下統一)의 기운과 일월대명(日月大明)의 기운을 붙여 주어 천하에 역사를 하게 하리라. 그러나 그들에게 한 가지 못 줄 것이 있으니 곧 어질 인(仁) 자라. 만일 어질 인 자까지 붙여 주면 천하는 다 저희들의 소유가 되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어질 인 자는 너희들에게 붙여 주리니 다른 것은 다 빼앗겨도 어질 인 자는 뺏기지 말라. 너희들은 편한 사람이요 저희들은 곧 너희들의 일꾼이니라. 모든 일을 분명하게 잘하여 주고 갈 때는 품삯도 못 받고 빈손으로 돌아가리니 말대접이나 후하게 하라.” 하시니라. 이어서 양지에 天下是非神淳昌運回라 쓰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공사의 결정으로 인하여 천하의 모든 약소민족도 조선과 같이 제 나라 일은 제가 주장하게 되리라.” 하시니라.
조선과 일본의 갈등은 신도(神道)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서구열강 제국주의의 밥이 되려 하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급박한 위기 상황에서 또 한 번의 난리를 치러야 하는 조선과 동양 민족의 운명을 읽어 주신 것이다.
道典 5:50) 일본을 서양 세력을 몰아내는 큰 일꾼으로 세우심
이 때 상제님께서 병욱에게 물으시기를 “일본과 러시아가 조선의 허약함을 틈타 서로 세력 다툼을 하는데, 조정에서는 당파가 나뉘어 누구는 일본과 친선하려 하고 누구는 러시아와 결탁하려 하니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하시니, 병욱이 대답하기를 “인종의 차별과 동서양의 구별이 있으니 일본과 친선하고 러시아를 멀리함이 옳겠습니다.” 하거늘
말씀하시기를 “네 말이 옳으니라. 이제 만일 서양 사람의 세력을 물리치지 않으면 동양은 영원히 서양에 짓밟히게 되리라. 그러므로 서양 세력을 물리치고 동양을 붙잡음이 옳으니 이제 일본 사람을 천지의 큰 일꾼으로 내세우리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의 화액을 끄르기 위하여 일러전쟁을 붙여 일본을 도와 러시아를 물리치려 하노라.” 하시니,
성도들이 그 말씀을 믿지 않고 서로 이르기를 “한 사람의 액을 끄르기 위해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을 붙인다 함도 그렇거니와 약소한 일본을 도와 천하에 막강한 러시아를 물리친다 하심은 더욱 터무니없는 말씀이라.” 하더라.
道典 5:52) 조선에 들어와 사역하는 일본 신명들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일본 사람으로 하여금 조선에 와서 천고역신(千古逆神)을 거느려 역사케 하느니라.
조선 개국 후로 벼슬하는 자들이 모두 정씨(鄭氏)를 사모하였나니 이는 곧 두 마음이라. 남의 신하로서 두 마음을 두면 이는 곧 적신(賊臣)이니, 그러므로 모든 역신(逆神)들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들도 두 마음을 품었으면서 어찌 역신을 그다지 학대하느냐.’ 하니 이로 인하여 저들이 일본 사람을 대하면 죄지은 자와 같이 두려워서 벌벌 떠느니라.” 하시니라.
조선 사람이 들어서 죽고 산다
또 말씀하시기를 “일본 사람이 뭐 한다고 해도 조선 사람 가운데 조조 간신이 있어서 그놈들이 좌지우지하지, 일본 사람이 이 조선에 대해 무엇을 아느냐? 조선놈이 다 시켜서 그러는 것이다. 조선 사람이 들어서 죽고 산다.” 하시니라.
일본 사람으로 하여금 조선에 와서 천고역신(千古逆神)을 거느려 역사케.. 천고역신. 역사상 실존했던 혁명가의 신명들. 일본은 7세기(670년)에 비로소 나라를 세웠으므로 1,300년의 역사다. 따라서 만고역신이 아닌 천고역신이다.
道典 5:53) 49일 동남풍 공사
상제님께서 전주에 계실 때 천지대신문을 열고 날마다 공사를 행하시며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제갈량의 전무후무한 재주라 함은 남병산(南屛山)에서 칠일칠야(七日七夜) 동안 동남풍을 빌어 적벽화전(赤壁火戰)에 성공함을 말함이 아니더냐. 이제 49일 동안 동남풍을 빌어 와야 하리라.
이 동남풍으로 밀려드는 서양의 기세를 물리쳐야 동양을 구할 수 있으리라.” 하시고, 성도 서너 명을 거느리고 남고산성(南固山城)으로 가시어 만경대(萬景臺)에서 49일 동남풍 공사를 행하시니라. 이 때 장대에 종이를 달아 세우시고 글을 써서 읽으신 뒤에 성도들로 하여금 그 자리에 서 있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제갈량이 제단을 쌓고 7일 동안 밤낮으로 공을 들여 동남풍을 불렸다 하니 이는 우스운 일이니라. 공들이는 동안에 일이 그릇되면 어찌하겠느냐.” 하시니라. 이어 상제님께서 “너희들은 바람이 불거든 오라.” 하시고 남고사(南固寺)로 들어가시매, 과연 조금 후에 동남풍이 크게 부는지라 성도들이 들어가 아뢰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차길피흉(此吉彼凶)이로다.” 하시고 산성을 내려오시니라.
한 여인이 한을 품고 돌아가니
그 후 상제님께서 49일을 한 도수로 계속하여 동남풍을 불리실 때, 미처 기한이 다 차기도 전에 먼 곳에서 한 여인이 찾아와 자식의 병을 고쳐 주십사 애걸하거늘 상제님께서 공사에 전심하고 계시므로 병욱이 상제님께 아뢰지 못하고 돌려보내니 그 여인이 한을 품고 돌아가매 갑자기 동남풍이 그치는지라.
상제님께서 이 사실을 아시고 급히 그 여인에게 사람을 보내어 공사에 전심하심으로 인해 미처 대답지 못한 사실을 말하여 안심하게 하시고, 곧 자식의 병을 고쳐 주시니 즉시 바람이 다시 일어나거늘, “한 사람의 원한이 능히 천지 기운을 막는다.” 하시니라. 그 뒤로 과연 일러전쟁이 일어나더니 일본 군사가 승세를 타고 해륙전에서 연속하여 러시아를 물리치니라.
49일 동남풍 공사. 당시 해전의 주역이었던 일본군 아끼야마(秋山) 중장은 세 번이나 꿈에서 발틱 함대가 대한해협을 통과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하며, 해전 당일에는 상제님 공사대로 동남풍이 불어서 전략을 유리하게 전개하였다 한다. 상제님 공사 내용을 모르는 일본인들은 이 바람을 자기들의 민족신이 도와준 것으로 알고 가미가제(神風)라 부른다.
남고사. 남고산성 내에 있으며 신라 문무왕 8년(668)에 보덕대사의 상수제자인 명덕화상이 창건하였다. 전주 사고사찰(四固寺刹 ; 동고사, 서고사, 남고사, 북고사)의 하나다.
道典 5:118) 조선은 일본의 선생국이었나니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조선은 원래 일본을 지도하던 선생국이었나니 배은망덕(背恩忘德)은 신도(神道)에서 허락하지 않으므로 저희들에게 일시의 영유(領有)는 될지언정 영원히 영유하지는 못하리라.” 하시니라.
대국의 호칭을 조선이 쓴다
또 말씀하시기를 “시속에 중국을 대국(大國)이라 이르나 조선이 오랫동안 중국을 섬긴 것이 은혜가 되어 소중화(小中華)가 장차 대중화(大中華)로 바뀌어 대국의 칭호가 조선으로 옮겨 오게 되리니 그런 언습(言習)을 버릴지어다.” 하시니라.
道典 5:119) 일본은 배사율로 망한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서양 사람에게서 재주를 배워 다시 그들에게 대항하는 것은 배은망덕줄에 걸리나니 이제 판밖에서 남에게 의뢰함이 없이 남모르는 법으로 일을 꾸미노라.” 하시고, “일본 사람이 미국과 싸우는 것은 배사율(背師律)을 범하는 것이므로 장광(長廣) 팔십 리가 불바다가 되어 참혹히 망하리라.” 하시니라.
장광은 나가사끼(長崎)와 히로시마(廣島)를 말한다. 윤명구(1918~ ) 증언.
일본은 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부터 절대적으로 의존해 온 선생국인 조선을 수시로 침략하였을 뿐 아니라, 메이지유신 이후 미국으로부터 근대 문명을 받아들여 근대국가로 발돋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진주만을 침략하였다. 또 근대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받은 영국과도 인도차이나 전선에서 전쟁을 했다. 때문에 일본은 배사율에 걸려 참혹히 망하게 되는 것이다.
道典 5:120) 해복혈 기운을 일본 국운에 붙이심
병오년에 하루는 공사를 보시며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충청도 대흥(大興)에 해복혈(蟹伏穴)이 있으니 그 기운을 걷어 일본 국운에 붙이리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게(蟹)들이 구멍 밖으로 나와 각기 이리저리 헤매며 돌아다니다가는 사람에게 짓밟히거나 잡혀 죽기 쉽고, 게가 나온 빈 구멍을 막으면 게는 하릴없이 돌아들지 못하고 길이 막혀 오도가도 못하게 되나니 게의 집은 헛구멍이 되느니라.” 하시며 계속하여 공사를 행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매양 말씀하시기를 “일본은 내 일을 해 주는 일꾼이나 물러갈 때는 떨어진 신발만 양손에 들고 돌아가게 되리라.” 하시니라.
1945년 일본군은 대부분 본토에서 빠져 나와, 만주와 남태평양 등 여러 전선에 분산 배치되어 있었다. 그것이 마치 욱일기(旭日旗)와 흡사하여, 게가 자기 집에서 나와 사방으로 뻗어 있는 형상이었다. 이 성구는 일본이 패망하는 상황을 공사로 처결하신 내용이다.
道典 5:129) 오의관의 병을 고쳐 주심
이 때 상제님께서는 김영선의 집에 계시고 성도들은 여관에 머물러 있는데, 객지에 여러 날 있다 보니 가지고 온 여비가 떨어져 여관 부채가 적지 않게 밀린지라 성도들이 내심 걱정을 하니 상제님께서 이를 아시고 성도들을 불러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여비 때문에 걱정이냐?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좋은 방책이 되리라.” 하시고, “이곳에서 서문(西門)거리로 가면 오의관(吳議官)이란 문패가 있을 것이니 그 집에 들어가서 주인과 인사를 하면 주인의 안색에 근심이 있을지라. 그 연고를 물어 보면 주인이 사실을 설명하고 ‘천 냥을 준다고 해도 고쳐 주는 의원이 없다.’ 할지니 그 때 너희들이 ‘우리 선생님의 의술이 신묘하니 선생님을 모셔다가 진찰해 보라.’ 하면 즉시 나를 찾아올 것이니라. 그 병을 낫게만 해 주면 천 냥이 생길지니 근심들 말고 속히 가 보라.” 하시니라.
성도들이 가 본즉 과연 오의관이 3년 전부터 폐병과 불면증에 걸려 이미 위기에 이르렀거늘, 상제님께서 명하신 대로 하니 의관이 함께 와서 상제님을 뵙고 집으로 모셔가니라. 상제님께서 의관을 진찰하시고 가미사물탕(加味四物湯) 세 첩을 지어 손수 부채로 부치며 달이신 뒤에 의관에게 “흰 소금을 네 뜻대로 가져오라.” 하시어
밥상에 청수 한 그릇과 흰 소금과 약을 놓으시고 의관을 상 앞에 앉히시어 약을 먹이시고 “그 흰 소금과 청수를 다 먹어야 병이 낫는다.” 하시며 다 먹게 하시니라. 이어 사랑채로 나오시어 나머지 약 두 첩은 본인이 잘 달여 먹게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흰 소금과 청수도 먼저와 같이 하라. 그리하면 내일 이른 아침에는 쾌차하리라.” 하시거늘 명하신 대로 하니 과연 이튿날 아침에 완쾌하니라.
道典 5:130) 오의관 아내의 눈을 뜨게 하심
또 오의관의 아내가 젊어서부터 청맹과니가 되어 앞을 보지 못하더니 남편의 병이 나은 것을 보고 상제님께 찾아와 그 고통을 슬피 하소연하며 자신도 눈을 뜨게 해 주시기를 지성으로 발원하거늘 이 광경을 보는 사람들 모두 눈물을 흘리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도 일월의 광명을 보게 될 것이니라.” 하시고,
병자의 방문 앞에 가시어 병자를 동쪽을 향해 세우시고 양산대로 땅을 그어 돌리신 뒤에 소금을 조금 먹이시고 햇빛이 내리쬐는 곳에서 사성음(四聖飮) 한 첩을 달여 땅을 파고 부으시니 문득 그 눈이 환히 밝아져 만물이 또렷이 보이거늘 기쁨에 넘쳐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하고 소리치니라.
이 소문이 널리 퍼져 사람들이 인성(人城)을 이루매 모두 칭송하며 말하기를 “천주님께서 강세하셨으니 장차 새 세상이 될 것이라.” 하니라. 이에 의관이 약속한 사례금 일천 냥을 올리며 주안을 성대히 차려 일행을 대접하니 상제님께서 그 돈으로 여관 부채를 청산하게 하시니라.
道典 5:131) 앉은뱅이 여자를 걷게 하심
이 때 광찬이 어느 곳에 부탁하여 상제님의 의복 한 벌을 지어 오거늘 상제님께서 그 정교한 바느질 솜씨를 칭찬하시니 광찬이 여쭈기를 “이 옷을 지은 여자가 범절은 매우 훌륭하나 앉은뱅이라 참으로 불쌍합니다.” 하니라. 이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한번 가 보리라.” 하시고 광찬과 함께 그 여인의 집을 두어 번 찾으시니 별다른 치료법을 베풀지 아니하셨는데도 저절로 굳은 다리가 펴지고 힘을 얻어 자유로이 걷게 되니라.
道典 5:136) 후천선경 건설의 푯대를 태전에 꽂으심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꾼이 콩밭(太田)에서 낮잠을 자며 때를 넘보고 있느니라.” 하시고, “내가 후천선경 건설의 푯대를 태전(太田)에 꽂았느니라.” 하시니라.
작은 서울이 큰 서울 되리니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새 세상이 오면 서울이 바뀌게 되느니라. 큰 서울이 작은 서울 되고, 작은 서울이 큰 서울이 되리니 서울은 서운해지느니라. 허미수(許眉叟)는 하루 만에 강선루(降仙樓)를 지었다 하나 나는 하루 만에 36만 칸 옥경대(玉京臺)를 짓느니라. 금강산 구룡폭포의 금(金)이 서해바다에 와 묻혔나니 장차 36만 칸 옥경대의 상량이 되리라.” 하시니라.
강선루. 평안남도 성천군 성천읍 비류강 기슭에 있던 고려시대의 누각. 성천 객사의 부속 건물이었다. 관서팔경의 하나로 꼽혔으나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
道典 5:137) 최익현의 의병 기운을 거두심
병오년 윤4월에 상제님께서 형렬과 성도들을 데리고 만경으로 가시니라. 이 때 최익현(崔益鉉)이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키거늘, 때마침 날까지 가물어 인심이 흉흉하여 의병에 가입하는 자가 날로 늘어나매 그 군세를 크게 떨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수일 동안 만경에 머무르며 말씀하시기를 “최익현이 고종 부자의 천륜을 끊어 그 대죄(大罪)가 그의 몸에 붙어 있노라. 장차 백성들이 어육지경이 되리니 이는 한갓 민생을 해칠 따름이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검은 구름이 사방에서 일어나고 큰비가 쏟아져 여러 날 계속되니 의병의 기세가 크게 약해지니라.
고종 부자의 천륜을 끊어. 최익현의 ‘계유상소(癸酉上疏)’를 계기로 대원군이 실각하고, 고종의 친정이 시작되어 고종 부자가 10년 동안 상면하지 못한 일을 말씀하신 것이다.
큰 비. 이 비로 최익현의 의병대가 무너졌다. “윤 4월 20일 해질 무렵 청천하늘에 홀연히 바람이 거세지고 갑자기 비가 오고 번개와 함께 큰 우레가 쳤다. 이에 진위대가 경악하여 모두 총을 버리고 땅에 엎드리는 바람에 비로소 포성이 멎었다.” <임병찬, 『돈헌문집(遯軒文集)』>
道典 5:138) 그 재질이 대사를 감당치 못하므로
상제님께서 최익현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만경을 떠나 익산 만중리(益山 萬中里)로 가시며 말씀하시기를 “이번에 최익현의 동함으로 인하여 천지신명이 크게 동(動)하였나니 이는 그 혈성에 감동된 까닭이니라. 그러나 그 재질이 부족하여 대사(大事)를 감당치 못할 것이요,
일찍 진정시키지 않으면 온 나라가 참화를 입어 무고한 창생만 사멸에 빠뜨릴 따름이라. 더욱이 이번 한해(旱害)를 물리치지 않아 기근까지 겹치면 생민을 구제할 방책이 전무하여 실로 양전(兩全)치 못하리니 내 어찌 차마 볼 수 있으리오. 그러므로 내가 공사로써 진압하였노라.” 하시니라.
상제님의 일꾼이 혁명가들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일심이다. 천지신명을 크게 동(動)하게 하는 혈심은 우주일년의 시간대에 오직 한 번뿐인 증산 상제님의 천하사를 성사케 하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道典 5:139) 최익현의 명줄을 거두심
이 때 한 성도가 여쭈기를 “최익현이 국난으로 죽고자 하였으니 충의로운 사람이 아닙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익현은 벼슬이 참판(參判)에 이르러 국은(國恩)을 많이 입었으니 이제 국난을 당하여 마땅히 죽음으로써 갚는 것이 의리상 옳으니라. 익현이 또한 이러한 뜻을 가져 나라를 위해 한 목숨 바치고자 하니 나는 그 뜻을 가상하게 여기노라.
그러나 그 뜻을 행동으로 옮김이 천운(天運)을 거스르고 천하대세를 역행하는 일이라.
일본에 항거하는 격문을 날렸으니 이는 자기 한 몸의 죽음으로써 만백성의 목숨을 해치려는 것이로다. 그러므로 나는 익현으로 하여금 신하의 절개를 지켜 죽게 하고 그 세력을 거두려 하노라.” 하시고, “이는 최익현의 만장(輓章)이니라.” 하시며 글을 써 주시니 이러하니라.
讀書崔益鉉이 義氣束劍戟이라. 十月對馬島에 曳曳山河撬 글을 읽던 최익현이 의기로써 창검을 잡았도다. 시월이면 대마도에서 고국 산하로 썰매 자국 길게 뻗치리라. 이어 말씀하시기를 “이는 최익현이 죽은 뒤에 옳은 귀신(鬼神)이 되게 함이라.” 하시고, 최익현으로 하여금 대마도로 끌려가 절사하게 하시니라.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최익현이 굶어죽었다 하나 뒷골방에 죽 그릇이 웬 말이냐!” 하시니라.
최익현이 대마도 유배 초기에 여섯 끼를 굶었다는 기록은 남아 있으나 세상에서 알고 있는 것처럼 단식으로 순절한 것이 아니다. 상제님은 최익현이 조선의 신하로서 충의를 지키고자 하였음은 인정해 주셨지만 이 말씀을 통하여 와전된 세론을 꼬집고 계신다.
道典 3:6) 그대의 딸을 천지사업에 바치라
신축년에 도통문을 여신 후에 상제님께서 다시 상문의 집을 찾으시니 택룡이 품에 다섯 살 된 호연을 안고 있는지라. 상제님께서 택룡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하늘과 땅을 뜯어고쳐 무궁한 선경을 열려 하나니 그대의 딸을 천지사업에 바치라. 이 아이가 이제 천하의 선녀가 되어 할아버지 같은 사람들도 와서 무릎을 꿇게 되리라.
참으로 크게 될 아이니 나에게 맡기라.” 하시거늘, 택룡이 ‘좋은 세상을 본다.’는 말씀에 흔쾌히 승낙하니라. 상제님께서 이로부터 순진무구한 소녀 호연을 새 생명을 개벽하는 선매숭자 도수에 붙여 9년 천지공사에 천지의 제물로 삼으시고, 태운 김형렬과 함께 공사의 증언자로 세우시니라.
道典 2:127) 자주 굶으시는 상제님
상제님께서는 신축년 이후로 공사를 행하시며 몸소 많은 고생을 하시고 굶으실 때도 많으시니라. 호연을 데리고 다니실 때 상제님께서 산에 가시면 갖은 나무 열매를 따서 드시며 허기를 면하시는데, 호연은 이를 먹지 않으니 봄이면 삘기를 뽑아서 까 주시니라. 또 끼니때가 되어 밥이 나오면 손을 씻으시고 밥을 뿔끈뿔끈 쥐어 주먹밥을 만들어 두셨다가 호연이 배가 고프다고 하면 한 덩이씩 꺼내 주곤 하시니라.
천지를 주름잡고 대우주를 호령하시는 상제님의 39년 생애는 선천 성자와는 판을 달리하는 고난의 역정이었다. 상제님께서는 병든 천지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숱한 곳을 다니시며 많은 날들을 주리시고 추위에 고생하셨다. 새 생명의 우주를 개벽하시는 상제님의 거룩하신 정신에 도통해야 한다.
산에 가시면 갖은 나무 열매를 따서 드시며 허기를 면하시는데, 호연은 이를 먹지 않으니: “산으로들 가면 그분들은 모두 열매들을 따먹기가 일인데. 맹감 따먹고 다래 있을 적에는 다래 먹고, 머루 먹고, 모두 그러고 댕기는디, 나는 그런 것도 못 먹고 맹감 껍데기 벗겨서 속만 갖고 앉았으면서 ‘꺼끄러워 어찌 그런 걸 먹는다요?’ 하면 ‘이런 것은 다 명관이 먹는 것이다.하셔(김호연 성도 증언)
道典 5:108) 말이 들어야 성사되느니라
호연이 수도 공부를 시작하매 상제님께서 손바닥 두 개 너비의 하얀 종이를 책처럼 묶어다 주시며 닭과 말, 그리고 뱀 모양의 것을 그리게 하시는데 종이 하나에 한 마리씩 그리게 하시고, 그림을 다 그리고 나서 그것에 점을 찍게 하시니라. 호연이 명하신 대로 밤낮으로 먹을 갈아 그림을 그려 두면 상제님께서 그것을 모아 불사르시는데 호연은 특히 말을 많이 그리니라.
하루는 호연이 지루하고 싫증이 나서 “아이고, 하기 싫어!” 하고 투정을 부리니 타일러 말씀하시기를 “닭이 울어야 날이 샌다. 암탉이 울면 죽기가 쉽고, 장닭이 울어야 날이 새느니라.” 하시니라. 이에 호연이 “말은 어째서 그려요?”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난리 치나 안 치나 말이 들어야 성사하느니라. 말에게 이기고 지는 것이 있다.” 하시거늘 다시 “그럼 뱀은 뭐예요?” 하니 “그것은 뱀이 아니라 용마(龍馬)니라. 큰 자로 들어간다.” 하시니라.
닭이 울어야 날이 샌다. 정유(丁酉)생 호연이 상제님께서 천지공사 보신 행적을 낱낱이 증언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상제님의 통일 경전인 『도전』 성편이 가능하였다. 이로써 상제님 도 세계의 전체 틀을 볼 수 있는 기틀이 열려 도통판이 나오고 진법 도운의 매듭 단계로 들어가게 되었다. 붉은 닭이 소리침으로써 난법의 어두운 밤이 걷히고 진법의 새벽이 열리는 것이다.
용마. 태호 복희 때 황하에서 팔괘를 등에 싣고 나왔다는 준마. 매우 준수하고 훌륭한 말.
道典 5:109) 호연을 뒷바라지한 은주
이 때 송은주가 수도 공부하는 호연의 뒷바라지를 도맡아 하니 매일 새벽이면 와서 씻겨 주고 움막을 청소하고 빨래도 해 주며, 매 끼니마다 밥을 해다 주고, 간혹 호연과 함께 밥을 먹기도 하니라. 하루는 호연을 씻겨 주다 말고 “아이고, 어린것이…, 무슨 꼴을 본다고 이러냐.” 하며 눈물을 보이더라. 또 하루는 상제님께서 출타하고 안 계실 때 누룽지를 몰래 움막 안에 넣어 주거늘 상제님께서 돌아오시어 “다시는 그러지 말라.” 하고 엄하게 꾸짖으시니라.
道典 5:110) 겉눈은 감고 속눈은 떠라
상제님께서 호연에게 칠성경(七星經)과 개벽주(開闢呪)를 읽히며 수도 공부를 시키실 때 “겉눈은 감고, 속눈은 뜨고 보라.” 하시거늘, 호연이 “어떤 게 속눈이고, 어떤 게 겉눈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아, 어떻게? 난 속눈 몰라, 어떡하면 속눈인지.” 하고 투덜대니 “아이고, 이것 데리고 뭔 일을 할 거라고. 실금이 떠!” 하고 면박을 주시니라. 이에 “실금이 떠!” 하고 본떠 말하며 장난을 치니 상제님께서 “흉내내지 말아라, 눈구녕을 잡아 뺄란다. 실직이 감아 봐, 실직이!” 하시거늘, 호연이 눈을 살며시 감으며 실눈을 뜨니 “그게 속눈을 뜬 것이다.” 하시고, 다시 “꽉 감아 봐!” 하시므로 눈을 꼭 감으니 “그게 겉눈을 감은 것이다.” 하고 자세히 일러 주시니라. 호연이 공부하다가 눈을 조금 떠 보니 자배기에 잉어며 메기며 가물치가 떠서 벌떡벌떡 물을 마시는 것이 보이는데 공부가 깊어짐에 따라 눈을 조금씩 더 떠도 보이고 나중에는 눈을 완전히 떠도 보이더라.
마차, 마차, 마차
이 때 자배기에 잉어가 뜨면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오고, 가물치가 뜨면 투명한 선관(仙冠)을 쓴 일곱칠성이 내려오는데 호연의 눈에는 선녀처럼 보이나 남자이더라. 하루는 메기가 뜨매 기치창검으로 무장한 말 탄 장수신장들이 마치 어느 골짜기에서 몰려나오는 듯 마당으로 달려들어와 하나 가득 모이더니 모두 두 줄로 서서 호연이 공부하는 움막을 쳐다보며 호위하거늘 호연이 놀라 까무러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호연이 깨어나지 못하면 죽으리니 살려야 된다.” 하시고, 대나무로 호연의 등을 두드리시며 “마차, 마차, 마차!” 하시니 호연이 깨어나며 “마차는 무슨 마차? 내가 말이간디?” 하거늘, 상제님께서 “그러는 것이라 그런다.” 하시며 청수를 마시게 하시니라.
자배기에 잉어며 메기며. 김호연 성도는 공부할 때 본 것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거기 그렇게 기도할 적에 쳐다보면 이런 너럭지에 가물치가 그냥 주둥이 뻘건 놈이 물을 먹느라고 벌떡벌떡혀. 그놈이 꼬리를 치면 물이 사방으로 흩어지는디…. 잉어가 그냥 꼭 이런 놈이 자배기 바깥으로 절반이나 벌떡벌떡 물을 먹는디. 처음에 공부하는 사람들이 그 재미에 미쳐.”
가물치. 양 볼 뒤의 7개의 반점이 북두(北斗) 형상을 나타내며, 밤이면 머리를 들어 북극성을 향하므로 ‘禮’자를 따라 ‘예어(C魚)’라고 한다. <『난호어목지 (蘭湖漁牧志)』, 『본초강목(本草綱目)』>
말은 용마이며 천리마로 일꾼 말이고, 마차는 김호연 성도다. 마차와 말이 결합하여 상제님의 후천문명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道典 5:111) 너의 증언이 온 천하에 퍼진다
호연이 청수를 마시고 이내 정신을 차리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이 천하신명 속에서 살려면 맘을 독하게 송죽같이 먹어라. 굳은 맘 송죽 같아야 혀.”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네가 조선에서 한 사람에게 말을 하면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고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고 해서 온 천하에 퍼지느니라.” 하시니라.
총기가 있어야 한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호연에게 말씀하시기를 “어려도 총기(聰氣)가 있어야 한다. 총기가 없으면 못쓴다.” 하시고, 또 이르시기를 “너, 총기가 있어야 다 듣고 옮긴다.” 하시니라.
道典 5:145) 호연을 데리고 다니실 때
상제님께서는 아침나절에 서울에 계시다가도 잠시 후 대구에 계시고, 또 저녁에는 다른 나라에 가 계시니 그 행보를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더라. 상제님께서 호연을 데려가기 곤란한 곳이나 사람이 많은 곳에 가실 때는 호연을 거미로 만들어 “꽉 붙어 있어라.” 하시며 겨드랑이 밑이나, 턱밑, 귓속, 옷 속 등에 딱 붙이고 다니시는데,
이 때 상제님께서 공사 보시며 하시는 말씀과 다른 사람들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고 다만 상제님께서 호연에게 하시는 말씀과 곁에서 성도들이 “거미야, 거미야, 왕거미야!” 하고 부르는 소리만 들리더라. 상제님께서 거미가 된 호연에게 붓으로 눈과 입을 그려 주시면 눈이 떠지고 입이 벌어져서 말도 하고 음식도 먹을 수 있는데
호연이 길을 가다가 뒤가 마렵다고 하면 옆구리로 똥이 나오게 하시고 나온 똥과 오줌은 저절로 없어지게 하시니라. 또 때에 따라 호연을 강아지로 만들어 안고 다니시고, 방아깨비로도 만들어 붙이고 다니시며 이 외에도 여러 가지 동물로 만들어 온갖 동물 나라에 데려가시니라. 하루는 호연이 “재주가 이렇게 많은데 무엇 때문에 자주 굶고 다녀요?” 하고 여쭈거늘 “열두 가지 재주 있는 놈이 하루아침에 굶는단다.” 하며 웃으시니라.
호연을 강아지로. “나를 강아지마냥으로 만들어. 저 강아지 새끼마냥으로 뽈뽈 기어가면 (중략) 다른 사람 눈으로는 내가 거미로도 뵈고, 강아지로도 보이고, 다른 짐승을 만들었으니 길로 다녀도 누가 시비도 안 하고.”(김호연 성도 증언)
동물 나라. “그렁게 내가 괭이(고양이) 나라도 알고, 쥐 나라도 알고 그려. 그이가 짐승으로 만들기 때문에 그런 것을 안단 말이지.”(김호연 성도 증언)
道典 5:146) 후천선경의 어획 공사
병오년 여름에 상제님께서 경상도 통영으로 가시니라. 이 때 두룡포(頭龍浦)에 가시어 천지제를 지내시니 온 고을에 ‘전라도에서 온 어떤 선비가 천지굿을 한다.’는 소문이 퍼져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니라. 이 때 바닷가에 나가시어 “고기잡이한다.” 하시며 막대기로 바다 저 먼 곳을 향해 천천히 반원을 그리시니 선을 경계로 그 안의 고기들이 모두 상제님 앞으로 모여드니라.
이에 상제님을 따라온 마을 사람들이 고기를 잡으려고 모두 자루를 벌리고 기다리니 고기들이 자루 안으로 한가득 들어오거늘 자루를 묶어서 집으로 가져가 쏟아 보니 잡을 때는 분명 작은 고기였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모두 팔뚝만 한 대어가 되어 있더라. 상제님께서 이렇듯 조화를 자유자재로 쓰시니 이르시는 곳마다 ‘선생님’이라 칭하며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데 혹 무서워서 벌벌 떨며 곁에 오지 못하는 이들도 있더라.
두룡포. 통영시 정량동 한전 일대. 현재는 매립되어 옛 모습을 찾을 수 없으나, 당시는 장대천(將臺川)과 동호만의 바닷물이 만나는 큰 포구였다. 아직도 이곳엔 그 이름을 딴 ‘두룡초등학교’가 있다. 지금도 이 마을에는 20세기 초에 있었던 천지굿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 내려온다.
조업법(操業法) 공사이다. 현재 쌍끌이, 외끌이 선박들이 이 방법으로 조업을 하고 있다.
상제님의 대경대법한 조화권을 체험한 종도들이 여수, 순천, 통영, 제주 등지에는 아주 많았다 한다. “경상도 가면 오래 있대. 저기 여산, 돌산, 제주, 저 통영…. 막 사람들이 고자리 같았어. 긍게 돌아가셨어도 (구릿골에) 그렇게 많이 왔어.”(김호연 성도 증언)
道典 5:152) 선매숭자 도운의 개척 정신
상제님께서는 종종 호연을 거미로 만들어 거미줄을 치게 하시는데 그 때마다 거미줄의 모양과 크기가 다 다르니 호연이 거미가 되어 줄을 칠 때면 상제님께서 계속 지켜보시며 줄 치는 방향과 줄의 수를 일러 주시니라. 하루는 호연이 나뭇가지 위에서 분주하게 거미줄을 치는데 상제님께서 연신 손가락으로 가리키시며 “덜 쳤다, 덜 쳤어. 요리 쳐라. 저리 쳐라. 욜~!” 하고 명하시거늘,
호연이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힘이 드는지라 옆 가지로 옮겨 가서 꼼짝도 하지 않으니 상제님께서 “너 팽졌냐?” 하시며 밑으로 내려오게 하시니라. 이에 호연이 나무 밑쪽으로 내려오자 순식간에 다시 사람으로 변하더라.
호연을 거미로 만들어 공사 보심
평소 상제님께서 호연을 여러 가지 동물로 만들어 공사 보시는 것을 형렬만 알 뿐 다른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하니 혹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있으면 상제님께서 호연만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로 말씀하시니라. 하루는 거미로 변한 호연에게 상제님께서 나뭇잎 피리를 불어 말씀하시거늘, 사람들에게는 그저 ‘삑, 삐이익, 삑~!’ 하는 피리 소리로 들리나 호연에게는 “남서쪽, 북쪽, 어느쪽.” 하고 명하시는 말씀으로 들리더라. 호연이 거미줄을 다 치고 나니 상제님께서 “얼른 내려와라.” 하시며 손바닥을 펼치시거늘 호연의 몸이 순식간에 상제님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더라.
이 때 호연의 심정.
문) “사람도 엄청 커 보이고 그래요?”
답) “그럼. 참말로 무섭게 보여. 그래갖고는 대체나 시키는 대로 했어. 아이고, 답답한 건 이루 말할 수가 없지.”(김호연 성도 증언)
욜. “요리 허라고 하는 말이 ‘욜’ 그려.”(김호연 성도 증언)
道典 5:157) 산에 도로 내는 대공사
한참을 더 가시니 가운데 산봉우리는 낮고 양쪽 봉우리가 높은 산이 나타나거늘 상제님께서 큰 소리로 무어라 외치시니 산신령이 대령하니라. 산신에게 물으시기를 “여기는 무엇이 들고, 또 여기는 무엇이 들었느냐?” 하시니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럼 내가 한번 뒤집어 볼 테니 보아라.” 하시고
산을 뒤집어 엎으시니 그 속에서 동자가 나오더라. 이에 산신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알아보겠느냐?” 하시니 산신이 “모르겠습니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신명이니라.” 하시매 산신이 묻기를 “그 신명이 어찌 이렇게 젊은가요?” 하는지라 상제님께서 문득 호령하시며 “그런 망설이 어디 있는고! 신명도 젊어야 일을 하느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이것이 산이라도 앞으로 큰길이 나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4:133) 네 생명을 천지에 제(祭) 지내서
기유(己酉 : 道紀 39, 1909)년 봄에 상제님께서 호연을 깨끗이 목욕시키신 후 천지에 제를 지내시니 종도들이 약방 마당에서부터 고샅까지 꽉 들어차니라. 이 때 덕석을 깐 위에 자리를 펴고, 돼지와 개를 통째로 올려 칼을 꽂아두고, 술도 동이째 놓게 하신 뒤에 상제님께서 호연을 곁에 세우시고 제를 지내시니 성도들도 모두 상제님의 동정(動靜)에 따라 의식을 행하니라.
제를 마치고 호연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하느님에게다 목숨을 바쳤으니 안 죽느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고목에서 움이 돋아나면 추수할 도인이 생긴다. 네 목숨을 살려 낼 사람이 다시 생기느니라. 좇던 사람은 고목인데 거기서 움이 나면 너의 생활이 있을 것이다. 네 목숨을 살려 낼 사람이 그렇게 생기느니라.” 하시니라. 이어 형렬에게 당부하시기를 “선매숭자를 얻어 맥을 이으려고 어려서부터 호연이를 데려다 길렀느니라. 호연이 죽으면 증인이 없어지니 큰일나느니라. 그러니 호연이를 잘 보살펴야 하리라.” 하시니라.
제(祭)를 마치고 호연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하느님에게다 목숨을 바쳤으니 안 죽느니라: 안 죽느니라. 이 말씀은 김호연 성도가 한평생을 기다려 천명을 완수할 때까지 장수하게 됨을 뜻한다. 상제님께서 호연을 마지막 열매 도운의 이 때에 직접 진리의 증언자로 내세우시기 위한 최대의 명제는 ‘오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다섯 살 난 어린 호연을 데려다가 부모와 같은 정성으로 씻기고, 먹이고, 품에 안고 재우시며 천지공사에 참여시키시고, 아울러 그를 선(仙) 체질로 몸개벽을 시켜서 장수하도록 하신 것이다.
고목에서 움이 돋아나면 추수할 도인이 생긴다: 추수할 도인. 증산 상제님의 대행자로서 상제님 대도 사업을 인사적으로 추수하는 대사부.
道典 4:134) 호연이 다섯 살부터 상제님 어천하실 때까지
상제님께서 일찍이 호연을 남장시키시어 다섯 살 때부터 당신께서 어천하신 열세 살 때까지 9년 천지공사에 동행하게 하시어 앞세상의 증인으로 삼으시니라. 상제님께서 호연을 데리고 다니실 때 사랑에서 주무시면 같이 사랑에 재우시고, 안에서 주무시면 안에서 재우시며 호연을 귀여워하시어 늘 팔베개를 해 주시니라. 또 세수하실 때는 낯을 씻어 주시고, 항상 먹을 것을 챙겨 주시니라.
道典 2:149) 하루는 형렬이 여쭈기를 “세상 사람들이 선생님을 광인(狂人)으로 여기나이다.” 하니 크게 웃으며 말씀하시기를 “신축년 이전에 민생을 가련히 여겨 광구천하하려고 사방으로 주유(周遊)할 때 인정과 풍속을 살피려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느니라. 그 때에는 상(相)을 평하고 사주와 점을 보아 주면, 신인으로 공대하여 어떤 이는 소까지 잡아 대접하였거늘,
그것은 내가 허언(虛言)으로 행세한 것이요, 신축년 이후에는 천지의 말로 행세하는데 도리어 광인으로 여기는도다. 광인은 입경(立經)도 못 하고 건사(建事)도 못 하나니 때가 오면 나를 헐뜯는 자들의 눈에 먼저 눈물이 흐르고, 나를 헐뜯는 자들이 먼저 나에게 절하리라.” 하시니라.
道典 1:42) “이 세상을 살면서는 죄를 지어도 남 모르게만 하면 그만인 줄 알아도 죄진 사람은 천상에 가면 모든 게 다 드러난다. 죽으면 편할 줄 알고 ‘죽어, 죽어.’ 하지만 천상에 가면 모든 것이 다 무섭다. 믿으면서 지은 죄는 사하지도 못하느니라.”
道典 1:64) 송광사 중들을 꾸짖으심
상제님께서 전주 종남산(終南山)에 있는 송광사(松廣寺)에 가시어 며칠 동안 지내실 때, 하루는 어떤 중이 무례하게 굴거늘
상제님께서 노하시어 큰 소리로 꾸짖으시기를 “요망한 무리들이 산속에 모여 불법(佛法)을 빙자하고 백악을 감행하여 세간에 해독을 끼치니 이 소굴을 뜯어 버리리라.” 하시고,
대웅전의 커다란 기둥 하나를 손으로 잡아당기시니 기둥이 한 자나 벗어나는지라 온 절이 크게 놀라 중들이 몰려와 절하며 사죄하거늘 이에 노여움을 거두시니라. 그 후로 법당을 여러 번 수리하여도 그 기둥이 원상대로 회복되지 아니하더라.
道典 2:1) 상제님께서 여러 해 동안 각지를 유력하시며 친히 만상(萬相)을 둘러보신 후에 신축(辛丑 : 道紀 31, 1901)년에 이르러 ‘이제 천하의 대세가 종전의 알며 행한 모든 법술로는 세상을 건질 수 없다.’ 생각하시고, 모든 일을 자유자재로 할 조화권능(造化權能)이 아니고서는 광구천하의 뜻을 이루지 못할 줄을 깨달으시고 수도(修道)에 더욱 정진하시니라.
道典 2:3) 대원사 칠성각에서 수도하심
6월 16일에 객망리 댁을 떠나 전주 모악산(母岳山) 대원사에 이르시어 칠성각(七星閣)에서 도를 닦으시니라. 이 때 겹겹이 싸인 깊은 숙연(宿緣)을 닦으시고 미래의 세상을 살피시어 장차 온 천하가 대개벽기의 운세에 닥쳐 멸망당할 것을 걱정하시며, 무궁한 조화의 법을 통하시어 움직이지 않고 고요히 앉아 수일을 지내기도 하시고, 천지의 풍운변화의 조화법을 시험하기도 하시니라.
道典 2:4) 수종 든 주지 박금곡
대원사에서 공부하실 때, 정남기(鄭湳綺)의 아들 영태(榮珆)가 쌀을 져다 드리고, 주지 박금곡(朴錦谷)이 시봉하니라. 금곡은 원래 금강산 건봉사(乾鳳寺)에 있었는데 산불로 절이 소실되자 함수산(咸水山)과 함께 삼남 지방을 유력하다가 서른네 살 되던 정해(丁亥 : 道紀 17, 1887)년에 퇴락한 대원사에 이르러 발심하여 절을 중수(重修)하고, 신축년에 상제님을 시봉하니 이 때 나이 마흔여덟이라.
박금곡(朴錦谷, 1854∼1946): 속명은 인오(仁旿), 금곡은 법명. 경남 하동 출생으로 쌍계사에서 출가하였다. 키가 크고, 대원사를 중창할 당시 대들보를 15리 밖에서 혼자 지고 올 정도로 천하장사였다고 한다.
道典 2:5) 사람들의 근접을 일절 금하고 공부하시던 어느 날 밤, 비바람이 대작하고 불칼이 내리치는 가운데 크게 호령하시는 소리가 들리거늘, 금곡이 이튿날 아침에 나가 보고 상제님께 아뢰기를 “칠성각에 봉안(奉安)된 진묵대사(震黙大師)의 영정(影幀)이 마당에 떨어져 있고 칠성각의 방향이 옆으로 틀어져 있습니다.” 하니, 상제님께서 “그러냐.” 하고 답하시는 순간 당우(堂宇)의 방향이 원래대로 돌아오니라.
진묵대사(震默大師, 1562∼1633): 본명 일옥(一玉). 전라도 만경현 불거촌(佛居村, 현재 만경읍 화포리)에서 출생. 법력이 출중하여 석가불의 화현(化現)으로 인식될 정도였으며 유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道典 2:6) 수도하실 때
상제님께서 공부하시는 중에 담(痰)을 많이 토하시는데, 하루는 두루마기와 바지저고리에 담이 가득 묻었는지라 그 옷을 벗으시고 알몸으로 앉아 공부하시다가 금곡에게 “옷을 빨아 오라.” 하시거늘, 금곡이 그 옷을 본즉 손을 대지 못할 정도이므로 막대기로 끌어내어 냇물에 담가 놓고 돌아와 무심하게 있다 보니 어느덧 해가 저무니라.
한밤중에 곤히 잠을 자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돌이 구르며 물 내려가는 소리가 요란하므로 금곡이 놀라 일어나 황급히 나가 보니 그 옷이 깨끗하게 빨린 채 넓은 바위 위에 놓여 있거늘 금곡이 크게 감탄하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 토하시는 담을 감당할 수 없어 방짱을 떼어 내고 그 자리에 담을 토하며 공부하시니라.
道典 2:10) 주지 박금곡의 소원
하루는 금곡이 아뢰기를 “제가 평생 이 절에 주지로 있게 해 주옵소서.” 하고 청하니 상제님께서 이를 허락하시니라. 금곡이 다시 아뢰기를 “저의 일을 말씀해 주사이다.” 하니,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전생이 월광대사(月光大師)인 바 그 후신(後身)으로 대원사에 오게 되었느니라. 그대가 할 일은 이 절을 중수하는 것이니라.” 하시니라.
금곡이 다시 간절히 여쭈기를 “구십 세까지만 살게 해 주옵소서.” 하거늘, 이도 허락하시며 “네가 죽을 때에는 본병이 도져서 죽으리라.” 하시니라. 금곡이 또 아뢰기를 “대원사에 감나무가 많으나 감이 하나도 열지 않으니 감이 잘 열도록 해 주옵소서.” 하니, “이는 진묵이 원한을 품은 연고라. 명년부터는 감이 잘 열리리라.” 하시거늘 과연 그 후로 감이 풍성하게 열리니라. 그 후 금곡은 한평생 대원사 주지로 있다가 93세가 되매 다친 허리가 재발하여 죽으니라.
진묵의 원한: 진묵이 수왕암에서 공부할 때 대원사에 내려와 밥을 얻어먹었는데, 진묵이 공밥 먹는 것을 싫어한 중들의 괄시가 심했던 탓에 그 후 300년 동안 대원사에는 진묵의 식한(食恨)이 붙었다고 한다.
박금곡은 道紀 76년(1946) 2월 3일 93세로 입적하였다.
道典 2:11) 천지대신문을 열고 삼계대권을 주재하심
상제님께서 대원사에 가신 지 보름 만인 7월 초하루부터 식음을 전폐하시고, 한번 앉으신 자리를 잠시도 떠나지 않으신 채 이레 동안 수도에만 일심하시니라. 대원사 칠성각에서 공부하신 지 스무하루 만인 신축년 7월 7일에 천둥과 지진이 크게 일어나고 상서로운 큰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무상의 대도로 천지대신문(天地大神門)을 여시니, 이로부터 삼계대권(三界大權)을 주재(主宰)하시고 우주의 조화권능을 뜻대로 행하시니라.
도통하시기 전날 깊은 밤에 상제님께서 금곡에게 명하여 “산 너머 금산사에 가서 미륵전(彌勒殿)을 지키라.” 하시거늘, 금곡이 대원사를 떠날 때 보니 찬란한 불기둥이 하늘로부터 칠성각 지붕으로 내리뻗쳐 있더라. 미륵전을 지키고 있을 때, 갑자기 천지가 진동하여 미륵불과 미륵전이 무너질 듯 크게 흔들리니, 금곡이 두려워 정신을 차릴 수 없고 몸조차 가눌 수 없어 미륵전 기둥을 잡고 견디는데 오히려 기분은 황홀하여지더라. 날이 밝자 금곡이 대원사로 돌아와 간밤의 일을 아뢴즉 그 때가 바로 상제님께서 도를 통하신 시각이더라.
상제님께서 금곡에게 “미음 한 그릇을 가지고 오라.” 하시니 금곡이 올리매 다 드시고 나서, “금곡아! 이 천지가 뉘 천지인고?” 하시거늘 금곡이 답할 바를 몰라 머뭇거리니, 상제님께서 천둥 같은 음성으로 “내 천지로다! 나는 옥황상제(玉皇上帝)니라.” 하시고 크게 웃으시니라. 이 때 금곡이 보니 방안이 대낮처럼 환하고 상제님의 용안(龍顔)이 해와 같이 빛나시는지라 저도 모르게 합장 부복하니라.
무상의 대도로 천지대신문(天地大神門)을 여시니: 가을 천지의 신도(神道)의 큰 문을 여신다는 뜻. 가을의 천지 기운은 신(神)이다. 상제님께서는 천지 자연질서의 주재 위격의 자리에서 가을 천지를 열기 위해 우주에 벌여져 있는 모든 신명세계를 통일하고 그 동안 선천 상극의 시간대를 달려온 천지의 변화질서를 상생의 대도로 조화시켜 신도를 인사로 전환하는 천지공사를 행하셨다.
삼계대권(三界大權)을 주재(主宰)하시고: 천도(天道)와 지리(地理)와 인사(人事)를 뜻대로 집행할 수 있는 우주 주재자의 대권능. 삼계三界란 하늘(天), 땅(地), 인간(人) 세계로서 삼재(三才)라고도 하며 하늘은 천지조화의 주재위격인 신명세계를 포함한다.
옥황상제. 우주 질서의 주재자 하느님. ‘배달-(고)조선’의 신교 문화권에서 우주의 통치자 하느님을 지칭하던 유래 깊은 호칭이다. ‘삼신상제’, ‘상제’라고도 하였다.
道典 2:12) 새 옷으로 갈아입으시고
상제님께서 공부를 마치시고 대원사를 나서려 하시매 금곡이 보니 입고 계신 옷이 너무 남루한지라 사람을 시켜 고부 본댁에 가서 새 옷을 가져오게 하니, 정씨 부인이 상제님께서 집안일을 돌보지 않으심에 불만을 품고 있다가 옷을 가지러 온 사람에게 불평하며 새 옷을 내주거늘, 금곡이 옷을 올리매 상제님께서 불쾌한 표정을 지으시며 “이 옷을 가져다 버리라. 계집의 방정이 붙어 있느니라.” 하시고 입지 않으시니라.
이에 금곡이 다시 사람을 보내어 정씨 부인에게 그 사유를 전하니 비로소 부인이 뉘우치고 다시 새 옷을 올리니라. 상제님께서 새 옷으로 갈아입고 대원사를 나서시니 갑자기 골짜기의 온갖 새와 짐승들이 모여들어 반기면서 무엇을 애원하는 듯하거늘, 이들을 바라보며 말씀하시기를 “너희들도 후천 해원을 구하느냐?” 하시니
금수들이 알아들은 듯이 머리를 숙이는지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알았으니 물러들 가라.” 하시매 수많은 금수들이 그 말씀을 쫒더라. 그 길로 전주 풍남문(豊南門)에 오르시어 천지가 떠나갈 듯이 큰 소리로 “남문을 열고 파루(罷漏)를 치니 계명산천(鷄鳴山川)이 밝아온다!” 하며 노래하시니라.
道典 2:13) 천지만물이 나로부터 다시 새롭게 된다
증산 상제님께서 객망리로 돌아오신 후, 집안 대대로 전하여 오던 진천군 교지(敎旨)와 공명첩(空名帖), 족보, 문집 등 일체의 문서와 서책을 가져다 불사르시며, “내 세상에는 천하의 모든 성씨(姓氏)의 족보를 다시 시작하리라.” 하시니 부모님과 수십 호 문중의 노소가 모여들어 만류하는지라 상제님께서 “앞세상에는 이런 것에 의지해서는 아니 됩니다.” 하시고, “유도(儒道)의 구습을 없애고 새 세상을 열어야 할진대 유도에서는 범절(凡節)밖에 취할 것이 없도다.”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모든 것이 나로부터 다시 새롭게 된다.” 하시니라.
신축년 이후의 연사는 내가 친히 다스린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에 내려오면서 하늘과 땅의 정사(政事)를 천상의 조정(天朝)에 명하여 다스리도록 하였으나
신축년 이후로는 내가 친히 다스리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2:15) 이제 주인을 심방함이니라
상제님께서 임인(壬寅 : 道紀 32, 1902)년 4월 13일에 전주 우림면 하운동(全州 雨林面 夏雲洞) 제비창골 김형렬의 집에 이르시니라. 이 때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심회를 푸시고 형렬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제 말세의 개벽 세상을 당하여 앞으로 무극대운(無極大運)이 열리나니 모든 일에 조심하여 남에게 척(隻)을 짓지 말고 죄를 멀리하여 순결한 마음으로 정심 수도하여 천지공정(天地公庭)에 참여하라.
나는 조화로써 천지운로를 개조(改造)하여 불로장생의 선경(仙境)을 열고 고해에 빠진 중생을 널리 건지려 하노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나는 본래 서양 대법국(大法國) 천개탑(天蓋塔)에 내려와 천하를 두루 살피고 동양 조선국 금산사 미륵전에 임하여 30년 동안 머물다가 고부 객망리 강씨 문중에 내려왔나니, 이제 주인을 심방함이니라.” 하시고,
“시속에 ‘아무 때 먹어도 김가가 먹을 밥’이라는 말이 있나니 대저 무체(無體)면 무용(無用)이라. 서(西)는 금(金)인 고로 김(金)씨에게 주인을 정하였노라.” 하시니라. 이로부터 형렬의 집에다 식주인(食主人)을 정하고 머무르시면서 도문(道門)을 열어 천지공사를 행하실 때 형렬에게 신안(神眼)을 열어 주시어 신명(神明)이 모이고 흩어지는 것과 어명(御命)을 받드는 모습을 참관케 하시니라. 형렬이 모시면서 보니 밤이면 상제님께서 기거하시는 방에서 ‘웅웅웅’ 하고 벌이 나는 듯한 소리가 나더라.
무극대운(無極大運): 우주일년의 시간 질서 가운데 가을 천지의 운수를 무극대운이라 하며, 우주의 가을철에 인간으로 오신 상제님께서 그 운수를 주재하시어 인간의 삶 속에 열어 주신 새 문화, 성숙된 문화를 무극대도라 한다.
천지공정(天地公庭): 천지공사를 집행하여 세계의 새 질서를 심리하기 위해 천지신명과 인간이 참여하는, 주역자들이 함께 모여 가을의 대개벽세계를 여는 새 역사 창조의 무대.
서양 대법국(大法國) 천개탑(天蓋塔): 대법국은 로마의 바티칸 시국(市國), 천개탑은 교황청의 중심 건물인 베드로 성당을 말한다. 기독교 문명을 서양으로 전파한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당이므로 천개탑이라 한다.
무체(無體)면 무용(無用)이라: 천지의 모든 변화는 그 근원이 없으면 작용할 수 없다는 뜻으로, 변화의 본체와 본체의 구체적인 작용과의 일체적 상관관계를 말씀하신 것이다.
서(西)는 금(金)인 고로 김(金)씨에게 주인을: 상제님께서는 가을 기운인 금(金)기운을 취하시어 김형렬 성도를 식주인으로 정하시고 금산(金山), 김제(金堤), 동곡(銅谷) 등을 천지공사의 주무대로 삼으셨다. 또한 김형렬 성도를 4월 4일 원평 장터에서 만나시고 충청도에 들러 9일간 공사 보신 후 4월 13일에 다시 그의 집을 찾으신 것도 ‘4·9金’ 원리에 따른 것이다.
道典 2:16) 천하가 큰 병이 들었나니
이제 온 천하가 큰 병(大病)이 들었나니 내가 삼계대권을 주재하여 조화(造化)로써 천지를 개벽하고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선경(仙境)을 건설하려 하노라.
道典 2:17) 선천은 상극(相克)의 운
선천은 상극(相克)의 운(運)이라 상극의 이치가 인간과 만물을 맡아 하늘과 땅에 전란(戰亂)이 그칠 새 없었나니, 그리하여 천하를 원한으로 가득 채우므로 이제 이 상극의 운을 끝맺으려 하매 큰 화액(禍厄)이 함께 일어나서 인간 세상이 멸망당하게 되었느니라.
상극의 원한이 폭발하면 우주가 무너져 내리느니라.
이에 천지신명이 이를 근심하고 불쌍히 여겨 구원해 주고자 하였으되 아무 방책이 없으므로 구천(九天)에 있는 나에게 호소하여 오매 내가 이를 차마 물리치지 못하고 이 세상에 내려오게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내가 큰 화를 작은 화로써 막아 다스리고 조화선경(造化仙境)을 열려 하노라.
선천은 상극(相克)의 운(運)이라: 상극은 만물 대립의 구조적 원인이지만, 생명의 창조원리로 볼 때는 천지만물의 생성변화를 일으키는 근원적인 힘이다.
조화선경(造化仙境): 가을개벽 후 신명과 인간이 하나 되어 건설하는 후천 문명 세계.
道典 2:18) 나의 도는 상생의 대도
나의 도는 상생(相生)의 대도이니라. 선천에는 위무(威武)로써 승부를 삼아 부귀와 영화를 이 길에서 구하였나니, 이것이 곧 상극의 유전이라. 내가 이제 후천을 개벽하고 상생의 운을 열어 선(善)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리라. 만국이 상생하고 남녀가 상생하며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화합하고 분수에 따라 자기의 도리에 충실하여 모든 덕이 근원으로 돌아가리니 대인대의(大仁大義)의 세상이니라.
선(善)으로 사는 후천 성인시대
선천 영웅시대에는 죄로 먹고살았으나 후천 성인시대에는 선으로 먹고살리니 죄로 먹고사는 것이 장구하랴, 선으로 먹고사는 것이 장구하랴. 이제 후천 중생으로 하여금 선으로 먹고살 도수(度數)를 짜 놓았노라. 선천은 위엄으로 살았으나 후천세상에는 웃음으로 살게 하리라.
나의 도는 상생(相生)의 대도: 변화의 순환 기틀을 이루어 가는 근본 원리. 상생은 ‘생명을 살리고 서로를 잘되게 한다.’는 실천 이념으로 오늘의 인류가 안고 있는 환경 파괴, 민족 문제, 최후의 이념 대결 등 모든 갈등 구조를 끌러낼 수 있는 유일한 우주 생명의 대도 사상이다.
상생의 운을 열어: 상제님께서 하늘땅을 뜯어고치는 조화권능으로 선천 상극의 운수를 후천 상생의 운수로 돌려 놓으셨다. 진정한 상생은 반드시 후천개벽이 전제되고 해원(解寃)이 함께 실현될 때 이루어진다.
道典 2:19) 죄악 없는 조화선경
내 세상은 조화선경이니, 조화로써 다스려 말없이 가르치고 함이 없이 교화되며, 내 도는 곧 상생이니, 서로 극(剋)하는 이치와 죄악이 없는 세상이니라.
세계를 한집안으로 통일
앞세상은 하늘과 땅이 합덕(天地合德)하는 세상이니라. 이제 천하를 한집안으로 통일하나니 온 인류가 한가족이 되어 화기(和氣)가 무르녹고, 생명을 살리는 것을 덕으로 삼느니라. 장차 천하만방의 언어와 문자를 통일하고 인종의 차별을 없애리라. 후천은 온갖 변화가 통일로 돌아가느니라.
신인합일(神人合一)의 지상 선경
후천은 사람과 신명이 하나가 되는 세상이니라. 모든 사람이 불로장생하며 자신의 삼생(三生)을 훤히 꿰뚫어 보고 제 분수를 스스로 지키게 되느니라.
내 세상은 조화선경이니, 조화로써 다스려: 상제님의 도의 정체, 도통 세계는 한마디로 조화(造化)다. 이는 선불유, 선천 어느 종교에도 없는 것이다. 조화란 ‘변화를 짓는다, 변화를 일으킨다, 변화를 창조한다.’는 뜻이다. 상제님 도의 언어로는 ‘시천주조화정’의 조화이다. 증산도가 지향하는 세계가 바로 조화선경이다. 일꾼은 우주 조화옹이신 상제님을 모시고 상제님의 조화권으로 후천 개벽 문명을 새롭게 여는 것이다.
道典 2:20) 우주 변화의 근본정신, 생장염장
나는 생장염장(生長斂藏) 사의(四義)를 쓰나니 이것이 곧 무위이화(無爲以化)니라. 해와 달이 나의 명(命)을 받들어 운행하나니
하늘이 이치(理致)를 벗어나면 아무것도 있을 수 없느니라.
천지개벽의 이치, 역(易)
천지개벽(天地開闢)도 음양이 사시(四時)로 순환하는 이치를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니 천지의 모든 이치가 역(易)에 들어 있느니라.
나는 생장염장(生長斂藏) 사의(四義)를 쓰나니: 천지 만물창조의 유일한 법칙은 ‘낳고(生)-기르고(長)-성숙(斂)-휴식(藏)’하는 순환 과정이다. 인류문명사는 지금 만물의 분열과 성장 시간대에서 대통일의 성숙 시간대로 들어서는 가을 대개벽기를 맞이하고 있다.
생명은 개벽운동으로 열려서 ‘스스로 그러한(自然)’ 하늘과 땅의 생성작용 속에서 태어난다. 그러한 만물 창조와 생성의 근본 원리가 바로 천지의 주재자이신 상제님께서 밝혀 주신 우주1년이다.
道典 2:21) 모든 법을 합하여 써야
남아가 출세하려면 천하를 능히 흔들어야 조화가 생기는 법이라. 이 세상은 신명조화(神明造化)가 아니고서는 고쳐 낼 도리가 없느니라. 옛적에는 판이 작고 일이 간단하여 한 가지 신통한 재주만 있으면 능히 난국을 바로잡을 수 있었거니와 이제는 판이 워낙 크고 복잡한 시대를 당하여 신통변화와 천지조화가 아니고서는 능히 난국을 바로잡지 못하느니라. 이제 병든 하늘과 땅을 바로잡으려면 모든 법을 합하여 써야 하느니라.
道典 2:22) 우주사의 인존시대를 선언하심
천존(天尊)과 지존(地尊)보다 인존(人尊)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人尊時代)니라. 이제 인존시대를 당하여 사람이 천지대세를 바로잡느니라.
중통인의의 도통 세계를 여심
예로부터 상통천문(上通天文)과 하찰지리(下察地理)는 있었으나 중통인의(中通人義)는 없었나니 내가 비로소 인의(人義)를 통하였노라. 위징(魏徵)은 밤이면 상제를 섬기고, 낮이면 당태종을 도왔다 하나 나는 사람의 마음을 빼었다 찔렀다 하노라.
이제는 인존시대(人尊時代): 인간이 우주에서 가장 존엄하다는, 우주의 새 개벽천지를 여는 하느님의 선언이다. 곧 역사의 주체는 오직 인간이며 우주 내의 모든 문제는 ‘인간이 주인이 되어 극복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다가오는 후천세계는 인사(人事)가 주체가 되고, 인사人事와 신神도가 일체되어 전 우주를 주관하게 된다.
중통인의(中通人義)는 없었나니 내가 비로소: 모든 인간이 마땅히 가야 할 올바른 생명의 길에 대한 궁극적인 깨달음. 천문과 지리를 통하고 천지의 열매인 인간의 도리에 통하여 인류 구원을 성취할 수 있는 가을철의 성숙한 도통을 말한다. 이 중통인의의 도통을 통해서 상제님은 우주의 신명계를 통일하여 조화정부(造化政府)를 여시고, 원과 한으로 점철된 인류사를 개벽하는 천지공사(天地公事)를 1901년에서 1909년까지 9년 동안 집행하셨다.
道典 5:1) 천지공사의 대의(大義)
증산 상제님께서 선천개벽 이래로 상극의 운에 갇혀 살아온 뭇 생명의 원(寃)과 한(恨)을 풀어 주시고, 후천 오만년 지상 선경세계를 세워 온 인류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니, 이것이 곧 인존상제님으로서 9년 동안 동방의 조선땅에서 집행하신 천지공사(天地公事)라.
이로써 하늘 땅의 질서를 바로잡아 그 속에서 일어나는 신도(神道)와 인사(人事)를 조화(調和)시켜 원시반본(原始返本)과 보은(報恩)·해원(解寃)·상생(相生)의 정신으로 지나간 선천상극(先天相克)의 운(運)을 끝막고 후천 새 천지의 상생의 운수를 여시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만고원신(萬古寃神)과 만고역신(萬古逆神), 세계문명신(世界文明神)과 세계지방신(世界地方神), 만성선령신(萬姓先靈神) 등을 불러모아 신명정부(神明政府)를 건설하시고 앞세상의 역사가 나아갈 이정표를 세우심으로써 상제님의 대이상이 도운(道運)과 세운(世運)으로 전개되어 우주촌의 선경낙원(仙境樂園)이 건설되도록 물샐틈없이 판을 짜 놓으시니라.
천지공사(天地公事): 삼계대권을 주재하시는 조화옹 하느님이신 증산 상제님께서 천지 이법과 천지기운을 바탕으로 병든 천지 질서를 바로잡아 심판해 놓으신 인류 역사의 설계도요 이정표이다. 상제님께서 공사 보신 신축년 이후의 인간 역사는 상제님께서 판 짜 놓으신 내용과 이념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표출되는 것이다. 따라서 천지공사를 단순한 예언이나 새로운 사상을 설파한 정도로 받아들인다면 상제님 진리의 진면목을 단 일 퍼센트도 체험할 수 없다.
원시반본, 보은, 해원, 상생 사상은 상제님 대도의 종지(宗旨)다. 특히 생명의 근원에 보답하는 보은은 가을개벽의 정신인 원시반본의 가장 근간이 되는 실천 이념이다.
상제님의 대이상이 도운(道運)과 세운(世運)으로 전개되어 도운과 세운: 도운은 상제님의 도가 인간 역사에 뿌리내려 제자리 잡는 과정이다. 상제님께서 일꾼을 내려보내시어 개벽기에 인류를 건지고 지구촌 문화를 통일하여 후천선경을 건설하는 성사재인의 천지도수다. 또한 세운은 세계 질서를 재편하여 지구촌 인류 역사의 운명을 도수로 짜 놓으신 것이다. 결국, 상제님 도법에 의해 지구촌 인류 역사가 둥글어 가기 때문에 도운을 중심으로 세운을 해석해야 한다.
道典 5:3) 순결한 마음으로 천지공정에 참여하라
임인(壬寅 : 道紀 32, 1902)년 4월에 상제님께서 전주 하운동 김형렬(金亨烈)의 집에 계시며 천지대신문을 열고 천지공사를 행하시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 천지를 개벽하여 하늘과 땅을 뜯어고치고, 무극대도(無極大道)를 세워 선천 상극의 운을 닫고 조화선경(造化仙境)을 열어 고해에 빠진 억조창생을 건지려 하노라. 이제 온 천하를 한집안이 되게 하리니 너는 오직 순결한 마음으로 천지공정(天地公庭)에 참여하라.” 하시니라.
새로 만들어야 하느니라
하루는 형렬에게 이르시기를 “나의 일은 천지를 개벽함이니 곧 천지공사니라. 네가 나를 믿어 힘을 쓸진대 무릇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을 인습(因襲)할 것이 아니요, 새로 만들어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5:6) 지구촌 세계 신질서의 큰 기틀을 짜심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 천지의 판을 짜러 회문산(回文山)에 들어가노라. 현하대세를 오선위기(五仙圍碁)의 기령(氣靈)으로 돌리나니 두 신선은 판을 대하고 두 신선은 각기 훈수하고 한 신선은 주인이라. 주인은 어느 편도 훈수할 수 없어 수수방관하고 다만 손님 대접만 맡았나니 연사(年事)에 큰 흠이 없어 손님 받는 예(禮)만 빠지지 아니하면 주인의 책임은 다한 것이니라. 바둑을 마치고 판이 헤치면 판과 바둑은 주인에게 돌아가리니, 옛날 한 고조(漢高祖)는 마상(馬上)에서 득천하(得天下)하였으나 우리는 좌상(坐上)에서 득천하하리라.” 하시니라.
현하대세를 오선위기(五仙圍碁)의 기령(氣靈)으로 돌리나니 오선위기의 기령으로: 우주의 통치자요 주재자이신 상제님께서는 조선을 중심으로 4대 강국이 바둑 두는 형국으로 돌아가도록 세운의 틀을 짜놓으셨다. 상제님께서는 오선위기의 전개 과정을 씨름판인 난장판에 비유하셨다. 난장판은 본래 ‘애기판-총각판-상씨름판’으로 전개된다.
道典 5:7) 상씨름으로 판을 마치리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현하대세가 씨름판과 같으니 애기판과 총각판이 지난 뒤에 상씨름으로 판을 마치리라.” 하시고, 종이에 태극 형상의 선을 그리시며 “이것이 삼팔선이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씨름판대는 조선의 삼팔선에 두고 세계 상씨름판을 붙이리라. 만국재판소를 조선에 두노니 씨름판에 소가 나가면 판을 걷게 되리라.
세속에 가구(假九)라는 노름판이 있어서 열다섯 수(數)가 차면 판몰이를 하는 것이 곧 후천에 이루어질 비밀을 세간에 누설(漏泄)한 것이니 내가 천지공사에 이것을 취하여 쓰노라.” 하시니라
애기판. 조선을 두고 일러전쟁을 붙여(영국·프랑스가 훈수) 러시아의 세력을 몰아내신 공사이다. 이 공사에 의해 조화정부의 제1차 발현인 국제연맹이 1920년에 창설되었다.
총각판. 일본과 중국이 주역이 되고, 독일과 소련이 훈수한 중일전쟁(1937)으로 총각판의 서막이 올랐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이 발발하고 국제연합(1945)이 발족되었다.
상씨름. 남조선 도수에 의해 전개되는 남북한 대결 구도를 말한다. 남북한의 상씨름은 인류사의 상극의 모든 문제를 가름하는 최후·최상의 대결구도라는 의미와 역사성을 갖는다. 인류사의 총체적인 문제가 남조선 도수에 얽혀 있다.
소가 나가면. 1998년 6월 16일부터 세 차례에 걸쳐 1,501마리의 소가 판문점을 넘어 북한으로 갔다. 세계 상씨름의 무대인 삼팔선에 소가 나간 것은 상씨름판을 걷게 될 최후의 대결전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개벽의 신호탄이다.
열다섯 수가 차면. 우주일년을 지속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천지조화의 본원은 중앙 ‘5·10土’이다. 음양 ‘5·10土’의 5수와 10수가 변화를 일으킬 가장 큰 수는 50(5와 10의 곱)이다. 즉, 열다섯 수가 찬다는 것은 그 도수가 일으킬 수 있는 변화의 가장 큰 수인 50이 되면 판몰이 곧, 도세를 만회한다는 뜻이다.
道典 5:11) 쉽고 간단한 문자로 통용되도록 하심
하루는 상제님께서 옥편(玉篇)을 불사르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는 문자만으로도 능히 모든 사물을 기록할지니 앞으로는 쉽고 간단한 문자로 천하에 통용되도록 하리라.” 하시고, “장차 우리나라 말과 글을 세계 사람이 배워 가리라.”
장차 우리나라 문명을 세계에서 배워 가리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성도들과 더불어 공사를 행하실 때 불가서(佛家書) 천수경(千手經), 사요(史要),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 강절관매법(康節觀梅法), 대학(大學) 등 주요 한문 서적과 형렬의 채권부(債權簿), 약방문 등을 불사르시며 말씀하시기를 “장차 신문명이 나타나리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우리나라 문명을 세계에서 배워 가리라.”
하나님이신 상제님께서 이땅에 오신 목적이 1901년에서 1909년까지 9년동안 짜신 프로그램, 천지공사(天地公事)다: 선천 봄여름5만년은 상극(相克)의 이치로 인간을 낳고, 길렀던 시간대이다. 그래서 상제님께서는 선천 봄여름 상극의 세상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道典 4:16) 선천에는 상극의 이치가 인간 사물을 맡았으므로 모든 인사가 도의(道義)에 어그러져서 원한이 맺히고 쌓여 삼계(三界,하늘땅인간)에 넘치매 마침내 살기(殺氣)가 터져 나와 세상에 모든 참혹한 재앙을 일으키나니
그러므로 이제 천지도수(天地度數)를 뜯어고치고, 신도(神道)를 바로잡아 만고의 원을 풀며, 상생의 도(道)로써 선경의 운수를 열고, 조화정부를 세워 함이 없는 다스림과 말 없는 가르침으로 백성을 교화하여 세상을 고치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道典 2:22) 우주사의 인존시대를 선언하심
천존(天尊)과 지존(地尊)보다 인존(人尊)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人尊時代)니라. 이제 인존시대를 당하여 사람이 천지대세를 바로잡느니라. 예로부터 상통천문(上通天文)과 하찰지리(下察地理)는 있었으나 중통인의(中通人義)는 없었나니, 내가 비로소 인의(人義)를 통하였노라. 위징(魏徵)은 밤이면 상제를 섬기고, 낮이면 당태종을 도왔다 하나, 나는 사람의 마음을 빼었다 찔렀다 하노라.
이제는 인존시대(人尊時代)니라. 인존시대. 인간이 우주에서 가장 존엄하다는, 우주의 새 개벽천지를 여는 하느님의 선언이다. 곧 역사의 주체는 오직 인간이며 우주 내의 모든 문제는 ‘인간이 주인이 되어 극복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다가오는 후천세계는 인사(人事)가 주체가 되고 인사人事와 신神도가 일체되어 전 우주를 주관하게 된다.
중통인의(中通人義)는 없었나니,중통인의. 모든 인간이 마땅히 가야 할 올바른 생명의 길에 대한 궁극적인 깨달음이다. 천문과 지리를 통하고 천지의 열매인 인간의 도리에 통하여 인류 구원을 성취할 수 있는 가을철의 성숙한 도통을 말한다. 이 중통인의의 도통을 통해서 상제님은 우주의 신명계를 통일하여 조화정부를 여시고, 원과 한으로 점철된 인류사를 개벽하는 천지공사를 집행하셨다.
道典 2:22) 천존(天尊)과 지존(地尊)보다 인존(人尊)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人尊時代)니라. 이제 인존시대를 당하여 사람이 천지대세를 바로잡느니라.
천존(天尊,우주의 봄)과 지존(地尊,우주의 여름)보다 인존(人尊,우주의 가을)이 크니 이때는 인존시대니라는 말씀대로 우주의 조화옹 상제님께서 우주의 가을 인존시대를 맞아 이땅에 인간으로 오신 목적이 9년 천지공사(天地公事), 모사재천(謀事在天)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다.
9년 천지공사(天地公事)란? 이땅에 오신 상제님과 천지신명의 조화정부 조직에서 짜신 9년 프로그램 천지공사(天地公事), 모사재천(謀事在天)하신 것을 이땅에서 상제님의 일꾼들이 이루는 성사재인(成事在人)하는 사명을 받은 곳이 증산 상제님의 증산도다. :
상제님께서 선천 봄여름 5만년 시간대 동안 억울하게 원한을 맺고 죽은 만고원신(萬古寃神)과 역적으로 몰려 구족이 멸한 만고역신(萬古逆神)과 인류문명에 공을 세운, 세계문명신(世界文明神)과 그리고 세계 각 지방의 민족신, 세계지방신(世界地方神)과 모든 성씨의 뿌리인 만성선령신(萬姓先靈神) 등으로 천지신명정부(神明政府)를 조직하시고
신명정부의 천지신명들이 상제님의 뜻에 따라 앞세상 역사가 둥그러갈 프로그램, 시간표를 1901년에서 1909년까지 9년(천지공사)동안 짜심으로써 상제님의 대이상이 증산도의 운로, 도운(道運)과 지구촌의 세상 운로, 세운(世運)으로 전개되어 지상 선경세계(仙境世界)가 이땅에 펼쳐지도록 물샐틈없이 짜 놓으신 것이다.
道典 4:5) 모든 일을 신도로 다스리심
크고 작은 일을 물론하고 신도(神道)로써 다스리면 현묘불측(玄妙不測)한 공을 거두나니 이것이 무위이화(無爲以化)니라. 내가 이제 신도를 조화(調和)하여 조화정부(造化政府)를 열고 모든 일을 도의(道義)에 맞추어 무궁한 선경의 운수를 정하리니 제 도수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무위이화(無爲以化): 애써 힘들이지 않은 듯하여도 조화가 작용하여 꼭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다. 이는 상제님께서 다스리시는 우주세계의 통치원리와 방법론에 대한 대국적인 근본 성격을 말씀하신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신도의 조화로 천지와 인간세계를 다스리시므로 인간의 이성과 세속적 지혜로는 그 변화세계의 실상을 도저히 헤아리기 어렵다.
조화정부(造化政府)를 열고: 천지의 변화정신과 무궁한 신도의 조화로 역사의 변화 질서를 바로잡아 다스리는 천상 신명세계의 통일정부. 하늘과 땅과 사람을 통치하는 우주 문명개벽의 사령탑이다.
이제는 성사재인(成事在人)의 시대
선천에는 모사(謀事)는 재인(在人)이요 성사(成事)는 재천(在天)이라 하였으나 이제는 모사謀事는 재천在天이요, 성사成事는 재인在人이니라.
성聖과 웅雄을 합해 천하를 다스리는 때
이전에는 판이 좁아서 성(聖)으로만 천하를 다스리기도 하고 웅(雄)으로만 다스리기도 하였으나 이제는 판이 넓어서 성聖과 웅雄을 합하여 쓰지 않으면 능히 천하를 다스리지 못하느니라.
道典 2:23) 천지에서 사람 쓰는 이 때에
하루는 형렬에게 일러 말씀하시니 이러하니라.
形於天地하여 生人하나니 萬物之中에 唯人이 最貴也니라
하늘과 땅을 형상하여 사람이 생겨났나니 만물 가운데 오직 사람이 가장 존귀하니라.
天地生人하여 用人하나니 不參於天地用人之時면 何可曰人生乎아
천지가 사람을 낳아 사람을 쓰나니 천지에서 사람을 쓰는 이 때에 참예하지 못하면 어찌 그것을 인생이라 할 수 있겠느냐!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선천 인간 중에 천지의 홍은(鴻恩)을 갚은 사람이 없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2:24) 이 때는 해원시대
이 때는 해원시대(解寃時代)라. 이제 앞으로 모든 참혹한 일이 생겨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신명을 조화(調和)하여 만고의 원을 끄르고, 상생의 도로써 조화도장(造化道場)을 열어 만고에 없는 선경세계를 세우고자 하노라.
인류의 원한의 뿌리, 요임금의 아들 단주
이제 원한의 역사의 뿌리인 당요(唐堯)의 아들 단주(丹朱)가 품은 깊은 원(寃)을 끄르면 그로부터 수천 년 동안 쌓여 내려온 모든 원한의 마디와 고가 풀릴지라. 대저 당요가 그 아들 단주를 불초(不肖)하다 하여 천하를 맡기지 않고 그의 두 딸과 천하를 순(舜)에게 전하여 주니 단주의 깊은 원을 그 누가 만분의 하나라도 풀어 주리오.
마침내 순이 창오(蒼梧)에서 죽고 두 왕비는 소상강(瀟湘江)에 빠져 죽었느니라. 그러므로 단주 해원을 첫머리로 하여 천지대세를 해원의 노정으로 나아가게 하노라. 이제 사람도 이름 없는 사람이 기세(氣勢)를 얻고, 땅도 이름 없는 땅에 길운(吉運)이 돌아오느니라.
당요(堯, 서기전 2357~서기전 2258): 예로부터 태평성대를 이뤄 낸 가장 이상적인 천자상(天子像)으로 알려져 왔으나 이는 후세 유학자들의 성통사(聖統史) 왜곡으로 미화된 것이다.
순(舜, ?~서기전 2208): 고대 중국 오제(五帝)의 한 사람으로 요(堯)와 함께 성인으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효행과 치적에 대한 부분은 후인들의 견강부회가 심해 성천자(聖天子)라 하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순이 창오(蒼梧)에서 죽고: 현재 중국 광서장족(廣西壯族) 자치구의 창오현(縣). 호남성 영원현 구의산(九K山, 일명 창오산)에는 순의 묘가 있다.
두 왕비는 소상강(瀟湘江)에: 호남성 동정호(洞庭湖)에 합류해 들어가는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의 병칭.
道典 2:25) 복을 받으려면
나는 해마(解魔)를 위주로 하나니, 이는 먼저 어지럽게 하고 뒤에 바로잡는 천지의 이치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나를 따르는 자에게는 모든 마(魔)가 먼저 발동하나니 능히 시련을 받고 나야 복(福)이 이르느니라. 선천에 안락을 누리는 자는 후천에 복을 받기 어려우리니 고생을 복으로 알고 잘 받으라. 만일 당하는 고생을 이기지 못하여 애통히 여기는 자는 오는 복을 물리치는 것이니라.
내 세상은 복록이 먼저
선천에는 수명(壽命) 복록(福祿)이라 하여 수명을 앞세우고 복록을 뒤로하였으나 복록이 없이 수명만 있으면 산송장이나 마찬가지니라. 나는 복록을 먼저 하고 수명은 다음이니 그러므로 후천에는 걸인이 없느니라. 이제는 복록을 먼저 하라. 녹(祿) 떨어지면 죽느니라.
道典 2:26) 이 때는 원시반본시대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때는 원시반본(原始返本)하는 시대라. 혈통줄이 바로잡히는 때니 환부역조(換父易祖)하는 자와 환골(換骨)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 하시고, 이어 말씀하시기를 “나도 단군의 자손이니라.” 하시니라.
부모를 하늘땅같이 섬기라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부모를 경애하지 않으면 천지를 섬기기 어려우니라. 천지는 억조창생의 부모요, 부모는 자녀의 천지니라.
자손이 선령(先靈)을 박대하면 선령도 자손을 박대하느니라. 예수는 선령신들이 반대하므로 천지공정에 참여치 못하리라. 이제 인종 씨를 추리는 후천 가을운수를 맞아 선령신을 박대하는 자들은 모두 살아남기 어려우리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조상은 아니 위하고 나를 위한다 함은 부당하나니 조상의 제사를 극진히 받들라. 사람이 조상에게서 몸을 받은 은혜로 조상 제사를 지내는 것은 천지의 덕에 합하느니라.” 하시니라.
이 때는 원시반본(原始返本)하는 시대: 문자적으로는 ‘시원의 근본(뿌리) 자리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가을의 통일(수렴)운동의 정신을 의미한다. 결실·추수하는 우주 가을의 때를 맞이하여 가을의 변화 정신에 따라 ‘천지만물은 생명의 근원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상제님 도의 근본 가르침이다. 이 때 반본(返本)의 방향인 시원(始原), 뿌리(本)는 곧 조상, 민족의 주신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의 사건일 수도 있다. 원시반본은 보은(報恩, 넓게는 도통천지보은)을 통해 이루어지며 실천적인 면에서는 해원(解寃)과 상생(相生)을 통해 달성된다.
道典 2:27) 군사부일체의 후천 문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선천의 도정(道政)이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에서 그쳤느니라. 옛적에는 신성(神聖)이 하늘의 뜻을 이어 바탕을 세움(繼天立極)에 성웅이 겸비하여 정치와 교화를 통제관장(統制管掌)하였으나 중고(中古) 이래로 성(聖)과 웅(雄)이 바탕을 달리하여 정치와 교화가 갈렸으므로 마침내 여러 가지로 분파되어 진법(眞法)을 보지 못하였나니 이제 원시반본이 되어 군사위(君師位)가 한 갈래로 되리라. 앞세상은 만수일본(萬殊一本)의 시대니라.” 하시니라.
선천의 도정(道政)이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에서 그쳤느니라: 문왕은 은나라 주왕(紂王)에 의해 아버지와 자식을 잃고 갖은 고난을 당하였으나 이를 극복하고 주(周)의 천하통일 기반을 다졌다. 그의 아들 무왕에 이르러 대업을 이루었다.
배사율의 통치 원리
또 말씀하시기를 “선천에는 도수가 그르게 되어서 제자로서 스승을 해하는 자가 있었으나 이 뒤로는 그런 불의를 감행하는 자는 배사율(背師律)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배사율(背師律): 스승을 배신하면 처벌하는 율법.
사강육륜의 도륜을 내심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유가에서 군사부일체를 주장하나 삼강오륜(三綱五倫) 어디에도 스승과 제자의 도리는 없지 않으냐. 이에 삼강오륜을 보전(補塡)하니 앞으로는 사강육륜(四綱六倫)의 도륜(道倫)이 나오리라.” 하시며 일러 주시니 이와 같으니라. 夫爲婦綱 父爲子綱 師爲弟綱 君爲臣綱 夫婦有別 父子有親 師弟有禮 君臣有義 長幼有序 朋友有信
道典 2:28) 반 그릇 밥의 은혜라도 반드시 갚으라
우리 공부는 물 한 그릇이라도 연고 없이 남의 힘을 빌리지 못하는 공부니 비록 부자 형제간이라도 헛된 의뢰를 하지 말라.
밥을 한 그릇만 먹어도 잊지 말고 반 그릇만 먹어도 잊지 말라. ‘일반지덕(一飯之德)을 필보(必報)하라.’는 말이 있으나 나는 ‘반반지은(半飯之恩)도 필보하라.’ 하노라. ‘배은망덕만사신(背恩忘德萬死身)’이니라.
道典 2:29) 우리 일은 남 잘되게 하는 공부
우리 일은 남 잘되게 하는 공부니 남이 잘되고 남은 것만 차지하여도 우리 일은 되느니라. 전명숙(全明淑)이 거사할 때에 상놈을 양반 만들어 주려는 마음을 두었으므로 죽어서 잘되어 조선 명부대왕(冥府大王)이 되었느니라.
동방 신교문화의 두 성인, 신농씨와 태공의 은혜
신농씨(神農氏)가 농사짓는 법과 의술로 천하 만세를 윤택하게 하였고, 태공(太公)이 병법과 정치로써 천하 만세에 은혜를 주었나니 이제 하늘과 땅이 성공하는 가을철을 당하여 천지의 모든 신명들이 그들을 높이 받드느니라.
道典 2:30) 마테오 리치 대성사의 큰 공덕
이마두(利瑪竇)는 세계에 많은 공덕을 끼친 사람이라. 현 해원시대에 신명계의 주벽(主壁)이 되나니 이를 아는 자는 마땅히 경홀치 말지어다. 그러나 그 공덕을 은미(隱微) 중에 끼쳤으므로 세계는 이를 알지 못하느니라. 서양 사람 이마두가 동양에 와서 천국을 건설하려고 여러 가지 계획을 내었으나 쉽게 모든 적폐(積弊)를 고쳐 이상을 실현하기 어려우므로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만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틔워 예로부터 각기 지경(地境)을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들로 하여금 거침없이 넘나들게 하고, 그가 죽은 뒤에는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돌아가서 다시 천국을 건설하려 하였나니 이로부터 지하신(地下神)이 천상에 올라가 모든 기묘한 법을 받아 내려 사람에게 ‘알음귀’를 열어 주어 세상의 모든 학술과 정교한 기계를 발명케 하여 천국의 모형을 본떴나니 이것이 바로 현대의 문명이라. 서양의 문명이기(文明利器)는 천상 문명을 본받은 것이니라.
그러나 이 문명은 다만 물질과 사리(事理)에만 정통하였을 뿐이요, 도리어 인류의 교만과 잔포(殘暴)를 길러 내어 천지를 흔들며 자연을 정복하려는 기세로 모든 죄악을 꺼림 없이 범행하니 신도(神道)의 권위가 떨어지고 삼계(三界)가 혼란하여 천도와 인사가 도수를 어기는지라 이마두가 원시의 모든 신성(神聖)과 불타와 보살들과 더불어 인류와 신명계의 큰 겁액(劫厄)을 구천(九天)에 있는 나에게 하소연하므로 내가 서양 대법국 천개탑에 내려와 이마두를 데리고 삼계를 둘러보며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東土)에 그쳐
중 진표(眞表)가 석가모니의 당래불(當來佛) 찬탄설게(讚歎說偈)에 의거하여 당래의 소식을 깨닫고 지심기원(至心祈願)하여 오던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여 30년을 지내면서 최수운(崔水雲)에게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하였더니
수운이 능히 유교의 테 밖에 벗어나 진법을 들춰내어 신도(神道)와 인문(人文)의 푯대를 지으며 대도의 참빛을 열지 못하므로 드디어 갑자(甲子 : 道紀前 7, 1864)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辛未 : 道紀 1, 1871)년에 스스로 이 세상에 내려왔나니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수운가사(水雲歌詞)에서 말하는 ‘상제’는 곧 나를 이름이니라.
이마두(利瑪竇):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 이탈리아 예수회 선교사로 중국에 가톨릭을 뿌리내린 인물. 별호를 서방의 현사(賢士)라는 뜻에서 ‘서태(西泰)’라 하고 이름은 마테오의 음사인 ‘마두(瑪竇)’, 성은 리치를 본떠 ‘리(利)’라 하였다. ‘리’는 벼(禾)를 칼(刀)로 추수한다는 의미가 있으며 ‘동서양 문화를 통합하여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문명신(文明神): 문명 발전에 사역한 종교가, 과학자, 철인, 학자 등의 신명.
현대의 문명: 일반적으로 근대 문명은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보는데, 산업혁명을 신명계에서 주도한 분이 이마두 대성사와 진묵대사이다.
이 문명은 다만 물질과 사리(事理)에만 정통: 근대 이후 서양의 과학기술 문명은 인류의 편익과 복리증진에 지대한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이 문명은 정신과 물질의 이분법적 사고, 인간중심주의, 물질주의, 그리고 ‘도구적 이성’에 근거함으로써 천지만물에 깃들어 있는 신성을 제거해 버리고 자본주의 및 제국주의와 결합하여 오늘날 인간과 자연을 파괴로 치닫게 하는 대재앙을 초래하고 있다.
신성(神聖): 인류 문명사에 큰 덕을 베푼 실존 인물들과 그들의 영신(靈神).
내가 서양 대법국 천개탑에 내려와: 상제님께서는 서양 근대문명을 연 이마두 대성사의 공덕을 인정하시어 서양 문명과 기독교 문화의 뿌리인 로마에 먼저 들르신 것이다.
道典 2:31) 나는 정세를 맡았노라
황제(黃帝)가 난(亂)을 지으므로 치우(蚩尤)가 큰 안개를 지어 이를 평정하였나니 난을 지은 사람이 있어야 다스리는 사람이 있느니라. 최수운은 동세(動世)를 맡았고 나는 정세(靖世)를 맡았나니 전명숙의 동(動)은 곧 천하의 난을 동케 하였느니라. 최수운은 내 세상이 올 것을 알렸고, 김일부는 내 세상이 오는 이치를 밝혔으며, 전명숙은 내 세상의 앞길을 열었느니라. 수운가사는 수운이 노래한 것이나, 나의 일을 노래한 것이니라. 일부가 내 일 한 가지는 하였느니라.
道典 2:32) 모두 내 비결이니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수운가사에 새 기운이 갊아 있으니 말은 소장(蘇張)의 구변이 있고, 글은 이두(李杜)의 문장이 있고, 알음은 강절(康節)의 지식이 있나니 다 내 비결이니라.” 하시니라. 또 성도들로부터 ‘금산사의 미륵불이 조만간에 출세하면 천하가 한집안같이 되어 무량한 신선의 세계가 된다.’는 말을 들으신 후에 흔쾌히 웃으며 말씀하시기를 “세간에는 혹 내 일을 아는 자가 있어 사람들이 모르는 앞세상의 운수를 왕왕 그와 같이 말하는 수가 있느니라.” 하시니라.
말은 소장(蘇張)의 구변: 소장. 소진(蘇秦, ?∼서기전 317)과 장의(張儀, ?∼서기전 309). 전국 시대의 달변가이다.
글은 이두(李杜)의 문장이: 이백(李白, 701∼762)과 두보(杜甫, 712∼770). 성당(盛唐) 시기의 대시인으로 각기 시선(詩仙), 시성(詩聖)으로 추앙 받는다.
알음은 강절(康節)의 지식이 있나니: 소강절(邵康節, 1011∼1077). 중국 송대의 유학자로 이름은 옹(雍). 상수(象數) 학설에 기초한 우주관과 자연철학에 독보적인 인물이다. 우주 시간대의 1년 개벽수(129,600년)를 처음으로 밝혔다.
道典 2:33) 천하대세를 세상이 가르치리라
현세에는 아는 자가 없나니 상(相)도 보이지 말고 점(占)도 치지 말지어다. 천지의 일은 때가 이르지 아니하면 사람이 감히 알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는데 내 일을 미리 알고자 하면 하늘이 그를 벌하느니라. 이제 보라! 천하대세를 세상이 가르치리라. 사람이 가르치는 것이 아니요, 이 세상이 갈수록 달라지나니 저절로 아느니라.
허수아비 세상
이언(俚言)에 ‘짚으로 만든 계룡(鷄龍)’이라 하나니 세상이 막 일러주는 것을 모르느니라.
道典 2:34) 공부 않고 아는 법은 없다
예로부터 생이지지(生而知之)를 말하나 이는 그릇된 말이라. 천지의 조화로도 풍우(風雨)를 지으려면 무한한 공부를 들이나니, 공부 않고 아는 법은 없느니라. 정북창(鄭北窓) 같은 재주로도 ‘입산 3일에 시지천하사(始知天下事)’라 하였느니라.
정북창(鄭北窓, 1506∼1549): 이름은 렴(=), 북창은 호. 조선 단학(丹學)의 비조(鼻祖). 충남 아산 설화산(雪華山)에 들어가 도를 통한 이후 유불선에 정통하였다. 복서(卜筮), 한어(漢語), 산수화에도 능했다 한다.
道典 2:35) 옛 성자의 기국과 도통 경계
나의 공부는 삼등(三等)이 있으니 상등은 도술(道術)이 겸전(兼全)하여 만사를 뜻대로 행하게 되고, 중등은 용사(用事)에 제한이 있고, 하등은 알기만 하고 용사는 못 하느니라. 옛사람은 알기만 하고 용사치 못하였으므로 모든 일을 뜻대로 행하지 못하였으나
이 뒤로는 백성들도 제 앞일은 제가 다 알아서 하게 하리라.
道典 2:36) 신명 대접을 가장 잘하는 조선 민족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세계 대운이 조선으로 몰아 들어오니 만의 하나라도 때를 놓치지 말라. 이 세상에 조선과 같이 신명(神明) 대접을 잘하는 곳이 없으므로 신명들이 그 은혜를 갚기 위하여 각기 소원을 따라 꺼릴 것 없이 받들어 대접하리니 도인(道人)들은 아무 거리낌없이 천하사(天下事)만 생각하게 되리라.” 하시니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신명들이 조선 땅에 삼대 들어서듯 가득 차 있어 사람이 지나가면 신명들이 길을 비켜 주느니라. 그러니 침을 뱉어도 고개를 숙이고 발부리에 뱉어라.” 하시니라.
내가 있는 곳이 천하의 대중화
하루는 한 성도가 청(淸)나라를 중국(中國)이라 부르거늘 상제님께서 크게 꾸짖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청나라는 청나라요 중국이 아니니라. 내 세상에는 내가 있는 곳이 천하의 대중화(大中華)요, 금강산이 천하만국의 공청(公廳)이 되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2:37) 인류의 뿌리 성씨로 강세하심
세상에 성(姓)으로 풍(風)가가 먼저 났으나 전하여 오지 못하고, 다만 사람의 몸에 들어 체상(體相)의 칭호로 쓰이게 되어 풍신, 풍채, 풍골 등으로 일컫게 되었을 뿐이요, 그 다음에 강(姜)가가 났나니 강가가 곧 성의 원시라. 그러므로 이제 개벽시대를 당하여 원시로 반본하는 고로 강가가 일을 맡게 되었느니라.
세상에 성(姓)으로 풍(風)가가 먼저 났으나: 풍가. 삼황의 한 분인 태호 복희(太昊伏羲, ?∼서기전 3413)씨의 성(姓). 인류 역사 최초의 성씨이나 절손되어 전하지 않는다.
그 다음에 강(姜)가가 났나니 강가가 곧 성의 원시라: 강가. 염제 신농(炎帝神農, ?∼서기전 3078)씨의 성으로 현전하는 최고(最古)의 성씨.
道典 2:39) 형렬을 옥경에 데려가심
상제님께서 성도들에게 하늘의 일을 말씀하시니 형렬이 항상 마음속으로 ‘한울님 뵙기를 원하옵니다.’ 하고 소원하는지라 하루는 형렬에게 안경을 주시며 “이것을 쓰고 나를 따라오라.” 하시매, 형렬이 따라가니 화려한 삼층 누각이 나타나거늘 자세히 보니 세상에서 이르는 천상의 옥경대(玉京臺)더라. 상제님께서 형렬에게 “아래층에 있으라.” 하시고 상층으로 올라가시니 선관선녀(仙官仙女)들과 만조백관(滿朝百官)이 좌우에서 옹위하니라.
우리 선생님이 하느님이다
상제님께서 좌정하신 후에 백관에게 명하시기를 “위징(魏徵)을 데려오라.” 하시고, 대령한 위징을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너는 무슨 일로 두 마음을 품고 낮에는 당태종을 섬기고 밤에는 옥황상제를 섬겼느냐?” 하시니 위징이 크게 사죄하는지라 형렬이 이 광경을 본 뒤로 성도들에게 말하기를 “우리 선생님이 바로 한울님이시라.” 하니라.
이후로 성도들은, 상제님께서 공사시에 늘 뇌성벽력과 풍운조화를 뜻대로 쓰시는 것을 보고, 증산께서 곧 하느님이심을 깨닫게 되니 ‘인간으로 오신 인존천주(人尊天主)님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니라.
위징(魏徵, 580∼643): 자는 현성(玄成). 당(唐)나라 초의 정치가. 산동 출신으로 24장(將)의 한 사람. 그가 죽자 당태종이 ‘나는 거울 하나를 잃었다.’고 했을 정도로 충직하고 절개가 굳었다. 도관에서 도사가 되어 도를 닦았으므로 이 때 옥황상제를 섬긴 것이다.
道典 2:40) 공자 석가 예수를 내려 보내심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고, 불교도는 미륵의 출세를 기다리고, 동학 신도는 최수운의 갱생을 기다리나니 ‘누구든지 한 사람만 오면 각기 저의 스승이라.’ 하여 따르리라. ‘예수가 재림한다.’ 하나 곧 나를 두고 한 말이니라. 공자, 석가, 예수는 내가 쓰기 위해 내려 보냈느니라.
道典 2:41) 인류사의 새 세상을 여는 대도
선경세계는 내가 처음 건설하나니, 나는 옛 성인의 도나 옛 가르침으로 하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낡은 삶을 버리고 새 삶을 도모하라. 묵은 습성이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그 몸이 따라서 망하느니라.
나의 도는 선천문화와 견줄 수 없다
나의 도는 古不聞今不聞이요 古不比今不比니라.
옛적에도 듣지 못했고 이제 또한 들을 수 없으며, 옛적의 그 어떤 도(道)와도 견줄 수 없고, 이제도 또한 견줄 만한 것이 없느니라.
道典 2:42) 오직 내가 처음 짓는 일
이제 온 천하가 대개벽기를 맞이하였느니라. 내가 혼란키 짝이 없는 말대(末代)의 천지를 뜯어고쳐 새 세상을 열고, 비겁(否劫)에 빠진 인간과 신명을 널리 건져 각기 안정을 누리게 하리니, 이것이 곧 천지개벽(天地開闢)이라. 옛일을 이음도 아니요, 세운(世運)에 매여 있는 일도 아니요, 오직 내가 처음 짓는 일이니라.
부모가 모은 재산이라도 항상 얻어 쓰려면 쓸 때마다 얼굴이 쳐다보임과 같이 쓰러져 가는 집에 그대로 살려면 무너질 염려가 있음과 같이 남이 지은 것과 낡은 것을 그대로 쓰려면 불안과 위구(危懼)가 따라드나니 그러므로 새 배포를 꾸미는 것이 옳으니라.
새 배포를 꾸미라
하루는 형렬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망하는 세간살이는 애체없이 버리고 새 배포를 꾸미라. 만일 아깝다고 붙들고 있으면 몸까지 따라서 망하느니라.” 하시니라.
인간과 신명을 널리 건져 각기 안정을 누리게 하리니, 이것이 곧 천지개벽(天地開闢)이라: 천지개벽. 여기에서는 총체적인 의미로 봐야 한다. 곧 천지 변화 질서의 주재자이신 상제님께서 신도의 조화권능으로 천지 안에 깃들어 있는 일체의 생명력을 상생의 대도로 조화시켜 가장 이상적인 삶의 길, 새 역사의 질서를 열어 주시는 근원적인 대개혁의 역사(役事)를 의미한다.
道典 2:43) 이 때는 천지성공 시대
지금은 온 천하가 가을 운수의 시작으로 들어서고 있느니라. 내가 하늘과 땅을 뜯어고쳐 후천을 개벽하고 천하의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후천선경의 무량대운(無量大運)을 열려 하나니 너희들은 오직 정의(正義)와 일심(一心)에 힘써 만세의 큰복을 구하라. 이 때는 천지성공 시대(天地成功時代)니라.
천지신명이 나의 명을 받들어 가을 운의 대의(大義)로써 불의를 숙청하고 의로운 사람을 은밀히 도와주나니 악한 자는 가을에 지는 낙엽같이 떨어져 멸망할 것이요, 참된 자는 온갖 과실이 가을에 결실함과 같으리라. 그러므로 이제 만물의 생명이 다 새로워지고 만복(萬福)이 다시 시작되느니라.
이 때는 천지성공 시대: 가을 개벽기에는 서신이 명(命)을 맡아 천지에서 기른 인간의 씨종자를 추린다. 곧 하늘과 땅과 인간이 그 뜻을 이루고 열매를 맺는 것이 바로 후천 오만년 조화선경 건설이다. 이것이 천지와 더불어 영원히 변치 않는 진정한 성공인 것이다.
道典 2:44) 이 때는 생사판단의 가을개벽기
상제님께서 하루는 세간에 전해 오는 ‘백조일손(百祖一孫)’이라는 말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가을바람이 불면 낙엽이 지면서 열매를 맺는 법이니라. 그러므로 이 때는 생사판단(生死判斷)을 하는 때니라.” 하시니라.
다가오는 세상 난리는
한 성도가 여쭈기를 “‘다가오는 세상 난리는 신명의 조화임을 알지 못한다.’는 말이 있사온데 과연 그러합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지개벽을 해도 신명 없이는 안 되나니, 신명이 들어야 무슨 일이든지 되느니라. 내 세상은 조화의 세계요, 신명과 인간이 하나 되는 세계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내 일은 인신합덕(人神合德)으로 되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2:45) 천하창생이 진멸지경에 이르렀는데
대저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편할지라. 오는 일을 아는 자는 창생의 일을 생각할 때에 비통을 이기지 못하리로다. 이제 천하창생이 진멸(盡滅)의 경계에 박도하였는데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이(利)끗에만 몰두하니 어찌 애석치 아니하리오.
때가 되어 괴병이 온 천하를 휩쓸면
장차 십 리 길에 사람 하나 볼 듯 말 듯한 때가 오느니라. 지기(至氣)가 돌 때에는 세상 사람들이 콩나물처럼 쓰러지리니, 때가 되어 괴병(怪病)이 온 천하를 휩쓸면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눈만 스르르 감고 넘어가느니라.
道典 2:46) 이제 천하의 종기를 파하였노라
형렬의 집이 가난하여 보리밥으로 상제님을 공양하더니, 추석 명절을 당하여 할 수 없이 밥솥을 팔아 상제님을 공양하려고 솥을 떼어 내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솥이 들썩이는 것을 보니 미륵불이 출세함이로다.” 하시고 형렬에게 “쇠꼬리 한 개를 구하여 오라.” 하시니라. 이에 형렬이 금구 용암리(金溝 龍岩里)에 가서 쇠꼬리를 구하여 오고 또 술을 사 오거늘,
마당 한 쪽에 풀을 쌓게 하여 불을 피우시고 쇠꼬리를 두어 번 둘러 내신 뒤에 “해를 바라보라.” 하시므로 형렬이 우러러보니 햇무리가 둘리어 있는지라 그대로 아뢰니 말씀하시기를 “천하대세가 큰 종기를 앓음과 같으니, 내가 이제 그 종기를 파(破)하였노라.” 하시고 술을 드시니라.
道典 2:48) 천하의 병을 다스리리라
임인년에 상제님께서 병 고치는 법을 전주 화정리(花亭里) 이경오(李京五)에게 처음으로 베푸시니라. 이 때 경오가 중병을 앓다가 병세가 더욱 위독해지거늘 평소에 친분이 있던 대원사 주지 박금곡에게 의원을 구하여 주기를 청하니 금곡이 상제님의 신성하심을 익히 아는지라 그 일을 아뢰며 신방(神方)을 베풀어 주십사 하소연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금곡과 더불어 경오를 찾아가 그 증세를 보시니 왼발 넷째 발가락이 쑤시고 아프며 오후부터 새벽까지는 다리 전체가 큰 기둥과 같이 부어 올랐다가 아침이 되면 부기가 내리기 시작하여 정오에는 원상으로 회복되는데, 이렇게 3, 4년 동안을 앓으매 한 발짝도 옮기지 못하고 앉은뱅이가 되었더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병이 진실로 괴이하도다. 모든 일이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을 헤아리게 되나니 그러므로 내가 이 병으로써 본을 삼아 천하의 병을 다스리리라.” 하시고 손으로 만져 내리신 뒤에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받아 씻으라.” 하시매 금곡이 경오의 다리를 씻어 주니 곧 나으니라.
道典 2:49) 천지의 대덕과 성인의 대업
하루는 성도들에게 가르쳐 말씀하시니 이러하니라.
欲知廣大면 觀乎天地하고, 欲知變通이면 觀乎四時하라
광대함을 알고자 하면 천지를 살펴보고, 변통의 이치를 알고자 하면 사시를 관찰하라.
欲知陰陽之理면觀乎日月하고, 欲知功德之業이면觀乎聖人하라
음양의 이치를 알고자 하면 일월을 살펴보고, 공덕의 업적을 알고자 하면 성인을 볼지어다.
生物無窮은 天地之大業이요, 運行不息은 天地之大德이라
끝없이 만물을 생성함은 천지의 대업이요, 쉬지 않고 운행함은 천지의 대덕이라.
功及萬世는 聖人之大業이요, 終始日新은 聖人之大德이니라
공덕을 만세에 미침은 성인의 대업이요, 처음부터 끝까지 날로 새롭게 함은 성인의 대덕이니라.
道典 2:50) 난세와 치세의 두 마음
禹治九年洪水할새 三過其門而不入은 以一身之苦로 而安天下之民이니라
우(禹)가 구년홍수를 다스릴 적에 세 차례나 자기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르지 않았음은 제 한 몸의 고달픔으로 천하의 백성을 평안케 하고자 함이었느니라.
是故로 治世之人은 餓其體하고 勞其筋하여 以活民生하고, 亂世之人은 淫其心하고 貪其財하여 以傷民生하나니 若天理所在면 功歸於修하고 禍歸於作하리라
그러므로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은 제 몸을 주리고 수고스럽게 하여 백성을 살리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람은 마음을 방종히 하고 재물을 탐하여 백성의 삶을 상하게 하나니 천리가 있다면 공(功)은 닦은 데로 돌아가고, 화(禍)는 지은 데로 돌아갈 것이니라.
우치구년홍수(禹治九年洪水): 우는 9년 홍수를 잘 다스려 인망을 얻고 하(夏)왕조를 세웠다. 13년 동안 치수 사업을 하면서 한 번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道典 2:51) 하늘과 땅을 일체로 받드는 개벽시대
선천은 천지비(天地否)요, 후천은 지천태(地天泰)니라. 선천에는 하늘만 높이고 땅은 높이지 않았으니 이는 지덕(地德)이 큰 것을 모름이라. 이 뒤에는 하늘과 땅을 일체로 받드는 것이 옳으니라.
선천은 천지비(天地否): 64괘의 하나. 양이 위, 음이 아래에 위치하여 음양이 불통하고 조화되지 않는 상으로, 곧 선천 시대의 음양의 부조화와 상극 관계를 상징하는 괘.
후천은 지천태(地天泰): 음이 위에, 양이 아래에 위치하여 그 기운이 자유로이 교류함으로써 음양이 조화를 이루는 후천 가을의 변화성을 상징하는 괘.
道典 2:52) 천지에 가득 찬 여자의 한(恨)
선천은 억음존양(抑陰尊陽)의 세상이라. 여자의 원한이 천지에 가득 차서 천지운로를 가로막고 그 화액이 장차 터져 나와 마침내 인간 세상을 멸망하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이 원한을 풀어 주지 않으면 비록 성신(聖神)과 문무(文武)의 덕을 함께 갖춘 위인이 나온다 하더라도 세상을 구할 수가 없느니라.
인간 세상의 음양 질서를 개벽하심
예전에는 억음존양이 되면서도 항언에 ‘음양(陰陽)’이라 하여 양보다 음을 먼저 이르니 어찌 기이한 일이 아니리오. 이 뒤로는 ‘음양’그대로 사실을 바로 꾸미리라.
선천은 억음존양(抑陰尊陽)의 세상: 억음존양. 선천은 천지의 축이 기울어져서 양(陽) 기운이 음(陰) 기운보다 강하다. 때문에 자연적으로는 극한혹서가 생기고, 문명적으로는 양의 가치인 하늘·남자 등이 중심이 되어 전쟁과 정복의 역사가 계속되었다. 상제님께서 는 이처럼 음이 억압되면서 생긴 원한이 세상을 진멸케 하는 원인임을 처음으로 밝혀 주셨다.
道典 2:53) 남녀동권 시대를 열어 주심
여자가 천하사를 하려고 염주를 딱딱거리는 소리가 구천에 사무쳤나니 이는 장차 여자의 천지를 만들려 함이로다. 그러나 그렇게까지는 되지 못할 것이요, 남녀동권 시대가 되게 하리라. 사람을 쓸 때에는 남녀 구별 없이 쓰리라. 앞세상에는 남녀가 모두 대장부(大丈夫)요, 대장부(大丈婦)이니라.
여자도 각기 닦은 바에 따라
자고로 여자를 높이 받들고 추앙하는 일이 적었으나 이 뒤로는 여자도 각기 닦은 바를 따라 공덕이 서고 금패(金牌)와 금상(金像)으로 존신(尊信)의 표를 세우게 되리라. 내 세상에는 여자의 치마폭 아래에서 도통이 나올 것이니라.
상제님께서 선천의 그릇된 음양 구조를 정음정양으로 바로잡으신 인사의 바탕이 바로 수부(首婦) 도수다. 이제 일체의 불평등과 억압의 구조로부터 해방되어 음과 양의 완전한 조화 속에서 살아가는 이상적인 꿈의 낙원세계가 열린다.
道典 2:54) 부인 수도는 내 도의 근간
부인은 한 집안의 주인이니라. 음식 만들어 바라지하고, 자식 낳아 대(代) 이어 주고, 손님 오면 접대하고, 조상 받들어 제사 모시니 가정 만사 부인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느니라. 만고의 음덕(陰德)이 부인에게 있나니 부인을 잘 대접하라. 나 또한 경홀치 않느니라. 부인 수도(婦人修道)는 내 도의 근간(根幹)이요 대본(大本)이니 이후에 부인들 가운데서 도통자가 많이 나리라.
道典 2:55)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 내 사람
하루는 김갑칠(金甲七)이 여쭈기를 “저와 같이 용렬하고 천하기 그지없는 자도 다가오는 선경세계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문득 안색을 바꾸시어 큰 소리로 말씀하시기를 “갑칠아, 그게 무슨 말이냐. 이 때는 해원시대니라. 이제 해원시대를 맞아 도(道)를 전하는 것을 빈천한 사람으로부터 시작하느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부귀한 자는 자만자족하여 그 명리(名利)를 증대하기에 몰두하여 딴 생각이 나지 않으리니 어느 겨를에 나에게 생각이 미치리오. 오직 빈궁한 자라야 제 신세를 제가 생각하여 도성덕립(道成德立)을 하루바삐 기다리며 운수 조일 때마다 나를 생각하리니 그들이 곧 내 사람이니라.” 하시니라.
김갑칠(金甲七, 1881∼1942): 본관 안동. 갑칠은 도명, 호는 우사장(雨師丈). 부 기윤과 모 황씨 사이의 차남. 김형렬 성도의 종제(4촌)이며 김준상 성도의 동생이다. 키는 그리 크지 않고 수염도 얼마 나지 않은 용모였다.
道典 2:56) 적서와 반상의 차별을 없애노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최수운이 서자(庶子)로 태어난 것이 한이 되어 한평생 서자와 상놈의 차별을 없애고자 하였다.’는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묵은하늘이 그릇 지어 서자와 상놈의 원한이 세상을 병들게 하였느니라. 이제 내가 적서(嫡庶)의 차별을 없이하였노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양반을 찾는 것은 그 선령의 뼈를 오려 내는 것과 같아서 망하는 기운이 따라드나니 양반의 행습을 버리고 천한 사람을 우대하여야 속히 좋은 시대가 이르리라. 발 개고 앉아서 고개만 끄덕이는 시대는 다 갔으니 그런 행습을 버리라. 내 세상은 상놈의 운수니라.” 하시니라.
묵은하늘: 좁은 의미로는 선천의 하늘을, 넓게는 그 하늘 아래에서 사는 인간이 만들어 낸 낡은 관념과 묵은 정신을 뜻한다. 선천의 특징을 한 단어로 압축한 말씀으로 무궁무진한 뜻이 내포되어 있다.
道典 2:57) 상제님 세상 후천선경이 오면
하루는 성도들에게 글을 써 주시니 이러하니라.
昊天金闕에 上帝午坐하시고, 大地土階에 庶民子來라
호천금궐의 상제님은 남방(午)에 앉아 계시고, 대지의 흙계단에 만백성이 자식처럼 몰려오네.
一氣貫通하니 萬里昭明하고 三才俱得하니 兆民悅服이라
천지의 한 조화기운 관통하니 온 천하가 밝아지고, 삼재(三才)를 모두 득도하니 억조창생 기뻐 감복하는구나.
神明世界에 和風蕩蕩하고 眞正乾坤에 皓月朗朗이라
신명의 조화세계 되니 화평한 신바람이 넘쳐나고 건곤이 바로 서니 밝은 달이 더욱 환하구나.
天長地久에 申命無窮하고, 日去月來에 寅賓有方이라
천지는 장구하니 가을 명운 무궁하고, 일월이 왕래하니 새 세상을 맞는도다.
호천(昊天) 금궐(金闕): 하늘(天)의 범칭으로서 만물을 생성하는 하늘의 원기(元氣)가 광대하다는 뜻이다. 고대로부터 호천상제는 우주 최고신의 위격으로 모셔졌고 후한 광무제 이래 국가 차원의 제사가 역조(歷朝)에 걸쳐 계승됐다. 북송(北宋) 때는 ‘호천옥황상제’에게 제사를 지냈다.
상제오좌(上帝午坐)하시고: 오좌. 문명의 광명을 드러내는 방위이다. 현실적으로는 상제님을 대행하여 문명을 드러내는 황극 자리를 말한다.
서민자래(庶民子來): . ‘오(午)’와 ‘자(子)’, ‘신(申)’ 과 ‘인(寅)’이 댓 구다. 『시경(詩經)』과 『맹자』에도 ‘庶民子來’란 표현이 보이는데 이는 개벽 이후에 구원 받은 사람들이 새 생명을 내려 주신 상제님께 자식처럼 참배하러 오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신명(申命), 인빈(寅賓): ‘申’은 서방·가을이고 ‘寅’은 동방·봄을 상징한다. ‘申命’이란 말은 『주역』 ‘손괘(巽卦)’에 보이는데, 위에서 도에 합당하게 명을 내니 명이 순차로 이어져 아래에서도 순종함을 의미한다. ‘寅賓’은 『서경』에서 ‘예를 갖춰 공경히 맞아들인다.’는 뜻으로 쓰였다. 이 말씀에는 ‘일월이 왕래하니 공경히 따르는 백성들의 모습이 예에 맞고 올바르다.’는 속뜻이 있다.
道典 2:58) 조선의 대신명을 서양으로 보내심
계묘(癸卯 : 道紀 33, 1903)년 3월에 상제님께서 대공사를 행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제는 병든 천지를 바로잡아야 하느니라. 조선의 대신명(大神明)을 서양으로 보내 큰 난리를 일으켜 선천의 악폐(惡弊)와 상극의 기세를 속히 거두어서 선경세계를 건설하리니, 장차 동서양을 비빔밥 비비듯 하리라.” 하시니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은 성인의 바탕으로 닦고 일은 영웅의 도략을 취하라. 개벽의 운수는 크게 개혁하고 크게 건설하는 것이니 성과 웅이 하나가 되어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2:59) 사람이 사랑스러운 세상이 온다
이제 음도(陰道)를 보내고 양도(陽道)를 오게 하느니라. 앞으로 세상이 거꾸로 되어 바람 부는 대로 살리니 무를 거꾸로 먹는 이치니라. 두고 보라! 아침에 본 것, 저녁에 본 것이 다르고 날마다 해마다 달라지리니, 이제 세상이 다 가르치느니라. 구름도 가고 바람도 그치는 때가 돌아오면 사람 보는 것이 즐겁고 누구나 기룹고 사랑스러운 세상이 되느니라.
내가 이렇게 다니는 것도 세상 돌아가는 도수를 따라서 다니는 것이니라. 밥도 다 되었는지 뚜껑을 열어 보지 않느냐?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하나 내가 그냥 다니는 줄 알아도 세상일을 엎었다 뒤집었다 하느니라. 내가 세상을 뒤집는 것은 손바닥 안팎 뒤집는 것과 같으니라. 이 세상일이 내 걸음걸이 하나하나에 따라 모두 그렇게 되느니라.
道典 2:60) 대인의 말은 구천에 사무치나니
대인의 말은 구천에 사무치나니 나의 말은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아무리 큰 일이라도 도수에 맞지 않으면 허사가 될 것이요, 경미하게 보이는 일이라도 도수에만 맞으면 마침내 크게 이루어지느니라.
없는 말로 조작하는 난법자들의 종말
참된 말은 하늘도 부수지 못하나 없는 말을 거짓으로 꾸며대면 부서질 때는 여지가 없나니, 내 도(道)에 없는 법으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난법난도(亂法亂道)하는 자는 이후에 날 볼 낯이 없으리라.
남을 음해하려는 자
과거에는 도통이 나지 않았으므로 도가(道家)에서 음해(陰害)를 이기지 못하여 성사되는 일이 적었으나 이 뒤에는 도통이 나므로 음해하려는 자가 도리어 해를 입으리라.
道典 2:68) 천지를 뒤흔드는 뱃속 살인의 원한
한 사람의 원한(寃恨)이 능히 천지기운을 막느니라. 뱃속 살인은 천인공노할 죄악이니라. 그 원한이 워낙 크므로 천지가 흔들리느니라. 예로부터 처녀나 과부의 사생아와 그 밖의 모든 불의아의 압사신(壓死神)과 질사신(窒死神)이 철천의 원을 맺어 탄환과 폭약으로 화하여 세상을 진멸케 하느니라.
道典 2:73) 천지대도에 머물러야 산다
때가 다하여 대세가 처넘어갈 때는 뇌성벽력이 대작하여 정신차리기 어려울 것이요, 동서남북이 눈 깜짝할 사이에 바뀔 때는 며칠 동안 세상이 캄캄하리니 그 때는 불기운을 거둬 버려 성냥을 켜려 해도 켜지지 않을 것이요, 자동차나 기차도 움직이지 못하리라. 천지이치로 때가 되어 닥치는 개벽의 운수는 어찌할 도리가 없나니
천동지동(天動地動) 일어날 때 누구를 믿고 살 것이냐! 울부짖는 소리가 천지에 사무치리라. 천지대도에 머물지 않고서는 살 운수를 받기 어려우니라.
道典 2:74) 인사는 기회가 있고 천리는 도수가 있다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행하실 때 항상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삼계대권을 맡아 선천의 도수를 뜯어고치고 후천을 개벽하여 선경을 건설하리니, 너희들은 오직 마음을 잘 닦아 앞으로 오는 좋은 세상을 맞으라.” 하시므로 성도들이 하루바삐 그 세상이 이르기를 바라더니
하루는 신원일(辛元一)이 간절히 청하기를 “선생님께서 ‘천지를 개벽하여 새 세상을 건설한다.’ 하신 지가 이미 오래이며 공사를 행하시기도 여러 번이로되 시대의 현상은 조금도 변함이 없으니 제자의 의혹이 자심하나이다. 선생님이시여, 하루빨리 이 세상을 뒤집어서 선경을 건설하시어 남의 조소를 받지 않게 하시고, 애타게 기다리는 저희에게 영화를 주옵소서.” 하거늘,
상제님께서 이르시기를 “인사(人事)는 기회(機會)가 있고 천리(天理)는 도수(度數)가 있나니, 그 기회를 지으며 도수를 짜 내는 것이 공사의 규범이라. 이제 그 규범을 버리고 억지로 일을 꾸미면 이는 천하에 재앙을 끼침이요, 억조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므로 차마 할 일이 아니니라.” 하시니라. 이에 원일이 듣지 않고 굳이 청하여 말하기를 “지금 천하가 혼란무도하여 선악을 구별하기 어려우니 속히 진멸하고 새 운수를 여심이 옳으나이다.” 하니 상제님께서 심히 괴롭게 여기시니라.
도수(度數): 문자적으로는 변화의 진전 정도(度)의 수(數)란 뜻이다. 상수(象數) 원리에 근거하여 일정한 시간의 마디를 가지면서 전개되는 천지와 인사의 변화 질서를 뜻한다. 또한 상제님께서 쓰시는 ‘도수度數’, ‘천지도수를 뜯어고친다.’는 말씀은 그 변화 질서의 정신까지를 내포한다.
道典 2:75) 개벽이란 이렇게 쉬운 것이라 을사년 7월에 상제님께서 원일과 두어 성도를 데리고 변산 개암사(開巖寺)에 가시어 원일에게 쇠머리 한 개와 술 한 병을 준비하라고 명하신 뒤 청수 한 그릇을 방 한편에 놓으시고 쇠머리를 삶아 청수 앞에 진설하신 뒤에 그 앞에 원일을 꿇어앉히시고 양황 세 개비를 청수에 넣으시니 갑자기 비바람이 크게 일어나니라.
상제님께서 원일에게 이르시기를 “이제 청수 한 동이에 양황 한 갑을 넣으면 천지가 물바다가 될지라. 개벽이란 이렇게 쉬운 것이니 그리 알지어다. 만일 이것을 때에 이르기 전에 쓰면 재앙만 끼칠 뿐이니라.” 하시고,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 부안 석교(石橋)를 향해 뿌리시니 갑자기 그 쪽으로 구름이 모여들어 큰비가 쏟아지는데 개암사 부근은 청명하더라.
후천개벽의 상생 정신을 깨 주심
상제님께서 원일에게 명하시어 “속히 집에 갔다 오라.” 하시거늘 원일이 명을 받고 집에 가 보니 아우의 집이 방금 내린 비에 무너져서 그 권속이 원일의 집에 모여 있는지라 원일이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곧 돌아와 그대로 아뢰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개벽이란 이렇게 쉬운 것이라. 천하를 물로 덮어 모든 것을 멸망케 하고 우리만 살아 있으면 무슨 복이 되리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대저 제생의세(濟生醫世)는 성인의 도(道)요, 재민혁세(災民革世)는 웅패(雄覇)의 술(術)이라. 이제 천하가 웅패에게 괴롭힘을 당한 지 오랜지라 내가 상생(相生)의 도로써 만민을 교화하여 세상을 평안케 하려 하나니
새 세상을 보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요, 마음 고치기가 어려운 것이라. 이제부터 마음을 잘 고치라. 대인(大人)을 공부하는 자는 항상 남 살리기를 생각하여야 하나니,
어찌 억조를 멸망케 하고 홀로 잘되기를 도모함이 옳으리오.” 하시거늘, 원일이 두려워하여 무례한 말로 상제님을 괴롭게 한 일을 뉘우치니라. 또 원일의 아우는 형이 상제님을 추종하면서 집을 돌보지 않음을 싫어하여 항상 상제님을 욕하더니 형에게 이 이야기를 듣고 생각하기를 ‘증산 어른을 욕한 죄로 집이 무너진 것이 아닌가.’ 하여 이로부터 마음을 고치니라.
道典 2:78) 믿음은 선령신의 음덕으로
선령신이 짱짱해야 나를 따르게 되나니 선령신을 잘 모시고 잘 대접하라. 선령신이 약하면 척신(隻神)을 벗어나지 못하여 도를 닦지 못하느니라. 선령의 음덕(蔭德)으로 나를 믿게 되나니, 음덕이 있는 자는 들어왔다가 나가려 하면 신명들이 등을 쳐 들이며 ‘이곳을 벗어나면 죽으리라.’ 이르고, 음덕이 없는 자는 설혹 들어왔을지라도 이마를 쳐 내치며 ‘이곳은 네가 못 있을 곳이라.’ 이르느니라.
삼생의 인연이 있어야
하루는 한 성도가 여쭈기를 “석가불이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치기를 ‘널리 공덕(功德)을 쌓아서 앞으로 오는 용화세계에서 살아가라.’ 하였다 하온데, 그 때의 사람들이 다가오는 선경의 낙원세계에 참여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삼생(三生)의 인연이 있어야 나를 따르리라.” 하시니라.
道典 2:79) 문둥병자를 새사람으로 만드심
하루는 상제님께서 원평(院坪)을 지나시는데 길가에 한 병자가 있거늘, 온몸이 대풍창(大風瘡)으로 뒤덮여 그 흉한 형상이 차마 보기 어려운 지경이라. 그 병자가 상제님의 행차를 보고 달려와서 크게 울며 하소연하기를 “제가 이생에 죄를 지은 바가 없는데 이 같은 형벌을 받음은 전생의 죄 때문이옵니까? 바라옵건대 전생에 지은 중죄(重罪)를 용서하옵소서. 만일에 죄가 너무 무거워서 용서하실 수 없다면 차라리 죽음을 내려 주옵소서.” 하고 통곡하며 뒤를 따르니
보는 사람들 가운데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더라.
상제님께서 잠시 애처롭게 바라보시더니 병자를 부르시어 “내가 너를 고쳐 주리니 여기 앉으라.” 하시고, 성도들로 하여금 “길 위에 둥글게 병자를 둘러싸고 앉으라.” 하신 후에 일러 말씀하시기를 “‘대학지도(大學之道)는 재신민(在新民)이라.’ 이 구절을 계속하여 외우라.” 하시니라. 이에 성도들이 명을 받들어 외우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 되었으니 그만 읽고 눈을 뜨라.” 하시거늘 모두 눈을 떠 보니 병자가 완전히 새사람이 되어 앉아 있는지라 모두가 크게 놀라니라.
하느님, 하느님이시여!
새사람이 된 병자가 기뻐 뛰고 춤추면서 “하느님, 하느님이시여! 저의 큰 죄를 용서하시어 저에게 새로운 인생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고 울부짖거늘, 이 광경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모두 “만일 하느님의 권능이 아니라면 어찌 이렇게 할 수 있으리오.” 하고 탄복하니라. 상제님께서 병자에게 “너는 북쪽으로 십 리를 가라. 거기에 가면 네가 살길이 있으리라.” 하시고 그를 보내시니
한 성도가 상제님께 여쭈기를 “문둥병은 천형(天刑)이라 하여 세상에서는 치료할 방도가 없는 것인데 글을 읽게 하여 그 자리에서 고치게 하시니 어떤 연고입니까?” 하매, 말씀하시기를 “나의 도(道)는 천하의 대학(大學)이니 장차 천하창생을 새사람으로 만들 것이니라.” 하시니라.
道典 2:84) 이봉현을 살려 주심
5월에 상제님께서 김광찬(金光贊)을 데리고 임피(臨陂) 읍내에 사는 이봉현(李鳳鉉)에게 가시니라. 이 때에 봉현은 다리에 큰 부스럼이 생겨 걸어다니지 못하더니, 광찬이 전에 없이 동저고리 바람으로 보퉁이를 걸머지고 다른 동저고리 차림을 한 사람과 동행하여 오는지라 반가이 맞아들여 술을 내어 대접하면서 생각하기를 ‘평소에는 말을 타고 점잖게 다니던 사람이 이같이 차리고 온 것도 이상하거니와
또 함께 온 사람이 저보다 연하인 듯함에도 불구하고 예의로 존경하니 참으로 이상하구나.’ 하며 의아해하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 봉현에게 술을 권하시니 봉현이 병을 빙자하여 받지 않으려 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병을 낫게 하여 주리니 염려 말고 받으라.” 하시고, 광찬 또한 “병은 염려 말고 받으라.” 하며 자꾸 권하므로 봉현이 할 수 없이 대작하니라. 술을 다 마신 뒤에 상제님께서 봉현에게 명하시어 “다리를 냉수에 씻으라.” 하시므로 봉현이 명하신 대로 하매 곧 나으니라.
이봉현(李鳳鉉, 1877∼1939). 본관 경주. 부 덕표(德杓)와 모 조씨의 4남.
道典 2:85) 한 번 더 보아 주옵소서
봉현의 집에서 머무르실 때 그 이웃 사람 강화운(康華運)이 창증(脹症)으로 사경에 이르러 죽기만 기다리고 있더니
그의 늙은 아버지가 상제님의 신성하심을 듣고 찾아와 문 앞에 엎드려 살려 주시기를 애걸하니라. 상제님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화운에게 가 보시니, 몸이 크게 부어 다리는 기둥 같고 배는 산과 같이 불러 있거늘,
말씀하시기를 “참 부골(富骨)로 생겼다.” 하시고 손가락으로 부은 배를 짚어 누르시니 한 자 깊이나 들어가는지라 사물탕(四物湯) 네 첩을 지으시어 두 첩은 시렁 위에 얹고 두 첩은 문밖에 뿌리신 뒤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고 봉현의 집으로 돌아오시니라.
이튿날 화운의 부친이 와서 기뻐하며 말하기를 “병이 크게 차도가 있으니 한 번 더 보아 주옵소서.” 하거늘 상제님께서 다시 가 보시니 부기가 거의 가라앉았더라. 이에 “미역국에 쌀밥을 말아 먹이라.” 하시고 돌아오셨다가 이튿날 다시 가시어 시렁 위에 얹어 둔 사물탕 두 첩을 마저 문밖에 뿌리시고 한 냥쭝의 돌가루를 방 가운데 뿌리시며,
말씀하시기를 “이렇게 앉아서만 지낼 것이 아니라 걸어 보아야 하리라.” 하시고 억지로 걷게 하시니 곧 완쾌되니라. 봉현의 집에서 이레를 더 머무르시고 임피 군둔리(臨陂 軍屯里)로 떠나실 때, 화운이 보퉁이를 걸머지고 따라와 사례금으로 30냥을 올리거늘, 상제님께서 받지 않으시니 굳이 받으시기를 청하는지라 하는 수 없이 그 돈을 받으시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러 술을 사 주시니라.
강화운(康華運, 1873∼1931). 본관 신천(信川). 본명 언석(彦錫), 상제님을 만난 당시(1906년) 34세였다.
창증(脹症): 배가 부어 올라 가라앉지 않는 병.
그의 늙은 아버지가: 강경문(康敬文, 1842∼1911). 당시 64세, 화운은 둘째 아들.
道典 2:87) 앉은뱅이를 고쳐 주심
상제님께서 머무시는 곳이면 어디나 병자들이 그 신이한 소식을 듣고 몰려와 병 고쳐 주시기를 애원하니라. 하루는 누가 앉은뱅이를 업고 오거늘 상제님께서 “뭣 하러 이런 놈을 다 업고 다니냐.” 하시며 손가락을 튕기시니 병자와 그를 업고 온 사람이 함께 넘어지는지라
상제님께서 병자를 향하여 “아, 이놈 봐라! 거짓으로 앉은뱅이가 되어서 나으려 하는구나! 너 여기 왜 왔냐, 나를 의원으로 아냐? 네 눈구녕으로 보니 내가 의원이냐? 내가 뭘 가지고 너를 일어나게 하냐?” 하시며 말씀마다 그를 내치시는데, 병자는 오로지 고쳐 주실 것으로 믿고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기다리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병자의 다리에 손가락으로 무어라 쓰시고 “물을 떠 오라.” 하시며 방으로 들어가시니, 한 성도가 물을 떠다 올리매 한 모금을 드신 후에 손가락에 물을 묻혀 방바닥에 글씨를 쓰시는데, 상제님께서 무엇을 하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니라.
잠시 후 상제님께서 다시 마당에 나오시어 방 한쪽을 가리키시며 병자에게 “야 이놈, 저 윗목에 가서 저것 좀 가져오너라.” 하고 명하시니 앉은뱅이가 ‘성한 놈 두고 아픈 놈보고 가져오라 한다.’며 투덜거리거늘, 상제님께서 “이놈아, 벌떡 못 일어나!” 하시며 병자의 뺨을 때리시매 뒤로 벌러덩 넘어가니라. 병자가 그래도 못 일어나겠다 하니
상제님께서 노기를 띠시며 “저 일어나는 것 보려고 가져오라는데, 그렇게 몰라서 싫다고 앙알앙알하냐!” 하시며 한 대를 더 때리시거늘, 그래도 여전히 일어나지 않으매 크게 호통치시기를 “이놈이! 제가 아파서 왔구마는, 내가 의원이라고 왔냐, 침쟁이라고 왔냐, 이놈아! 어디 침 좀 맞아 봐라.” 하시며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시니라. 이에 병자가 죽는다고 소리를 지르는데 상제님께서 다시 “일어서라!” 명하시거늘 하는 수 없이 일어서니 성한 사람과 꼭 같더라.
상제님께서 이르시기를 “야, 이놈아. 술값이나 내놓고 어서 달음박질해 가거라. 네까짓 놈하고 말할 기운 없다.” 하시니 그 사람이 기뻐서 뛰며 있는 대로 사례비를 내놓거늘, 말씀하시기를 “없는 놈이 제 병 나으려고 요걸 갖고 와서 주고 간다고…. 일어나지도 못하는 놈을 일으켜 세워 주었으니, 이제 제 자식 대에라도 ‘그 양반이 나를 낫게 해 줬다.’고 말을 이을 것이거늘,
내가 있어서 저를 도와주지는 못하나마 이걸 받아서야 쓰겠느냐?” 하시며 오히려 돈을 더 보태어 주시니라. 이에 형렬이 감탄하여 말하기를 “바다같이 넓은 마음이시라. 물이 많으면 아무리 퍼내어도 준 자리가 없다고, 바다같이 넓은 양반은 마를 것이 없구나. 깊은 물과 얕은 물은 역시 다르구나.” 하더라.
道典 2:90) 하늘은 곧 이치(理)
하루는 상제님께서 글을 쓰시니 이러하니라.
天者는 理也라 昭昭之天이 合人心之天하니, 理는 原於天하여 具於人心하니라
하늘은 이치(理)이니라. 밝고 밝은 하늘이 사람 마음속 하늘과 부합하니, 이치(理)는 하늘에 근원을 두고 사람의 마음에 갖춰져 있느니라.
若逆理면 則自欺此心之天이니, 此는 欺在天之天이니라 禍非自外而來요 罪及其身也니라
이치(理)를 거스름은 곧 스스로 마음속 하늘을 속이는 것이니 이는 하늘에 있는 하늘을 속이는 것이니라. 화(禍)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요, 죄가 제 몸에 미친 것이니라. 천지는 나와 한마음이니 사람이 천지의 마음을 얻어 제 마음 삼느니라.
道典 2:91) 일심이 없으면 우주도 없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공사를 보시며 글을 쓰시니 이러하니라.
天地萬物이 始於一心하고 終於一心하니라
천지만물이 일심에서 비롯하고, 일심에서 마치느니라. 오직 일심을 가지라 일심이 없으면 우주도 없느니라. 일심으로 믿는 자라야 새 생명을 얻으리라. 너희들은 오직 일심을 가지라. 일심으로 정성을 다하면 오만년의 운수를 받으리라.
道典 2:93)상제님 말씀은 생명의 약
정미(丁未 : 道紀 37, 1907)년 정월에 상제님께서 김형렬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나의 말은 약이라. 말로써 사람의 마음을 위안도 하며 말로써 병든 자를 일으키기도 하며 말로써 죄에 걸린 자를 끄르기도 하나니, 이는 나의 말이 곧 약인 까닭이니라.
‘良藥은 苦口나 利於病이요, 忠言은 逆耳나 利於行이라
좋은 약은 입에는 쓰나 병에는 이롭고, 충언은 귀에는 거슬리나 행함에는 이롭다.’ 하나니, 나의 말을 잘 믿을지어다.
나의 말은 구천(九天)에 사무쳐 잠시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나니 부절(符節)과 같이 합하느니라.” 하시니라.
천지조화를 말씀으로 다스리심
하루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니 이러하니라.
天地化權도 一由舌門이라
천지화권도 한결같이 혀로 말미암느니라.
道典 2:94) 천조(天朝)를 맡기고 강세하심
나의 일은 비록 부모, 형제, 처자라도 알 수가 없나니 나는 서양 대법국 천개탑 천하대순이로다. 동학 주문에 ‘시천주 조화정(侍天主造化定)’이라 하였나니 천지간의 모든 신명들이 인류와 신명계의 겁액을 나에게 탄원하므로 내가 천조(天朝)의 대신(大臣)들에게 ‘하늘의 정사(政事)를 섭리하라.’고 맡기고,
서양 천개탑에 내려와 천하를 둘러보며 만방의 억조창생의 편안함과 근심 걱정을 살피다가 너의 동토(東土)에 인연이 있는 고로 이 동방에 와서 30년 동안 금산사 미륵전에 머무르면서 최제우에게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내려 주었더니 조선 조정이 제우를 죽였으므로 내가 팔괘 갑자(八卦甲子)에 응하여 신미(辛未 : 道紀 1, 1871)년에 이 세상에 내려왔노라.
궁을가(弓乙歌)에 ‘조선 강산 명산이라 도통군자 다시 난다.’는 말은 이를 두고 이른 말이니라. 최제우는 유가(儒家)의 낡은 틀을 벗어나지 못하였나니 나의 가르침이 참동학이니라. 동학교도가 모두 수운(水雲)의 갱생(更生)을 기다리나 죽은 자는 다시 살아나지 못하느니라. 내가 수운을 대신해 왔나니 내가 곧 대선생이니라.
팔괘 갑자(八卦甲子): 최수운에게 내린 천명과 신교를 거두신 해, 갑자(甲子, 1864)년으로부터 8년 후를 뜻한다.
궁을가(弓乙歌): 북창 정렴이 인류 구원의 법방에 대해 적은 비결. 전 인류의 생명줄을 주관하는 절대적 존재가 천지일월의 사체(四體, 弓弓乙乙)로 우리나라에 출세하는 이치를 담고 있다. 동학신도들이 많이 불렀다.
참동학. 우주의 통치자 하느님이신 증산 상제님께서 9년 천지공사를 집행하시어, 당신의 무극대도 시대를 선포한 ‘후천개벽, 천주님 강세, 무극대도 출세’ 라는 동학의 이상을 실현하신다는 것을 뜻한다. 이를 위해서 상제님께서 스스로 하늘 보좌에서 내려오셨다.
道典 2:95) 근본을 모르는 종교 지도자들의 종말
세상 사람이 다 하고 싶어도 법(法)을 몰라서 못 하느니라. 이제 각 교 두목들이 저의 가족 살릴 방법도 없으면서 ‘살고 잘된다.’는 말을 하며 남을 속이니 어찌 잘되기를 바라리오. 공자가 알고 하였으나 원망자가 있고, 석가가 알고 하였으나 원억(寃抑)의 고를 풀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저도 모르는 놈이 세간에 사람을 모으는 것은 ‘저 죽을 땅을 제가 파는 일’이니라.
수운가사에 ‘기둥 없이 지은 집이 어이하여 장구하리. 성군취당(成群聚黨) 극성(極盛) 중에 허송세월 다 보낸다.’ 하였느니라. 속언에 ‘죄는 지은 데로 가고 공은 닦은 데로 간다.’는 말이 참으로 성담(聖談)이니 잘 기억하라.
道典 2:96) 천하에 무서운 죄
항우가 25세에 출세하였으면 성공하였을 것인데, 24세에 출세하였으므로 성공을 보지 못하였느니라. 대장부 출세하는 법이 대세를 모르면 봉사가 지팡이 잃은 것과 같으니 일찍 작파하여야지, 대세도 모르는 놈이 출세한다고 나서면 낮에 난 도깨비 같고, 제가 알고 남을 가르쳐야지 저도 모르는 놈이 남을 속이고 사람을 모으다가는 제가 먼저 죽으리라. 천하에 무서운 죄는 저도 모르는 놈이 남을 모아 수하(手下) 중에 넣는 것이니 그 죄가 제일 크니라.
항우(項羽, 서기전 232∼서기전 202): 중국 초(楚)의 왕. 서기전 209년 진(秦)을 멸망시키고 서초의 패왕(覇王)으로 군림하다가 한(漢)의 유방(劉邦)에게 패하여 오강(烏江)에서 자결함.
道典 2:97) 천하에 개벽세계를 아는 자 없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이도삼(李道三)에게 “글 석 자를 부르라.” 하시니 도삼이 천(天), 지(地), 인(人) 석 자를 부르거늘 상제님께서 글을 지어 말씀하시니 이러하니라.
天上無知天하고 地下無知地하고, 人中無知人하니 知人何處歸리오
천상에서는 하늘 일을 알지 못하고, 지하에서는 땅 일을 알지 못하고, 사람들은 사람 일을 알지 못하나니 삼계의 일을 아는 자는 어디로 돌아가리.
이도삼(李道三, 1865∼1943): 본관 전주. 그의 이름 기운을 취하시어 도운(道運), 삼변 (三變) 등과 관련된 공사에 주로 참여케 하셨다.
道典 2:101) 나의 모든 행적을 전하라
하루는 형렬이 상제님께 하소연하기를 “구름이 끼었다가도 개어서 해가 나면 청명하고 좋은데, 어찌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늘 어둡습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지를 보아라. 하늘은 하나인 성싶어도 몇천 덩어리이거늘, 하늘은 모두 하늘이요 끝간데가 없느니라. 숙맥들은 비만 안 와도 하늘을 욕하고, 공부한다는 놈들은 하늘을 팔아먹고 살아도 정작 하늘이 무엇인지는 모르느니라.” 하시고,
또 형렬과 호연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천지일을 보니 그런 사소한 일에 마음 쓸 겨를이 없느니라. 용이 물을 끌어올려 천하에 비를 주듯이 너희들이 나의 모든 행적을 잘 봐 두었다가 뒤에 전하여 천하를 밝히지 않는다면 내 어찌 천지 주름을 삼을 수 있겠느냐!” 하시니라.
용이 물을 끌어올려 천하에 비를 주듯이: 상제님께서는 정음정양 도수에 따라 김형렬 성도와 김호연 성도를 당신의 말씀과 행적의 전모를 밝히는 증언자로 내세우셨다. 김형렬 성도는 상제님의 주요 공사들을 증언하였고, 김호연 성도는 상제님의 신도(神道) 차원의 대공사들을 생생하게 증언하여 인간으로 오신 하느님의 천지조화권을 드러내 줌으로써 『도전(道典)』 성편을 가능하게 했다.
道典 2:103) 무척 잘사는 길
상말에 ‘무척 잘산다.’ 이르나니 ‘척(隻)이 없어야 잘산다.’는 말이니라. 남에게 원억(寃抑)을 짓지 말라. 척이 되어 갚느니라. 또 남을 미워하지 말라. 그의 신명(神明)이 먼저 알고 척이 되어 갚느니라. 앞세상에는 서로의 마음속을 드나들어 그 속내를 알게 되나니, 남을 속이지 말고 척이 있으면 풀어 버리라. 부하고 귀하고 강권을 가진 자는 모두 척에 걸려 콩나물 뽑히듯 하리라.
‘척(隻)’은 원래 조선 시대에 민사와 관련된 소송이 벌어질 때 피고를 이르는 말이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고소하여 피고로 만드는 것을 ‘척지다.’라고 하는데, 소송을 걸어 싸우면 결국 서로 원망하는 사이가 되므로 ‘척지다.’라는 말이 ‘다른 사람과 원수지간이 되다.’라는 의미로 발전한 것이다.
道典 2:104) 척을 짓지 말라
대군(大軍)을 거느리고 적진을 쳐부수는 일이 영화롭고 장쾌하다 할지라도 인명을 잔멸케 하는 일이므로 악척(惡隻)이 되어 앞을 가로막느니라. 남이 힘들여 말할 때에는 설혹 그릇된 점이 있을지라도 일에 낭패만 없으면 반박하지 말라. 그도 또한 척이 되느니라.
이웃 사람이 정 붙여 주는 음식이 비록 맛이 없거나 먹고 병들지라도 사색(辭色)을 내지 말라. 오는 정이 꺾이어 이 또한 척이 되느니라.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마음으로 반기어 잘 대우하면 그 사람은 모를지라도 신명은 알아서, 어디를 가든지 대우를 잘 받게 되느니라.
道典 2:105) 나의 일은 추호도 사정(私情)이 없으니
상제님께서는 부친으로 하여금 일상생활에 항상 자력을 쓰도록 하시고, “평소에 허물 지은 것을 생각하여 허물 닦기에 힘쓰소서.” 하시니라. 또 성도들이 부친께 물품이나 금품을 드리는 것을 엄금하시니라. 하루는 어떤 성도가 집이 너무 좁고 초라함을 민망히 여겨 그보다 큰 집을 사 드린 일이 있더니,
상제님께서 꾸짖으시며 “네가 어찌 나의 부친을 도적으로 만들려 하느냐.” 하시고, 다시 이르시기를 “속 모르는 사람은 나에게 불효라 할지나 나는 부친의 앞길을 닦아 드리려 함이로다. 내가 항상 가늠을 놓고 보는데 만일 그 가늠에 어그러지면 허사가 되나니 너희들이 부친의 빈궁하심을 민망히 여겨 도와드리고 싶거든 먼저 나에게 말하라. 그 가늠을 변경하리라.” 하시니라. 하루는 태인으로부터 손바래기에 이르시어 부친께 여쭈기를 “나의 일은 추호도 사정(私情)이 없으니 부디 죄를 짓지 마소서.” 하시니라.
상제님의 부친: 성부 강흥주(姜興周, 1846∼1916). 道紀 46년 71세로 작고. 말년에 평소 형제처럼 지내던 유덕안의 협실에 살면서 짚신을 삼아 생계를 이으셨다.
道典 2:106) 가장 큰 죄는
지은 죄상은 만인경(萬人鏡)에 비추어 보면 제 죄를 제가 알게 되니 한탄한들 무엇하리. 죄는 남의 천륜(天倫)을 끊는 죄가 가장 크니라. 유부녀를 범한 죄는 워낙 큰 죄이므로 내가 관계하지 아니하노라.
道典 2:107) 죄지은 놈은 큰길 번듯한 데를 못 가나니
하루는 상제님께서 성도들과 함께 길을 가시다가 문득 “대로로 갈까, 소릿길(小路)로 갈까, 모로 갈까?” 하고 물으시거늘, 호연이 “아, 뭐라고 해요?” 하니 “죄지은 놈은 큰길 번듯한 데를 못 간다.” 하시니라. 호연이 다시 “어떻게 해서 못 가? 두 다리로 걸어가지.” 하니 일러 말씀하시기를 “죄지은 놈은 옆눈질 하느라고 못 가.
큰길을 가도 옆살걸음을 하고 옆눈질을 하면서 가장자리로 가지 당당하게 못 가나니 벌써 제 중심이 반듯하지 못해서 그런다. 사람이 그냥 가는 성싶어도 옆으로 보며 가는 놈이 있어.” 하시고, “눈꽃을 보면 심보가 되어 먹었는지, 안 되어 먹었는지를 안다. 눈짓이 다르니라.” 하시니 성도들이 서로 눈을 쳐다보고 야단이더라.
道典 2:112) 네 말이 곧 내 말이니라
하루는 박공우(朴公又)를 데리고 정읍으로 가실 때, 상제님께서 “공우야, 마음속으로 ‘풍운조화(風雲造化)’를 외워라.” 하시니라. 공우가 명하신 대로 지성으로 ‘풍운조화’를 외우며 걸어가는데 상제님께서 문득 “공우야, 네가 잘못 읽고 있구나.” 하시거늘, 공우가 깜짝 놀라 돌이켜 보니 ‘풍운조화’를 ‘천문지리(天文地理)’라고 그릇 외우고 있는지라
곧바로 “풍운조화 풍운조화” 하고 고쳐 외우면서 대흥리(大興里)에 도착하니라. 이날 밤에 눈과 비가 번갈아 내리매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잘못 읽어서 지금 천기(天氣)가 한결같지 못하도다.” 하시거늘, 한 성도가 여쭈기를 “한 사람이 글을 외우는 것이 능히 천기를 좌우하니 무슨 까닭입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에게 명하여 천지공사를 대행(代行)하게 하면 네 말이 곧 내 말이니라.” 하시니라.
너희들은 하늘을 이고 행세하느니라
한 성도가 다시 여쭈기를 “저희들이 공사를 대행하면 천지조화도 쓰지 못함이 없으니 모두 자신만만하여 세상일이 가볍게 보이고 아무 두려운 것이 없어 공후백작(公侯伯爵)이 손바닥 안의 물건처럼 여겨지나이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기뻐하며 말씀하시기를 “옛말에 ‘문선왕(文宣王) 끼고 송사(訟事)한다.’는 말이 있지 않으냐.
너희들은 하늘을 이고 행세하느니라. 너희들이 지금은 한 마을의 일도 감당하지 못하나 때가 오면 천하의 준걸(俊傑)들이 너희들에게 와서 선생으로 받들게 될 것이니라.” 하시니라.
박공우(朴公又, 1876∼1940): 본관 밀양. 호 인암(仁菴). 전주시 교동에서 부 순문과 모 오묘전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성품이 소탈하고 꽃을 좋아해서 직접 집에 꽃밭을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32세때인 정미(1907)년에 친구 차경석의 인도로 입문하였다.
문선왕(文宣王): 당나라 현종(玄宗)이 공자(孔子)에게 내린 시호.
道典 2:114) 선천 성자들의 종교를 비방 말라
무신(戊申 : 道紀 38, 1908)년에 하루는 상제님께서 류찬명(柳贊明)에게 말씀하시니 이러하니라.
毁東道者는 無東去之路하고, 毁西道者는 無西去之路니라
동도(東道)를 헐뜯는 자는 동으로 갈 길이 없고, 서도(西道)를 헐뜯는 자는 서로 갈 길이 없느니라.
류찬명(柳贊明, 1866∼1931): 본관 전주(全州). 족보명 찬근(贊根). 금산면 청도리에 거주하였다. 당시 구릿골에서 금구로 가려면 모악산 서쪽 줄기의 싸리재를 지나서 갔는데 그 길목에 찬명의 집이 위치하여 공사시에 자주 들르셨다고 한다.
道典 2:115) 형렬의 딸을 구해 주심
무신년 봄에 하루는 형렬의 딸이 병들어 앓는다는 말을 들으시고, 문밖에 나가 휘파람을 세 번 부신 뒤에 ‘만수(萬修)’를 세 번 부르시니 맑은 하늘에 난데없이 기미 같은 것이 잔뜩 끼어 지척을 분별하기 어려운지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런 것이 있어서 사람을 많이 병들게 한다.” 하시고
공중을 향하여 입으로 한 번 부시거늘, 기미같이 어려 있던 것이 입바람에 몰려 푸른 하늘로 뻗쳤다가 갑자기 바람이 일어나 사방으로 헤쳐지면서 하늘이 다시 맑아지더라. 이후로 형렬의 딸이 곧 나으니라.
만수(萬修, ?~26): 후한의 광무제를 보필한 28장 중의 한 사람으로, 상제님의 보호신장이다.
道典 2:118) 사람이 죽음의 질서에 들어가면
김송환(金松煥)이 사후(死後)의 일을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사람에게는 혼(魂)과 넋(魄)이 있어, 혼은 하늘에 올라가 신(神)이 되어 제사를 받다가 4대가 지나면 영(靈)도 되고 혹 선(仙)도 되며, 넋은 땅으로 돌아가 4대가 지나면 귀(鬼)가 되느니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자손을 둔 신은 황천신(黃泉神)이니 삼신(三神)이 되어 하늘로부터 자손을 타 내리고, 자손을 두지 못한 신은 중천신(中天神)이니 곧 서신(西神)이 되느니라.” 하시니라.
김송환(金松煥, 1889∼1931): 본관 김해(金海). 충남 서천군 종천면 흥림리에서 부 순열과 모 전주 최씨 사이에서 7대 독자로 태어났다. 공사시에는 청도원 귀신사 옆에 살고 있었다.
혼(魂)과 넋(魄): 혼백이란 우리 몸 속에 있는 영체(靈體)의 음양적인 두 요소이다. 만물은 하늘기운과 땅기운의 교합으로 태어난다. 사람도 하늘기운을 받아 혼(魂)이 생겨나고 땅기운을 받아 넋(魄)이 생성된다.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혼과 넋이 각기 본처로 돌아가 신(神)과 귀(鬼)가 되는 것이다.
道典 2:119) 60년 공덕을 들이는 천상 선령신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무한한 공부를 들이나니 그러므로 모든 선령신(先靈神)들이 쓸 자손 하나씩 타내려고 60년 동안 공을 들여도 못 타내는 자도 많으니라. 이렇듯 어렵게 받아 난 몸으로 꿈결같이 쉬운 일생을 어찌 헛되이 보낼 수 있으랴. 너희는 선령신의 음덕을 중히 여기라. 선령신이 정성 들여 쓸 자손 하나 잘 타내면 좋아서 춤을 추느니라. 너희들이 나를 잘 믿으면 너희 선령을 찾아 주리라.
서양이 곧 명부
하루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서양이 곧 명부(冥府)라. 사람의 본성이 원래 어두운 곳을 등지고 밝은 곳을 향하나니 이것이 곧 배서향동(背西向東)이라. 만일 서양을 믿는 자는 이롭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道典 2:121) 해를 멈추게 하신 조화권능
구릿골 약방에 계실 때, 하루는 아침 일찍 해가 앞 제비산 봉우리에 반쯤 떠오르거늘, 상제님께서 여러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러한 난국에 처하여 정세(靖世)의 뜻을 품은 자는 능히 가는 해를 멈추게 할 만한 권능을 가지지 못하면 불가할지니 내 이제 시험하여 보리라.” 하시니라. 이어 축인 담배 세 대를 갈아 피우시니 해가 산꼭대기에서 솟아오르지 못하다가 상제님께서 담뱃대를 떼어 땅에 터시니 눈 깜짝할 사이에 수장(數丈)을 솟아오르더라.
道典 2:122) 대추나무에 매달린 김형렬의 큰며느리
상제님께서 임인년 이래로 여러 성도들과 함께 형렬의 집에서 자주 공사를 행하시니 형렬의 큰며느리가 잘 곳이 없어 다른 집에서 자는 경우가 많고, 방안에 성도들이 있으면 방문 앞을 제대로 지나다니지도 못하며, 오랫동안 상제님 의복을 빨아 드리고 끼니마다 수종을 드니 그 노고가 크더라.
무신년 겨울에 하루는 상제님께서 형렬의 집으로 들어서시는데, 형렬의 큰며느리가 상제님을 오래 대하다 보니 무서운 줄을 모르고 “저 미친놈 또 온다.” 하고 불평하거늘, 이 소리가 떨어지자마자 며느리가 난데없는 바람에 날려 마당 끝 대추나무 가지에 코가 꿰여서 걸리는지라 이를 본 이들이 나뭇가지가 부러질 것도 같고,
며느리가 너무 불쌍하기도 하여 내려 주려고 다가가니 가는 이마다 발바닥이 땅에 달라붙어 내려 주기는커녕 도리어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게 되니라. 이에 한 사람이 나서며 “아이고, 저 사람을 한 번 보고 다시는 안 보려 하십니까! 세상에, 저렇게 코피가 나도록 두십니까.” 하며 간청을 하는데, 상제님께서는 “어디 코피가 나냐, 이 눈구멍 빠진 놈아!” 하시며 오히려 그를 나무라시니라.
벙어리로 만드심
고산(高山)에 사는 친정 부모와 형제들이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놀라서 단숨에 달려오거늘, 친정어머니가 “언제까지 이렇게 둘 것이오?” 하며 딸을 내려 주려 하매 손을 쳐든 채로 서 있게 만드시고 친정아버지와 형제들도 발이 땅에 붙어 꼼짝 못하도록 만드시니라. 이에 며느리와 발이 붙은 이들이 더욱 소리치며 울고불고 난리이거늘 상제님께서 “시끄럽다.” 하시며 모두 벙어리로 만드시고
그래도 여전히 “음, 음!” 하고 소리치며 울어대니 “그 소리도 듣기 싫다.” 하시며 아예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게 만드시니라. 또 고샅에서 구경하던 마을 사람들도 누구든지 한마디만 하면 그 자리에 붙여 놓으시니 모두 입을 봉하고 아무 말도 못 하니라.
형렬의 큰며느리: 이정숙(李貞淑, 1888∼1968). 본관 한산. 고산 화정리에서 시집와 찬문과의 사이에 영식, 준식, 현식, 정식 4형제를 두었다. 이 때 찬문은 24세, 정숙은 21세였다.
이는 단순히 한때의 단편적인 사건 때문이 아니라 수년간 거듭된 큰며느리의 악성(惡性)을 근원적으로 개벽시키시기 위한 것이다. 이 사건 뒤로 큰며느리의 코끝이 조금 늘어졌다고 한다.(김호연 성도 증언)
고산(高山): 현재 전북 완주군 고산면.
道典 2:123) 버릇을 고쳐야 하느니라
땅에 발이 붙은 사람들이 ‘땅을 파면 행여 떨어질까.’ 하여 땅을 아무리 파 보아도 떨어지지 않거늘, 상제님께서 이들에게 3일 동안 먹을 것을 주지 못하게 하시고, 진지를 드실 때는 마당이 훤히 보이는 토방에서 드시며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것 먹어라, 저것 먹어라.’ 하고 권하시니 마당에 있는 사람들이 더욱 배가 고파 심히 고통스러워하더라.
이를 보다 못한 호연이 “저 냇물에서 누가 ‘증산 어른, 증산 어른.’ 그래요.” 하니 “어떤 놈이 나를 불러?” 하시거늘
호연이 “몰라, 뭣 하려고 그러는가. 저 매달린 사람 살려 주라고 그런가 봐요.” 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예끼 이놈! 그건 네 말이다.” 하고 머리를 한 대 쥐어박으시니 호연이 “이제 그만 내려 주세요.” 하며 간곡하게 사정하거늘 “저거, 버릇을 고쳐야 한다.” 하시고 그냥 두시니라.
내려오라고 해 보라
저녁이 되자 상제님께서 형렬을 불러 물으시기를 “끌러 주어야 옳을까, 내버려 두어야 옳을까. 어떻게 하랴?” 하시니
형렬이 끌러 주시라고 하면 더 달아 놓으실 것을 알고 “아, 마음대로 하십시오. 죽일 테면 죽이시고, 살릴 테면 살리시고, 저 보기에도 어줍잖으니 아깝지도 않습니다.” 하고 아뢰거늘 상제님께서 “저런 독한 것 보라.” 하시고
앞집의 수만 어미를 불러 명하시기를 “저기 올라가 있는 사람, 가서 내려오라고 해 보라.” 하시니라. 이에 수만 어미가 “내려 주셔야 내려오지, 제가 내려오란다고 내려오나요?” 하고 말대꾸를 하니 상제님께서 “요놈의 여편네를 봐라, 어른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안 하고!” 하며 꾸짖으시거늘,
수만 어미가 혼잣말로 중얼거리기를 “장가도 안 가 놓고는 어른이라고 하네.” 하는데, 상제님께서 이를 아시고 “네 눈에는 내가 장가를 안 간 것 같으냐!” 하고 호통치시며 문 앞에 세워 놓으시니라. 잠시 후에 그 남편이 찾아와 “아이고, 이 동네 떠나야지 못살겠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하며 큰 소리로 떠들거늘,
상제님께서 “그래, 어서 가거라. 어서 다른 데로 가라!” 하고 호통치시니 별안간 그 집 농 속의 옷과 모든 살림이 너울너울 허공을 날아 울타리 밖과 내 건너로 떨어지는지라 이를 보던 동네 사람들이 혹여 화가 미칠까 하는 두려움에 멀찌감치 떨어져서 “아이고, 어쩌면 좋아, 어떻게 살꼬?” 하며 고개를 내두르더라.
道典 2:124) 그 버릇을 누구에게다 하느냐
형렬이 보기가 안쓰러워 차마 더는 두지 못하고 상제님께 용서를 구하며 아뢰기를 “철모르고 그런 것이니 용서해 주십시오! 저희들에게 항상 ‘마음을 널리 먹고 널리 쓰라.’ 하셨고, ‘소인배가 소인배 짓을 한다.’ 하셨듯이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선생님은 마음이 대천 한바다이시면서 어째 그 하찮은 것을 가리십니까?” 하니
그제야 내려 주시니라. 이에 모두 형렬을 따라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는데, 비록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일지라도 그냥 서 있으면, “너는 뭣이냐, 이놈? 너는 뻣뻣한 작대기냐?” 하고 호통치시며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기만 하여도 콩나물 쓰러지듯 하더라.
3일이 지난 끝에 겨우 풀려난 형렬의 큰며느리가 비로소 “잘못했으니 죽여 주십시오!” 하며 깊이 사죄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시아버지에게 하던 버릇을 내게다 하려고 하느냐? 서방에게 하던 버릇, 시에미에게 하던 버르장머리를 누구에게다 하느냐?” 하고 호되게 꾸짖으시니 이 뒤로는 형렬의 큰며느리가 상제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더욱 정성스럽게 모시니라.
이날 살림살이가 날려 갔던 수만네가 옷과 살림살이를 찾으러 가 보니 아무것도 없거늘, 누가 집어 간 줄로 알고 발을 구르며 애석해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니 옷이며 살림살이가 이미 제자리에 돌아와 있더라.
道典 5:27) 제주도 바다 개벽 대공사
제주에 당도하니 문도들이 ‘어른이 오셨다.’며 매달아 두었던 쌀을 내어 서숙과 함께 밥을 하고 생선으로 찬을 올리거늘 호연이 “비린내 나서 못 먹어.” 하고 투정을 부리매 형렬과 함께 한림 바닷가로 데리고 나가시니라. 바다에서는 해녀들이 허리에 정게호미를 차고 뒤웅박을 띄워 놓은 채 물속을 분주히 드나들며 해물을 따는데,
상제님께서 바닷가 둑 위에 올라서시어 오른팔을 왼쪽 어깨까지 굽혔다가 바닷물을 밀어내듯 팔을 펴시면서 무어라 말씀하시니 갑자기 ‘홱’ 소리가 나며 바닷물이 순식간에 없어져 벌판이 되거늘, 물속에서 해물을 따던 해녀들은 영문을 몰라 두리번거리며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사방에서 사람들이 바구니를 들고 몰려와 고기와 미역 등을 주워 담느라 야단이더라.
상제님께서 한동안 이 광경을 바라보시더니 이번에는 바닷물을 왈칵 들어오게 하시거늘, 호연은 사람들이 물살에 휘말려 아우성치는 모습을 구경하느라 배고픈 것도 잊으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바로 천지조화니라.” 하시고 이로부터 열흘 동안 한수리, 수원리, 귀덕리 일대에서 아침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씩 바닷물을 없애시니라.
상제님께서 공사 보신 이 놀라운 사건이 지금도 제주 토박이와 해녀들 사이에 생생히 구전되어 온다.
제주에 당도하니. 당시 제주도의 관문은 조천포였다. 이곳은 배가 출항하는 데 아주 편리한 지형을 갖추고 있어서 진상 물품을 실은 배가 대부분 이 곳에서 출항하고, 들어오는 선박도 정박하였다. 또, 제주성과 가장 가까워 지방 관리나 도민들이 왕래하는 관문이었다. 조천(朝天)은 ‘천자를 배알한다.’는 뜻이다. 상제님께서 이곳을 통해 제주도에 가신 것으로 보인다.
바닷물을 없애시니라. 후천 대개벽의 상황을 천지공사로 집행하여 기운을 돌려놓으신 것이다. 이 공사를 통해 대개벽 후 제주도의 형상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상제님께서 보여주신 이와 같은 생생한 기행이적들은, 후일 제주도 도민의 70퍼센트 가량이 보천교를 신앙하게 만드는 직·간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道典 5:28) 제주도에서 공사 보실 때
이로부터 십여 일 동안 제주도에 머무시며 공사를 행하실 때 늘 소매가 넓은 푸른 도포(靑袍)를 입으시고 순식간에 어음(於音)에서 서귀포(西歸浦)까지 다녀오시며, 땅이고 바다고 제주도 곳곳에서 홀연 나타나셨다가 홀연 사라지시니
온 섬 안에 ‘푸른 청포를 입은 신인이 도포 자락을 펄럭이며 동서로 날아다니신다.’는 소문이 퍼져
상제님께서 이르시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니라. 상제님께서 공사를 마치신 뒤에 그곳에서 나오실 때면 마치 바람에 날려 가듯 도포 자락을 흩날리며 유유히 사라지시니 마을 사람들이 그 모습을 넋을 놓고 지켜보더라.
“증산 천사가 제주도 왕이네(와서) 축지법으로 바당(바다)이고 땅이고 어디고 헐거어시(할것없이) 막 왔다갔다 허고, 바당 위도 거렁댕기고(걸어다니고) 바당물도 어서지게(없어지게) 만들었다. 뭐, 이디(여기) 어음이서 서귀포까지 몇 분 만에 갔다왔다 했다. (중략) 증산 천사가 제주도에 왔다는 이야기는 다 알아.”〈김규형(1933~ ) 증언〉
제주도에서 한평생을 산 고성춘(1912~2003) 증언.
道典 5:29) 바닷물 위로 걸어 다니며 공사 보심
하루는 바닷가로 나가시니 해녀들이 물질을 하러 오거늘, 상제님께서 한 사람에게 다가가시어 “어깨에 두른 것은 무엇이고, 배에 차는 것은 어째서 차는가?” 하고 물으시니 “배에 차는 놈은 물에 가라앉으라고 차는 것이고, 어깨에 맨 놈은 제가 어디에 있다고 사람들한테 알리는 것입니다.” 하니라.
상제님께서 “나는 그런 것 안 하고 저 물속에 그냥 들어간다, 봐라!” 하시며 마치 땅 위를 걷듯이 바닷물 위를 활개치며 다니시니 모두 크게 놀라며 “아, 우리는 죽을까 봐 등에 두름박을 차고 들어가는데 저 어른은 어찌 버선발로 들어가도 안 젖을까? 대체 저 어른이 귀신인지 사람인지 모르겠네.” 하며 수군거리니라.
이 때 한 사람이 그 신이하심에 경탄하며 “아이고, 저희들 고기 좀 잡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는지라. 상제님께서 “내가 너희들 심부름하러 왔냐? 너희들이 나를 사람으로 보느냐?” 하고 꾸짖으시니 그 사람이 “그러면 무엇이래요? 귀신이래요?” 하고 다시 여쭈거늘, 상제님께서 큰 소리로 “내가 귀신이다!” 하고 외치시매 모두 소스라치게 놀라 물속에서 뛰쳐나오고 무서워 울고 야단이더라.
道典 5:69) 상제님께서 무공산을 내려오시며 형렬에게 이르시기를 “나는 수중(水中)으로 가리니 너는 뭍으로 가라.” 하시거늘, 형렬이 불만스럽게 생각하여 아뢰기를 “어찌 저는 뭍으로 가라 하십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물로 천 리, 땅으로 천 리인데 내가 너를 생각하여 뭍으로 가라 했거늘 어찌 그러느냐?” 하시니라. 이에 형렬이 아뢰기를 “선생님은 조화를 쓰시지만 저는 재주도 못 부리니 못 걸어갑니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그럼 함께 가자!” 하시니 갑자기 산중에서 낙타가 나타나매 형렬을 낙타에 태워 보내시니라.
道典 5:70) 바다 속 용궁에 들어가심
상제님께서 형렬을 보내신 뒤에 호연을 옆구리에 끼고 어느 굴 속으로 들어가시니라. 호연이 보매 분명 굴속이었으나 상제님께서 “내 팔뚝을 못 놀리니 앞으로 더 들어와라. 요쪽으로, 요쪽!” 하며 잡아당기시거늘, 말씀하시는 대로 몸을 옮기느라 한눈을 파는 사이에 어느새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더라. 상제님께서 “이제 용궁(龍宮)으로 들어간다.” 하시니 호연이 “거기에 집이 있대요?” 하고 여쭈거늘, 말씀하시기를 “응, 그려. 거기 가서는 아무 소리도 말아라.
나 하는 것만 보고 내가 앉혀 놓으면 앉혀 놓은 대로 가만히 있지, 나를 부르지도 말아라, 잉?” 하시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시니라. 잠시 후 용궁에 이르니 문 앞에 거대한 물방아가 있거늘, 상제님께서 그 위에 올라서시어 방아타령을 하며 쩔거덩쩔거덩 방아를 찧으시니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나와 쫑긋쫑긋하며 구경하다가 이윽고 한 사람이 다가와 “어째 빈 방아를 찧소?” 하고 말을 건네니라.
상제님께서 아무 대꾸없이 계속 방아만 찧으시니 이번에는 호연에게 “얘, 저 사람이 누구냐?” 하고 묻거늘, 호연 역시 아무 말 하지 않으니 “아니, 이것도 아무 말 않네. 벙어리인가?” 하며 호연을 떠미니라. 호연이 애써 참으며 상제님을 바라보니 상제님께서 눈을 딱 감으시거늘, 호연도 따라서 눈을 감으니 그들이 더욱 약이 올라 “이게 사람인가 뭔가 모르겠다.” 하며 호연을 이리 둥글리고 저리 둥글리고 하더라.
호연이 이리저리 구르면서도 ‘말이 곧 나오게 생겼어도 하지 말라.’ 하신 말씀을 떠올리며 한참을 당하는데, 이내 상제님께서 방아에서 내려오시어 “네 이놈들! 어찌 그 어린것을 그렇게 자빠뜨리느냐?” 하며 뺨을 힘껏 치시고 발로 한번 차시니 모두 뚝뚝 나가떨어지더라.
용궁. 용궁은 과연 실재하는 것일까? 있다면 그것은 어떤 차원일까? 인류문명사에 나오는 바다 속 수궁(水宮) 세계는 모두 인간 의식이 영 차원까지 확대된 신도의 경계에서 전한 것이다. 따라서 일렁이는 바다 물결을 단순히 비구름이 떨어져 모인 물덩어리로만 본다면 결코 용궁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늘 천지조화와 신도 차원의 양 경계에서 느껴야 한다. 바닷가에서 지내는 풍어제는 결코 미신이 아니다.
저 사람이 누구냐. 상제님이 오신 것을 용궁에서는 왜 모른 것일까? 이 우주의 통치자이신 상제님을 볼 줄 아는 명(明)의 경계는 삼계가 동일하다. 상제님의 성령과 통정신(通情神)이 감응해야만 그 순간 상제님을 알 수 있다. 이 통정신을 여는 것이 우주의 온갖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가 된다. 평소에 성경신을 다하여 신도를 잘 받들어야 그 기운을 받는다.
道典 5:71) 야이~ 늙은 놈아!
이 때 한 늙은이가 나와서 “어떤 놈이기에 여기 와서 이렇게 장을 치냐?” 하고 소리치니, 상제님께서 “야이~ 늙은 놈아, 나는 육지에서 왔거늘 너는 용궁에서 무엇 처먹고 사는 놈이냐?” 하시며 가운뎃손가락으로 톡 튕기시매 저 멀리 가서 떨어지거늘, 그제야 호연이 의기양양하게 나서며 “거봐라 이놈들~. 나보고 어리다고 요리 둥글리고 저리 둥글리고 그랬지? 너도 한번 둥글려 보자!” 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가 둥글려라.” 하고 역성을 들어주시니 호연이 “내가 어떻게….” 하며 머뭇거리거늘 상제님께서 눈짓을 하시매 알아차리고 “야이~!” 하고 차는 시늉을 하니 그 사람이 벌떡 뒤집히더라. 호연이 멀리서 살짝 차기만 해도 뒤집히는 것이 재미있어서 다시 한 사람을 차니 또 뒤집히거늘, 뒤집힌 사람이 기가 막힌 듯 “얼레, 요것 봐라잉!” 하며 대드니 호연이 “요것 보라고 했으니 너 당해 봐라.” 하며
그 사람의 머리를 차매 이번에는 빳빳하게 서더라. 호연이 분풀이하듯 이 사람 저 사람을 계속해서 차고 다니니 상제님께서 마냥 웃으며 바라보시다가 “너하고 나하고 우리 그러고 다니자, 응!” 하시거늘 호연도 따라 웃으며 “그래요.” 하고 좋아하니라.
道典 5:72) 옥황상제가 여기 계신다
물방아를 지나 용궁으로 들어가려 하니 큰 문 양쪽으로 머리에 뿔이 돋친 문지기가 서 있다가 방망이를 들어 가로막거늘 상제님께서 문을 세게 걷어차시며 안으로 들어가시니라. 용궁에 들어가니 집들이 수없이 많고 그 한가운데에 몇 층인지 셀 수도 없이 규모가 어마어마한 기와집이 있거늘,
상제님께서 그 집에 올라서시어 “옥황상제가 여기 계시다!” 하고 크게 호령하시매 바닷속이 쩌렁쩌렁 울리니 갑옷을 입고 기치창검으로 무장한 사람이 뚜벅뚜벅 나와 절을 한 후에 상제님을 모시고 첩첩이 나 있는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라. 상제님께서 그의 손을 잡고 물으시기를 “오색에서 하나만 빠져도 내 일은 성사가 안 되느니라. 그렇지?” 하시니
“예, 그렇습니다. 일만 어서 되면…. 땅이 뒤집힐 때는 전들 살겠습니까?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대답하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럴 적에는 바다를 말려라. 그래야 창생들이 허공에 안 빠지고 다 살아날 것 아니냐! 한 번 죽지 두 번 죽는 것 아니니 조금도 변치 말고 다 나서라. 다른 곳도 네가 통지해서 일이 함께 되도록 하고, 모든 용궁에서 다 나서라.” 하시니 “어찌 변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고 다짐하더라.
하나만 빠져도. 이번 후천 대개벽이 인간 세상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전 우주적인 규모라는 말씀이다.
바다를 말려라. 이 한마디 말씀이 용궁 공사의 모든 대의(大義)를 깰 수 있게 하는 핵심 성언이다.
道典 5:73) 용궁의 쌍다리
상제님께서 공사를 마치시고 다시 여러 개의 문을 지나니 쌍다리가 나타나거늘, 한쪽은 산 사람들이 통래하는 다리요, 다른 한쪽은 신명들이 왕래하는 다리더라. 상제님께서 호연을 데리고 다리 위를 걸어가시니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다 한가운데로 나와 있거늘, 육지를 걷듯이 물위를 걸어나와 뭍에 앉아서 바라보매 잔잔하던 바다에 바람이 일어 출렁출렁 물결을 이루더라. 이에 호연이 신기한 듯 “우리가 저 속에 들어갔다가 나왔네~!” 하니 “그랬다.” 하시며 살며시 웃어 보이시니라.
“물속에 있어도 물속에 있는지 몰라. 속에는 물이 없어. 똑같이, 인제 앉았어도 이렇게 고기는 지나가대. 물은 안 보여. 근데 인제 나올 적에는 물속에서 나와.”(김호연 성도 증언)
道典 5:74) 호연이 속을 썩이니
어린 호연이 하도 영악스러운 짓을 많이 하여 속을 썩이니 하루는 상제님께서 “아이구~ 이녀석! 똥싸면 똥 닦아 주고 밑구녕 다 씻겨 주고 그랬는데 네가 나에게 그러느냐?” 하시거늘, 호연이 “나도 그랬어, 나도!” 하매 상제님께서 “내가 언제 뭐했기에 네가 그랬냐?” 하시니라. 호연이 딱히 할 말이 없자 “강아지 품고 댕긴다고 내가 다 일러!
미운 놈 물리려고 품고 댕겨? 뭣 하려고 골마리 속에 강아지를 품고 댕겨?” 하니 상제님께서 배를 움켜잡고 크게 웃으시니라. 이 때 호연이 난데없이 “그 강아지가 사람이 돼요?” 하고 엉뚱한 질문을 하는지라. 상제님께서 “강아지가 됐다, 사람이 됐다 그려.” 하시니 “그럼 밥 안 먹어도 살아?” 하거늘, 말씀하시기를 “저런 물건 좀 봐! 내가 먹으면 그것도 먹어.” 하시고 또 한참을 웃으시니라.
道典 5:66) 바닷속 어족을 불러 대개벽 때 성을 쌓게 하심
하루는 상제님께서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통영의 한 포구에 가시어 공사를 행하시니라. 상제님께서 거북이의 배에 무어라 글을 써 붙이시거늘 그 거북이가 굴에 들어가더니 잠시 후에 다른 거북이 한 마리가 굴에서 나와 “부르셨습니까?” 하고 아뢰니라. 이에 명하시기를 “데려와라.” 하시매 거북이가 물러갔다가 토끼 몇 마리를 몰고 오는지라
상제님께서 토끼에게 “그래, 가지고 왔냐?” 하시니 그 가운데 한 마리가 “살려 주십시오.” 하며 두 발을 모아 빌더라.
상제님께서 다시 거북이에게 이르시기를 “거북아, 너 빨리 가서 잉어를 몰고 오너라.” 하시니 거북이가 명을 받고 사라지더니 잠시 후에 잉어가 와서 대령하거늘, 상제님께서 잉어에게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너는 강에서 처먹기만 하고 무엇을 하는고? 한번 재주를 부려 봐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다시 “작두를 빼 오너라.” 하시어 강변에 앉아 작두를 휘두르시니 잉어, 상어, 물개 등 물에 사는 온갖 어족(魚族)들이 사람처럼 똑바로 서서 떼 지어 몰려나와 상제님 앞에 열을 지어 서거늘 상제님께서 큰 소리로 이르시기를 “너희들 죽겠느냐, 아니면 용궁에 가서 무엇을 가지고 오겠느냐?”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이 다음에 때가 되면 너희들이 노두를 놓아 성을 쌓아라.” 하시니 어족들이 일제히 대답하기를 “그러겠습니다.” 하고 앞다투어 물속으로 뛰어들어 가니라.
증산 상제님께서 인류에게 꼭 증거해야 할 공사 내용은 김호연 성도가 알 수 있도록 기운을 붙여 심령을 열어 주셨다. 이 성구도 그 대표적인 예다. 김호연 성도는 이 때의 공사 내용을 아주 구체적으로 구술하였다.
통영. 통영에는 아래위 둘로 나뉘어진 명정샘이 있는데, 위샘은 ‘일정(日井)’, 아랫샘은 ‘월정(月井)’이며, 이 샘을 통틀어 ‘명정(明井)’샘이라 부른다.
道典 8:44) 동방 한민족의 인류사 개벽의 심법 전수
을사(乙巳 : 道紀 35, 1905)년 8월에 하루는 성도들을 줄지어 앉히시고 어렸을 때 지은 글이라 하시며 “정심(正心)으로 삼가라.” 하시고 글을 외워 주시니 이러하니라.
運來重石何山遠이오 粧得尺椎古木秋라
무거운 돌을 운반하여 옴에 어찌 산이 멀다 하리오. 잘 깎은 방망이로 세상을 다듬질하니 고목 된 가을이구나! “이는 선생문명(先生文明) 아닐런가.” 하시고 “이 글을 심고하고 받으라.” 명하시므로 모든 성도들이 심고하고 받으니라.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霜心玄圃淸寒菊이여 石骨靑山瘦落秋라
서리 내린 현포(玄圃)에 핀 맑은 국화여, 바위가 드러난 청산은 낙엽 진 가을이구나! “이는 선령문명(先靈文明) 아닐런가.” 하시고 “이 글을 심고하고 받으라.” 명하시므로 모든 성도들이 심고하고 받으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千里湖程孤棹遠이요 萬邦春氣一筐圓이라
천리나 되는 호수길 외로운 배질 아득하고, 온 천하의 봄기운 한 광주리에 가득하도다! “이는 선왕문명(先王文明) 아닐런가.” 하시고 “이 글을 심고하고 받으라.” 명하시므로 모든 성도들이 심고하고 받으니라. 다시 말씀하시기를
時節花明三月雨요 風流酒洗百年塵이라
철 꽃은 내 도덕의 삼월 비에 밝게 피고, 온 세상의 백년 티끌 내 무극대도의 풍류주로 씻노라. “이는 선생선령선왕(先生先靈先王) 합덕문명(合德文明) 아닐런가.” 하시고 “이 글을 심고하고 받으라.” 명하시므로 모든 성도들이 심고하고 받으니라. 다시 말씀하시기를
風霜閱歷誰知己오 湖海浮遊我得顔이라. 驅情萬里山河友요 供德千門日月妻라
만고풍상의 고난을 다 겪은 나를 누가 능히 알리오. 저 우주의 조화 바다에 떠서 노니 내 얼굴이 드러나는구나. 정을 만리에 모니 산하가 내 벗이 되고, 덕을 천지에 베푸니 일월이 내 짝이 되는구나. “이는 우리들의 득의지추(得意之秋)가 아닐런가.” 하시고 “이 글을 심고하고 받으라.” 하시므로 모든 성도들이 심고하고 받으니라.
한민족의 머나먼 고난의 여정과 역사 정신을 깨 주신 것이다.
風流酒洗百年塵풍류주세백년진. 풍류는 ‘신바람, 상제님의 조화신권’을 상징한 것. 백 년은 천지공사 보신 해로부터 백 년간의 해원의 여정을 말한다. 즉 지난 백 년의 시간 동안 상제님의 도(道)로 일체의 묵은 기운(묵은 제도와 난법, 잘못된 신앙의식 등)을 씻어 내어 선천 역사를 마무리 짓고, 새 우주를 개벽하는 실제 개벽의 시간대로 들어가는 것이다.
득의지추(得意之秋). 상제님의 대도에서 생명의 여의주를 얻는 득의지추(得意之秋)는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고 꿈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제 그것을 이루는 가을의 큰 때를 만났으니 고난을 섭리로 알고 과감히 광제창생 천하통일의 대업을 밀어붙이라는 말씀이다.
道典 6:5) 온 세상이 나를 찾을 때가 있다
하루는 형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한 점 잠이나 자지 나는 세상 이치를 맞추고 뜻을 맞추려면 제대로 잠도 한숨 못 자느니라.” 하시니 형렬이 “무엇 때문에 잠을 못 주무십니까?” 하고 여쭈거늘 말씀하시기를 “세상을 들어갔다 나왔다, 문 열고 다니기도 힘든 법이니라. 너는 문을 한 번 열고 나와서 다시 들어가면 그만이지만
나는 천 가지 만 가지 조화를 부리고 앉아 있으려니 힘이 드는구나.” 하시니라. 또 이르시기를 “너는 내 생전에 나를 수종 든 제자라 해서 잊지 않을 것이니 걱정 말고 기다리면 세상에서 내 말을 할 것이니라. 온 세상이 나를 찾을 때가 있으리라.” 하시니 형렬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지금은 사람들이 제 말을 듣는 시늉도 하지 않습니다.” 하거늘,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그렇게 시늉을 안 해도, 흘러가는 물도 막힐 때가 있나니 그렇게 알라.” 하시니라.
道典 6:5) 온 세상이 나를 찾을 때가 있다
하루는 형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한 점 잠이나 자지 나는 세상 이치를 맞추고 뜻을 맞추려면 제대로 잠도 한숨 못 자느니라.” 하시니, 형렬이 “무엇 때문에 잠을 못 주무십니까?” 하고 여쭈거늘, 말씀하시기를 “세상을 들어갔다 나왔다, 문 열고 다니기도 힘든 법이니라. 너는 문을 한 번 열고 나와서 다시 들어가면 그만이지만, 나는 천 가지 만 가지 조화를 부리고 앉아 있으려니 힘이 드는구나.” 하시니라. 또 이르시기를 “너는 내 생전에 나를 수종 든 제자라 해서 잊지 않을 것이니 걱정 말고 기다리면 세상에서 내 말을 할 것이니라. 온 세상이 나를 찾을 때가 있으리라.” 하시니, 형렬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지금은 사람들이 제 말을 듣는 시늉도 하지 않습니다.” 하거늘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그렇게 시늉을 안 해도, 흘러가는 물도 막힐 때가 있나니 그렇게 알라.” 하시니라.
道典 6:6) 천지가 다 내 자식
하루는 호연이 “왜 우리 선생님은 아들이 없어요?”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네가 몰라서 그렇지 아들이 왜 없어? 천지가 내 아들딸이요, 다 나를 받드는데. 아래로 살피면 아랫자식이요 위로 뜨면 큰자식들이 빙빙 도는데, 내가 자식을 둘 필요가 있겠느냐?” 하시니라. 하루는 형렬에게 말씀하시기를 “큰일을 할 사람은 아내와 멀어져야지 가깝게 해서는 못쓰느니라. 가지가 여럿이면 마음도 여러 가지로 갈라지나니 부모를 위해 장가는 갔을지언정 나는 애초에 가지를 벌리지 않노라. 나는 독불이다. 그러므로 나의 마음은 한 가지니라.” 하시니라.
천지가 내 아들딸. 상제님은 삼신(三神) 상제님으로서 만유 생명을 조화로써 낳으시는 아버지(造化神)시며, 진리로써 교화시키시는 스승(敎化神)이시고, 우주 이법으로써 다스리시는 통치자(治化神)이시다. 고로 천지간의 모든 생명은 상제님의 자녀이자 제자이며 백성인 것이다.
道典 6:9) 태공의 도술은 이 때에 나온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문왕(文王)은 유리(羑里)에서 384효(爻)를 해석하였고, 태공(太公)은 위수(渭水)에서 3,600개의 낚시를 벌였는데, 문왕의 도술은 먼저 나타났거니와 태공의 도술은 이 때에 나오느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니 이러하니라. 천지무일월공각(天地無日月空殼)이요 일월무지인허영(日月無至人虛影)이니라
천지는 일월이 없으면 빈 껍데기요, 일월은 지인(至人)이 없으면 빈 그림자니라. 가장 두려운 것은 박람박식(博覽博識)이니라. 현세의 복희(伏羲)가 갓 쓴 사람 아래 있으니 박람박식이 천하무적이니라.
문왕의 도술: 낙서(洛書)를 체(體)로 하는 문왕팔괘는 역철학의 근간이 되었다. 역철학은 태호 복희씨 이래 ‘문왕 -주공-공자-김일부’로 계승되어 약 5,600년의 장구한 동방 문화의 역사 속에서 집대성된, 우주와 인생의 근본 도리(道理)를 보는 투시경이다.
지인(至人): 천지(天地), 부모의 뜻을 이루는 지극한 인간이 없으면 우주는 한갓 빈 그림자라는 말씀이다.
道典 6:21) 난법자 멸망 공사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나의 도(道)를 열어 갈 때에 난도자(亂道者)들이 나타나리니 많이도 죽을 것이니라.” 하시고 가르침을 내리시니 이러하니라. 부지적자입폭정(不知赤子入暴井)하니 구십가권총몰사(九十家眷總沒死)라
알지 못하는 갓난아이가 깊은 우물에 빠지니, 구십 가솔들이 모두 떼죽음을 당하는구나. 또 말씀하시기를 “난법난도하는 사람 날 볼 낯이 무엇이며, 남을 속인 그 죄악 자손까지 멸망이라.” 하시니라.
道典 6:64) 내 일을 할 사람은 다시 나온다
하루는 구릿골 약방에서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나하고 일할 사람이 없느니라. 내 일을 할 사람은 뒤에 다시 나오느니라. 이제 나와 같은 사람이 나온다. 뛰어나는 사람이 있다. 알려고 힘쓰지 말고 시대가 돌아가며 가르치는 시기를 봐라. 이제 곧 돌아오느니라. 썩은 고목에서 새순이 돋아나서 내 일을 이루느니라.” 하시니라. 또 하루는 형렬을 부르시더니 “늦게 오는 자를 상등 손님으로 삼으리라.” 하시니라.
도운 개척기 대사부(大師父)의 고난 도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초막(草幕)에서 성인이 나오느니라. 삼천(三遷)이라야 내 일이 이루어지느니라.” 하시니라.
새순이 돋아나서. 이 말씀은 도운의 전 과정을 고목나무에 비유하신 것이다. 제1변 난법시대가 끝나고 썩은 고목이 되어 버린 도목(道木)에서, 때가 되면 새순이 돋듯 새 일꾼이 나와 제2변, 제3변의 새 역사의 도운시대를 열어 상제님 천지대업을 성취한다는 말씀이다.
삼천(三遷)이라야 내 일이, 삼천三遷: 증산 상제님의 천지대업은 삼변성도(三變成道)의 원리로 크게 3회의 개척기(부흥기)를 거쳐 도성덕립 된다. 제1기는 고수부님께서 도통 후 교단을 여시고, 차경석이 이를 확산시 킨 도운의 파종(播種)과 이종(移種)의 시기이며, 제2·3기는 추수 사명을 맡은 대사부가 새롭게 판을 개척하여 매듭짓는 도운의 추수 시기다.
道典 6:65) 대두목이 새판을 열어 매듭짓는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낳기는 제 어미가 낳았어도 맥을 전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산다. 사람이 아프면 맥을 먼저 짚어 보지 않느냐? 맥 떨어지면 죽느니라. 사람이 다 죽고 나면 어떻게 해서 나간 곧이를 알 것이냐? 가만히 있어도 세상의 이치가 일을 성사시키는 우두머리를 불러낸다. 내 이름은 죽으나 사나 떠 있느니라.” 하시니라. 성도들이 ‘일을 이루는 사람은 뒤에 나온다.’는 말씀에 속으로 애만 태우거늘, 하루는 호연이 상제님께 “여기 있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애터지게 하지 말아요.” 하니, 말씀하시기를 “저것들 다 하루살이다, 하루살이! 문을 열면 불을 보고 깔따구와 하루살이가 막 달려드는 것과 같은 이치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내 일은 고목에서 움이 돋고, 움 속에서 새끼를 낳아 꽃이 피고(枯木生花) 열매가 되어 세상에 풀어지느니라.” 하시니라.
큰스승은 따로 있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들이 아무리 별스러워도 나를 따르는 자들의 선생밖에는 못 되느니라. 나의 일은 판밖에 있나니 뒤에 큰스승이 나와 천하창생을 가르치리라.” 하시니라. 이어 말씀하시기를 “내 일은 꼭 된다. 물샐틈없이 꼭 된다.” 하시니라.
맥 떨어지면 죽느니라. 믿지 않는 사람은 참 하느님이신 상제님을 만나야 살고, 난법에 매달린 사람은 종통맥을 찾아야 산다는 말씀.
道典 6:72) 판밖 도운 개창의 중심지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바둑도 한 수만 높으면 이기나니 ‘남모르는 공부’를 하고 기다리라.” 하시니라. 또 “나의 일은 상씨름판에서 주인이 결정되나니 상씨름꾼은 술, 고기 많이 먹고 콩밭(太田)에서 잠을 자며 끝판을 넘어다보는 법이니라.” 하시고, “상씨름에 뜻하는 자 끝판에 나아가 한 판으로 상씨름판을 매듭짓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6:73) 내 일은 판밖의 일
하루는 사요(史要) 일편을 천지에 고축(告祝)하신 뒤에 불사르시고 말씀하시기를 “판안 사람 둘러보니 많고 많은 저 사람들, 어떤 사람 이러하고 어떤 사람 저러한가. 판안 사람 판안 공부 할 수 없어 허리끈 졸라매고 뒷문 열고 내다보니 봉황이 지저귄다. 황계성이 죽지 털면 판밖 소식 이르리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내 일은 판밖의 일이니라. 가르쳐도 모를 것이요, 직접 되어 보아야 아느니라.” 하시니라.
내 일은 판밖의 일. 상제님께서는 오선위기도(五仙圍碁圖)에 진법과 난법의 정신을 구분하셨다. 홀생홀유(忽生忽有) 하는 선천의 묵은 판안 정신으로는 상제님의 도업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판밖의 남모르는 법으로 천지공사를 집행하신 것이다. 상제님의 천지대업은 고수부님께서 세 살림을 개척하시고, 제3변 도운의 판밖 시대에 대사부께서 새 판을 열어 실현하신다.
도운의 매듭 공사, 도통판의 진주 도수
상제님께서 평소 성도들과 노실 적에 종종 ‘가구(假九) 진주(眞主)치기 노름’을 하시니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다 터라.” 하시고 투전을 들고 탁 치시며 “○씨가 판을 쳤다!” 하시고 다 거두어들이시며, “파라, 파라, 깊이 파라. 얕게 파면 다 죽는다. 잘못하다가는 십년공부 도로아미타불이란 말이니라. 알겠느냐? 도로 본자리에 떨어진단 말이다. 나는 알고 너는 모르니 봉사 잔치란 말이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누가 가르쳐 주랴. 제가 알아야 하느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끝판에 ○씨가 있는 줄 몰랐지. 판 안 끗수 소용 있나. 끝판에 ○씨가 나오니 그만이로구나. 나의 일은 알다가도 모르는 일이라. 나의 일은 판밖에 있단 말이다. 붉은 닭 소리치고 판밖 소식 들어와야 도통판을 알게 되고, 도통판이 들어와야 나의 일이 될 것이다.” 하시니라.
붉은 닭 소리치고. 정유(丁酉)생 호연의 증언으로 임신(壬申: 道紀 122 , 1992)년에 『도전』이 출간되어 상제님 도법의 전체 틀을 볼 수 있는 문명이 열리고, 이로써 도통판이 나와 진법 도운이 매듭 단계로 들어감을 의미한다.
道典 6:106) 도운의 개창자와 추수자
상제님께서 구릿골 약방에서 천지대신문을 여시고 대공사를 행하실 때, 성도 아홉 사람을 벌여 앉히신 뒤에 이르시기를 “이제 도운(道運)을 전하리라.” 하시고, 성도들에게 물으시기를 “일 년 중에 가장 빨리 자라나는 것이 무엇이냐?” 하시니 모두 “대나무입니다.” 하고 대답하거늘, 말씀하시기를 “대(竹)의 기운이 만물 중에 제일 크니 그 기운을 덜어 쓰리라.” 하시니라. 이어 갑칠(甲七)에게 “푸른 대 하나를 뜻대로 잘라 오라.” 하시어 그 마디 수를 헤아리니 모두 열한 마디이거늘, 한 마디를 끊게 하시어 무릎 밑에 넣으시고 남은 열 마디 중 끝의 한 마디를 잡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한 마디는 두목(頭目)이라. 왕래와 순회를 마음대로 할 것이요, 남은 아홉 마디는 구궁 도수(九宮度數)로 교(敎) 받는 자의 수효와 맞는도다.” 하시고, 갑칠에게 “뜰에 나가 하늘에 별이 몇 개나 나타났는가 보라.” 하시니라. 갑칠이 밖에 나가 살펴본즉 검은 구름이 온 하늘을 덮었는데, 다만 하늘 복판이 열려서 별 아홉 개가 나타났거늘 그대로 아뢰니
말씀하시기를 “이는 교 받는 자의 수효에 응함이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도운(道運)의 개시(開始)가 초장봉기지세(楚將蜂起之勢)를 이루리라.” 하시니라. 이 해에 대가 크게 흉년이 드니라.
구궁. 율려(律呂)는 운동을 할 때 여덟 방위로 작용하는 본성이 있다. 구궁(九宮)은 이 여덟 방위에 변화의 주재처인 중앙의 토궁(土宮)을 합한 것을 말한다.
도운(道運)의 개시(開始)가 초장봉기지세(楚將蜂起之勢)를 이루리라. 초장봉기지세. 진나라 말기에 진시황(秦始皇)의 포학을 타도하기 위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봉기한 항우(項羽)와 초나라 장수들의 기세와 같이, 각 성도들이 판을 이루어 뿌리 분열시대의 도운판이 열릴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道典 6:109) 도운의 시작과 종결, 분열과 대통일
하루는 세수를 하신 뒤에 “도운(道運)을 보리라.” 하시고 세숫물을 가리키시며 성도들에게 “눈을 감고 보라.” 하시거늘, 모두 명하신 대로 보니 문득 넓은 바다에 뱀의 머리와 용의 꼬리가 굽이치는지라. 그대로 아뢰니 말씀하시기를 “나의 형체가 사두용미(蛇頭龍尾)와 같으니라. 용은 한 잔의 물만 있어도 능히 천하의 비를 지어내느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이 운수는 천지에 가득 찬 원원한 천지대운(天地大運)이므로, 갑을(甲乙)로서 머리를 들 것이요, 무기(戊己)로서 굽이치리니, 무기는 천지의 한문(閈門)인 까닭이니라.” 하시니라.
道典 6:114) 개벽 상황에 광제 나갈 때
하루는 상제님께서 공우를 불러 말씀하시기를 “일후에 광제(廣濟)하러 나갈 때에는 용봉기(龍鳳旗)와 장군기(將軍旗)를 원평에 꽂아라. 원평이 이제 장상기지(將相基址)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그 때에는 광제표(廣濟票)와 천표(天票)를 들고 나가야 하리라.” 하시니라. 이에 공우가 여쭙기를 “광제표를 들고 나가는 것은 무슨 연유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신명을 위로하기 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 뒤에 상제님께서 공우를 불러 말씀하시기를 “병겁으로 다 죽어 나갈 그 때, 광고판을 길거리에 붙여 광제 나가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라.” 하시니라. 이어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때가 되면 나의 대행자가 나와서 광제를 나가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6:126) 진법이 나오리라
하루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천하의 마(魔)를 해원시켜 난신(亂神)들로 하여금 각기 그 소원을 이루게 하여, 앞으로 오는 후천 오만년에는 다시 망령된 짓을 못 하게 하리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나의 일이 장차 초장봉기지세(楚將蜂起之勢)로 각색이 혼란스럽게 일어나 잡화전 본을 이루리라. 그러나 그 후에 다시 진법(眞法)이 나오게 되리라.” 하시고, “이제 전 세계에 가(假)망량을 배치하였으나 일심자(一心者)에게는 진(眞)망량을 응케 하리라.” 하시니라.
道典 6:128) 도통자가 나온다
하루는 성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과거에는 도통이 나지 않았으므로 해를 끼치면 해를 받았지만, 이 뒤에 도통한 사람이 나오면 해를 끼치다가는 제가 도리어 해를 입으리라. 이 뒤에 도통자가 나오면 조심조심하라.” 하시니라.
종통맥이 사는 맥
사람은 그 사람이 있고, 도는 그 도(道)가 있고, 땅은 그 땅이 있느니라. 시속에 ‘맥 떨어지면 죽는다.’ 하나니 연원(淵源)을 잘 바루라. 도통천지보은(道通天地報恩)이니라.
도통과 종통. 도통맥은 바른 종통맥으로부터 부여받는 것. 종통(宗統)의 종(宗)이란 마루 종, 곧 ‘더 이상이 없는 최상’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종통맥이라 하면 도조(道祖)로부터 뻗어 내리는 도의 정통맥, 도조의 심법 계승을 의미한다. 이 정통, 종통의 맥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상제님께서 전수하신 수부 도수를 깨닫는 데 있다.
연원(淵源)을 잘 바루라. 연원. 증산 상제님의 대도의 종통맥을 말씀하신 것이다.
道典 6:129) 신천지 도통줄이 열릴 때는
하루는 성도들이 도통에 대해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때가 오면 한 사람이 먼저 도통을 받나니, 이는 만도(萬道)가 귀일(歸一)하는 천명이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도통줄은 대두목에게 주어 보내리라. 법방(法方)만 일러 주면 되나니 내가 어찌 홀로 맡아 행하리오. 도통시킬 때에는 유불선 각 도통신(道通神)들이 모여들어 각기 그 닦은 근기(根機)에 따라서 도를 통케 하리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6:129)
도통줄. 증산 상제님께서는 대두목을 도통(道通)의 원리로 말씀하셨다. 대개벽의 병겁시에 구원 받는 것을 일반적인 구원이라 한다면 상제님 신앙인의 실질적인 최후의 구원의 열매는 바로 도통을 받는 것이다.
道典 6:130) 참일꾼이 받는 도통
박공우가 여쭈어 말하기를 “동학주(東學呪)를 읽고 강(降)을 받는 자가 많이 있으되, 저는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강을 받지 못하였으니 무슨 까닭입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웃으며 말씀하시기를 “동학주에 내가 들었으므로 읽는 자가 다 두려워하여 떠는 것이요 강령은 아니니라. 이는 다 제우강(濟愚降)이요 천강(天降)은 아니니, 천강을 받는 자는 병든 자를 한 번 만져도 낫고 건너보기만 하여도 낫느니라.” 하시니라. 또 공우가 여쭈기를 “동학에 강필(降筆)로 부(符)를 그려서 병자를 먹이면 낫는 자도 있고 죽는 자도 있어 일치하지 않으니 무슨 까닭입니까?” 하니,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부를 먹이면 비위(脾胃)를 상하게 하여 해가 될지언정 이롭지는 못하니라. 혹 차효를 보았다는 자는 본시 나을 사람이니라. 강에는 허강(虛降)과 진강(眞降)이 있나니 진인(眞人)은 허강이 없느니라. 도통시킨 뒤에 강을 내려 주리니 진강을 받은 자는 병자를 건너다보기만 하여도 낫고, 말만 하여도 낫고, 만지기만 하여도 낫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6:131) 쓸 때에 열어 주리라
하루는 한 성도가 도술(道術)을 가르쳐 주시기를 청하니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가르쳐 주어도 들어가지 않고 밖으로 흘러 바위에 물주기와 같으니 쓸 때에 열어 주리라.” 하시니라. 또 이르시기를 “옛날에 제갈공명이 동남풍을 불렸다 하나 이는 제단을 쌓고 여러 날 빌어서 이루어진 것이니, 때가 오면 너희들은 명(命)으로써 그 자리에서 바람을 불리리라.” 하시니라. 하루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용기(龍氣)만 주면 너희는 비를 마음대로 오게 할 수 있고, 병든 사람을 말로써 고치며,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 내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6:133) 각기 기국에 맞추어 주리라
하루는 글을 쓰시니 이러하니라. 충자充者는욕야慾也라. 이악충자以惡充者도 성공成功하고 이선충자以善充者도 성공成功하니라.
채운다는 것은 욕심이라. 악으로 채우는 자도 성공(자기 충족)하고, 선으로 채우는 자도 성공(자기 충족)하느니라. 양이 적은 자에게 지나치게 많이 주면 배 터져 죽고, 양이 큰 자에게 너무 적게 주면 곯아 죽나니, 각기 기국(器局)에 맞추어 주리라.
道典 6:134) 나의 도통 공부는 삼등이 있나니
나의 공부는 삼등이 있나니, 상재(上才)는 만사를 심단(心端)으로 용사하고, 중재(中才)는 언단(言端)으로 용사하고 하재(下才)는 알기는 하나 필단(筆端)으로 용사를 하리라.
道典 6:135) 닦은 바에 따라 도통을 주리라
하루는 공우가 여쭈기를 “도통을 주옵소서!” 하니, 상제님께서 꾸짖으시며 “그 무슨 말이냐. 도통을 네가 하겠느냐? 판밖에서 도통하는 이 시간에 생식가루 먹고 만학천봉 돌구멍 속에, 죽었는지 살았는지 내 가슴이 답답하다. 들으라. 각 성(姓)의 선령신(先靈神) 한 명씩 천상공정(天上公庭)에 참여하여 제 집안 자손 도통시킨다고 눈에 불을 켜고 앉았는데, 이제 만일 한 사람에게 도통을 주면 모든 선령신들이 모여들어 내 집 자손은 어쩌느냐고 야단칠 참이니 그 일을 누가 감당하리오. 그러므로 나는 사정(私情)을 쓰지 못하노라. 이 뒤에 일제히 그 닦은 바를 따라서 도통이 한 번에 열리리라. 그런 고로 판밖에 도통종자(道通種子)를 하나 두노니, 장차 그 종자가 커서 천하를 덮으리라.” 하시니라.
道典 6:136) 천지공사에는 인정도 사정도 없다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천지공사에는 인정도 사정도 없느니라.” 하시니, 성도들이 “어찌 그렇습니까?” 하고 여쭈거늘
말씀하시기를 “허허~, 각기 하고 싶은 일을 하니 어찌 그 뜻을 다 받아 줄까.” 하시니라.
도운 추수자의 고난과 도성덕립의 심법
상제님께서 하루는 성도들에게 글을 써 주시니 이러하니라. 종고일성鍾鼓一聲에 천하호령天下號令하고, 봉명일창鳳鳴一唱에 천하계명天下鷄鳴이라. 팔방실두八方失頭나 팔방실두黃土通明이로다
성인이 종고소리 한 번 울려 천하를 호령하고, 봉황이 한 번 울면 천하의 닭이 우느니라. 온 세상이 머리(君師父)를 잃고 헤매고 있으나 중앙(五皇極)은 세상사를 훤히 꿰뚫고 있도다.
전후풍상前後風霜에 연년다고年年多苦나 의세지심醫世之心이요 공명지정功名之情이로다. 외유기화外有氣和하고 내유신령內有神靈하니 요지부동搖之不動이요 격지불탁激之不濁이요, 일편단심一片丹心으로 이대기시以待其時라
한평생 온갖 시련 해마다 더 괴로우나, 병든 세상 건지려는 마음 공명을 세우고픈 심정이로다. 외양은 화평한 기운 넘쳐나고 안은 신령스러우니, 흔들어도 움직이지 아니하고, 격류에도 흐려지지 아니하며 일편단심으로 그 때를 기다리는구나.
첨피남산瞻彼南山한대 유석암암惟石巖巖이로다. 정관천하正冠天下하니 유하허망有何虛妄고, 완즉초급緩則稍急이요 급즉초완急則稍緩이라. 풍풍우우風風雨雨에 인내기심忍耐其心이라
저 남산 바라보니 암석이 우뚝우뚝하도다. 천하를 바로잡아 으뜸이 되니 어찌 허망함이 있으리오. 더디면 조금 급하게, 급하면 조금 더디게 하라. 몰아치는 비바람에도 마음을 잘 참고 견디는도다.
출입필경出入必敬하고 유망유심有望有心이라. 부식강기扶植綱紀는 명공기수明公其誰오. 억조흠망 億兆欽望이 윤즉윤의允則允矣로다
나와서나 들어가서나 반드시 만사에 공경히 하고, 세상 건지려는 소망과 참된 마음 있도다. 세상의 기강 바로잡으려는 밝은 어른 그 누구신가. 억조창생이 우러러 바라는 사람 진실로 그 사람이로다.
조동모서朝東暮西에 왈시왈비曰是曰非하니, 생아자수生我者誰오 입립난망粒粒難望이로다
아침에는 동쪽으로 저녁에는 서쪽으로 옳다 그르다 말들도 많은데, 진정 나를 살릴 자 그 누구신가. 하나하나를 다 바라기는 진실로 어렵도다.
생생기기生生氣氣요 망망입립望望立立이라. 세사풍조世事風潮는 세사풍조修德可知요, 신출귀몰神出鬼沒은 신출귀몰淸濁五音이로다
끊임없이 솟구치는 기백이여! 살리고 살리기를 소망하고 또 소망하도다. 세상사 돌아가는 세태는 덕을 닦아야 알 수 있고, 신출귀몰한 신도(神道) 조화는 청탁 오음의 주문소리에 응하도다!
道典 6:138) 만국 통일의 심법과 행동
유령유기惟靈惟氣여 석아홍복錫我鴻福이로다. 영웅재기英雄才氣는 처처비등處處飛騰이나 상전벽해 桑田碧海는 자재기시自在其時라. 回首江山회수강산하니 갱기정신更起精神이로다.
충만한 기와 영이여! 나에게 주어진 홍복이로다. 선천 영웅들의 재기는 곳곳마다 날뛰는데, 상전벽해의 개벽천지는 스스로 정해진 때가 있느니라. 강산을 되돌아보니 다시금 새 정신이 용솟음치는도다.
초가환비楚歌環悲하니 자성기심自醒其心이라. 금성진지金聲振之는 양유이야良有以也로다. 고동만물鼓動萬物에 화기자발和氣自發하고, 개폐추기開閉樞機하고 출입문호出入門戶하니, 대도일월帶道日月에 성령기왕聖靈其旺이라
사면초가(四面楚歌)의 고난과 비통함에 둘러싸이니, 이 마음 스스로 깨어지는구나. 가을 소식 퍼뜨리고 거둠에는 진실로 까닭이 있음이로다. 만물을 고동시키니 화기가 절로 일고, 문지도리요 문호인 내 마음을 천지신명이 여닫고 출입하니, 변화의 도를 그려가는 일월이 성령을 왕성케 하는구나.
인자기심仁慈其心이요 조종기성措縱其聲이라. 만국통합萬國統合이 실유차의實由此矣리니 만인지성 萬人之誠이요 만세지보萬世之寶라. 천기만기千機萬機요 만화천화萬化千化니 삼산신령三山神靈이 무재무재舞哉舞哉로다
마음은 어질고 자비로우며 진리의 말씀 베풀어 새 세상을 열어가는도다. 만국의 통합이 실로 이러한 심법과 행동으로 말미암으니 모든 일꾼의 정성이요 만세의 보배로다. 인자한 그 마음 천 가지 만 가지 기틀이요 온갖 조화 일으키니
삼산의 신령들이 춤을 추며 기뻐하는구나.
첫댓글 남북극 빙하가 대량으로 녹아내리는 이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시대는 지구 1년 365일의 여름우주에서 지구 1년 360일의 가을우주로 들어가는 turning point입니다.
남북극 빙하의 영향으로 기후변화는 더 심해지고 23.5도 기울어진 지구 자전축의 이동,극이동으로 지구 1년이 360일로 바뀌게 됩니다.
음극즉양생(陰極卽陽生), 양극즉음생(陽極卽陰生), 음이 극에 달하면 양이 생하고, 양이 극에 달하면 음이 생하듯
여름우주(陽)에서 가을우주(陰)로 들어가는 시간대로서 지구촌 인간들을 하고싶은 대로 하도록 다 풀어놓은 세상이라서 한마디로 개판 오분전으로 인간이 고삐풀린 망아지가 되었습니다.
道典 4:32) 원래 인간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면 분통이 터져서 큰 병을 이루나니
그러므로 이제 모든 일을 풀어놓아 각기 자유 행동에 맡기어 먼저 난법을 지은 뒤에 진법을 내리니
오직 모든 일에 마음을 바르게 하라.
거짓은 모든 죄의 근본이요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니라.
이제 천지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에게 임감(臨監)하여 마음에 먹줄을 잡아 사정(邪正)을 감정케 하여 번갯불에 달리리니
마음을 바르게 못 하고 거짓을 행하는 자는 기운이 돌 때에
거짓을 행하는 자는 기운이 돌 때에 심장과 쓸개가 터지고 뼈마디가 튀어나리라.
운수는 좋건마는 목 넘기기가 어려우리라.
道典 4:21) 만물이 가을바람에 혹 말라서 떨어지기도 하고 혹 성숙하기도 함과 같이
참된 자는 큰 열매를 맺어 그 수(壽)가 길이 창성할 것이요
거짓된 자는 말라 떨어져 길이 멸망할지라.
그러므로 혹 신위(神威)를 떨쳐 불의를 숙청(肅淸)하고 혹 인애(仁愛)를 베풀어 의로운 사람을 돕나니...
道典 6:133) 充者는 慾也라
以惡充者도 成功하고 以善充者도 成功하니라
채운다는 것은 욕심이라.
악으로 채우는 자도 성공(자기 충족)하고
선으로 채우는 자도 성공(자기 충족)하느니라.
길화개길실(吉花開吉實)이요, 흉화개흉실(凶花開凶實)’이니라.
@햇살아침
道典 7:22) 앞으로 더 썩을 것이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거적에다 썩은 개머리를 둘둘 말아 걸머지고 어느 군청에 가시어 큰 소리로 “군수를 찾아왔노라!” 하고 외치시니
안에서 사람이 나와 “무슨 일로 그러시오?” 하고 묻거늘 “내가 볼일이 있어서 왔노라.” 하시니라.
이 때 문득 썩는 냄새가 진동하니 그 사람이 코를 싸쥐고 “이게 뭐요?” 하고 묻거늘
상제님께서 “군수에게 줄 것이니라.” 하시니 그 사람이 더 이상 묻지 아니하고 군수를 만나게 해 드리니라.
상제님께서 군수 앞에 거적을 탁 놓으시며 큰 소리로 “내가 이걸 가지고 왔으니 펴 보라.” 하시므로
군수가 자신에게 주는 봉물로 알고 거적을 들추니 그 속에 구더기가 꾸물꾸물 기어다니고 악취가 코를 찌르는 썩은 개머리가 하나 들어 있거늘
상제님께서 큰 소리로 말씀하시기를 “너희 놈들이 이 지경으로 썩어서 그 냄새가 천지에 진동하고 있구나.” 하시고
“앞으로 더 썩을 것이다!” 하시며 호통을 치시니라.
세상이 신신애씨 노래 가사처럼 짜가가 판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정치판이 좌우로 갈라져 나라가 혼란속에 빠졌습니다. 거짓세력들이 뿌리 뽑히기 전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햇살아침 道典 5:408) 七八年間古國城은 畵中天地一餠成이요
黑衣飜北風千里하고白日頃西夜五更이라
古國城고국성: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유서 깊은 문화국가 대한민국을 말한다.
東起靑雲空有影하고 南來赤豹忽無聲이라
虎兎龍蛇相會日에 無辜人民萬一生이니라
赤豹적표는 앞으로 2,30개월 사이에 우리 남한에서 최초로 발생하는 천연두를 말한다. 이 시는 대환란의 상황을 담고 있다.
@햇살아침
@햇살아침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uPqcepyHIrg&t=38s
道典 4:32) 원래 인간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면 분통이 터져서 큰 병을 이루나니
그러므로 이제 모든 일을 풀어놓아 각기 자유 행동에 맡기어 먼저 난법을 지은 뒤에 진법을 내리니
오직 모든 일에 마음을 바르게 하라.
거짓은 모든 죄의 근본이요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니라.
이제 천지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에게 임감(臨監)하여 마음에 먹줄을 잡아 사정(邪正)을 감정케 하여 번갯불에 달리리니
마음을 바르게 못 하고 거짓을 행하는 자는 기운이 돌 때에 심장과 쓸개가 터지고 뼈마디가 튀어나리라.
운수는 좋건마는 목 넘기기가 어려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