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썼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은 시 귀절이 문득 떠오릅니다. 그래서 문자 메세지를
띄웠지요. 그랬더니 한 분에게서 이런 답글이 왔어요. '향기롭고 순한' 동암역 부근
본죽집 사장님입니다. 아실만한 분은 다 아실 터이지만, 본인 이름 썼다는 것을 알
면, 한번은 면박을 주실 분이죠. "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기다림은 없다. 그런 척
하는 것이 아닐까요." 어쩌면 그 말이 솔직할 수도 있겠습니다.
영화 '박하사탕'의 한 장면입니다. 수배자의 집 주변에서 잠복 근무를 하는 형사들,
비는 철철 내리고, 밤샘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장면에서 설경구가 하는 노래
말입니다. "기다리게 해 놓고, 오지 않는 사람아" 웃음이 절로 나왔지요. 결국 운동
권 수배자는 잡히게 되고, 무척 고생을 하게됩니다. '박하사탕'이 뜻하는 의미가 '첫
사랑의 순수한 향'이라고 봅니다. 때묻지 않은, 이제는 다시 돌아 갈 수 없지만, 잊
혀지지 않는, 잊을 수 없는 그 무엇을 의미하겠지요. 설경구가 '나 다시 돌아가고 싶어'
했던 그 시간, 그 자리, 그 때 그 사람들을 의미하겠지요. 그 시절이 향기롭고, 그 자리가
향기롭고, 그 때 만났던 사람들이 문득 생각나는 지금입니다. 밖에는 장마비가 철철,
참으로 오랫만에 속시원히 내립니다. 한식이가 '지금, 비 온다'라고 전화를 하면 동인천
일본식 집으로 모여들곤 했던 친구들이 기억나네요.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설령 그럴 수 있는 지, 그게 맞는 지 잘 모릅니다. 그래도 그 말의 의미를 조금은 이해
하려 합니다. 소위 '운동'이라는 것을 하며 산 지가 30년이 되는 데에도, 아직 변변치
못한 신세입니다만, 이 길을 왜 걷는가? 스스로 물을 때, 스스로 위안삼아 떠오르는
구절이 바로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입니다. 계양산을 염
려하는 분들 가운데 이런 물음을 던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길 수 있을까요?" 솔직
히 저는 잘 모릅니다. 하늘타리님은 '이긴다'고 하지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끝까지 함께간다'는 마음입니다. 새벽이가 아팠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밤을 새
우며, 함께 깨어있으려고 노력했던 기억입니다. 중간중간 졸기도 했지요. 그래도 눈을
뜨고 '새벽아, 아빠가 여기있어'라고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 마음을 다시 회복하
려고 합니다.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여깁니다. 기다릴 사람이 있다는 것, 기다릴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이 참 좋은 때라고 생각합니다. 여자 친구와 약속을 하고 기다리는데
오지 않습니다. 눈은 자꾸 다방 입구로 쏠리는 것이죠. 행여나 오려나? 안 오죠. 자존
심이 상해서 입구쪽을 안 보려고 해도 그게 잘 안되는 경험이 여러번입니다. 사실, 만
나서 이야기 나눌 때보다, 어쩌면 목빼고 기다리는 그 시간이 아련하게 느껴집니다.
'메시아 대림'을 기다리며, 기도했던 분들이 있었습니다. 참 힘들고, 험한 과정을 거
치면서도, '그 분이 언젠가 오실꺼야!, 그 분은 신실한 분이시거든' 이라는 믿음 하
나로 시련의 시기를 넘어왔던 참 순박한 분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의 마음을 다시
배우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기다림'없는 만남은 만나고 나서 쉬 잊혀지지만, 오랜
'기다림'을 통하여 이루어진 만남은 '여문 만남'이 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기
다림'의 시간에서 수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죠. 자기 내면의
진정한 바램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일겁니다.
첫댓글 서정윤 시인의 홀로서기...예요,, 다시 한번 읽어보게 됐네요...스무해쯤 전에 읽었던 시집이었는데...또 고맙다는 생각들게 하시는 소나무친구님...^^
"지금 비온다" 이 한마디에 모여들 친구가 지금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비오는 지난 토욜밤을 거의 꼬박 세웠습니다. ^^
저는 많은데요...그런 친구들..ㅎㅎ,,,은총님이 먼저 그런 친구가 되어 주세요. 그럼 자연히... 비온다,,,한 마디에 친구들이 우르르르 달려나올런지도...^^
진한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참 힘이 들더군요. 지나고나면 또 그냥 잊혀지긴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