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시인이 쓴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시의 전부로 시가 짧다는 게 특징이다.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소설도 있다. 작가 임철우씨가 할머니의 사망소식을 듣고 다시 찾아간 고향 섬 그곳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적어놓은 이야기다.
특히 섬 태생인 소설가가 오래전부터 써보고 싶었던 사랑 이야기, 즉 섬의 밤하늘에 초롱초롱 피어난 별자리들을 올려다보며 꾸어왔던 어린 시절의 꿈같은 맑은 사랑 이야기로, 말하자면 추억담을 소재로 한 것이다.
필자가 공직에 근무하는 동안 전국의 도서(島嶼)나 오지(奧地), 관광지와 온천지역 등 낙후지역과 특수지역에 대한 지원 업무를 맡아온 터라 지역개발 지원을 위해 숱하게 지방을 다녔고 그 중에서 섬과 관련된 사연들이 가장 많이 떠오른다.
우리나라는 섬이 많다. 전국 3천여개의 섬들이 바다위에 군락을 이루고 떠 있다. 이 가운데 480여개의 섬에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유인도서(有人島嶼)다. 나는 중앙행정기관 근무시절에 도서업무를 담당해본 관계로 유인도에는 거의 가보았고 섬사람들의 고충을 많이 알고 있다.
대부분의 섬은 주민생활시설이 열악하다. 정부에서 1986년에 도서개발촉진법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지원한 결과로 5인 미만 거주하는 작은 섬을 제외하고서는 도로, 선착장, 공동작업장 등 기본적인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그래도 육지에 비해서는 여러 가지가 뒤떨어진다.
서해 맨 위쪽에 자리한 백령도의 노을 진 저녁풍경이 무척 아름답다. 홍도 앞바다의 바위사이 괴석은 신선들의 놀이터 같고, 흑산도 일주도로 언덕위에 세워진 흑산도아가씨 노래비는 왠지 모르게 쓸쓸한 느낌을 준다. 신안 사도(砂島)의 모래성 언덕길을 내려올 때에 또는 여수 사도의 용꼬리 바위에서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노라면 가슴속이 후련하다.
제주 마라도를 멋진 관광지로 만들기 위해 현장을 확인하며 시설물을 점검하던 일로 분주하던 때, 제주 비양도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풍랑을 만났던 일, 추자도 부둣가 가까운 뒷산에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공원 쉼터, 그 위에서 사방을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은 바다뿐이었으니 섬사람을 위해 일하고 그들이 염원하는 바를 이루게 하려는 작은 노력들은 힘들지 않았고 필자에겐 보람이었다.
그 많은 섬들을 다니면서 섬마을에 찍어놓았던 어지러운 발자취인양 숱한 추억 가운데 필자는 전남 고흥군 거금도와 장흥군 노력도 주민들의 따뜻한 눈빛들을 잊지 못한다. 육지의 낙후오지 사람들에게 교통이 가장 문제이듯 섬사람들에게도 비포장도로거나 도로 폭이 좁으면 활동시간이 오래 걸리고 일상생활이 불편하여 고생이 심하다.
그래서 몇해 동안 도서예산 가운데 전남도가 도서개발실적평가에서 1위를 하여 받는 상사업비만큼 예산을 지원한 일이 있었다. 일주도로가 없어 그동안 불편했던 거금도와 노력도 주민들이 도로가 개통되던 날, 초청장이 왔기에 출장겸하여 그곳으로 가서 주민들과 함께 행사하며 즐거워하던 보람의 한때도 이젠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완도의 청산도나 보길도 아래 펼쳐진 자연은 아름답기 그지없고 그 속에서 주민들이 행여 불편해하는 것들이 없을까 찾아봤는데 보길도가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로 워낙 유명한 곳이라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관계로 주차장이 비좁다 하여 개선해주기로 했는데 토지소유자가 턱없이 비싼 가격을 불러 추진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울릉도가 비록 큰 섬이라 하지만 주택지가 협소하고 도로사정이 나빠 주민들이 겪는 불편이 많다. 육지 사람들이 울릉도를 찾으면 볼거리가 없다고 하지만 울릉도 땅을 한번 밟아보는 곳이 바로 관광의 재미고 여행의 매력이 아니겠는가? 동해안의 울릉도 언덕에 올라 바다를 한번 바라보라. 탁 트인 경관은 마음을 한없이 편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전국 섬을 다니다보면 육지에서 맛보지 못한 느낌을 받는다. 자연과 함께 있으면서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적다보니 퍽 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었는데 섬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였다. 출장 가서 하루 이틀정도 섬에서 지내보면 낮엔 업무로 인해 그렇다 치더라도 밤이 되어 고요한 밤하늘에서 별이 그대로 쏟아져 내리는 아름답고도 쓸쓸한 풍경들을 보면 왠지 적막하게 느껴지고 마음 한구석이 휑하다.
그래도 섬을 다니면서 섬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뛴 흔적들은 군데군데에, 또는 섬사람들의 가슴 속에 희미하게라도 남아 있으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흐뭇하다. 척박하고 힘든 터전이긴 하지만 눈빛 고운 사람들이 자연과 더불어 열심히 땀 흘리며 살아가는 곳, 그 곳이 바로 섬이다.
바다 위에 한 점 혹은 몇 점씩 떠 있는 섬은 외로움을 앓는다. 섬은 나룻배처럼 떠다니지도 않은 채 오직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저 홀로 꿈을 키운다. 낮에는 파도소리가 외로움을 덜어주고 밤에는 별들의 속삭임을 희망으로 새기며 섬사람들은 오늘도 어렴풋한 꿈을 꾼다.
섬을 생각하다보면 이제껏 기억에 남아 또렷한 것은 도서개발사업 덕분에 섬 주민들이 불편을 겪던 일주도로가 개통되어서 너무 기쁘고 섬의 최대경사라며 웃음 짓던 거금도나 노력도 주민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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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라곤(시인. 전 봉화부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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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습이다. 그 인정 넘치고 성실한 사람들이 다시금 보고 싶어진다.
<필자 소개> 정라곤(鄭羅坤)
▲ 1950년 경북 영덕군 영덕읍 남석3리 출생 ▲ 단국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행정학석사), 영남대학교 대학원 지역개발학과 박사학위과정 중퇴 ▲ 1979 내무부 기획과․지역지도과․특수지역과 등 근무 ▲ 1998 행정자치부 지역개발과․지역진흥과 지역진흥담당 서기관 ▲ 경북 봉화군 부군수 역임 ▲ 녹조근정훈장(2000년), 대통령표창(2회), 내무부장관 표창(2회) ▲ 제1기 지역혁신 최고위과정 우수리더상(2003년) 수상 ▲ 1984 매일신문 신춘문예(시)로 문단 데뷔, 한국시인협회 회원, ▲ 시집「꽃의 이름으로」(1989), 저서「희망의 지방화시대를 열자」(2004) ▲ 울진타임즈 『정라곤의 느티나무』칼럼 연재중 (260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