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성범죄 친고죄 전면 폐지안이 2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로써 지난 20년간 성폭력 피해자에게 고통을 주고 책임을 전가한 친고죄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국회는 22일 오후 본회의를 열어 성범죄 친고죄 폐지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성폭력 관련 법률안 5건을 모두 가결 처리했다. ‘성폭력범죄 처벌특례법 개정안’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개정안’ ‘특정범죄자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법 개정안’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법 개정안’ ‘성폭력범죄자 성충동 약물치료법 개정안’ 등이다.
이에 따라 피해자가 고소해야만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 조항과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도록 하는 반의사불벌죄 조항은 폐지됐다. 친고죄 조항의 경우 처벌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떠넘겨 합의를 강요하는 등 피해자의 고통을 유발했다. 특히 국내 성범죄 신고율이 10% 안팎에 머무르는 데도 친고죄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그러나 이번에 통과된 조항 중 상당수가 처벌 강화에 집중돼 있다는 지적이 있다. 조항을 살펴보면, 성충동 약물치료 확대, 전자발찌 부착 대상에 강도죄까지 확대, 성범죄 신상공개 3년 소급 적용 등도 포함됐다. 성충동 약물치료, 일명 화학적 거세의 경우 현행 16세 미만 대상 성범죄자에만 적용되던 것을 확대해 피해자의 나이와 상관없이 적용하도록 했다.
이에 여성계는 “친고죄 폐지는 성범죄의 신고율과 기소율을 높이는 큰 전환점이 될 것이며 앞으로 피해자의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비들을 세밀하게 갖추고 잘 시행해야 한다”며 환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엄벌주의 도입에 대해 큰 우려를 표했다. 이날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성폭력상담소, 인권운동사랑방 등 여성·인권 단체들은 국회 법사위 소속 의원들을 찾아가 처벌 일변도의 법안 개정을 보류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지만 결국 묵살됐다.
백미순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강화 법안은 성폭력 피해자는 물론 전 국민의 인권과 관련된 중요한 사안으로 범죄 예방의 실효성과 비용의 효율성 측면, 인권적 측면에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데도 의견 수렴 없이 졸속으로 법안이 통과됐다”며 “엄벌주의 도입으로 사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성폭력 예방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