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에 있는 낮선 산을 등반하는 취미로 설악산국립공원 내에 있다는 점봉산를 찾아 나섰다. 폭염이 정점이던 末伏 날, 홍천읍으로 달려가 인제군 기린면에 있는 현리 행 막차를 타고 밤에 도착했다. 오지인데도 3군단 사령부가 있는 관계로 군, 민간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있어서 밤 풍경만으로는 웬만한 도시 같아 보인다. 내가 사는 수원에서 하루일정으로 어려울 것 같아 반나절 전에 출발했는데 낮선 곳에서 밤을 맞게 되었다. 찜질방이 있으면 좋겠는데 주변을 살펴봐도 간판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튼 하루에 3번만 다닌다는 진동2리(설피마을) 행 첫 버스를 타야만 점봉산 등반을 마치고 귀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저 산이 좋아 장거리 산행을 혼자서 다니자니 교통편과 숙박이 늘 문제다. 내 나름대로 심신을 다지기 위해 고달픔을 사서하는 등반 여행이다. 버스나 열차에서 때로는 길거리에 앉아 끼니를 때우고 찜질방에서 자는데 이력이 붙어있으나 오늘 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마트에 들려 이곳에 찜질방이 있느냐고 물었다. 현리 근방에는 없지만 여기서 5킬로쯤 더 들어가면 방태산 입구의 사동이라는 휴양지에 있다는 것이다. 밤인데다 길이 멀고 외진 곳이라서 택시를 타고 가야 될 것이라고 일려준 말을 듣고 찜질방을 찾아 나섰다. 저녁을 홍천 터미널에서 토스트와 우유로 때웠기에 군대식 야간행군으로 1시간 여 만에 도착하여 내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으로 사워를 하고 편하게 잘 잤다.
아침 5시에 일어나 밖으로 나와 보니 바로 앞에 냇물이 흐르고 있다. 물가에서 도시락 한 개를 꺼내 아침을 먹고 후식으로 사과 한 개와 포도를 좀 먹으니 아침식사가 된 것 같다. 현리에서 아침 6시 20분에 출발한 버스를 기다려 탔다. 점봉산 곰배령을 찾아가는 버스길도 상당한 인내를 요구하는 트레킹 코스로 보였다. 산천어가 서식하는 본 고장으로 레프팅으로도 유명한 내린천의 풍광이 좋아 보인다.
종점에서 3킬로를 더 걸어 들어가야 점봉산 곰배령 생태관리센터가 나온 다는 말을 듣고 부지런히 걸어 8시 전에 도착했다.
관리세터 앞을 통과하려고 하니 직원들이 안 된다고 막는다. 8시30분이 되면 예약된 명단에 있는 사람만 입산을 시킨다는 것이다. 나는 예약제도가 있는 줄 모르고 어제 수원에서 와 사동에서 자고 일찍 왔는데 어떻게 등반을 할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한분이 이곳은 그런 사정을 봐드려서는 안 되는 곳이라고 한다.
처음 당해보는 일이라 그냥 돌아갈 수가 없어 데스크에 앉아 있는 국립공원직원을 찾아 다시 한 번 사정을 했다. 마침 읽으려고 가지고 온 한국수필 8월호를 꺼내들고 인사를 하며 “제가 등반을 하며 글을 쓰는 작가입니다. 마침 <그라나다의 아람브라>라는 제 글이 여기에 실렸는데 보시고 제가 점봉산 곰배령을 등반하고 기행문을 쓰도록 허락해주셨으면 합니다.“라며 책을 내밀었다. 여자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책임자가 나오면 말씀을 드려 보겠다. 라는 것이다. 내 입장을 지켜보던 다른 직원이 커피를 타다주어 마시는 중에 예약자들이 줄을 서고 있다. 잠시 후 글을 쓰는 작가시라서 특별히 허락하는 케이스라며 신분증을 확인하고 기재 란에 서명케 한 후에 노란색 출입증을 가슴에 달아주었다.
대단한 곳에 왔다는 생각 때문에 얼마 전에 다녀온 스페인 그라나다의 아람브라를 떠올리게 됐다.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교도들이 스페인을 지배하던 말기에 나자르Nazaries 왕조가 그라나다왕국을(1232-1492) 통치하면서 지은 궁전이다. 아람브라궁전이 대단히 아름답고 문화적 가치가 중요해 훼손을 방지하려고 하루에 두 차례만 인원을 제한해서 입장시키고 있었다. 오늘 내가 특별하게 등반을 허락받은 점봉산 곰배령은 아람브라궁전보다 보전의 가치가 더 있는 것 같아 황송한 마음이다.
천상의 화원으로 불리는 곰배령은 곰이 배를 하늘로 향해 벌렁 재끼고 누어있는 모습 같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곰배령을 품고 있는 점봉산 전체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생물권 보존지역이라는 것도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이곳에는 희귀야생화와 산야초, 산채류 등이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어 1987년부터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 고시하여 년 중 입산을 통제 관리하고 있다.
점봉산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져 곰배령 정상까지만 탐방로가 개설 되었다.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내 산림상태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예약자들이 입산하기 전에 관리직원들이 요소요소에 배치되고 있는 것 같다. 생태관리센터에서 비포장으로 차량이 다닐 수 있는 강성마을까지도 밀림 속 같은 분위기에 새들이 이리저리 날고 계곡물이 굽이굽이 흐르고 있어 천상의 화원처럼 이었다. 계속해서 물이 흐르는 숲길을 걸어 곰배령 정상에 올랐다가 지정된 다른 길로 내려왔다.
전국을 두루 다녀 보았지만 이만하니까 철저하게 예약제로 입산을 시키는 구나라는 것을 알고 이런 곳이 더 생겼으면 한다. 미천한 작가를 선대한 생태관리센터 직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고 설피마을을 떠났다. 2016년 8월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