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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초장 | 1-3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①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3 ②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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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의골짜기 | 4-5 4 ③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④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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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 | 6 6 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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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편, 영원한 집으로 인도하시는 선하신 목자
요절 : 1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3편은 하나님과 성도와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에 비유하여 읊은 시입니다. 여기서 “목자”는 1차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춰서는 아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임마누엘 하셔서 “선한 목자”가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점을 선지자를 통해서 여러 번 말씀하셨는데, “내가 한 목자(牧者)를 그들의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겔 34:23) 하고 예언케 하시고 주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 하고, 성취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23편에서는 그리스도가 “선한 목자”로, 22편에서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고난의 종으로 계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3편을 관찰해보면 도표에 표시된 대로 전부가 목자(牧者)가 양을 위해서 행해주신 일 뿐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영원한 집으로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목자는 양의 “인도자가 되시고, 공급자가 되시고, 보호자”가 되어주십니다.
첫째 단원(1-3)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
둘째 단원(4-5) 사망의 골짜기와 주의 지팡이
셋째 단원(6) 영원히 거할 여호와의 집
첫째 단원(1-3)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
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1) 합니다. 이는 23편을 한마디로 요약을 한 명제(命題)라 할 수가 있습니다.
㉠ “목자”는 양에게 있어서는, “인도자요, 공급자요, 보호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점이 본문에서는 비유적으로 표현이 되어 있는데, 참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실질적으로 성취가 된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다” 했는데, 이는 육적으로 풍족하다는 말이 아니라 전적인 신뢰를 나타냅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 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10) 하는 것이 부족함이 없는 삶입니다.
㉡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2) 합니다. 이는 “꼴과 생수”를 먹여주시는 공급자임을 나타냅니다. 이점을 36:8절에서는, “저희가 주의 집의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수(江水)로 마시우시리이다”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 10:9) 하시는 것입니다.
“꼴과 생수, 살진 것과 복락의 강수”가 신약에 이르러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53-55) 하고, 주님의 “살과 피”로 주어진 것입니다.
②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3) 합니다.
㉠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한 표현에서 23편이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함이 드러납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영혼을 소생(蘇生)시키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이는 거듭남을 가리키는데 22편의 구속을 통해서만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영혼이 소생이 되어야만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 의의 길로 인도”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여기에는 “자기 이름을 위하여” 한,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과 영예가 걸려있다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첫 창조를 마치시면서,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 하셨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3장에서 이것이 파괴를 당한 것입니다. 이때에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모독을 받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 즉 하나님의 나라건설에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과 영예가 걸려있다는 점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입니다.
둘째 단원(4-5) 사망의 골짜기와 주의 지팡이
첫째 단원이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라면, 둘째 단원은 전쟁(戰爭) 마당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23편을 평화로운 전원(田園) 교향곡과 같은 것으로 여겨서는 큰일 납니다. 왜냐하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만나게 되고, “원수”가 등장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안전할 수가 있습니다.
③ 장면은 급변(急變)하여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安慰)하시나이다”(4) 합니다.
㉠ 신앙생활이란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통과해야만 하고, 대적하는 “원수”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목자, 또는 대장)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 이점을 84편에서는,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하면서,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84:6-7) 합니다.
④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5) 합니다.
㉠ “상(床)을 베푸시고” 한 것은 잔치 상을 가리킵니다. 이는 대적과 싸워 승리를 거둔 후에야 주어지는 것입니다. 창세기 14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대적을 물리치고 사로잡혀갔던 자들을 찾아오자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맞이해주면서, “천지의 주재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의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창 14:18-20)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상을 베푸심”입니다.
㉡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하는 것은, 잔치 날에 귀빈에게 베푸는 최고의 예우입니다. 그래서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는 것입니다. 이점을 사도 바울은,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8) 합니다. 이는 표현만 다를 뿐 같은 뜻을 나타냅니다. 형제는 그 날에 주님이 배설하신 잔치 상에 앉아서 넘치는 잔을 받으시게 될 하나님의 자녀요, 병사인 것입니다.
셋째 단원(6) 영원히 거할 여호와의 집
⑤ 23편은,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6) 하고 마치고 있습니다. 이는 한 절에 불과하지만 23편의 결론이 되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 이는 성도들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적지(目的地)가 어디인가를 나타냅니다. 그것은 푸른 초장도, 쉴만한 물가도 아닙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만난다 해도 낙심하지 말 것은 그것은 통과(通過)해야 할 과정(過程)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 23편을 구속사의 지평으로 바라보면 한 성도가 여호와의 집에 이르기까지의 평생을 압축해놓은 “천로역정”(天路歷程)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 영혼이 소생(거듭남)됨으로 시작된 그의 신앙여정은,
㉯ 어린아이와 같을 때에는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에 누어있는 어린양과 같이 젖으로 양육함을 받게 됩니다.
㉰ 그러나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큼(민 1:3) 성장하고 훈련이 되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전쟁터로 출정을 하여 지옥으로 끌려가는 다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원수” 마귀와 선한 싸움을 싸우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 이런 고난을 통과한 후에 “원수의 목전(目前)에서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한, 위로와 후대하심이 있게 되어,
㉲ 드디어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하는,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 “나의 평생에 선(善)하심과 인자(仁慈)하심”으로 대해주시지 않는다면 이를 감당할 자가 누구이겠는가? 또한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점을 계시록에서는, “저희가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오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계 17:14) 합니다.
㉣ 마지막으로 명심해야할 점은 구원계획에는, “자기 이름을 위하여”(3)라 한, 여호와의 이름과 명예가 걸려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통해서 두 가지 주제를 깨닫게 되는데,
㉮ 첫째는,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 하신 구원의 확실성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중도에 빼앗긴다든가 미완성에 그친다면 “자기 이름” 곧 여호와의 명예에 손상을 가져오기 때문에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 둘째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이름, 그리스도의 이름”이 걸려 있다는 정체성입니다. 이점을 사도 바울은,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7-8) 하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영원한 집으로 인도하시는 선하신 목자”입니다.
적용 : 23편은 한 영혼이 여호와의 집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자기 이름” 곧 여호와의 이름과 명예가 걸려 있습니다. 형제는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에 안주하기를 바라고 있지 아니합니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죽어가는 영혼들이 있음을 잊지 맙시다 선한 싸움을 싸운 후에야 주께서 베풀어주시는 “상”에 참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묵상
㉠ 구약의 목자가 신약에는 누구로 오셨는가에 대해서,
㉡ 양에게 있어서 목자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서,
㉢ 목자와, “원수”가 등장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에 대해서.
첫댓글 아멘!!!
늘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신 말씀으로 사역을 감당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