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떠났다 / 데이비드 하킨스]
그가 세상을 떠났다고 눈물 흘릴 수도 있고
그가 이곳에 살았었다고 미소 지을 수도 있다.
눈을 감고 그가 돌아오기를 기도할 수도 있고
눈을 뜨고 그가 남기고 간 모든 것을 볼 수도 있다.
그를 볼 수 없기에 마음이 공허할 수도 있고
그와 나눈 사랑으로 가슴이 벅찰 수도 있다.
내일에 등을 돌리고 어제에 머물 수도 있고
그와의 어제가 있었기에 내일 행복할 수도 있다.
그가 떠났다는 사실로만 그를 기억할 수도 있고
그에 관한 기억을 소중하게 살려 나갈 수도 있다.
울면서 마음을 닫고 공허하게 등을 돌릴 수도 있고
그가 원했던 일들을 할 수도 있다.
미소 짓고, 눈을 뜨고, 사랑하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내일(5월 23일)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일이다. 정치인을 떠나 인간적으로 내가 좋아한 사람이다. 그를 처음 본 것은 오래전, 그가 종로구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때였다. 저녁 무렵이었는데, 선거 유세를 하기 위해 내가 사는 동네에 왔다. 그의 연설을 듣는 이는 선거 운동원을 제외하면 나를 포함해 서너 명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는 열정을 다해 말을 했고, 끝난 뒤 내가 인사를 하자 반가워하며 내 시집과 내가 번역한 성자가 된 청소부를 잘 읽었다고 말했다. 깨달음과 진리 추구는 결국 인간의 정의를 실현하려는 노력이라는 데 우리는 동의했다. 나에게 각인된 그의 인상은 정치인이기 이전에 순수한 열혈 청년의 모습이었다. 아름답고 정의로운 마음을 가진 그가 세상을 떠나고, 우리는 아직도 많은 문제들을 힘겹게 헤쳐 나가고 있다.
이 시는 영국의 무명 시인 데이비드 하킨스(1958~ )가 지역 신문에 <나를 기억해 주기를Remember Me〉이라는 제목의 산문 형태로 발표한 것이었는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자신의 어머니 장례식날 낭송함으로써 BBC 방송과 타임지에 소개되어 유명해졌다.
이 시의 행마다 가능 동사들이 있듯이 우리 삶 역시 많은 가능 동사를 품고 있다. 떠났어도 우리와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가 할 일은 그가 꿈꾸었던 세상을 가능하게 하는 일이다. 담대하게 실천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다움을 지키고, 미소 지으면서.
류시화 《시로 납치하다》 중에서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