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보면 여행은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길이다. 지난 여행의 추억은 아름답게 편집돼가슴에 남는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여정은 더욱 그렇다.
행복한 색깔이 칠해지고 군더더기는 희미해진다. 거꾸로, 드라마는 여행을 유혹한다.드라마와 같은 추억을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배경이 된 곳이 인기 여행지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KBS 드라마 ‘겨울연가’의배경이 된 남이섬.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따스한 사랑노래가 흐르고 있다.
배는 차가운 물을 가르고 나아간다. 맹추위가 계속됐다면 꽁꽁 얼었을 호수. 그러나겨울의 한가운데에 있는데 살얼음조차 얼지 않았다. 방학을 즐기는 여고생들, 그리고 왠지 슬픈 표정을 짓는 두 연인. 100여 명은 족히 태울 수있는 배는 달랑 10명의 승객만 싣고 출발했다. 육지에서 섬까지의 거리는 약 400㎙. 5분이면 충분하다.
선착장에서 내려 오른쪽 길로 접어들었다. 안내도에는 ‘캠프촌’이라쓰여있다. 축구장의 10배는 됨직한 너른 잔디밭이 펼쳐진다. 여름에는 오색의 텐트가 촘촘히 들어서는 곳. 지금은단 한 개의 텐트도 없다. 누렇게 시든 잔디만 겨울 햇살을 받고 있다.
툭 터진 공간은 마구 달리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다. 아니나 다를까. 한쌍의 연인이 넓은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한다. 뛰다가 넘어지고, 한참을 껴안고 있다가 다시 일어나 뛴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잔디밭을 메운다.
캠프촌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왼쪽으로 꺾어진다. 바닥의 잔디만 응시하던 시선이자꾸 하늘로 올라간다. 하늘을 찌를 듯한 포플러나무가 2열 종대로 도열해 있다. 모든 잎을 털어낸 벌거벗음 그 자체이다. 그 사이로 길게 길이나 있다. ‘겨울연가’에서 봤던 모습이다.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핸들을잡은 사람은 교복차림의 남학생(배용준)이고 뒤에 탄 여학생(최지우)은 두 팔을 벌리고 웃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지는 않았지만 남녀가 길을 간다. 거대한 나무의 둥치가 신기한지 남자는엷은 미소를, 여자는 함박웃음을 짓는다. 길을 가로지르는 것이 있다. 사슴이다. 사슴은 길 가운데에서 잠시 섰다. 지나간 연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다시 길을 간다.
포플러길이 끝나는 곳에서 색다른 길을 만난다. 철길이다. 섬을 가로로 횡단하는미니열차가 다니는 길이다. 봄에서 가을까지는 운행하지만 지금은 열차가 다니지 않는다. 어린아이 팔뚝 굵기의 가느다란 선로가 나란히 놓여있다. 한쌍이 선로 위를 걷는다. 선로의 폭은 팔짱을 끼고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남자는 그런대로 걷는데 여자는 자꾸 선로를 벗어난다. 높은 신발굽 때문에그런가 보다.
남이섬은 원래 섬이 아니었다. 작은 봉우리였다. 1940년대 청평댐이 건설되면서주변이 물에 잠기고 봉우리는 섬이 되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 춘천시 남산면 방하리에 속해있고 길은 경기 가평군으로 통한다.
둘레가 약 6㎞로작은 섬이지만 1960년대부터 나들이터로 이름을 떨쳤다. 남이섬의 원래 주인은 섬 이름이기도 한 조선의 남이(南怡ㆍ1441-1468)장군. 그가유배를 당해 기거했던 곳이자 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17세에 무과에 장원급제하고 이시애의 반란을 평정한 남이 장군은 27세에 병조판서가 된기린아였다. 왕가의 인척이란 이유로 유자광의 모함을 사 28세에 처형당한 안타까운 역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남이섬이 매스컴의 무대가 된 것은 ‘겨울연가’가처음이 아니다. 수 많은 가수를 배출한 ‘강변가요제’의 무대였다. 최인호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겨울나그네’도 이 곳에서 촬영했다. 당시 대학교정을 자욱하게 물들이던최루탄만큼이나 눈물을 자극했던 영화이다. 영화가 아니더라도 1970~198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 섬에서 밤새 술에 취해울분에 찬 노래를 부른 기억이 있을 터이다.
너무 많이 알려져서일까. 섬은 한때 위기를 맞았었다. 소비문화가 판을 치는 위락관광지가될 뻔했다. 지난해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친환경적인 문화의 공간으로 되돌아가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 많이 바뀌었다. 트로트 리듬에 맞춰단체로 춤을 추는 관광객의 모습은 이제 볼 수 없다. ‘연가’에어울리는 향기로운 섬이 되어가고 있다. 특히 방문객이 10분의 1로 줄어드는 겨울에는 더욱 그렇다. 너른 무대,둘 만의 드라마를 만들 수 있다.
남이섬 가는 길, 쉴 곳,먹을 것
가는 길
가는 길은 간단하다. 46번 국도를 타고 구리시-남양주시-대성리를 거치면 쉽게가평읍에 닿는다. 가평읍 5거리에서 우회전, 363번 지방도로를 잠시 달리면 왼쪽으로 남이섬 입구 간판이 보인다. 좌회전해 약 2분 진행하면 선착장이다.
열차는 경춘선을 이용하면 된다. 성북역에서 하루 17차례 출발한다. 가평역에서 내린다. 가평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남이섬행 버스가 하루 10회 운행한다.상봉터미널이나 동서울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춘천행 버스를 타면 가평에서 내릴 수 있다. 선착장과 섬을 잇는 배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수시로운행한다. 입장료와 도선료 포함 5,000원이다. ㈜남이섬 (031)582-2181~5, 서울사무소 (02)753-1245~8
쉴 곳
섬 안에 호텔(남이섬호텔)이 있다. 섬에서 숙박을 한다면 아침 안개 등 섬마을의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다. 평일은 4만 5,000원, 성수기와 주말은 5만 5,000원을 받는다. 주말과 성수기에는 예약이 필수. 섬 바깥에는숙박시설이 무진장이다.
선착장 입구에 리버플파크모텔(031-582-2127), 파라다이스모텔(582-5670) 등이 있다. 민박을 이용하는 것도좋다. 콘도급 시설을 자랑한다. 콘도장민박(582-2739), 강변민박(582-5664), 경춘민박(582-5372), 남이민박(582-3422),평원민박(582-2651) 등이 선착장 인근에 있다.
먹을 것
가평군의 특산물은 잣. 불포화 지방산이 많아 각종 성인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한다. 가평군 산림조합(031-582-2207)에서 판매한다. 잣을 이용한 잣죽과 잣막걸리도 생산한다.
잣죽은 가평 농특산물 영농조합(582-8968),잣막걸리는 가평 명주술도가(582-2360)에서 생산ㆍ판매한다. 잣막걸리는 유사품이 많다. ‘가평 탁주 합동제조장’ 또는 ‘가평 명주 474’라는표시가 있는지 꼭 확인해야 한다. 입이 짧은 사람도 가평에서는 먹거리 걱정이 필요 없다. 민물 매운탕에서부터 각종고기집까지 없는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