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 2014 가을호 신작시
감자꽃 타령 외 1편
김석환
한 번은 꼭 피어야겠다
피자마자 낫날에 참수 당해
햇살에 시들어 마를지라도
아린 속살 썩히고 썩혀
자줏빛 향기 피워 올려야겠다
잠시 눈감으면 굴러 떨어질
가파른 비탈배기 화전
패망한 부족의 실록처럼
거친 이랑에 뿌리 내린 비천함
달래 주던 종달새도 오지 않고
깃털만 흩날리는 허공으로
꽃대를 밀어 올려야겠다
황토 빛 어둠을 먹고 토해내며
밤 지새우는 지렁이 읍소에
급히 쏟아져 내려오던 별똥별
그 짧은 응답 잎 그늘에
알알이 새겨 감춰 두고
찬 이슬에 목을 씻어야겠다
산노루 제 똥을 묻고 떠난 협곡
풀벌레 풍악도 지쳐 가고
멧돼지 일가 제 집을 찾는데
홀로 깨어나 하얗게 웃어야겠다
느낌표처럼 유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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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배미 하오
빠른 박자 유행가 가락을 싣고 와
솔향기만 태우고 되돌아가는 마을버스
종점, 군사보호지역으로 잠입한 비둘기
텃밭에 심은 옥수수 씨앗으로
허기를 채우고는 울음을 묻는다
진달래 개나리 피었다가 이미 지고
울타리 밑에 모여 앉은
은방울꽃 매발톱꽃 초롱꽃 할미꽃
마지막 파수꾼들이 둔배미
옛 이름을 지키고 있다
까치도 오지 않는 둥지를 안고
하늘을 떠받치느라 등 굽은 느티나무
짙은 그늘 아래 노인네 몇
수락산 산정 넘어오는 먹구름 헤아리며
내일 날씨를 점치고 있다
천수답 물꼬를 막아 하늘 모셔 놓고
뒷산 조상님네 산소에 제물 차리던
종가 맏며느리 두터운 손
다 닳은 손톱만한 낮달
이동통신 기지국 안테나에 걸려 졸다가
성큼 발길을 서두르는 늦은 하오
급히 누가 동구로 들어서는가
귀 밝은 개들이 짖는다
구덩이에 묻힌 호박씨 숨을 죽인
둔배미 고요를 깨며
*둔배미 : 경기도 의정부시 신곡동에 있는 자연부락으로 ‘발곡’이라고도 함
김석환_1981년 충청일보 신춘문예 당선, 1986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어느 클라리넷 주자의 오후』, 『어둠의 얼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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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꽃 타령 외 1편 / 김석환
이종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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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0.10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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