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松江 축제에서 똑딱이 카메라로 찍은 사진으로 장면 포착이 만족스러웠다. 다다미 묶음이 단칼에, 사람 목을 대신 한 것이다.
소운의 放談(수파리守破離에 대한 小考) 생활스포츠 지도자1급(검도) 소운/박목철
검도용어에 수파리란 말이 있다. 검도에서는 선(禪)에서 유래한 말들을 많이 쓰는데 지금이야 스포츠화
되었지만, 원래는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련하던 생존을 위한 수단이 검도를 배우는 목적이었다.
한순간에 목숨이 오가는 살벌한 검을 다루는 만큼 정신세계를 통하여 두려움을 다스리려는 흔적이 용어에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것이 검도이다. 잔심(棧心)이라 든지, 不動心 등 모두 마음을 다스리려는 흔적들이다.
한때 유도에 입문하여 수련하다 검도에 심취하여 퇴직 후 잠시 검도장을 운영할 만큼 검도에 빠졌었다.
누구에게 머리 숙일 일 없이 취미 삼아 해보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으나, 협회가 관청 못지않은 상전 노릇
을하고, 생각과는 달리 실망스러운 일들이 많아 권리금을 포기하고미련 없이 도장을 접었다.
그건 틀렸어!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운동을 가르치는 분들은 자신이 배운 것을 진리라고 믿는 경향이 심하다.
서슴지 않고 그건 틀렸다는 지적을 하는 것을 보고 저건 아닌데 하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었다.
세상에 맞고 틀리고는 그렇게 많지 않다. 지구가 둥글다거나 사람은 태어나면 죽는다. 정도가 진리이지
대부분 그렇게 하는 것이 지금까지 알고 있는 방법 중에서 가장 나은 방법이라는 통계학의 범주 이상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에게 틀렸다는 지적을 노골적으로 받으면 기분이 상하게 마련이다. 특히 성인들 간의 지적은
싱대를 배려하는 조심성이 바탕에 깔려야 하고, 지적하는 사람은 자신 있게 말할 사항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지금까지 해오던 방법보다 더 나은 방법이 나온다면 하루아침에 전에 하던 방법은 폐기 처분되고 만다.
모 운동선수가 골프에 입문하여 자신이 하던 운동 동작(하키?)으로 우승을 여러 번 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정통 골퍼들이 보면 "샷 동작이 틀렸어" 라거나 "기본이 안 돼 있네"라고 웃겠지만 골프의 목적은 공을 홀에 넣는
것이지 어떻게 샷 하느냐가 목적이 아니다. 단지 지금까지 개발된 동작 중 가장 나은 방법을 가르치고 있지만
더 나은 방법이 나온다면 새로운 방법이 기준이 될 것이고 전에 방법은 잊힐 것이다.
검도 용어 수파리(지킬守, 깰破, 떠날離)를 얘기한다는 것이 서론이 길어졌다.
먼저 守란, 새로운 분야에 처음 입문한 사람은 수행을 위한 기준을 주지 않으면 헤매게 마련이다.
지도자는 가장 효과가 좋다고 알려진 방법에 따라 가르치고, 초보자는 그 방법에 따라 수련하게 된다.
그런 기준을 제시하지 않으면 배우는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하게 마련이다.
이런 시행착오를 겪은 여러 사례가 반영되고 개선된 방법을 적용한 것이 수련 지침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다음 단계가 破의 단계이다. 어느 정도 숙달이 되고 나면 배운 방법에만 매달리면 더 발전이 없다.
새로운 도전으로 기존의 틀을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마 파의 단계가 없다면 세상의 모든 이치는 늘
제자리에 머물 것이고 발전이 없을 것이다. 지금은 파의 속도가 정말 빠르다.
어제의 일은 과거일 정도로 변화의 속도가 빨라 나이 든 분들은 적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든 게 발전하고 있고,
과감하고 상식을 뛰어넘는 파가 미래를 보장하는 세상이 되었다고 한다.
마지막 단계가 離이다. 새로운 시도가 일정한 형태로 다듬어져 예전 방법과는 구별되게 자리 잡았다면,
새로운 류의 창시가 되어 많은 이들이 따르게 되고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게 된다.
지금까지 모든 분야에 걸쳐 다 이런 과정을 거쳐 개선되고 분화하고 새로운 유형이 탄생하고 발전한 것이다.
수파리의 과정을 이해했다면, "그건 틀렸어"라고 남을 지적하는 오만도 망설여질 것이고,
"지금까지 알려진 방법으로는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라고 공손하게 조언하게 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이치 중 수파리의 원칙을 벗어난 것은 없다.
예술도 기술도 스포츠도 수파리의 원칙에서 예외는 아니다.
소운이 문학인이니 시를 예로 들어보면, 시에서 말하는 시의 형식은 후세에 갖다 붙인 것이지 시를 처음
쓴 분들이 그 형식에 맞춰서 쓴 것도 아니고, 그런 형식에 맞지 않는다고 틀렸다는 지적은 피해야 할 일이다.
주변을 살펴보면 守 단계의 수련생도 있지만, 이미 破 단계나 離 단계까지 가신 분들도 많이 보인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 수단계에 충실히 따른 분이 파나 이의 단계에 빨리 도달한다는 사실은 주목해야 힌다.
손바닥이 까지고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도록 죽도를 휘둘러도 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검도에서
절실히 느꼈기에 감히 드리는 말씀이다.
(두 달여에 걸친 눈 재건 프로젝트가 이번 토요일 점검을 끝으로 별다른 일이 없다면 끝날 것입니다.
자판과 모니터의 글씨가 흐릿해 받던 스트레스도 가셨습니다. 눈에 렌즈가 들어가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