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팅, 삶을 일으키는 결심
여름밤은 깊어가고 잠은 오지 않습니다.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듣고 싶은 곡이 떠올랐습니다. 학생 때부터
좋아하던 스팅의 명반 <태양과 같지 않다(…Nothing Like The Sun)> 를 플레이어에 올려놓습니다. 앨범명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30번의 한 구절에서 따 왔습니다. 다채롭고 주옥같은 곡들이 차례로 귀를 사로잡다가, 이제 앨범의
중반에 이르면 가장 기다리던 곡이 시작됩니다. ‘깨어지기 쉬운(Fragile)’ 입니다.
휴가가 기다리는 여름이라고 인생의 고민이 갑자기 해결되고 마음이 저절로 느긋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견디기 힘든 뜨거운
날씨처럼 온갖 압박이 우리를 가혹하게 몰아친 하루였을 것입니다. 육신과 정신과 일상이 얼마나 쉽게 부서지고 깨어지기
쉬운지 절감하다 열기가 식은 밤에나 겨우 심신을 추스르게 됩니다. 그럴 때 노래는 양식이 되기도 합니다. 잠시의
위안이었다가, 깨달음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정말로 ‘삶을 일으키는 결심’ 이 되기도 합니다.
스팅의 노래 ‘깨어지기 쉬운’ 은 인간 존재의 연약함에 바친 찬가입니다. 연약함을 받아들이고 기억하는 것이 위태로운 삶을
버티고 살아내고 나아가 그 안에서 의미와 행복을 발견하는 시작이라고 믿는 이에게 이 노래는 각별합니다.
노래의 가사는 나의 개인적 삶의 영역만이 아니라 나의 삶이 위치한 우리 시대 인간사의 보편적 위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스팅은 실제로 이 곡을 남미 니카라과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다 정치적 폭력에 희생당한 미국의 시민운동가이자
전기 기술자였던 벤 린더(Ben Linder(1959-1987))에게 바쳤습니다.
인간사 곳곳에 폭력의 위협이 깃들어 있는 것은 노래가 발표된 1980년대 말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고, 이 곡에 담긴 호소
역시 지금도 절실합니다. 이 곡을 듣고 있으면 인간의 약함을 노래하는 것이 낙담이 아니라 위로를 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서로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기억할 때만이, 그래서 서로에게 손을 내밀고 보듬을 때, 함께 삶의 위기를 버텨낼 수
있다는 믿음이 이 노래에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내 안에서도 싹이 틉니다. 노래는 마지막까지 처연하게 탄식하지만, 이미 마음 어디선가 굳건한 희망이
자라고 있습니다.
부서지고, 깨어지는 인간 존재에 잘 어울리는 비유는 ‘유리’ 입니다. 매우 고통스러운 감정과 대면하며 빚어낸 김윤아의
앨범 <타인의 고통> 에는 ‘유리’ 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 노래를 듣다 보면 인간이 얼마나 상처 입기 쉽고 또한 상처 주기
쉬운 존재인지를 고통스럽게 떠올리게 됩니다. 안온한 일상이란, 어쩌면 환멸과 모멸에 깊이 파인 상처 위에 그저 종이
한 장 덮어져 있는 위태로운 환상일지 모른다는 불길한 느낌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위태로운 내면, 아슬아슬한 위기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가 결국은 너에게 상처를 주고 그 상처는 다시금 나 자신을
깊은 어둠으로 이끄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노래는 끝까지 따라갑니다. 너에 의해 깨어지고 부서지기 쉬운 나, 또한 너를
깨어지게 만들기도 하는 나, 그럼에도 우리 모두가 바라는 것은 행복입니다. 깨진 유리와 같은 존재인 우리가 행복할 수
있을까, 여전히 우리는 서로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노래는 이 물음에 역설로 답할 뿐입니다.
행복이 상처를 주고받는 아픔의 시간 끝에 자라난 꽃이기에 아름답다는 것일지, 혹은 ‘그럼에도’ 아름답다는 것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노래가 진정으로 희망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는 것인지, 아니면 잠시 고통을 잊게 해주려는 서글픈 동정일
따름인지, 차라리 삶에 아무 기대를 갖지 않은 다 타버린 재와 같은 초연함인지 여전히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노래가
끝나도 ‘아름답다’ 는 읊조림은 귀를 떠나지 않습니다.
Fragile, Fragile, Fragile…
시집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문학과 지성사, 2020)에 실린 시「유리의 존재」에서 시인 김행숙은 아예 우리를
‘유리의 존재’ 라고 부릅니다. 암울하고 슬픈 단정이지만 우리가 그림자처럼 어둠을 더듬거리면서도 시인의 표현처럼
‘검은 눈동자처럼 맑게 바라보며’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려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애를 써보다 비로소 사무치게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우리가 유리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곳에서 길이 열리기 시작한다는 믿음입니다. 홀로 흐느끼는 것 같던 노래의
끝에서 우리에게 치유되는 길이 있다는 믿음의 고백을 읽어냅니다. 일체의 환상과 작별하는 시어가 오히려 내면의 생명력을
깨웁니다. 우리는 유리처럼 깨지고 위태로운 존재이지만, 유리 조각에 찔리고 베이며 흘린 피와 눈물이 행복이라는 열매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그 행복이 아름다우리라는 것을 희망합니다.
인간은 ‘깨어지기 쉬운’ 유리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행복을 추구합니다. 상처받고, 상처주고, 때로는 그림자가
된 것처럼 공허하게 느껴지는 삶에 속절없이 고통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행복을 추구합니다. 행복은 쉬운 것이 아니지만
인생에 드리운 그늘이 아무리 짙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도달하려고 애쓸 가치가 있습니다. 이러한 추구는 헛되지 않습니다.
행복의 추구를 ‘의무’ 라고 말하는 철학자가 있습니다. 시몬 베유를 비롯한 20세기 초반 수많은 프랑스 지식인들에게 훌륭한
스승으로 존경받았던 철학자 에밀 오귀스트 샤르티에(Émile-Auguste Chartier(1868-1951)) 입니다. 그는 알랭(Alain)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이름으로, 전문가를 위한 철학 논문만이 아니라 간결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수많은 철학 단상을
쓰고, 대학 강단 대신 고등학교 철학 교사를 선택해 수많은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철학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회의적이고 합리적이면서도 열정적이었던 그는 당대의 소크라테스이자 몽테뉴 같은 인물로 존경받았으며, 타고난
스승이었습니다(참조: 조지 스타이너, 『가르침과 배움』, 서커스, 2021, 148-156쪽). 무엇보다 그의 사상의 중심에는 ‘행복’ 이
있습니다. 우리는 행복할 ‘의무’ 가 있고, 행복을 위해 애쓰겠다고 ‘맹세’ 를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알랭의 철학 단상에는
실제로 거듭해서 행복에 대한 예찬이 나옵니다. 무엇보다 다음의 말은 오래 기억하고 싶습니다.
사랑 속에는 행복에 대한 맹세 이상으로 심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행복은 가장 아름답고도 가장 관대한 선물이다.
_알랭, 『알랭의 행복론』(디오네, 2016) 332쪽
행복을 의무라 말하는 알랭의 말의 뜻을 깊이 곱씹어 본 사람이라면 고통 가운데 일궈가는 행복 역시 아름답다는 것을
빈말이라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감상과 도피의 마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응시하는 굳건한 마음으로 동감할 것입니다.
삶의 깨어진 조각들을 구원하고자 햇빛처럼 쏟아지는 은총의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손바닥과 발바닥이
깨진 유리에 상처를 입는다 하더라도 ‘유리의 존재’ 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장하고 고귀하며 아름다운 일임을 확신합니다.
약해서 깨어지고 부서지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참된 행복을 위해 애쓰는 ‘유리의 존재’ 들에게 신약성서의 사도 바오로의
편지에 나오는 말씀이 더없는 위로가 됩니다.
내가 자랑해야 한다면 나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들을 자랑하렵니다.
_2고린 1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