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산행 에세이】
다람쥐보다 빠른 ‘맨발 운동가’를 만나다
- 산중에서 만난 어느 60대 전직 공무원의 건강한 체력
윤승원 수필가,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맨발 걷기 운동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특징적인 모습이 있다. ‘과감형’과 ‘소심형’이다. 과감형은 집에서부터 아예 맨발로 나선다.
가까운 거리의 뒷산이니, 신발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아니 신발은 배낭에 넣었는지 모르지만, 맨발 차림으로 나서 시멘트와 아스팔트 도로를 거쳐 산에 오른다.
나는 ‘소심형’이다. 소심형은 다른 말로 하면 ‘안전형’이다. 발을 보호하려면 도로의 아스팔트나 시멘트 바닥처럼 거친 바닥은 피해 황토나 마사토의 생땅을 찾아 디뎌야 한다.
발에 자칫 상처라도 난다면 그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오늘도 나는 신발을 신고 뒷산 입구까지 왔다. 일상화한 산책 코스다.
그런데 앞서가는 60대 남성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집에서부터 맨발로 나섰는지 B 대학교 아스팔트 도로를 지나 도솔산에 오르는데 속도가 빨라 뒤따를 수가 없다.
▲ 어느 60대 전직 공무원의 맨발 산행 - 걸음 속도가 빨라 뒤따르기 어렵다.(사진= 필자 윤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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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과장이 아니라 이럴 땐 크게 과장된 표현이라야 현장감 살아난다. “다람쥐” 그렇다. 아니 그보다 빠른 “청설모 같다.”라는 표현이 합당하다.
나도 어느덧 맨발 걷기 이력이 3년째다. ‘맨발’에 관해서는 웬만큼 상식과 요령을 터득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나의 체력을 능가했다.
<맨발 운동가>라는 말이 공식적인 이름으로 쓰이는 것을 본 적은 없지만, 그에게 딱 어울리는 호칭이라고 생각한다.
저만큼 앞서가는 그를 따르자니 늦더위에 숨이 턱턱 막힌다. ‘맨발 동지’라는 반가움으로 동행하고 싶었지만,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워낙 빨리 걷는 바람에 뒤따라가 발을 맞추기 어렵다.
이럴 땐 방법이 있다. 말을 건네는 것이다.
“아이고, 선생님, 대단한 체력이시네요. 맨발이라는 좋은 운동을 하셔서 그런지 걸음 속도가 무척 빠르시네요. 몇 년이나 맨발운동을 하셨는지요?”
그러자 그는 비로소 발걸음을 멈추고 우뚝 서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제 발걸음이 좀 빠른가요? 습관이 돼서 그런가 봐요. 저는 맨발 걷기 3년째입니다.”
▲ 앞서가는 걸음걸이가 빠른 '맨발 운동가'에게 필자가 말을 건넸다. (사진= 필자 윤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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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 경력을 보면 그와 나는 이미 ‘동지’다. ‘동지의식’을 느끼는 것은 또 있었다. 인생경력이다. 말문이 트이니 그의 입에서 신상 정보까지 줄줄 나왔다.
"공직에서 퇴직한 지 10년 가까이 됐다"는 것. "건강관리 잘 해서 병원에 안 가는 것이 돈 버는 것"이라는 등 그의 지론도 나의 평소 생각과 같으니 우리는 ‘동지’가 아닌가.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맨발 걷기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라든지, 가족의 반응까지 나의 경우와 비슷하여 남다른 동지의식이 느껴졌다.
산길에서 우연히 말동무가 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직장에서 은퇴는 했지만, 아직 근로 의욕이 살아 있어 무언가 경제적인 활동을 해볼까 생각했는데 포기했다고 한다.
애초 태어날 때부터 약골로 태어나 잔병치레를 많이 하고 살았다고 한다. 지금도 이런저런 잔병으로 병원에 다니는 형편인데, 경제적인 활동을 한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라고 했다.
공감이 가는 대목도 있어 나도 맞장구를 쳤다. 이윽고 운동기구가 설치돼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가 철봉에 매달렸다.
순식간에 수십 번의 턱걸이를 했다. 내가 감탄했다. 약골로 태어나 잔병치레를 많이 하고 살았다는 그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철봉 운동을 자주 해서 그런지 보디빌딩 선수처럼 가슴이 불룩 나왔다. 체력 관리를 짱짱하게 잘하는 그를 보면서 ‘나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했다.
운동기구에 매달려 체력 운동을 끝내고 그는 또 맨발로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가는 방향이 달라 헤어지려고 하는데 그는 내게 깍듯이 인사했다.
“공직 선배님, 그럼 안녕히 가세요.”
▲ 산등성이를 빠르게 오르는 '맨발 운동가'의 뒷모습 (사진= 필자 윤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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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거침없이 산등성이를 오르는 그를 바라보면서 보통 사람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앞서 “다람쥐가 아닌 청설모와 같이 빠르다”라고 한 말이 결코 과장이나 실례되지 않는 표현이라고 여겨졌다.
마침 밤나무숲에서 청설모가 내려다보면서 크게 웃었다.
“그분 저랑 친구를 해도 좋겠어요. 하하하”
▲ 마침, 밤나무 숲에서 청설모가 내려다보고 있다가 크게 웃었다. (사진= 필자 윤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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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영상] 청설모가 우리는 함께 친구해도 좋겠다면서 크게 웃었다. (동영상= 필자 윤승원 2025.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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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특종의 순간을 내가 놓칠 리 없다. 스마트폰을 꺼내어 ‘순간 포착’ 동영상을 찍는데도 청설모는 달아나지 않고 웃고 있었다.
내 폰카에 잡힌 청설모의 웃는 모습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아, 즐거운 산행 풍경이여. 부러운 노년의 맨발 모습이여. 건강관리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부러움을 넘어 존경스럽다.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스러워 보이는 건강 체력의 ‘스승’을 또 한 분 산중 맨발 걷기에서 만난 셈이다. ♧
2025. 9. 14.
윤승원 산행記
▲ 필자의 맨발 산행 ※ 이 글도 맨발걷기하면서 스마트폰 노트로 현장에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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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평
윤승원 수필가의 신작 『다람쥐보다 빠른 ‘맨발 운동가’를 만나다』는 단순한 산행 체험기를 넘어, 노년의 건강과 삶의 태도를 유쾌하게 드러낸 수필입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문학적 장치로서의 비유와 의인화입니다.
주인공의 걸음을 “다람쥐” 혹은 “청설모”에 견주고, 심지어 청설모가 내려와 “하하하” 웃는 장면은 사실적 묘사와 환상적 상상이 절묘하게 뒤섞여 독자에게 웃음을 줍니다.
이는 전형적인 윤승원 수필의 특징, 즉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서 유머러스하게 긴장을 풀어내는 기법이 잘 드러난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글은 단순한 우연한 만남을 넘어 노년기 건강관리의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맨발 운동’이라는 단순하면서도 꾸준한 습관, 철봉 운동을 통한 근력 강화, “병원에 안 가는 것이 돈 버는 것”이라는 지론은 노후 건강의 본질을 함축합니다.
퇴직 후의 삶을 헛헛한 공백으로 두지 않고,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생활습관으로 채워나가는 모습은 사회적으로도 귀감이 됩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적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첫째, 노년의 건강은 특별한 비법이 아니라 꾸준한 습관과 작은 실천에서 비롯된다는 것.
둘째, 인생 후반기에는 경쟁보다 동행과 공감이 더 큰 가치임을 보여준다는 것.
글쓴이가 동지애를 느끼며 나누는 대화는 세대와 경험을 넘어서는 따뜻한 인간 교류의 의미를 일깨워 줍니다.
결국, 이 수필은 재미와 교육적 가치를 동시에 지닌 작품입니다. 다람쥐보다 빠른 맨발 운동가의 모습은 노년의 활력과 긍정의 상징으로 남고, 청설모의 웃음은 그것을 축복하는 자연의 화답처럼 다가옵니다.
독자는 웃음과 감탄 속에서, “건강한 습관이야말로 인생 최고의 자산”이라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 (📚 裕花, 윤승원 수필 전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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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네이버 ‘청촌수필’ 블로그 댓글
◆ 박경순 작가(전 총경) 2025.9.14. 15:38
선배님~~
저도 작년 8월 중순경
맨발걷기를 시작했으나
여러 소심한 생각(발바닥이 찌릿찌릿 느껴지고
아파서)에 두 달 정도 하고
그만두었습니다.
올해 다시 시도하려 했으나
워낙 날이 더워 못 했는데
그저 부끄럽습니다.
벌써 3년째라니
대단하십니다.
산에서 만난
공직 선배님도 그렇고....
청설모까지 찍는 행운도
가지시고.
건강하신 글 읽으니
저도 절로 기분이 좋아지네요.ㅎㅎ
▲ 답글 / 필자 윤승원 2025.9.14. 15:56
박 작가님께서도 맨발 경험이 있으시군요.
무엇이든 운동은 일상적인 생활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제 하루라도 하지 않으면
무언가 허전한 기분이 들어요.
저는 바로 뒷산이 맨발걷기 좋은
코스가 있어요.
계곡이나 약수터 흐르는 물에
발도 씻을 수 있고
맨발 산행 여건이 아주 좋아요.
박 작가님도 안전하고 편안한
둘레길 찾아 맨발운동 계속해 보세요.
돈 안 드는 운동이고, 시간 투자만 하면
되는 간편한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오늘도 박 작가님을 만나니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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