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21.(금) 밤9시-10시 금요기도회 - 신현태 목사 -
기쁨의 영성!!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리라 (벧전1;6-9, 빌3;3, 빌4;4)
♬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오주님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님 앞에서 멀리하지 마시고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마옵소서 그 구원의 기쁨 다시 회복시키시며 변치 않는 맘 내 안에 주소서 ♬
♬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 기뻐하시리라.
(습3;17)
♬ 기뻐하며 왕께 노래부르리 소리높여 할렐루야 부르리 주님앞에 나와 찬양드리며 우리주님과 함께 기뻐하리라. 나의창조자 나의구원자 가장귀한 나의예수님 나의창조자 나의구원자 나의치료자 나의선한목자 되신주. 예수 나의 주 찬양하리 ♬
♬ 예수 나의 기쁨 아--멘.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아--멘 아멘.. 아멘.. ♬
♬ 예수는 나의 힘이여 내 기쁨 되시니 그 명령을 준행하여 늘 충성하리라.
주야로 보호하시며 바른 길 가게 하시니 의지하고 따라갈 이 주 예수
한없는 복을 주시고 영원한 기쁨 주시니 나의 생명 나의 기쁨 주 예수 ♬ (찬송 93장)
♬ 갈길을 밝히 보이시니 주 앞에 빨리 나갑시다. 우리를 찾는 구주예수 곧 오라 하시네
죄악 벗은 우리 영혼은 기뻐 뛰며 주를 보겠네 하늘에 계신 주 예수를 영원히 섬기리 ♬ (524장)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은 기쁨의 삶이다. 기쁨의 영성!! (기쁨의 삶, 감사의 삶, 기도의 삶, 살전5;16-18)
오늘 이 순간 나에게 이 기쁨이 있는가? 없다면 무엇 때문일까? 기쁨이 있다면 무엇 때문일까?
(벧전1;8) 오늘 성경에 주님을 사랑할 때....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한다고 한다.
예수님을 직접 보지는 못해도 마음으로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한다고 한다.
여러 가지 시험으로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우리 육신이 연약하여) 그러나 곧 즉시
오히려 크게 기뻐한다고 한다. (벧전1;6) => 구원의 기쁨, 하나님이 목자됨의 기쁨(시23;1)
아아.. 주님이 이미 나에게 주신 이 놀라운 기쁨의 은사가 내 속에 불일 듯 일어 나기를...
기뻐서 어쩔줄 모르는 황홀한 감정으로 전인격적 고백으로 주님께 깊이 기도하고 찬송하기를...
(빌3;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로 기뻐(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자로서
주님을 기뻐하고 내 마음에 그 기쁨의 생수가 터져 나오고 뿜어 나오길 원한다. (요한4;13-14)
For we are the circumcision, which worship God in the spirit, and rejoice in Christ Jesus, and have no confidence in the flesh. (KJV. 빌3;3) ==> 기쁨을 빼앗아 가는 사단에게 속지 말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4;4)
Rejoice in the Lord alway: and again I say, Rejoice. (빌4;4)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빌4;1) ==> 우리는 서로에게 기쁨이 된다. 서로에게 기쁨의 선물 보따리..
(벧전4;12-13)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습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롬5;1-4)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며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살전5;16) 항상 기뻐하라.
(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행16;25)한밤중의 기쁨찬양
(요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시4;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고후8;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살전2;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요한1서1;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 나의 존재는 기쁨 덩어리. 행복 덩어리. 소망 덩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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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나의 기쁨 2011. 10. 21. 고잔평강교회 심야기도회 말씀 (2)
나는 요한복음에 기록된 기쁨에 관한 구절들을 읽을 때는 늘
바흐가 1723년에 과부의 장례식을 위해서 작곡한 무반주 다성성악곡 '예수님, 나의 기쁨' 을 떠올린다.
바흐는 이 곡을 만들면서 1653년에 요한 프랑크(Johann Frank)가 작곡한 성가를 활용했다.
그 성가는 다음과 같다.
" 예수님, 나의 기쁨, 내 마음의 목장. / 예수님, 나의 장신구.
아 얼마나 더, 아 얼마나 더 / 나의 마음은 근심에 놓여 있어야 하고, / 당신을 그리워해야 하나!
하나님의 어린양, 나의 신랑. / 이 지상에서 당신보다 / 내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 없어야 하리라."
바흐는 이 곡을 무덤을 흙으로 덮기 전에 부르도록 했다. 죽음은 예수님이 당신의 말씀과 사랑으로 우리에게 선사한 영원한 삶으로 새로 태어나는 최종적인 과정이다. 바흐의 이 무반주 다성 악곡이 그 당시에나 지금에나 마찬가지로 청중들을 강하게 사로 잡는 힘을 가진 것은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이 지상에서 영위하는 일상의 생활에서 오는 작은 기쁨들과는 다른 기쁨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완전히 다른 종류의 기쁨이 존재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근본적인 바탕인 기쁨, 죽음을 통과해서도 존재하는 기쁨이 있어야 한다.
우리 기쁨의 참된 근원에 대해서는 교회의 성가대들도 많이 노래했는데, 특히 지난 30년 전쟁시기에
유래한 성가에 이런 노래가 많다. 기쁨이 사람을 치유하는 데 특별히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1646년에 크리스티안 카이만(Christian Keimann)이 작곡한 성가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 너희 그리스도인들아, 모두 기뻐하여라! /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기뻐하여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행하셨다. / 큰 소리로 기뻐하여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매우 존중하시고, / 당신을 우리의 친구로 만드셨다.
기쁨, 기쁨에 더한 기쁨! / 그리스도는 모든 고통을 제거하신다.
환희 , 환희에 더한 환희! / 그리스도는 은총의 태양."
내게는 마음의 기도(Herzens Gebet)가 예수님을 나의 기쁨으로 예감하는 길이고,
이따금 기쁨을 체험하기도 하는 길이다. 나는 그리스도 이콘(Christusikone) 앞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고
"하나님의 아드님이시고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라는 예수 기도를 바치면서, 예수님이 어떻게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계시며 기쁨이 어떻게 그와 함께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지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내 안에 예수님과 함께 기쁨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 기쁨은 아무도 나에게서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매일 아침, 묵상할 때마다 나는 기쁨의 한 원천과 접한다.
이 기쁨은 일상생활의 갈등으로 부서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앞에서 느끼는 고요한 기쁨
왜냐하면 이 기쁨은 매우 깊은 곳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쁨은 황홀하게 다가오는 그런 것이 아니라 매우 고요한 기쁨이다.
이러한 기쁨 속에서는 내가 무엇을 기뻐하고 있는지 말할 수도 없다. 단순히 기쁨에 대한 체험일 뿐이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살고 계신 공간은 동시에 기쁨의 공간이기도 하다.
기쁨은 이 공간을 채우는 질적인 것(Qualita"t)이다.
그것은 경쾌함과 넓음, 유쾌함과 평화, 성스러움과 일치 같은 질적인 것이다.
묵상을 한 후 예배를 드리러 가면, 필자는 이 기쁨의 공간을 내 안에 가지고 있는 것을 느끼며,
동시에 이 기쁨을 일상의 대화들과 만남들 안으로 이끌어 들이는 것이 나의 과제임을 느낀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내 안에 있는 이 기쁨을 잘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도 느낀다.
왜냐하면 이 기쁨은 이러저러한 작은 불편에 대한 짜증으로 쉽게 덮여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기쁨은 삶 안에 개입해 들어오는 여러 종류의 실망이 풍기는 쓴맛 안으로 매우 쉽게 스며들어가 버린다.
기쁨은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일상의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중에, 그리고 상담을 하는 중에 쉽게 전달받는
부정적인 정서들 아래로 기쁨이 눌려 들어가서 질식되지 않도록 내 기쁨을 보호해야 한다.
나는 상담을 하는 중에 전달받아 내 안에 자리 잡게 된 짜증과 억압이 내 안에 들어 있는 기쁨과
서로 세력다툼을 벌이는 것을 종종 느낀다.
내가 나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오는 부정적인 느낌들에 사로 잡히도록 허락할 것인가?
아니면 내 안에 있는 기쁨을 지켜 내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성공적으로 전달할 것인가?
“ 주여! 기쁨의 영성으로 승리하며 살게 하소서!
근심과 짜증을 주는 덫은 예수님 이름으로 물러갈 찌어다! ”
「다시찾은 기쁨」안셀름 그륀 지음 / 전헌호 옮김 / 성바오로 펴냄.. 글 중에서..
말 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을 누리라 -201.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