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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녀 카타리나 폰 제노바(1510년 9월 15일)
여기서는 연옥에 대해 신학적으로 깊은 성찰을 우리에게 남겨 준 한 성녀가 다루어질 것이다. 정화 내지 순화에 대한 그녀의 사상은 환영에 따른 것이 아니다. 그녀의 사상은 자신이 고통스러운 정화의 뜻을 깨치고, 감동적인 하느님의 사랑에 의해 합일을 이루면서 자신의 삶 속에서 스스로 체험하고 견디어낸 신비로운 길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후세의 신학자와 신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종교 논문 「연옥에 대하여 (Über das Fegfeuer)」를 통해서 제노바의 이 성녀는 불쌍한 영혼들의 조력자가 되었다."
1447년에 제노바에서 탄생한 카타리나는 피에스키 (Fieschi) 가문의 후손이다. 피에스키 가문은 인노첸시우스(Innozenz) 4세와 하드리아누스(Hadrian) 5세, 두 명의 교황과 여러 명의 추기경 그리고 고위 성직자를 배출한 귀족 가문이다. 그녀에게는 두 명의 남자 형제와, 카타리나 자신의 "개심(改心)" 때에 큰 역할을 했으며 수녀가 된 림바니아(Limbania)라는 자매가 있었다. 카타리나는 일찍이 12세 되던 해에 이미 수녀원에 가기를 희망했지만, 오빠들이 결정한 가문(家門) 방침에 따라 16세 되던 해에 제노바의 귀족 출신인 줄리아노 아도르노 (Giuliano Adorno)에게 시집을 가야 했다.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다. 남편은 경솔하고 호사스러운 성격의 사람이어서 얼마 되지 않아서 자신과 카타리나의 재산을 거의 모두 탕진해 버렸다. 그는 자신의 젊은 아내를 돌보지 않았다. 그래서 결혼 초 5년 동안 카타리나는 점점 더 심해지는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 후에 카타리나는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같은 계층의 부인들이 모이는 사교계의 오락으로 자신을 지탱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그녀의 우울한 영혼의 짐을 덜어 주지 못했고, 급기야 그녀는 영혼의 위기를 맞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카타리나는 림바니아에게 부탁해서 홀륭한 고해 신부에게 고해를 하게 되었다. 고해석에서 그녀는 "개심"을 체험했다. 하느님께 대한 끝없는 사랑이 갑자기 그녀의 영혼 속에 충만되었고, 그녀는 말할 수 없이 자애로우신 하느님께 누를 끼쳤다는 깊은 자책감으로 몸을 떨었다. 이러한 사랑의 불꽃을 통해서 카타리나는 온갖 세속적인 애착으로부터 정화되었고, 하느님의 빛 안에서 교화되었다. 자신의 의지를 전적으로 하느님께 맡김으로써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루고자 했다. 이러한 신비로운 은총의 체험이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카타리나는 그때까지 살아오는 가운데 무거운 죄를 범한 일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은총으로 가득한 "개심"과 고해를 통해서 비로소 완전히 자신이 정화되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는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에 반하는 의지를 자신의 마음속에서 전혀 발견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4년 동안 신비적인 "정화의 길을 찾아 엄격한 속죄의 삶을 이어갔다. 이 기간 중에 바로 그녀는 논문 「연옥에 대하여」에서 묘사된 불쌍한 영혼들의 정화의 고통에 깊이 몰두하였다. 그러면서 하느님을 향한 그녀의 사랑은 더욱더 커졌다. 이제 카타리나는 이렇게 쓸 수 있었다. "내가 하느님을 사랑하게 된 이래로 이 사랑은 결코 식지 않았다. 이 사랑은 마음속에서 자라나 사랑의 절정까지 닿았다." 사랑의 절정이란 그녀가 하느님의 의지와 운명의 예정에 따라 도달해야 할 목표를 말하는 것이다.
"정화의 길"에 의해서 이 성녀는 점점 더 "깨달음의 길", "일치의 길'에 도달했다. 그녀의 인생에서 이 기간은 1477년에서 1499 년까지 지속되었다. 그리고 이 기간은 환영(幻影)과 탈혼 상태의 황홀경으로 대부분 이루어졌다. 이 속에서 그녀의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불길이 밖으로 드러났던 것이다. 이때 그녀는 명상적인 생활과 제노바의 팜마토네 (Pammatone) 병원에서 의료 봉사를 함으로써 활동적인 생활을 아름답게 조화시켜 나갔다. 처음에는 환자들, 특히 페스트 환자를 돌보는 비천한 일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병원의 관리를 맡게 되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영혼 깊이 자리한 곳에는 차츰 진정한 지혜가 싹트게 마련이다. 그것이 카타리나 폰 제노바에게서 감동적인 방식으로 나타났다. 제노바 의 귀족 출신인 노타르 에토레 베르나차(Notar Ettore Vernazza)가 카타리나에게 자주 들러서 신앙심을 돈독히 하고 그녀의 지혜를 배웠다. 그는 카타리나와 종교적 대화를 나누면서 연옥에 대한 논문을 함께 저술한 사람이다. 그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 성스러운 영혼(카타리나 폰 제노바)이 육체의 변화를 겪으면서, 하느님께 대한 불타는 사랑의 연옥 속에 있을 때, 그녀는 연옥에 의해서 완전히 쇠약해지고, 자신에게서 아직 정화유수 없었던 모든 것으로부터 정화되었다. 그리하여 이 현세의 삶 에서 사랑의 하느님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게 되었다.그때 그녀는 자신의 영혼 속에 깃들여 있는 사랑의 불을 깨닫게 되었다. 정화의 장소에서 신자들의 영혼이 현세에서 벗어날 수 없던 모든 죄의 얼룩짐에서 정화되기 위해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가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 자신이 하느님 사랑의 연옥 속에서 그분의 사랑과 하나가 되고, 자신에게 신적(的)인 사랑을 붙어 넣은 모든 것에 만족하면서, 그녀는 곧 연옥 속에 있는 영혼들의 상태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성녀 카타리나의 삶은 불쌍한 영혼들의 슬픔과 기쁨, 하느님께 대한 향수와 열렬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었으며 그녀가 쓴 논문 연옥에 대하여」의 내용을 완전히 반영하는 그런 삶이었다. 그리하여 성녀 카타리나는 연옥에 대한 깊은 통찰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서 지극히 고통스러운 현실 자체인 것처럼 연옥을 느끼게 되었다. 불쌍한 영혼의 슬픔과 기쁨에 대해 그녀가 글을 쓰게 된 것은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불쌍한 영혼들의 상태 중에서 아주 본질적인 양상, 곧 연옥 영혼들의 독특한 분리 상태에 대해 가르침을 주고 있다. 한편으로 불쌍한 영혼들은 하느님께 대한 열렬한 사랑에 빠져 있으나 그들은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잃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직관에 이미 완전히 가까이 접근해 있 고 확실하고 조금의 공백도 없이 그러한 관념의 완전한 실현을 갈급하게 고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불쌍한 영혼들은 동시에 불완전성, 미숙, 속박에 대한 고통을 받고 있는데 그 고통은 저주받은 자들의 고통에 비해 결코 못하지 않다. 그리하여 불쌍한 영혼들이 지닌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지복의 "불"이면서 동시에 정화고(淨化苦)의 "불"을 거쳐야 한다. 죽음의 순간에 은총의 상태에서 하느님께로부터 용서를 받았으나 죄의 얼룩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채로 죽음의 선을 넘어선 영혼은 이러한 사랑의 "불"을 통해서 죽은 후에 정화가 되는 것이다.
하인리히 (J. B. Heinrich)는 평소에 연옥의 환영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성자들이 전한 불쌍한 영혼의 출현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 그의 "교의 신학"의 편집자이며 완성자인 구트베 롤레트(C. Gutberlet)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갖고 있다. "그처럼 단순한 환상의 결합이라는 관점으로 연옥을 이해하려 든다면 사 람들은 성녀 카타리나 폰 제노바가 연옥에 대해서 무엇을 썼는지를 헤아릴 수 없다. 성녀는 자신의 내면에서 흡사 완전히 진지한 현실 속에서처럼 연옥을 체험하고, 커다란 기쁨을 가지고 가장 무거운 고통을 견디어 냄으로써, 연옥에 대해 깊이 통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스스로 설명하기를 자신은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 불쌍한 영혼의 고통에 대한 통찰력을 얻었는데 그것은 이성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고 했다. 카타리나 폰 제노바가 특별히 받은 은총, 그녀의 하느님에 대한 타는 듯한 사랑, 그리고 그녀가 살아온 경이롭고 슬픔으로 가득 찬 삶은 그녀로 하여금 불쌍한 영혼의 고통 상태를 깊이 인정할 수 있도록 바꾸어 놓았다.
하느님께서는 이 성녀가 연옥을 직관적이고 또한 구체적으로 표사할 수 있도록 간택하신 것처럼 보인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Franz von Sales)는 연옥에 대한 아름답고도 위로가 될 수 있는 글들의 기초를 성녀 카타리나 폰 제노바가 묘사한 글들에서 얻었으며 자주 그녀의 말을 인용했다. 그의 친구인 카무스(J. P. Camus) 주교는 성 프라치스코 살레시오가 연옥에 대한 성녀 카타리나 폰 제노바의 엄선된 책에 대해 칭찬했고 열성적으로 추천했다고 전하였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와 같이 루드비히 폰 그라나다 (Ludwig von Granada)와 요셉 괴레스(Joseph Görres)도 같은 견해를 표명했다. 요셉 괴뢰스는 하인리히 조이제 (Heinrich Seuse)의 생애와 카타리나 폰 제노바의 저술들에 대한 그의 머리글에서 한 영혼을 지적하고 있는데, 그녀는 자신의 지상의 생애 가운데 이 미 정화 과정을 극복해 냈으며, 연옥에 대한 그녀의 논문에서 그 정화 상황을 생생하게 서술해 놓았다는 것이다."
성녀 카타리나는 그녀의 남편이 그녀의 권면을 받아들여 개심 (改心)하고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제노바의 팜마토네 병원의 원장 직을 사직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계속되는 긴장, 즉 그녀의 마음속에서 불타고 있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불로 인하여 자신의 체력이 얼마나 쇠진해 버렸는가를 절감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1500년경에 카타리나는 원인을 알 수 없 는 병에 걸렸다. 담당 의사는 진단 결과 초자연적인 원인을 가진 병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바로 불쌍한 영혼들이 겪는 연옥의 고통과 같은 것이었다. 열과 한기가 되풀이되고, 끝없는 감상과 무감각이 되풀이되며, 죽음에 가까이 접근한 듯한 순간과 완전히 회복된 듯한 순간이 서로 되풀이되어 나타나는 그런 증세였다. 죽기 2년 전부터 카타리나는 병석에 누워 지냈다. 1510년 9월 15일 평소에는 성체를 받던 시간에 그녀는 갑자기 이렇게 말했 다. "주여, 나의 영혼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그녀는 온화하고 평화로운 가운데 그처럼 잠이 들었다. 이제 영원한 "사랑"이 있는 곳에 영원히 머무르게 된 것이다. 그녀에게 연옥은 이미 끝이 났으며 삼위 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 가득한 보살피심과, 오로지 돌보아 주심으로 가득한 하느님의 사랑 속에 하늘 나라에서의 지복 직관이 시작되었다.
1. 복녀 스테파나 퀸자니 (1530년 1월 2일)
교황 베네딕도(Benedikt) 14세에 의해서 1740년 복자품의 영광에 오른 스테파나 퀸자니 (Stefana Quinzani)는 오르치노비(Orcinovi, 브레시아 관구,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 15세에 그녀는 성 도미니코 (Dominikus) 제3회에 들어갔다. 그녀는 끊임없는 기도와 엄격한 보속 생활을 통하여 성숙한 신앙에 도달했다. 주님께서는 그녀가 40년 동안 금요일마다 예수 수난의 황홀한 고통과 성흔(聖)을 입게 하시었다. 그녀는 가난한 자들을 돌보고, 자신을 피난처로 찾아오는 소녀들에게 종교적인 교육을 시켰다. 그들을 위해 그녀는 크레모나(Cremona) 근처에 수녀원을 세우고 1530년에 죽기까지 수녀원장으로 봉직했다. 그녀는 또한 특별한 은총을 입어 영적 투시력을 갖게 되었으며 죽은 이들의 운명을 내다볼 수 있었 다. 그녀의 생애 중에서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주요한 사건이 전해지고 있다."
바울라(Paula)라는 이름을 가진 한 도미니코회 수녀가 오랫동안 성덕을 쌓은 뒤에 죽어서 만투아(Mantua)의 교회에 안치되었다. 교회의 장례 미사가 거행되는 동안 스테파나 퀸자니 복녀는 생전에 가까이 지내던 고인의 관 옆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녀는 하느님께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그때 갑자기 죽은 사람의 굳은 손에 쥐어 있던 십자가가 떨어지면서 왼손이 뻗쳐 나와 기도를 하고 있는 친구의 오른손을 꼭 쥐는 것이었다. 그녀는 경악하여 그 손을 떨치려고 애썼지만 허사였다. 두 개의 손은 그렇게 두 시간 가량이나 꼭 붙은 채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스테파나 복녀는 내면에서 들려 오는 소리를 들었다. "나를 도와 줘, 나의 다정한 벗, 내가 감수해야 할 이 엄청난 고통에서 나를 구출해 줘! 오, 너희 살아 있는 이들이 죽음의 순간에 우리를 덮쳐 오는 저 보이지 않는 원수들의 악착같은 공격을 짐작한다면! 우리가 행한일들, 중요해 보이지 않는 일들까지도 정확하게 헤아려지며 조그마한 잘못도 가차없이 드러나게 되는 하느님의 엄격하신 심판을 예감이라도 한다면! 영혼에게 요구되는 순수한 결백성에 대해서 너희가 이해한다면, 결백한 영혼만이 하늘 나라에서 복을 누리며 비할 데 없는 영광의 관(冠)을 쓰게 될 줄을! 나를 위해 기도해 줘, 나의 자매, 하느님의 자애로운 심판이 내리도록! 나를 위해 기도하고, 나를 위해 속죄해 줘. 나는 이제 스스로 자신을 도울 능력이 없어!"
주위에 선 사람들은 이 말을 들을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경악과 혼란 속에 빠진 것을 보았으며, 고인의 손이 스테파나 복녀의 손을 꼭 쥐고 놓지 않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사람들은 모두 아무 말도 못하고 서 있었다. 마침내 고인의 고해 신부가 와서 복자의 손을 놓고 복종하라고 명하자 그제서야 죽은 이는 그 복녀의 손을 풀어 주고 다시 팔을 제자리로 가져갔다. 고인의 팔은 다시금 생기를 잃고 납덩이처럼 무겁게 관 위에 놓였다. 스테파나 복녀는 연옥에서 고통을 겪는 친구의 청을 열성을 다해 들어주었다. 얼마 후에 그녀는 친구가 이제 저 세상의 정화의 고통에서 벗어나 하늘 나라의 영원한 지복에 도달하게 된 사실을 전해 받고 크게 기뻐했다.
1. 복녀 카타리나 라코니지 (1547년 9월 4일)
1486년 라코니지(쿠네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도미니코 3회의 복녀 카타리나 라코니지 (Catharina von Racconigi)는 젊었을 때부터 그리스도를 위해 고행하려는 소망을 이미 성취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생애는 십자가의 이적과 가난, 병, 곤궁 그리고 그녀가 은혜로 받았던 능력들 예언, 성혼 등의 능력 때문에 그녀를 질투하고 중상 모략했던 동료들 사이에서의 어려움 등으로 점철 되어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고향인 라코니지에서 이웃해 있는 카라마냐(Caramagna)로 이사를 했었고 그곳에서 또한 특이한 온총을 입으며 1547년 9월 4일 세상을 떠났다.
연옥의 불쌍한 영혼들에 대해서 그녀는 여러 체험들이 시사하고 있듯이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그녀는 엘이 몹시 나서 숙소에 누워 있었는데, 아픈 몸의 상태 속에서 연옥의 고통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그녀는 경련을 일으키며, 그녀의 영혼이 연옥으로 이끌려 갔다. 그녀가 공포를 느끼며 자신의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는 동안 이글이글 타는 불길 한가운데에는 불쌍한 영혼들이 갇혀 아직도 남은 죄과를 보속하고 있었다. 그때 그녀는 어떤 목소리 를 들었다. "카타리나, 네가 이 불쌍한 영혼들을 좀더 열성적으로 보살피도록, 나는 이제 잠깐 네가 그들의 고통을 그들이 당하는 것과 똑같이 네 머리로 느끼게 하겠다!" 그녀가 이 말을 알아 차리자마자 불똥이 튀어 그녀의 뺨으로 곧장 날아왔다. 그녀를 돌보기 위해 와 있던 동료 수녀들까지도 이 불똥이 튀는 것을 분명히 보았고 동시에 환자의 얼굴이 갑자기 무섭도록 일그러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환자가 다시 제정신을 차린 후에도 뺨에 부푼 상처는 여러 날 지속되었다. 나중에 설명하기를 자신이 이제 껏 겪어 왔고 또 겪어야 했었던 그 모든 고통도 그때 불똥이 튀면서 일으킨 아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곤 했다.
그녀는 전에도 불쌍한 영혼들을 지성으로 돌보았지만, 그때부터 더 불쌍한 영혼들을 연옥의 불에서 구출시키려는 그녀의 기도와 속죄 노력은 배가되었다. 그녀는 바로 자신의 신비로운 체험을 통해 연옥의 고통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언젠가는 카르투지오회의 한 수사회가 카타리나 라코니지 복녀에게 나타났다. 그 수사는 1409년 피사 공의회에서 교황 그레고리우스(Gregor) 12세에게 반대했는데 죽기 전에 정당했던 교황과 교회에 사죄하고 속죄를 행한 사람이었다. 복녀가 체험한 바로는 그는 하느님께로부터 무거운 연옥 정화의 형벌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카타리나 복녀의 열렬한 기도와 속죄 희생에 힘입어 연옥에서 풀려 나게 되었다.
언젠가 이 복자는 황홀경 속에서 구세주를 볼 수 있었는데 그때 그녀는 구세주의 옆구리 상처에서 피가 쏟아져 나와 절반은 지상에서 살아가는 죄인들의 위로 가고, 나머지 절반은 연옥에서 신음하는 불쌍한 영혼들에게 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자신이 한편으로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주께 참회와 속죄의 희생을 치를 것을 결심하고 또 한편으로는 불쌍한 영흔들이 연옥에서 풀려 나도록 꼭 도울 것을 크게 다짐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그녀의 엄한 속죄의 희생과 열렬한 기도가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서 얼마나 축복에 가득 찬 효과를 거두었는 가에 대한 증거는 그녀에게 나타난 많은 불쌍한 영혼들의 출현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피앗미희님이 카톡으로 보내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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