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비정규직 박일수 분신사망 진상조사 결과 기자회견
( 비정규공대위 2004-02-27 )
- 현대중공업 불법파견, 하청노조 탄압 드러나
1. 26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비정규공대위는 지난 2월 14일 발생한 현대중공업
비정규노동자 박일수씨의분신사망과 관련하여, 진상조사를 실시하고 사건의 배경
과 원인, 비정규직 실태 등을 발표한다.
2. 조사에 따르면, ▲ 박일수씨는 2003. 7. 22 사내하청 노동자로서는 최초로 차별
에 항의하는 유인물을 돌린 후 현대중공업의 압력으로 사실상 해고되었고 ▲ 박일
수씨가 소속된 인터기업은 사업상, 노무관리상의 독립성이 현저히 결여된 불법파견
업체로 드러났으며 ▲ 현대중공업은 사내하청노조의 활동을 탄압해 왔음을 확인되
었다.
3.보고서를 첨부합니다.
<기자회견> 현대중공업 비정규직 박일수 분신사망 진상조사 보고
● 일 시 : 2004. 2. 27(금) 11:00
● 장 소 : 안국동 느티나무 까페
● 참 석 :
- 박석운(조사단장, 비정규공대위 운영위원장)
- 김장식(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 변호사)
- 조진원(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비정규공대위 사무처장)
- 차은상(경제정의실천연합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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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 박일수씨 분신사망사건 진상조사보고서 >
- 비정규노동자 기본권보장과 차별철폐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약칭 : 비정규노동자 공대위)
진상조사단은 2003. 2. 20. 08:00경 항공편으로 서울을 출발하여 9:30경 망 박일수씨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울산 북구 소재 울산현대병원에 도착한 후 유족과 울산지역분신대책위 관계자를 면담하고, 현대중공업(주)를 방문하여 회사측 관계자와 노동조합 관계자를 면담하여 진술을 청취하고 관련 자료를 제출받았으며, 울산지방노동사무소 근로감독과장 이삼영을 면담한 다음 다시 병원 장례식장으로 돌아와 인터기업의 동료 근로자 및 하청노조 관계자 및 분신대책위 관계자를 만나 진술을 청취하는 등의 방식으로 진상조사를 시행하였다. 조사과정에서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간한 “불법파견실태조사 결과분석”(2003.7.)와 금속산업연맹과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펴낸 “사내하청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정책” 중 제2부 “사내하청 실태조사 결과”(2003.3.) 및 민주노동당이 제출한 “박일수씨 분신사망사건 진상조사 보고서”(2004.2.)를 상당 정도 참조하였다.
망 박일수(남, 50세)는 2002. 3. 24. 울산광역시 동구 전하동에 위치한 현대중공업의 사내 하청기업인 주식회사 인터기업에 입사하여 CO2 용접공으로 일하였는데, 2004. 2. 14. 04:50 경 위 회사 사업장내 4,5 도크 뒤 선실생산부 사무실 앞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철폐를 호소하는 복사본 유서 3장을 점퍼 주머니에 넣어 벗어 둔 후, 휘발유를 몸에 붓고 분신하여 사망하였다.
3. 사건의 경위
가. 인터기업에의 입사
망 박일수는 2002. 3. 22.경 인터기업의 사장 박진용의 친동생인 같은 회사 직장 박태용에 의하여 면접을 보았고,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로하고 일당 90,000원을 받는 조건으로 3. 24.부터 취업하기로 하였다.
나. 열악한 근로조건에 대한 불만의 표출
인터기업은 근로자 수가 약 150명 가량 이었으므로 당연히 4대보험 가입 대상임에도 상당수의 노동자에 대하여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아니하고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인터기업의 ‘선실부’에 7년 이상 근무한 사람이 당시 10명인데, 이들을 당사자도 모르게 퇴직시킨 후 그 퇴직금을 사장이 받아서 쓰거나, 국민연금 보험료를 체납하는 등의 일도 발생하였다고 한다. 또한 용접사 자격증 수당, 가스 수당, 월차, 연차수당 등의 각종 수당도 회사가 중간에 가로채고 노동자들에게 지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실정에 접하여 망 박일수는 하청노동자들이 당면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하였고 이 과정에서 이 문제를 상담하기 위하여 2002. 9. 중순경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인터기업은 2002. 10. 11. 박태용을 통하여 망 박일수만 고용보험에 가입해 줄 터이니 가만히 있으라고 회유하였으나 망 박일수는 이러한 제안을 거절하였다고 한다. 이에 박태용이 망 박일수에게 회사에 나오지 말라고 하면서 폭행하는 사태가 발생하였고 당시 망 박일수는 전치 14일의 상해를 입었다. 위 사건을 계기로 망 박일수는 인터기업을 울산지방노동사무소에 진정하기 위하여 진정서를 작성하였으나, 실제 제출하지는 아니하였던 것으로 보인다.(작성된 진정서 사본은 확인하였으나, 노동부 지방사무소에 따르면 그 시기에 망 박일수에 의해 제출된 진정서는 접수된 것이 없다고 함.)
다. 전단지 배포 사건의 발생 및 노동사무소에의 진정
2003.6.경부터 망 박일수는 인터기업 사장을 만나 다른 하청기업과 동일한 임금인상분 지급, 주휴수당 및 월차수당 지급, 휴일근로 초과근로수당 지급, 예비군 훈련시간의 유급 인정, 설 휴가 하기휴가 70% 유급인정 및 그 전에 체불되었던 의장부 소속 근로자 60명의 체불임금을 지급할 것 등을 요구하였다. 이에 대해 회사측은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같은 상황에서 망 박일수는 2003.7.22. 자신의 명의로 사내 하청 근로자들에 대한 차별을 철폐할 것을 요구하는 유인물 수만장을 작성하여 직영노동자와 하청노동자가 같이 사용하는 현대중공업 식당 내에서 배포하였다. 또한 망 박일수는 2003.7.경 인터기업 박진용 사장이 임금 약3,000,000원 가량을 미지급하였다는 이유로 울산지방검찰청에 고소하였고, 이 고소사건은 울산지방검찰청 2003형 제29992호로 수리되어 울산지방노동사무소에서 수사하도록 지휘되었다. 이에 박진용 사장은 2003.7.31. 금240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보이고, 울산지방노동사무소는 같은해 8.21.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였으며,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하여 2003.8.27. 기소유예 결정하였다.
라. 현대중공업의 해고 압력
위 전단지 배포 사건이 발생하자 현대중공업(주)측은 인터기업에 대하여 망 박일수를 제재해 줄 것을 압박하였다. 동료 노동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인터기업 의장부 소장이 “박일수가 유인물을 뿌리고 하니까 일수는 아무도 일을 안 시킬려고 한다. 제발 우리 현장에는 데리고 오지 말라고 한다.”는 말을 한 바 있다고 하고, 또 인터기업 사측 관리자들이 “너(망 박일수)가 현장에 나오면 원청에서 보기 때문에 안된다”며 출근하지 말 것을 종용하였으며, 그리고 원청(현대중공업) 부장이 “저 인간 왜 빨리 처리 안 해?”라며 인터기업 사측을 강하게 질책하기도 한 결과 인터기업 사장이 망 박일수에게 “작업 안나와도 월급 주니까 제발 현장에 나오지 말라”고 강압하였다고 한다.
즉, 원청인 현대중공업측의 강한 압력을 받게 된 인터기업 사측은 망 박일수를 현대중공업 내 사업장에 취업시킬 수 없게 되었고 그렇다고 해고할 사유가 되지 않아 해고를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망 박일수가 출근 못한 기간의 임금에 대하여는 인터기업이 보상하기로 약속하는 한편으로 망 박일수에게 현장에 나오지 말 것을 종용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결국 이런 경위로 망 박일수는 2003년7월 경부터 사직을 하거나 해고된 상태도 아닌 신분에서 현장근무는 하지 못하는 사실상 휴직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마. 사내 하청노조 활동
2003.8. 경 사내하청노동조합이 결성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망 박일수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조합 결성 과정에 발기인으로 참석한 바 있었고 위원장으로 경선 출마하였다가 자진 사퇴하였다. 그 후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이 심하고, 노조가 대중적 힘을 광범위하게 획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단은 현장에서 조합원들을 만나겠다는 의사를 보이며 노조에는 더 이상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바. 노사 협의회 활동
2003.8.경부터 노동자들과 인터기업은 노동자들의 체불된 임금에 대한 협의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노사 협의 과정에서 인터기업 사장은 그 동안 밀린 체불임금(주로 상여금, 각종 수당 등)을 150만원까지만 지급하고, 이후에는 주휴․월차․연차수당, 연장근로할증률 상향 조정 등의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조건을 내세웠으나, 노동자들은 사람에 따라 1,000만원이 넘는 노동자들도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요구를 거부하였다.
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인터기업의 사장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노사협의회를 조직하는 것을 추진하였다. 이와 관련, 2003.9.1. 인터기업의 노동자들은 박일수 주도로 노사협의회 관련 대책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이 위원회에서 9.9. 근로자 투표 결과 총31표중 22표를 얻은 박일수가 위원회의 대표로 선출되었다. 당시 노사협상은 9월9일, 9월18일, 10월3일, 10월17일, 10월31일, 11월7일 등 6회 가량 진행되었다고 하며 이 과정에서 망박일수의 복귀 문제, 임금체불 문제, 근기법에 의한 월차․연차 등 각종 수당 적용 문제 등이 논의되었다.
노사협의 과정에서 회사측과 노동자 대표간에 합의가 성립하지는 못하였다. 노동자들은 개인에 따라 체불임금이 1000만원이 넘는 경우도 있었음에도, 자신들의 요구를 대폭 양보하여, 근무경력 1년 넘은 사람은 300만원, 1년된 사람은 200만원, 6개월 된 사람은 100만원만 받기로 하는 요구안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한편 이 과정에서 회사와의 협의가 원만히 진행되지 아니하자 체불임금을 지급받기 위하여 노동자들이 연명하여 울산지방노동사무소에 진정하기로 한 후 2003.9.9. 진정서를 작성하였으나 실제 제출되지는 아니하였다.(작성된 진정서 사본은 확인하였으나, 노동부 지방사무소에 따르면 그 시기에 망 박일수에 의해 제출된 또 다른 진정서는 접수된 것이 없다고 함.)
이러한 노사협의과정에서 망 박일수는 고공농성, 분신 등 극한적인 투쟁방법도 고민했던 것으로 보인다. 망 박일수가 자주 상담을 했던 울산남구 비정규노동센터 최상범 소장의 진술에 의하면, 2003년 가을의 이른바 ‘분신정국’ 당시 망 박일수도 분신하겠다는 의사를 보이기도 하여, 최상범이 다른 방법으로 계속 투쟁할 것을 설득하여 겨우 이를 막았다고 한다.
사. 현대중공업의 사내 출입증 갱신발급 거부
2003년12.31. 망 박일수의 현대중공업 출입증의 유효 기간이 종료하자, 현대중공업은 망 박일수가 인터기업에서 퇴직하였다는 이유로 박일수의 사내 출입증 발급을 거부하였다(하청 업체의 직원인 경우에도 현대중공업이 발행한 출입증을 패용하여야 회사내 출입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망 박일수는 더 이상 사내에 출입할 수 없게 되어 사실상 해고 상태가 되었으며, 인터기업의 사장도 망 박일수를 사실상 해고 상태에서 복직시키기 위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였다(당초 인터기업 사장은 현대중공업의 압력에 의해 망 박일수를 작업현장에 투입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휴직기간이 경과하면 2004년에 출입증을 갱신해주고 다시 일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였었다). 망 박일수는 출입증 갱신발급 거부로 인한 사실상 해고당한 문제로, 인터기업 사장 집을 찾아가 강하게 항의하기도 하였으나 사장 박진용은 2004.3.까지는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하며 무마를 시도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출입증 갱신이 거부당한 망 박일수는 이제 복직의 희망이 사라진 것으로 판단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 사건 발생 직전의 행동
2003.2.12. 망 박일수는 안산에 사는 딸에게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와 유서임을 짐작케 하는 내용(이 편지를 받을 때에는 아빠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부분)이 포함된 편지를 발송하였다. 그 다음날인 2. 13. 20:50 경에는 울산 남구 비정규노동센터 최상범 소장과 약 30분간 전화통화를 하였다. 통화 과정에서 망 박일수는 자신의 뜻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KBS 추적 60분팀에 유서를 비롯한 관련 자료들을 보냈다고 했으며, 자기 죽음이 왜곡되지 않게 도와 달라는 말을 하였다고 한다. 이에 최상범 소장은 망 박일수의 분신을 말렸으나 박일수는 자신의 현재 위치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므로 달리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고 한다. 같은 날 22:00경 박일수의 딸이 당일 저녁에 도착한 편지를 보고 급히 울산으로 왔고, 딸과 함께 동행한 사위는 약2시간에 걸쳐 망 박일수를 설득하였다. 그러나 24:00경 망 박일수와 딸 및 사위는 좁은 방에서 같이 잘 수가 없었으므로 다음날 오전 10시에 만나기로 하고 헤어지게 되었다. 그 후 2. 14. 04:50경 망 박일수는 현대 중공업 내에서 분신하여 사망하였고 동일 07:00경 최초로 시신이 발견되었다.
자. 사망 이후의 경과
(1) 분신 사망의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자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를 중심으로 하여 지역분신대책위원회를 결성하였고, 이와 별도로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자체 진상조사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다.
(2) 분신대책위원회는 현대중공업 주변에서 매일 지속적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고, 시위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부상하는 사고도 발생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시위대의 부상에 대하여는 부인하고 있고, 오히려 회사가 시위로 인하여 피해를 입고 있다고 한다.
(3) 2004.2.16.에는 망 박일수의 유족인 딸을 회사측에서 고모를 이용하여 빼돌릴려는 시도가 있었고, 2004.2.17.에는 강제 해고당한 하청노조 소속 노동자 김주익, 김동혁, 이운남 3명이 크레인위에서 시위를 하였다. 진압과정에서 현대중공업의 경비대에 의하여 폭력이 행사되었고 이로 인하여 시위자들은 상당한 부상을 당하였다. 회사는 시위대가 크레인에서 내려오지 않으려고 반항하는 과정에서 부상당한 것이라 주장하나, 시위 당사자는 기자 등 외부인의 시야가 미치지 않는 곳에서 무자비한 폭력이 행사되었다고 한다. 현재 김주익과 김동혁은 불구속 석방되어 김동혁은 울산대 병원에 입원 중이고, 이운남은 주거침입,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된 상태이다.
4. 관련 당사자의 입장
가. 현대중공업의 입장
현대중공업(주)는 기본적으로 이 사건에 있어서 직접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위치에 있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다만 사내 하청업체에 대하여 좀더 충실한 관리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고, 사건의 조기해결을 바라는 바 유족의 진정한 의사를 우선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현재 망인의 사인에도 의문이 있다고 말한다. 또한 사태 해결을 위하여 현대중공업노조와는 협의할 의사가 있으나 지역분신대책위와는 협의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이며, 분신대책위가 요구하는 9개항은 의제 자체에 있어서 협상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나. 인터기업의 입장
망 박일수가 일하였던 인터기업 노동자들은 16일 반나절 작업을 거부한 사실이 있으나, 현재는 소장의 인솔 하에 120여명의 근로자들이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반나절 작업거부 당시 인터기업 사측으로 부터 요구조건을 모두 수용하고 후생복지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한다. 사내 하청노동자들의 경우 망 박일수가 제기한 문제에 대하여 공감을 하고는 있으나 회사로부터의 해고가 두려워 동조하는 행동을 하기 어려운 상태이고, 인터기업의 노동자들은 대부분 이 건 사태로 인하여 집단해고당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편, 인터기업의 사장인 박진용은 신변의 위협 등을 이유로 연락이 두절된 상태이다.
다. 현대중공업 노조의 입장
현대중공업 노조는 망 박일수의 사망에 대하여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망 박일수는 2003.12.31.기준으로 퇴사한 상태였고, 사내하청 노조의 노조원도 아니며, 단지 현대중공업의 하청기업에서 일하다가 현대중공업 사업장 내에서 사망하였다는 점에서 관심을 표명하는 정도이다. 또한 사망의 원인에 있어서도 노동 현장에서의 문제보다는 개인의 사생활과 도덕적인 면을 거론하며 사적인 문제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분신대책위의 구성과 관련하여서도 사내하청 노조의 건의로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에서 분신대책위를 구성한 부분에 대하여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진정한 사태의 해결을 원한다면 지역분신대책위가 사태 수습과 관련한 전권을 현대중공업 노조에 넘겨주기를 희망하고 있고, 분신대책위에는 참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2004년 단협에서는 하청근로자 처우개선을 위한 내용을 상당부분 준비 중이라고 한다. 또한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위한 제도개선 문제는 거시적으로는 민주노총이 담당하여 해결할 문제라고 판단하고 있는 상태이다.
라. 울산지방노동사무소
울산지방노동사무소는 인터기업에 대하여는 우선 조사에 착수한 후, 위법사실이 발견되면 후속조치에 착수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주) 및 사내하청기업 전반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은 울산지방노동사무소 수준에서는 인력이 부족하여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2004년3월이내 노동부 본부의 정책입안 차원에서 조선 8개업체의 원하청 관계에 대한 실태파악에 착수할 예정이라 한다.
5. 분신 사망의 원인
가. 현대중공업내 불법적 파견 근로의 존재
(1) 현황
현대중공업(주)의 경우 광범위한 분야에서 하청기업 노동자들에 의한 생산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대중공업(주)에 의하면 2004년1월 기준으로 직영 노동자의 숫자는 20,340명(사무기술직 8,686명, 생산기능직 11,654명)이고, 사내하청기업 소속 노동자의 숫자는 147개 업체에 10,975명인 바, 이에 따른 직영노동자와 하청 노동자와의 비율은 약 6:4 정도라고 한다. 이러한 사내하청기업 소속 노동자의 숫자는 계속하여 증감하고 있는데 2003년의 경우 18,000여명까지 되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내하청노동자가 감당하는 작업량을 살펴보면 사무직을 제외하고 생산직만을 대비하면 현재 현대중공업 전체 생산물량의 50%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2) 사내하청 근로의 성격
이러한 사내하청근로자에 대하여 현대중공업은 사내하청기업 소속 노동자들의 경우 ‘사내협력사’(사내하청기업을 현대중공업 사측이 부르는 명칭임)의 정규직 노동자이지 비정규직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입장에서 볼 때 비정규직이라고 볼 수 있는 인원은 105명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직영노동자와 하청노동자가 담당하는 업무에 대하여도 현대중공업(주) 사측은 직영노동자와 하청 노동자가 같은 장소에서 일하는 경우는 있지만 업무의 내용이 다르며 대부분의 경우 하청업체에 물량도급 계약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진술에 의하면 지원방식으로 일하는 경우와 물량도급 방식으로 일하는 경우의 2가지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데 사내하청업체별로 또한 시기별로 약간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지원방식으로 일하는 경우가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고 한다. 지원방식으로 일하는 경우에는 직영노동자들과 같이 섞여서 작업을 하였고, 작업과정에서 모든 자재 및 작업도구를 현대중공업으로부터 지급받고, 작업량 배정이나 작업지시도 직영업체의 반장들에 의하여 사실상 이루어지고 있으며, 사내하청업체의 소장, 반장의 경우는 하청업체 노동자의 출퇴근 체크, 직영반장과의 협의 후 작업배치 정도에만 관여하고 있으며, 휴가사용 및 잔업지시 등의 경우에도 사실상 직영 반장에 의하여 결정되었다고 한다. 또한 평소 “지원”방식으로 일하는 경우에도 이 건 분신 발생 후에는 누가 물으면 “물량도급”을 받고 있다고 이야기하라는 지시를 받고 있다고 한다.
망 박일수가 일하였던 의장 3부의 경우 인터기업 소속 하청노동자가 44명인데 그중 14명(2반)은 약 1달전부터 물량 방식으로 일하고 있고 나머지 30여명은 모두 지원방식으로 일하고 있는데 지원방식으로 일하는 경우에는 비슷한 숫자의 직영노동자와 하청노동자들이 섞여서 같이 일하고 있다고 한다.
현대중공업 노조의 경우에도 작업과정에서 직영노동자와 하청 노동자가 같이 섞여 일하는 경우도 있고, 하청 노동자들의 경우 물량도급을 받아 작업하는 경우도 있는데, 같이 섞여서 일하는 “지원”방식으로 일하는 비율이 더 높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진술들에 비추어 볼 때 현대중공업(주)는 사실상 기존 직영노동자들의 업무를 하청노동자들을 이용하여 업무대체 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하청업체 노동자들에 대하여는 하청기업에서의 노조활동이나 업무상의 이유 등으로 하청기업에 취업할 수 없는 노동자들의 명단(이른바 “블랙리스트”)도 현대중공업(주)가 직접 별도로 관리하면서 노동자들을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하청 소속 노동자들중 노조활동의 기미가 보이거나 노동자로서의 권리주장을 하거나 또는 근무하는 과정에서 바른 소리를 하는 등의 사유로 “찍히게” 되면, 원청인 현대중공업(주)로 통보되어(경우에 따라서는 원청쪽에서 직접 체크하여 등재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명단이 올라가게 되는데, 블랙리스트에 명단이 올라간 사람은 현대중공업(주)는 물론이고 관련 하청업체에도 일체 취업할 수 없다고 한다. 여러가지 방법의 통제가 있지만 특히 원청인 현대중공업(주)에서 회사출입증 발급을 해주지 않는 방식으로 철저하게 취업을 통제하고 있다고 한다.
(3)사내 하청이 존재하는 이유
결국 현대중공업(주)의 입장에서는 직영 노동자에 비해 낮은 임금으로 고용하는 것이 가능하고, 도급계약의 해지라는 형식을 빌어 쉽게 고용을 해지할 수 있으며, 하청노동자들의 불안정한 고용상황을 이용하여 노동강도를 유지・강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하청기업의 경우 노조활동을 하지 못하게 통제하는 것이 용이하다는 점 등의 이유로 사내하청기업을 두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된다.
한편 직영노동자들의 경우에도 하청 노동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금과 고용안정성이 높고, 노동강도에 있어서도 힘든 일은 하청노동자에게 전가할 수 있는 측면이 있으므로 하청 노동자들의 문제해결에 소극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최근 몇년동안 현대중공업(주)의 직영노동자들의 노조인 현대중공업노조의 현장 조직력이 현저하게 약화되어 있어, 설사 의지가 있다손 치더라도 직영노조가 하청노동자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상태에 있다고 한다.
나. 사내하청노동자에 대한 현대중공업(주)의 차별
하청노동자들의 진술에 의하면 직영노동자들에 비하여 하청노동자들의 작업 속도나 작업의 질에 있어서 차이가 없음에도, 임금 및 복리 후생에서 차별을 받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훨씬 높은 노동강도가 유지되고 위험작업에 내몰리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직영노동자의 경우 연간 보너스가 1100% 수준이라면 사내하청 노동자의 경우 200~400% 수준이며, 총액을 기준으로 직영 노동자와 사내하청 노동자의 급여수준을 비교하면 사내하청 노동자는 직영 노동자의 50% 수준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급하는 작업복과 작업화의 수에 있어서도 직영노동자와의 차이가 있고, 작업복의 경우 옷감의 재질이 다르고, 내피가 없는 등 보이지 않는 면에서의 차별이 행해지고 있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는 현대중공업 사측 및 현대중공업 노조의 경우도 일부 이를 인정하고 있다.
다. 사내 하청노조에 대한 현대중공업과 하청기업의 탄압행위
현대중공업(주)와 사내하청기업들은 사내하청 노동자가 스스로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거나 이와 관련된 활동을 하는 것을 탄압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현대중공업 사내 하청 노동조합 소속 노동자의 숫자는 미공개 상태이나, 10명의 해고자의 경우 그 명단이 공개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들은 대부분 서로 다른 사내하청기업에 속해 있다가 각각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해고되어,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다른 사내하청기업에도 다시 취직될 수 없게 된 사람들이다. 이들의 진술에 의하면 현대중공업(주)는 노동조합 활동에 적극적인 노동자가 있는 사내하청기업이 있으면 당해 사내하청기업과의 도급계약을 해지하고, 당해 사내하청기업을 폐업하게 될 것을 위협한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사내하청기업을 새로 설립하게 한 다음 노조활동에 관여하지 않은 사내하청노동자들에 대하여만 사실상 고용승계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고 한다.
하청노조 결성 당시 노조 결성과 관련하여 각 업체별로 노조가입 서명을 받았는데, 하청기업은 폐업을 빌미로 각 서명자 별로 불러서 서명철회를 요구한 후 연명한 서명부를 없앤 사례도 있고, 그 자리에 현대중공업의 관리자가 입회하여 그 과정을 감독한 사실도 있다고 진술한다. 또한 위와 같은 서명이 있은 후 현대중공업은 지원작업 나온 하청업체 노동자들에 대하여 일을 시킬 수 없다고 하며 되돌려 보낸 사실도 있다고 한다. 한편 울산남구 비정규센터 최소장은 사내하청 노동조합은 현재 사측에 이미 밝혀진 사람 외에 도급계약해지가 두려워 전체 노조원의 숫자와 명단을 밝히지 못하고 있으며, 비정규센터에 상담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자신의 이름뿐만 아니라 자기가 속한 사업장의 이름조차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진술을 토대로 할 때 현대중공업 내의 하청노동자들은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노동조합활동 마저 방해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라. 인터기업의 노동자 착취
인터기업 노동자들의 진술에 의하면 인터기업의 경우 ‘시급직’ 노동자와 ‘일당직’ 노동자로 구분하고 있는데 망 박일수는 일당을 받는 형태로 고용이 되었고, 총액기준으로 지급받는 임금의 경우 큰 차이가 없으나, 시급직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법정 수장 등이 인정되었으나, 일당직은 법정 수당 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일당직의 경우 고용조차도 불안정하였다. 또한 일당직의 경우 시급직과 달리 월차수당, 연차수당 등이 전혀 없었고, 연장근로 할증률(1.5배)조차 다른 사내하청업체와 달리 적용하지 않았다. 따라서 인터기업의 노동자들은 상대적 저임금 및 고용불안에 시달리면서도 높은 노동 강도로 일하고 있었다.
마. 사내하청 노동자의 차별을 시정하려는 노력에 대한 좌절과 현대중공업의 해고 압력에 의한 인터기업의 사실상 해고
이와 같은 차별과 모순을 해소하려는 망 박일수의 거듭된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전혀 개선되지 못하는 상태였고, 망 박일수는 사직서를 제출한 것도 아니고, 해고장을 받은 상태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대중공업(주)의 압력에 의하여 사실상 해고가 되어 버린 상태였다.
사. 소결
위 살펴본 경위를 종합해 보면, 결국 망 박일수는 사내 하청이 IMF이후 점차 증가해 가고 있는 현실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의 존재 및 차별 해소를 위한 자신의 노력에 대한 원청기업 및 하청기업의 탄압에 의해 아무런 가시적인 성과를 얻지 못하자, 결국 분신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비정규직 차별해소 문제를 사회적으로 제기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6. 대책
가. 특별근로감독 실시
현대중공업(주)와 사내하청 기업들은 그 동안 사내하청 노동조합의 활동을 부당하게 탄압하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지 아니한 사실들이 확인된다. 따라서 이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를 위해 관할 노동관청이 현대중공업(주)와 사내하청 기업들을 상대로 전면적인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이런 노동법 위반 사례는 비단 인터기업에만 독특한 문제가 아니라 147개 사내하청 기업에 전반적인 사례로 판단되므로 원청과 하청기업 전반을 상대로 특별근로감독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특별근로감독의 결과 확인된 노동법 및 관련 실정법 위반 사실들에 대하여는 검찰에 송치하여 경영자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나. 불법 파견근로의 근절
현대중공업(주)와 사내하청 기업들의 관계는 형식상으로는 하도급관계의 외관을 띄고 있으나, 그 실질에 있어서는 상당수가 불법 파견근로 형태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대한 감시․감독․처벌이 획기적으로 강화되어 불법파견이 근절되어야 하고 아울러 불법파견이 확인된 경우 사용사업주가 직접 고용의무를 갖도록 관련 법이 개정되어야 한다.
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의 역할
현대중공업노동조합은 그 동안 사내하청 노동자의 차별 철폐를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현중노조는 현대중공업 내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노동법을 제대로 적용받고, 고용의 안정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하청 노동자들의 비중을 점차 낮추고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라. 정부 및 정치권의 역할
사내하청 노동자는 높은 노동강도에 비하여 저임금, 노동법의 미적용, 4대보험 미적용, 열악한 노동조건 및 고용의 구조적 불안정 등 구조적인 차별에 시달리고 있고, 개별 기업이나 개별 기업별노조 차원에서 이러한 비정규직 차별 문제를 혼자 나서서 해결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따라서 비정규직 문제는 법제도 개선을 통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해결되기 어려운 과제이다. 망 박일수의 사망을 계기로 정부와 정치권은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차별을 철폐하고 비참한 삶의 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적극적인 법제도적 개선책을 실행하여야만 한다.
마. 사회단체 및 언론의 역할
현재 우리사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전체 노동자 숫자의 52-58%에 달하고 있는 실정이다. 압도적 다수 계층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적 존재양태의 개별개별을 살펴보면 전형적으로 사회적 약자의 처지에 놓여 있고, 또 법제도적으로도 실정법적 보호망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실정이다. 어떤 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당면 현안이 되어 버렸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나 차별철폐를 위한 법제도 개선 문제는 노동계에만 맡겨 놓을 것이 아니라 사회 각계가 함께 힘을 합쳐 추진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한 과제이다. 이런 공동의 노력에 각 사회단체의 적극적 동참을 호소한다.
아울러 언론에 대해서도 이 문제의 법제도적 개선책과 차별해소를 위한 실질적 해결책 모색과 범국민적 공론화를 위한 각별한 관심과 노력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